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은 2001년에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것도 모자라 2003년에는 이라크 침공을 예고한다. 그 무렵 우리나라 ‘한국이라크반전평화팀’은 이라크 현지에서 평화 활동을 펼치기로 결정한다. 평화지킴이들이 이라크에서 활동하면 미국의 침공 계획이 달라질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다. 설사 미국의 침공 계획이 달라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전쟁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인간방패 평화지킴이 반전 평화단이 몇 차례에 걸쳐 이라크로 들어간다. 거기에 박기범이 있었다. 껑충한 키에 선한 눈을 가진 동화작가 박기범이 인간방패로 떠났다. 권정생 선생님도 기대하던 동화작가가 목숨을 걸고 전쟁이 임박한 이라크에 들어간 것이다. 권정생 선생님은 박기범의 행동에 대해 매우 안타까워하셨다. 이 책은 이라크 전쟁과 평화에 관한 이야기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에 관한 문학적 증언이다. 알라위는 축구 선수가 꿈이다. 아버지는 자전거로 기름을 배달하고, 어머니는 동생을 여섯이나 더 낳았다. 아버지의 기름 배달을 돕기도 하는 소년은 아직 운동화를 신어 본 적이 없다. 핫산은 구두닦이로 작은 집을 마련하는 것이 꿈이다. 하이달은 택시를 운전하는 청년이다. 조그만 보금자리에서 애인을 닮은 아기를 낳는 바람을 갖고 있다. 무스타파는 아흔 살의 할아버지이다. 손자들과 한집에 모여 사는 것이 생의 마지막 꿈이다. 살람 아저씨는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글도 가르치고 함께 노래도 부르는 활동가다. 이들은 가난하지만 소박한 꿈을 꾸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거기에 파병된 미군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가족을 사랑하고 책임감 강한 사람들일 따름이다. 그렇지만 전쟁은 이라크 사람들의 목숨과 평화를 앗을 뿐만 아니라 미군들도 지옥의 수렁 속으로 빠뜨린다. 어머니, 여긴 지옥이에요. 지금이라도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악당을 물리치는 일, 악당을 물리쳐 평화와 자유를 지키는 일, 그걸 위해서라면 아무리 위험하다 해도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그러나 어머니, 이곳은 지옥이에요. 아니, 우리가 여기를 지옥으로 만들었어요. 전쟁은 그 누구에게도 지옥일 따름이다. 전쟁은 승리한 편과 패배한 편이 있을 수 없다. 전쟁을 일으켜 이득을 챙기는 한 줌도 안 되는 사람들의 탐욕만 있을 뿐이다.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가 피 흘려야 하는 더러운 전쟁일 따름이다. 그렇게 이라크 전쟁은 이라크 사람들의 목숨과 평화를 앗았을 뿐만 아니라 미군들의 꿈도 빼앗았다. 양쪽 모두의 꿈을 앗은 것이다. 공식적인 전쟁이 끝났어도 내전을 겪으며 이라크 사람들의 일상은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미군들은 고국으로 돌아가 전쟁의 후유증을 심하게 앓아야 했다. 전쟁의 현장에 있었던 이들의 꿈들은 그 누구라도 스러진 것이다. 평화가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다. 무스타파 할아버지 말씀처럼 “평화라는 건 저 강물 같은 거”라서 “수백 수천 년을 흘러온 물길을 / 아무리 강바닥을 파헤쳐 뒤집는다 해도 바꿀 수 없듯이 / 이 땅에 살아온 이들 이어 온 삶을 / 한순간 주물러 바꿀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평화의 강물을 흐르게 하는 것 또한 사람이다. 사람들의 희망이다. 살람 아저씨는 기댈 곳 없는 아이들을 일으켜 세우는 일로 여전히 바쁘다. 딸인 도하는 낡은 건반을 연주하며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부른다. 딸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함께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전쟁에 참여했던 미군 스미스는 이라크에 와서 울음을 터뜨리며 용서를 구한다. 몇 해 전부터 전쟁으로 다친 사람들에게 필요한 약을 사라고 돈을 보내준 사람이다. 이와 같이 평화를 키우는 사람들의 끈끈한 연대가 꿈틀꿈틀 이어지고 있어 평화의 강물은 계속 흐른다. |
|
