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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가까이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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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몇일 동안 홍사중의 《나의 논어》를 읽었습니다. 선배의 칼럼을 보고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남들이 재미있다고 해서 마음이 쉽게 동(動)하지는 않는데, 일전에 비록 문고판이기는 하지만 《맹자》와 《순자》를 읽고서 재미를 넘어 신선한 감동을 받은 적이 있어 주저없이 샀습니다. 5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지하철에서 오며 가며 읽기에는 녹록하지 않았습니다만 책값이 후회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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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몇일 동안 홍사중의 《나의 논어》를 읽었습니다. 선배의 칼럼을 보고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남들이 재미있다고 해서 마음이 쉽게 동(動)하지는 않는데, 일전에 비록 문고판이기는 하지만 《맹자》와 《순자》를 읽고서 재미를 넘어 신선한 감동을 받은 적이 있어 주저없이 샀습니다. 5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지하철에서 오며 가며 읽기에는 녹록하지 않았습니다만 책값이 후회되지 않을만큼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홍사중의 글을 신문이 아닌 책으로 본 것은 처음입니다. 신문으로 봐도 직접 내돈 주고 산 적이 없는 <조선일보>에 실린 글이니 거의 접한 적도 없고, 보더라도 처음부터 삐딱한 눈으로 봤던 게 사실입니다. 이 책 한 권으로 인해 그 사람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는 둥의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예전에 3당 야합을 할 때에도 '역사에 어느 일이나 그것이 일어날만한 까닭이 반드시 있다. 아무리 보수 합당이 불합리하고 엉뚱하게 보여도 거기에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고 얘기하면서 그 합당으로 득을 보는 건 결국 국민이라는 논조를 보고 끼워맞추기식 궤변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습니다. 그 이후에 그가 어떤 글을 썼는지 잘은 모르지만 여전히 김대중, 류근일과 함께 조선일보 트로이카로 불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를 떠나 이 책만 놓고 이야기하자면 홍사중의 고전과 현대를 넘나드는 홍사중의 글쓰기에서 '지적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압권은 단연 제1장 <공자를 말한다>입니다. 성인 공자가 아닌 '인간 공자'에 대해 이토록 실감있게 표현한 글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이런 표현은 책 좀 많이 본 분들이 쓰는 말이지만 딱히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서^^). 비천한 집안에서 태어나 두루 잡기를 익히며 생활을 해나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 성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세속적인 모습들 - 특히 자신을 알아주는 군주가 없어 안절부절 못하다가 자로로부터 쓴소리를 듣는 장면들을 보면서, 공자에 대해 논어에 대한 보이지 않는 벽이 한꺼번에 허물어짐을 느꼈습니다. 2장에서 7장까지는 '지식, 군자와 소인, 처세술, 리더십, 천명과 부귀, 공자 학원과 제자들'이라는 주제로 논어와 여러 고전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흔히 "공자 曰 …" 이렇게 시작되는 여느 고전 해석본과는 많이 다릅니다. 저자가 이해하는 공자와 논어에 대해 거침없이 이야기하면서 <논어>를 인용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공자와 논어, 나아가 중국 고전에 대한 전반적인 모습을 꿰뚫고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이런 글은 재미있습니다. 어쩌다 길바닥에서 엿들은 것을 마치 자기 이야기처럼 남에게 말하는(道聽途說) 얼치기의 허투룬 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n******8 2004.10.22. 신고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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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왈, 나는 신분이 낮았지만 열심히 일해 삶의 지혜를 얻었다
"자왈, 나는 신분이 낮았지만 열심히 일해 삶의 지혜를 얻었다" 내용보기
대학 1학년 때 중국고전독해를 1년동안이나 들었고, 학점도 괜찮게 받았던 기억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지금 제 기억 속에는 당시 배웠던 고전의 글귀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굳이 이유를 따져보면, 3가지 정도일 겁니다. 으뜸은 응당 저의 게으름 탓입니다. 버금은 가뜩이나 어려운 고전을 더할 나위 없이 고리타분하게 가르쳤던 교수님의 교수법도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왈, 나는 신분이 낮았지만 열심히 일해 삶의 지혜를 얻었다" 내용보기
대학 1학년 때 중국고전독해를 1년동안이나 들었고, 학점도 괜찮게 받았던 기억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지금 제 기억 속에는 당시 배웠던 고전의 글귀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굳이 이유를 따져보면, 3가지 정도일 겁니다. 으뜸은 응당 저의 게으름 탓입니다. 버금은 가뜩이나 어려운 고전을 더할 나위 없이 고리타분하게 가르쳤던 교수님의 교수법도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실적인 이유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고전의 글귀를 써먹을 일이 거의 없었다는 겁니다. 제 무식의 세 번째 원인에 대해 『나의 논어』의 저자 홍사중은 이렇게 변호(?)해 줍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자를 몰라도 얼마든지 유식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오히려 4서 5경에 통달한 유학자는 고리타분하고 촌스러운 도학자일 뿐 지식인이 아니라고까지 여기기도 했던 것이다. 가령 “정치는 도덕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용하면 지식인이 된다. 그러나 <논어>에 나오는 똑같은 말을 인용하면 지식인 소리를 듣지 못한다. 그만큼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나 서양에 치우쳐있었다. 우리는 서구화가 바로 근대화이며 전통적인 것은 모두 근대화를 저해하는 것으로 여기기도 했다.” 그에 앞서 저자는 자신의 무식(?)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60세가 될 때까지 『논어』를 제대로 통독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지식인이라고 자처해 왔다. 내 전공이 서양사회사상사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와 같은 반성과 성찰로부터 비롯되는 책이 바로 『나의 논어』입니다. 그럼 '홍사중식 논어'의 세계는 어떨까요. 총 7장으로 구성된 『나의 논어』에서 저자는 우선 '인간 공자'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공자를 둘러싸고 있는 신화의 껍질을 벗겨내는 일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공자를 너무 높은 곳에 올려놓고 추앙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니 저나 숱한 민초들의 무식은 순전히 그네들만의 잘못도 아니었던 셈입니다. 공자에 의해 비롯되었다는 유교에 대한 우리의 인상은 대단히 경직돼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철저한 신분주의를 표방한 유교로 인해 양반,상놈을 나누고 적출·서얼을 구분해 핍박하는 철저한 신분사회가 되었다는 등등... 그러나 공자가 생각했던 사대부니 군자니 현인이니 하는 것들은 그런 경직된 신분주의와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단지 공자의 사상을 오독했던 우리네 조상들의 잘못이었을 뿐입니다. 공자 자신이 서출입니다. 심하게 말하면 사생아에 가깝습니다. 