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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고 또 분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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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실업률은 증가하고, 중산층은 무너진다. 노인 빈곤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경제적,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된다. 사회 부조리는 극에 달하고, 심각한 경제위기로 고용불안이 가속화 되고 있으며 민주주의는 후퇴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 영국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지금 현재 우리들의 모습이다. 희망은 보이지 않고 절망의 절벽이 우리를 막고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 우리가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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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실업률은 증가하고, 중산층은 무너진다. 노인 빈곤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경제적,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된다. 사회 부조리는 극에 달하고, 심각한 경제위기로 고용불안이 가속화 되고 있으며 민주주의는 후퇴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 영국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지금 현재 우리들의 모습이다. 희망은 보이지 않고 절망의 절벽이 우리를 막고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이렇게 변한 것은 누구 때문일까. 세상은, 그리고 위정자들은 그것이 우리들의 문제라고 한다. 노력하지 않아서고, 능력이 부족해서란다. 그리곤 우리를 향해 그 질타의 손가락을 내민다. 능력을 키우지 않은 우리들 잘못이라고 그러니 자기계발에 매진하라고 한다. 세상사에 힘들면 힐링 하란다. 마음의 안정을 찾으라고 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한다. 현실은 이렇듯 절망적이다. 하지만 그건 다 우리네 잘못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그것이 다 우리들 잘못인줄 알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우리네 잘못이 아니라, 우리를 이끈다는 위정자들이 자신들의 의무에 충실치 않았기 때문이다. 세월호라는 엄청난 재난을 겪었지만 그 순간에서 한국사회는 한발도 더 나아가지 않았다. 그래도 우린 그 모든 것이 우리의 잘못이라고 가슴만 치고 울분만 터뜨리고 있어야 하는가. 절망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그저 시대를 잘못 만난 때문이라고 모든 걸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아니다 어디선가 희망의 단초를 찾아야 한다. 참고만 있지 말고, 그 절망에 순응하지 말고 그 절망의 나락에서 탈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절망을 우리에게 안긴 이들에게 분노해야 한다. 그 분노의 상징이 바로 20대 총선이었다. 그저 뭘해 도 된다고 믿는 이들에게 국민들은 분노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그제서야 그들은 움찔했다. 그리고 반성하는 척 했다. 하지만 그건 악어의 눈물일 뿐이다.

 

   그 조그마한 분노의 폭발 뒤에 우린 조금씩 세상이 바뀌고 있음을 느낀다. 모두가 외면한 채 몇 년을 끌어온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다시 표면으로 떠오르고, 그동안의 잘못된 일들이 수면으로 부상한다. 이모든 것이 국민들의 분노의 행위덕분이다. 그저 내 잘못이라고 가슴만 치던 국민들이 이제야 분노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된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는 같은 목소리를 냈다. 2008년 서브프라임 으로 시작된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 또한 우리들 잘못이 아니라 탐욕에 눈이 먼 그들의 잘못이라고. 그러니 한목소리로 그들의 탐욕을 꾸짖고 분노하라고 외치고 있다. 무관심은 최악의 태도이다. 분노하지 않으면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모른다. 국민이 입을 닫고 있으면 그들을 국민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침묵하는 국민, 분노하지 않는 국민을 두려워 할 위정자는 없다. 이번 20대 총선처럼 그들의 잘못을 질타해야 하고, 잘못하고 있으면 대중이 모여 한목소리로 그들의 잘못을 꾸짖어야 한다. 행동하지 않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

 

   이 책은 성난 대중과의 공명을 추구하는 성난 인문학이다. 인문학자 8인이 절망을 이기는 방법에 대한 인문학 강의를 모은 책이다. 절망의 끝에서 새로운 시작을 힘을 얻는다는 강신주. 욕망이 자유가 낳은 괴물이라는 이현우. 욕망의 지도가 운명이라는 고미숙. 증오는 감정독재의 다른 이름이라는 강준만. 끝없는 불안과 싸우기 위해 분노하라는 정여울. 세상적인 물질적 욕망을 무화시키기 위해서 시를 만나라는 문태준. 미래에 대한 환상으로 절망을 이기라는 정병설. 아무리 세상이 불안하더라도 인간의 기본을 지키며 살자는 노명우 등 낯익은 이들의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욕망이라는 주제를 높고 펼쳐나가는 그들의 이야기는 88색이다. 그들의 얼굴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 것처럼. 하지만 공통적인 것은 절망 앞에 무력해지지 말자는 거다. 절망을 만나 고개 숙이고 어깨를 빠뜨리고 침울해하지 말자는 거다. 성난 얼굴로 목소리를 높이고, 힘찬 얼굴로 돌아보라고 애기한다. 절망 앞에 맞서 싸우란다. 그것이 시가 되었던, 인간성이 되었던, 운명이 되었던 타고 넘으란다. 그리고 굳건해지란다. 절망의 그 험난한 파도에 흔들리더라도 포기하지 말란다.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는 그들의 목소리는 희망적이기도 하고 이질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인문학자의 말을 가슴에 담느냐는 자신의 자유이다. 어떤 방법으로라도 절망이라는 파도와 싸워 이길 수 있다면 말이다. 중요한 것은 절망 앞에 좌절하지 않는 것이다. 절망과 맞서 싸우는 것이다. 절망 앞에서 분노하는 것이다. 그리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그것이 세상이 살면서 우리가 만나는 절망 앞에 굴하지 않고 그 절망을 박차고 나아가는 방법이다. 인문학자들이 진정으로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h*****o 2016.05.28.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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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이기는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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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는 책을 연상시킨다. 스테판 에셀이 말하는 분노란 개인적 분노가 아닌 일종의 의분(義憤), 공분(公憤)과 같은 것이다. 사회의 불의에 대한 분노이자, 인권이 무시되는 것에 대한 분노이다. 분노한다는 것은 문제의 존재를 인지한다는 것이며 문제해결을 위한 참여의지를 불태우는 것이기도 하다. 분노는 타인의 아픔에 대한 공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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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는 책을 연상시킨다. 스테판 에셀이 말하는 분노란 개인적 분노가 아닌 일종의 의분(義憤), 공분(公憤)과 같은 것이다. 사회의 불의에 대한 분노이자, 인권이 무시되는 것에 대한 분노이다. 분노한다는 것은 문제의 존재를 인지한다는 것이며 문제해결을 위한 참여의지를 불태우는 것이기도 하다. 분노는 타인의 아픔에 대한 공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런 분노가 무분별하게 폭력행위로 연결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 책도 성난 대중과 공명하는 분노의 인문학을 다룬다. 사회구조적 부정과 불합리에 철저하게 절망하고 거기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 그리고 사회를 바꾸는 것을 추구한다. 흔히 인문학이 추구하는 고전탐구나 정신수양과 같은 개인적 문제는 다루지 않고 오히려 사회구조적 측면의 문제에 촛점을 둔다. 저자들은 이야기한다. "현실은 절망적이다. 하지만 당신 책임은 아니다. 절망은 의지와 적응의 문제가 아니다. 자기계발은 현실을 바꿀 수 없다. 힐링은 사기였다. 치료대상은 당신이 아니라 사회였다"라고.

