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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사에서 지난달 출간된 고은 선생의 일기 모음, <바람의 사상>. 1973년~1977년까지의 일기다. 1,000페이지 분량의 방대한 양이지만, 내용의 80~90%가 ‘대취(술 마시고 크게 취함)’, ‘원고 몇 장 썼다’로 이어진다. 또한 유신 독재 하에서 고난과 핍박으로 얼룩진 한 때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이 책을 끼고 5일 정도를 끙끙 앓았다. 선생의 말처럼, 일상의 배설이 무슨 의미가 있을 지 모르겠지만, 한 줄 한 줄 그의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커다란 시의 숲, 그 뿌리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고개 숙이게 된다.
먼저 고은 선생 얘기를 좀 하자면, 10년 동안 일초란 법명으로 스님으로 살다가, 환속 후 문단의 큰 줄기로써 시대를 함께 한 시인이다. 지금으로 보자면 당시 어린 나이에 문단의 거목으로 대접 받았으니, 한편으론 그 천재성(서정주 선생이 평하듯)을 엿볼 수 있고, 어쩌면 해방 이후 우리 문학계의 어른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도 할 수 있다.
몇 해 전부터 노벨문학상 후보에 줄기차게 오르고 있는 고은 선생. 작년 모옌의 수상으로 어쩌면 기약하기 힘들 지 모르겠으나, 최근 행보를 보면 올해가 적기인 듯싶다. <만인보>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지속되고 있고, 작년 연말을 기점으로 일기 모음집 <바람의 사상>, 대담집 <두 세기의 달빛>이 한길사에서 나왔다. 아마도 이 두 책은 시리즈로 묶여 고은 선생의 개인사와 문학사를 한데 묶어내는 훌륭한 저작으로 탄생할 것 같다. 또한 선생의 대표시 240편을 묶은 <마치 잔칫날처럼>과 아내 이상화 님에게 바치는 최초의 사랑 시집 <상화 시편>이 창비에서 출간됐다.
얼마 전 민음사 회장인 박맹호 님의 <책>을 통해 고은 선생과의 인연을 소개한 적 있다. <바람의 사상>에서도 동갑내기(박맹호, 이어령)와의 극진한 우정이 소개된다. 박맹호 님의 <책>이 한국 현대 출판의 역사를 조망했다면, <바람의 사상>은 한국 문단의 생생한 한 때를 풍경화처럼, 때론 인물화처럼 그려놓았다.
수많은 문인들이 등장한다. 언론인, 정치인, 목사와 수녀, 이름 모를 수많은 독자와 대학생 들도 등장한다. 1933년생인 고은 선생에게 1977년 당시 문단의 선배로 대접 받은 사람은 김동리와 서정주 선생 정도다. 물론 조연현, 모윤숙 등 친일 혹은 유신의 앞잡이 노릇을 한 선배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고은 선생의 후배들이 일기의 면면을 장식한다. 이젠 추억이 되어버린 문지 4K(김현, 김주연, 김병익, 김치수), 최인훈, 유종호, 이문구, 박태순, 조태일, 김지하, 염무웅, 강은교, 사슴 마담 인숙 등과의 일상(90% 이상이 술 마시고 대취한 내용)이 펼쳐진다.
청진동 일대가 문인들의 거리로 등장하기 시작한 이후, 1960~70년대 민음사는 한국 문학, 문인들의 인큐베이터로써 자리했다. 지금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지만, 당시 민음사에서 ‘문학과 지성’으로 독립(?)한 김현(을 비롯한 4K)의 순수문학과 백낙청을 주축으로 한 ‘창비’의 참여문학의 대결 양상은 지금도 흥미롭다. 그 경계에서 자유롭게 술 마시고, 글 쓰고, 책을 냈던 고은 선생이 한 구심점 역할을 했다.
여담이지만, 이 책에서 ‘디오니소스’란 단어가 대략 6~7회 등장한다. 그만큼 술을 좋아했던 고은 선생이다. ‘아폴론의 밤, 디오니소스의 밤’의 열락을 즐겼던 그이지만, 문학에 대한, 시에 대한 명징하면서도 자기 파괴적인 분투는 끝없이 이어진다. 술 마시는 것만큼이나 매일 청탁원고를 쉼 없이 써 내려가고, 간간히 찾아오는 시들에 스스로 감동하기도 한다. 매일 같이 술을 그리 마시면서도 흔들림 없이 글을, 그것도 한차례의 퇴고도 없이 일필휘지로 써 내려간 순발력과 체력과 필력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각종 강연 요청에 나가고, 문학상 심사위원으로 나가고, 시국 선언 등에 앞장 서고, 또 책을 읽고, 또 글을 쓰는… 그러면서도 술독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그의 모습이란. 딱 내가 꿈꾸던 삶이었다.