공자 부모의 나이차이는 무려 40세가 넘습니다. 공자의 모는 부의 세 번째 부인이기도 합니다. 첫째부인에게서 딸만 얻고, 둘째부인에게서 불구의 아들을 얻은 공자의 부가 마지못해 들인 셋째부인이 공자의 모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태어난 공자는 어린시절을 어렵게 보내면서 주변의 눈치를 살피고 삶의 방편이 될만한 이런저런 기술을 연마하며 자랐던 것입니다. 이 대목을 공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五少也賤 故多能鄙事 ['나는 젊었을 때에는 신분이 낮았다. 그래서 하찮은 일들까지 배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孔子(기원전 552~479년. 명은 丘, 자는 仲尼). 노나라 수도(지금의 산동성) 曲阜시 昌平鄕에서 태어남. 1989년 인민일보가 공자의 생일을 '9월 28일'로 발표해 공식화됨.]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은 공자가 태어나 활동했던 시기가 바로 동서양의 성자와 현자들이 대거 출몰했던 시기였다는 점입니다. “공자가 기원전 552년에 태어났다면 그것은 석가가 태어난 지 13년 뒤의 일이다. 서양 최초의 철인 소크라테스가 태어난 것은 공자가 죽은 지 10년 뒤의 일이었다. 그리고 공자가 70세 때에 석가가 입멸했다. 그리스의 피타고라스가 활약한 것은 공자가 20대에 들어섰을 때였다. 그리고 그가 죽은 것은 공자가 56세 때였다. 이렇게 세계의 4대 성인 가운데 세 사람이 모두 기원전 5세기를 전후한 100년 사이에 등장했다는 것은 여간 신기한 일이 아니다.” (『나의 논어』19p) 이 부분에 대해 2년전 출간돼 화제가 됐던 『예수는 神話다』(티모시 프리크 · 피터 갠디 共著, 동아일보사 刊)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 역사상 위대한 천재가 출현할 때에는 항상 집단으로 대거 출현했다 -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승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직 예수만이 5, 6세기 늦게 홀로 출현했다는 것은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예수 이야기는 기원전 5, 6세기에 등장하는 신화들의 연장선”일 뿐이다. 즉, “예수 혹은 예수와 관련한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기록은 단지 그 보다 500년 전에 동·서양의 도처에 출현했던 공자나 노자, 석가, 피타고라스,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날줄과 씨줄로 해서 새롭게 엮은 신화에 불과한 것이다. ] 아무튼 이렇게 해서 세상에 나온 공자의 삶은 순탄하지 않습니다. 비천한 신분을 벗어나 말단 관직에 진출하는 게 52세 때의 일입니다. 이후로도 풀리지 않아 14년에 걸친 떠돌이 생활을 하며 고단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말년에야 귀국해서 학원을 운영하다 죽음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1장에 이어 2장에서 7장까지가 비로소 본격적인 논어 풀이입니다. 저널적 글쓰기에 단련된 저자는 논어의 여러 경구들을 매우 현실감 있게 풀이해주고 있다. '2장 지식을 말한다', '3장 군자와 소인을 말한다', '4장 처세술을 말한다', '5장 리더십을 말한다', '6장 천명과 부귀를 말한다', 그리고 '7장 공자 학원과 제자들'까지. 서구를 넘어 이미 전 세계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예수 이야기가 단지 신화였거나 조작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등 위기에 처한 반면 동양사상의 뿌리라 할 공자의 삶과 사상은 나날이 새롭게 조명되며 각광받고 있습니다. 묘한 대비가 아닐 수 없는데 우리네 범인들이 그에 과도하게 신경 쓸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공자든 예수든, 그것이 신화면 어떻고 역사적 사실이면 어떻습니까. 예수나 공자의 삶이나 생각이 범인들의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하고 숭고한 것이었음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가 아닙니까. 중요한 것은 성인들의 삶과 생각 속에서 우리네 삶에 필요한 교훈을 얻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y****y 2004.12.30.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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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공자는 재평가받을 수 있을까? [ 나의 논어 ]
"추천 [서평] 공자는 재평가받을 수 있을까? [ 나의 논어 ]" 내용보기
며칠 전 약속이 있어 광화문 부근에 갔다가 잠시 짬을 내어 교보문고에 들러 오랜만에 실컷 책구경을 했다. 그때 눈에 뜨인 책 중의 하나가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이었다. "꼭 마흔이 되어야 <논어>를 읽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백 몇십년 전만 하더라도 이땅에서는 수 만명의 청소년과 성인들이 <논어>와 사서삼경을 읽었을텐데' 하면서...ㅋ나 역시 한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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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약속이 있어 광화문 부근에 갔다가 잠시 짬을 내어 교보문고에 들러 오랜만에 실컷 책구경을 했다. 그때 눈에 뜨인 책 중의 하나가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이었다. "꼭 마흔이 되어야 <논어>를 읽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백 몇십년 전만 하더라도 이땅에서는 수 만명의 청소년과 성인들이 <논어>와 사서삼경을 읽었을텐데' 하면서...ㅋ
나 역시 한 권 한 권 책을 읽으면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동양 고전도 읽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지난 주에 우연하게도 공부모임 세미나 교재로 '논어'가 결정되어 읽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더 느끼는 것이지만 먹거리에서도 '편식'이 몸에 해로운 것처럼 '읽을거리'도 '편식'하게 되면 '마음'에, 또는 '정신'에 해로운 것 같다. 조선시대에 사대부들을 비롯한 지배계층들이 500백년 넘게 독차지했던 자신들의 권력과 이권을 일본에게 빼앗겼을 뿐 아니라 아무런 잘못도 죄도 없던 '백성'들까지 도탄에 빠트린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눈을 감고 귀도 막은 채 '편협된 주자학' 등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서구사회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성경'을 무슨 절대진리인 것처럼 받들면서 중세 암흑기에 수 많은 무고한 인명을 살상시켰고 그 이분법과 유아독존의 여파가 아직도 남아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와 이란에서 엄청난 살상행위를 거듭하고 있다. '과학만능주의'와 '성장만능주의'는 서구사회 뿐 아니라 전세계에 뿌리를 깊게 내리면서 국가간 양극화와 국가내 빈부격차를 확대시키고 생태를 파괴하고 있다. 제국주의가 광품처럼 전세계를 몰아칠 때 한반도에 들어온 기독교 역시 21세기 현재에도 상당수 사람들에게 도그마로 남아 우리사회에 큰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가원전 중국 땅에서 태동하여 2000년 넘게 동양사회의 사상과 문화에 자리잡았던 '공맹사상' 등 동양사상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서구의 강력한 힘에 떠밀려 지금은 흔적을 찾기도 어렵다. 물론 동양사상 뿐 아니라 전세계 구석구석에서 수 천년, 수 만년 동안 이어져오던 여러 민족과 국가의 전통사상과 문화가 서구 제국주의의 무자비한 탄압과 말살정책으로 사라져가고 있는 형편이다. 서구에서 태동하여 전세계에 퍼졌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가치의 핵심이 '다원성'과 '만민평등'임에도 당시에는 서구인들의 '그들만의 리그'였기 때문일 것이다.
서구사회에서는 20세기 후반부터 서구의 지배사상과 문화가 더 이상 전세계적인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다는 반성과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동양사상을 비롯한 지구상의 다양한 사상과 문화가 존중되고 그 의미와 내용이 재평가되기 시작한 지 오래다. 그럼에도 정작 동양사회, 특히 중국과 한국에서는 오히려 서구사상과 문화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느껴진다. 답답한 상황이다.

