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르크스가 옳았던 이유』는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문화 비평가이자 문학 평론가 테리 이글턴이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가장 표준적인 비판 열 가지를 택하여 하나하나 반박하고 있는 책이다.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에 대한 테리 이글턴의 역비판을 차근차근 읽어가다 마르크스의 사상에 대한 밑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다. 이 책은 일반 독자들을 위해 쓴 마르크스 입문서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꼭꼭 씹어가면서 읽으면 ‘위대한 도덕 사상가’이자 자본주의 분석의 끝판왕인 마르크스의 사상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다. 이 책을 지팡이 삼아 앞으로 더 많은 마르크스 사상에 대해 읽어갈 계획이다. 마르크스주의를 오해하지 말자. 왜냐하면…… 1. 마르크스주의는 끝나지 않았다 2. 마르크스주의는 도그마가 아니다 3. 마르크스주의는 결정론이 아니다 4. 마르크스주의는 유토피아를 꿈꾸지 않았다 5. 마르크스주의는 경제 환원론이 아니다 6. 마르크스는 기계적 유물론자가 아니었다 7. 마르크스주의는 계급 강박증이 없다 8. 마르크스주의는 폭력 혁명을 옹호하지 않았다 9. 마르크스주의는 국가를 믿지 않는다 10. 마르크스주의는 급진적 운동에 기여했다 위 열 가지는 이 책의 목차로,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 열 가지에 대한 테리 이글턴의 답이다. 이 책의 <옮긴이의 말>(박경장 성프란시스대학 작문교수)에서는 테리 이글턴의 반박을 5페이지로 요약하고 있다. 이 5페이지의 요약을 또 요약해서 이 독후감에 써볼까 고민을 잠시 했는데, 블로그 글이 상당히 길어질 것 같아서 첫 번째 반박만 언급하기로 한다. 이 반박은 우리가 왜 마르크스의 사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또 왜 우리 시대에 마르크스의 사상을 읽어야 하는지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마르크스주의가 끝났다고 말한다. 비판자들은 마르크스주의의 핵심인 사회계급론은 21세기 탈산업화시대엔 더 이상 적용 가능하지 않다고 말한다. 테리 이글턴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가 모든 역사 체제 가운데 가장 역동적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이 체제에는 이상하게도 정태적이고 반복적인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p333, <옮긴이의 말> 중)라고 반박한다. “ (20~21페이지) 마르크스주의는 이제껏 시도된 그 어느 비판보다 가장 면밀하고 엄격하며 포괄적인 자본주의 비판이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위력을 떨치는 한 마르크스주의도 마찬가지로 자기 본분인 비판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 자본주의의 다양한 역사적 형태라는 개념 - 상업적‧농업적‧독점적‧금융적‧제국주의적 등 -은 마르크스주의 자체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러면 자본주의가 최근 몇십 년 사이에 형태를 바꾸었다고 해서, 자본주의 본질을 변화로 본 마르크스 이론을 왜 불신한다는 말인가? 게다가 마르크스 자신은 노동계급이 쇠퇴하고 화이트칼라 노동이 가파르게 증가할 것이라고 예고까지 했다. ”
국가와 사회에 순응하며 대체로 순종적이며 평범하기 그지없는 대표적으로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마르크스 사상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어 한다. 왜냐면 우리는 ‘고삐 풀린‘, ‘폭주기관차같이 내달리는’ 자본주의 사회가 안겨주는 고통과 불안과 번뇌에 매일매일 신음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개인들로 하여금 인생의 모든 문제를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도록 우리를 세뇌시켰다. 나는 그간 스스로가 ‘금융맹’, ‘재테크맹’이라서 다소 부끄러웠다. 나는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해서 ‘마르크스맹’(이라는 단어는 들어본 적 없지만)도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 출판사 제공 도서를 읽고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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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인간을 사랑해 불을 줬다는 이유로 매일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다시 재생되어 끝나지 않는 고통을 반복해서 받는 프로메테우스처럼 인간을 사랑해 모든 인간을 위한 세상을 꿈꾸었지만 결국 실패한 사상가로 낙인 찍히고만 사람이 마르크스이다. 프로메테우스의 꿈과 좌절 마르크스가 옳았던 이유는 그의 사상의 핵심 쟁점을 마르크스주의 문화(문학) 평론가인 테리 이글턴의 유머와 재치 있는 말 솜씨로 엮어낸 책이다. 마르크스주의 진짜 가치와 자본주의의 허상을 알아채는 시간이 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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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마르크스가 옳았던 이유》를 읽고서···.