 

이 책은 2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에서는 절망에 대해서, 2부에서는 절망을 이기는 방법에 대해서 각각 다른 저자들의 강의가 이어진다. 강신주, 고미숙, 정여울과 같이 잘 알려진 저자에서부터 강준만, 노명우, 문태준, 이현우, 정병설과 같은 익숙하지 않는 인물들도 등장한다. 세월호 사고로 인한 우리사회의 절망감의 확산이 주된 화두이다. 인간의 욕망을 살펴보고 그것을 채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절망, 이를 이기는 다양한 차원의 시도가 소개된다.

 

모든 문제는 환경적 요인과 구조적 요인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요즘 청년실업 문제를 생각해 보자.  구조적으로 고용없는 성장이라는 시대적 상황과 함께 중소기업과 같은 곳에는 취업하지 않으려는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공존한다. 나는 두 가지 접근방법 모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는 구조적 문제점들의 본질과 해결책을 고민한다. 일리가 있다. 반면 자기계발서와 같은 개인의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노력도 함께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c******4 2016.05.09.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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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적인, 너무나 정직한 희망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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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어떤 순간 숨이 멈춰 버릴 때가 있다.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인재(人災)들이 우리를 절망하게 한다. 세월호 참사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의 통증은 심하다. 슬픔으로 치유할 수 없는 분노 때문이다. 그래서 자꾸만 현실을 벗어나 환상을 보게 된다. 적어도 환상에서는 인재는 일어나지 않겠지, 절망보다는 희망적으로 숨 쉴 수 있겠지, 라는 기대감이 없지 않다. 한편 현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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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어떤 순간 숨이 멈춰 버릴 때가 있다.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인재(人災)들이 우리를 절망하게 한다. 세월호 참사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의 통증은 심하다. 슬픔으로 치유할 수 없는 분노 때문이다. 그래서 자꾸만 현실을 벗어나 환상을 보게 된다. 적어도 환상에서는 인재는 일어나지 않겠지, 절망보다는 희망적으로 숨 쉴 수 있겠지, 라는 기대감이 없지 않다. 한편 현재에서는 인문(人文)이라는 시대정신을 찾아 나서고 있다. 흔히 인문이라고 하면 문(), (), ()을 말한다. 물리학이나 생태학이 사실적 차원을 다룬다고 한다면 인문학은 사실적 이해와 진실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보다 쉽게 인문(人文)을 풀이하면 인간()이 만든 무늬()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시대 인문학자 8인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성난 얼굴로 돌아보라를 읽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가 고민하는 문제에 대해 성난 얼굴이 뭔가 돌직구를 던져 줄 것만 같았다. 적어도 인문학자는 니체가 말한 최후의 인간은 아니라는 것이다. 최후의 인간이란 현재의 상태에서 어떤 불만족도 느끼지 않는다. 그러니 최후의 인간에게는 모든 게 적당하면 그만이지 싶다. 하지만 인문학자는 성난 얼굴의 인간에 가깝다.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세상을 보면 참을 수 없는 존재로 분노한다. ‘말할 수 없다(unsayablue)’라고 침묵하지도 않는다. 이러다 보니 사람들은 성난 얼굴에 대해 진보적이라고 너무 빨리 이해를 하고 만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진실을 숨기기 위한 성급한 주장이 아닐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정여울이 말한 대로 성난 얼굴은 사악하지 않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강한 자들의 폭력에 맞서 사악하게 맞서는 것은 사악한 얼굴이지 결코 성난 얼굴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악에 맞서 악으로 되갚는 것은 사악한 얼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악에 맞서는 선의와 용기와 실천이다. 이쯤에서 세월호 참사를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선원이나 해경은 세월호 참사라는 악에 맞서 선의와 용기를 가지고 사람들을 구조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책임을 회피했다. 이유인즉 그들은 에픽테토스가엥케이리디온에서 말한 외모, 평판, 재산 같은 나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에 골몰했다. 그 때 그들이 지혜, 용기, 우정, 신념이라는 나에게 달린 것을 실천했다고 한다면 오디세우스가 되었을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트로이 전쟁을 승리한 영웅이다. 그렇다고 이현우가 지적한 대로 우리가 오디세우스의 분신이 되려는 것은 아니다. 욕망은 욕구와 달리 끝이 없다. 결과적으로 무한한 욕망은 불안하다. 오늘날에도 오디세우스가 매력적인 인간으로 불리는 것은 전쟁이 끝난 후 고향인 이타카로 돌아가는 여정에서 겪는 시련을 극복했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보다도 오디세우스는 아모르 파티, 운명을 사랑했다. 놀랍게도 운명에 대한 고미숙의 접근은 신체적이다. 고미숙은 운명이란 신체에 새겨진 욕망의 지도라고 했다. 욕망의 계보학에 있어 신체와 존재의 간격을 고민하다 보면 우리가 얼마나 신체에 무지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앞서 말했듯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준 충격이 대단했던 만큼 여러 가지 고민거리를 남겼다. 무엇보다도 기성세대들에 대하여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목소리가 또렷했다. 그런데도 기성세대들은 세월호 특별법을 두고 싸움판을 벌이고 있다. 정말이지 인간다운 감정보다는 허망함이 다시금 몰려와 우리를 산산조각 나게 하고 있다. 그래서 일까? 강준만이 권력 중심적인 인정투쟁 문화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던 그 말이 너무도 생생했다. 권력 중심적인 인정투쟁 문화가 일으키는 증오의 소용돌이가 이 세상을 얼마나 각박하게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 초강력 일극주의, 승자독식, 속도주의, 연고주의, 미디어 당파주의라는 병폐는 우리 사회를 시스템적으로 부패하게 만들었다.

