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국사기를 펼쳐보면 고대국가에서는 참 전쟁을 많이 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전쟁은 삼국지라는 소설에 묘사된 모습이 거의 전부가 아닐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서에는 구체적인 전투 모습은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가 힘겨루기하던 모습도 이젠 새로울 것이 없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저자의 표현대로 고대의 전쟁이 새롭게 발견되는 것이다. 관산성 싸움, 광개토대왕의 군대 파견, 가야를 사이에 둔 신라, 백제의 정치적 갈등, 백제의 멸망 등 이제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식하여 왔던 고대사를 새롭게 해석하고 있다. 역사에서 상상력이 얼마나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는지 이 책 한 권으로 충분히 증명되는 것 같다. 물론 논리상의 흐름 역시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게다가 인기있는 컴퓨터 게임을 예를 들어가며 설명하는 부분에선 꽤 흥미도 있어 학생들도 거리감 없이 읽을 것 같다. 책 뒷부분에 가면 고대 전투의 모습, 무기류에 대한 설명이 실려있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이 부분을 읽은 후에 앞부분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읽어보면 그 구체적인 전투장면이 머리 속으로 주욱 떠오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고대사에서 전쟁이라는 요소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느꼈으며 아무리 사료가 빈곤하다고 해도 연구할 것은 역시 생각하기 나름이 아닐까 하는 데서 다소나마 위안이 들었다. 무척 재미있는 책이어서인지 저자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
| 나는 "히틀러는 왜 세계 정복에 실패했을까"를 읽은 적이 있다. 그때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책의 저자는 히틀러의 독일군 전쟁에 대해서 '이러 이러 했으면 정복할 수 있었다'라는, 연합군편이 아니라 독일군편의 시점에서 쓴 것이다. 이런 새로운 시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적혀있는 책이 많으면 많을수록, 역사학은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역사는 '하나의 주의'에서 보면 어쩌면 그 말이 맞다 할지 몰라도, 그것에 반박하는, 일리가 있고 근거가 있는 다른 주의의 관점들을 놓치기 쉽상이다. 이 책은 바로 '군사'적인 면으로 고대사의 미스터리가 된 전쟁들을 풀어나가는 책이다. 신라와 왜의 분쟁, 고구려의 임나가라 정벌, 백제의 관산성 전투, 백제의 부흥기, 신라의 가락국 정벌, 백제의 패망등을 이야기하고, 그것도 모자라 이해를 돕기 위해서 고대 전투의 병과와 고대 전투의 상황등을 설명해주고있다.(고대 전투에 대햔 설명등은 부족하나 싶지 않다. 뭐 이해를 돕기 위해서라지만) 저자는 군사적인 측면을 근거로 하여 새로운 주장을 펼치고 있다. '군사'. 어찌보면 고대사를 해석하는 면에서 군사적인 면을 무시할 수 없으나, 일본 왜곡에 젖은 식민사학은 이런 군사적인 해석을 멀리하고, 일본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해석하기에 바빴다. 우리 사학은 그 주장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히 '기본적인 시각' 중 하나인 '군사'적인 측면은 무시 되어, 일본의 어이없는 주장을 방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청소년들을 위해 쉽게 쓰고, 2부에서는 '스타 크래프트'라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인용하여 설명하는 것으로 보아 저자는 어쩌면 우리 청소년들을 식민 사학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하는 배려를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것이 단점이 되어 책의 묘미를 줄여들게 하는 점도 있긴 있는 편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책은 훌륭한 면을 가지고 있다. 저번에 김용만씨의 고구려 서적을 본 적이 있다. 김용만씨는 고구려를 식민사학이 아닌 새로운 시각으로 보며 책을 집필했다. 그래서인지 그 책은 너무나 좋았다. 개인적으로, 식민사학에 대항하는 이런 류들의 책들은 환영한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도 환영해야 할 것이다. 