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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세계화로 가는 길, 세계화와 싸운다
"진정한 세계화로 가는 길, 세계화와 싸운다" 내용보기
“넌 뭘 그렇게 많이 사냐?”    하루는 룸메이트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무엇을 그렇게 계속 사는 거냐고 말이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온라인 장터에 들어가서 물건을 체크한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그는 이걸 ‘뽐뿌받는다’라고 표현한다.) 그걸 반드시 사고야 만다. 그에게는 20만원짜리 이어폰이 있고, 10만원이 넘는 MP3가 두 개나 있다. 디지털 수동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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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뭘 그렇게 많이 사냐?”

 

 하루는 룸메이트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무엇을 그렇게 계속 사는 거냐고 말이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온라인 장터에 들어가서 물건을 체크한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그는 이걸 ‘뽐뿌받는다’라고 표현한다.) 그걸 반드시 사고야 만다. 그에게는 20만원짜리 이어폰이 있고, 10만원이 넘는 MP3가 두 개나 있다. 디지털 수동카메라의 가격도 100만원이 훌쩍 넘는다. 충동적으로 사놓고 입지 않는 옷도 꽤나 된다.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할 때마다 쓰는 돈도 장난이 아니다. 하루는 한달동안 여자친구에게 쓴 돈을 계산해 봤는데 60만원이 나왔다고 말했던 적도 있다. 그렇다고 그가 집에 손을 벌리는 철없는 애는 아니다. 과외를 하면서 한달 100만원이 넘는 돈을 벌고 그 돈을 모아서 자기가 사고 싶은 물건을 사는 것이다. 그는 ‘내가 돈을 벌어서 내가 쓰는데 무엇이 잘못된 것이냐’라고 대꾸를 했다. 하지만 난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물건을 계속 산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그는 많이 벌고 많이 쓴다. 그렇게 보면 난 그와는 반대의 입장이다. 나는 많은 돈을 벌진 않지만 그만큼 많이 쓰지도 않는다. 내가 둔감한 건지 어렸을 적부터 물건에 대한 욕심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옷이야 헤지지 않는 이상 계속 입으면 되는 거고, MP3나 카메라 같은 것은 그 본연의 기능만 하면 되니까 굳이 비싼 걸 살 필요도 없다. 난 올해 세벌의 옷을 샀다. 그나마 하나는 동아리티다. MP3는 이제 팔지도 않는 256MB다. 아마 4만원에 샀던 걸로 기억한다.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할 때도 한번에 3만원을 넘게 쓰는 일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많이 벌고 많이 쓰는 것이 좋은지, 조금 벌고 조금 쓰는 것이 좋은지 한참동안 대화를 해보았는데 룸메이트가 이 말을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비가 미덕이야! 나 같은 사람이 이렇게 소비를 하니까 사회가 잘 움직이고 있는 거잖아. 너 같은 사람만 있으면 이 사회는 붕괴해버린다구” 나는 룸메의 말에 대꾸를 하지 못했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남아 있었다. 그때 <세계화와 싸운다>를 읽게 됐다. 그리고 이 책은 나에게 ‘소비’에 대해서, ‘자본주의’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소비를 조장하는 사회

 

 부시 대통령의 어머니인 바바라 부시는 부시 대통령에게 “미국을 지지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물었다. 부시 대통령은 그녀에게 “엄마, 정말 미국을 돕고 싶으면, 사고 또 사고 또 사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미국을 이끌어가는 것, 곧 현대 자본주의를 이끌어가는 것이 ‘소비’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 소비가 사람들이 정말로 원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업들은 끊임없이 광고를 한다. 미국에서는 TV 한 프로그램이 시작할 때 한번, 중간광고 세 번, 끝날 때 한번 총 다섯 번의 광고를 한다. 언론도 기업의 광고에 의해 먹고사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미국 사람들은 끊임없이 ‘소비하라!’라는 메시지를 주입받는다. 빌리 목사는 이것을 ‘소비주의’라고 말한다. 소비주의는 작은 상점을 파괴하고 쇼핑몰을 만들어낸다. 모든 동네는 획일화된다. 쇼핑몰은 사람들에게 외친다. ‘소비하라! 소비하라! 소비하라!’

 

 이는 비단 미국의 모습이 아니다. 자본의 숨결이 스며든 곳에는 언제나 소비주의가 뒤따른다. 미국의 거리와 한국의 거리는 별반 다르지 않다. 거대한 쇼핑몰, 스타벅스, 수많은 광고들. 이것은 중국 베이징에서도, 심지어 파푸아의 쿠알라 켄카나도 마찬가지다. 내 룸메이트가 말했던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는 사회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되고 그렇기 때문에 소비는 미덕으로 칭송된다.

