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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비슷한 분위기일 거라 생각했다. 폴란드와 체코가 같은 동유럽 국가라 그렇게 생각했다. 많이 다른 소설이다. <폴란드인>의 남자 주인공은 가벼운 사랑을 원치 않는다. 첫만남에서부터 그의 영혼을 끌어당기는 중력을, 여자에게서 느낀다. 무거운 사랑... 여자의 마음은 그와 다르다. 자,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소설에서는 여자가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결단을 내린다. 밀란 쿤데라와 달리 쿳씨는 여성의 섬세한 시각에서 이야기를 끌고간다. 여자의 당혹감이 호기심으로 연민, 호감으로 바뀐다. 그러다 상대와 자신의 감정을 구분하고 선을 긋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흥미로웠다. 40대 여주인공이 화자이고 그녀를 열망하는 남자가 70대라니, '롤리타'의 실버 버전인가? 여자 입장에서 보면 서른 살 많은 남자와의 로맨스는 낯설고 당혹스럽다. 기대가 사그라드려는 순간, 반전이 일어났다. 뒤로 갈수록 섬세해지는 스토리, 간결하면서 철학이 담긴 문장, 희곡을 읽는 느낌이 때로 들었다. 연애를 소재로 했으면서도 제목은 <폴란드인>인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서로 다른 국적과 언어, 서른 살 차이... 이런 설정을 통해 보여주려한 것은? 사랑이란 묘약의 불가해함일까? 소통이 안 됨에도 서로에게 끌릴 수밖에 없게 하는... 여자가 폴란드인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진짜 감정이 궁금하다. 자신이 그렇게 확신하듯 남자는 그냥 한 명의 이방인이었을 뿐일까? 그렇다면 왜 그토록 그의 언어를 번역하려 애 썼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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쿳시의 『폴란드인』은 노년의 사랑을 다루면서도, 그 감정을 낭만으로 포장하지 않고 끝까지 절제된 시선으로 밀어붙이는 작품이다. 폴란드 출신의 노(老) 피아니스트 비톨트와 스페인 여성 베아트리스의 관계는 처음부터 엇갈린 온도 위에 놓인다. 그는 음악과 사랑을 동일선상에서 믿으며 헌신하지만, 그녀는 호의와 연민 사이를 오가며 끝내 한 발을 남겨 둔다. 이 미묘한 비대칭은 단순한 개인 성향의 차이가 아니라, 늙음과 욕망, 책임과 자유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쿳시는 사랑을 성취의 서사가 아니라 윤리적 질문으로 다룬다. 상대를 향한 진실한 감정은 과연 언제 폭력이 되는가, 타인의 삶에 들어가고자 하는 열망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비톨트의 집요함은 숭고해 보이면서도 동시에 부담스럽고, 베아트리스의 거리 두기는 냉정해 보이면서도 정직하다. 독자는 어느 쪽에도 완전히 설 수 없게 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음악의 사용이다. 쇼팽은 감정을 고양시키는 장치가 아니라, 말로 전달되지 않는 간극을 드러내는 매개로 기능한다. 음악은 그를 설명하지만, 그녀를 설득하지는 못한다. 결국 이 소설은 사랑의 가능성보다 한계를 더 오래 응시한다. 그래서 『폴란드인』은 쓸쓸하지만 성숙하다. 늙어서도 사랑할 수 있다는 위안 대신, 사랑 앞에서 끝내 혼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존엄을 조용히 남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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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책사는 재미에 맛들려서 읽을 만한 책들을 찾아보다가 제가 좋아하는 예술분야 소설이라 구매해봤습니다. 시간이 없어 아직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곧 읽고 리뷰 제대로 써보고 싶네요. 여담으로 표지가 참 현대미술 느낌이 나는데 책 내용도 난해하려나.. ㅎ |
| 존 쿠시 작가의 '추락'을 재미있게 읽고 추가로 구매한 '폴란드인' 책입니다. 아직 읽기를 시작하진 않고 슬쩍 훔쳐보기만 했네요. 추락 만큼 저에게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하는 작품일지 기대가 됩니다. 오늘도 예스 24에서 구매할 책을 검색 해 보는 주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