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관 가는 길에 코스모스가 한창이다. 하늘은 쳐다보지도 말라는 듯, 너무나 도도하게 치켜 올라가 있다. 길 오른 편으로는 사탕보다 달다는 가을 옥수수가 누렇게 익어가고, 누런 호박들이 점점 늙어가고 있었다. 길 바닥에 어떤 놈인지, 풀을 잔뜩 먹은 소똥이 질펀하다. 어도도 아닌데 길 한가운데를 피해 걸어가면서 새파란 하늘에 코스모스라, 도서관 가는 길이 운치있다고 중얼거리면서 어제 읽었던 시집을 떠올렸다.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지난 여름, 같은 길을 걸으면서 아이에게 불러주었던 시이다. 아니, 이야기였다. 지한아, 옆에 하얀 꽃 핀거 보여? 그게 감자꽃이라는 건데, 하얀 색종이 모서리를 고이 접어서 노랑 막대에 심어 놓은 거 같은거 말이야. 그치 그거. 그래 그게 감자꽃이야. 지한이가 좋아하는 감자튀김하는 감자. 저렇게 하얀 꽃 핀건 파 보면 하얀 감자야. 자주 꽃 핀 감자도 있는데 그건 자주 감자야. 누가 해준 이야기냐고? 글쎄 엄마도 알긴 아는데 누가 한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어. 이 시의 제목이 감자꽃이라는 것도, 감자꽃의 시인이 권태응이라는 것도 보물창고에서 나온 <감자꽃> 시집을 읽고 처음 알았다. 그저 구전되는 노래인줄 알았다. 수능 공부할 때, 줄 치며 외우긴 했지. 일본 사람과 조선인에 대한 차별에 대한 시라고. 일본놈은 일본놈, 조선인은 조선인이라며, 일본인인척 앞잡이 하는 놈들도 조선인이라는 이야기다, 하며 무심하게 읊던 선생님도 떠오른다. 그렇지만 권태응이라는 시인에 대해서는 수능에 나오지 않았던 모양인지 알려주지 않으셨다. ![]() <서시>의 시인은 윤동주이고, <진달래꽃>을 노래한 건 김소월인데, <감자꽃>의 시인은 어째서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일까. 그의 시집을 읽고 나니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일제 강점기에 충북에서 태어난 시인은 경성제일고보를 거쳐 일본 와세다 대학으로 유학을 떠난 수재였다. 그러나 항일 운동으로 일본 형무소에 갇히고, 퇴학을 당하고 병원에 3년이나 입원을 하였다. 그 후 귀향하여 창작활동과 야학에 전념하다가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감자꽃은 전국민이 알지만 그가 알려지지 않았던 연유나, 그가 300편이 넘는 시를 썼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다른 시들이 얼마나 포근한지도 말이다. 우리말이 이렇게나 귀여웠나, 정감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듣기도 어려운 옛 말들이 오볼조볼 살아있는 시였다. 꿀벌들은 통 속에서 오곤자근 동무 동무 정다웁게 뫄 논 양식 서로서로 노나 먹곤 오곤자근 <오곤자근 중에서> 소복이 눈이 덮인 동네 앞길을 발자국 옴폭옴폭 누가 갔나? 아무도 안 걸어간 하얀 눈길을 혼자서 다박다박 누가 갔나? <누구 발자국 중에서> 오곤자근, 옴폭옴폭, 다박다박과 같은 의성의태어와 뫄 논, 노나 먹곤과 같은 아이의 입말이 살아 있는 단어들은 우리말이 얼마나 풍요로운 감정들과 삶을 묘사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시를 읽고 있음에도 듣는 것 같은, 내가 경험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겪게 된다. 시어 자체의 아름다움도 크고, 시 전체적으로 출렁이는 운율이 있다. 그 운율 덕분에 눈 앞에 선하게 펼쳐지는 광경을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제대로 쓰인 우리말의 우리 시이다. 특히 잊혀진 시어들을 읽을 때면 가슴 한 구석이 찡해져옴을 느낀다. 어째서 이런 고운 단어들을 잊고 살았을까. 이렇게 예쁜 말들이 그동안 어디서 숨어있던 것일까. 우리말의 꽃밭에 점점 외래종들이 가득한데 한 구석 보이지 않는 곳에 피어난 우리꽃 같아 안쓰럽다. ![]() 권태응 시인이 창작활동에 열중했던 시기는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 요양하던 때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둥둥 엄마 오리 못물 위에 둥둥' 떠다니며 '구석진 언덕에 한 폭 민들레'를 바라본다. '젖 한 통 먹고는 콜콜 자는 송아지 낮잠'을 바라보며 '막대기 들고 벼 멍석에 덤벼드는 닭'을 쫓는 아이들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시선이 참 따뜻하다. 오로롱 매달린 도토리들 바람에 우루루 떨어진다. 머리가 깨지면 어쩌려고 모자를 벗고서 내려오나. <도토리들 중에서> 죽도록 일해도 고생 많은 땀 철철 농군들 더위 먹겠네. 바람들아 자꾸 좀 불어라 불어라. <더위 먹겠네 중에서> 그가 바라보는 대상은 사람과 사물, 자연을 가리지 않는다. 