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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가 대세이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휴대폰 화면을 열심히 들여다본다. 심지어 대화할 사람을 앞에 두고도 휴대폰을 힐끔 거린다. 다문화 가정이 늘고 취업은 어려운데 과연 우리 사회가 어떤 길을 걸을까. 신경정신과 전문의인 이나미 박사는 앞으로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 책에서 전망했다. 장밋빛 전망은 없다. 온통 암울한 일들이 눈에 보인다. 이 책을 펴기 전까지는 미래 사회에 대한 딱딱한 교과서적인 내용을 예상했었다. 하지만 저자는 상황극을 예로 들어 제시하면서 흥미롭고도 재미있게 전달해 주었다.
모두 7개장으로 나누어서 예상되는 미래를 짚어주었다. 미래 사람들의 소통 방식과 삶으로 시작하는데 결국 사람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기 때문에 책의 출발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개인이나 가족 구성원들은 디지털 사회의 넘쳐나는 정보와 여론으로 인해 점점 고리가 약화된다고 한다. 누구나 쉽게 디지털 세상을 접하다보니 갖고 있는 에너지를 엉뚱한데 소모한다. 불필요한 디지털 공간에 할애하는 시간을 자신의 능력과 힘을 기르는데 사용한다면 정말 큰일이라도 해낼 것이다. 학생들은 교수와의 소통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답변을 찾는데 익숙해진다. 가르침을 통해 은연중에 배우게 되는 예의범절이 사라진다.
자신의 세계를 좀 더 풍요롭게 가꿀 때 또 상대방에 대한 진심 어린 관심과 관용의 태도를 가질 때 배울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과 만날 때 행복해야 그 관계를 지속시킨다. 나를 모욕하거나 멸시하는 사람은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즉 누군가 나를 찾아온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무언가를 베풀고 있다는 말이다. 타인과의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베풂과 배려라는 당연한 원칙을 다시 한 번 새겨둘 필요가 있다.
여러 이민자가 귀화하면서 다국적 혈통을 가진 젊은이들의 자아 정체성 혼란도 문제가 된다. 이미 다문화가 진행 중이어서 이것은 미래의 한국 사회를 쉽게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저자가 다른 부분에서와는 달리 가볍게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은 소수자에다가 경제적 약자에 놓일 확률이 크므로 사회에서 제대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미래엔 큰 사회 문제로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심층적으로 다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미래의 부정적인 전망을 읽어오면서 참으로 암울해진다. 이 책의 토론 모임에서 너무 부정적인 전망이 아니냐는 말들이 나왔지만 오히려 낙관적인 전망 보다 우리 사회가 불행한 모습을 전망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더 경각심을 주고 대비할 수 있게 해 주니 말이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했다. 다가올 미래 사회를 예상할 수 있다면 그에 대한 대처를 확실히 해 두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우리 모두가 읽어봐야 할 필독서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저자의 에필로그가 매우 마음에 든다.
반대로 지금은 아프고 힘들고 외롭지만 더 나은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현재를 참아낼 수 있는 힘이 있다. 미래에 대한 믿음은 사실 자기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기도 하다. 이들은 비록 지금은 이렇게 고생하고 무시당하고 또 애쓰고 있지만, 이런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잠재력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다. 미래에 대한 비전은 안팎으로 곤경에 빠졌을 때 포기하려는 나를 격려해주고, 때로는 건강하게 타협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일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대로 주저 않지 않고 다시 시도해볼 수 있게 도와준다. 청사진을 갖고 씩씩하게 무언가를 시작했지만 도중에 크고 작은 실패에 좌절해 자신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싶을 때 미래에 대한 희망은 다시 한 번 자신을 추스르게 만든다. 이것이 이 책에서 미래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펼친 가장 중요한 이유다.(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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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지금 어느때보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는 '투명'이라는 이름하에 해체 되어 가고 있는 우리 사회를 '부정성의 진리'위에 새롭게 건설되고 있는 '디지털 파놉티콘(원형감옥) '이라 진단하였다. 그렇다면, 이 원형감옥의 다음은 어떤 미래일까. 상상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미션 임파서블>과 <데몰리션 맨>,<아일랜드>까지 수많은 디스토피아 영화에서 우리의 획일화된 미래를 볼 수 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며 모두가 똑같은 옷을 입고 오히려 '생각'을 하는 인간은 위험한 인간으로 간주하여 철옹성 감옥에 가두어 놓는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그 디스토피아 미래에 깃대를 꽂고 신자유주의의 바다를 열심히 헤엄쳐 가는 중이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세상은 점점 투명해져가고 있고, 신자유주의의 미명아래 모든 것이 통제되며 관망하며 동일시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사회는 서로가 약속이나 한듯 긍정사회와 전시사회, 가속사회, 친밀사회, 정보사회를 넘어서 폭로사회로 더욱 조밀해지고 촘촘하게 변질되어 가고 있다. 아침 뉴스에는 여기서도 폭로, 저기서도 폭로를 외친다. 윤일병 사건에서 제주지검장의 성추문, 세월호 사건과 관련한 수 많은 이야기들이 도미노처럼 터져 나온다. 어디서부터 믿어야 할지,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모르지만, 이러한 폭로전에 끼여 우리는 진위여부와 상관없이 불안한 미래를 예감하며 암담한 현실을 살게 된다.
