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에 이 책을 접할 때 '군국주의와 미의식' 이라는 부제에 끌렸다. '전체주의 정체속의 일상사(日常事)'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한양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의 주도로 '대중독재'개념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만, 그간 발표된 '대중독재론'관련 저작에서는 '미의식'이라는 개념을 중요한 도구로 차용해 온 것이 없었기에 더욱 관심이 갔다. 기대만큼 이 책은 매력적이었다. '일본인의 정신구조'라는 화두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미의식과 상징, 그리고 이것들과 중첩되면서 떠오르는 특공대원들... 하지만 책이 종장으로 치달아 갈 수록, 이 책과 저자에게 알 수 없는 불편함이 쌓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 불편함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은 불쾌함 마저 자아냈다. 과연 무엇일까? 이 의문은 '일본인의 역사의식'에 대한 다른 책들을 읽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그것은 오누키가 소위 '태평양전쟁사관' 의 연장선상에서 이 책을 기술했다는 것이었다. '태평양전쟁사관' 은 전후 점령군사령부(GHQ)가 일본의 국민들에게 주입시킨 역사관을 말한다. '태평양전쟁사관'은 군국주의 일본이 벌인 전쟁을 "1941년 이후 미국과의 태평양전쟁"에만 국한시킨다. 그 이전의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그리고 한반도 강점은 '군국주의의 기억'속에서 말소되어 버리는 것이다. 또한, 태평양전쟁사관은 일본의 전쟁책임 '쇼와 히로히토 천황을 제외한 전쟁수뇌부, 특히 육군의 수뇌부'로 국한시켜 버렸다. 때문에 일본의 전쟁책임청산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군국주의자들과 군국주의 일본의 정신구조는 연속성을 가진채 전후공간으로 이식되었다. 이를 통해 미국은 소련의 극동해군을 저지하는 전략적 거점으로서 일본을 이용하면서 식민지에서 막 벗어난 아시아의 국가들을 '일본과 같은 진영-소위 자유진영-'을 묶어낼 수 있었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것을 얻었다. 쇼와 히로히토 천황의 전쟁책임면책, 일본정부차원의 전쟁책임면책, '군국주의일본의 국민'이었던 일본인의 전쟁책임면책, 안보무임승차를 통한 경제발전. 오누키는 이러한 맥락의 '태평양전쟁사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책에서 오누키는 '특공대작전'을 통해 '군국주의일본'과 '일본의 전쟁'을 모두 표상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특공대 작전이 1942년부터 시작되었고 특공대작전의 대상은 미국이었다는 것이다. 즉, 오누키가 생각하는 '군국주의 일본-일본의 전쟁'은 오로지 '미국'과 관련된 것에만 국한될 뿐, '아시아'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 여기서 그의 태평양전쟁사관이 적나라 하게 드러나 버린다. 사카이 나오키의 문장을 끌어오자면, "아시아인의 자리는 거기에 없었던 것이다". 왜 역자가'조선인 특공대'(본문에서 오누키가 조선인 특공대에 대해 언급한 것은 단 한번에 지나지 않으며, 그나마 성의있게 조사했는지도 의심이 간다. -역자가 조사한 인원보다 작으므로-) 에 대한 기록들을 따로 조사해야 했는지 이해가 간다. 역자는 본문에 없는 '피해자로서 조선인의 자리'를 한켠에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오누키, 그대는 무엇을 원하는가? 두번째로 이 책의 첫장을 열면서 던질 수 밖에 없는 질문이다. 당신은 "메이지 말기부터 1941년 태평양전쟁 이전" 의 일본이 아시아에 대해 무엇을 했는지 알고 있는가? |
| 오랜만에 책다운 책을 읽었다. 서점에 나가보면 날아갈 것처럼 가볍기만 한 책들이 대부분인데 묵직한 고전적인 책을 보고 반가워 읽었다. 조금 어려웠지만 아름다웠다. 부제가 ‘미의식과 군국주의’이고 표지에 야스쿠니 신사가 검은 그늘을 지닌 채 그 완강함을 지붕 선에서 보여주고 있어 일본군국주의의 음울함과 고집이 느껴졌다. 강제로 동원된 조선인 출신의 특공대원들에 대한 연민, 지금도 계속 문제가 되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의 참배 문제와 더불어 우리 민족의 아픔이 이미 그 당시부터 잉태되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저민다. 한 권 쯤은 소장하며 읽을 가치가 있다고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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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을 전공한 나로서는 이 책은 충격과 같았다. " "미(美)의식" 이 대중들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한계를 깨닫게 되었고, 그것이 "군국주의"라는 '악'(惡)에 남용되어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의 이슬로 사라져갔음을 알았다.
