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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가 사람 마음을 졸이는 것도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정말로 독자나 관객을 서스펜스의 격류에 태워 다른 세상의 맛을 보여 주기, 다른 하나는 그냥 속만 터지게 빙빙 돌리다 무성의하게 말도 안 되는 결말 맺기.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일단은 후자도 러닝 타임 내내 장난 아니게 사람 갖고 논다는 점이다. 둘의 차이는 보고 나서의 감상이 호/불호 어느 쪽으로 정리되느냐에 있다.
덴젤 워싱턴은 더 이상 검은 나르시스로 머물지 않겠다며 벌써 이 즈음부터 마음 놓고 망가지기로 결단을 내렸다. 껍질이 째지는 아픔을 불사하겠다는 그 용기는 가상하나, 그 결과가 얼마나 보람을 봤는지에 대해선 별도의 평가가 필요함은 물론이다. 이 영화에서 그가 맡은 치프 '매튜' 역은(뭐 언제나 그는 치프 역만 맡아 왔다) 종전과는 달리 흔들림 많고 위험할 만큼 타락하고 비교적 쉽게 원칙을 포기하며 얕은 속셈으로 거짓을 일삼는, 의외다 싶게 그리 신뢰가 가지 않는 인물이다. 사람이 저렇게 빤히 보이는 속임수를 부리는데(전지적 관객의 이점을 갖고 하는 말이 아님) 부하들이 잘도 속아 넘어가는 걸 보면 이 영화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내내(?) 넉넉히 인덕을 쌓아 온 아주 충직하고 유능한 경찰이 아니었을까 싶다. 재수없게 하필 고 시점부터 우리 눈에 노출된 게 큰 유감일 뿐이지 말이다.
아무리 늦게 잡아도 윌 스미스 이후로는 효력을 잃었지만, 한때 '흑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면 관객들이 불안해한다'는 통념이 있었다(알고 보면 역으로 이 말은 덴젤 워싱턴이 무대 중심에 선 1990년대 전반만 해도 그런 분위기가 여전했단 소리). 이 영화는 오히려 괜한 선입견에 정면 돌파 전략으로 맞서겠다는 듯 의욕을 보이나, 가뜩이나 얼굴들이 검어서 불안한(...) 세팅에 스토리와 캐릭터상의 부실한 채비로 불안감을 가중하고 있다. 이게 스릴러가 취해야 할 창작적 정석이 아니라는 건 역시 재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아니 스릴러가 이런 식으로 소비자에게 스릴을 끼치면 그건 스릴이 아니고 민폐다. 불결한 극장 객석에서 갑자기 쥐 한 마리가 튀어나오기라도 하면 '아, 이게 바로 스릴러의 4D 관람 방식입니다! 추가요금 안 내고 즐기시는군요'라고 퉁칠 셈인가?
직장 부하이자 이혼할 마누라 알렉스 역으로 나온 에바 멘데스는 그 특유의 찐한 인상 때문에 마치 이 영화 말고 다른 데서도 많이 본 얼굴 같은 착각을 안기지만 그건 진짜 착각에 불과하다. 나는 사실 이런 캐스팅 하나에서도 헐리웃 제작진이 소위 인터레이셜 이슈에 대해 얼마나 신중하고 민감해하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저렇게 괜찮은 마누라를 놔 두고 웬 어디서 거X 발XX 같은 못된 뇬한테 걸려 저 고생인가 짜증이 확 몰아닥치는데, 이 불편함을 해소해 주는 장치는 나중에 덴젤 워싱턴이 지 입으로 고해성사 하는 것 말고는 없다. 극의 진행은 끝내 이 남자주역에게 도덕적 결함을 사해 주지 않는다. 이 모든 비극과 소동은 그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빚어진 일이며, 다만 마지막 장면 돈가방에 제 내용물(스포일러 방지)이 채워져 있지 않은 장치 하나가 그나마 관객들의 마음을 달래 준다(동시에 부인 알렉스가 독한 마음을 품지 않게도 도움).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여겨 볼 만한 장면은 기꺼이 망가져 주는 워싱턴의 액션이 아니라 몸 안 사리는 듯 시원시원한 에바 멘데스의 그 표정 연기, 즉 직장에선 어디까지나 공과 사를 가리는 단호한 원칙주의자로서, 이미 부패와 치정의 늪에 두 발을 다 담궈 가는 썩은 반장(남편)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가는(그녀 자신은 의식 못 함) 그 서늘한 눈빛과 굳게 다문 입매의 곡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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