어쩌면 유신 독재 체제 하에서 가장 극심한 감시를 받았던 문인 중 하나였기에 엄혹한 현실을 이기는 데에 술만한 친구가 따로 있었을까 싶다. 일기에 기술된 ‘남산’의 감시 체제는 혹독하기 그지 없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주변 문인들과 출판사, 잡지사를 조정하는 빅브라더의 면모란.
일기는 정확히 1977년 4월 11일로 마무리된다. 만약 일기가 이어졌다면 1979년 10월 26일 독재가 무너진 날(물론 전두환의 뜬금없는 군부독재가 새롭게 시작했지만) 이후의 그의 일상을 알 수 있었을텐데…. 독재의 칼날 같은 검열로, 육필 원고의 보전 문제로 많은 분량의 글들이 유실됐지만, 이렇게라도 시대의 어두운 현실과 그에 어우러지는 시인의 삶, 그 단초를 엿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는다.
일기를 읽어가며 스마트폰을 옆에 끼고 있었다. 등장하는 문인들을 일일이 검색하다 보니 책 읽는 속도도 더뎠다. 언급된 문인 태반이 이미 영면했다. 특히 고은 선생이 가장 아꼈던 후배이자 소설가였던 이문구 님은 예의 불을 가슴에 품은 사나이였다. 그 밖에도 몰랐던 당시 문단 상황을 되짚으며, 오해했거나 과대 평가했던 몇몇 문인들을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 박목월이나 조연현, 모윤숙 등과 같은.
2012년이 다산을 읽는 해였다면, 2013년은 고은 선생의 작품과 함께 하고 싶다. <바람의 사상>을 기점으로, <두 세기의 달빛>을 거점으로 <만인보>와 그의 전집, 그외 출간된 다양한 산문과 평론 들을 읽고 싶다. 비교가 적절한 지 모르겠으나, 고은 선생은 조지 오웰과 이백, 이상이 두루 체화된 하나의 ‘꽃’이 아닐까 싶다.
예전 홍지웅 님의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를 읽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한 사람의 생애를 엿보는 것만큼 흥미로운 일도 드물다. 하지만 평전이나 자서전과 같이 누군가에 의해 덧대어진 삶은 무미건조하며, 울림이 적다. 외려 고은 선생의 일기처럼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닌, 팩트 위주의 소소한 기록이 더 진심에 가깝다.
술 마시고 주사를 부린 몇몇 장면(지금으로 보자면 진상에 가깝지만^^;), 문단 대선배인 김동리와 서정주와 대거리하는 장면, 자신보다 10여 년 이상 선배인데도 ‘00야’하며 부르는 배포, 민음사에 ‘사슴’ 술집을 내게 도왔던 장면, 그리고 이어지는 술과 술과 술, 사람과 사람과 사람이야기, 최근 변절(?)로 많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시인 김지하에 대한 애틋한 마음, 알 듯 모를 듯 이어지던 이상화 님과의 연정… 이 1,000여 페이지의 일기 속에 스미듯 묻어있다. 결국 1976년부터 그를 살릴 건, 숙자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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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셨다(먹었다). 받았다(썼다). 찾아왔다. 고은 선생님의 일기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다. 실제적이고 구체적이다. 일기는 그래야 한다. 이 일기가 일기 형식을 가지지만 산문과 소설의 수준으로 뛰어 오르는 지점이 바로 이것이다. 마셨다. 썼다. 받았다. 문학 하는 사람이 사는 삶은 별다를 것이라고 흔히 생각한다. 언젠가 TV에서 우연히 본 박범신 작가의 별장같은 집을 보며 속이 울렁거린 적이 있다. 소설가라면 필시 좀 어렵고 못 살고 팍팍하고 신경질 적이며 사회와 어울리지 못해야 하는 것으로 착각했다. 그런데 TV에 나오는 박범신 작가는 으리으리한 집을 짓고 높은 담을 쌓았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인터뷰를 하고 리포터가 하는 말에 웃으며, 여유있게 대답하는 것을 보고 속물이라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착각속에 빠져 있던 내가 속물이었다. 문학 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래야 해! 하는 것은 없다. 정해진 것은 없다. 이것은 진보는 반드시 가난해야 한다. 진보가 벤츠를 타? 진보를 추구한다는 놈들이 명품옷을 입어? 그 새끼들 위선이야! 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어떤 이유로, 어떤 자격으로 판단하나. 판단할 수 없다. 고은 선생은 내가 좋아하거나 즐겨 읽는 작가가 아니었다. 때문에 그의 작품을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 나는 그의 작품을 읽기 전에 고은, 이라는 사람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다. 문학 하는 사람을 이해하는 데, 이 책만한 것이 있을까 싶었다. 책은 1000페이지가 넘는 폭력을 저지르지만 어렵거나 지겹지 않다. 나는 이 책은 한 달 동안 읽었다. 지루하고 어려워서가 절대 아니고 읽다 말고 읽다 말고 그러다 보니 한 달이 걸렸다. 맥이 끊기지 않으니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일기를 몰래 들여다보는 관음증 비스무리한 착각도 하면서 히죽이며 읽었다.