특히 이 책은 일본인들에게 친숙한 "사쿠라"라는 이미지가 어떻게 일본의 정부관료들에게 의해 선전되어졌고, 상징화되어 그것이 "일본의 젊은이(조선인 포함)"들이 따라가도록 강요되어진 '죽음'이라는 정점을 향하여 치닫게 되는 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확실히 그 값어치 이상을 하는, 읽고 나서 결코 후회하지 않을 책 중의 하나이다. |
| 이 책의 부재는 이 책의 상당 부분을 설명해 주고 있는데 이름하야 '미의식과 군국주의'. 여기서 '미의식'이란 정확히는 '사쿠라'를 바라보는 일본인의 미의식이며, 군국주의는 당연히 2차 대전을 일으키고 승리로 이끌고자 했던 일련의 정치적, 사회적 거시기를 말하는 거지. 책의 서두에는 조선인 가미가제의 이야기가 써 있고 하지만 이건 어떻게든 이슈가 되어 보거나 판매부수를 조금이나마 올려보자는 출판사의 수작이고, 조선인 가미가제의 이야기는 전혀 이 책의 주제와는 상관이 없다. (이렇게라도 책을 팔아야하는 그들의 심정도 이해 못하는 바 절대 아니다. 잘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라도 많이 팔아라!) 이 책의 전반부는 '사쿠라'가 일본인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는가, 정확히는 사쿠라의 의미가 어떻게 형성되고 변형되어 왔느냐에 대한 것이고, 후반부는 이 사쿠라의 의미가 군국주의에 의해 어떻게 이용되었느냐에 대한 것이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사쿠라의 의미는 - 그 인기 없었던 카툰에서 이미 언급했더너 것처럼 -_- - 일본인에게 쌀과 함께 풍요와 생산을 의미했었으며, 때로는 흩날리는 꽃잎 덕에 시를 읊조리는 이들에게 때론 -정반대로- 죽음의 은유로 사용되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개항 즈음에는 사쿠라가 일본의 상징처럼 사용되기도 하였고. 다만 사쿠라에 '천황', 또는 '천황을 위한 죽음'이라는 의미는 없었다고 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사쿠라의 형태와 의미의 연관에 대한 연구는 이 책의 주안점이 아니다. 즉, 그 의미형성 원인과 과정은 우연에 가까운 방식으로 설명되고 있다.) 저자는 이처럼 다면적으로 사회에서 형성되어 있던 사쿠라의 의미가 어떻게 '가미가제'의 죽음을 미화하는 데에 사용되게 되었느냐에 주목한다. 즉, '천황폐하를 위해 사쿠라 꽃잎처럼 떨어져 죽자'라는 주장이 사회에서 어떻게 큰 반감없이 받아들여지고, 가미가제 특공대들은 사쿠라 꽃가지를 군복에 꽂은 채 마지막 사진을 찍곤 하게 되었느냐라는 것이지. 그는 먼저 이미 형성되어 있던 사쿠라의 다양한 이미지 중에 '죽음'과 '아름다움', 그리고 '일본의 상징' 등이 있었고, 이 모든 의미, 또는 이미지는 일본인의 머리 속에서 모호하고도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군국주의에 이르러 이러한 사쿠라의 이미지는 이와 유사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같지도 않은 '천황, '죽음' 등과 의도적으로 연관되어 '천황을 위한 죽음', 그리고 '이의 아름다움'으로 재변용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대충 '사쿠라는 아름다우니 일본도 아름다운 것이고', '일본의 짱이 천황이니 천황은 사쿠라고', '떨어지는 사쿠라가 아름다우니 사쿠라처럼 죽는 것도 아름다운 것이고', 그러니 또 대충대충 '천황폐하를 위해 사쿠라처럼 떨어져 죽는 가미가제도 훌륭한 것이고'.. 이런 식으로 된다는 것이지. 저자의 이러한 주장의 탁월함은 무엇보다 이러한 이미지의 변용 과정이 복합적인 이미지의 모호한 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간파한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합리적이며 항상 계산하는 듯하지만 사실 그들의 머릿 속에 존재하는 한 사물의 의미, 또는 이미지는 다양하며 쉽게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이 그것. 멀리 갈 것도 없이 요즘 연예인들의 이미지 조작이 어떠한 방식으로 기획사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느냐를 보거나, CF 한 편으로 얼마나 쉽게 기업이나 제품에 대한 시각이 형성되느냐를 상기한다면 이상할 것도 없는 이론이긴 하지만 말이다. 뭐 또하나 생각난 것이라면 촛불집회에 사용되는 그 촛불은 애초엔 우리에게 '평화스러운' 정도의 상징은 있었지만 적어도 '민주화'의 상징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촛불 집회 이후에는 이제 왠지 '민주적', 또는 '시민의 힘' 등을 떠올리게 만드는 기재가 되었다는 것도 그 예라고나 할까. 어쨌거나 결론이라면, 상징이니 판단이니 하는 것은 그리하야 그다지 합리적이나 필연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없는 것이고, 그리하야 또 인간은 그리 합리적이지도, 그렇다고 그렇게 비합리적이지도 않은 존재라는 것이라고나 할까. 항상 진실은 저 '모호한' 곳 어디에 있는 것임에 분명하다. 골아프게도. |