정신과 의사이자 분석심리학자인 이나미 박사는 《한국사회와 그 적들/ 추수밭》에서 우리 사회의 컴플렉스에 날카로운 메스를 대어 도려내듯이 통렬하게 현실사회를 진단한 바있다. 이 책 《다음인간》에서는 미래와 심리를 연결하여 현실의 살아가는 힘을 일깨우는 분석심리학을 선보인다. 작은 스마트폰 하나로 세상과 소통하는 지금의 사회는 불과 몇 십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없던 미래였다. 이 손안의 컴퓨터가 등장함으로써 우리의 모든 생활패턴은 조금씩 이지러지기 시작하였고 먼미래에는 상상초월의 세계가 도래할 것은 자명해 보인다. 과거 <데몰리션맨>의 미래는 세월이 흘러 어느새 현실이 되었고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간 본연의 감각들을 퇴화시켰고 사회에는 무감동과 타성에 젖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영상 매체의 지나친 자극으로 인해 무욕인간과 사이코패스가 증가하고 있고 이러한 현실을 거부하고 떠도는 보헤미안형 인간들도 넘쳐난다. 거기에 남성성의 점진적인 퇴화와 양성화되어 가고 있는 인간들의 증가로 메트로섹슈얼의 하위문화가 점진적으로 퍼져갈 것이며 에볼라 바이러스의 공포로 전세계가 떨고 있듯이 전염병은 빠른 속도로 세계화 되어가고 세대간의 극심한 격차와 불통은 외로운 죽음을 맞이하는 노인들을 일상으로 보며 매일 아침 축적된 독성물질로 먹거리의 위협 가운데 유전자 조작식품을 먹고 복제 기술의 발달로 로봇을 키우게 될 것이다. 이런 미래의 모습은 어느 날 짠하고 열리는 것이 아니다. 저자 이나미 박사는 현재 우리의 고통에는 의미가 있고, 현재의 갈등과 곡절은 모두 미래의 변화와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의 모든 증상이 과거를 말해주는 정보이지만 동시에 현재와 미래를 연결해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뜻이다. 이른바 텔레올로지 이론이다. 저자는 20세기 초반 칼 융이 개발한 명상법으로 자신의 무의식을 깊이 들여다보며 미래를 상상해 현재의 힘든 상황을 이겨낸다는 적극적 상상 기법과 위의 텔레올로지 이론을 합쳐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상상 조감도를 선보이고 있다.
이러한 작업은 현실과 연결하여 미래의 미시적인 전망을 통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연결해주며 강한 자기실현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지를 꼼꼼하게 짚어주는 효과가 있다. 이렇게 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움직이는 것은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원형적 에너지'라는 것인데 이 근원적이고 생래적인 인간 본연의 심성을 발견하여 미래를 희망적으로 그리자는 것이 이 책의 골자이다. 저자가 그려주고 있는 미래 조감도는 공포스럽기까지 하지만, 그 상상으로 우리에겐 얼마든지 현재를 개선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 어떤 상상을 하든 미래는 이미 와 있다. 다만 널리 퍼져 있지 않을 뿐이다.(윌리엄 깁슨) 바꾸어 말하면, 미래는 곧 현재의 문제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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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봤던 짧은 풍자만화가 기억이 난다.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바라보고 작업중인 한사람이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외적인 소통이 줄어들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들고 나중에는 아예 세상과는 단절된채 바깥출입 마저 끊게된다. 몸의 움직임 조차도 점점 줄어들어 퇴화하다보니 머리만 크게 남아 있고 손만 제대로 움직이며 쓰지 않는 발과 하체는 오징어처럼 흐물대더니 급기야 머리만 남은 오징어처럼 되어버리는것이었다. 어린시절 공상과학만화에서 등장했던 외계인 모습이 저러지 않았던가... 인간도 앞으로 이렇게 몸을 움직이지 않고 머리만 쓰게 되면 저렇게 된다는것을 풍자한것으로 적지않은 충격을 받은적이 있었다.
이 책 또한 읽어 나가면서 위에서 받았던 충격이상으로 강한 임팩트를 던져준다. 제목으로나 장르상으로 상당히 딱딱할것으로 예상을 했지만 작가 특유의 부드러운 글솜씨로 그런 선입견을 말끔히 지워버릴수 있었다. 다만 읽어 갈수록 현실감을 느끼며 정말 이렇게 되면 어떻게 하지? 라는 걱정이 앞서면서도 충분한 타당성이 있는 말이기에 인정을 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제제모임에서도 책이 미래에 대해서 너무 비관적이라는 의견과 어쩔수 없이 다가오는 미래에 대해 어느 정도 미리 대비하자는 의견으로 나뉘기도 했다.그래도 결론은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 할수 밖에 없는 내용들이라는것이다.
영국의 어느 여성이 페이스북에 약을 먹었다고 안녕을 고하는 유언을 남겼고 148개의 코멘트가 달렸지만 하나같이 그 유언을 비웃었고 1000명이 넘는 페이스북 친구들은 그녀의 시신이 발견될때까지 아무 조치도 없었다는 이야기를 프롤로그로 삼았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시대에 이 변화무쌍한 시대에 인간의 삶은 과연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질문들이 이책의 출발점이라는것이다.
이미 감동에는 무감각해지고 타성에 젖을대로 젖어 아무것도 하고 싶은게 없는 무욕인간이 늘어만간다. 반면에 자기 멋대로의 욕망에 빠져 함부로 살며 남들을 해하는 사이코 패스까지 등장하게 된다. 정착하기 싫어 가족의 필요성을 못느끼고 전통적인 남성성은 점점 사라지고 중성화 되어가고 만다. 따라서 가족의 개념이 사라지고 공동체 형태로 바뀌며 남자의 필요성이 없어져 여성들은 결혼마저 기피하고 필요하며 아이만 갖는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의학의 발달로 평균수명은 늘어나고 그럴수록 세대차이는 더 벌어져 노인과 청년들의 갈등은 심화가 된다.
지나친 정보의 범람과 노출되고마는 자신들의 세계로 인해 자신만의 방은 상실되고 기계속의 삶속에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게 된다. 경제위기는 한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의 경제마저 흔들어대고 스마트폰의 통역으로 언어의 장벽이 무너지고 국경이 사라지게 된다. 결국 인종과 민족을 초월한 다민족 혈통이 생기고 새로운 충돌이 일게 된다. 지구온난화의 급속한 진행으로 세계지도는 변화되고 없어지는 국가가 발생이 된다.
발달되는 의학기술로 인해 장애인들이 날개를 달게도 되지만 인간대신 로봇을 끼고 사는 사람들이 늘고 우주여행이 부의 상징이 되는 사회가 현실화 된다. 반면 다민족들간의 이동으로 토착민에게만 존재하던 세균들이 심화되어 무서운 전염병으로 돌변하기도 한다. 결국 슈퍼박테리아를 발생시키기도 하는것이다. 또한 뇌와 몸을 이식시키는 의술이 발달해도 몸의 주인이 누구지를 모르는 정체성의 혼란도 초래하게 된다. 종교마저도 통합되는 방향으로 흐르고 사이비 종교에 희생되는 사람들이 늘어가게 된다. 부부와 가족끼리도 종교는 개별적인 행사로 이루어 질수도 있다. 그리고 필요성을 못느기는 청년들에 의해 제사문화는 점점 사라질것이다. 점점 죽음을 함께하는 자살클럽이 늘고 필요에 의해 살해를 돕는 조직이 비밀리에 활동할것이며 죽음은 가족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치부될것이다.