마셨다.(먹었다) “박맹호와 점심 먹었다.” (p.49) 73.6.14.목 “날씨 화창. 미치겠다. 성욕이 심했다.” (p.199) 74.4.8.일 “아침에 한강에 나가 똥을 누었다.” (p.492) 75.6.17.화 “이발소에 가서 면도했다. 여자 면도사가 귀 잔털을 밀 때 기막혔다.” (p.327) 74.11.7.목 K팝스타라는 프로그램 초기 각광받는 참가자가 있었다. 청아한 목소리로 심사위원들의 극찬을 받은 박윤하양. 여중생인 박윤하양의 목소리는 이전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K팝스타에 참가한 참가자들의 목소리와는 달랐다. 주목받았다. 대부분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그렇듯 프로그램 회차가 거듭될수록 참가자의 개인사가 하나씩 전파를 타게 되는데, 박윤하양이 민음사 박맹호 회장의 손녀라는 것이었다. ‘우와 집안도 좋네’싶었다. 이후 이 책을 읽는데, 박맹호라는 이름이 정말 많이 나온다. 한국의 현대 문단을 이끌어온 수많은 작가들의 이름이 이 책에 나오지만 박맹호 회장의 이름이 가장 많이 나오는 것 같다. “박맹호와 점심 먹었다.” 라는 문장이 엄청나게 많다. 먹었다는 물론 “마셨다.”도 비례해서 나온다. “대취했다.”도 뒤따라 온다. “성욕이 심했다.”, “똥을 누었다.” 같은 문장을 읽을 때는 상상이 되는 터라 불편하기도 했지만 재미있었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40년 전에는 한강변에 나가 대변도 볼 수 있었구나 싶다. 4년 동안의 일기를 그대로 엮은 이 책은 고은 선생의 일거수일투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문학가, 작가 이전에 한 사람으로, 한 사내로 의식주와 관련된 욕구와 그것의 충족 과정, 결과를 담담히 담고 있다. 고은 정도 되는 작가의 일기를 발췌한다면 좀 더 멋있고 의미있는 것들만 추렸을 만도 한데, 이 책에는 그런 것이 없다. 가식이 없다. 그래서 재미있다.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며 위로를 받기도 했다. 사실, 먹었다. 보다 마셨다.가 훨씬 많이 나온다. 그즈음 문학 하는 사람들, 그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마셨는지 모르겠다. 일주일 내내 마실 때도 있고, 숙취로 하루 종일 힘들었는데 또 마신다. 시대 탓이려니 이해했다. “이즈음 충조란 놈 도박에 빠진 모양이다.” (p.127) 73.12.18.화 “은행에서 6만원을 찾았다. 집에 있던 18만 원과 합쳐서 충조에게 주었다.” (p.281) 74.8.26.월 “군산에 갔다. 밤에 어머님 뵈었다. 마침 아우 충조도 와 있다 피붙이란 본질적으로 슬픈 것이다. 밤에 개 짖는 소리를 오래 들었다. 슬펐다.” (p.749) 76.4.23.금 고은 선생의 동생이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 과정도 상세하게 실려 있다. 동생이 도박에 빠지고 계수에게 용돈을 건네고 조카에게 선물을 사주고 하는 과정도 상세하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 뵙고, 어머니가 고은 선생의 집으로 찾아오는 일, 용돈을 건네는 일, 그 용돈의 액수까지 상세하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고 더 공감이 된다.