| 하나의 상징이 백 마디 말보다 더 큰 힘을 낼 때가 있다. 나치의 하켄크로이츠 [Hakenkreuz]는 나치즘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어쩌면 괴벨스보다 민중을 선동하는데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나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집단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한마디로 나타낼 수 있는 상징을 사용하며 그것을 대외적으로 드러낸다. 태극기나 무궁화와 같은 국가의 상징물도 이와 같은 범주에 속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일본의 사쿠라 꽃은 일본의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상징물 이었다. 저자는 사쿠라 나무가 일본의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 부터 파헤치고 그것이 언제, 어떻게 극단적인 군국주의의 상징물로 변화되었는지 추적한다. 여기서 상징의 의미가 '예전부터 그래왔던 것, 당연히 그런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자연화'라는 개념이 사용된다. 일본의 사쿠라 나무는 원래 천황을 위한 아름다운 죽음 등 군국주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의미를 가졌었지만 근대화와 더불어 시작된 천황제에 대한 개조, 근대적 군대의 등장, 군부의 집권 등으로 인해 언제부턴가 사쿠라 나무는 천황과 국가를 위해 '깨끗하게' 산화하는 극단적 군국주의의 상징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쿠라에 대한 이미지 조작을 받아들이는 일반 민중들의 사고는 어떠했을까. 저자는 사쿠라 나무처럼 산화한 대표적인 사례인 특공대원(카미가제)들을 살펴본다. 그들은 과연 군국주의적인 사고와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인 시대의 희생양이었을 뿐인가. 하지만 우리의 예상과도 달리 그들은 당대 최고의 지성인들이었으며 그 누구보다 극단적인 군국주의와 국가주의를 반대할 만한 사람들이었다. 편지와 독서목록을 통해 살펴본 그들은 죽음을 찬양하기 보다는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들이 사쿠라 나무가 상징하는 '깨끗한 죽음'을 선택하게 된 것일까. 그들의 사고를 깊숙이 들여다보면 공통적으로 이상주의라는 함정에 빠져있음을 알게 된다. 그들은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군부에 대한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애국심의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고, 루소와 칸트의 '일반의지(general will)'에 대한 동경으로 군부의 총의와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했다. 결국 그들은 국가에 의해 참혹하게 희생되고 말았다. 이상주의와 극단적 내셔널리즘은 종이 한 장 차이였던 것이다. 일본의 사쿠라를 통해 상징이 가지는 힘과 상징이 만들어지는 '자연화과정', '오인'등을 심도 있게 살펴보고 있는 이 책은 상징과 상징을 이용하는 집단을 잘못 이해함으로써 그들의 희생자가 되어버린 특공대원들의 심리를 이해하는데도 많은 도움을 준다. 결국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교묘히 '자연화'된 상징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면 언제나, 누구든지 일본의 특공대원이 될 수 있음을 말하려는 것이 아닐까. |
| 읽은날짜 2005/1/12~15 기록날짜 2005/1/22 쌍둥이 빌딩이 무너졌을때의 세계적 파장은 굉장했었다. 비행기 한대가 거대한 빌딩에 부딪히는 순간 세계는 경악했고 사고 당사자인 미국은 반테러를 화두로 삼고 아랍국가를 위협하고 있다. 그 공중 비행기 즉 자살 특공대를 계획한 것은 오사마 빈 라덴이었다. 그가 이런 엄청난 계획을 꾸밀수 있었던 까닭은 ''가미가제''라는 일본의 특공대를 모방하여 만들었다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미가제'' 자살특공대로 더 잘 알려진 이것은 미친 광신집단의 마지막 발악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쓰면서까지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해 있다. 나 자신도 그걸 보면서 그렇게 느꼈지만 그 속에 감추어진 뒷 이야기,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새로운 시각으로 그것들을 바라볼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로 가미가제를 많이 봤었는데 어떻게 보면 정말 멋있다. 