이제야 일본 식민사학의 굴레에 벗어날 기회를 만난 것이다. 아직도 사학계엔 식민사학이 지배하고 있으나, 이런 책들이 많이 나오면 나올 수록 식민사학은 언젠가 붕괴 될 것이다. 그러나 근거 없는 새로운 주장은 반드시 배제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사학계에서 아주 소중한 책이라고 생각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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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전체적인 목차는 크게 두 파트로 나눠지고 있다. 첫번째는 한국사에서 중요하게 취급받는 몇몇 전쟁(예를 들어 관산성전투라든가, 고구려의 경자년 대원정과 같은...)에 대해서 저자 나름대로 체계적인 분석을 하는 부분이었고, 둘째는 전쟁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에 대해서 언급한 부분이었는데 책의 주요 내용은 첫번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저자가 전쟁에 대해서 언급할때 지나치게 신세대적인(?) 사고방식으로 전쟁을 해석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전략 · 전술을 설명할때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주인장으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물론 독자들의 흥미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게임을 거론한 것은 알겠지만 그 게임이 전쟁에 대한 설명에 있어 부가 자료로 쓰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어처구니없게도 전쟁에 대한 연구서적에 버젓히 요즘식(?) 용어라든가, 게임 관련된 용어를 여과없이 쓰고 있어 저자의 연구성과를 스스로 깎아먹고 있었다. 그 중 하나만 보자. 신라와 왜와의 전쟁에 대해서 저자는 공성전(攻城戰)에 대한 개념을 언급하면서 전략적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신라와 왜의 관계를 언급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먼저 ''왜''라는 존재에 대한 개념을 명확하게 규명하기 전에는 사상누각에 불과한 논리 전개가 될 수 밖에 없다. 저자는 철저하게 왜라는 존재를 바다 건너의 해상세력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삼국사기』에 기록된 왜는 해상활동도 했지만 더불어 육상활동도 겸했던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부분을 저자는 왜의 해안거점 확보라는 식으로 해석했는데, 이는 전쟁을 떠나서 왜라는 존재에 대한 인식이 잘못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최근 학계에서 한반도 왜라는 용어도 사용하고 있는 마당에 왜를 무조건 바다 건너 살던 해양세력이라고만 인식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그릇된 것인지를 저자는 생각치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주인장이 첫번째 신라와 왜의 전쟁 부분에 대한 점수를 매기자면 100점 만점 중에 50점 이상을 받기 어려운 내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뒤에 등장하는 세가지 내용, 관산성전투에 대한 부분과 대가야를 합병한 부분, 백제의 멸망에 대한 부분은 눈여겨볼만 했다. 그래서 총평을 하자면 전반적으로 왜와 관련된 저자의 생각들은 뭔가 2%가 부족한 것들이어서 점수가 낮을지 몰라도 나머지 부분들은 분명 참신한 해석을 하고 있어서 참고할만 하다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뒷부분에 고대 전투의 기본 요소, 전쟁의 변수, 보급과 동원체제, 지리적 환경과 전략 · 전술이라는 챕터를 두어 전쟁사를 이해하는데 있어 기본적인 내용들을 정리하고 있어 독자들의 이해를 구하고 있는 점이 추가점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연구서적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고 개설적인 내용이 많기 때문에 전체적인 책의 내용이 전쟁사 관련 연구서적의 선구자격인 책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다. 앞에서도 분명 언급했지만 아무리 독자들의 이해를 구한다 하더라도 PC 게임을 예로 들면서 설명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역사적으로 널리 알려진 타문화권의 전쟁이나 전투에 대해 언급하면서 비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자료 제시 방법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 책에서도 그런 부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전체적인 책의 내용을 뒷받침하기에는 부족했으니 말이다. 암튼 우리나라에서 나온 몇 안 된 전쟁사 관련 서적인만큼 분명히 눈여겨볼만한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전쟁사 관련된 공부를 하거나 전쟁이나 전투에 대한 개념을 익히고자 하는 사람에게 추천하는 바이다. |