썼다.(받았다) “문학 달지 마라. 문학 쓰디 쓴 것이기를. 귀신이 토해내는 검은 핏덩이처럼 써라. 못 먹을 만큼 쓰디쓸 것. 달콤한 작가, 달콤한 계집, 달콤한 언어들을 살육하라.” (p.20) 73년 4.13.금 “그곳 기자와 나 사이의 통화가 도청된 것이다. 이제부터 나는 밤하늘의 허공에 글을 쓸 것이다.” (p.443) 75.4.11.금 타자기를 쓰지 않고 원고지를 쓰던 당시, 하루에 몇 장 썼다. 라는 문장이 많이 등장한다. 지금이야 원고지에 글씨를 쓰는 것이 낭만쯤으로 생각되지만 고역이다. 써본 사람은 안다. 이렇게 모니터 앞에서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는 것도 고역인데, 말해 무엇하랴. 하루에 몇 장 썼다. 라는 문장은 누구와 마셨다. 라는 문장 만큼 많다. 작가니 당연한 일이다. 곳곳에서 청탁받은 원고와 자신의 작품에도 충실했던 작가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뒤따르는 문장은 받았다. 이다. 고료 받았다. 몇 만원, 몇 십만 원. 지금과 40년 전의 물가가 얼마만큼 다른 지 모르겠지만 작은 돈도 큰 돈도 아니었던 것 같다. 동생의 병원비와 자신의 생활비를 충당하면 늘 돈이 모자랐던 것 같다. 문학하는 사람도 생활인이다. 쓰고 받아서 살아야 한다. 똑같다. “서재에서 책 바라보며 술 마셨다. 책은 취하지 않고 나만 취했다. 나는 연애도 못 한다. 나는 혁명도 못 한다. 나는 취중몽사밖에 하지 못한다. 나는 폐인이다.” (p.408) 75.2.18.화 “오늘 아주 시건방진 올해 신춘문예 당선한 녀석을 혼내주었다. 옆에 있던 김현이 민망했을 것이다.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이 시대 탓인가, 아니 내 탓일 뿐이다.” (p.224) 74.5.13.월 “내 소설 광고가 여러 곳에 났다. 내가 나에게 구역질이 난다.” (p.264) 74.7.19.금 “낮에 경복고 아이들 몇이 찾아왔다 선생님은 우리의 태양입니다라 했다. 아니다 나는 너희의 시궁창이다라고 대꾸했다. 술 먹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p.902) 76.11.13.토 “시 하나 올까 말까 하다가 오지 않았다. 연애의 어느 고비였다. 칵 막혔다. 나 자신이 말세 같았다.” (p.924) 76.12.7.화 “9월이 내 허랑방탕을 서러워하며 떠났다. 10월 역시 그러리라. 나는 구제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변화할 수 없는 시궁창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p.580) 75.9.30.화 문학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 중, 나의 예상과 들어맞는 유일한 부분이다. 늘 고민하고 애쓰고 괴로워하고 답답해 하고 다그친다. 모든 문학가에게 이것을 기대하면 과잉인가? 고은 선생은 특히 자신을 향한 칭송과 자신의 작품을 대하는 자세가 날카로웠던 것 같다. 예민하게 반응한다. 고등학생들이 찾아와 “태양입니다”라고 했더니 “시궁창이다”라고 대꾸했다는 장면은 영화 같다. 대(大)작가의 페이스소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시 하나 올까 말까 하다가 오지 않았다.”라는 문장은 그대로 시다.