비행기가 하늘 높이 올라가다 함선을 향해 전속력으로 급강하하면서 부딪히는 광경을 보면서 멋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개인과 가족, 국가(일본)로 보게 된다면 비극임은 분명하다. ''사쿠라가 지다 젊은도 지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특히 9장 특공대원들의 수기를 보면서 그 대원들이 그냥 평범한 사람이 아니고 엘리트 집단, 수재들이었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놀랐다. 마르크스, 엥겔스,헤겔 그냥 겉표면만 아는 나에게 이런 인물들에 대해 도취되고 느끼고 그 시대에 그 인물들의 사상과 이론 주장들의 옳고 그른지 스스로 판단하고 적용해 보았다는 점에서 보통인물이 아니었다는 것에 무척이나 의아했다. 특공대원 2번째 수기인 하야시라는 대원에 이런표현이 나온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과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다 읽은후 하야시는 자신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심경을 토로했다. "죽고싶지 않다...... 살고싶다. 죽고싶지않다...... 외롭다...... 왜 이렇게 외로운걸까? 고독감일까? 자아의 빈곤일까? 향수병일까?" 죽음을 앞에두고 책을 읽으면서 어쩔수 없이 자신의 운명이 끝날것이라고 느끼는 그의 표현을 보면서 그들은 최소한 광신집단이 아닌 한 개인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죽음을 두려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있을까? 죽음을 알고서도 한 목숨 바치고자 했던 그들의 모습에서 그래도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던 모습에 오히려 나는 그들이 부럽기도 하였다. 장기간에 걸친 일기는 젊은이 들이 고등학교,대학교 시절을 거쳐 ''죽음을 선택하기''까지의 이르는 갈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고 특공대원들 한사람, 한사람의 생사관을 본인의 이상주의나 사쿠라꽃으로 구상화된 미의식의 역할과의 관계를 통해서 이끌어낼 수 있는 배경이 되지 않았나 싶다. 한 개인의 목숨을 국가를 위해 헌납할 수 있겠는가 라는 질문에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말하겠다. 내 자신이 약한것도 있겠지만 목숨을 정치적수단으로 이용하고 미화하는 것으로 여겨질수 있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애국심이라는 것과 내셔널리즘을 이해할 수도 있었다. 애국심이라는 것은 정치적차원을 포함하지 않는, 조국에 대한 개인의 애정을 말한다. 이와는 반면에 내셔널리즘은 정치적인 것이고 국민,국가라는 정치적 경계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고 이와 동시에 내셔널리즘을 이용한 국가 , 즉 전체주의 국가였던 이탈리아, 독일, 일본에 대해서도 많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의 필자는 가미가제 특공대원들이 내셔널리즘 보다는 애국심에 더 가까웠다 평가하는데 나도 같은의견이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가치관이 뚜렷했다. 방대한 독서를 통해 가치관을 뚜렷히 세웠고 정치적인 수단으로 그들을 이용하려고 했던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모르는 상태에서의 행동과 인식하고 있는 상태에서의 행동의 차이는 천지차이이다. 그들은 후자였음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죽음을 절대 헛된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이고 기꺼히 버림으로써 자신을 정당화 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오히려 내셔널리즘으로 이용된 사람이라면 죽는 순간까지 그렇게 떳떳하지 못했고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었을지는 의문이다. 사쿠라의 만개한 모습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고 가족,친구들을 생각하며 죽음을 선택할 수 있었던 그들의 결점은 결코 헛되지 않은 것이었다. 야스쿠니 신사참배 때문에 국가적 분쟁까지 치닫고 있는 지금 무조건 그것이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은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야스쿠니 신사에 전범들만 있는줄 알았는데 막부시대 메이지시대등 일본의 근대화에 앞장섰던 개화 인물등도 안장되어 있는 줄은 알지 못했다. 그들이 왜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계속하려는지 이해가 조금은 된다. 그렇다고 내 자신이 야스쿠니를 참배하는 것을 찬성하는 것은 절대아니다. 일본에서 전범들을 제외시키고 다른방법을 강구하길 바랄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