| 오래전부터 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읽었습니다. 새로운 배움이 많았습니다. 같은 성격의 책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까지 이어서 출간되면 좋겠습니다. 표지와 편집 등도 맘에 듭니다. 특히 주 처리를 좌우쪽이 아닌 아래쪽에 한 것이 참신하고, 읽기에 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 개인적으로 아쉬움도 없지않았습니다. 뭐랄까, 곁가지가 많았다고 할까. 336p 분량인데 250p 정도로 압축했다면 한결 짜임새 있는 책이 되지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컴퓨터게임 운용방법을 역사상의 전투와 결부지어 설명하는 방법! 분명히 새롭고 흥미를 유발하는 아이디어였다고 봅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자주 스타그래프트 등의 게임 용어가 등장함으로써 외려 독서의 집중력을 떨어뜨렸다고 봅니다. 물론 제 경우 컴퓨터 게임을 모르기 때문에 겪은 불편일 겁니다. 제 마지막 독후의 감은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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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에 대한 관심이 전쟁에 대한 흥미를 돋우웠다. ‘전쟁의 발견’은 그 연장선상에서 접하게 된 책이다. 물론 고구려 이야기에 관심을 모을 이유는 없다. ‘한국 고대사의 재구성을 위하여’란 부제를 통해 알 수 있듯 책은 신라, 왜, 백제, 고구려의 전쟁 이야기와 전쟁 일반에 대한 논의를 담았다. 저자 이희진은 한국사를 전공한 분이다.
저자에 의하면 전쟁은 기본적으로 정치의 연장이다. 저자는 전쟁의 역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일부 몰지각한 역사가들 때문에 조상들이 바보로 몰린다고 말한다. 고대사의 전쟁과 현대사의 전쟁은 다르다. 고대 전쟁에서는 전 국토를 방어한다는 개념이 성립하기 어렵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성(城)을 위주로 한 전략 거점을 집중 방어하고 나머지 지역은 유사시 방어하는 형태의 전략을 구사하는 경우가 많다.
현대전은 성벽 대신 지하 요새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현대는 전략차원의 재고를 쌓아놓을 수는 있지만 자원의 소모 속도가 근대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기에 전투에서 그 많은 탄약, 연료, 장비 등의 수요를 감당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대전은 수송망과 통신망을 지키기 위해 영토 전체를 지킨다는 발상이 일상적이다. 적이 영토 안으로 진입해 자국 수송망이나 통신망을 마음대로 휘젓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한국 고대 국가의 전투에서 동원 병력 규모는 대개 수천 명이다. 기록상 최대 규모는 백제가 4만, 신라가 5만, 고구려가 10만이다. 당시에는 동원 병력 자체가 현대전과는 달랐다. 고대에는 방어는 고사하고 모든 전선에 병력을 배치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당시 전투는 전선이 아닌 전략거점인 성을 중심으로 벌어졌다. 공성(攻城)은 성을 공격하는 것이다.
농성(籠城)은 성을 지키는 것이다. 시위(示威)대들이 한자리를 떠나지 않고 지키는 것을 비유하는 점거 농성이란 말이 기억난다. 고대 전쟁의 주력은 보병과 기병으로 나눌 수 있다. 보병은 대열 유지가 생명이다. 기병은 정찰과 돌파가 주요 임무다. 한국 전쟁사에서 기병의 비중은 적다. 개활지(開豁地; 탁 트인 공간)가 드물기 때문이다. 저자는 신라와 왜의 전략적 차이를 이야기한다. 신라에게 왜는 큰 전략적 가치를 지닌 지역이 아니었다.
국운을 걸고 장악해야 할 만큼 노력과 희생을 치를 의욕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는 의미다. 왜군은 주로 변경을 약탈하는 전략을 썼다, 신라는 고대 전쟁의 일반적 양상인 전면전을 치를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왜가 오랜 세월 주도권을 잡았던 것처럼 보인 것이다. 왜는 신라 성을 함락시킨 경우가 드물었고 함락시켰다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빼앗겼다.