《마르크스가 옳았던 이유》는 마르크스 사상의 현대적 의미를 탐구하는 책이다. 흔히 마르크스주의는 20세기 사회주의 국가들의 실패와 함께 시대에 뒤처진 이론으로 치부되지만, 저자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단순히 마르크스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핵심 사상이 오늘날에도 유효한지를 철저히 검토하며, 자본주의의 문제를 분석하는 데 여전히 중요한 도구임을 강조한다.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 사회계급론이 21세기 탈산업사회에서는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는 비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마르크스주의는 끝나지 않았다’라는 주제를 시작으로 저자는 마르크스에 대한 가장 익숙한 비판 10가지를 선정하여 조목조목 반박한다. 계급 구조가 변화했고 노동 계급이 약화되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빈부 격차와 자본의 집중이 더욱 심화되는 현실을 근거로 마르크스가 예측한 자본주의의 모순이 오히려 더욱 분명해졌다고 설명한다. 특히, 신자유주의와 금융 자본주의의 강화 속에서 불평등이 심화되는 현실은 마르크스의 분석이 여전히 유효함을 증명한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주의는 폭력 혁명을 옹호하지 않는다." 본문 중에서 241쪽>
책은 마르크스에 대한 오해를 해소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마르크스가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를 옹호했다거나, 자본주의를 무조건 부정하고 계급투쟁만을 강조했다는 통념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실제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경제적 생산성을 인정했으며, 다만 그것이 필연적으로 불평등과 착취를 낳는 구조적 한계를 지닌다고 보았다. 저자는 이러한 마르크스의 입장을 명확히 설명하며, 그가 주장한 혁명의 필요성 또한 단순한 폭력적 전복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필연적 과정으로 해석한다.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마르크스주의를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방식이다. 19세기 자본주의와 21세기 글로벌 경제는 분명 차이가 있지만, 그 핵심 구조(빈부 격차의 심화, 노동의 소외, 자본의 집중)는 여전히 유사한 형태로 지속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특히 금융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가 강화되는 오늘날,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는 현실 속에서 마르크스가 예측한 자본주의의 모순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서술 방식은 논리적이면서도 유머가 가미되어 있으며, 저자 특유의 날카로운 통찰과 재치 있는 문장은 복잡한 이론을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단순히 학문적 논의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와 대화하듯 논지를 전개하며 마르크스 사상을 현실적 맥락에서 이해하도록 유도한다. 다만, 정치, 철학, 종교, 이데올로기 등 다양한 내용을 폭넓게 다루면서 정치가, 철학자, 경제학자 등의 주장과 이론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어 일반 독자가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부분도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춘 독자라면 충분히 소화할 수 있겠다.
또한, 저자는 마르크스를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한계도 솔직하게 짚어낸다. 역사적 예측이 빗나간 부분, 노동 계급의 변화, 기술 혁신으로 인한 자본주의의 적응력 등 현대 사회에서 수정되어야 할 부분을 언급하며, 마르크스주의가 시대에 맞춰 재해석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마르크스 사상이 단순한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논의되고 발전할 수 있는 이론임을 보여준다.
특히, 이 책은 마르크스의 사상이 단순한 경제 이론이 아니라 인간 해방을 위한 철학적 기반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마르크스가 궁극적으로 지향한 것은 단순한 계급 해방이 아니라, 인간이 진정으로 자유롭고 창의적인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였다. 따라서 그의 사상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실천적 철학으로 읽힐 수 있다.
《마르크스가 옳았던 이유》는 마르크스 사상을 단순한 이념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데 유효한 철학으로 조명하며, 그가 오늘날에도 의미 있는 사상가임을 일깨우는 책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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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세계적 문학평론가 테리 이글턴이 들려주는 마르크스의 이야기는 기존의 딱딱하고 난해한 마르크스 해설서와는 다릅니다. 재치 있는 문체와 현대적 관점으로 마르크스를 재해석한 <마르크스가 옳았던 이유 Why Marx Was Right>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마르크스의 통찰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마르크스주의가 끝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방화범이 그 어느 때보다 더 교활하고 지략이 있다고 해서 소방 활동이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은 현대 자본주의의 모순이 더욱 첨예화되는 시점에서 마르크스의 사상이 왜 여전히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10가지 오해와 진실을 다룹니다. 20세기 후반 냉전의 종식과 함께 마르크스주의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테리 이글턴 저자는 이러한 선언이 얼마나 단편적이고 성급한지를 지적하며, 오히려 오늘날 자본주의의 모순이 더욱 심화됨에 따라 마르크스의 사상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합니다. 자본주의는 지속적인 위기를 내포한 체제이며, 마르크스는 이를 가장 철저하게 분석한 사상가였던 겁니다. 저 역시 공산주의와 연결된 어렴풋한 느낌적 느낌으로만 알고 있었던 마르크스주의를 이번 기회에 제대로 알아봅니다. 마르크스주의를 경직된 이론적 체계라고 오해하지만, 사실은 마르크스가 고정된 교리를 제시한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현실에 대한 분석적 도구를 제공했다고 짚어줍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의 서두를 '이제껏 나온 것 가운데 가장 강력한 자본주의 찬양'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마르크스가 단순한 공산주의적 대안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의 사상은 도그마가 아닌 ‘비판적 사고의 전통’에 가깝습니다. 이 점에서 마르크스주의는 특정한 시대적 정황에 따라 변형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지는 겁니다.
마르크스주의는 현실성 없는 이상론으로 취급됩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단순한 유토피아주의자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분석한 철학자였습니다. 단순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모순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더 나은 사회가 등장할 수 있음을 논증했던 겁니다. 마르크스 사상은 막연한 낙관론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변화를 통해 달성 가능한 미래를 제시한 것이었습니다. 마르크스가 모든 사회적 문제를 경제적 요인으로만 설명했다는 비판도 존재합니다. 이에 대한 반박은 마르크스는 경제가 중요하다고 보았지만, 인간의 의식과 문화, 사회적 관계 또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고 보았다는 걸로 설명합니다. 인간이 경제적 조건에 의해 완전히 결정된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물질적 조건이 사상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한 겁니다.