고통스러운 현재는 역설적으로 변화의 실마리가 될수있다. 과거의 잘못을 따지고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데에서 그칠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일어날 일들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면서 자신안에 잠재 되어있는 능력과 가치가 미래에는 어덯게 기능할지 상상해 보는것이다.(234쪽)
미래에 대한 비전은 안팎으로 곤경에 빠졌을때 포기 하려는 나를 격려해주고, 때로는 건강하게 타협할수 있는 힘을 준다.일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대로 주저앉지 않고 다시 시도해 볼수 있게 도와준다.(238쪽)
현실에 실례를 들어가며 이야기를 풀어 나가 읽으면 읽을수록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싹트는것은 사실이었다. 비록 모든 이야기가 사실에 가깝고 어쩔수 없이 맞아야 할 미래라지만 과거의 잘못에만 영ㅇ치 말고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도모해보자는 작가의 말에 많은 공감을 한다. 따라서 이글은 비관적이라기 보다는 비관적으로 다가올수도 있는 미래를 낙관적으로 바꾸어 갈수도 있다는 희망의 메세지를 전해 주고자 한다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끝으로 이 책을 주선해주신 비올라님과 시공사에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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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는 소천하신 어머님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 바람에 3년 가까이 [북소리]를 연재하면서 처음으로 원고마감을 넘기기도 했습니다. 매주 [북소리]를 기다리시는 분들에게 저의 송구한 마음이 전해졌으면 합니다. 네 아들과 며느리, 여섯 손자, 손자며느리와 손자사위 한 명 등, 참석할 수 없는 사연이 있는 두 손녀를 제외한 어머니의 자손들이 모두 모여 이승에서의 이별을 슬퍼하였습니다. 뇌경색으로 입원하셔서 다섯 달을 투병하시다가 뇌경색 재발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미 예고된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의 재활치료로 많이 회복되시는 중이라서 어머니의 죽음은 생각하지 싫은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준비되지 않은 장례를 치르노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절차도 있습니다만, 어머니께서 생전에 마련하신 가족납골묘에 모실 수 있었습니다.
어머님 장례소식을 먼저 적은 이유는 우리 아이들이 저의 죽음을 제대로 마무리할 수 있을까 하는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을 의심스러운 눈길로 바라본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라고 합니다. 파피루스에도 ‘요즈음 젊은이들이 지나치게 방탕하다’라고 적혀있다고 들었습니다. 어쩌면 제 자신이 어머님 장례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이나미 박사님의 <다음 인간>을 읽다보니 공연한 걱정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저자는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이 인간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예견하고 있는데, 저자의 예견에서 기시감이 느껴지는 것은 이미 변화의 조짐을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는 지나치게 아름다운 미래를 제시하면서 현재의 모순에 눈을 감게 만드는 태도나 반대로 극단적인 디스토피아를 제시하면서 결국 세계가 멸망할 것이라는 식의 가짜 예언자적 태도 모두를 지양한다.(15쪽)”라면서 중립적인 입장임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부정적인 쪽으로 기우는 것 같은 느낌이 남습니다.
저자는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미래에는 욕망도 인간도 관계도 사라진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합니다. 그 때는 다섯 가지 유형의 인간이 등장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무 것도 갖고 싶지도, 하고 싶지도 않은 무욕인간은, 극단적인 통제와 방임 속에서 결국 무욕인간 혹은 사이코패스 둘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사이에도 끼지 못하는 사이인간은, 기술의 발달로 국경이 ‘완전히’ 허물어진 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아 정체성 혼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오감만족을 삶의 최고의 가치이자 목적으로 꼽는 오감만족 지향형 인간은 너무나 많은 자극에 노출된 나머지 감각기관은 훨씬 더 빨리 지치고 권태를 느낄 것이라고 합니다. 지나치게 자아에 집착하던 것에서 벗어나 초월적 자기실현의 세계를 지향하는 탈자아형 인간은 물질주의, 외모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명상을 추구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로봇에 의해 양육되고 로봇과 사랑하고 로봇에게 아픈 몸을 맡기는 R세대는 이들의 사고체계에 부족한 감정적인 면을 어떻게 성숙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를 떠안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전작 <슬픔이 멈추는 시간; http://blog.yes24.com/document/7656210>을 통해 처음 만난 이나미박사님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정신의학을 전공한 전문의입니다. 박사학위를 받은 다음 뉴욕의 융 연구원에서 분석심리학을 공부하고 유니언 신학대학에서 종교심리학을 공부하여 석사학위를 받은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자는 이런 학문적 배경을 토대로 융의 텔레올로지이론과 적극적 상상기법을 합쳐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 상황에 대한 다양한 상상을 해보도록 내담자들을 이끌어 치료하는 법을 세운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심리분석은 내담자의 과거에서 원인을 찾고 그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판단하는데, 모든 것을 심리적 외상으로 환원하는 것은 사람들을 무력감에 빠지게 만드는 위험을 안고 있다고 합니다. 반면 저자는 상처받은 사람들이 과거의 어느 시점에 고착되어 자신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미래에 대한 적극적 상상은 일종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지금은 비록 힘들고 아프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으면 다시 기운을 차려 움직이듯이 우리 한국인들 역시 미래에서 희망을 볼 때 현재의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을 것이다.(14쪽)”
한편 저자가 신화와 오래된 역사를 인용하여 현재를 설명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어떤 집단의 원형적 심성이란 오랜 세월을 지나오면서 사람들의 내면에 쌓여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저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쟁의 신 마르스는 절름발이 대장장이 헤파이토스의 아내이자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 즉 비너스와 혼외관계를 가져 하모니아, 즉 조화의 신을 낳았다는데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21세기에는 정형화된 여성성이나 남성성이 지배하던 과거보다 성 정체성에서 훨씬 자유로운 새로운 형태의 가정이 등장할 것을 예견하고 있습니다. 지금과는 너무나도 다를 것이라는 저자의 미래예측을 읽으면서 마음 한 구석에는 ‘그래서 해답은 무엇인데요?’하는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지만 마땅한 답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해답은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것일까요?