성의 소재지인 산 자체가 천연 요새이기 때문에 공격측에서는 평지 성을 공격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그래서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공성전에서는 대체로 성을 함락시키기 어려웠다. 그래서 포위만 해놓고 성안 물자가 떨어져서 방어측이 지치기를 기다렸다. 이게 바로 지리적 특성의 영향이다. 물론 농성은 방어에 유리한 대신 활동 범위에 제약을 받는다. 농성이 장기화될 경우 물자가 떨어져 아예 생존 자체에 위협이 되었다는 의미다.
그래서 성문을 열고 나가 싸웠던 것이다. 청야 전술(淸野 戰術)이 있다. 주변에 적이 사용할 만한 모든 군수물자와 식량 등을 없애 적군을 지치게 만드는 전술이다. 견벽청야(堅壁淸野)라고도 한다. 전쟁사를 재구성하는 데에 고고학적 증거만으로는 부족하다. 문헌 자료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4~5세기 야마토 왜는 수수께끼의 대상이다.) 그들이 4세기 이후 급성장했다는 기록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고구려가 왜를 몰아내기 위해 5만 대군을 투입했다는 광개토왕릉비문(기록)이 있다. 물론 ‘삼국사기’의 ‘고구려본기’에는 왜에 관한 기록이 전혀 없고 ‘일본서기’에도 수백 년 넘게 이어져왔어야 하는 고구려와의 대립과 갈등에 대한 신빙성 있는 기록이 없다. ‘일본서기’식 시각에서 보면 당시 고구려가 가장 많은 분쟁을 빚은 나라는 백제였다. 4세기 이후 고구려와 백제의 분쟁은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자주 나타난다.
광개토왕 비문에는 백제를 백잔(百殘)이라 부를 만큼 증오심이 강하게 나타났다. 저자는 전쟁의 역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이상하게 왜곡될 수 있다고 말한다.(59 페이지) ‘손자병법’에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이 있다. 싸우지 않고 상대가 가진 자원을 고스란히 차지할 수 있는데 굳이 상대를 박살내야 직성이 풀린다는 자가 있다면 그는 전략가로서의 자질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의 격언이 강조되는 이유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근초고왕은 격변기에 활약했으면서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전략을 찾아 실행한 인물이다. 그리고 이 점이 마한과 가야를 동시에 정복하면서 고구려와도 전쟁을 치를 수 있었던 이유다. 백제의 고유 역사서가 사라진 지금 남은 기록만으로 근초고왕의 업적과 의도를 총체적으로 전달할 수 없다.
4세기의 역사는 왜곡되었다. 강력한 고구려 세력에 맞서 남방에 반(反) 고구려 세력권을 형성한 중심이 마치 야마토 왜였던 것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저자는 신라와 왜의 전쟁 부분만 따로 떼어내 보면 퍼즐의 일부분만 보고 전체 그림을 제멋대로 그려내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광개토왕이 즉위할 무렵 동아시아 국제정세는 백제와 고구려가 양축을 형성했다. 백제는 혼자가 아니라 유사시 가야와 왜까지 조정 가능했다.
광개토왕 즉위 이전 시기는 백제는 근초고왕에서 근구수왕대에 해당한다. 고국원왕(광개토왕의 할아버지)대의 고구려는 남과 북의 적에게 줄곧 당하기만 한 시기였다. 그렇지만 고구려도 잠재력이 있는 나라였다. 나름의 반성과 재정비 시기를 거쳐 재기했다. 광개토왕대에 그럴 수 있었다. 고구려는 백제의 팽창을 막기 위해 반 백제 세력을 규합했다. 고구려와 신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신라가 고구려에 접근해 얻은 결실 중 하나는 내물왕 22년 신라 사신이 고구려의 소개로 전진(前秦)에 간 사건이다. 신라는 고구려 덕분에 국제무대에 데뷔한 셈이다. 당시 국제관계에서 중국과 교류한다는 것은 하나의 나라로 인정받는 것을 의미했다.
