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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배움을 찾아가는 이들을 위한 파격의 논어 읽기"
논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논어에 대해 읽어보거나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그랬으니! 그런데 위험한 논어라 하니 사실 그동안의 많은 논어책이 많았지만 읽어보고 싶어졌던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책이 오기를 기다리는 내내 정말 그 기다리는 시간이 기대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공자의 어록을 담은 '논어'
처음에 펼쳤을 때는 읽기 편하겠네! 금방 읽겠네! 라는 생각을 했지만 읽으면서 읽기 편하게 만든이 여백이 생각 할 시간으로 채워주는 것 같았다. 금방 읽겠네라는 생각과 달리 나는 논어를 읽기 시작한 5분 만에 한 손에는 연필을 들고 끊임없이 메모하면서 읽었다. 논어를 읽는다는 건 그런 것 같다.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고 무한한 깨달음을 준다. 지금 당장 메모하지 않으면 분명 내 머릿속에서 다 사라질 것 같아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메모했다. 그러면서 느꼈던 것 그 어떤 자기 계발서보다 좋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 그래서 논어를 읽으라 하는구나. 왜 이제야 논어를 마주했는지 후회스러웠다.
그리고 자연스레 공자가 말하는 '인'이란 무엇인가? 에 사로잡혀 있었다. 끊임없이 '인'에 대해 말하는 공자.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논어를 읽고 있노라면 그 인이라는 게 줄줄 서술할 순 없어도 마음 속에 떠오르는 느낌? 이라는 게 생긴다.
나에게 인이란 마음, 근본, 보이지 않는 내면을 단단히 하는 것, 마음을 다하는 예, 조화, 그리고 나를 알고 진정한 내가 되는 것과 스스로를 위한 배움!
너무 나아간 것 같은 느낌이지만 어쨌든 다 일맥상통한다.
배움을 강조한다. 남을 위한 배움을 팔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배움. 그래서 죽을 때가지 끊임없이 배운다는 것. 진정한 공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나 역시도 학창시절의 공부는 뭘 위한 공부였는지 몰랐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 들어 뭘 하든 배움이라는 게 즐겁나. 학창시절의 공부도 오로지 나를 위한 공부였는데 그 때는 왜 몰랐을까..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을 다 담아내는 건 어렵다. 그만큼 나에 대한, 나로 인한 생각들로 끊임없이 채워주고 끊임없는 배움과 깨달음을 주었던 책이다.
p.297
위험 너머에 있는 어떤 것
위험에 뛰어들지 않고 기쁨을 얻어낼 수는 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배움이라는, 자칫 제 영혼을 팔 수도 있는 위험한 일에 도전하여야 한다. 자주 익혀서 드디어 나의 감각이 되었을 때의 기쁨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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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을 여러번 읽지 않는 습관대신 논어란 책은 이로써 5번째다. 김용옥의 논어, 심경호 교수의 논어(이건 1권 본 상태), 홍익문화사 논어, 작년에 어플로 받아 팔일편까지 열심히 필서하고 생각을 다이어리에 써본기억을 되짚어 보게 된다. 그러고 보니 제대로 읽은 것이 변변치 않다. 논어하면 학이편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만 생각나는 사람이 나만은 아니겠지라며 위안을 삼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일상속에 사자성어와 다양한 기록과 말, 행동양식속에 논어는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다시 읽는 것은 저마다의 이유가 다를 것이다. 최진석 교수가 지적한 논어의 시작이 왜 학(學)이고, 도덕경의 시작이 왜 도(道)인지라는 지적이 무엇보다도 크게 생각된다. 나는 논어는 지속적으로 인간의 무지를 깨우쳐 줄 뿐 아니라, 평생 변해가는 과정속에서 배워야하고, 변하지 않고 유지해야 할 것을 분별하고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2천여전의 생각이 시간을 흘러 지금에도 깊은 각성을 일으키는 것은 순수함과 우리의 본성이 그것에 공감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제 페이스북 친구의 글을 보면서 배운다는 것이 좋은지 잘 모르겠다는 댓글을 썼다. 나 스스로도 조금 배워서 안보이던 것이 보이면 재미있다. 하지만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 보인다는 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보이기 시작하면 지울 수가 없다. 매트릭스의 빨간약에 대한 후회처럼 말이다. 그럼점에서 배운다는 것은 위험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것, 넘치지 않는 그 선을 찾는게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빨리 깨닫고 그만그만하게 사라져가는 천재나 미쳐버린 천재들은 어쩌면 이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책의 상단에 원문의 해석이 있고, 아래에 작가의 글이 함께 실려있다. 