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 시종 작가님의 [수평선 너머]를 읽었다.
이 작가님은 본인 스스로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이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사람이다. 어떻게 2010년부터 매년 한 해도 빠짐없이 300페이지가 넘는 장편소설을 한 권씩 써낼 수 있는지 불가사의다. 이번 책 [수평선 너머]는 내가 살고 있는 조국 대한민국에 대하여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려주었다. 36년간의 일본 압제에서 벗어난 대한민국은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정체성을 잃은 상태에서 다시 미군정의 압력을 받아야 하는 과정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시기였다. 이 소설의 주 무대는 바로 그 시기를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던 사실을 마치 공중에서 사진 찍듯이 조망하며 바라봄으로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우리나라 해군 창설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최초의 군함을 구매하는 과정이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세일러복과 밥을 배불리 먹여준다는 벽보를 보고 찾아온 80명이 최초의 해군이었다. 기독교인 여신도들이 앞치마를 두르고 바자회에서 마련된 기금이 우리나라 최초의 군함 백두산함의 구매 자금이 되었다는 사실은 소설 속의 소설 같은 실화이다.
그뿐이 아니다. 백두산함이 우리나라 영해에 들어오는 날 북한의 남침일 바로 6월 25일이었고 북한 군함에 타고 있던 700여 명의 북한 특전사가 비밀리에 기습 침투하려는 것을 해상에서 막아낸 역사적인 날이었다. 만약 너무 작은 배에 고철에 가깝다고 군함 구매하는 것을 뒤로 미뤘다면, 육지에서는 38선을 허물고 해상에서는 괴선박에 실은 특전사 700여 명을 상륙시켜서 부산에서부터 밀고 올라오는 작전을 벌이려는 계획을 막지 못했다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진다. 2025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대부분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 |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멀리 어른거리는 수평선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80대의 소설가 백시종 선생의 마흔네 번째 장편소설 <수평선 너머>는 1945년에서 1950년까지 일제강점기 중후반부에서 해방 후 3년 남한 단독정부 수립 전 혼란 정국, 한국 전쟁의 발발까지의 흐름을 바탕으로 전라남도 여수 땅을 무대로 펼쳐진다. 여수는 제주 4.3도민항쟁 진압을 위해 이곳에 주둔해있던 육군 14연대의 진압 출동을 계기로 김지회를 비롯한 청년 장교들이 들고일어났던 여순항쟁으로 이어지는 피로 얼룩진 한국 현대사의 무대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과 한국 전쟁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려갔던 당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 서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승만의 남한 단독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기독교 신자는 3퍼센트 밖에 되지 않았고 당대 사람들은 앞으로 들어설 정부 역시 78퍼센트가 사회주의(공산주의)국가를 지지한다는 결과가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이미 피의 현대사 서막은 이렇게 올랐다. 80년이 지나도록 남북분단 체재는 그대로 이고, 한국 정권의 담당자가 교체될 때마다 전진과 후퇴(진정한 의미의 전진이라기보다는 왜곡되고 꼬인 실타래를 풀어내는 시도에서 그치고 또다시 왜곡을 반복하는)를 거듭하면서 제자리걸음 상태에 있는 평화문제,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아직도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로 일본의 자리에 들어선 미국, 현상은 달라 보이지만 모순은 여전히 그대로 인 듯, 지금의 정국을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미국을 등에 업고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취임식에서 성경에 손을 얹고 대한민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독재자와 기독교는 어떤 관계였을까,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과 기독교의 관련 또한 흥미롭게 들여다볼 수 있다. 