 

우리의 일상이 사각(死角)이다. ()진 세상에서는 절망(切望)뿐이다. 희망()을 끊어()버린다. 절망은 지옥이라는 머릿속의 관념이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의 고통이다. 이런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다. 이렇다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사각마저도 대수롭지 않게 지나치고 있다. 처음에는 사각을 두려워하며 어떻게 해서라도 위험을 해결하려고 했을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사회가 분명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기대감이 절망감으로 역류하여 결과적으로 프로이트가 문명속의 불안에서 표현한 대로 망망대해에 있는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럴 때 성난 얼굴로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터뜨리는 것으로는 다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성난 얼굴은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진실을 말해주고 있다. 성난 얼굴은 너무나 정직한 희망이다.

p******0 2014.08.28.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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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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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절망에 대해서, 2부에서는 절망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서 총 8개의 강의가 이어진다. 강신주, 고미숙, 정여울은 친숙한 이름이지만 강준만, 노명우, 문태준, 이현우, 정병설은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났다. ‘절망’이라는 큰 주제와 관련한 8개 강의는 그 성격이나 접근 방식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뭐라고 써야할지 막막했다. 아무래도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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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절망에 대해서, 2부에서는 절망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서 총 8개의 강의가 이어진다. 강신주, 고미숙, 정여울은 친숙한 이름이지만 강준만, 노명우, 문태준, 이현우, 정병설은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났다. ‘절망이라는 큰 주제와 관련한 8개 강의는 그 성격이나 접근 방식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뭐라고 써야할지 막막했다. 아무래도 한 번 읽어서는 안될 것 같아 다시 한 번 읽었지만 머릿속이 점점 더 복잡해져만 간다. 그렇다고 이 책이 별로였다는 건 아니다. 내 사고력이 미처 닿지 못했던 부분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내용들로 꽉 차 있는 건 분명하다. 그리고 삶의 일면을 탐구하고 해답을 구하려고 애쓰는 88색의 강의를 보는 재미가 있다.

 

서문5

현실은 절망적이다. 하지만 당신 책임은 아니다. 절망은 의지와 적응의 문제가 아니다. 자기 계발은 현실을 바꿀 수 없다. 힐링은 사기였다. 치료 대상은 당신이 아니라 사회다.”

 

  서문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이 책은 우리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비판의 성격이 다분한 책이다.  그 날카로운 비판은 곧 책 제목처럼 '성난 얼굴로 돌아보'는 것이다. '성난 얼굴'이란 어떤 얼굴인가? 절망의 사회를 향한 비판을 던질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얼굴이 아닐까 껄끄러운 것과 마주할 용기,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무엇이 잘못인지를 분명히 해두는 용기, 우리 안에 뿌리내린 잘못된 욕망과 증오, 주어지는 대로 살아가는 수동적인 자세, 절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약함까지도 포함해서 말이다.

 

   정여울은 세상은 낙하산이며, 절망적인 세상은 여기저기 구멍이 나서 떨어지는 낙하산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떨어지는 낙하산의 구멍을 꿰매고 있다고 말한다. 한편 문태준은 시적 상상력을 발휘하면 물질적 욕망을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한다. 우주적 상상력, 무위에 대한 사유를 통해 물질적 욕망을 버리면 절망의 순간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병설은 '환상'을 노명우는 '책임능력'을 절망 극복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8명 저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생각들을 살펴볼 수 있으며, 절망의 시대에 절망해버리지 말고 내 안에 신념과 의지를 일깨워야 한다는 점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다만, 이 책에 대해 좀 더 분명하게 리뷰로 써내지 못한 것이 아쉽고 민망하다.

 

 

 

 

 