그냥 출간행사겠지 싶어서 설렁설렁 서점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일단 서점에 걸려있는 유화가 압도적이었다. 일단 무거운 그림이었고, 굉장히 이국적이었다. 나중에 읽으면서 이라크가 배경임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책의 그림을 그리신 김종숙 씨는 잡일(덕장)을 하시며 담배, 소주, 맥심 커피만 있음 언제든지 작업을 하시는 분이셨다 한다. 그러다 현재는 문화재보수기술자로 일하고 계신 저자 박기범 씨를 만났고, 이라크에서 10년간 살면서 기록한 것들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만다. 그래서 글을 쓰라고 권고하고, 마음의 상처에도 불구하고 힘들게 글을 쓰기로 결심한 저자가 이라크에서 찍은 어마어마한 양의 사진과 책자와 영화와 다큐를 보여주셨다 한다. 대부분 그 자료들을 참조해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놀라운 점은 시장에서 포탄이 떨어져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화가의 상상력에서 나온 그림이라는 사실이었다. (사실 나는 바위를 감싸고 흐르는 강인 줄만 알고 있었는데)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권정생 씨의 글에도 삽화를 그리셨던데, 아무래도 진지한 그림을 좀 더 잘 그리시는 듯하여 난 이 그림책으로 김종숙 씨의 그림을 보길 추천하고 싶다.
정의의 용사라는 가면은 얼마나 무서운가.
그들은 자신의 아이들을 지키고 싶다 이야기하지만 그들이 적으로 지정하는 '지독한 악당이 사는 나라'의 아이들도 공차기를 좋아하고, 동물을
좋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령을 내리는 사람들은 독재자가 있는 나라의 돈과 자원이 탐나서 그들의 잘못된 역사를 고쳐주는 척 하면서 전쟁을
일으킨다. 갖가지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 전쟁에 참가하고,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미국 남성은 총을 들고 아이들을 쏘면서 점차 죄책감에 망가져간다.
한편, 가난하지만 평화롭게 사는 이라크 사람들은 전에 벌어진 몇 번의 전쟁 경험으로 인해 내국에선 어디로도 도망칠 곳이 없다는 걸 잘 알고
그렇다고 해외로 갈 돈도 없기에 자신이 살던 곳에서 그저 벌벌 떨면서 어제 같은 날이 이어지기만을 바란다. 평범하게 살기란 너무 어렵다. 아이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가족들을 도와줄 것을 이웃 사람들에게 청하는 장면에선 마음이 짠했다. 그러나 그들을 도와줄 사람이 있다는 게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던 여성은 피투성이가 되어 편의점으로 전력질주하는 다른 여성을 보자 본능적으로 문을 잠그고 화장실 가는 척을
했었다. 그리고 그 피투성이 여자는 그녀를 쫓아오던 한 남자에게 잡혀 처참히 죽음을 맞는다. 사실 그 알바하던 여성이 무슨 죄겠는가. 근처의
경찰이 좀 더 제대로 일했다면. 편의점 본사가 알바생과 주변 사람들의 안전을 지킬 궁리를 좀 더 일찍 했더라면. 마치 전쟁과 같이 팍팍한 삶을
사는 자본주의 국가가 우리나라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착잡했다. 마치 좀비물을 보는 듯한 기분도 들었는데, 확실히 좀비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눌 때 어떤 이는 '저럴 땐 군인이 되는 게 가장 편해'라고 나에게 말했다. 살아남는데엔 편하겠지만 죄책감을 느껴 다시 이라크로 돌아올 때
아이들이 돌을 던진다면, 그 군인의 마음은 편할까? 이라크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마음에 평생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건 변하지 않으리라. 군인이
아이들에게 자신은 포탄과 총알을 날렸지 돌을 날리지 않았다고 울부짖을 때는 마음이 짠하다.
책에 담겨진 삽화와 행사장에 걸린 그림을 비교해보니 같은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차이가 났다. 화가는 가격을 조정해야 하는지라 그림의 질을 다 담아내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설명했다. 될 수 있으면 이 책도 사고, 전시회도 한 번 가보면 금상첨화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유화를 많이 진열하시는 것 같으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