나 역시 사회적,정치적 격변기를 겪을 수 밖에 없는 세대라 <논어>를 읽으면 언론에 거론되는 여러 정치인, 지도자급 인물들을 생각하게 된다. 특히 박정희나 전두환, 김영삼처럼 상식적,정상적인 과정 속에서 대통령에 취임한 정치인은 평가할 가치조차 없었고 현재 대통령인 이명박은 <논어>의 관점에서는 군자 비슷하기는 커녕 최악의 지도자이자 "강물이 뒤엎을 배"에 해당하기에 제외한다. 그나마 김대중, 노무현 전직 대통령과 올해 우리나라에서 총선, 대선이 실시되는 가운데 거론되는 여러 야권 지도자(안철수,문재인,유시민,손학규,이정희등)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평가하게 된다. 공자의 많은 이야기와 생각 중에서 사람과 사물과 사건과 상황과 갈등과 태도를 바라볼 수 있게 되어 딱딱할 것이라는 당초 생각보다 재미있게 읽었다.

동양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 한국, 일본, 동남아 각국은 서양사회와 전혀 다른 가치관과 문화로 수 천년 넘게 이어져왔다. 그런 과정에서 동양사람들의 몸과 문화 속에 유전되어온 것은 여전히 서양의 그것과 무척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고전 뿐 아니라 동양고전 역시 꾸준히 탐구해보고 그 사상과 의미를 재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제 언젠가부터 동양 내부에서보다 서구사회에서 동양철학과 사상을 연구하고 재해석하는 학자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혹자는 '약 2,500년 전의 공자와 논어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라고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수 천년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공자가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난다면 어떤 말을 할 것인가. 인간의 본성을 무어라 설파할 것이며, 어떤 삶이 올바른 삶이라고 가르칠 것인가? 이런 문제의식은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봐야할 것이다.
과연 공자는 21세기에 제대로 재평가, 재해석되어 새롭게 부활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단순히 논어의 텍스트를 알기 쉽게 해석한 책은 아니다. 논어의 텍스트를 재해석하기보다는 오히려 인간 공자를 탐구한 책이라는 표현이 적합하다. 저자는 인간 공자를 통해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탐구하고, 그래서 삶의 지혜를 깨닫고 올바른 교훈을 터득하고자 한다.
그래서 저자는 책의 제목을 <나의 논어>로 붙였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선 공자를 둘러싸고 있는 신화의 껍질을 과감히 벗겨냈다. 그리고 오늘을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오버랩시켜 공자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성인 공자에서 인간 공자로의 귀환이다.