i****s 2015.04.30.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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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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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잔 침묵으로 내 모가질 비틀어 꺾어 버리고 말아. 내가 컴컴한 채로 몇 시간이고 의자에 앉아 있어도, 이 여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면서도 홱 돌아누워 잠들어 버려. 둘 중에 하나는 돌았어. 그게 대체 누구야? 나야? 응? 나란 말이야? 그럼 저 여자야? 대체 어느 쪽이야? 언젠가 다시 돌아오고 싶을 때가 있을지도 몰라. 난 그날을 기다리고 있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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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여잔 침묵으로 내 모가질 비틀어 꺾어 버리고 말아. 내가 컴컴한 채로 몇 시간이고 의자에 앉아 있어도, 이 여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면서도 홱 돌아누워 잠들어 버려. 둘 중에 하나는 돌았어. 그게 대체 누구야? 나야? 응? 나란 말이야? 그럼 저 여자야? 대체 어느 쪽이야? 언젠가 다시 돌아오고 싶을 때가 있을지도 몰라. 난 그날을 기다리고 있겠어. 당신 눈물로 이뤄진 연못 한가운데 서서 그 물을 찰싹찰싹 치면서 노래 부르고 싶어. 당신이 무릎 꿇고 용서를 비는 꼴을 보고 싶어. 진흙탕이 된 당신 얼굴을 보고 싶어. 내 소원은 그뿐이야. 그말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     존 오스본(John James Osborne)의 희곡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Look Book in Anger>> 중 지미의 대사
    존 오스본이 써낸 희곡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Look Back in Anger, (1958년)>>는 50년대 영국의 암울한 시대상을 신랄하게 파헤친 작품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시장에서 캔디를 파는 주인공 지미 포터는 기성세대의 위선과 사회 부조리에 분노를 품은 인물이다. 그는 상습적으로 아내를 학대하면서 마음속 분노를 표출한다. 오스본은 이 작품에서 주인공 지미와 주변인물들의 갈등을 통해 정당한 방식으로 분노를 해소할 길이 막힌 시대의 절망을 잘 그려냈다. 주인공 지미는 이차대전 이후 박탈감을 느끼던 '성난 젊은이(angry young man)' 세대의 표상이 된다. 50년대 영국은 절망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청년 실업률이 치솟고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경제는 침체기에 빠져들고 민주주의는 후퇴하기 시작했다. 존 오스본을 위시한 젊은 작가들은 시대상을 날카롭게 꼬집는 작품들을 써 내면서 사회의 부조리에 저항했다. 그러고 보면 완전한 절망의 시대는 아니었던 것도 같다. 시대적 위기와 사회 불의에 분노하고 저항하는 '성난 젊은이들'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인간이 서로 투명인간으로 만든다면 아무리 많은 수가 모여 있다 하더라도 그 사이에서는 책임감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책임은 서로에 대한 응답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낸 인간의 윤리이기 때문입니다. (308쪽, 그래도 인간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노명우)
    마음은 새빨간 불길에 휩싸인지 오래이다. 불길은 잦아들 줄 모른다. 점점 거세지는 불길 속에 한 사람이 있다. 사람이라는 것도 잊을 만큼 거센 불길 속에.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불길을 어디 토해내야 하나. 사방이 벽이다. 모든 희망이 끊긴 상태. 화마에 집어삼켜진 사람들의 세상. 방향성을 잃은 분노의 불길은 애먼 희생자를 낳는다. 모두가 희생자인 세상. 너도 나도 억울한 세상. 제 울음에 눈 멀고 귀 먼 사람들이 깽판이나 치는 세상이다. 나도 이젠 달라질 거예요. 모두 내 잘못이에요.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 힘도 없는 생명이 죽었다고요. 나도 죽고 싶어요. 존 오스본의 희곡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에서 아이를 사산한 앨리슨이 울부짖는 대목이다.​ 죄 없는 생명이 희생되고 나서야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단 걸 깨닫는다. 마음을 새까맣게 태우는 분노를 안고 펄쩍펄쩍 뛰는 지미와, 아이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앨리슨의 죄의식과 절망. 이들 부부의 절망과 분노는 반세기의 공백을 무색케 할 만큼 우리 얼굴과 닮아 있다.
   ​어떤 사람을 알 때, 여러분 자신을 알 때는 절망의 상태와 위기의 상태에 있을 때죠. 그래서 우리가 절망의 상황을 피하는지도 몰라요. 나를 안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나이 들면 왜 산에 안 가는지 아세요? 헐떡거리니까. 나이 들면 왜 종합검진을 피하는지 아세요? 나쁜 일을 알게 될까봐. (33쪽, 시대의 이름, 절망, 강신주 )
   여덟 명의 인문학자들이 뭉쳤다. 존 오스번의 희곡 제목에서 이름을 따 온 이 책에서 이들은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지혜를 이야기한다. 당장 사는 일이 캄캄한 이때에 문학이 뭐고 철학이 다 뭐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게 바로 절망이다. 강신주는 '파르헤지아parrhesia'를 통해 인문학의 가치와 의미를 설명한다. '파르헤지아'는 '진실을 말하기'라는 뜻인데, 인문학이야말로 "진실을 직면하는 파르헤지아"라는 것이다. 말문이 막힌 위험한 사회에서 모든 인문학, 예술, 철학은 '아는 것'과 '믿는 것'을 '말하면서' 진실을 지향한다.
   천국에는 철학자가 없고 신은 철학자가 아니다. 철학은 지옥에서 도망치지 않고 또 거기서 낙담하지 않고, 지옥을 생존 조건으로 삼아 거기서도 좋은 삶을 꾸리려는 자의 것이다.1 (201쪽, 끝없는 불안과 싸우는 당신을 위한 노래, 정여울)
   지옥의 불길 속에서 신음하는 우리에게 정여울이 보내는 노래를 들어보자. "철학은 지옥에서라도 삶을 가꾸려는 자의 것"이라는 정여울은 시대의 악惡에 직면했을 때 달아날 것이 아니라 악의 뿌리를 탐구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악의 뿌리라고 하니까 외부로 눈을 돌리는가. 사악한 세계를 구성하는 우리는 저마다 악의 실뿌리들이다. "바꾸기 어려운 외부의 상황에만 비난의 화살을 돌릴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바꿀 수 있는 나 자신의 실천을 모색하는 것, 이렇듯 나로부터 시작되는 자발적 윤리가 구원의 희망(정여울, 끝없는 불안과 싸우는 당신을 위한 노래)"이 될 것이다. ​  
  
