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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철학강요』로 살펴본 사랑
0. 서론
사랑을 이루는 첫 번째 계기는 내가 오직 나만을 위한 독립적인 인격이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내가 스스로를 결함을 지닌 불완전한 인간으로 느낀다는 데 있다. 두 번째 계기는 내가 자신을 타자 안에서 발견하고 이 타자 안에서 인정을 얻는다는 것, 그리고 역으로 타자도 역시 내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인정을 얻는다는 데 있다.
사랑은 시대, 문화, 나라를 막론하고 가장 뜨겁고 흥미로운 주제다. 문학 작품은 물론이고 현실 세계에서 희로애락의 감정의 원동력에는 대부분 ‘사랑’이라는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 온갖 불법적인 행동 역시 사랑이라는 하나의 추상적인 동기 때문인 경우도 무척 많다. 맑시즘과 유물론의 사상적 방법론적 진원지인 헤겔 역시 사랑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형이상학, 논리학, 절대정신, 사회 전반적인 구조, 체계에만 몰두한 것이 아니라 ‘사랑’에도 관심이 많았고 철학적인 탐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철학자였다. 신에 대한 종교적 사랑은 물론 남성과 여성 사이의 육체적, 정신적, 감정적 사랑도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헤겔은 사랑을 이성과 유비적인 어떤 것을 지닐 수 있는 도덕적인 감성으로 고찰하며, 따라서 감성 내에 존립하는 일종의 도덕적 추동력으로서 이해했다. 하지만 이성적인 관계 맺음과 이해 역시 중요하다고 헤겔은 주목했다. 한편 인간 대부분은 사랑에 빠지면 인생에서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에 빠지게 되고, 상대방의 내면에서 나의 모습을 찾고 행복해한다. 헤겔의 여러 저술과 사랑에 대한 언급을 종합하여 헤겔이 가진 사랑, 나아가 결혼, 가족, 자녀와 같은 전반적인 영역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한편 우리가 경험하는 일체의 대상은 모두 의미를 부여받은 것으로 경험된다. 이 때문에 우리는 대상들에 원래 의미가 내재해 있는 것처럼 경험하기 쉽다. 그런데 이 점은 우리 자신에게도 통용되는 것이다. 가령 사랑이라는 의미가 발생하면, 타인은 나의 연인이 되고 나는 사랑에 빠진 사람이 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타인에게 사랑받을 만한 본성이 나에게 미리부터 있었던 것도 아니며 나에게 남을 사랑할 수 있는 본성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사랑받을 만한 본성’ 혹은 ‘사랑할 수 있는 본성’등은 모두 사랑이라는 의미가 발생한 후 생기는 환상일 뿐이다. 따라서 의미 창조 혹은 의미 부여 행위가 먼저라고 할 수 있고, 주체 혹은 대상의 성격은 이로부터 구성되는 사후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 사랑
사랑은 운명과 부딪친다. 사랑은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행복한 순간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불행한 일상성에 둘러싸여 있다. 사랑은 특히 소유관계를 배제함으로써만 성립된다. 소유관계야말로 자기와 타자의 구별과 대립이 첨예화하는 마당이며, 사랑마저도 넘어설 수 없는 벽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소유라는 운명에 거듭해서 부딪치는 것에 대해 헤겔은 처음부터 고심하고 있었다
헤겔도 초기 저작에서 사랑은 기본적으로 모든 대립을 배제하며, 차이가 있는 분열태는 하나로 통일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본성상 감성과 이성으로 복합된 존재다. 타인에 대한 사랑이 이성적인 감성의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고 헤겔을 보았다. 즉 사랑은 타자 내에서의 자기발견 또는 자기 망각을 뜻한다. 인륜적 가치를 지닌 사랑이라는 존재를 통해 타자와 나의 일체성을 깨닫고 부단히 노력하는 과정에 주목한 것이다. 헤겔은 사랑이 그 자신의 통일성에 대한 정신의 감정이며, 개인은 독립적 인격이 아니라 그 성원으로 존재한다고 언급했다.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개인이 자신의 독립적 존재를 포기하고 타자와 합일을 이루는 과정은 두 명의 ‘내’가 하나의 ‘우리’로 나아가는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타인에 대해 헌신하고 기존의 독립성을 상실하며 역설적으로 자신의 본성을 찾고, 표현하는 일이 바로 사랑이다. 결국, 독립적이지만 사랑이 없는 존재는 결함 있고 불완전하다는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사랑은 타자와의 차이의 극복, 개별 인격의 상호 포기를 가져오지만 재통일하는 과정에서 더 깊은 사랑을 만들어 간다. 즉 헤겔은 사랑을 통해 인격적 고립으로부터 자유를 달성하고, 타인에 대한 사랑을 통해 자기를 상실할 때 삶이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집중했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 타인의 모습에서 괴물같은 자신의 모습을 본다면 매우 절망적이고 슬픈 현실일 수밖에 없다.