찾아왔다. “김대중 살아서 돌아왔다. 박정희는 말 없다. 일본의 「아사히신문」은 그의 실종사건을 1면 톱뉴스, 3면 톱뉴스로 썼다. 한국 신문과는 다른 명료한 사건 윤곽이 잡혔다.” (p.72) 73.8.16.목 “김대중 연금해제. 나는 정치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p.101) 73.10.26.금 “드디어 대통령긴급조치 9호가 발동되었다 초법의 권력이다. 대학가 데모에 사형, 무기 5년 이상의 처형이 가해진다고 명시했다. 대통령 키는 작은데 그 권력은 너무 크다.” (p.195) 74.4.4.목 이런 시대였다. 헌정 사상 최악의 법인 긴급조치 9호가 발동된 시기였다. 그 시기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선생의 일상은 야만과 폭력의 시간을 넘어서지 못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사건과 관련된 뉴스를 일본 언론을 통해 접했다고 한다. 그때도 한국의 언론은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봉해 있었다. “대통령 키는 작은데 그 권력은 너무 크다.” 크흐흐. 공안당국에서 정말 싫어했을 만한 표현이다. “나 같은 순수 시인을 참여 시신으로 만들 것인가. 이 군인의 시대, 이 육군의 시대야. 이 총검의 시대야, 이 탱크의 시대야, 이 색안경의 시대야.” (p.319) 74.10.23.수 “아침 10시 반 영등포경찰서 정보과 형사 두 사람이 왔다. 개헌운동 하지 말라는 말과 앞으로 내 사생활을 일일이 점검한다는 말을 남겼다. 오늘부터 내 꼬리에는 날아가지 않는 파리가 붙어다니게 된 것이다.” (p.141) 74.1.9.수 어느 날부터 고은 선생에게도 경찰과 공안요원이 찾아 온다. 전화를 해 협박을 하기도 하고 회유를 하기도 하고 집으로 찾아와 서재를 뒤지고 선생을 감시한다. 그때도 문단의 중심이었던 고은 선생의 하나하나를 지켜보는 것이다. 도청하고 감청하고 따라 다니고 끌고가 조사도 한다. 선생의 “꼬리에 붙은 날아가지 않는 파리”는 계속 되었던 것 같다. 시국선언을 하기 위해 모이려던 명동성당의 규합에 대한 정보가 세어 나가게 된다. 성당 근처에 가기도 전에 잡혀간 사람도 많았다. 고은 선생은 아는 수녀를 통해 명동성당으로 통하는 비밀통로로 들어가 시국선언을 한다. 공안당국과 경찰에서는 정말 미웠을 것이다. 그저 시나 쓰고 술이나 마시고 조용히 뒤에 빠져 앉아 있으면 좋으련만. 워낙 대중적으로도 알려진 작가라 쉽게 잡아가 가두지도 못하고,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걱정하는 것만큼 오지랖은 없다. 직접 당하는 고은 선생이야 얼마나 괴로웠을까. 늘 감시당하고, 언제 어디서 끌려 갈지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려야 하는 시간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박정희의 아들 지만이란 아이가 육사를 지망했는데 이 사실을 안 권력계층의 아들들이 모두 육사 지망을 해서 육사 개교 이래 최대 경쟁률이 되었다 한다. 너도 나도 지만이와 동기생이 되어서 나중에 박지만 정권이 생기면 거기서 한 자리씩 차지하려 하는 수작이다. 박정권 2대 정권까지, 박의 종신정권 그다음 종신정권까지 내다 보는 수작들이다. 이런 사실이 국내에서는 감감무소식이다. 요즘 신문 제1면은 한산도 제승당에 간 대통령각하의 일거일동 따위가 황제 거동으로 묘사되고 있다 심지어 변소 가는 것까지 시시콜콜히 날 정도이다. 개새끼들의 시대다.” (p.890∼891) 76.10.31.일 책을 들고 있던 손가락 끝에서부터 어깨를 지나 머리카락 끝가지 소름이 돋았던 문장이다. 고은 선생은 대단한 작가면서 예언가이다.
그 밖에. “이상화 왔다. 목도리 짠 것이다. 향수 냄새가 났다. 또 하나는 실크 목도리이다. 나는 신간 두 권 바쳤다. 상화는 말이 없고 나는 말이 많았다.” (p.964) 77.1.7.금 고은 선생의 집에는 많은 독자들이 찾아 왔던 모양이다. 일기에 적힌 것의 대부분은 여대생들이다. 하하하하. 이해합니다. 선생님. 일기의 후반부로 가면서 이상화라는 이름이 많이 나왔다. 이전 독자들이 찾아오면 찾아왔다. 먹었다. 가 대부분인데 이상화라는 여성에 대한 언급은 길고 구체적이었다. 책을 읽으며 찾아보니 선생의 아내분이었다. 나는 몰랐다. 이런... 목도리를 짜 오고. 상화는 말이 없었는데 나는 말이 많았다. 는 것은 이때부터 아내분은 좋아한 것으로 보인다. 재미있다. 늦은 결혼이었다. “새벽예불을 마치고 혼자 처져 있다가 대불을 바라보며 “형님 나는 성불하지 않겠고. 형님이나 이룬 부처 내가 이룰 게 뭐요”라고 중얼거렸다. 그는 ‘네 처분대로 해보아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도끼로 그 나무토막 부처를 찍어 내려다가 내 셋방 아궁이에 넣고 장작을 삼으려 했다.” (p.1057) 단식21일기, 59.11.12 책의 마지막 부분, 부록으로 실린 내용은 환속하기 전 선생의 모습이다. 구도자로서 단식 기도에 들어간 선생의 일기 또한 노골적이다. 환속하게 된 이유로 어렴풋이 짐작해 볼 수 있다. 고은 선생은 철저하게 리얼리스트다. 