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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욕망 앞에 자유로운가 글·김선미 <외롭거든 산으로 가라> 저자 등산은 순위를 다투는 스포츠가 아니라는 생각은 등산가들 스스로 자존심을 지키고 싶은 소망일뿐일까. 실제로 등산의 역사는 경쟁의 연속이었다. 멀게는 알프스의 초등정시대부터 가깝게는 히말라야 14좌를 오른 세계 최초의 여성이 누가 될 것인지가 판가름 날 때까지. 등산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국가권력과 매스컴과 스폰서들은 끝없이 승부욕을 부채질해 왔다. <세로토레, 메스너, 수수께끼를 풀다>는 등산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개인과 사회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히말라야에서 초등정 경쟁이 끝나고, ‘높이’보다는 ‘어려움’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등산의 가치가 변하면서 파타고니아 빙원 위에 우뚝 솟은 세로토레는 등산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수직에 가깝게 치솟은 난공불락의 화강암 절벽이 가장 강인한 도전자들의 각축장이 된 것은 당연한 일. 단순히 등반 실력뿐 아니라 도덕과 품성까지 드러나게 만든 인생의 시험 무대가 된 것이다. 세로토레의 대표적인 경쟁자였던 발터 보나티와 체사레 마에스트리에 대해 라인홀트 메스너는 이렇게 평한다. “마에스트리는 산보다 자기를 높이지만, 보나티는 언제나 자기를 산 밑에 둔다. 이것을 보면 나중에 누가 더 위대한 등반가가 될지 알 수 있다.” 실제로 두 사람이 토레 정상을 오르기 위해 도전했던 루트를 명명한 것에서도 그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난다. 정상을 눈앞에 둔 마지막 안부에 도달한 보나티는 그곳을 ‘희망의 안부’라 이름 붙였다. 산에 대한 경외심을 담은 이름이었다. 반면 마에스트리가 오르려고 한 루트의 정상 바로 아래쪽은 ‘정복의 안부’다. 1959년 1월 마에스트리는 자신이 정복의 안부를 통해 토레 정상에 올랐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초등정의 대가로 토레는 그의 파트너인 토니 에거의 목숨을 빼앗아갔다고. 보나티는 마에스트리의 소식을 듣고 깨끗이 돌아섰다. 그러나 세로토레는 초등정이 보고된 다음부터 오히려 더 뜨겁게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다. 최초의 루트를 따라 산을 오르려고 했던 등반가들이 토레를 제대로 알면 알게 될수록 마에스트리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의심받는 자는 자신을 증명하려 했지만 결과는 거짓 자백을 폭로하는 막장 드라마 수준이 되었다. 1970년 마에스트리는 다시 한 번 세로토레에 도전했고 그해 12월 정상에 섰지만, 자신의 초등정 루트가 아닌 곳으로 올라갔다. 뿐만 아니라 컴프레서를 들고 바위에 볼트를 때려 박으면서 산정을 밟고 올라섰다. 이는 지금껏 등산가들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던 방법을 동원한 것인데, 사람들은 이를 수치스러운 일이라 여겼다. 이것이 과연 등산인가,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되는가. 마에스트리는 1970년의 등반에 대해 “나의 초등정을 의심하는 자들에 대한 증오심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진실은 처음부터 보나티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마에스트리의 불행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이를 추적한 메스너는 마에스트리를 심판하기보다 그의 내면을 이해하고 싶었으리라 믿고 싶다. 책 구석구석에서 그런 연민을 느꼈다. 욕망 앞에서 우리들 대부분 항상 옳은 선택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결과적으로 마에스트리는 사람들에게 등산과 인생의 본질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 문제적인 인물이 된 것만은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