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 연휴가 시작되려던 금요일, 정말 오래간만에 집에 내려갔다. 몇 달만에 누운 침대라서 그런가, 왜 그리도 잠이 안 오는지. 책을 안주삼아 밤을 지새웠던 며칠 동안의 부산 생활은, 어느샌가 몇 달 동안 잠들어 있었던 내 독서욕을 다시 폭발하게 만들었다. 불안한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 공부를 위해서는 아무리 독서라도 대충 하고 접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내내 읽었던 한 권의 책이, 그런 불안감마저 누그러뜨려 버렸다. 반항적이지만 충성스럽고, 엉성하지만 허를 찌르고, 얄밉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일본인, 요시노 사쿠조. 결국 자습시간과 휴식시간을 모두 헌납한 댓가로, 오늘 드디어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다. 제국주의를 중심으로 일본근대정치사를 쭉 연구해 온 국민대 한상일 교수님께서 쓰신 이 책은, 일본인 중에서 일제 치하의 조선에 대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가장 왕성하고 풍부한 저술활동을 펼친 일본 지식인 요시노 사쿠조를 중심으로, 당시의 식민통치 상황과 일본 지식인들의 조선인식론에 대한 내용을 전개해나가고 있다. 동화정책의 이상과 현실, 대안으로 등장한 자치식민지론, 그리고 그 사이에서 현실주의의 극단을 보여주는 요시노가 펼치는 아이러니하면서도 무시무시한 식민정책. 책 중간중간에 나타나는 요시노의 글들을 보면서, '넌 약아도 정말 너무 약았다' 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현실주의의 극단이 이상주의보다 더한 이상을 바라보듯이, 그 엄청난 약음 역시 어리석음과 별 차이 없는 성과를 내는 것을 보면서, 자칭 리얼리스트의 입장에서 가슴이 아프기까지 했다.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만들겠다' 는 일본의 동화정책은, '조선인은 일본인이 아니기 때문에' 라는 당연한 이유로 인해, 일본인의 강압적 군정과 조선인의 배일 궐기라는, 일본의 제국주의 운영에 있어서 최악이라고 할 수 있는 두 가지 상황을 불러오게 된다. 일제 강점 초기부터 '조선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조선인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라고 주장하던 요시노는, 당국의 압력과 불량분자라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자유주의적 식민지론', '자치식민지론'을 주장해 나간다. '물론 조선인이 일본인이 되고, 동화정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인가? 우리는 출발점과 도달점을 혼동해서는 안 될 것이다.' 조선 민족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민족이 아니며, 조선을 식민지화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요시노의 글에서는, 시간의 중요성을 알고 눈앞의 이익을 무리해서 좇지 않는, 섬뜩한 '포기의 미학'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다스리는 곳에서, 현실주의는 이상주의보다도 더 허무한 꿈을 좇을 수 밖에 없다. 제국주의라는 사상 자체가 그 뿌리부터 욕심을 딛고 서 있는 개념인 이상, '쓸데없는 욕심을 버려야 대업을 이룰 수 있다'는 요시노의 주장은 애초부터 너무나 '비현실적인' 주장이었다. 배고픔에 눈이 먼 사람에게 '그건 마지막 남은 종자이니 먹으면 안 된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덕분에 조선은 일제의 무단통치에 힘입어 민족주의 사상과 독립정신을 착실히 키워갈 수 있었고, 결국 우리나라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독립을 얻게 되었다. 만약 요시노의 주장대로 자치식민지론이 실행되었다면, 스며들어 오는 일본의 손길에 맞서 우리나라의 싱크탱크들은 어떤 식으로 대처했을까? 상당히 불안하다,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한국 사람이 열등하다는 게 결코 아니다. 세도정치와 외세의존으로 찌들어 있던 당시 조선의 열악한 리더십이, 그런 지능적이고 끈질긴 두뇌 플레이를 얼마나 견뎌낼 수 있었을까, 라는 사실이 불안하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동화주의자들이 약속한 듯 합창했던, '조선은 사대주의와 당파싸움으로 찌들어 있다. 일본이 구해줘야 한다' 라는 말. 사실 여부를 떠나서, 외국인들에게 그런 평가를 받는 나라였다는 것 자체가 참 답답하다. '한국팀'의 일원으로서. 하지만, 나는 아직 일제 강점기의 한국사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지 않다. 조금 더 알아보면, 아마 3.1운동을 위시한 조선의 민중궐기가 동화주의나 일제군정과 상관없이, 더 큰 자발적 동기를 가지고 일어났다는 사실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요시노의 상당한 시간을 투자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것에 한국인으로서의 안도감과 소위 지성인으로서의 애석함을 동시에 느끼면서, 나는 오늘도 한국 근대사에 대한 책을 또 사 버렸다. 아마 다음 주에도, 자기 이상에 일생을 맡긴 사람들의 명단을 굴비처럼 엮어놓은 책들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낼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