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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를 깨운 인물, 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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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잡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빈부의 격차, 소수에게만 독점되는 권력. 이 모든 것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시작부터 평등치 않았던 인류의 지난날과 만나게 된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는 믿음이 존재치 않던 시절, 누군가는 타인의 소유물이 될 수도 있던 시절, 어느 시대나 사람이 살아왔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너무 멀리 떠나와서일까? 나에게 그 시절을 상상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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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잡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빈부의 격차, 소수에게만 독점되는 권력. 이 모든 것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시작부터 평등치 않았던 인류의 지난날과 만나게 된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는 믿음이 존재치 않던 시절, 누군가는 타인의 소유물이 될 수도 있던 시절, 어느 시대나 사람이 살아왔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너무 멀리 떠나와서일까? 나에게 그 시절을 상상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하지만 지금의 경제적인 부유함도 불과 몇십 년 사이에 형성된 것임을 고려한다면, 우리의 역사가 얼마나 거침없이 흘러왔는지를 깨달을 수 있다. 객관적으로는 불과 한 세기도 채 되지 않은 기간이지만 말이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시아는 잠들어 있었다. 폭력적인 제국주의가 '선진 계몽'이라는 탈을 쓰고 곳곳에 밀려들던 그 순간, 아시아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영웅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던가. 그 시기는 영웅을 필요로 하는 시기였다. 독립을 위해 싸울 수 있는 강인함을 갖춘 인물, 모든 이들을 포용하되 때론 독불장군과도 같은 성미로 타협을 거부할 줄 알아야만 하는 인물, 지금의 우리가 가능했던 것은 그들, 즉 시대가 낳은 영웅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절, 인도 역시 잠들어 있었다. 세포이 항쟁으로 인해 무굴제국이 붕괴한 이후 인도 전역은 철저히 영국의 식민지로 편입되었다. 1869년 태어난 간디에게 이러한 식민 질서는 너무도 견고한 것이다 못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었다. 대대로 수상직을 맡아온 집안에서 태어난 그에게 '저항'이라는 단어는 오히려 어울리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상당히 오랫동안 영국인에 대한, 영국의 인도 지배에 대한 복합적 감정에 시달렸다. 영국은 그에게 인도를 안정시키고 발전시켜 줄 구원자이기도 했으며 동시에 인도를 억압하고 있는 지배자이기도 했다. 아니, 법률 공부를 위해 영국에 머물면서 최대한 런던 사람처럼 보이고자 노력했던 것 등을 본다면 그는 처음에는 오히려 후자를 알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옳은 지도 모른다. 남아프리카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조금씩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 전까지는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고, 느껴지지 않던 것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그는 깨달았다. 하지만 이는 단지 개인적인 깨달음에 그치지 않았다. 직접 인도인들을 조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는 과정을 통해 그는 희망을 읽었다. 폭력에 맞서는 비폭력의 잔잔하면서도 그치지 않는 힘을... 비폭력, 그가 평생을 통해 보여주었던 신념이었다. 어찌 보면 이는 무모해 보일지도 모른다. 상대는 폭력적이다 못해 무기로 무장을 했건만, 그런 그들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말없이 걸어나가다 쓰러지는 것이 전부이다. 희생은 또 다른 희생을 낳았다. 첫 번째 대열이 쓰러지면 두 번째 대열이 밀고 나갔고, 두 번째 대열 역시 쓰러지면 그 다음 대열이... 하지만 그들의 피는, 그들의 죽음은 미움을 담고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이를 두고 무력보다도 더욱 우월한 무기라 이야기하곤 했다. 스스로를 향한 강렬한 채찍질과도 같은 이러한 방식의 투쟁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가 지속했던 단식에서도 역시 엿볼 수 있다. 타인을 해하지 않는 그의 투쟁방식은 상대를 약하게 하진 못했지만 자신을 그리고 자신의 편을 강하게 만듦으로써 승리하는 전술과도 같았다. 그의 싸움은 궁극적으로 모든 이들을 포괄하는 것이었다. 적을 쳐부수는 것이 아니라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었기에 그에겐 타인의 희생이 필요하지 않았고, 상대는 절대적으로 미워해야만 하는 대상이 아니었기에 상대와의 타협 역시 적정한 선에서는 가능한 것이었다. 이러한 그의 정신은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믿음을 필요로 했다. 결단이 필요한 순간 그가 종종 보인 독선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는 카스트 제도 최하단에 위치하는 불가촉 천민들에 대해,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차별 받는 여성들에 대해 누구보다도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종교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자신은 자신의 종교에 의해 엄격하게 자신을 기속했지만, 자신과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을 포용할 줄 알았고, 더 나아가 그들을 향한 폭력을 없애고자 그는 노력했다. 어찌 보면 그의 삶은 실패라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힌두교 신자로서 그는 무슬림들을 지키기 위해 싸웠지만, 결국 무슬림 극우주의자의 손에 죽었고, 카슈미르를 중심으로 한 지방에서는 종교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갈린 인도와 파키스탄의 깊은 갈등을 여전히 엿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간디의 정신은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다 못해 자신을 위협하는 세력이라 재해석하는 현대인들에게 여전히 유효하다.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낳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폭력을 선호하는 우리에게 간디가 보여준 선례는 희망이요, 이상향인 것이다.
q*****2 2005.12.01.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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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성인, 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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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라는 인물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잠시 미니멀리즘의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한 적이 있었고,그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한 간디에 대해 알고 싶어서 그에 대한 책을 산 것이 이미 오래전 일이다.이 책을 읽기전 간디의 자서전을 읽었는데, 그 책을 다 읽고 나서 난 큰 충격에 빠졌다.그 전까지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자 했던 나에게, 그의 삶은 이상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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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라는 인물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잠시 미니멀리즘의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한 적이 있었고,