​    근대 이전에는 동양 의학이든 히포크라테스 의학이든 지혜가 곧 몸의 기질을 바꾸고 몸의 질병을 치유하는 것이었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지혜의 결핍, 진리에 대한 무관심이야말로 병의 원인이었죠. 지혜가 부족하면 몸의 균형이 깨지고 기질과 충동이 제멋대로 날뛴다고 본 거죠. 충동의 기본 속성은 폭력과 이기심입니다. 그러면 인간관계가 나빠지죠. 그 나빠진 관계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러면 감정의 회로가 더더욱 어긋나게 되고 당연히 병이 생기죠. (107쪽, 욕망의 지도, 운명, 고미숙)
 ​   인기 드라마 <<시크릿 가든>>과 <<서유기>>, 사주명리학 등 흥미로운 이야기를 곁들인 고미숙의 욕망 계보학도 인상적이다. 고미숙은 몸의 생리와 동떨어진 욕망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시대를 우려한다. 자기 욕망에 대한 무지가 자기 소외를 낳는다는 것이다. 신체와 존재의 간극을 좁히는 해소책으로 고미숙이 제시하는 것은 '내 안에 있는 자연'이다. 고미숙의 해법은 문태준이 말하는 '생태적 사고'와도 맞닿아 있다. '내 안에 있는 자연'이란 무엇인가. 부처가 말하는 "모든 존재가 파괴되고 소멸하는 것임을 현재의 삶 속에서 폭넓게 꿰뚫어 아는 자"이다. 시인은 안에 있는 자연'을 언어로 풀어내는 자이다. 문태준은 직접 선별한 몇 편의 시를 통해 물질적 욕망을 이기는 생태적 상상력을 보여준다.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2
         이 시에서는 모든 존재를 고유한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황새, 말, 거북이, 달팽이, 굼벵이는 이동하는 공간도 다르고 보폭도, 속도도 다 다르겠지요. 그런데 이 존재들은 존엄에 있어서 높고 낮음이 없고, 낫고 모자람이 없이 동일 선상에 있다는 것입니다. 고르고 가지런하단느 것입니다. 심지어 늘 묵중한 바위도 이들과 어깨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상력은 분별하지 않는 상상력, 차별하지 않는 상상력입니다. (222~223쪽, 물질적 욕망을 무화시키는 시적 상상력, 문태준)
   고유한 개체와 개체는 연결되어 있다는 의식. 이질적인 대상을 유사성으로 엮어주는 시적 상상력이 문태준이 얘기하는 생태적 상상력의 핵심 내용이다. 예측 불가능한 불확실성의 세계에서 당신과 나는 불안으로 연결되어 있다. 노명우는 이 책에서 시대정서sentiment의 불안, 즉 당대를 살고 있는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불안의 정서를 다룬다. 그는 공동체에 대한 불신과 그에 따른 사회문제의 개인화, 냉소주의를 꼬집는 한편 불안의 시대에서 살아남는 강력한 무기는 '확실하고 분명한 지식'이라고 강조한다. 지식이야말로 "비非인간이 되는 가능성을 끊임없이 차단해내는" 길이라는 것이다.

   희망을 끊는다는 것은 동물이 되어가는 거예요. 인간다운 감정을 느낄 수 없을 때 절망에 빠집니다. 반대로 말해볼까요? 우리는 언제 안 죽을까요?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안 죽어요. 내가 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안 죽어요. (...) 희망은 사랑과 같습니다. (...) 우리는 든든하게 지탱하는 삶의 힘, 자살하지 않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사랑이에요. (...) 절망은 사랑이 없는 상태입니다. (25~26쪽, 시대의 이름, 절망, 강신주)
   캄캄한 세월이다. 그래도 우리 아직 살아 있다. 살아 있는 한 희망을 끊을 수 없다. 그게 사람의 길이다. '사람'이 뭉쳐 '삶'이 되고 '사람'이 둥글어져 '사랑'이 된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지만, 이 책에서 여덟 명의 '성난' 지식인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다. 사람이 되자. 사랑하는 사람이 되자. 둥글게 뭉쳐야 산다.
  

 

 

g*******s 2014.09.06.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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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강신주, 강준만, 노명우 외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강신주, 강준만, 노명우 외" 내용보기
8명의 각기 다른 저자의 8개의 글이 실려있다. 다 읽고 나서 다시 차례를 보니 올 3~4월에 걸쳐 진행된 강의, 오늘과 같은 절명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처지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해보는 강의를 엮어낸 책이었다. 독자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듯이(청중에게 강의를 전달하듯이) 쓰여진 형식이어서인지 하나하나 흡입력 있게 쓰여있어 한편에서 다른 한편으로 넘어가면 주제가 바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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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명의 각기 다른 저자의 8개의 글이 실려있다. 다 읽고 나서 다시 차례를 보니 올 3~4월에 걸쳐 진행된 강의, 오늘과 같은 절명의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처지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해보는 강의를 엮어낸 책이었다. 독자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듯이(청중에게 강의를 전달하듯이) 쓰여진 형식이어서인지 하나하나 흡입력 있게 쓰여있어 한편에서 다른 한편으로 넘어가면 주제가 바뀌고 말기에 조금 더 길었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게 만들었다.

 

강준만, 강신주, 노명우 세분 같은 경우는 각기 다른 저작들로 접해본 경험이 있었다. 이책을 통해서는 다시한번 마치 직접 강의를 듣는 것처럼 절망에 대해 어떻게 대처햐 하는지, 우리사회가 증오라는 감정에 어떻게 휩싸여 있는지, 인간으로서 의미있게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들어볼 수 있었던 기회가 되었고. 다른 분들의 글들을 통해서도 고전을 통해 욕망을 살펴보거나 시적 상상력을 통해서 물질적 욕망에서 벗어나 볼 수 있는 기회를 접할 수 있었다. 문태준님의 글에서는 시가 몇편 실려있었는데 시라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는 것인줄 새삼스레 느낄 수 있었다는. '대추 한알' 같은 시는 다른 책을 통해서도 몇번 접한적이 있었는데 '그냥 둔다'나 '소를 웃긴 꽃'같은 시는 몇번이나 다시 읽어볼 정도로 울림을 주었던 시였다.

 

아, 정병설님의 글의 주제였던 구운몽 다시 보기 같은 경우에도 김만중이라는 사람에 대해 다시한번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는데 이분의 배경이 대단하긴 하지만 신하를 엄청나게 내친 숙종이라는 임금앞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거리낌없이 발언했던 분이라는 사실에 놀라며 구운몽이라는 소설도 보고 싶어지더라는. 서양 고전문학도 안읽은게 많은데 그러고보니 우리나라 고전문학 또한 제목만 접하고 몇몇은 주제만 피상적으로 알고 있을 정도로 제대로된 내용은 알지 못하는 것이 태반이지 않을까 싶다. 작품의 주제의 폭이나 깊이의 차이가 있을수 있겠지만 언젠가는 강신주씨의 감정수업 같은 책이 국내 고전 및 현대문학 버전으로 나올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며.