이 10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되는 단 하나의 기준이다. 희로애락이 모두 담긴 일기가 그대로 시가 되고 소설이 되는 착각은 그만큼 선생의 글과 일상이 리얼리즘에 천착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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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고은의 일기를 정리한 책이다. 1973년부터 1977까지의 5년간 기록이다. 책의 분량이 자그마치 천페이지를 넘는다. 그의 나이로는 40대 초반에 일어난 일이다. 유신체제의 한가운데를 치열하게 살아가야 했던 지식인의 고뇌와 울분이 담겨 있다. 하루하루 일어난 일을 사실 중심으로 간결하게 적고 있다. 단문의 힘 있는 글이다. 생각이나 감상에 대한 기록은 최대한 자제한다. 그런 부분은 일기 마지막 부분에 가서야 조금 보인다. 가택수색을 당하고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는 당시 상황이 느껴진다. 그래도 글을 쓰는 작가로서 사명감이랄까, 훗날을 위한 최소한의 기록이었을 것이란 짐작을 해 본다. '바람의 사상'이라는 책 제목에서 고은 시인의 일상과 생각이 엿보인다. 거침없이 살아가는 인생이다. 결혼과 속박을 거부한 독신자의 자유로움이 있다. 두주불사의 호탕함이 보인다. 시와 소설은 일필휘지로 써내려간 작품이다. 퇴고란 말은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 달관한 듯한 삶의 자세가 책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래서 항상 노벨 문학상 후보자로 거론되는지도 모르겠다. 순수문학을 지향했더 시인이 어떻게 현실에 대해 발언하는 정치인이 되는지 심정의 변화과정이 하루하루의 기록을 통해 드러난다. 수 많은 문인들을 만날 수 있다. 언론인, 정치인, 목사와 수녀, 이름 모를 수많은 독자와 학생도 등장한다. 김동리와 서정주 선생은 물론 박맹호, 이어령, 김현, 김춘수, 최인훈, 유종호, 이문구, 박태순, 조태일, 김지하, 염무웅, 강은교, 사슴 마담 인숙 등과의 일상이 펼쳐진다. 대부분이 술 친구이지만 김지하의 재판과정에 방청객으로 참여하면서 그에 대한 애정을 상당히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일이라는 것 한푼어치에 술 아홉푼이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대취(술 마시고 크게 취함)'이다. 목욕 한번 하고 낮잠 자고 나면 대부분 시 한편이 저절로 나오지만 그 이전에 술 아홉말은 마시는 것 같다. 일기 앞부분은 술 마시는 이야기로 90% 이상 채워져 있다. 원고 마감일이 내일이라도 오늘밤은 술로 지새워야 작품이 저절로 써진다. 정말 글쓰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 안에 글쓰기에 있어서의 천재성이 숨어 있는 것은 물론이다. 시는 자유이다. 시인은 쓰는 것이 존재이유이다. 글이 삶이다. 그래서 시대상황을 감안해 절필을 고민해 보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수많은 원고청탁을 받고, 글을 쓰며, 강연을 하고, 책을 읽고, 시국선언에 참여한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비판과 폄하는 참을 수 없다. 그에게는 스승도 없고 제자도 없다. 오직 고은만이 존재할 뿐이다. 시절이 하수상하니 취할 수밖에... 하지만 그에게 있어 문학은 문학으로 끝난다. 나는 문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한 인간의 삶과 사상과 고뇌와 번민을 느끼게 된다. 그가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기를 빌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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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山이 2013.04.08 20:26 讀
요즘 고은시인님의 글들에 매혹되어져 읽고 있다., 시도 글도 일기도... 광풍같은 일필휘지의 느낌이 참 좋다.. 고르고 고른 숨이 아닌 거친 숨 그 자체의 글들..
바람의 사상은 1973년부터 1977년까지 5년동안의 일기이다 박정희 정권의 일기를 그의 딸 정권에 읽다니.. 이무슨 아이러니.... 정치에 눈감고, 귀막고 살고 싶은데, 이제 우리 미래는 없는것인가? 이대로 회색분자들만이 대거 진출한 사회속에서 적응해가면서 살아야 하는가? 더는...정말 더는 이대로 희망이 없다............
그저 책에 묻혀 한 시름...그냥..그냥 지나가기를 이는 바람에 같이 나부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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