2. 결혼
이것은 동시에 칸트적인 파악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 즉 개인의 존립을 절대화하여 사회적 · 공동적 관계를 인간의 본질에 있어 외적 · 파생적 관계로 하는 사고방식을 극복하고 인륜적 · 공동적 관계의 현실적 형태가 직접적으로 형성된 관계로서 결혼을 파악하는 시도이다. 이와 같이 파악된 결혼에서는 개인이 서로 헌신함으로써 일심동체가 되기 때문에, 그리하여 상대 속에서 자신을 의식하는 구조가 되는 한에서 결혼은 본질적으로 일부일처제로 된다.
헤겔의 사랑과 결혼의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자유로운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여 가족을 구성한다. 마침내 두 사람에게 아이가 생김으로써 하나의 완전한 가족이 완성된다. 이렇듯 결혼에 대해 긍정적인 뉘앙스를 지닌 헤겔의 사유는 나만의 사랑이 아닌 상대방의 사랑도 고려한다. “자신을 타자 안에서 발견한다.”는 표현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타자도 내가 사랑한다는 것, 나와 똑같이 내 마음속에서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여기서 타자의 자유문제를 지나치게 쉽게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자연스레 헤겔이 두 사람의 주관적인 내면, 사랑과 자유에 대한 두려움도 간파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결혼이라는 하나의 제도를 통해 남녀 간의 사랑을 실체화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단순히 인류의 종, 생명의 유지 및 보존을 위한 성적 관계 이상으로 헤겔은 결혼을 생각했다. 칸트가 결혼을 단순히 시민사회의 단순한 계약관계로서만 파악한 것을 뛰어넘어 헤겔은 사랑의 가치를 확인, 인식하며 객관적,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 하나의 실체적인 의식이라고 규정했다. 즉 헤겔에게 있어서 결혼은 단순히 의례의식을 넘어 매우 중대한 사회적 체계인 것이다.
3. 가족
가족은 자연적인 공동체다. 가족의 구성원들은 신뢰와 자연적인 복종에 의해 결속되어있다. 가족은 정신의 직접적 실체성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상의 통일을 기초로 성립한다. 여기에 요구되는 마음가짐은 가족이라는 완전무결한 본질의 일체성 속에 스스로의 개성이 스며들어 있음을 자각하면서 그 속에서 하나의 독립된 인격으로서가 아닌 그 일원으로서 존재하는 데 있다.