 

사회가 절망을 권하거든 성난 얼굴로 돌아볼 수 있는 감정표현의 자유는 지금 틈틈이 보고 있는 그리스인 조르바와도 맞닿아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분노를 권하는 사회비평서는 아니지만 여기 실린 8개의 글을 통해 인문을 통한 감정배출이 가능했던 책이었다.

b******o 2014.11.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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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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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많은 것들을 가져다준 일이었다. 우리가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서 잡으려고 했던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보게 해주고, 우리를 그것으로 몰아가던 존재가 누구였는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어떤 곳인지, 그리고 우리는 누구인지..... 우리의 흩어진 생각들과 목소리를 각자의 내면으로 그리고 사회로 외치라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열띤 가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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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많은 것들을 가져다준 일이었다. 우리가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서 잡으려고 했던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보게 해주고, 우리를 그것으로 몰아가던 존재가 누구였는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어떤 곳인지, 그리고 우리는 누구인지.....
우리의 흩어진 생각들과 목소리를 각자의 내면으로 그리고 사회로 외치라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열띤 가슴으로 소리치는 여덟 명의 인문학자들의 이야기는 망각 속으로 묻어버리려 했던 우리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분노의 목소리를 높이다가 서서히 가라앉아 버린 우리를 꾸짖는 한마디 "망각이야 말고 진짜 절망해야 할 대상이다."
절망의 순간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만'이 절망의 순간을 탈출할 수 있다고 한다. 절망의 순간, 위기의 순간, 전쟁터의 한복판에서 인문학은 더욱 꽃을 피운다고 한다. 강신주는 세상과 내가 맞지 않을 때, 삐걱거릴 때 비로소 나를 세상을 돌아보게 되는데 그때 인문학은 위로가 아니라 우리를 해체해 보여주는 힘을 가진다고 한다. 피가 흐르는 그 서늘한 느낌이 삶을 변화시키고 온몸으로 부딪쳐야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여울은 예외적 상태에서 사회의 진면목이 드러나는데 세월호 참사가 바로 그것이었고, 거기에서 집단의 사악함과 개인의 위대함이 대비되었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는 전 세계에서 유래를 보기 힘든 한국적 사악함은 인명구조보다 상부의 지시나 의전이 더 중요한 체면 중심의 조직문화가 만들어낸 파국이었다. 개인의 강인함은 '악에 맞서는 악'이 아니라 '악에 맞서는 선의와 용기와 실천'이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최선의 선의를 실천하는 용기를 가져야만 한다.

압축적 성장기를 거치면서 우리는 미래는 현재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시대정신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제 후퇴기로 들어가면서 그러한 가치가 사라져 버렸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은 불안하고 절망한다. 하지만 불안에 대한 해법은 개인에게 돌려져 버렸다. 강한 자아를 요구하는 분위기, 쏟아지는 자기 계발서와 인문학적 자아성찰은 노명우의 말처럼 사회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만드는 경향을 보인다. 그 자아의 사회적 성격에는 주목하지 않은 채.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강한 자아의 힘 대신 사회과학의 힘을 빌려보라고 충고한다.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가상의 조건이 아니라 자신이 내던져진 현실의 조건을 냉철하게 인식해야 한다. 손에 사회과학적 칼을 들고 있는 사람은 자아라는 추상의 세계가 아니라 '나'라는 자아가 놓인 사회적 관계망을 관찰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희망고문'을 강요하는 선택지들을 사회과학적 힘으로 제거해 나가는 것이다.

현실은 절망적이지만 우리의 책임은 아니다. 절망은 의지와 적응의 문제가 아니다. 치료 대상은 우리가 아니라 사회였다. 그런 사회를 바꾸는 것, 그것이 바로 '분노의 인문학'이다.
c******2 2014.09.0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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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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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된 경제위기가 지속되면서 일반인들의 활력이 사라져 버렸다.삶이 재미가 없다고 하소연 한다.더욱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은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절망을 느끼는 동시에 무기력증까지 더해져 삶의 방향타를 잃은 사회구성원이 많아졌다는 것은 물질적 풍요 속에 정신적 빈곤감이 심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 요즘 세태이기도 하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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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체된 경제위기가 지속되면서 일반인들의 활력이 사라져 버렸다.삶이 재미가 없다고 하소연 한다.더욱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은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절망을 느끼는 동시에 무기력증까지 더해져 삶의 방향타를 잃은 사회구성원이 많아졌다는 것은 물질적 풍요 속에 정신적 빈곤감이 심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 요즘 세태이기도 하다.아무리 개인의 잠재 능력과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주류 기득권층이 만들어 놓은 질서,제도,시스템이 대다수를 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잘못된 제도,시스템을 만들어 놓은 사회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한다.

 

 

 

 

 