저자가 동서양의 문헌을 두루 섭렵하면서 만난 공자는 비천한 집안에서 태어나 출세를 위해 기술을 배우고 학문을 익힌 사람이었다. 그리고 도저히 실현될 가망이 없는 꿈에 매달린 채 좌절과 체념 속에서 일생을 마친 비운의 인간이었다. 슬픔을 참지 못해 목놓아 울기도 했고, 거침없이 노여움을 나타내기도 했고, 제자들에게 핀잔을 잘 주고 농담도 하고 좌절감에 사로잡혀 신세한탄을 늘어놓기도 했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을 만큼 격동과 혼돈에 시달리던 시절이었다. 그것은 온갖 악덕과 비정에 물들고 소인들과 권모술수가 판치는 세상이었다. 어제의 정의가 오늘의 죄악이 되고, 오늘의 권력자가 언제 역적몰이를 당할지도 모르고, 권력이 법과 정의의 저울대를 멋대로 바꾸고, 나아가 도덕의 눈금마저 숨져지는 시대였다. 저자는 이런 난세의 한가운데서 도덕 정치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현실의 권력자에게 인정받으려는 인간 공자의 몸부림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저자가 1장 '공자를 말한다'에서 시도하는 것은 신화 벗기기이다. 공자를 둘러싼 신화의 껍질을 벗겨내고 인간 드라마를 보여준다. 출생의 비밀에서부터 가족을 둘러싼 의혹 등 신화 찌꺼기들을 걷어내고 인간 공자의 참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비천한 신분을 벗어나 말단 관직의 진출과 이후 14년에 걸친 떠돌이 현실 정치가의 고단한 모습, 공자를 미워하는 사람들, 고향으로의 귀향과 죽음을 다루고 있다. 1장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연령별 특성인 '이립(而立)'-'불혹(不惑)- '지천명(知天命)'-''이순(耳順)'-'종심(從心)'과 공자의 말년에 피력한 소회 '여일이관지(予一以貫之 나는 그저 외길 하나를 일관해서 걸어왔을 뿐이다)'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제2장 '지식을 말한다'에서는 지(知)의 본질과 목적 그리고 학문하는 자세를 일깨워준다. 당시의 시대 상황에 비추어 예(禮)로서의 지를 말하며 이것은 단순히 앎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의 지식을 의미한다. 2장에는 '학이시습지 불역역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好)'와 '육언육폐(六言六蔽)', '온고지신(溫故知新)', '완불상지(玩物喪志)', 그리고 '현현역색(賢賢易色)'에 대해 그 유래와 뜻을 설명한다.