어렸을 적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 가면 동네어른들이 사랑방에 모여 새끼를 꼬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커서는 친구들과 어울려 몰려다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의 저는 퇴근하면 집으로 향하는 것이 일상이 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아이들은 집에 들어와도 각자의 방에서 게임을 하다가 잠이 들곤 합니다. 선친께서는 대화효(對話孝)를 강조하곤 하셨습니다만, 대학에 다니던 어느 해인가 형제들은 집에 없고 부모님 두 분만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계신 모습을 보고서 시골집에 자주 내려가기로 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녁에는 어머님과 소주잔을 나누면서, 다음날 아침에는 아버님과 바둑을 두면서 서울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들려드리곤 했습니다. 물론 얄팍해진 주머니 사정도 빠트리지 않아서 서울로 올라올 때는 주머니가 두둑해지곤 했습니다. 아이들이 저처럼 스스로 느끼고 깨닫기를 기다리면 될까요?
아이들이 성년이 되었습니다만, 아직은 짝을 찾는 일에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혹시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가정을 꾸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아내를 귀찮은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혼자 사는 남자와 여자가 많아지면서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가 각광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저자의 예상을 읽다보니 저의 생각이 단순한 걱정을 넘어 심각한 우려 수준으로 확대되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도시 공동체는 기존의 핵가족 중심의 폐쇄적인 주거 형태가 아니라, 혼자 사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새로운 가족을 이루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노인이 사는 집에 아이를 혼자 키우는 젊은이가 동거하되 부엌은 따로 쓰는 등 사생활은 보장되지만 응급한 상황일 때는 언제든 서로 도움을 줄 수 있는 형태입니다. 사실 가족도 불편해서 관계를 만들지 않은 사람들이 피도 섞이지 않은 타인과 공동체를 만들어 부딪치며 살아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심지어는 다부다처제도 등장할 것이라는 주장인데, 이미 인류의 역사에서 검증되어 사라진 제도로 회귀할 수 있다는 논리적 타당성이 다소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 앞으로는 상대방에게 애착을 가지고 헌신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도, 요즘 확산되고 있는 ‘아이스 버킷’ 릴레이를 보듯이 아직도 세상은 살만한 구석이 남아 있다는 생각에서 선뜻 공감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지나치게 낙관주의적이라서 일까요?
의학의 발달에 따른 인간소외를 다루면서 의사인 저자가 한국이 세계의학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낙관적 예측을 내놓고 있는 것은 지나치게 팔이 안으로 굽은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면서도 의료서비스의 불평등한 분배로 한국의료의 질이 낮아질 것이며, 사회적으로는 커다란 불안요인이 될 것이라고도 합니다. 한국의료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은 의료비 부담을 늘리지 않으면서도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받으려는 의료소비자들의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바탕에 깔려 있다는 점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왜일까요?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같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의료평등주의가 결국은 의료의 질을 하향평준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은 할 수 없을까요? 유전자조작으로 새로운 생물종을 만들어낸다거나 뇌이식술을 통하여 생명을 연장한다거나 하는 지금의 생명윤리로는 허용되지 않은 기술이 개발될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은 아마도 앞으로도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는 부정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나름대로 이해를 해보았습니다.
제사문화에 대한 저자의 언급은 상중에 있는 필자의 생각을 복잡하게 만듭니다. 기제사에서 가족들 사이에 분란이 있었다거나 큰 재산을 물려주고도 제사 같은 귀찮은 일은 만들지 않은 부모를 세련되고 여유 있다고 표현한 것은 저자가 제사의 의미를 잘 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물론 부모제사를 잘 모셔야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기복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제사란 돌아가신 분의 자손들이 모여 돌아가신 분들을 추모하고, 그분들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공유하면서 가족공동체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양보와 역할분담을 통하여 서로를 이해하고 돕는 관계가 공고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슬픔이 멈추는 시간>에서 종교에 대한 저자의 열린 마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만, 이 책에서도 저자는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원불교, 힌두교, 기독교와 뉴에이지운동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종교 운동이 시작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유라시아대륙의 동쪽 끝 작은 반도에 있는 지정학적 특성상 우리나라는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받아들여 알맞게 조화시키는 용광로와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왕조 5백 년 동안 우리사회의 규범적 전통을 지켜온 유교에는 곁자리조차 내주지 않은 이유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종교를 기반으로 하는 대안 공동체 운동을 제시하면서 가정이라는 전통적 사회단위를 깨트려야 할 대상으로 보았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무너져가는 가정을 보완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재창조하는 길은 없을까요?
저자가 원시기독교나 불교 공동체 사회와 비슷한 모습의 대안공동체가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비교적 재산이 많지 않은 사람들이 함께 살면서 주거비용 및 기타 부대비용을 줄이고 여러 가지 문화생활을 즐기자는 취지로 만들어질 것이다. (…) 대부분의 가정이 해체된 뒤 비슷한 가치관, 종교관, 교육관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일종의 가정이자 종교 집단을 꾸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214쪽)”라는 저자의 생각에 문제는 없을까요? 저자 역시 이들 집단에서 갈등은 없지 않겠지만 가족과 달리 언제나 탈퇴 가능하다는 점 특별한 공동체 활동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가족들도 피해갈 수 없는 갈등요소들을 타인과의 관계에서 무탈하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의 마지막을 구성하고 있는 ‘새로운 죽음의 방식’도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미 고독사가 사회적 화두가 된지 오래입니다만 자살클럽이 늘어나고, 심지어는 잉여살해를 돕는 비밀조직이 등장할 것이라는 저자의 예측이 차라리 틀렸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0세 시대가 되면서 존엄하게 늙고 존엄하게 죽는 것이 많은 사람의 화두가 된지 오래이며, 가까운 미래에는 대책 없이 늘어나는 의료비에 대한 압력 때문에 선별적으로 안락사가 합법화 될 것(225쪽)”이라는 저자의 예측 역시 틀릴 것 같습니다. 