![]() 마르크스주의가 폭력 혁명을 옹호한다는 비판은 흔합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폭력혁명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과정 속에서 필연적으로 계급투쟁이 발생한다고 보았습니다. 사회가 필연적으로 변혁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분석했고, 변화가 반드시 폭력적인 형태를 띠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환경 문제, 불평등, 자본주의의 위기 등을 고려할 때, 마르크스의 사상은 단순한 과거의 이론이 아니라 현대 사회를 분석하는 데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사회주의는 단순한 경제적 대안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로운 발전을 목표로 하는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다시금 주목받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모순, 마르크스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자본주의는 생산이 잠재적으로 무한하다고 보는 반면, 사회주의는 이를 도덕적이고 미학적인 가치들의 맥락에 놓는다. 혹은 마르크스 자신이 『자본』 제1권에서 표현한 대로, “인류의 온전한 발전에 적합한 형식 아래” 놓는다." (p312)라는 구절은 기후 위기 시대에 생태주의 관점에서도 와닿는 이야기입니다. 부제 '프로메테우스의 꿈과 좌절'은 프로메테우스의 신화와 마르크스의 사상을 연결해서 생각해 보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듭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기술과 문명의 상징)을 가져다준 신화 속 영웅입니다. 인간의 발전과 해방을 위해 제우스에게 도전했고, 그 결과 영원한 고통의 형벌을 받게 됩니다. 프로메테우스의 꿈은 마르크스가 꿈꾼 이상과 연결됩니다. 인류의 해방과 진보, 착취 없는 평등한 사회 건설, 인간의 잠재력 실현을 말이지요. 하지만 사회주의 실험의 실패와 왜곡, 자본주의 체제의 강고한 지속, 혁명의 어려움과 부작용 등 현실에서 마주한 한계 때문에 결국 좌절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리 이글턴은 마르크스의 분석과 비전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합니다. 환경, 젠더, 불평등... 현대사회의 모든 문제를 관통하는 마르크스의 통찰을 만날 수 있습니다. 불평등과 위기의 시대, 여전히 마르크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를 이 책에서 확인해 보세요. #마르크스가옳았던이유 #테리이글턴 #비평 #마르크스주의 #마르크스 #인문학책추천 #서양철학 #인디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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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종말론적 환상이던 것이 오늘날 엔 엄연한 현실주의가 되었다.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라는 전통적인 좌파 구호가 이보다 더 단호하게 양극단인 적이 없었고, 이보다 덜 수사적 과장이었던 적도 없었다. 이처럼 참담한 상황에서는 프레드릭 제임슨의 말대로 "마르크스주의는 필연적으로 다시금 진실이 될수 밖에 없다" 부와 권력의 엄청난 불평등, 제국주의 전쟁, 강화된 착취, 점점 더 억압적인 국가 등,이 모든 것이 오늘날 세계를 특정 짓는다면, 그것들은 또한 마르크스주의가 거의 두 세기 동안 행동하고 성찰해 온 문제이기도 하다. (-28-) 계급투쟁은 본질적으로 잉여를 둘러싼 투쟁이다. 따라서 모두에게 양이 충분하지 않은 한 계속될 것이다. 어떤 개인의 잉여노동을 다른 사람에게 이전하도록 강요하는 방식으로 물질적 생산이 조직된다면 언제든지 계급은 출현한다. 이른바 원시 공산사회처럼 잉여가 거의 없거나 전혀 없을 때는 모두가 일을 해야 하고, 누구도 다른 사람의 노역으로 살아갈 수 없으니 계급도 있을 수 없다. (-72-) 하지만 모든 사람이 항상 도덕적으로 훌륭하다고 기대할 필요가 없다면, 마르크스의 목표는 성취하기가 더 쉬울 것이다. 사회주의는 시민들의 눈부신 미덕을 요구하는 사회가 아니다. 사회주의는 언제나 함께하는 거대한 축제 속에서 서로를 감싸 주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왜냐하면 마르크스의 목표에 다가갈 수 있게 해 주는 기제들이 실제로 사회 제도 안에 설치되기 때문이다. (-128-) 공산주의 노동자들이 함깨 모일 대, 당장의 목적은 지도와 선전 등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새로운 필요, 즉 교제할 필요가 생기게 되어, 수단으로 보였던 것이 목적이 된다. 담배 피우기, 먹고 마시기 등은 더 이상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이어 주는 수단이 아니다. 이제 그들에게는 사귐, 제휴, 대화 그 자체가 목적이다. 인간의 형제애는 공허한 문구가 아니라 현실이며, 노동으로 다져진 모습에서 인간의 고귀함이 빛을 발한다. (-172-) 마르크스가 자주 비난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진의는 도덕적 요소를 선호하고 물질적 요소를 무시한 역사연구에 대한 비난이었다. 여기에 맞는 용어는 도덕이 아니라 도덕주의이다. 도덕주의는 '도덕적 가치' 라 불리는 것을 그것이 위치한 역사적 맥락에서 추출해, 일반적으로 절대적인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진실된 도덕적 연구는 인간이 처한 상황의 모든 양식을 탐구하는 연구이다. (-214-) 사회주의 혁명의 문제점 중 하나는 유지하기 가장 힘든 곳에서 혁명이 일어날 가능성이 제일 높다는 것이다. 레닌은 볼셰비키 봉기에서 이런 아이러니를 알아차렸다. 잔인하게 억압받고 반쯤 굶주린 사람들은 혁명을 해도 잃을 게 없다고 느낄 수 있다.다른 한편, 이미 살펴보았듯이 이들을 반항하게 만드는 후진적 사회 조건은 사회주의 건설을 시작하기에는 가장 최악의 장소이다. (-258-) 마르크스 비판자들은 때로 그의 작업에서 이른바 프로메테우스적인 기질-무제한 인간 진보에 대한 신뢰와 더불어 자연에 대한 인간의 통치권에 대한 믿음-에[ 주목했다. 실제로 그의 저작에 그런 흐름에 있는 것이 사실인데, 이는 9세기 유럽의 지식인에게서 예상될 법한 일이다. 1860년 무렵에는 비닐봉지나 탄소 배출에 관한 관심이 거의 없었다. 