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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처음 이 작가의 이름을 들었는지 까마득. 어쨌거나 다이어리에 '읽고 싶은 책 리스트' 중 하나로 꽤나 오랫동안 기록되어 있었다.
이사하고 도서관에 가서야 드디어 그녀의 책을 만나볼 수 있었다(요즘 서점에 가서는 비쥬얼 먹어주는 책만 자꾸 눈에 들어와서 말이지).
몇 달 동안 다이어리에 적혀있는 그녀의 이름 석자(이지민. 필명은 이지형. 처음엔 다른 두 사람인지 알고 꽤나 헷갈려했음)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그녀의 소설은 이런 분위기겠다, 내용은 어떻게 풀려나갈지, 문체나 구성은 어떨지 정작 구체적으로 설명하라면 하지 못할, 그녀에 대한 나만의 환상이랄까 바람이랄까 뭔지 모를 무언가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었나보다.
막상 그녀의 소설을 읽어가면서 '어, 이건 아닌데. 내가 생각한 건 이런 게 아닌데' 싶었으니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녀에 대해 아는거라곤『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로 제5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는 사실 하나뿐인데-더구나 이 책은 아직 읽어보지도 않았다-대체 뭘 믿고 그녀의 책은 이럴 것 같다 예측하고 추측하고 단정지었는지.
태어날 때부터 럭키한 삶을 살아온 럭희와 이름엔 있는데 현실에는 없었던 '덕'주. 럭희와 덕주의 파라만장하다면 파라만장한 인생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호흡이 빠르다는게 이런거구나 처음 느끼게 한 장편소설이며, 나보다 4-5살 연배가 높은 사람들 -'별나라 공주 쥬비'가 뭔지 아는 사람들 - 이 읽으면 훨씬 재밌게 느끼겠다 싶게 그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가 많이 등장한다. 이때 궁금한 거 하나. 난 아직 삼십대가 아닌데 정이현 소설에 공감하는 이유는 뭐지?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내가 이지민 작가에게 무얼 바라고 무얼 기대했는지 모르겠으나 "좌절금지"는 조금 실망스러운 게 사실.『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그 남자는 나에게 바래다 달라고 한다』책에서는 내가 원하던 바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니 다시 한번 기대감을 고취시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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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미 절판이 되어서 동네 헌책방에 가서 겨우 찾아낼 수 있었다. 얼마전 '청춘 극한기'라는 책의 리뷰에서 정말 질투나는 문체를 가진 작가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던 나와 비슷한 세대의 작가 이지민씨의 장편소설이다. 원래 이지민씨는 이지형이란 이름으로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란 소설을 들고 등단했다가 이지민으로 작가명을 개명했다. 이 처녀작은 '모던보이'란 제목으로 더 유명한데 박해일, 김혜수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사실 이지민 작가의 책들은 당장 영화로 각색해도 손색이 없을 정돌 긴장감넘치고 독특하다. 거기다 대사의 몇몇은 그대로 살려도 극장의 관객들이 웃어 제낄만큼 유머감각도 넘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여태까지 보아왔던 그녀의 작품들과 묘하게 닮은듯 다르기도 하다. 후기의 그녀의 작품들을 무척 좋아하는 나로써는 마치 아역으로 이름을 날린 여배우가 원숙한 성인연기자로 변태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 처럼 뭔가 어색하기만하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재미있다. 바로 이 작품의 두 주인공인 덕주와 락희가 바로 나자신의 분신들이기떄문이다. 그녀들은 70년대산 x세대들로 나와 추억을 공유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무수한 코드들은 보기만해도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런 시절이 전생이었던가 싶게 까마득한데 그런 코드들을 속속 긁어내어 그러모은 작가의 디테일함이 섬뜩하게 느껴질때조차 있다. 추억도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아는 대중문화의 영향으로 고작 6-7년전 코드들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판매되고 소비되는 판국이니 70년대산 추억은 먼지가 나다못해 식상하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코드들은 심지어 '트렌드'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만들어진 그런 것들이다. 럭키골드가 LG라는 이름으로 바뀌고 삼성의 궁서체로고가 쌈박한 영어로 바뀌는 시간동안이 우리 70년대산들이 기억하는 '추억'이란 것들이다.