제3장 '군자와 소인을 말한다'에서는 인간의 본질과 인간의 도리, 그리고 삶의 자세를 가르치고 있다. 공자 사상의 핵심인 인(仁)에 대해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인은 사랑하는 것이며, 지는 이해하는 것이다"라는 말은 공자 사상의 핵심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장에서는 '화이부동(和而不同)',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 '지자요수 인자요산(智者樂水 仁者樂山)',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교언영색(巧言令色)' 대한 유래와 뜻을 설명한다.

제4장 '처세술을 말한다'에서는 말 그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처세훈을 들려준다. 공자가 살았던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비추어도 조금도 낯설지 않다. 공자가 가르치는 난세의 처세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살아있는 경구임에 틀림없다. 4장에서는 '인자불우 지자불혹 용자불구(人者不憂 知者不惑 勇者不懼)', '익자삼우 손지삼우(益者三友 損者三友)', '방유도 빈자천언지야 방무도 부차귀언지야(邦有道 危言危行 邦無道 危行言孫)', '군자유삼계(君子有三戒)', '불환무위 환소이립(不患無位 患所以立)', '군자 욕눌어언 이민어행(君子 欲訥於言 而敏於行)' 등에 대한 유래와 뜻을 설명하고 있다.

제5장 '리더십을 말한다'에서는 한 나라나 한 무리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도리와 자세를 얘기한다. 공자가 말하는 군주론은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정쟁을 일삼는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이 금과옥조로 삼을 만하다. 5장에는 '관즉득중 신즉민이언 민즉유공 공즉열(寬則得衆 信則民任焉 敏則有功 公則說)'과 '민면이무치 도지이덕 제지이례 유치차격(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등에 대한 유래와 뜻을 셜명되어 있다.

제6장 '천명과 부귀를 말한다'에서는 인간의 욕망을 경계하고 천명에 순응할 것을 요구한다. 현실에서 재물과 명성을 탐하는 것은 죄가 되지 않지만 도가 지나침을 경계하라고 가르친다. 정당한 수단으로 재물과 명성을 얻으면 하등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6장에는 '군자유삼외(君子有三畏)' 등에 대해 들어있다.