더욱이 자연은 때로 정복될 필요가 있다. 꽤 빠른 시일 내에 많은 방파제를 건설하지 않는다면 방글라데시는 사라질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302-) 1. 마르크스주의는 끝나지 않았다 2. 마르크스주의는 도그마가 아니다 3. 마르크스주의는 결정론이 아니다 4. 마르크스주의는 유토피아를 꿈꾸지 않았다 5. 마르크스주의는 경제 환원론이 아니다 6. 마르크스는 기계적 유물론자가 아니었다 7. 마르크스주의는 계급 강박증이 없다 8. 마르크스주의는 폭력 혁명을 옹호하지 않았다 9. 마르크스주의는 국가를 믿지 않는다 10. 마르크스주의는 급진적 운동에 기여했다 이 열 가지는 리스트는 마르크스주의,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대표적이 비판을 나열하고 있으며, 마르크스주의 문화 비평가이자 문학 평론가 테리 이들턴의 답이 각각에 추가하여 설명하고 있다. 책 『마르크스가 옳았던 이유』이 쓰여진 시기는 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이후, 미국 사회의 변화를 마주하면서, 그가 생각하였던 마르크스주의가 21세기 이후 탈산업화시대에도 유효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으며, 마르크스 사상을 왜곡하지 않으면서, 본질을 하나하나 짚어 나가고자 한다. 이 책을 통해서, 마르크스 주의에 대해서 정리해 볼 수 있었고,마르크스주의자에 대한 비판이 어떻게 생겼는지 이해를 돕고 있다. 잉여 자원이 생겨나면서,사회계급이 만들어진다. 그로 인해, 지구의 호모사피엔스에게 충분하게 자원이 돌아갈 때까지 계급 투쟁은 이어진다는 것을 엄시하고 있다. 특히 마르크스가 살았던 시대에는 핵무기도 존재하지 않았고, 환경 문제에 대한 심각성과 환경을 보호하고, 탄ㅁ소배출에 대해서 신경쓰지 안않았고, 환경을 보호하고자 하는 활동도 도드라지지 않았다. 플라스틱이나, 비닐과 같은 썩지 않는 물질들이 우리 사회를 좀먹는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던 시기다.미세플라스틱 쓰레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 주의는 시대를 넘어서서,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그의 사상은 더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조지 부시 때, 나타난 현상에 대해서,마르크스주의자의 관점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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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2011년 출간된 이 책은 "만약 카를 마르크스에 대한 익숙한 비판들이 모두 또는 대부분이 틀린 것이라면?"이라는 단순한 물음에서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르크스가 옳았던 이유>의 내용은 마르크스에 대한 가장 표준적인 비판 10가지를 택해서 마르크스가 옳았다고 반박하는 것이다. 덤으로 마르크스의 사상을 명확하고 이해하기 쉽게 소개한다. 주의할 것은 차례에 나오는 각 장의 제목이 반박 주장이라는 것! 예를 들면 '1. 마르크스주의는 끝나지 않았다'는 마르크스주의가 끝났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한 이글턴의 반박이다. 어떤 비판들에 대한 반박이냐는 각 장 제목 아래 아주 작은 글씨로 나와 있다. 난 이 제목을 사람들이 마르크스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하고 마르크스 주의가 끝났다는 내용이 나와야 하는데 아무리 읽어도 없길래 알고 보니 각 장의 제목이 모두 이글턴의 마르크스가 옳았다는 주장이었던 것. 즉 그는 마르크스주의가 끝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범죄자의 범죄 수법이 지능적이 되었다고 해서 경찰 업무가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말도 안 된다고 얘기하는 거였다. 한 가지 더 참고할 사항은 이 책에서 저자가 마르크스라고 할 때는 보통 그의 사상을 발전시키고 대중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엥겔스를 포함하는 말인 점이다. 슬로우 리딩을 해야 하는 책이지만 잘 곱씹으며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된다는 것이 신기했다. 마르크스는 통섭의 지성인이었던 것 같다. 철학, 심리학, 역사학,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해서 지난 1000년간 가장 위대한 사상가로 꼽힌다. 우리나라에서 마르크스 이야기는 잘 나오지 않던데, 외국에서는 아인슈타인이나 뉴턴, 다윈보다 위대한 사상가라고 대접받는다. 나는 마르크스 하면 공산주의만 생각나서 마르크스가 러시아 사람인 줄 알았다는? 독일 사람이다. 마르크스의 저서 중에서는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구호로 유명한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이 가장 유명하다. 그는 실제 역사의 경로를 바꾸었으며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세계를 밝혀냈듯, 우리 생활의 이면을 파헤쳐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실체를 드러냈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계급투쟁의 역사란 이제까지의 역사가 모두 계급투쟁이란 말이 아니라 계급투쟁이 인류 역사에서 가장 근본적이라는 의미다. 마르크스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공산주의다. 공산주의 하면 북한이 생각난다. 북한 하면 빨갱이란 단어가 생각이 난다. 붉은색은 프랑스 혁명 때 급진파들이 붉은색 깃발을 사용한 것에서 유래한다. 구소련이나 중국 깃발을 보면 온통 빨갛다. 북한 깃발에도 파란색보다 빨간색이 훨씬 많다. 그런데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같은 말일까? 워낙 내가 이런 쪽에 무지하다 보니 AI를 검색해도 잘 모르겠다. 그나마 이해한 것은 사회주의는 착한 아이. 내가 가진 것을 조금 나눠주는 아이. 공산주의는 완전 착한 아이. 내가 가진 것을 반띵하는 아이. 이 정도였다. 사회주의는 사회가 함께 사는 곳이니까 정부가 학교 선생님처럼 규칙을 정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며 다 같이 잘 살자는 이론이다. 