아버지가 다니는 대기업의 럭키를 따서 지은 락희 공주님과 잘나가던 건설회장 아버지의 내연관계에서 태어나 그 아파트 이름을 따서 지은 덕주 공주님. 그 두 공주가 주인공이다. 여자도 반장이 될 수 있다는 소리를 듣고 자란 세대들이고 열아들 안 부러운 외동딸이 생겨난 세대들이다. 그러나 두 공주는 근본과 성장, 성년의 과정이 제각각 다르니,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남부러울게 없이 정말로 공주님처럼 커서 영원히 공주님처럼 살 줄 알았으나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가는 본능적 속물 락희. 그녀는 어린 시절, 그 특유의 사랑스러움으로 당시 잘 나가던 만화'별나라 공주 쥬비'의 주제가를 부르게 되는데 특정명칭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딱 요거라는걸 알 수 있는 힌트가 도처에 존재한다. 바로 요술봉을 휘두르며 변신할때는 홀라당 벗어서 저질 만화라는 누명을 쓰기도 했던 이 밍키 말이다. 한편 잘 나가는 여배우와의 스캔들 사이에 은폐된 채 자라나 온갖 모진 고통을 겪다가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세상을 둘러싼 황금만능주의에 무심해진 아토피 공주 덕주.
그녀의 롤모델은 원래 공주였는데 지구에 와서도 전지전능한 힘을 발휘하는 밍키와 달리 원래 공주였으나 다락방에 갇혀서 아버지가 구해주기만을 기다리는 소공녀 세라.
그러나 두 공주들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모든걸 다해줄 수 있는 든든한 울타리이다가 어느 순간 실패자로 추락하고 만다. 아빠가 IMF로 축 처져 있떤 온 국민의 가슴에 희망을 안겨준 US오픈 대회의 박세리의 양말 벗은 장딴지처럼 강인하고 확고한 의지로 뭉쳐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꺠달았을 떄 이만 저만 실망한게 아니었다. 락희의 눈에 아버지 이범식씨는 초라한 실패자로 보였다. <p. 76> 한편 아버지의 입장에서 자식들이란 역시 이해불가한 존재들이다. 아버지는 체 게바라와 케네디를 반반 섞어놓은 21세기 위인전 시리즈의 주인공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빨리 돈이나 벌어서 재미나게 살고 싶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평범한 보통 아들의 아버지가 되고자 그 세월을 살아낸 것이 아니었다. <p. 102> 하고 싶은 공부 마음껏 지원해줄 든든한 부모가 있고 따슨방 따슨밥 먹을 수 있는 이 좋은 환경에 어째서 저토록 나약한 꿈을 꾸며 시들어가려는건지 70년대산들의 부모에게 그들은 영원히 철들지 않는 자식인지도 모른다. 한술 더떠 돈에 대한 갈망만 남아있는 70년대산들은 제대로 된 속물이 되지도 못한다. "부자는 어른을 아이로 만들 수 있어. 마이클 잭슨은 정말 돈을 제대로 쓸 줄 아는 현명한 사람이야. 다시는 갈 수 없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 그리고 그 시절의 꿈을 이루는 것, 돈은 그걸 가능하게 하잖아. " <p. 139> 그들은 영원한 피터팬이을 갈망한다. 될수만 있다면 아이의 고치에서 벗어나지 않고 어른처럼 살고 싶어한다. 작가는 이 몰락한 중산층 공주님과 상승한 졸부 공주님, 두 70년대의 산물을 연민에 차 바라본다. 작품의 말미에 속물 락희에게도 한줄기 희망을 던져주는 것은 그 반증이다. 덕분에 락희는 아예 철저한 이기주의 속물이 되지도 못하고 결국 작품이 오락가락하게되었지만.
지브리 스튜디오 앞에 그려져 있다는 '좌절금지'를 자서전의 제목으로 써야하는 락희의 모습처럼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잘못되어 낀세대가 되어버린건지 정체성의 혼란을 갖고 어떻게든 이 시대를 버텨내야하는 것이다.
전후 세대가 겪었을 전세대의 상처를 유산으로 물려받은 혹독한 삶. 그리고 후대에게서조차 이해받지 못하는 쓸쓸함. 중산층이과 졸부라는 신흥집단의 출현과 그 간극을 더 벌어지게 만드는 속물주의가 그녀 작품의 대부분이었다. 어쩌면 이지민은 박완서님의 작품에 대한 70년대산들의 대답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