이유는 ‘선별적’에 있습니다. 자신이 그 선별되는 그룹에 드는 것을 용납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어머님 장례식 때 ‘부모나 형제의 장례식에 나타나지 않는 사람이 점점 늘어간다.(232쪽)’라는 저자의 예견이 틀렸음을 증명할 수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힘든 현재를 인내하고 견디는 것이 단순히 화를 누르거나 자학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 있는 내 안의 잠재적인 힘을 찾아내는 것(234쪽)’이기 때문에 미래를 그려보는 일 역시 자신 안에 잠재되어 있는 능력과 가치가 미래에는 어떻게 기능할지 상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 저자의 마무리 말씀을 통해서 <다음 인간>에 펼쳐놓은 저자가 예견하는 미래의 상황들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역설을 담고 있는 것 같다는 자의적 해석으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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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다. 과거의 어느 시대나 ‘세상이 어찌 될런지…’ 와 함께 ‘요즘 아이들은 참 문제야’라는 우려가 있어 왔다. 그럼에도 세상은 이만큼 유지되어 왔고 또 똑같은 말로 세상을 걱정하면서 현재의 우리는 미래를 걱정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은 과거 그들의 그것과는 또 다른 것 같다. 현재의 우리는 과거의 그들보다 훨씬 더 빠른 시간의 흐름 속에 있기 때문인데, 우주 여행이나, 유학을 가지 않고도 공부를 할 수 있는 등 언어의 장벽 해소와 같은 기술 발전에 의한 미래가 우리의 삶 자체를 풍요롭게 해 줄 것은 분명하지만 그와 상응할 만큼 존엄성에 대해 위협을 받을 것임도 강 건너 불 보듯 뻔한 일인 것 같다. 이제 인생을 한 번 되돌아보는 시점에서 이 책의 내용은 굉장히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현재 내가 갖고 있는 고민과 불안을 더 가중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하는 까닭에 부정적인 면이 강하지만 정확히 알 수 없는 미래에 ‘이런 일도 일어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과 그에 대한 대처방법을 떠올려 본다면 미래예측 가이드북으로 과히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 책은 개인과 가족을 넘어 사회문제와 국가문제로 시선을 확장시킨다. 대부분은 한번쯤은 들어봤거나 생각해 본 문제이지만 더 구체적으로 또 더 심각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현실성 있는 예를 들어가며 이야기하고 있는데, 가령 우리나라만 국한시켜서 봤을 때, 통일 한국 국민들간의 이념대립, 다문화 가정 문제, 인구감소로 인하여 다양한 민족이 섞이게 될 것이라는 것, 인간성에 대한 관점에서는 무욕 인간, 사이코패스의 증가, 나 홀로 죽음, 일부일처제의 붕괴 등 여러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설마 이렇게까지 되겠어? 라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지만 전혀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이런 부정적인 상황들이 다가올 미래의 모습의 전부는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도 농촌생활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미래에도 현재의 생활방식을 그대로 따라 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도시에 살면서도 녹색 소비자가 되어 텃밭을 가꾸거나 여러 사람이 한 집을 나누어 쓰는 공동체 주거를 하거나 또는 가족대행 프로그램 같은 것들이 생겨 가족이 아니면서 가족처럼 일상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저자는 책 내용 중에 ‘어떻게 살아야 보다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해 제안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친구가 있건 없건 자신만의 방에서 밖으로 나와야 한다는 것. 두 번째, 부족한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나눔의 방식을 좀 더 적극적으로 계발해서 상대방에 대한 진심 어린 관심과 관용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많은 상황들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끌고 갈 것인지는 지금 우리의 몫일 것이다. 앞으로는 더욱 많은 삶의 방식들이 존재할 것이고 이중에 무언가를 선택하기에는 훨씬 더 많이 복잡해 질것은 뻔한 일이다. 그런 복잡한 세상속에서 무엇을 선택하게 될지는 우리의 몫이지만 넘쳐나는 정보와 오염된 정보들 속에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믿음과 소통밖에는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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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 성당에 가면 미사 중에 신자들끼리 평화의 인사를 주고받는다. 미사를 주재하는 신부님이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면, 신자들이 한 목소리로 '또한 사제와 함께' 한다. 그리고 양 옆과 앞뒤 좌석에 있는 신자들을 향해 서로 가벼운 목례를 하며 '평화를 빕니다. 평화를 빕니다.' 인사를 하게 되는데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사람이든, 처음 본 사람이든 모두 그렇게 한다.
다소 엉뚱하지만 나는 '평화를 빕니다.'라는 인사를 받을 때마다 '고독을 빕니다.'로 해석하곤 한다. 상대방의 발음이 부정확하거나 내 귀가 어두워서 그렇게 듣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귀가 어두워도 '평화'를 '고독'으로 알아들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나는 다만 평화와 고독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전쟁이나 갈등이 없이 평온한 상태를 우리는 '평화'라 한다. 바꾸어 말하자면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위험을 느끼지 않는 상태에서의 인간은 '연대(連帶)'의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평화가 지속될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결속력은 약해지게 마련이다. 새로운 관계의 추구나 기존 관계의 유지도 느슨해질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한 권의 책을 선물 받았다. 책의 제목은 <다음 인간>. 신경정신과 전문의이자 분석심리학자인 이미나의 신작이다. 딱히 관심이 가는 책도 아니었고, 그닥 재미있는 책도 아닌 듯하여 며칠 동안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그랬더니 웬걸, 나에게 책을 준 분과 우연히 마주쳤는데 나보고 다 읽었느냐 묻는 게 아닌가. 뜨끔했었다. 내가 우물쭈물 답변을 흐리자 재미있는 책인데 뭐 그렇게 오래 걸리느냐 타박 아닌 타박을 하셨다.
그날 저녁에 나는 책을 단숨에 읽어버렸다. 이 책을 쓴 저자의 의도는 단순했다.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 과학기술의 발달이 우리 인간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그 결과 미래의 인간상인 '다음 인간'은 어떤 모습일지 추측하는 것이다. 기술의 발전에 따른 생활상의 변화 또는 소비패턴의 변화 등 실생활과 밀접한 외부 환경의 변화를 추측하는 책은 많았지만 인간 내면의 변화를 예측하는 책은 상대적으로 적었고 우리의 관심도 뒤떨어졌던 게 사실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미래의 인간상에 대해 다소 비관적인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요즘 청소년들의 행태만 보아도 충분히 그렇게 예측할 수 있지만 말이다. 예컨대 무감동과 타성에 젖은 사람들, 사이코패스, 관계의 해체, 감정이 부족한 R 세대의 출현, 에볼라 바이러스 같은 전염병의 세계화 등을 예상하는 것이다. 우리가 다음 세대의 인간상을 예측해 보고 문제의 해결책을 함께 고민해보자는 이야기이다.