부자가 조금씩 양보해서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 즉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다. 모두가 함께 노력해서 잘 살자는 생각이다. 공산주의는 함께 생산(共産) 하고 함께 나누며 완전히 평등한 세상을 꿈꾼다. 공산주의는 너와 나는 평등하니까 피자 한쪽도 공평하게 똑같이 나누자는 것인데 그깟 피자야 똑같이 못 나눠 먹겠냐 싶다. 그런데 내가 가진 것을 아예 공평하게 반띵 하자고? 내 돈 다 뺏어서 공평하게 나눈다고? 갑자기 우리나라가 공산주의가 돼서 니 빌딩 내놓고 가난한 사람들과 반띵 해야 한다면? 나야 아주 좋다. 하지만 돈이 많은 사람에겐 많이 억울할 것 같다. 그러니까 매우 가난한 사람에게는 공산주의=유토피아다. 하지만 중산층이나 부자들도 그럴까? 으리으리한 내 집 내 놓고 후줄근 한 곳에서 사는 게 유토피아일까? 그래서 저자는 4장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유토피아를 꿈꾸지 않았다고 반박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이상을 제시하지 않는다. 현재의 모순을 드러내고 실천을 통해 현실을 변혁시켜 나가자는 실천 운동이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진정한 평등은 모두 똑같이 대접하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각자 다른 필요를 균등하게 돌보는 것이다. 그럼 각자의 재능을 발견해서 발전시킬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훨씬 더 다양하게 분산되어 예측이 불가능해진다. 이런 사회가 마르크스가 꿈꾸었던 공산주의다. 마르크스는 진정한 부란 인간의 창조적인 잠재력이 절대적으로 발현된 것, 즉 미리 정해진 잣대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모든 인간의 능력의 개발이라고 주장했다. 이 말은 마르크스가 추구했던 것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이라는 뜻이 아닐까 한다. 요새 모든 기업들이 모셔간다는 통섭형 인재가 자신만의 창조적인 잠재력을 절대적으로 발휘해서 만든 스티브 잡스 같은 느낌? 옮긴이 박경장 교수님의 말을 읽다가 '자본주의 모순이 극에 달한 이 시대에 왜 마르크스가 소환되지 않느냐는,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 비판으로서만 유용한 것이냐는 말에는 감동의 눈물이 글썽했다. 책의 뒤표지에 있는 '이글턴 특유의 재치와 유머, 그리고 명쾌함'의 의미는 책을 읽다 보면 곳곳에서 느껴진다. 맛보기로 조금만 아래에 가져와 봤다. 계급투쟁이 모든 것을 다 포괄할 수는 없다고 하는 내용이었는데, 체 게바라가 트럭에 치였다면 계급투쟁의 사례로 꼽을 수 있겠지만, CIA 요원이 운전했을 경우에나 가능하다는 말이 재밌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사고일 뿐이다. 시장 사회주의에 관한 설명 : 약간 미친 자본주의 집단이 초현실적으로 단기간에 전근대 부족을 기술적으로 세련된 기업가로 변모시키려 한다고 상상해 보라. 뻔히 실패할 것이라는 사실이 자본주의에 대한 정당한 비난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건 걸스카우트가 양자물리학 문제를 풀지 못했다는 이유로 해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다. (p.66)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희망 : 미래가 공허한 환상이 되지 않으려면 실현 가능해야 하고, 현실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그런 미래는 현재를 스캔하거나 엑스레이로 찍어 그 안에 잠재된 미래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람들한테 헛된 욕망을 품게 할 뿐이다.(p.104) 마르크스의 이상은 여가이지 노동이 아니었다. 다양성 : 마르크스는 평등이란 관념을 경계했으며, 모두가 등에 국민보험 번호가 찍힌 작업복을 입을 미래를 꿈꾸지 않았다. (p.317) 그가 보기를 희망했던 것은 획일성이 아니라 다양성이었고, 보수주의자들보다 더 적대적이었고, 사회주의를 민주주의의 적이 아닌 심화라고 보았다. 마르크스가 경제적인 것에 주목했던 것은, 그것이 인류에게 끼치는 힘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그의 유물론은 확고한 도덕적, 정신적 신념과 양립 가능하다. 그리고 사회주의가 중간계급의 위대한 유산인 자유와 시민권과 물질적 번영이의 계승자라고 보았다. (p.318) 나에게는 생소한 단어들이 많아서 AI에게 단어 뜻을 초등학생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달라고 하며 읽었다. 테리 이글턴은 영국의 문화 비평가이자 문학 평론가로 영국 신좌파의 대부인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제자라고 한다. 올해 82세 양띠. 현재 랭커스터 대학교 영문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어려운 내용을 알기 쉽게 알려 준 이 책을 통해 나도 저자의 팬이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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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사상에 대해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10가지 비판을 다룬 책 '마르크스가 옳았던 이유'
('마르크스가 옳았던 이유' 표지) '소련'이 무너지면서 사회주의는 끝났다고 다들 말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남북한 대치 상황에 있고 러시아와 중국,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과 유럽들에 맞서 하나로 뭉쳤다. 흡사 예전 냉전체제 때 전 세계가 나누어진 상황을 연상시킨다. 정말 마르크스 사상은 끝났고 사회주의는 사라졌나? 현실은 오히려 더 복잡한 것 같다. 저자 테리 이글턴은 이 책 <마르크스가 옳았던 이유>에서 '마르크스를 비판하는 대표적인 논제 10가지'를 비판한다. 이 10가지 속에는 우리가 흔히 '마르크스 사상이면 이러이러 할 것이다'라고 예상했던 내용들이 들었다. 하지만 저자는 이는 사실이 아니고 '실제로 마르크스는 이러이러한 내용으로 말했다'라고 말한다.