남과 북, 러시아를 유창하게 하는 김성주는 후일 김일성이 되고, 조선노동당(남로당)의 박헌영 부수상은 종교를 신봉하지 않는 사회주의자였다. 한국에서 기독교는 종교가 아닌 신문화이지 않았을까, 정치경제를 아우르는 또 다른 집단으로서의 얼굴을 드러낸 것 말이다. 이 소설 속 행간에는 해방정국 3년뿐만 아니라 1929년의 광주학생항일운동 사건의 모습이 겹쳐오기도 첫 발화가 된 나주역 사건, 광주발 통학 열차에서 벌어진 일본인 학생의 조선인 여학생희롱사건, 나주역에 있던 희롱당한 여학생의 사촌 동생이 일본인 학생에게 사과를 요구하면서 집단 싸움으로 일본인 경찰은 조선인 학생들만 폭행, 이를 계기로 학생시위가 일어나고. 이런 일은 그저 그때 일어났던 사건이 아니라 여수에서도 또 그 어디에서도 일어났던 보편적 현상이었음을. 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 구천광은 여수경찰서 형사과장 아들로 여수에 사는 일본인 학생들의 우두머리 모리시마가 가 조선인 여학생을 희롱하자 그를 반죽음으로 만들어놓고 독립운동을 하는 아버지를 찾아 상하이로 도망치고, 지아비와 아들이 떠난 집에서 이들을 뒷바라지하는 어머니, 그리고 먼 친척뻘로 구천광의 어머니를 고모라 부르며 이 집에 얹혀사는 홍도섭, 지주 집안이었던 구씨네를 요시찰 대상으로 올려놓고 늘 감시하던 일본의 개 조선 순사 마갑성과 이 집안 머슴으로 행랑채에 살았던 장원장, 이들의 파란만장한 인생의 길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낸다. 이야기에 맨 먼저 등장하는 구천광은 상하이에서 박헌영을 만나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게 된다. 이 소설을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풀어가는 “나” 홍도섭, 때로는 작중에 개입하기도 한다. 나를 중심으로 본 여성들, 구천광의 배다른 동생 천숙과 나를 좋아하는 분심 등이 등장한다. 소설의 대단원에 이르러 주인공이자 화자인 홍도섭이 바다에서 죽음을 맞으면서 마주하는 환상, “수평선을 넘는” 그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 대목은 교과서에 실렸던 김동인의 소설 <붉은 산>의 주인공 정익호는 삵이라 불렸던 그가 만주 땅에서 중국인 지주의 땅을 부쳐 먹고 살던 마을에서 제멋대로 행동하다가 붙여진 별명이 삵이다. 암적 존재였다. 어느 날 소작농 대표 송 첨지가 중국인 지주 집에 갔다가 소출이 적다는 이유로 매 맞아 죽었다. 이 소식을 들은 삵은 중국인 지주 집에 쳐들어가고, 그 역시 허리가 꺾일 정도 맞아 죽어가고 있었다. 마지막 소원은 붉은 산과 흰옷이 보고 싶다고. 수평선 너머로 붉은 산과 흰옷이 보였을까, 구천광은 공산주의자가 돼 조선으로 돌아왔고 해방을 맞이했다. 혼란스러운 해방정국에서 여운형의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세워지고 미군의 국내 진주와 함께 조선인민공화국 인민위원회 이른바 인공이 활동하자, 친일파들은 도망치기 바쁘고, 숨 죽여 산다. 마치 침몰하는 배에서 맨 먼저 도망치는 쥐처럼, 하지만, 남한 단독선거에서 반대하는 시위가 제주에서 벌어지고, 이를 탄압하면서 4.3사건이 일어나고, 육지에서는 반민특위가 만들어졌지만, 해산하고 마는데. 이 소설 속 친일파의 상징 악질 마갑성은 지옥 문턱에서 살아 돌아오고, 구천광은 죽는다. 이렇게 친일파가 득세한 한국, 홍도섭은 아내 천숙과 아이들을 잃고 해군기술병으로 입대, 하와이에 배가 머물 때 망명을 꿈꾸지만 끝내 이루지 못한다. 이 소설 너머로 최인훈의 소설<광장>이 보이기도 한다. 남북분단의 이데올로기적 한계 극복을 주장하고 남북한의 정치 체제를 대등한 관점에서 비판한 작품이다. 소설의 주인공 이명준은 평범한 대학생, 남북에서의 생활을 모두 경험한 주인공은 시간이 지나 전쟁포로가 돼 남, 북, 중립국을 고르는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결국, 그는 중립국을 선택하고 도착하기 전에 배에서 바다로 몸을 던진다. 그의 수평선 너머에는 뭐가 있었을까, 작가의 말에서 백시종 선생은 당신은 어렸을 때부터 기독교인이란 사실을 자랑스레 여겼지만, 종교소설인 <오홈라르 음악회>를 쓰면서 성경의 재해석을. 그는 종교라기보다는 일종의 문화로 자리 잡은 기독교의 이모저모를 종교적 맹신이 아닌, 공정한 사회 비판의 눈으로 재분석하겠다는 의도로 <수평선 너머>를 썼다고 적고 있다. |