제7장 '공자 학원과 제자들'에서는 공자의 교육 이념과 교육 방법을 얘기한다. 당시 공자 학원에는 출세를 위해 제자들이 많이 모여들었지만 공자는 신분이나 우열의 차별을 두지 않았다. 공자의 제자들 중에서 논어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자로와 안연, 자공을 다루고 '사과십철(四科十哲 : 공자의 문하생 중 뛰어난 제자 10명. 덕행에는 안연(顔淵)·민자건(閔子騫)·염백우·중궁(仲弓), 언어에는 재아(宰我)·자공(子貢), 정사(政事)에는 염유·계로(季路), 문학에는 자유(子遊)·자하(子夏))'과 '칠십자(七十子 : 공자의 제자 가운데 후세에 이름이 알려진 뛰어난 70인)'를 설명한다.


과거 중국이나 한반도의 고전도 그렀지만, <논어>의 원문 한자를 읽어보면 <논어>는 '해석해야'하는 텍스트로 보인다. 따라서 혹자는 <논어>에 대한 주석서가 3천권이 넘는다고 말했다. 즉 내가 이 책 <나의 논어>를 한 번 읽고 어디가서 '내가 <논어>를 읽어 보았다.'라고 쉽사리 떠들 수 없다는 말일 것이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앞으로 다른 관점이나 해석을 하는 종류도 읽고 이 책도 몇 번을 더 읽어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으리니...ㅎ

현실의 권력 투쟁, 명분과 현실 사이의 갈등, 생을 이어가야 하는 세상살이의 고단함, 인간의 욕망이 빚어내는 시시콜콜한 일상사, 이런 것들이 저자가 만난 인간 공자의 모습이다. 저자는 그런 것들이 바로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이해될 때, 비로소 공자는 오늘 우리와 함께 살아 숨쉬고, 또 논어는 죽은 경구가 아니라 생명의 언어로 살아 꿈틀거린다.
저자는 공자가 숭배의 대상이건, 비판의 대상이건 상관하지 말고 한 인간으로 보자고 말하고 있다. 논어를 한 인간의 언행의 기록으로 보아야 공자의 참모습과 논어의 참언어를 제대로 맛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덮고 나서 나는 과연 그렇게 느꼈나? 이 책에서는 <사기>나 '성경' 또는 '불경'과 같은 신화같은 내용을 담겨있디 않았다. 저자의 원래 의도대로 공자의 인간 본성이 숨기없이 나타나 있다.

이번에 읽은 <논어>에서는 '온고지신'처럼 과거에 중고등학교에서 배우가나 알고 있던 고사성어에 대해 원래 유래와 뜻을 다시 새길 수 있었다. 그리고 춘추전국시대의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어느 제자와 대화 속에서, 어떤 취지로 고사성어가 사용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육언육폐' 등 새로운 고사성어도 많이 배운 것 같다.

공자의 사상과 철학을 기본으로 받아들였으면서도 청나라와 조선이 '군자의 나라'가 되지 못했던 것은 아무래도 도그마와 해석의 문제가 컸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직은 명확하게는 모르겠지만)명나라 때 왕양명에 공자의 '유학'이 '주자학'으로 재해석되고 조선에 도입되면서 또 재해석되는 가운데 명나라(이후 청나라)와 조선이 공자사상의 '본질'이 아닌 '자구'에 매달린 것들이 그러한 사례일 것이다. 이덕일의 <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는 그러한 과정을 잘 보여주었다.

재미있는 것은 사마천과 공자의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것이다. 공자의 삶의 역정과 공자가 역사에 남긴 유산이 비교할 수 없게 다르지만, 그럼에도 사마천의 <사기 본기>를 읽으면서 사마천과 공자의 닮은 점을 발견하게 된다. 사마천이 <사기>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이 자신의 인생 후반기에 한나라 무제에게 궁형을 당한 이후였다. 공교롭게도 공자 역시 춘추전국시대 제후국으로부터도 중용되지 못하여 14년 동안 방랑한 후인 인생 후반기에 본격적으로 <논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인생역정이 똑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역사에는 '만약'이 무의미하기는 하지만, 공자가 제나라나 노나라의 왕들에게 '중용'되었다면 <논어>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공자의 사상이 공자 사후 2천년 넘게 동양에그렇게 강하게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자문해본다.
 
[ 2012년 3월 16일 ]

c****n 2012.03.16.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eBook
나의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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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논어의 리뷰입니다.인문고전 읽기가 붐인 요즘 논어 또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공자와 논어에서 느낄 수 있는 고전의 향기와 시간과 시대를 넘어 지금 현재까지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를 이 책을 통해 한번 만나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논어라는 텍스트 그자체를 해설하기 보다 작가가 스스로 잡은 기준을 통해 재해석하는 과정을 통해독자들이 받아들이기 쉽게 저술한 책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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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논어의 리뷰입니다.