개연성이 있다는 말은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마르크스가 옳았던 이유' 표지) 이 책을 통해 그냥 떠도는 '마르크스 사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국가보안법'이 있고. 역사적인 이유도 있고. 그래서 생각해 보면 사실 잘 모른다. '마르크스 사상에 대해' 어딘가에서 많이 들어서 아는 듯한데 사실은 잘 모르는 그 어떤 것! 소문만 무성한 이 사상에 대해 그나마 조금 이해할 수 있는 멋진 기회를 이 책을 통해 가지게 되었다.
('마르크스가 옳았던 이유' 속 날개 일부) 테리 이글턴은 영국에서 태어났으며 문학 평론가로서 유명한 사람이었다. 옥스퍼드 대와 맨체스터 대학교수를 지냈으며 랭커스터 대학 영문학 석좌 교수라고 한다. 펴낸 책도 50여 권이나 된다. 20세기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르크스 사상이 어떻게 변화, 발전해 왔는지 한 시대를 관통하면서 지켜봐 온 셈이다. 한 분야에 그토록 오래도록 종사한 전문가가 하는 이야기는 안 들을 수 없다.
('마르크스가 옳았던 이유' 차례)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대로 이 책은 마르크스 사상에 대해 비판하는 10가지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이다. 따라서 책의 차례도 10개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의 제목은 지은이가 주장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지은이의 주장과 반대되는 의견을 비판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지은이의 주장과 반대되는 의견들을 살펴보면, 평소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마르크스 사상들이었다. 그 생각들을 저자와 함께 하나하나 논박하면서 살펴보는 시간은 마르크스를 좀 더 다르게, 깊이 있게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다.
('마르크스가 옳았던 이유' 내용 일부) 책은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많은 오해, 비판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저자는 풍부한 학식으로 많은 근거를 들어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근거와 의견들을 모두 자세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대강 그 흐름만 따라가면서 마르크스 사상이 진짜 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일에 집중하도록 했다. 그것이 또한 마르크스 사상을 비판하는 내용들에 맞서 마르크스를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 마르크스 사상은 실현할 수 없는 유토피아를 꿈꾼다 > 아니다! 마르크스는 '더 나은 미래가 도달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현재의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다' (p104) 저자는 미래가 현재의 확장이라고 보는 관점을 경계하면서 미래가 변화하고 현재와 단절될 수도 있음을 말한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가 우리를 더 자유롭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그렇다고 '노동 해방'이 게으른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고. 스스로가 결정하고 책임질 일이 더 많아지는 그것이 자유롭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현재를 본다는 것은 '현재가 변화 가능하다'는 사실도 함께 인지하는 것이라는 대목도 인상 깊다. 이런 입장에서 미래를 변화 가능성이 있는 현실로 바라보았고 희망을 품었다. 그렇다고 해서 실현 가능성이 없는 낭만적 유토피아를 꿈꾸지 않았고 오히려 그것을 경계했다고 한다. < 마르크스는 모든 사람이 동지가 되어 협력하는 미래를 꿈꾸었다 > 이것도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마르크스 저작 어디에도 이 주장에 대한 근거가 없다! 오히려 마르크스는 인간 개별성을 인간의 특성이라고 인정했다. 이것이 인간을 창의적으로 만들고 미래를 변하게 한다. < 소련의 몰락과 함께 마르크스 사상은 끝났다 >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가 계속되는 한 마르크스 사상도 계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 불평등은 세계 곳곳에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 어쩌면....... > 당시 소련이 제국주의 자본의 성장을 막았는지도 모른다. 소련이 있었기에 자본주의가 좀 더 인간의 얼굴을 한 건지도.
