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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 어디로 가버렸는가-차이콥스키 [에프게니 오네긴]
"어디로, 어디로 가버렸는가-차이콥스키 [에프게니 오네긴]" 내용보기
로맨틱한 오페라를 주로 만든 로시니는 비제의 <카르멘>을 보고 다시는 오페라를 쓰지 않겠다고 했다. 잔잔하다 못해 지루한 아름다움만 무성한 자신의 오페라와 정반대인 격정적인 사랑과 그 사랑때문에 인간이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퇴폐성에 관객들은 열광한다. <카르멘>을 보고 나면 환상적이고 현란한 음의 세계에서 빠져 나오기 힘들다. 차이콥스키는
"어디로, 어디로 가버렸는가-차이콥스키 [에프게니 오네긴]" 내용보기

로맨틱한 오페라를 주로 만든 로시니는 비제의 <카르멘>을 보고 다시는 오페라를 쓰지 않겠다고 했다. 잔잔하다 못해 지루한 아름다움만 무성한 자신의 오페라와 정반대인 격정적인 사랑과 그 사랑때문에 인간이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퇴폐성에 관객들은 열광한다. <카르멘>을 보고 나면 환상적이고 현란한 음의 세계에서 빠져 나오기 힘들다. 차이콥스키는 비제의 <카르멘>을 보고 자신도 그와 같은 격렬하고 추악한 감정을 그려보고 싶어했다. 그거 아는가? 차이콥스키는 모방의 천재였다는 것을.... 인간의 내면에 은밀하지만 실재하는 일상의 감정을 되살리는 작품으로 <에프게니 오네긴>을 추천한다.

푸시킨의 동명소설을 오페라로 만든 차이콥스키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주변적인 이야기를 다루려고 했다. 문학작품이 오네긴이라는 남자에 촛점이 맞춰진데 반해 오페라는 여자 주인공인 티타냐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젊은 날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남녀들의 이야기, 오네긴과 렌스키는 우정을 나눈 친구사이, 티타냐와 올가는 자매사이인데 올가는 자유분방한 처녀로 렌스키의 눈에 들어오고 독서만 하는 티타냐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당췌 이런저런 사랑놀음에 관심이 없다. 오네긴의 마음에도 티타냐는 없다. 그런데 티타냐, 내숭떠는 아가씨였나보다. 오네긴에게 내심 관심이 있었다. 첫사랑의 감정을 그동안 읽었던 책 속의 문구를 따라 적어보기도 하고 그 종이를 구겨버리기도 하고... 사랑의 감정을 표현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안타깝다. 오네긴은 꿈쩍도 안하니 말이다.

 

음반을 먼저 듣고 공연을 보는 일은 학습효과와 더불어 관심있게 무대를 지켜볼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음반으로 접한 대가들의 역량과 비교가 많이 되기 때문에 그 날의 무대 캐스팅이 별로이면 실망하기 마련이다. 어제 공연이 그랬다. 러시안 오페라인데다 러시아관객들로 객석은 가득했고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러시아어들에 객석의 분위기는 충만했다. 오케스트라 연주도 좋았는데 그것은 차이콥스키 음악이 좋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아날로그적인 무대 연출도 맘에 들었다. 화려하고 격조있는 고전적인 무대, 거기에 폼생폼사가 살아있는 러시안 폴로네이즈의 군무도 볼만했다. 음악과 맞아떨어지는 의상, 몸짓, 깊이있게 배려한 무대 동선, 오페라 한 편에 이렇게 다양한 문화적 정서가 포함되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찰 만했다. 문제는 가수들의 무대 역량인데 다들 2% 부족했다. 노래도 고만고만하고 장중함도 별로고 표현도 별로였지만 여성합창은 들어 줄 만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내 귀에 그렇게 들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연을 보고 와서 다시 듣는 로얄 오페라 코벤트가든 오케스트라 연주, 게오르그 솔티지휘 <에프게니 오네긴>의 조화로운 음의 경지가 어제 공연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현대 음악이 아닌 이상 귀를 거슬리는 음악은 한번 의심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 공연을 보면 그 촉각이 제대로 곤두선다.

 

<에프게니 오네긴>
무도회장에서 렌스키의 사랑인 올가와 춤을 추다가 렌스키의 분노를 산 오네긴은 친구의 도전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 동안 쌓아 온 우정이 여자로 인해 무너지는 순간이다. 무대의 허무한 공간에 눈이 내리고 실크햇을 쓴 두 남자, 렌스키의 아리아가 시작된다. < kuda, kuda. / 어디로,, 어디로 가버렸는가>
어디로, 어디로 가버렸는가
청춘의 날들, 사랑의 기쁨이여, 다 어디로
밝아올 내일, 무슨 일이 닥치려나?
나의 눈 힘을 잃어 보이지 않고, 그대에게 가는 문 굳게 닫혔네.
무슨 상관이리? 아무도 운명은 피하지 못해
이내 몸 죽음의 먹이가 되려나, 그의 총탄이 날 피해 가려나
무엇이 오든 신의 뜻대로 되리니
지난날을 주시고 또 오늘을 선사하신 신이여
그대가 내리신 찬란한 아침과 암흑의 밤들이여
어둠 걷히고 내일이 밝아 생명과 광명으로 빛날 새벽녘
깊이 모를 죽음의 암흑이 수의 되어 내 몸 덮으리라
이내 몸 티끌이 되고, 소중했던 내 이름 세상 기억에서 사라지리니
나는 곧 잊힐지나 그대 내 사랑이여,
이 세상을 등져도 나 오직 그대 기억에 남으리.
아, 비탄의 눈물 흘리며 그대 다가와 읊조리리라.
그대 청춘의 진실과 사랑, 그리고 열정
나 한때 그 품에 안기었나니
적막했던 날들 밝히던 기쁨의 빛이었노라고!
아, 올가, 나의 사랑! 오, 천상의 행복
적막했던 날들 밝히던 기쁨의 빛이여!
아, 올가, 내 사랑! 오, 오라, 내 사랑
신실하고 피곤한 영혼이여
여기 그대의 신랑이 외쳐 부르니
오, 오라, 사랑스런 신부를 기다리는 신랑에게로
사랑스런 신부를 기다리는 이내 품으로
오, 오라, 오, 오라!
기다리리니, 내 곁으로 오라, 오, 오라, 나의 신부여!
어디로, 어디로 가버렸는가
청춘의 날들이여, 이제는 사라진 사랑의 소중한 기쁨이여

 

마주 선 우정이 서로의 가슴을 겨누지만 렌스키는 오네긴을 저지하려다 오네긴의 총에 쓰러지고 우정은 끝이 난다. 오네긴에게 남겨진 허탈과 방황은 시간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이국에서의 방랑도 그의 우유부단함을 물리치지 못하고 돌아와 현실앞에 선 오네긴은 이제는 귀부인이 된 우아한 티타냐를 보면서 회한에 휩싸인다.

사랑을 갈구하는 격정의 테마가 시작되는 엔딩은 극한의 바람처럼 강렬한 차가움을 발산하고 이기적인 욕망은 추락하고 만다.

 

과거는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고 티타냐는 울부짖으며 오케스트라는 마지막을 웅장하게 마무리한다.

 

 


 

  



b*******e 2011.02.24. 신고 공감 9 댓글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