타자였던 남녀가 결혼을 통해 하나가 되며, 실체적인 성격을 가진다. 둘의 주관적인 사랑이 우리라는 객관적 사랑으로 변화하는 하나의 선포로서 결혼이 필요한 것이다. 가족이라는 통일체 안에서 자신의 실체를 확인하고 일원으로서 존재한다는 자각을 느낄 수 있다. 부부 사이, 가족 내에서는 공동소유가 가능하며 남녀는 서로 속에서 보편성을 본다. 가족은 자연적인 인륜적 공동체로서, ‘정신’이 직접적으로 실체로서 존재하는 모습이다. 부부가 단순히 사랑이라는 감정에만 기초한다면 그것은 주관적, 우연적,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하나의 제도적 결합으로 이뤄진 가족 관계를 통해 법률적으로 계약 관계를 맺고, 생활 전체를 공유하며 나아가 재산을 공동으로 운용할 수 있는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시민사회의 계약관계로서 가족을 살펴보면 서로 합의된 이용 관계, 뿔뿔이 흩어진 개인을 묶어 주는 하나의 체제로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헤겔은 가족이 공동 관계의 증표이며 국가 공동체에 버금가는 공동관계의 마당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기반으로 시민은 조금 더 의식 있는 공동체로서 국가 공동체와 연계된다.
4. 자녀
부부 사이에서의 사랑의 관계는 아직 객관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비록 사랑의 감정이 실체적 통일을 이룬다고는 하지만 이 통일은 아직 아무런 객관성도 지니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부모는 자녀를 통해 비로소 이런 객관성을 갖게 되며 또한 바로 이들 자녀를 통해 결합의 전체를 목도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자녀를 통해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은 자녀를 통해 아내를 사랑하는 가운데, 마침내 두 사람은 자녀에게서 다름 아닌 그 자신들의 사랑을 직감하게 된다.
헤겔은 부부와 자녀가 똘똘 뭉친 하나의 가족을 이상적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특히 헤겔에 따르면 아이는 현실적 절대자로서 중요한 매개자 역할을 한다. 헤겔이 지향하는 객관적인 사랑이란 것이 결국 타자의 자유를 부정하는 형식을 띠게 되리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객관적 사랑으로서 자녀를 낳는 행위로 드러난다. 즉 남편과 아내의 사랑이 변증법적으로 종합된 결과물이 바로 자녀이다. 자녀를 바라보며 부부는 육체적 관계를 맺었을 때를 기억하며 그때의 사랑을 직감한다. 인륜적인 형태로서의 가족의 원리가 되기 위해서는 사랑은 단지 직접 느껴서 아는 것만이 아니라 보편적이고 자기 의식적이어야 한다. 자녀 역시 각자의 권리라는 점을 언급하며 자녀와 부모 관계를 검토한다. 자녀는 가족의 공동재산에 의해 양육되고 교육될 권리를 갖는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자녀의 중요성은 중요한 개념이었다. 물론 자식을 낳은 뒤 두 사람이 사랑하지 않을 가능성도 존재하고, 그저 과거의 일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식은 사랑의 객관적 모습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억지로 둘을 결합하게 하는 하나의 족쇄나 제어 장치로 변모될 위험도 있는 것이다.
5. 더 생각할 문제
- 헤겔은 거듭 결혼, 자녀의 출생을 강조하며 객관적인 실체적 통일을 확인하려 애썼다. 하지만 사랑은 결코 언제나 행복한 결말만을 낳지는 않는다. 자유의지를 가진 내가 타인을 사랑한다고 해서 타인이 나를 사랑해야 하는 의무는 없다. 오히려 주관적 감정에 푹 빠져 이성적 판단이 어려운 개인은 사랑의 영원함을 쉽게 착각한다. 그러므로 헤겔은 오히려 이런 개인의 특성과 사랑의 속성을 알고 있기에 더욱 이런 제도적 결합에 집중한 것은 아닐까? 자신이 느끼는 불안함을 사회적, 국가적 제도의 도움을 통해 안정감을 얻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 21세기는 다양한 부부의 형태가 존재한다. 물론 헤겔이 살던 시대적 상황을 이해하며 문헌을 읽어야 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동성애 부부, 편부모, DINK족 등 새롭게 생겨난 가족의 형태가 많다. 이는 헤겔이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남편, 아내, 아이 정반합의 구조가 아니다. 헤겔이 주목한 사랑, 결혼, 가족의 본질적인 의미에 집중한다면 과연 이런 결합을 비정상적이고 불완전하다고 규정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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