 

 하지만 자본주의 밖에서 사고해본다면 소비는 결코 미덕이 아니다! 소비주의로 인해 사람들은 과잉 소비를 하게 된다. 한국에서 핸드폰을 교체하는 주기는 2년이 채 안된다. 미국 인구의 1/3은 비만이다. 사람들이 과잉 소비를 한다는 단적인 예다. 나는 <세계화와 싸운다>를 읽으면서 ‘지구의 유한한 자원이 언제까지 이렇게 과잉 소비를 견뎌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빈곤층의 피는 사회를 움직이는 윤활유

 

 그나마 소비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행복한 편이다. 자본은 사람들을 양극화시킨다. 미국의 화려한 도시 안에는 실직자 700만명이라는 어두운 모습이 있다. 어느 한쪽에서 과잉소비를 하는 동안 어느 한쪽에서는 굶고 있다. 자본주의는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에게는 ‘소비할 수 있는 자유’라는 보상을 주지만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에게는 한 치의 동정심을 베풀어주지 않는다. (더욱 슬픈 것은 ‘소비할 수 있는 자유’를 얻은 사람들의 행복 지수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전체적으로 볼 때 그 양극화는 더욱 심해진다. 파푸아 섬의 원주민들은 숲 속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이들의 행복은 트리포트라는 광산회사가 들어오면서 깨졌다. 트리포트는 파푸아섬의 어츠버그(광석산)에는 구리가, 그래스버그(수풀산)에는 엄청난 양의 금이 묻혀있다는 것을 알았다. 트리포트는 날마다 바위 70만톤을 옮기면서 자원을 채굴해갔다. (쿠푸왕의 피라미드를 일주일에 한번씩 옮길 수 있는 작업량이다.) 원주민들은 집을 빼앗겼다. 깨끗했던 강도 더러워 졌다. 트리포트에 저항하는 원주민들에게는 무참한 살육이 이루어졌다.

 

 남아공에서는 ‘쏘에토전력위기위원회’라는 기구가 있다. 말은 거창하지만 그저 평범한 시골 청년들이다. 이들은 곡괭이와 곡식포대를 사용해서 전기가 끊긴 집에 전기를 다시 잇는다. 불법이다. 그리고 위험하다. 그래도 청년들은 전기를 잇는 일을 계속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도 절박한 상황이기 때문에 불법인지, 위험한지 가릴 여유가 없는 것이다. 국영전기회사 에스콤이 민영화되면서 전기세는 날이 갈 수록 인상되고 있다. 전기료를 내지 못하는 빈민들은 꼼짝없이 어둠과 추위 속에서 살아야만 한다. 인상되고 있는 것은 전기료 뿐만이 아니다. 공기업이 민영화되면서 수도세, 집세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자본은 ‘효율성’을 내세우면서 민영화를 추구한다. 하지만 그 효율성이라는 것은 결국 부자가 얼마나 더 효율적으로 가난한 자를 착취하는지의 여부다. 민영화는 착취 구조의 고도화에 다름아니다. ‘반드시 사용해야만 하는’ 재화에 세금을 매기는 것은 도대체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발상인지 모르겠다. 세금을 매겨야 한다면 그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생산해 낼 수 있을 정도로만 받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공기업의 역할이다. 하지만 사기업은 그 이상의 이윤을 얻으려 한다. ‘반드시 사용해야만 하는’ 재화에 세금을 매기고 세금을 못내는 사람들은 그 재화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전기가 안들어오는 방에서 어둠과 추위에 떨 수로, 물이 나오지 않아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살아갈 수록, 집세가 없어 거리로 내쫓겨 날 수록 부자들의 삶은 더욱 윤택해진다.

 

 

 

정답은 ‘많다’

 

 내가 이러한 자본의 폐해를 고쳐야 한다고 말을 하면 누군가는 이렇게 되물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도대체 뭘 하겠다는 것인데? 세계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대안도 내놓지 못하는 단지 안티에 불과하잖아?” 하지만 킹스노스는 말한다. “해답이 없는 게 아니라 너무 많은 게 아닐까?”라고 말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은 매년 다보스에 모여서 세계 1,000대 기업들을 한 자리에 모아서 세미나를 연다. 이들은 어떻게 하면 더 발전된 기업을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이들을 자본주의를 이끌어나가는 핵심 두뇌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다보스에 세계경제포럼이 있다면 포르투 알레그라에는 세계사회포럼(WSF)이 있다.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노조, 부채운동가, 평화운동가, 경제학자, 농부, 환경운동가, 교수 등 이들은 일주일동안 포르투 알레그라에서 대안적인 미래를 함께 고민해보는 세미나 시간을 갖는다. 참가자들이 하나로 묶일 수 없는 만큼 그들이 외치는 대안적인 미래도 하나로 묶일 수 없다. 다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은 획일화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세계화는 거부하지 못하는 추세다’라면서 획일적인 미래를 제시하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나는 노엄 촘스키의 말이 가장 인상 깊었다.

 

 “역사를 통틀어 모든 진보적 대중운동의 목표는 전 세계 주민들의 권익을 위해서 세계적인 연대운동을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모임에서는 리더십을 권력의 중심에서 주민일반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계적인 야심입니다. 내가 보기에 이 모임은 세계화포럼입니다. 바로 지금 뉴욕에서 하는 것이 반세계화포럼입니다. 그들은 세계화를 거스르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이 성공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세계화를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게 되는 것’이라 정의한다면 세계화의 핵심에는 ‘다양성’이라는 가치가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너무나도 당연한 말을 대부분의 기업가들은 모르고 있다. 그들은 똑같은 거리, 똑같은 쇼핑몰, 똑같은 광고를 추구한다. 세계 모든 곳에 자신의 기업을 퍼트리려 노력한다. 이들은 ‘세계화를 지향한다’고 말을 하지만 사실 이들이야 말로 세계화와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앞으로 세계 각국에서 자본과 싸우고 있을 운동가들이 얼마나 선전을 해줄 지 기대된다. 나도 그들과 함께 자본과 맞서 싸우겠다고 생각을 했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세상,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세계화다.

 

YES마니아 : 골드 m********8 2009.02.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