가을되어 우수수 떨어지는 도토리를 보며 다칠까 걱정하는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작은 대상 하나도 마음을 쓰며 바라보았으니 일제 강점기에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며 그가 얼마나 괴로웠을지 짐작이 간다. <북쪽 동무들>과 <언제나 살 수 있나>도 그렇게 탄생한 시일 듯 하다. 북쪽의 동무들의 안부를 물으며 언제나 38선이 사라져 온전한 나라가 되는지 묻는다. 시인은 시 속에서 묻고 또 묻는다. 그것이 대답없는 물음일지라도. ![]() 시에 빠져 읽다보니 잠자리 한 마리가 눈에 새겨진다. 투명한 저 날개를 어쩜 저리 그렸나 싶다. 빠알간 구기자 열매 옆에 빠알간 고추잠자리가 시의 정경을 한층 정겹게 그려내고 있다. 중간 중간 시와 함께 그려진 그림들을 다시 보니 참으로 예쁜 그림들이었다. ![]() 땅감나무라고 불리는 토마토다. 토마토가 땅감나무라고 불리는지도 몰랐는데 이렇게나 귀여웠었나 싶다. 크레파스와 사인펜, 물감으로 슥슥 그려낸 모습이 영락없는 아이의 얼굴이다. 왠지 시인의 얼굴을 닮았을 것 같다. 천진난만하게 슬며시 웃음을 지은 모습이 시인의 시와 너무 닮았다. 그림을 그린 이는 시인의 시를 얼마나 읽었기에 그림에서도 시인이 느껴질까. 크레파스로 주욱 그은 땅감나무 줄기도 정겹다. 아이가 그린 것 같은, 계산되지 않은 천진함이 느껴져서 참 좋다. 그림들이 시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주어 이 가을에 시를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아마 이제 토마토를 보면 저 미소짓는 얼굴이 떠오를 것 같다. 마치 오늘 만난 코스모스를 보며 권태응 시인을 떠올린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이자 이미 내 핸드폰 배경화면이 되어버린 <탱자>라는 시를 소개한다. 몇 번이고 읽어도 즐겁고, 책꽂이에 꽂았다가 다시 뽑아 읽는 시. 큰일이다. 자꾸만 권태응 시인을 알리고 싶다. ![]() 탱자 탱자 탱자 노랑 탱자. 애들 몰래 동무가 갖다 준 탱자. 주머니에 넜다가 꺼내 봤다가. 탱자 탱자 동글 탱자. 몇 번이고 만져도 즐거운 탱자. 책상 위에 놨다가 코에 댔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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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갠적으로 좋아하는 출판사 중의 하나가 '푸른 책들'의 '보물 창고 '입니다.이 출판사 책들은 무조건적으로 '신뢰'를 주게 되더군요.
그 시작은 딸아이와 함께 읽었던 푸른책들의 아동청소년도서들의 내용을 통해서 였습니다.
이 시대를 꽤 알찬 내용과 지적 탐구를 폭넓게 해줄뿐 아니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좋은 인성을 품게 해주는
그런 류들이 대부분이였단 생각을 들게 해주었기 때문이죠. 보물창고 책들은 읽는 족족히 제 감동을 불러 일으켜
무수히 오는 책들을 읽을라치면 한번 읽기도 바쁜 ,어쩔수 없이 다독을 하게 된 제게 그 감동의 여파로
두번은 읽게 만들어 주곤했었거든요. 저는 두번이지만 딸아인 세번 네번도 읽더군요.^^
이번엔 오랫만에 권태웅 님의 [감자꽃]이라는 동시집을 읽어보았습니다.
그중에서 몇편을 옮겨 봅니다.
*땅감나무
키가 너무 높으면
까마귀 떼 날아와 따 먹을까 봐
키 작은 땅감 나무 되었답니다.
키가 너무 높으면
아기들 올라가다 떨어질까 봐
키 작은 땅감 나무 되었답니다.
여기서 땅감은 토마토를 말하는 거래요.
이동시가 동요로도 나왔다고 하는데요. 가삿말 처럼 아가를 생각하는 고운 심성이
멜로디에도 그대로 담겼더라구요.ㅎ
*산 샘물
바위 틈새 속에서
쉬지 않고 송송송.
맑은 물이 고여선
넘쳐흘러 졸졸졸.
푸고 푸고 다 퍼도
끊임없이 송송송.
푸다 말고 놔두면
다시 고여 졸졸졸.
산에 흐르는 샘물에 대해 재미난 의성어로 잘 표현했죠.
감자꽃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감자의 색깔이 꽃색깔과 같다는걸 동시를 통해 배웠네요.ㅎ
동시는
어른들을 읽는 순간 '동심의 세계'로 소급시켜 놓아요.
덩달아 마음까지 순수해지고 예뻐지죠. 잠시 세파에 시커멓게 찌든 몸과 마음을
하얀빛깔로 정화 시켜 놓는듯 하죠.
동시를 읽는 우리 아이들은 무궁 무진한 푸른빛 꿈을 꾸게 합니다.
아이에게 노래하듯 동시를 읊조려 보라 했어요. 동시를 읽는 재미가 더 하다고 합니다.
참고로 권태웅 시인은 일제시대를 사신 분이며 일본와세다 대를 졸업하셨어요.
이분이 사셨던 일제 시대땐 대부분 농사를 지셨듯이 시 재제로 시골의 모습을 즐겨 쓰신분이시더군요.
안타깝게도 3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하지만
시인이 남긴 동시는 우리들의 입에 멈추지 않는 동요로 남아 오랫동안 기억될것입니다.
역시 , 보물창고의 동시도 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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