|
업무가 산적해 있으면서도 마갑성은 시시때때로 불쑥 나타나 모리시마가 타고 다니는 자전거를 옮겨 주기도 하고, 무거운 책가방을 들어주기도 하며 상전의 아들을 보호하는 업무까지 기꺼이 수행하는 것이었다. (-15-) "그려. 미치코 여사가 내 은인이여. 그 어른이 나에게 일본어를 가르치고, 정원 일을 배우게 허고, 그리고 농업기술학교를 댕기게 했다니께." (-68-) 그리고 신영근은 박헌영 지도자의 공식 수행비서 자격으로 2년 여 중국과 러시아를 두루두루 여행했으며, 그 여행 덕분에 러시아의 지도자 레닌이며, 스탈린 수상이며, 중국 최고 지도자 마오쩌둥을 직접 알현하는 등, 참으로 탄탄대로를 걷고 있었던 것이었다. (-99-) 여수공산청년회 결성을 위한 시범사업이라고 해야 옳았다. 구천광 자신의 소행인 것처럼 사전에 암시를 주었다가 확고한 알리바이를 내세움으로써, 도로아미타불로 만드는 연막작전이었다. 결과적으로 조국을 배신한 고약한 친일파 마갑서을 처당하려다가 본의 아니게 그 부인을 살해하는 원치 않는 결과를 빚게 되었지만, 어쨌거나 그 연막작전 덕분에 사건은 더 깊은 미궁 속으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139-) 여수 시내는 조용했다.히로히토 천황의 무조건 항복 선언 방송이 나갔는데도 아무도 밖으로 튀어나와 그 감동을 표현하는 사람이 없었다. (-208-) 예상했던 대로 일은 쉽게 풀렸다. 미군정이 끝나고 대한민국 제1공화국이 시작되었으므로 파견했던 미 고문단이 막 철수하기 직전이었다. 미묘묵의 비서가 직접 여수로 전화를 걸어 고문단과 협의를 끝내고 이미 관련 서류를 만들었는데, 장원장 측근들이 기다리고 있었으므로 그 자리에서 사인이 쓱쓱 갈겨졌다는 통보가 전해졌다. (-275-) 1944년생 백시종 작가는 1967년 신춘문예로 데뷔한 이후,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44편의 소설을 썼으며, 최근 작품은 44번째 소설 『수평선 너머』이다. 이 소설의 서두에는 1945년 7월과 8월 사이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 대한민국의 운명을 바꾸었다 말한다. 일제가 일찍 항복 선언을 하고, 미군의 원자 폭탄에 수많은 인명피해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한국사회는 지금과 달랐을 것이라 본다. 스탈린이 한반도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며, 공산주의가 대한민국 사회에 침투하기 힘들었을 거다. 한반도는 분단 되지 않는 온전한 국가로 존재햇을 거란 이야기다., 물론 한국 전쟁도 발발하지 않았을 거다. 역사는 가정에서 시작하고,그 가정을 검증해 나간다. 이 소설은 1948년 10월 19일 여수 반란사건을 역사적 사건이자 배경으로 다루고 있었다.박헌영이 주도하였던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남로당이 한반도 남쪽에 공산당 조직을 만들게 된다.그 과정에서, 4.3 사건과 여순만란사건이 발발했다. 소위 남한에서 일어난 내전이다. 독립운동을 햇던 구천광 집안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의 인생을 바치게 된다 그러나 또다른 인물 마갑성으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파리가 먹이를 잡아 먹기 위해 손을 비비는 것처럼, 마갑성은 간도 쓸개도 없는 그런 인물이다. 구천광과 마갑성은 대한민국 사회의 두 주축으로 나타나고 있다.혼란스러운 시기, 그들이 가진 힘과 돈은 그들을 살려주는 중요한 수단이다. 이 두가지 가치들으 대한민국의 분열과 갈등의 원인이며 사회적 문제로 표면화되고 있다. 1950년 한국 전쟁은 죽음과 삶의ㅣ 시소게임에서, 내전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간다. 그들은 그 원인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익과 가치 이 두가지 경계를 오가는 이들이 대한민국의 주류가 되었다. 단순히 친일과 독립 운동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이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보게 되면, 우리 사회는 더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1945년부터 1950년까지 그 당시의 지식인들은 어떤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엇는지 확인해 볼 수 있는 소설이다. 우리 역사의 고통스러움과 아픔을 담고 있다. |