('마르크스가 옳았던 이유' 내용 일부) < 지금 이 자본주의는 결국 반드시 사회주의로 나아간다 > 아니다. 인간의 미래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으로 아무런 노력, 의지, 요구가 없이 저절로 어떤 미래가 오지는 않는다. < 마르크스는 '물질이 문명의 바탕이고 그 문명의 성격도 결정한다'고 말했다. > "그래서 물질 생산이 근본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펜이나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데 필수 불가결하다고 말하는 것과 그것들이 소설의 내용을 결정한다고 주장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P151) 저자가 이렇게 비유를 들어 설명하니 확 와닿는다. 펜이 소설의 내용을 결정하지는 못하지......... 하며 공감한다. < 좀 더 깊이 있는 마르크스 사상의 이해 > 책은 점점 더 깊은 마르크스 사상으로 인도한다.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비판을 넘어 마르크스 사상이 진정으로 말하고자 했던 세계로 나아간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마르크스 사상을 단편적으로만 이해했던 것 같다. 책은 마르크스 사상에 대해 흥미를 갖고 다시 제대로 이해해 보고자 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마르크스가 옳았던 이유' 표지) *21세기문화원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
이 책은 마르크스 이론에 대한 책이다. 마르크스 이론은 다 지나간 옛논리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대에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이론 하나 제대로 없다는 게 더 이상한 것 아닌가? 어느 시대이던 그 시대의 사상이 있었고 그 사상에 대한 반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시대에 자본주의에 대한 논쟁은 너무 없는게 아닐까? 마르크스 이론은 자본주의가 완전히 형성되기 전에 나온 이론이므로 자본주의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만든 논리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채 형성되기도 전에 그 허점들에 대해 낱낱이 파악했다면 자본주의는 그 시작부터 너무 부실했던 논리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더구나 그 허점 투성이 자본주의 논리에 대해 마르크스 이론이 너무나 따박따박 잘 반박하고 있다면 더더욱 말이다. 저자는 영국에서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문화비평가이자 문학평론가 라고 한다.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마르크스 이론이 연구되고 현세태를 분석하는데 유의미한 툴이 될 수 있음을 가장 활발하게 보여주고 있는 학자라고나 할까. 저자는 서문에서 '2011년 이 책이 처음 출간된 후 마르크스 사상은 적어도 한 가지 측면에서 극적으로 확인되었다.' 라고 이 책을 시작한다. 2007~208년에 미국에 금융위기가 닥쳤고 2011년에 '월가를 점령하라'는 '반(금융)자본주의'구호를 외치는 행동시위가 80여개 나라로 번졌고, 이 책은 그런 역사적 맥락 아래 나오게 되었기 때문에 한 말이다. 여기에 멈추지 않고 이 책은 2018년 개정판이 나오기에 이르러 이제 한국에도 번역되었다. 그러니까... 마르크스 이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파 포퓰리즘이 한국 사회를 멍들게 하고 있는 지금 이 서문의 문장들이 너무도 와닿았다. 자본주의를 경제학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현상적으로 이해하는데에도 마르크스 사상이 이렇게 필요한 거였다니 다시금 놀랍기도 했고. 여하튼, 개정판의 서문은 이 책이 왜 2025년 지금도 유효하게 읽힐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주었다면 처음 이 책을 발간하며 저자가 쓴 서문에선 이 책의 탄생배경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의 뒷표지에 보면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마르크스 입문서' 라고 쓰여 있다. 솔직히 '재미'까지는 보장하지 못하더라도 색다른 '입문서'라는 점에선 고개끄덕여진다. 사실 마르크스 사상을 조금이라도 접해본 사람이 이 책을 읽을때 이해하기 쉽기는 하다. 하지만 마르크스 사상을 모르더라도 이 책의 반박논리들을 보면 그 사상이 궁금해진다는 점에서 이 책은 색다른 입문서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 사상을 반대?하는 입장에 대한 반박문장 열가지로 이 책은 소제목을 짖고 있어서 차례만 봐도 일단 그 주장들이 무엇인지 빠른 확인이 가능하다. 또한 각 챕터별로 소제목 아래에 그 반대 논리를 개략적으로 요약해놓고 있어서, 아하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반박하려는 내용이 이 챕터의 줄거리구나 라는 것도 빠르게 알 수 있다.