원문을 고수하시는 분들이나 조선시대처럼 한글자 한글자에 목숨을 거는 학자가 아니기에 나는 좀 덜 깨닫는 수준이지만 편하게 볼 수 있는 면이 있다. 한자에 익수한 것이 아니기에 원문을 보면 시간이 속절없이 흘르기도 한다. 한글만 보면 이야기처럼 지나가고 또 남지 않는다. 한자어는 참으로 중의적이고 multiple communication으로 인한 혼선이 있기도 하나보다. 중국인이 느린 것도 다 이런 이유인가 하게된다. 이번 논어를 읽으면서 한가지 깨닫은 것이라면 내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다가오는 글귀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 뜻의 중요함이 있더라도 내 마음의 시간, 장소, 상황(TPO)에 따라 받아 들이는 양이 다르다. 처음에 익숙하고, 잘 사용하는 글자들이 다가오다가, 보면 볼수록 그냥 스쳐지나가면 '어 좋은 말이네'하고 넘어가던 것들이 이번에 더 눈에 밟힌다. 그런 점이 참으로 좋았던 것 같다. 작가의 글 속에 반어적 질문과 해석이 있는 경우가 있다. 원문을 본다하더라도 우리가 그 시대의 원문 그대로를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말을 모두의 현재에서 해석한다고 생각한다. 작가 스스로 배움과 깨달음의 기록이 의미가 있는 행동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글자 그대로의 뜻한 조금 다르거나, 나의 작은 소견과 다르더라도 그 전체적인 맥락을 같이 한다면 큰 문제될 것도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논어를 통해서 사람과 세상을 얼마나 더 배웠는지, 작가의 글을 통해서 현재 또 얼만큼 개안을 해가는지, 책을 읽고 또 내가 어제와 무엇이 다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앎을 몸으로 익혀내지 않으면 그것은 휘발성 지식이 될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한다. 내가 읽고 '아하'하는 감탄사를 날려도 현실에서 행동하는 범위는 더 좁아지는 것도 마찬가지지만...그래도 조금씩이라도 해봐야한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책을 훔쳐보니, 공자의 쿨한 한마디 나는 모른다 이 말이 참 새삼스럽네요. 움직임은 반대로 향하니 부족함은 곧 배움으로 펼쳐졌겠죠...책의 한구절도 안남겼네요. 유교무류..공자의 정신은 모두에게 가능성을 열어둔다고 생각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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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인문학에서 해답을 찾으려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논어가 다시 재해석하여 출간되는 경우가 많다. 독서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한국사람에게 독서가 마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 필요성이 있다. 옮긴이가 말하는 것처럼 “사독서(死讀書), 독사서(讀死書), 독서사(讀書死)
적어도 독서를 해서 남보다 다른 것을 깨닫게 된다면 그것을 세상에 적용해야 한다. 배우는 일을 자기 것으로 해서 감각을되찾아야 한다. 225개의 좋은 말들이 담겨져 있는 위험한 논어는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책은 10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배우는 일은 위험한 행위다 - 학이 편에서 032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군자는 스스로 자기 상태를 보고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소인은 남과 비교하기만 할 뿐 스스로 자기 상태는 보지 않는다.
논어는 이미 읽어봤지만 나이들어서 새롭게 읽을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선물해준다. 굳이 공부하려고 시도하지 않아도 배움이 즐거운 느낌이 들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065 - 덕에 고립은 없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 덕이 있는 사람은 고립되지 않는다. 덕이 있는 사람은 고립되지 않는다. 반드시 친구가 있다.
112 - 가난함이 부끄럽지 않고 부유함이 부끄럽지 않을 때 사회가 바르게 운영되는데 가난하고 지위가 낮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사회가 바르게 운영되지 않는데 부자로 지위가 높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174 -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하라 자로가 주군을 섬기는 일에 대해서 물었다. 공자가 답했다. "거짓을 말해서는 안된다. 주눅 들지 말고 말해야 하는 것을 말하라."
조화와 동조의 차이
누구보다 빠르게 성공하는 속도를 중요시하는 현대인들의 삶은 과거에 지식인이 고민했던 것과 비슷하다. 2,500년전의 공자와 제자들이 고민했던 그런 문제들은 바로 가난하고 부유한것, 명예, 정치, 군자와 제왕과의 관계등에 대한 것이다. 젊어진것 같은 논어의 새로운 해석인 위험한 논어를 읽으면서 깨달음이란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확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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