"오늘날 빈부의 격차는 점점 더 심해지고 신자유주의가 세습자본주의로 정착되면서 젊은이들은 패기를 잃었고 노인들은 여유를 잃었다.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기 힘들다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물론 정치나 경제의 구조적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회 구성원들이 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p.15)
그러나 나는 위 대목에서 저자와 의견을 달리 한다. 우리 청소년들에게 발생하는 문제는 어떤 제도나 시스템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물질적 풍요와 평화의 지속에서 오는 문제라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예컨대 삶에 대한 애착이나 결속의 필요성은 결핍이나 생명의 위협이 증가할 때 나타나는 인간 심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는 전쟁이나 기아, 범죄와 질병 등 인간의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요소들이 많았다. 이러한 문제는 개개인이 홀로 감당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었다.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인간 관계의 중요성, 사회 공동체나 국가 공동체를 통한 결속의 필요성을 절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가족 구성원에 대한 사랑,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에 따른 위험 요소의 감소는 물질적 풍요와 육체적 편리를 가져다 준 반면 적극적인 인간 관계의 도모, 꿈과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열정, 가족 구성원과 국가 구성원에 대한 애정과 감사는 상대적으로 약해지게 된다. 필연적으로 말이다. 먹고 살 걱정이 없는데 굳이 일을 할 필요도 없고, 전쟁의 위협이 없는데 굳이 내 나라를 고집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게다가 미디어의 발전은 최소한의 인간 관계를 유지 가능하도록 만들어 준다. 애써 노력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죽음과 종교에 대한 문제만 해도 그렇다. 저자는 종교의 쇠퇴와 종교인의 파산을 예측하면서 통합 종교의 출현도 예고하고 있다. 자살클럽의 증가와 잉여 살해를 돕는 비밀 조직의 등장도 말한다. 이것이 과연 사회 시스템이나 구조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일까? 나는 오히려 물질적 풍요, 평화의 지속에서 오는 삶의 '권태'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생명에 대한 위험 요소가 많을 때에는 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지지만 그러한 요소가 사라졌을 때는 오히려 삶은 따분하고 권태롭기만 한 것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참치를 잡으면 냉동 상태로 반입되지만 냉동 기술이 발전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참치를 살려서 들여와야만 했다. 원양어선에서 잡은 참치를 국내에 반입할 때까지 더 많이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던 중 참치 수조에 상어 새끼 한 마리를 넣어 두는 방법이 고안되었다. 참치만 담아 왔을 때는 폐사율이 높았지만 천적을 한 마리 넣어 둠으로 해서 폐사율이 현격히 떨어졌다고 한다. 생존을 위해 몸부림 칠 수밖에 없었으므로. "미래에 대한 비전은 안팎으로 곤경에 빠졌을 때 포기하려는 나를 격려해주고, 때로는 건강하게 타협할 수 있는 힘을 준다. 일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대로 주저앉지 않고 다시 시도해볼 수 있게 도와준다. 청사진을 갖고 씩씩하게 무언가를 시작했지만 도중에 크고 작은 실패에 좌절해 자신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싶을 때 미래에 대한 희망은 다시 한 번 자신을 추스리게 만든다. 이것이 이 책에서 미래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펼친 가장 중요한 이유다." (p.238)
요즘 아이들에게 결핍이나 생명의 위협을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따금 지구의 어느 곳에서 내전이나 자연재해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죽었다는 기사가 전해지기는 하지만 그것은 개별적이고도 직접적인 죽음은 아니다. '살아야겠다' 또는 '열심히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나는 풍요와 평화가 인간의 내면을 심하게 부패시킨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평화를 빕니다'는 인사는 '고독을 빕니다'로 들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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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의 영화를 보면 우리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곤 했었다. SF 영화중 제일 신기했던 것은 열쇠나 카드키가 아닌 홍채 인식 시스템이었다. 과연 홍채 인식을 해 문을 열수 있을까, 그저 SF영화속에서만 존재하겠지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몇십년이 지난 후 그게 실제로 행해지고 있다. 홍채 인식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현재에 미래에는 이런 일들이 있을 것이다 라는 생각과 계획들이 그대로 이어져가고 있다.
지금의 아이들, 스마트폰과 컴퓨터 등 기계로 조작하는게 일상화 되어 있는 아이들이다. 전화로 이야기하기보다는 페이스 북이나 카톡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전화 통화하면 이상하다는 말까지 하는 아이들이다. 우리들의 소통이 전화로 이야기하고, 모여서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하는 것이었는데, 요즘의 아이들의 소통법은 기계적이다. 스마트폰으로 이야기하고, 컴퓨터로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이런 아이들 뿐만 아니라 많은 아이들이 집안에서도 놀거리가 있기 때문에, 점차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안에서만 생활하는 아이들이 많이 생긴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젊은 청년들도 집안에서만 생활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은둔형 외톨이라고 하는데, 이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이 책은 분석심리학자인 이나미가 엄지 세대, 즉 스마트폰을 사용 하는 세대들이 기성 세대가 되었을때 인간의 삶이 어떻게 변할까에 출발점을 둔 작품이다. 기술이 발전한 시대, 그 속에서 인간의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이게 될까. 이에 대한 이나미의 견해를 알수 있는 작품이다.
얼마전에 「그녀 Her」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속에서 주인공 남자는 아내와 별거하고 있는 남자로 집에서 말할 사람이라고는 게임속 캐릭터와 밖에 없었다. 쓸쓸함과 공허함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운영체제를 장착하고 '그녀'와 대화하고 급기야는 그녀를 너무 사랑해 빠진다는 이야기였다. 사람과 이야기하기 보다는 운영체제와 이야기 하는 남자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서 현실 속의 우리의 모습, 곧 다가올 미래의 모습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저자는 앞으로의 가족은 독신체제로 갈 가능성이 많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들은 자기의 장점만 극대화해 멋있게 만드는 아바타 홀로그램을 통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오히려 직접 만나는 것을 꺼리게 되었는데, (67페이지) 라고 했다. 영화속에서처럼 될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가족에 대한 애틋함들이 사라지고 1인 가족, 혹은 몇 가족이 모여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것으로 갈 가능성이 많다는 이야기도 했다.