  이 도서는 1950년대 절망의 사회를 그린 희곡 작가 존 오즈번의 도서 제목에서 기인하고 있다.60여 년 전의 영국사회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영국 사회에 만연된 부조리한 사회상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데,현 한국사회의 자화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공감이 충분히 간다.자본주의 사회는 개인의 능력과 창의성을 최대한 존중하기에 노력 여하에 따라 대가와 보상을 예측할 수가 있다고 보지만,능력과 가능성이 있어도 돈과 물질적인 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출세도 성공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현 주류 이데올로기는 사회통합,경제민주화,복지문제 실현 등을 기치로 내세우고 있지만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양극화,소득 불균형,자살률,삶의 질 등은 최악으로 보인다.이러한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상황이 지속되는 것을 가만히 앉아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인간의 내면에는 욕구와 욕망이 내재되어 있다.기본적 삶의 조건이 욕구라고 한다면 욕망은 이를 뚸어 넘어 뫼비우스의 띠마냥 끝이 보이지 않는 괴물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욕구는 기본적 생리 요건인 먹고 자고 배설하며 생식을 이어 가는 것과 같이 본능에 가까우며 욕망은 인간의 탐욕과 같이 정해진 기준이 없는 무한의 경지라고 할 수가 있겠다.인간은 문명의 발달과 함께 끊임없이 진화되어 온 생물이지만 욕망,탐욕과 같은 조건은 진화할 수가 없나 보다.특히 교육수준,경제적 수준,의식의 변화에 따라 개인의 자유는 이기주의로 변하고 공동체적인 삶은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대신 돈과 물질이 개개인을 평가하면서 인간으로서 마땅히 걸어가야 할 도덕적,윤리적 소양은 땅에 떨어져 버렸다.게다가 사회안전망마저 부실하면서 세월호와 같은 대형참사를 빚게 되었던 것이다.이것은 돈과 물질이 우선 순위이다 보니 생명존중의 정신은 땅에 떨어져 버렸다.세월호 사고를 바라보면서 가장 비극적으로 생각하는 점은 총체적인 난국을 수습하고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회피를 하고 있는 것이다.가면을 쓴 존재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온갖 사회적 문제가 터지고 나면 늘 '사후약방문'격으로 수습하기 바쁘다.발본색원은 하지를 않으려 한다.입바른 소리로 내지 않는다.그것이 올바른 처세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해방후 한국 사회는 말그대로 굴절의 연속이다.인위적으로 정권을 찬탈하는 것도 모자라 뭇사람들의 의식구조를 세뇌화 시켰다.반공,승공통일 등 안보를 내세워 정권에 맞서 발언,행동을 하던 용기있는 인사들,운동권 학생들은 서슬퍼런 취조와 고문을 당하며 정치민주화를 이룩하기도 했다.그리고 IT산업이 발호를 보이던 19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는 정치이데올로기보다는 돈과 물질을 더욱 향유하려는 본능과 욕망이 거세져 가고,IMF를 맞이하면서 대단위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기업의 유연화 정책을 도입하면서 비정규직,파견직 등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공공요금을 비롯하여 교육비 등이 천정부지로 솟으면서 자식을 둔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허리가 휘고 있다.경제적 능력 없는 부모는 자식들 앞에서 또 한 번 기가 죽는다.나이가 들수록 사회적 입지도 당연 좁아진다.가정에 경제적상황이 악화되면서 가족 해체,미래에 대한 비관 등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들이 늘어만 가고 있다.

 

 신자유주의라는 시대는 소수계층을 위한 잔치임에 틀림없다.대다수는 절망과 무기력증을 호소하고 있으며,유례없는 정신질환자들이 늘고 있다.그래서 힐링,치유,행복이라는 단어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데 이것 또한 현혹되면 안된다.근본적으로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풀어 나가야 대다수가 안고 있는 절망과 무기력증이 해소될 법한데 사회 주류층은 철옹성과 같다.요지부동이다.게다가 사회의 정신적 지도자의 부재도 큰 문제이며,대다수가 힘들어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사회를 개선하려는 마음은 있되 대부분은 냉소적이고 관망적인 소극적 자세에 머물고 있다.특히 야당 정치인들마저 자기 밥 줄 챙기기에만 급급하고 있는 실정이다.기댈 언덕이 없는 사람들은 절망 아닌 무념무상의 밑바닥을 기는 삶이 지속되어도 누구하나 위로 한 마디,희망 넘치는 연대의식을 보여 주려는 사람도 없다.즉 소통 없는 불통의 일방통행만이 최선인 사회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현대 한국사회에 내놓으라 할 만한 8인의 인문학자들은 진실로 절망을 이기는 법이 무엇인가를 밑바닥 생활을 한 사람의 심정으로,고통과 상처를 직접 느껴본 사람의 심정으로 그 해결법이 무엇인가를 다양한 각도로 경험과 인용,지혜를 모아 들려 주고 있다.시대의 상징이면서 아픔이기도 한 신자유주의로 말미암아 상처와 고통을 안고 사는 이들에게 분명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가 되고 있음에 그나마 마음 든든해진다.


j******6 2014.09.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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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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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지난 4월에 있었던 세월호 대참사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운 죽음 있었다. 지금까지도 해결책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다. 왜 그런 대 참사가 있었는데 인명이 구조 되지 못했을까? 국가가 우리에게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많은 질문을 남기게 된다. 하지만 우리들은 쉽게 그 답을 찾지 못한다. 그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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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지난 4월에 있었던 세월호 대참사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운 죽음 있었다. 지금까지도 해결책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다. 왜 그런 대 참사가 있었는데 인명이 구조 되지 못했을까? 국가가 우리에게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많은 질문을 남기게 된다. 하지만 우리들은 쉽게 그 답을 찾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8명의 인문학자들에게 이 시대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고 왜 이런 상황이 되풀이 되는지 웃으면서 넘기고 거리로 나와서 분노하고 힐링이라는 단어로 나의 마음속에 있는 응어리가 눈녹 듯 사라지는 것이 왜 잘못되었는지 현실을 직시하면서 듣게 되었다. 단 한 명의 인문학자가 아닌 8명의 인문학자들에게서 우리 사회와 각각의 개인 내면에 스며들어있는 욕망과 증오, 삶에 대한 절망, 불안을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다. 희망만 가지고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사회적 구조와 정치적 이해 관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불만이 토로하고 있다.