그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한 간디에 대해 알고 싶어서 그에 대한 책을 산 것이 이미 오래전 일이다.


이 책을 읽기전 간디의 자서전을 읽었는데, 그 책을 다 읽고 나서 난 큰 충격에 빠졌다.

그 전까지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고자 했던 나에게, 그의 삶은 이상적인 모습이기보다는

오히려 일종의 혐오가 생길 정도였다.

물론 개인마다 자신의 기준이 다르기에 그의 삶이 미니멀리즘인가 라는 점에서의

평가는 다를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너무 극단적이라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난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삶이 나에게는 맞지 않다고 판단했고,

자서전을 읽은 후 평전을 읽어 보겠다는 나의 계획은 하염없이 연기되었다.


이렇게 내 삶에서 잊혀진 줄만 알았던 간디라는 인물에 대한 갈증은

최근 내가 처한 상황 속에서 다시 생겨났다.

과연 그는 어떻게 인도를 변화시킨 것일까? 그리고 영국과의 갈등 속에서 그는 어떻게 승리자로 

기억되게 된 것일까?


간디가 성인에 가까운 모습으로 기억되면서 동시에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성인과 다른 점은

그의 삶이 비교적 최근의 것이기에 그의 치부까지 우리가 알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그의 자서전에서 간디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을 솔직하고 드러내기에

가끔은 읽는 사람이 당혹스러워지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이 평전 역시 간디의 모습을 사실에 가깝게 가감없이 잘 그리고 있다.

가끔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식민 사관에 가까운 구절들이

조금 눈에 걸리기는 하지만 그런 것들은 이 책의 작은 티라고 생각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그런 생각이 든다. 왜 우리나라에는 간디 같은 인물이 없었을까?

간디라는 인물의 놀라운 점은 단순히 인도라는 나라를 위한 삶을 산 것이 아니라

그 것을 포용하면서 동시에 전 인류에게 적용되는 비폭력이라는 원칙을

주장하고 적용했다는 점이다. 


그의 삶을 자세히 본다면 그가 했던 말이 다 옳은 것도 아니고, 그가 꿈꾸었던 것들이

지금 인도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가 말한 정신의 위대함에 대해서는

더 큰 경외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i*****l 2014.06.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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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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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어서 간디는 가까운 대학교 선배로부터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그 선배는 간디의 외모와 흡사한 선배로, 그 분 별명은 ‘하마트면’ 간디이다. 참으로 누가 지은 별명인지 아직도 그 생각을 하면서 웃을 수 있어서 좋다. 졸업 후 20년 이상이 지나서 뵌 그 분은 지금 봐도 간디와 많이 흡사한 외모를 지녔다.    간디평전을 통해 만난 간디는 그의 이름 앞에서 그를 표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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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있어서 간디는 가까운 대학교 선배로부터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그 선배는 간디의 외모와 흡사한 선배로, 그 분 별명은 ‘하마트면’ 간디이다. 참으로 누가 지은 별명인지 아직도 그 생각을 하면서 웃을 수 있어서 좋다. 졸업 후 20년 이상이 지나서 뵌 그 분은 지금 봐도 간디와 많이 흡사한 외모를 지녔다. 


  간디평전을 통해 만난 간디는 그의 이름 앞에서 그를 표현하고 있는 ‘마하트마’ (위대한 영혼)가 가장 적절하게 평가한 단어로 보인다. 제프리 애쉬가 그의 저서 맺음말에서 “그는 인간이면서 동시에 인간 이상의 존재였다.”라고 평가한 것과 외교관 체스터 보울스가 말한 것처럼, “지구상의 모든 사람은 간디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평가가 그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간디, 그를 접하면서 나는 우리의 김구 선생을 떠올리게 되었는데, 이는 상황은 다소 다르지만 간디의 꿈과 김구 선생의 꿈이 같으면서 둘 다 이루지 못했음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것 같다.


  그의 위대한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우선 그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도 인도에 뿌리 깊게 영향을 주는 카스트제도에서 불가촉천민이라는 ‘인간 이하의 인간’을 포용하는 힘을 과연 간디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었을까? 또한 사회적 지위를 가진 자의 화장실 청소 역시 평범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듯싶다.