사실 광개토왕이 왜를 의식해 5만 병력을 동원한 것은 아니다.(121 페이지) 남방의 백제는 물론 북방의 연(燕)나라도 염두에 두어야 했던 고구려가 이해관계가 맞은 신라를 침공하는 왜를 물리치기 위해 5만 병력을 동원한 것은 왜가 강해서가 아니라 속전속결을 염두에 둔 결과다. 저항 못할 대군을 동원한 것이다.
‘백제 멸망의 비화’라는 부제를 가진 ‘편견으로 얼룩진 전쟁‘에서 저자는 의자왕 이야기를 한다. 의자왕은 한때 중국측에 의해 해동증자(海東曾子)라 불렸던 왕이다. 태자 때부터 어버이를 잘 섬기고 형제들 우애도 보여 그렇게 불린 것이다. 공자 만년의 제자로 이름이 삼(參)이었던 증자는 중국의 사상가이다. 이문회우(以文會友) 이우보인(以友輔仁)이란 말을 한 사람이다. 저자는 백제군이 최소한 백강(白江) 지역에는 배치되어 있었다는 기록이 있음을 언급한다.
백강은 부여 북부를 흐르는 강이다. 백제가 백강 지역에 군사를 배치하지 않아 나당 연합군이 이 지역을 쉽게 통과했다는 말은 허구인 것이다. 삼국사기를 비판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유교적 합리주의 사관에 의해 쓰인 삼국사기는 왜곡도 불사했다. 도덕성으로만 세상을 판단하면 기본적으로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볼 수밖에 없게 된다. 또한 삼국사기는 철저하게 신라의 시각으로 쓰인 역사서다.
고구려의 역사를 잇는다고 자처했던 고려 시대에 쓰인 역사서이지만 고구려를 비난하는 내용이 은근히 많다. 훈요십조에서부터 역적의 땅이라고 비난했던 백제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나당연합군의 기본 전략은 당나라 군대는 서해안을 따라 해로로 진격하고 신라군은 육로로 진격하였다가 백제 수도인 사비에서 합류해 공격하는 것이었다.
당과 백제 사이에는 고구려가 자리하고 있었다. 당나라 군대가 사이가 좋지 않은 고구려를 통과하겠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나라가 백제에 군대를 투입하기 위해서는 해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당나라는 보급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신라군이 그 역할을 했다. 이런 전략은 백제 멸망 이후 고구려를 공격하는 데에도 적용되었다.
당시 당나라는 1900척의 배로 13만 병력을 수송했다. 당나라는 후에 고구려 정벌 시에 신라가 보급에 적극적이지 않자 시비를 걸었다. 단순 비교는 무리이지만 현대전에서는 통상적으로 전투부대보다 지원 병력의 비중이 크다.