|
[**네이버 카페 책과콩나무의 지원으로 개인적 의견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오늘날 까지도 우리는 1950년대 격동기의 연장선상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전히 분단국가이며 남과 북이 대치된 상황은 물론이거니와 온국민이 염원하는 통일에 대한 의식도 서로 달라 요원함을 느낄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언제적 이야기를 하느냐고 지청구를 날릴 수 있겠지만 삶의 사회적 환경은 바뀌었을지 몰라도 우리를 지배하는 정신적 성향은 격동기의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것이다. 통합되고 단합된 하나로의 국민, 국가의 위상을 보여주는 일이 지금껏 제대로 있었느냐 하면 그러하지 못했음을 비단 정치적 세력에만 책임을 지우기 보다 국민 개개인으로의 나, 우리 자신에게 책임을 묻고 그에 대한 대답을 추궁해야 한다고 판단해 본다. 수평선은 아득히 멀리 보이는 하늘과 맞닿은 부분으로 상징적인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수평선 너머을 바라 보는 일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의 삶의 무대를 그려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틀리지 않을것 같다. 다작으로 자신의 문학적 가치를 보여주고자 하는 저자의 신작을 만나 그 의미를 읽어본다. 이 책 "수평선 너머" 는 어쩌면 오늘 우리가 '이게 나라인가?' 라는 물음을 갖게 된 것이 비단 오늘의 일이 주 원인이 아니라 오래전 해방을 비롯해 한국전쟁을 거쳐 오던 격동 시대의 풀어내지 못한 시대의 물음에 대해 오늘 그 피해를 보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볼 수 있게 한다는 느낌이다. 어쩌면 격동기라는 시기를 살았던 인물들, 그들의 생각과 고민과 바램과 쟁취하고자 했던 것들을 위한 투쟁의 역사를 통해 오늘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었는지를 살펴 볼 수 있다. 그러한 격동기의 서사를 통해 우리가 배우고 확립하지 못한 시대적 통찰을 주인공이자 화자인 '홍도섭'을 통해 제시하고 있으며 우리의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 좀 더 관심과 애착을 갖도록 다양한 의문들을 일으킨다. 일제감점기에 대한 서사는 흔히 영화를 통해 만나게 되고 보니 지극히 한정적이고 영상화된 모습으로 고착화 되어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의 서울이나 대도시가 아닌 지방의 소도시인 여수를 출발점으로 소설은 점차 서사의 확장을 이뤄 나간다. 그 시대의 상황적 묘사들은 나(홍도섭)의 체험적 경험에 의한 이야기들로 이뤄지기도 하지만 전지적 시점의 서사를 만나볼 수도 있는 이야기의 흐름은 책을 읽는 독자들의 심정을 매우 성마르게 한다. 그만큼 역사의 흐름이 급박하게 흘러감과 동시에 그 속에 존재하는 나, 우리의 존재에 대한 의미를 읽어내기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기에 그러한 느낌을 갖게 된다. 역사의 흐름은 겪어 낸 이들만의 관점이 무척이나 중요하다. 물론 역사를 당대에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그리 멀지 않은 현실의 우리로서는 과거의 역사를 지금에 있어 평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스스로 의문을 가져야 한다. 어떠한 관점으로 역사의 흐름을 보고 판단하느냐에 대한 이해는 오늘을 사는 나,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소설 속의 주인공 홍도섭의 삶의 과정들을, 또 다른 그 시대 사람들의 사랑과 복수에 대한 이야기들은 여전히 역사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뇌리 속에 존재하는 터라 역사와는 별개로 소설적 의미로의 사유도 함께 돞아볼 이유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수평선 너머의 길이 그 때나 지금이나 나, 우리가 지향하고 나아가야 할 길이라면 저자가 보여 주고자 하는 서사를 통해 그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판단을 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