  또한 그의 위대함은 비폭력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아힘사’의 실천에 있다. 간디는 이를 통해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사티아그라하’ - 수동적 저항, 시민불복종, 비폭력적 비협조 등으로 해석 할 수 있다 - 로 발전시킨다. 이 부분에 대한 간디의 생각은 확실하다. 즉 ‘사티아그라하’가 비폭력을 고수하는 데는 도덕적 이유도 있지만 자신의 마음을 굳건히 견지하기 위해서 이기도 하다. 폭력에 사로잡히게 되면, 올바른 통찰력을 잃고 증오에 빠져들게 되며 결국은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다.


  간디를 ‘위대한 영혼’으로까지 오르게 영향을 미친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우선 그의 부모를 꼽을 수 있다. 간디가 아버지에게서 정치가의 자질을 물려받았다면, 어머니에게서는 종교적 자질을 물려받았으며, 이에 따라 섹스와 술, 담배를 멀리하게 되었고, 또한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가르침과 맡은 일은 끝까지 해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년기의 간디가 영국에서 만난 채식주의자들 역시 간디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정신적 스승인 헨리 솔트, 그를 ‘바가바드 기타’로 인도한 아널드, ‘아힘사’의 개념에 대한 힌트를 제공한 셸리와 소로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외에 종교와 비폭력사상에 대한 영원한 친구 톨스토이와 간디의 경제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러스킨, 간디의 교육관에 힘을 보태 준 몬테소리 등을 들 수 있다.


  간디에게 영향 미친 세권의 책 - ‘기타’, 톨스토이의 ‘왕국’, 그리고 러스킨의 ‘최후의 한사람에게까지도’ - 중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책은 ‘최후의 한사람에게까지도’였다. 이는 간디의 경제관에 매우 심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러스킨의 시각에 따르면, ‘진정한 부’란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위해 일하도록 하는 자본가의 힘이 아니라 고귀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나라가 가장 풍요로운 나라이다. 이는 후일 간디가 집단농장의 개념을 도입하게 하였고 또한 인도 농촌에서 물레를 강조하게 된 배경이라 볼 수 있다.


  간디가 물레를 강조한 것은 무슨 이유에선가? 그는 이미 우리의 구한말 ‘물산장려운동’과 유사한 ‘스와데시’를 벌인 바 있었는데, 간디가 물레를 강조한 것은 인도 농촌의 경제활동 즉 러스킨이 그의 책 ‘최후의 한사람에게까지도’에서 언급된 완전고용과 직업훈련의 개념을 인도의 실정에 맞게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인도 - 특히 농촌 - 은 생산 활동에 참가하지 못한 인력이 많았는데, 간디는 이들의 생산 활동 참가에 대한 가장 적절한 대안으로 ‘스와데시’까지도 고려한 물레를 다시 등장시킨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물레에 대한 비경제적 목적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데, 그것은 교육에 대한 것이다. 즉 물레는 ‘사티아그라하’의 씨앗으로 실을 잣는 일은 자립과 자존의 수단이자 사람들을 묶어주는 끈으로서 활용한 것이다. 간디가 그의 직업을 ‘농부이자 직조공’이라 기록한 것을 통해 우리는 간디가 이에 대하여 어느 정도 관심을 두고 있는 지를 잘 알 수 있다.


  간디의 영국에 대한 태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간디는 영국이 전쟁에 얽히게 되면 늘 영국을 돕고자 지원병 모집에 앞장섰다. 우리의 독립투쟁의 관점에서 보면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인 것 같다. 이 부분에 대한 간디의 생각은 “인도의 해방은 대영제국을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그의 신념에서 출발한다. 당시 그의 믿음과는 다른 동지들도 있었지만, 그의 이러한 믿음이 깨지는 일본의 인도 침략 시기까지 그는 굳건하게 이를 지킨다. 한 마디로 간디에게 있어서 영국은 애증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영국이 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반대로 그가 영국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점이며, 간디는 영국의 관점으로 인도의 해방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간디는 ‘자아실현’에 그의 생애 목표를 두었다. 그는 신과 얼굴을 마주보는 것이자, ‘모크샤’ -생사를 벗어남, 구원 - 에 도달하고자 했다. 그런 그의 노력 중 성욕으로부터의 해방, 즉 금욕에 대한 그의 끊임없는 수행이 계속된다. 그의 이러한 모습은 성직자를 떠오르게 하는데, 그의 말년에 행한 새로운 실험은 시시비비의 대상이 되었던 것 같다. 그는 이상적인 ‘브라마차리’란 “언제나 신을 섬김”으로 써 “아무리 아름다운 여인들과 벌거벗고 함께 누워 있어도 성적 흥분을 조금도 느끼지 않는 남자”라는 것이다. 그의 실험이 적절한 것이었는지 또한 개인적으로 성공하였는지, 즉 뜻을 이루었는지 궁금하다.

 

k******o 2011.03.1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