나당연합군이 같이 육로로 이동하는 것은 해로를 이용하는 것과는 격이 다르다. 배로는 며칠 버티기에도 곤란한 수준의 보급품 밖에 수송할 수 없어서 나머지 물량은 육로를 이용해 운반해야 했다. 백제는 결국 나당연합군의 백강 상륙을 막아내지 못했고 김유신 부대가 육로로 진입하여 당나라 군대와 합류하는 것도 막지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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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발견- 한국 고대사의 재구성을 위하여 ”
이희진, 2004년 9월, 출판사 “동아시아” 한국 고대사의 앞마당에서 벌어진 유의미한 몇몇 전장의 전과 후를 재해석해보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저작이다. 百濟 聖王을 아세요? 서기 462년, 일본가는 배를 탄 백제 개로왕의 희빈이 선상에서 산통을 겪다 일본 규슈 연안 ‘각라도‘에서 사내아이를 순산한다. 곧, 사마왕 백제 무령왕이다. 그의 아들이 바로 백제의 26대 왕 “聖王”이다. 523년 무령왕이 죽고, 뒤이어 백제의 왕위에 오른다. 삼국사기 권제26. 백제본기 제4편이다. (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과학원에서 1958년에 펴낸 삼국사기 복사본을 뒤적이고 있다.) “이름은 명농이니 무령왕의 아들이다.” 일본서기 흠명천황 15년조 기사에서는 이 분을 “聖明王“이라 부른다. 알다시피 일본서기 흠명천황조는 백제본기의 내용을 엄청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기로 유명하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상당부분 조작되어버린 “일본서기” 이지만... 아마도 당시 일본의 황족, 귀족이 百濟를 영원의 모국으로 생각하였기에 그랬을 것이다. 모국이 망하였으니 그를 망하게 한 신라, 나아가 반도에 대한 적개심은 오죽할까. 뿌리가 깊은 정도가 아니라 철천지 원쑤가 된 것이다.) 554년 지금의 충북 옥천 군서, 즉 管山城에서 백제와 신라가 큰 싸움을 벌인다. 진흥왕 15년, 신라가 나제동맹을 깨고 한강유역을 급습, 점령하자 이에 대항하고자 성왕은 대가야, 왜와 연합하여 관산을 치게 되 것. 이 전투에서 총3만의 군사를 잃은 백제는 쇠퇴의 길로, 큰 공을 세운 김 무력(김 유신의 할아버지)은 신라의 발흥을 주도하게 되어간다는 것이 역사적 통설이다. 저자는 이 전투가 백제의 참패로 끝난 것은 ‘우연‘한 사건의 결과로 주장하고 있다. 나도 이부분에서 솔깃한 흥미를 느끼며 읽어 나가다 그 우연이 너무나 엄청난 사건이었음을 알고 눈가가 젖어버리는 참담을 맛보았다. 다음은 이 우연한 사건에 관한 몇 가지 출처가 다른 기사들의 나열. -다음-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 15년조] 백제왕 ‘명농(明襛)’이 가양(加良) 과 함께 “관산성”을 공격해 왔다. 군주 각간 ‘우덕’과 이찬 ‘탐지’등이 맞서 싸웠으나 전세가 불리하였다. 신주(新州)의 군주 김 무력(金武力)이 주의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교전함에 비장 삼년산군(지금의 보은)의 고간 “도도(都刀)”가 급히 쳐서 백제 왕을 죽였다. 이에 모든 군사가 승세를 타고 크게 이겨 좌평(佐平) 네 명과 군사 2만9천6백 명을 목 베었고 말 한 마리 살아 돌아가지 못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성왕32년조] 가을 7월에 왕은 신라를 습격하고자하여 친히 보병과 기병 50명을 거느리고 밤에 구천에 이르렀더니 신라의 복병이 튀어나오므로 그들과 싸우다가 왕이 난병들에게 살해되었다. 시호를 “聖” 이라 하였다. [일본서기. 흠명천황 15년조] ... 여창(餘昌) (백제 성왕의 아들, 나중에 위덕왕)이 신라 정벌을 계획하자 ‘기로‘가 “하늘이 함께 하지 않으니 화가 미칠까 두렵습니다.”라고 간하였다....... 그 아버지 明王(聖王)은 여창이 오랬동안 행군하느라 고통을 겪고 한참 동안 자지도 먹지도 못했음을 걱정하였다. 아버지의 자애로움에 부족함이 많으면 아들의 효도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생각하고 스스로 가서 위로하였다. 신라는 명왕이 직접 왔음을 듣고 나라 안의 모든 군사를 내어 길을 끊고 격파하였다. 이 때 신라에서 좌지촌 사마노(飼馬奴= 말먹이 주는 머슴) 고도(苦都 또는 谷智)에게 “ 고도는 천한 노(예)이고 명왕은 뛰어난 군주이다. 이제 천한 노(예)로 하여금 뛰어난 군주를 죽이게 하여 후세에 전해져 사람들의 입에서 잊혀지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하였다. 