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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세 명의 등장인물로 그것도 아빠, 엄마, 꼬맹이 아들로 이토록 감칠맛 나는 영롱한 감동을 이끌어내다니, 이 영화는 훌륭한 작품이 맞다. 지극히 평범한데, 그 속에 보석처럼 빛나는 사랑과 정과 희망이 들었다. 꼬맹이에게는 엄마와 아빠가 둘 다 필요하다. 당연하다. 둘 중에 누가 좋냐는 질문은 해도, 누구와 살고 싶냐고 물어서는 안되는 게 부모 자격의 제일원칙 아닌가. 물론 묻는 부모도, 싸우는 부모도, 둘 모두 꼬맹이에게 짐지우는 부모가 없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부모가 되어보면 안다. 자식은 자식이고 배우자는 배우자다. 자식은 내리사랑이고 배우자는 평등사랑이다. 자식은 참아져도, 배우자는 참아지지 않을 고비가 인생에 몇 번쯤 혹은 자주 오기도 한다.
크레이머 가족에게 생긴 일은 그들이 특별해서 맡겨진 일이 아니었다. 일에 빠져있는 아빠, 그런 아빠 대신 홀로 아들을 사랑하며 다소 황망한 시간들을 보내는 엄마, 그럴 수록 자존감을 잃어가는 엄마, 아들에게 아빠 역할마저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어느 순간 억압으로 변했을 터, 아빠 잘못도 엄마 잘못도 아들 잘못도 아니었다. 누구나 거쳐가야 하는, 극복해야 하는, 위안하고 위로 받아야 하는, 지나가는 소나기 구름 같은 위태로움이었다. 그녀는 참지 못해 집을 나갔고, 아들은 둔 채였다. 불안하게 휘청대는 자신이 아들을 책임질 수는 없다는 생각에. 그날부터 아빠의 전쟁은 시작된다. 처음에는 그만의 전쟁이었지만 점점 일곱살 난 꼬마의 전쟁으로 번져간다. 엄마 없는 자리란, 남편에게도 아이에게도 너무 크고 벅찬 것이다.
아빠는 서툴다. 늘 엄마가 하던 일이었으니 당연하지만, 꼬맹이에게는 딱 죽을 맛이다. 하지만 대견하고 사랑스러운 이 꼬마, 엄마 보고 싶다고 징징대는 유치한 속썩이는 짓일랑 하지 않는다. 다만 쌤통을 좀 내긴 한데, 일곱살이다. 꼬마의 참을성과 적응력이 대단하다고 봐야 하지 않겠나. 크레이머는 크레이머와의 동거법을 차차 발견하고, 둘 사이에는 전에 없던 애정의 공기와 따스한 풍경이 감돌기 시작한다. 엄마가 없어진 자리에 아빠와 아들의 사랑이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한다. 그는 꼬꼬마 아들 덕에 매일 좌충우돌이다. 다치면 들쳐매고 한달음에 응급실로 달린다. 죽을까봐 다칠까봐 늘 전전긍긍 기도한다. 아들은 여전히 가장 작고 가장 여리며 가장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존재다. 그에게는 전부다. 그러다 일에 소홀한다. 몇 가지 일을 놓쳤고, 또 몇 가지는 실수했다. 직장에서 해고당한다. 아내에게 양육권 소송을 당한다. 직장 잃은 그는 아들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크리스마스 전주라 불가능하다는 온갖 회사들을 찾아다니며 면접과 결과통보를 종용한다. 마침내, 연봉을 깎이고서 취직한다.
재판이 시작되고, 아내는 아랑곳 없다. 이제와서 아들을 데려가겠다니, 꼬마는 그의 전부다. 그동안 티격태격 쌓인 정은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부정이었다. 마침내, 질 수 없겠다는 결심이 선다. 그의 전부를 건 싸움이 시작된다. 호소하고, 매달리고, 화내고, 설득하고, 닦달한다. 하지만 양육권은 아내에게로 기운다. 변호사는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항소할 수 있겠지만 그때도 자신이 없단다. 꼬맹이를 보내기로 한 아빠는, 가장 마지막 할 수 있는 사랑과 애정을 다해, 아들을 보듬는다. 행복할 거라고 말한다. 보내준다. 마침내, 아들이 운다. 보러가겠다고 대답하지만 둘은 알고 있다. 오롯이 함께 보낸 지낸 18개월과 같지는 않을 거란 걸. 아들을 데리러 온 아내의 결단을 듣는 순간, 이 가족의 미래는 결정되었다. 어느 순간에도 함께 있어야 가족이다. 그리워하고, 아파하고, 쓸쓸해하고, 아쉬워하는 가족은 더이상 가족이 아닐 지도 모른다. 아내는 안다. 내 아이의 행복을 위해 무엇이 더 필요한 지, 어디가 더 나은 곳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 지까지.
자신의 욕심보다 꼬맹이의 행복을 먼저 생각한 아내는, 전 남편과 아들이 행복한 것이 자기 행복임을 깨닫고 아들을 데려가지 않기로 한다. 이 간단한 스토리가 우리를 울리는 이유는, 우리네 삶과, 식탁과, 동동거리는 부모와 자식 관계가 다르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배우들의 연기와 탄탄하면서도 진부하지 않은 서정적인 감정호소,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문제의 순리대로의 해결이 모두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가 쭈욱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제 2탄의 나날들을 보여주길 바란다. 지금도 잘 살고 있겠지. 서툰 아빠와 깜찍한 아들. 어느 부엌에서 계란 토스트와 우유, 독서와 그림그리기를 머리 맞대고 하고 있을 것만 같다. 마음이 따스해져서 한참 부엌을 바라보았다. 우린 어째서, 아빠의, 혹은 엄마의, 또 아이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가. 내가 아니라 상대방의 행복을, 소중한 사람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다는 걸 왜 가끔 잊고 사는 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