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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넘어 부활한 위대한 철학자, 그리고 다시 부활을 꿈꾼다
"시대를 넘어 부활한 위대한 철학자, 그리고 다시 부활을 꿈꾼다" 내용보기
이 책과의 만남은 상당히 천천히 일어났었다. 처음으로 이 책의 흔적을 느낀 것은 내가 수능을 치른 후에 대학 면접대비학원에 다닐 때였다. 다소 부끄러우면서도 슬픈 기억이지만 아마도 여기서 배운 철학의 내용들이 내가 평생 배운 철학 지식의 대부분이면서, 가장 빠르게 익힌 것들이었다. 그 곳에서 나는 지금까지의 상식이 역류하는 기분을 받았고, 중세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시대를 넘어 부활한 위대한 철학자, 그리고 다시 부활을 꿈꾼다" 내용보기

이 책과의 만남은 상당히 천천히 일어났었다. 처음으로 이 책의 흔적을 느낀 것은 내가 수능을 치른 후에 대학 면접대비학원에 다닐 때였다. 다소 부끄러우면서도 슬픈 기억이지만 아마도 여기서 배운 철학의 내용들이 내가 평생 배운 철학 지식의 대부분이면서, 가장 빠르게 익힌 것들이었다. 그 곳에서 나는 지금까지의 상식이 역류하는 기분을 받았고, 중세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나는 이른바 한국의 최고학부라는 곳에 들어가게 되었고, 카오스적인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뭘 해야할지 모르는 때였고, 방향을 제시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감정적으로 혼란만 증폭되었고 시간은 흘러만 갔다. 그리고 허세에 찌들어서 명사를 닮고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고, 그 과정에서 이 책이 나에게 흘러들어왔다. 2005년도에 내가 들었던 학부 헌법시간에 정종섭 교수가 추천해줬던 첫 번째 책이 이것이었다(나중에 또 리뷰를 쓸지도 모르지만, 그 이후에 추천해 준 다른 책도 조만간 리뷰를 써볼 생각이다).

 

책은 책장에서 먼지만 쌓여갔다. 그렇게 5년이 지났고, 이제 방황에서 벗어나려는 그 때와는 다른 나와 다시 한 번 만나게 되었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 나는 독서를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내 책장에 잠들고 있던 책들이 하나씩 깨어난 셈이다. 그렇게 깨어난 책은 단순한 낡은 책이 아니었다. 내 책장에는 작가의 말대로 역사의 타임머신이 숨쉬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 속성과외로 익혔던 철학의 내용을 이제서야 이해할 수 있게끔 해주었다.

 

저자 루빈스타인이 우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중세가 단순한 암흑의 시기가 아닌, 새로운 철학과 사회과학, 자연과학을 잉태하기 위한 혼란기였다는 것이었다. 로마 이후 오랜 세월동안 묻혀졌던 옛 철학자는 이슬람교의 손을 거쳐 다시 유럽에 돌아왔다. 그것은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로제타석이 된 셈이었다.

 

하지만 그 다분히 논쟁적인 역사는 왜 묻힌 것일까? 저자는 그것이 서구 문명이 이슬람에 진 빚을 감추기 위한 다분히 의도적인 행위였다고 서술한다. 기독교의 시대를 거쳐 신앙과 이성의 분리기를 거치는 동안 그러한 행위는 의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추측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현대에서 다시금 옛 철학자의 부활이 일어나기를 고대한다. 그는 "과학과 기술이 새로운 전 세계적인 도덕성에 의해 자극받고 인도"된다면 "이성은 지구를 변형시킬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의 마지막 주장은 다소 이상론으로 들린다. 하지만 신앙으로부터 분리된 이성이 미칠듯이 날뛰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무신론자인 나는 신앙이 이성의 고삐 역할을 하리라는 생각을 쉽게 할 순 없었다. 하지만 과학과 이성의 새로운 라이벌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철학을 배우는 것이라고, 오랜 방황기동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이런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리라 본다.

 

다만 불만족스러운 점이라면, (이런 철학도서의 번역서에서 자주 느끼는) 장황하게 긴 문장을 좀 끊어가면서 쓰는게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애초에 내용 이해도 쉽지가 않은데, 주어와 서술어의 위치조차 혼란스럽게 번역을 해버린 점이 아쉽다. 아무리 좋은 주제라도 많은 이들이 느끼기 힘들다면 곤란하지 않을까.

k******5 2010.11.1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