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리 말하자면, ‘잔혹한 책읽기’란 썩 잘 붙여진 이름입니다. 잔혹서평이란 부제가 붙어있는 이 책에서 언급되는 책들과 그 역자들(이 책의 주된 비평대상은 번역입니다), 편집자들 쪽에서는 저자가 얼마나 잔혹하게 느껴질지! ‘주례사 비평’과 동업자 의식이 만들어낸 ‘침묵의 카르텔’을 뚫고 이런 책이 출현한 것은 청량감을 넘어 통쾌함마저 가져다줍니다. 시장의 침묵을 깨고, 결혼식장에서 외치는 자인 저자의 말입니다: 이 책은 일단 ‘서평집’이다.... [이 책의] 글들이 문제 삼는 것은 책의 내용이라기보다는 그것이 잘 옮겨졌는지 아닌지이다. 아니 솔직히 말해, 잘 옮겨진 것은 거의 언급하지 않고, 거의 전적으로 번역이 이상한 곳, 틀린 곳들만 지적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번역평’, 그것도 매우 ‘악의적인’ 평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이 글들의 목적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교정’이다. 자신이 틀렸는지 어쨌는지도 모르고 지나가는, 혹은 어디 물어볼 데도 없이 대충 옮겨놓고 불안해하는 번역가들과, 이들의 글을 읽고 자라,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게 될 예비 번역가들에게(...) 지침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교육’이다. 서양 고전과 신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되도록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아직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모종의 자극을 가하자는 것이다.(‘들어가는 말’에서) 일견 냉혹해 보이는 ‘들어가는 말’을 지나 목차를 보면, 이 책이 결코 만만치 않은 시간과 노력의 소산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 미술="">(한길아트, 2001), <라틴문학의 이해="">(동문선, 2000), <로마제국사>(한길사, 1999), <고대 그리스의="" 미술과="" 신화="">(시공사, 1998), <서양건축기술사>(경남대출판부, 1999), <매혹의 그리스="">(효형출판, 2001), <그리스신화>(궁리, 2002), <신의 가면="" iii="">(까치, 1999), <사생활의 역사="" 1="">(새물결, 2002), <창조자들 1="">(민음사, 2002), <중세의 가을="">(문학과지성사, 1988),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민음사, 1999). 모르긴 몰라도, 하나 같이 서양 고전과 관련하여 필독도서목록에 오를만한 중요한 책들입니다. 저자는 이 열두 권의 우리말 번역본들을 꼼꼼히 읽고 원문과 대조하여 부정확한 표현들과 잘못된 번역들을 바로 잡습니다.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으로부터 우리말로 옮겨진 이 책들은, 저자에 따르면, “모두 굉장히 좋은 책들”인데, 그 중요하고 좋은 책들이 오역으로 인해 잘못 읽히거나 아예 읽히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이 저자로 하여금 ‘악역’을 맡도록 했다고 합니다. 사실, 이런 일이 어찌 악의로 가능하겠습니까. 오역을 지적할 때의 짐짓 사무적이고 딱딱한 저자의 문체 아래 흐르는 따뜻한 그 무엇(?)이 아니라면! 이 책이 그저 잘못된 번역만을 지적하는 데 그쳤다면, 유용할진 몰라도 그리 재미있게 읽히지는 않았겠죠. 서양 고전과 신화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저자는 각각의 오역들이 어떤 잘못된 회로 속에서 반복적으로 양산되는지 보여줍니다. 오탈자를 비롯한 단순 착오를 바로잡는 꼼꼼함에서부터 고전시대 서양의 역사,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오는 실수를 짚어내는 솜씨까지... 읽는 재미가 꽤 쏠쏠하네요. 귀한 정보에다 읽는 재미까지 겸비했으니, 시쳇말로 이 책을 사는 것만으로도 돈버는 일입니다.(^^) “수많은 오류를 가진 책이 그렇게 긴 세월, 여러 판본으로 나왔어도 누구 하나 그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이 없었고, 역자 자신도 잘못들을 모르”는 우리의 현실... 강대진의 ‘잔혹한 책읽기’가 계속되길 바라는 이유입니다.천의>중세의>창조자들>사생활의>신의>그리스신화>매혹의>서양건축기술사>고대>로마제국사>라틴문학의>그리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