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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방학이랍시고 요즈음 야구하는 데 맛을 들인 아들 녀석들이 야구 영화가 있으면 보자고 했다. 그런데 우리 집에 있는 야구 영화 디브이디는 딱 세 개다.
케빈 코스트너가 나오는 1989년 작품 <꿈의 구장 Field of Dreams>은 아이들도 이미 보았고, 한 해 먼저 나온 영화 <19번째 남자 Bull Durham>는 야해서 아이들이 볼 수가 없다. 그러면 남은 하나를 볼 수밖에.
2. 마흔 하나에 후배들에게 길을 터준다며 야구를 접은 삼성 라이온즈의 양준혁 선수. 선동렬 감독이 그만 두라고 하지는 않았겠지만, 날이 갈수록 시합에 내보내지 않으니 스스로 물러날 수밖에.
타자에 관한 온갖 기록을 다 갖고 있으며 앞으로 더 나아갈 수도 있는데, 그만 꿈을 접어야 하는 그이의 마음은 어떨까?
젊은 후배한테 한 자리를 주고자 뒤로 물러나는 건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뛰어난 선수 한 사람의 앞길을 꾸준히 지켜주지 못하는 팀이 못내 서운하기만 하다. 그깟 한 자리를 양준혁 선수한테 내주지 못하는 속좁은 마음이 보기가 싫어진다.
그런데 꽃을 피울 것으로 꿈꾸고 곧 무대에 설 사람이 아직 야구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손을 떼야 할 일이 생긴다면 마음이 어떨까?
억장이 무너지고 속이 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 꿈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가슴 속에 묻기를 누가 바랄까?
한창 때 피워야 할 꿈을 못 피웠지만, 뜻을 굽히지 않고 끝까지 애를 쓴 끝에 나이가 들었지만 이름난 야구 선수가 된 이의 삶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배리 레빈슨 감독이 1984년에 만든 <내츄럴 The Natural>은 야구에 미친 사내의 이야기를 그려내면서 삶의 뒤틀림을 잘 보여주는 영화다.
3. 스무 살의 로이 홉스(로버트 레드포드)는 시카고 컵스 팀에 뽑혀 갈만큼 야구를 잘 한다. 이제 집을 떠나 시카고로 가야 한다. 한 마을에 사는 아가씨 아이리스(글렌 클로즈)와도 헤어져야 한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으뜸가는 야구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버리고 마을에 주저 앉을 수는 없는 법.
집 가까이에 있던 오래된 나무가 벼락을 맞아 부러지자 그 나무를 깎아 방망이를 만들어 떠난다. "같이 살고 싶어..." 아이리스한테 말했지만 야구 선수로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뒤로 미루어야 한다.
그런데 집을 떠난 뒤 열여섯 해만에 시카고가 아닌 뉴욕에 나타난 로이 홉스. 뉴욕 나이츠 팀에 500달러를 받고 들어간다. 팝 피셔 감독은 어안이 벙벙하다. 늙수그레한 사내가 코치도 아닌 선수를 하겠다고 나타났으니...
게다가 공을 잘 던져 투수를 하겠다던 이가 어떻게 된 판인지 공을 때리는 타자가 되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삶은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져 길이 어긋날 때가 있다. 로이 홉스도 엉뚱한 일에 휘말려 바라는 길에서 한참 멀어져 버린다. 그렇지만 야구를 버릴 수가 없으니 어째야 하나...
4. 야구만 잘 하려고 애쓰는 착한 로이 홉스를 그냥 두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야구하는 곳이라 해도 사람 사는 곳이라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같이 어울려(?) 살 수밖에.
뉴욕 나이츠가 우승하지 않아야 팝 감독을 자르고 제 몫을 챙기려는 판사나 도박사, 기자. 로이 홉스가 잘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어떻게든 막으려 하는 약삭빠른 사내들을 보면서, 저렇게 살지는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로이 홉스를 사랑하지만 번듯하게 살고 싶어 돈을 더 사랑하는 메모 패리스(킴 베싱어)는 사내들의 애간장을 태우는 힘을 갖고 있지만 길을 잘못 들어선 탓에 얼굴 값을 못한다. 킴 베싱어한테 딱 맞는 배역으로 보인다.
잘 나가는 운동 선수라면 공차기를 하든 올림픽에 나가든 야구를 하든 가리지 않고 총으로 쏘아 버리는 해리엇 버드(바바라 허쉬)가 가장 눈에 들어오는 배우다. 시카고의 어느 호텔에서 껌정드레스를 입고 로이 홉스를 마주 할 때, 검은 면사포로 예쁜 얼굴을 가리는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로이 홉스를 기다리는 착한 모습으로 나오는 글렌 클로즈를 바바라 허쉬와 바꾸어 맡게 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눈빛이 억센 글렌 클로즈를 해리엇 버드로 하는 게 오히려 나을 듯하다.
오로지 야구만을 생각하며 산 로이 홉스를 맡은 로버트 레드포드의 연기도 나무랄 데가 없다. 아들이 돌아올 때가 되었다며 바쁘게 돌아가라고 내치는 글렌 클로즈를 보며 어리둥절해 하는 로버트 레드포드의 눈길이 오래 남는다.
5. 태어날 때부터 뛰어나게 잘 하도록 타고난 사람을 뜻한다는'더 내츄럴'. 그런데 세상은 제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더 많은 듯하다. 천재들이 생각보다 일찍 죽는 것을 보면.
야구 하는 모습이 요즈음의 미국 메이저리그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고 조금은 엉성할 때도 있지만, 꿈을 잊지 않고 끝까지 찾아가는 모습과 한 번 맺은 사랑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기다리는 마음이 보기에 좋은 영화다. 134분이 후딱 지나가 버린다. 로이 홉스가 시원스런 홈런으로 라이트를 맞출 때는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디브이디는 화면이나 소리가 괜찮지만, 보너스는 푸짐한 듯 보여도 그림의 떡이다. 영화를 보면서 들려주는 여러 이야기들은 우리말로 나오지 않고 영어로만 나온다. 다른 소개들도 마찬가지. 아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