얼마 후 고도가 명왕을 사로잡아 “왕의 머리를 베기를 청 합니다”라고 청하였다. 명왕이 “왕의 머리를 노(예)에게 줄 수 없다”하니 ......고도는 머리를 베어 명왕을 죽이고 구덩이에 파 묻었다... 여창은 포위 당하자 빠져나오려 했으나 빠져 나올 수 없었으나... 겨우 샛길로 빠져나와 도망하여 돌아왔다... -끝- 저자는 여러 정황상, 백제군이 “관산성”을 이미 함락시킨 후, 승전보를 들은 성왕이 좌평 4명과 겨우 50명의 호위병을 거느리고 관산성에 거의 도달한 시점에 “우연”히도, 공격받는 신라 “관산성”을 지원하고자 남하해온 김 무력(김 유신의 조부) 휘하부대의 매복에 걸려 어이없는 참살을 당한 것으로 본다. 聖王의 넋에 맑은 술 한잔을 올리고자 소주 두병을 샀다. 반병 나마를 자기 잔에 담아 마셨다. ㅈㅣㄴ (부기) ‘일본서기‘에 신라군이, 그 생포한 “백제 성왕”을 능멸한다는 기사는 독자로 하여금 新羅에 대한 敵意를 고양하고자 하는 일본서기 편찬자의 ’프로퍼간다’적 성격이 짙어보인다. |
| 나는 학교에서도 배웠고, 나름대로의 독서를 통해서도 과거 한국사의 윤관을 조금은 안나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답답했었다. 역사란 정말 이런 것일까. 그 시대를 좀 더 생생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를 현재에 재구성할 수는 없는 것일까... 하는 갈증이 늘 있어왔다. 최근에 그런 갈증을 풀어주는 책들이 나오고 있어 기쁘다. 이 책은 삼국시대의 전쟁사를 통해 당시의 한반도가 어떻게 역동적으로 움직여왔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좋은 책이다. 게다가 구체적인 자료들까지 보강하고 있다. 당시에 사용하던 무기며 복식들을 소개함으로써 당시의 생생한 모습을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런 과정들이 축적됨으로써 우리의 과거는 우리에게 한 발 더 다가오게 될 것이다. |
| 우연히 사보게된 이책... 신문에서인가? 책 광고를 보고 한국고대사에서의 전쟁이 얼마나 오해가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라는 소리에 솔깃 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우리고대사자체가 삼국사기에 기초를 두고있고 그동안 사대주의니 아니면 식민사학 등에 따라 그 사실이 많은 부분 왜곡 되고 윤색되었을 거란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요. 그럼에도역사란 것이 승자에 입장에서 기록 되는 것이기에 그려러니 하며 넘겨왔었는데 이책은 그런 부분을 많은 부분 에서 나름대로 객관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도록 해줍니다. 작가가 스타크래프트라는 온라인게임과비교햐면서 풀어간 글은 재목에서 느끼는 중압감을 많은 부분 가벼웁게 해주었다는 생각 입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내용이 자주 중복되는 것 같군요,좀 거칠게 씌여졌다는 표현이 맞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임나일본부에대한 작가의 의견은 상당 부분 공감을주네요(일본애들이 그렇게 주장할 만한 근거가 나름대로 되는 듯 ^^),왜 당시 거대국가였던 고구려가 일본 본토를 치지않았는지에대한 의견또한 공감 할만 하고... ... 고대사에대한 사실 기술 여부를 떠나서 지금까지 관과했던 부분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있게해준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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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대사. 또 전쟁에 초점을 둔 책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설령 있다고 해도, 그 수준은 너무 높거나 낮다. 재미있고 참신한 시각( 가끔은 그것이 조금 과할지라도)의 책은 찾아보기 힘든데 이 책은 재미있는 시각으로 우리 고대사, 그 중에서도 전쟁사를 다뤘다. 재미있다. 벌써 나온지 오래된 책인데, 다시 나오거나 이같은 류의 책들이 많이, 풍성히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우리 역사서의 질적 양적 성장을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