소제목들만 봐도 왠지 상식적수준으로만 알던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흥미를 끄는 열개의 문장 아닌가! 마르크스주의가 왜 여전히 유효한지, 마르크스주의가 어떻게 소련에서의 사회주의와 다른지, 마르크스주의가 역사를 결정론적으로 인식한 것이 왜 아니고, 마르크스주의가 유토피아적 몽상이 왜 아닌지, 마르크스주의가 경제를 넘어 어떻게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지, 마르크스주의의 유물론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실천적인지, 마르크스주의에서 계급론이 얼마나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계급론을 재해석할 수 있게 해주는지, 마르크스주의보다 자본주의가 얼마나 더 폭력적이고 착취적이었는지, 마르크스주의가 독재자에 의한 권위주의 국가를 세울 것이라는 상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마르크스주의가 다양한 급진적 운동(페미니즘, 환경주의, 반세계화, 평화운동등)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저자는 아주 열심히 열렬하게 논증에 논증을 거듭한다. 비판에 대한 재비판이라 학문적으로 이해하려 들자면 어렵겠지만 저자는 문화비평가이고 문학비평가라그런지 문장이 학술적이지 않아 내용의 무게를 문장이 조금은 가볍게 해주고 있어 읽는데 다행이다 싶었다. 하지만 이토록 흥미롭고 여전히 유효한 이론임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비판으로서만 유용할 뿐 그 대안으로 소환되지 않는 우리 시대의 마르크스(주의)란 무슨 의미란 말인가? '마르크스는 분명히 옳았다. 그런데 왜, 자본주의 모순이 극에 달한 이 시대에 소환되지 않는가?' ' (p. 338 -옮긴이의 말 中-) 라는 역자의 물음은 묵직한 의미심장함을 남긴다. 그렇다. 마르크스가 옳았다는 이론은 분명 논리적이다. 그러나 여전히 분단국가인 한국사회에서 마르크스 라는 이름과 그 이론은 여전히 거론되기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우파건 좌파건 포퓰리즘이 극성인 이 시대에 사회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사상'에 대한 토대는 좀더 넓어지고 깊어져야 하지 않을까? 아쉽지만 바래본다. 프로메테우스가 꿈이 좌절되어 고통에 묶였을지라도 포기하진 않았던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도 사상적 토론이 좌절된 것처럼 보이는 시대같아도 포기되진 않고 토론과 합의가 더디게라도 성장해나갈 수 있기를. 그래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재해석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데 보탬이 될 수 있기를. ![]() ![]() |
![]() ![]()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마르크스가 옳았던 이유'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어떤 내용이길래 옳았다고 하는건지 의문이 먼저 들었다. 사실 마르크스라는 이름은 익숙했지만, 그의 사상을 제대로 공부해본 적은 없었다. 이 책의 저자인 테리 이글턴(Terry Eagleton)은 영국을 대표하는 문학 비평가이자 철학자로, 마르크스주의와 문학 이론을 대중적으로 풀어내는 데 능숙한 인물이다. 그는 마르크스 사상을 기존의 고리타분한 이론이 아니라, 우리가 당면한 현실을 분석하는 강력한 도구로서 소개한다. 특히, 마르크스를 비판하는 대표적인 주장들을 하나하나 반박하며, 그의 사상이 이념이 아니라 현실적인 논리임을 강조한다. 책의 첫 장은 마르크스주의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비판에 대한 반박으로 시작된다. 산업혁명 시기의 유물론적 사상이 현대 사회에서 여전히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테리 이글턴은 오히려 지금의 자본주의가 마르크스가 지적한 문제점들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마르크스주의를 ‘이상적인 사회를 그린 공상적 이론’으로 오해한다. 하지만 저자는 마르크스가 단순히 꿈같은 세상을 그린 것이 아니라, 현실의 모순을 분석하고 개선 방안을 고민한 사상가였음을 강조한다. 4장에서는 마르크스가 미래를 향해 제시한 비전이 이상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점을 뚫고 나아가기 위한 실질적인 대안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의 예측은 허황된 꿈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마주한 사회적 모순을 날카롭게 짚어준다. 제도와 교육, 그리고 사회주의 평등에 대한 그의 견해를 읽으면서, 미래를 만드는 데 필요한 조건들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마르크스는 ‘완벽한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고자 했다. 이를테면, 극단적인 빈부격차와 노동 착취 같은 문제들이 사라진다면, 우리가 사는 사회는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마르크스주의가 단순한 이상론이 아니라 현실을 바꾸려는 적극적인 움직임이었다는 점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었다. '마르크스가 옳았던 이유'는 어려운 철학이나 정치경제 이론을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 책으로 테리 이글턴의 생동감 넘치는 문체와 유머러스한 비유 덕분에, 마르크스의 사상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그 의미를 흥미롭게 접할 수 있었다. 특히 각 장마다 제시된 주제들은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주었고, 나 자신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마르크스가 왜 계속해서 회자되는지, 그리고 그의 사상이 오늘날에도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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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해남의아침의 신간 <모두의 요가수트라, 나만의 요가수트라>에 대해서 나눠 보려고 해요. ![]() 요즘 현대인들의 일상을 보면 많이 분주하고 지쳐있잖아요. 우리가 하루를 힘차게 시작해야 되는 데 모든 게 무너져 내린 상태예요. 많은 이들이 성공을 위해서 달려가지만 정자 공들여 쌓은 탑이 한 순간에 사라지는 상황에 놓이게 돼죠.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될까요? 이 질문이 절로 생기게 되잖아요. 우리는 저자의 말과 같이 스스로 우리 자신에 대해서 되돌아보아야 되는 것 같아요. 우리는 자신에 대한 정체성부터 시작해서 누구를 위해서 지금까지 살아 왔는지에 확인해 보아야 해요. ![]() 그렇다면 저자는 우리의 지치고 고단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에서 왜 마음에 대한 이야기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세상의 모든 문제가 우리의 마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예요. 우리의 마음이 어떤 상태냐에 따라 삶의 방향성과 결과에 큰 차이로 나타나기 때문이예요. 저자는 우리의 마음 상태에 대해서 다섯 가지로 이야기해 주세요. 저자는 가장 먼저 사물의 이치를 제대로 이해하는 상태를 시작으로 잘못 이해하는 상태, 근거 없이 상상하는 상태, 무의식적인 잠의 상태, 과거의 기억에 집착하는 상태 등으로 구분해 놓았어요. 우리가 관계, 일, 상황 등으로 상처를 받고 후회한 후에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느냐의 유무를 보면 마음의 문제더라고요. 우리의 마음 상태에 따라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행동 및 의지까지 영향을 받아요. 결국 우리가 마음을 바뀌면 불행한 삶에서 행복한 삶으로 바뀔 수 있어요.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인 서평을 작성했습니다.] #모두의요가수트라 #나만의요가수트라 #오로빈 #해남의아침 #문화충전 #문화충전200 #문화충전이벤트 #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