많은 부모들이 자신의 미래는 준비하지 못하고, 오로지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부모들이 많다. 모든 경제력을 쏟아부어 자식을 위해 쓰지만, 아래의 문장처럼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자녀들을 위해 시간과 돈을 모두 써버린 부모들 중에는 노년에 접어들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도 누리지 못할 만큼 큰 타격을 받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86페이지) 부모의 과잉보호 속에서 성장한 젊은이들은 빈부차이에 대한 사회적인 분노를 표현하는 데 거침이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현재의 우리를 보면 미래의 모습을 어느 정도 예견할 수 있는데, 저자의 글에서도 우리의 미래의 모습을 좀더 상세하게 알수 있었다. 저자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사용하는 2차원 소통 공간을 뛰어넘는 홀로그램이나 로봇 형태의 매체인 3차원 소통 공간이 발명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
또 한가지, 아주 재미있는 미래의 모습이 보이는데, 가족 간 끊임없는 갈등의 근원이던 제사가 급격히 사라질 것이라는 말이다. 명절이 다가올 때마다 한 집안의 며느리는 명절 증후군에 시달려 명절이 끝난후 이혼하는 사례가 많다고 하는데, 제사가 사라진다는 것은 이런 세태를 반영하는 것 같다. 갈수록 결혼을 기피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상대방 집안 행사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는 연애나 동거를 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다음 세대의 며느리는 지금보다는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분들은, 제사 걱정하지 마시길.
저자의 '건강한 자기 중심적 사회를 위하여' 라는 제목을 단 에필로그 속에서 눈여겨 본 문장이 있었다. 훌륭한 미래는 현재에 충실한 사람들에게만 열리기 때문이다. 나 보다 나은 미래를 평화롭게 공유하기 위해서 사회에 대한 배려와 의무도 훨씬 더 강조되어야 한다. 라는 말을 기억하면 좋을 것 같다. 현재에 충실하다보면 우리의 미래 또한 밝은 미래일 것이라는 희망적인 생각을 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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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래에 일어날 가능한 일에 대해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 그것이 상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이 되는 것을 하나 둘 경험하고 있다. 영화나 소설을 보면 다가올 미래에는 점점 발전하는 과학기술로 인해 더욱 편리하고 다양한 것들을 경험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 과연 정말 그럴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점점 스마트해지고 그 발전 속도의 가속력을 볼때 이제는 가상의 세계를 상상하는 SF (Science Fiction)과 함께 실제의 일을 이야기 하게 될 SNF(Science Nonfiction)에도 익숙해 지게 될 것 같다.
이 책을 처음 펴 들고 에필로그를 읽으면서 많은 부분을 공감했다. 우리는 기술적인 발전에 대해서는 익숙해 있고 이럴 것이다..를 보여주는 간접적인 경혐들을 해보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물리적인 것들의 발전에 비해 정작 우리들, 우리의 삶은 어떠한 형태로 바뀔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리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못 했던 것 같다. 점점 빠른 속도로 발달하고 있는 기술이 과연 우리 인간들은 어떤 모습으로 그리고 우리의 삶은 어떤 형태로 바꾸어 놓게 될 것인가.. 하는 그 상상을.. 어찌보면 기계문명이 발달하면서 그와는 반대급부로 발전하게 된 인간적인 측면들을 어느 정도는 예측하기에 오히려 언급을 회피하고 있지는 않았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인간은 기계와는 다르게 생각하고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어떤 기술적인 발전과는 차원이 다른 진화를 보여준다. 살아남기 편리하게 신체적인 구조들이 진화해 왔다면 앞으로는 기술의 발달로 인한 많은 문명의 이기들을 잘 활용하고 그것에 맞추어지게끔 인류는 진화(?)할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많은 관계속에 살아간다. 그리고 그 관계를 잘 유지하며 잘 살아가기 위해 지켜야할 최소한의 룰과도 같은 나름대로의 도덕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점점 그 관계라는 것은 의미를 잃어가고 서로를 구분 지었던 경계들은 희미해지고 중요시여겼던 가치관들이라고 하는 것들이 바뀌게 된다. 모든 일들을 대부분 기계가 처리해주기에 직접 대화를 나누거나 얼굴을 맞대고 뭔가를 도모하는 일이 급격히 줄어들게 된다. 가족이 그저 공동체의 의미로 여겨지고 그나마 가족도 가상공간에서 만나게 되고, 기계와 내가 만들어가는 세상.. 그 세상에는 더 이상의 나만의 영역도 없이 모든 것이 공유된다. 더이상 국경도 존재하지 않고 문화적인 차이도 점점 느낄 수 없다. 또한 의학의 발달로 수명은 길어지게 되고 나아가 어쩌면 죽음의 시간을 선택할 수 있게 될 지도 모르는,.. 그러한 미래.. 책을 읽으며 맘이 씁쓸하고 불편했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의 후세들이 살아나갈 시대라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그랬던 것 같다. 물론 그때에는 이런 것들을 씁쓸하고 불편하다고 느끼지 조차 못할 수도 있다. 비교할 근거가 되는 과거의 모습들을 잘 모를테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기계가 진화하듯이 그렇게 짜여진 공식에 의해 발전하는 것이 아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말을 붙들고 희망적인 생각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점점 편리해지는 세상. 그것을 부인하고 거부하고 싶지는 않다. 이제는 컴퓨터와 핸드폰이 없으면 일상이 불편하고 모든 해답을 정보의 공유로 쉽게 얻을 수 있는 편리한 세상. 앞으로는 이것은 편리의 축에도 끼지 못할 정도로 많은 놀라운 일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편리함은 편리함대로 그리고 우리네 인간은 인간미 넘치는 인류로 그렇게 살아가면 안 되는 걸까.. 하는 약간은 미련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본 듯 했다. 첨단 무기들이 등장하여 볼거리를 주는 블럭버스터 SF영화가 아닌 사람들의 뒤를 쫒으며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우리 인류의 미래를 생각해 보는 영화를 보고난 느낌이었다. 영화가 끝 난 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도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기성세대들은 이러한 것들을 자신의 잣대로 기준을 세워 놓고 강요하고 그렇지 않으면 비도덕적이라고 하여 비난한다. 도덕도 결국은 유연한 것이다 또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 그 현상만을 보고 우울해했던 마음을 다시 추스릴 수 있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궁극적인 가치들은 쉽게 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관계의 원형이 어떤 형태로 바뀌느냐의 문제일 것이다.