인문고전 읽기가 붐인 요즘 논어 또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공자와 논어에서 느낄 수 있는 고전의 향기와 시간과 시대를 넘어 


지금 현재까지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를 이 책을 통해 한번 만나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


논어라는 텍스트 그자체를 해설하기 보다 작가가 스스로 잡은 기준을 통해 재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독자들이 받아들이기 쉽게 저술한 책입니다.


과거의 인물인 공자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줄 수 있는지 한번 읽어보면


어떠할까요?


a*****u 2017.07.3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홍사중의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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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도올의 논어를 읽고-아직 완결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유교에 대한 반감때문에 알고 싶지도 않아했던 인간공자에 대해 충격을 받고 새로움을 느꼈습니다. 중세기독교가 예수를 배신한것처럼 국가권력이 된 어떤 사상도 인간을 억압하고 본질에서 벗어나는것은 마찬가지인거 같습니다. 이책을 선택한 이유는 논어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고 싶은 마음과 도올의 해석이 빠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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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도올의 논어를 읽고-아직 완결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유교에 대한 반감때문에 알고 싶지도 않아했던 인간공자에 대해 충격을 받고 새로움을 느꼈습니다. 중세기독교가 예수를 배신한것처럼 국가권력이 된 어떤 사상도 인간을 억압하고 본질에서 벗어나는것은 마찬가지인거 같습니다. 이책을 선택한 이유는 논어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고 싶은 마음과 도올의 해석이 빠진-저는 도올을 존경합니다만 -그냥 논어를 읽는것이 우선인거같아서였습니다. 솔직히 우리나라 기득권세력을 싫어합니다만 제도권교육을 충실히 받고 메이저로 활동하는 사람이면 그사람의 주장에는 동조할수 없어도 고전독해는 깊이가 있지 않을까 하는 저의 편견이 있었던것도 사실입니다. 우선 이책은 도올의 책 보다 더 홍사중 개인의 사상에따라 재편집된것입니다. 책순서만 봐도 그렇습니다. 논어의 순서를 따라가는것이 아니라 소주제를 정하고 거기에 논어에 나온말뿐만 아니라 다른책들에 나온 공자의 말,제자들의 말, 공자학단외의 사람들의 말들이 근거로 나와있습니다. 전 이글을 읽고 역시 홍사중은 홍사중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3페이지에 한번씩 우리나라 정치인들을 비난하는글이 나오지 않은적이 없습니다. 정치인비판이 나쁘다는것은 아니지만 논어를 읽으면서 '나'를 뒤돌아보게 하는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엽전은안되'라는 식으로 읽혔다면 제가 지나친걸까요. 독재시절 양비론으로 정권을 비난하는듯하면서 결국은 옹호했던 많은 언론인들의 모습이 자꾸 겹쳤습니다. 게다가 '패거리정치'등 보수언론들이 쓰는 수사어가 종종 등장했습니다. 초판일을 보니 2004년이더군요. 제가 보기엔 논어의 이름을 빌린 홍사중의 현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글인거 같습니다. 우리세대인들은 유교의폐해때문에 공자왈 맹자왈 이야기는 듣기도 싫어한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공자의 면모를 조금이라도 알게되면 감동하는 것이구요. 이책에서 괜찮은 부분은 1장 공자를 말한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책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위대한 인간의 향기때문일것입니다.

[인상깊은구절]
또 하나 공자에게 묻고 싶은것이 있다. 권력의 등 뒤에 숨어서,또는 권력에 앞장서서 과격한 불법 시위를 벌이고 경찰과 법도 두려워하지 않고 누구보다도 소리 높여 파괴적인 구호를 외친다면 그런 것을 무슨 용기라고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P.247 요즈음 유행어에 '코드가 맞는다'는 것이 있다... 중략.. 그러나 만약에 그 코드가 도저히 다른 사람들에게는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 코드 자체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라면? 또 자기네들끼리만 통하는 코드에 맞춰 나가지 못하는 사람을 완전히 따돌리는 정치를 한다면? 그러면 그것은 패거리의 똘마니 정치에 지나지 않게 되며, 권위주의의 위험한 함정에 나라를 빠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p.141~142
YES마니아 : 로얄 t**t 2005.04.1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