절망, 욕망, 증오, 불안, 환상 이러한 단어들만 보면 정말 절망적인 단어들이다. 어설픈 절망보다는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을 마주보도 올라와서 현실을 직시해야만 제대로 된 절망이라고 이야기한다. 강신주님의 설명처럼 차라리 맞는 게 낫지, 곧 맞을 것 같다는 공포가 우리를 두려움에 들게 한다. 진짜 절망적인 상황에서 우리는 절망하지 않는다고 한다. 위기가 닥칠 것 같은 두려움과 공포가 절망을 만든다. 인간만이 느끼는 죽음 앞에서는 그 어떤 누구도 당당하지는 못하는 것처럼 공포와 불안의 차이점도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항상 사회적인 불만이 쌓이면 사회적 구조의 문제점이 너무나 크다고 이야기하면서 불만을 들어낸다. 분명 사회적 구조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불만을 이야기 한다. 하지만 사회적 구조만이 문제가 아니라 개인들마다 느끼는 증오와 욕망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 개인차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사회적인 문제들로 인해서 성난 얼굴로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절망과 증오, 욕망 등을 통해서 절망의 끝까지 내려가보고 사회를 바꾸고 성난 인문학을 되돌아보자는 것이다.


우리의 삶보다 더욱 아픈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기억하면서 그 아픈 삶도 있기에 나 역시도 살아가야 할 것이다. 하루하루 살아가기에 바쁜 현대인들이 절망을 이기는 방법을 이 책에서 배우고 각자만의 희망을 찾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8명의 인문학자들에게 듣는 다양한 절망의 방법을 듣고 자신만의 성난 얼굴로 하고 절망을 정면으로 대해서 꿋꿋이 이겨보자.

f********5 2014.08.2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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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강신주 외, 메디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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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사회에서 터지고 있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은 우리를 절망시킨다. 우리는 불의한 세상을 보고 분노하고, 이 거대한 사회의 흐름을 바꿀 수 없는 개인의 연약함으로 인해 절망한다. 우리는 무엇을 희망해야 이 절망의 시대를 견디어 낼 수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용기를 발휘해야 하는가? 이런 고민에 빠져있는 자에게 이 인문학 강연집은 우리를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강신주 외, 메디치미디어" 내용보기

지금 우리 사회에서 터지고 있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은 우리를 절망시킨다. 우리는 불의한 세상을 보고 분노하고, 이 거대한 사회의 흐름을 바꿀 수 없는 개인의 연약함으로 인해 절망한다. 우리는 무엇을 희망해야 이 절망의 시대를 견디어 낼 수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용기를 발휘해야 하는가? 이런 고민에 빠져있는 자에게 이 인문학 강연집은 우리를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여정의 출발선상에 세운다. 지금이야 말로 자기계발과 성공을 위한 인문학이 아니라, 이 사회의 부조리를 제대로 보고 좋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고민들을 풀어 놓는 인문학이 필요하다.

 

강신주는 절망적인 시대에 제자백가 사상이 꽃 피웠듯이, 진짜 절망할 상황에서 인간은 출구를 찾기 위해 치열하게 생각하며 희망을 가진다고 말한다. 그는 미셸 푸코의 ‘파르헤지아’(parrhesia), 즉 ‘진실 말하기’를 소개한다. 진실을 목도할 때 위대한 철학이 생겨났듯 우리는 삶의 현실과 관련 있는 철학을 해야 한다. 그는 상아탑에 갇혀 철학자 놀이를 하지 말고 진짜 철학자가 되라고 도전한다. 그의 강연은 쉽고 뭔가 끌리는 매력이 있다. 때로 너무 한 쪽을 힘주어 말해서 인상적이긴 하지만, 과격하다는 느낌을 갖게도 한다.

 

이현우가 괴테의 <파우스트>를 통해 인간의 끝없는 세 개지 욕망을 지적한 것은 명쾌하다. 인식 욕망, 성적 욕망, 그리고 권력욕망. 그는 니콜라이 고골의 <광인일기>와 도스토예프스키의 <분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통해 인간은 대단히 고상한 열망을 갖고 있음과 동시에 저급한 욕망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욕망은 학습된다고 주장한다. 한편, 고미숙은 ‘욕망과 존재의 계보학’을 보여준다. 오늘날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라는 구호가 가지고 있는 폭력성을 들추어낸다. 내가 좋아하는 강준만 교수는 ‘감정독재의 본질, 증오’라는 타이틀로 먼저 우리의 정치현실을 이해시키는 데 주력한다. 초강력 일극주의와 승자독식과 속도주의 체제, 연고주의, 미디아 당파주의 등의 설명에 고개가 끄떡여진다. 그런데 그의 글에는 이전과는 달리 명징한 해답이 없다. 스스로가 밝혔듯, 그는 양비론을 말하는 ‘비겁한’ 지식인이 된 것인가? 좋게 말해, 균형잡힌 학자가 된 것인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내가 처음 접한 정여울의 글이다. 이 사회를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거대 담론보다 절망적인 사회에서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과 자세를 말한다. 그는 요즘 일어나는 일련의 대참사를 보며 집단의 사악함과 개인의 위대함을 생각한다. 그리고 낙하산 비유를 말한다. 절체절명의 높이에서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는 낙하산에 구멍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 위태로운 낙하산을 내일도 무사히 쓸 수 있게 찢어진 구멍을 꿰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처음 이 비유를 접할 때, 낙하산에 구멍을 내는 나쁜 놈들을 잡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나쁜 놈들’은 항상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놈들을 없애는 과정에서 낙하산에 더 큰 구멍이 생길수도 있겠다 싶다. 정여울의 주장이 옳다. 개인의 위대함은 ‘악에 맞서는 악’이 아니라, ‘악에 맞서는 선의와 용기와 실천’이다.

 

시인 문태준은 물질적 욕망이 담겨있지 않은 시(詩)들을 소개하면서 물질적 욕망을 무화시키는 시적 상상력을 발휘하라고 권한다. 정병설은 <구운몽>을 소개하면서 환상이 때로 절망을 이기고자 하는 자에게 약간의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노명우는 불안의 시대에 강한 자아의 확장이 아니라, 공감하고 책임지는 능력이 있는 존재로 살기를 희망하라고 도전한다. 그것이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이기 때문이다. 노명우의 마지막 은유처럼, ‘요괴인간’도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데, 하물며 우리는 불안의 시대에 오늘도 인간으로 살아가고자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l******y 2014.09.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