변화에 유연하고 의연학 대처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쓴 글 답게 다양한 심리학적 이야기가 그리스 신화, 철학자들의 사상등과 함께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그것을 잘 인용해서였는지 어렵지 않게 잘 이해되었다. 또한 사례를 인물들을 등장시켜 짧은 단막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어서 더 와 닿았던 것 같다.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피하고 싶었던 .. 하지만 그렇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우리의 미래의 모습,,.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그 안에서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 그것이 다음 우리 세대를 위해 같이 고민하고 준비해 줄 수 있는 지금 우리 세대들의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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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미래에 대한 논의에서 주로 기술 환경 변화에만 초점을 맞추고 기술과 환경의 변화가 인간 심리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한 상상은 활발하지 않다면서 유명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내놓은 미래의 모습이 담긴 책이다. 쭉 읽어보면 아주 흥미로운 묘사들이 많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이 부정적인 것들이다. 우선 결혼도, 취직도, 친구들과 교류도 하지 않고 오로지 게임만 하는 남자가 점점 늘어나게 되며, 이들이 이른바 무감동 세대가 되며 무욕 인간으로 진화될 것이라 전망한다. 또한 한국에 거주하는 것을 거부하고 외국으로 떠도는 젊은이가 늘어나 한국 사회의 노령화가 더 가속화 될 것이라 한다. 한편 여성의 지위가 올라가고 여성들이 종사하는 서비스 업종의 일자리가 늘면서 상대적으로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룸살롱 숫자는 감소할 것이고, 돈이 있으면 당당하게 성을 즐기겠다는 여성들의 욕구가 상승해 여성들이 호스트바를 즐겨 찾게 될 것이라 말한다. 거기에다 남자가 여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상황에서 관계의 유일한 이유인 성생활도 꼭 남자하고만 해야 한다는 원칙도 없다면서 정상적인 결혼생활이 많이 줄어들 것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듯 여성들이 득세하는 반면 의존적이고 섬세하면서도 여성적인 남성들의 문화가 다양하게 발전할 것이라 전망한다. 또한 환경오염을 걱정하는 세기말적 분위기와 함께 음식이나 음악, 미술, 연극, 아로마 기술 등 사람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산업이 매우 다양하게 번창할 것이라 한다. 그리고 상점을 찾지 않고 온라인으로 물건을 주문하는 것이 대세가 되면서 사람들은 정서적으로 더욱 고립될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하고 있다. 물론 도시형 농부가 늘어나면서 빌딩 안과 옥상, 베란다 등에 인공 밭과 농장을 조성하는 것이 법제화 될 수도 있다거나 중국에서 날아온 미세 먼지 속에 신종 박테리아가 들어 있어 한국에서 거의 발병하지 않았던 질병도 발병하게 될 것이라 말한다. 한편 소비가 극도로 늘면서 쓰레기 산업이 주목 받게 되고, 신흥 쓰레기 회사 재벌도 등장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그 밖에도 가족과 친지의 개념이 바뀌어 혈연관계의 가족에 대한 접근성이나 친밀도는 떨어지고 공동체 안에서 만들어진 가족을 가족이라고 간주하게 되며, 돈만 있으면 가족도 렌트가 가능하고, 홀로그램이나 로봇 형태의 매체를 통해 외부 사람들과 보다 정교한 시간을 나눌 수 있는 3차원 소통 공간이 발명될 것이라 말한다.
노년인구와 장애인 인구가 늘면서 이들을 도와주는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이들을 위한 보조 도구를 만드는 벤처 산업도 다양화되지만 결국 이런 장치들이 부자들에게 집중되고 이런 환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고도 전망한다. 한편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봤자 결국 부모에게 득 될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부모가 점점 늘어나면서 앞으로 대학 진학률은 현저하게 떨어질 것이며, 웬만한 것은 인터넷 검색으로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돌아다니며 경험하기 보다 앉아서 손만 움직여대니 기억과 공간감각을 관장하는 편도와 해마의 조직이 나이보다 빨리 위축될 수 있다고 말한다.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는 주민등록증 대신 피부에 바코드를 심게 된다든지, 우주여행을 했는지 안 했는지가 진짜 부자와 어중간한 부자를 가르는 척도가 된다든지, 사람보다는 기계를 더 존중하고 신뢰하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또한 유모 로봇이 상용화되면서 전통적인 신체 접촉 위주의 양육이 줄어들어 자폐 스펙트럼 증후군이 나타날 것이고, 운동인구가 줄어들어 골프장과 스키장은 대부분 목장이나 수목원으로 바뀔 것이라는 전망도 매우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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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우리는 살아간다. 성공과 안락함을 위해, 오늘도 온 몸을 다해 도전한다.
미래의 우리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인간이 하기 싫은 일이나 힘든 일은 기계로 대치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사람이 아닌 기계 간호사와 의사의 처방을 받는 시대. 사이버로 친구도 사귀고 쇼핑도 하고 공부를 하는 시대. 그런 시대가 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체면, 수치심, 부끄러움, 죄의식 등 집단의식이 강했던 우리 사회가 점점 개인을 위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공동채 의식이 희박해지고 자신에게 충실해지는 시대가 온다. 우리도 모르게 우리는 변한다. 무욕인간, 사이 인간, 오감만족지향형 인간, 탈자아형 인간, R세대 인간으로.
어디에 속하는 것이 좋을까?
기술과 환경은 많이 변했다. 과거에 많이 먹지 못했던 시절에서 물자가 풍족한 시대가 되었다. 풍족한 물자로 인해 마음이 풍족해지는 것은 아니다. 풍족하지만 마음은 헛헛해진다. 헛헛함의 원인이 무엇인지 모른채 그 속을 채우기 위해 우리는 노력한다.
짧은 시기에 경제가 발전하고 발전에 따라 주변 환경도 변화하면서, 우리의 마음은 편안함을 찾게 되는 것이다. 많은 기술의 발전이 우리를 행복의 세계로 이끌어왔다고 보았지만, 마음은 받아들이기가 힘이 든다. 힘든 것을 미래라는 하나의 줄기를 잡고 지금까지 왔다. 현실은 어떤가?
과거에 배가 고팠던 시대를 겪었던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의 간격이 생기게 되고, 노력한다고 모든 것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자신도 모르게 체념을 배웠던 것이다. 마음의 황폐화를 가져오지는 않았을까?
마음이 받아들일 수 있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미래를 핑크빛으로 만들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