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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운동장에서 흙이 사라진 건 최근의 일이 아니다.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도 마찬가지. 몸에 해로운 오염물질이 한 가득 모래 안에 포함돼 있으리라는 우려를 모든 이들이 품은 것처럼, 요즘 놀이터는 예전과 사뭇 달라졌다. 아니, 모두가 학원에 틀어박혀 공부하기 바쁜 시대이므로 놀이터 자체가 필요 없을 수도 있다. 변화한 사회상이 마냥 좋지는 않다. 내 자신이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삭막하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힘들다. 이렇게 글을 적는 나도 실은 촌스러운 도시 사람이다. 아스팔트 바닥과 콘크리트 건물에 둘러싸여 대부분의 시간을 살아온 나에게 푸른빛은 그리움에 가깝다. 여력이 닿는다면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시간이 빠듯하다면 애써 짬을 내어 짧게나마 둘레길이라도 걸어본다. 무척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날일지라도 나뭇가지가 드리운 그늘 아래 서면 더위를 잊는다. 푸르다 못해 검은 빛의 숲은 나를 넘어 세계를 넉넉하게 품는 면모를 과시하는데, 내가 그 안에 속했다는 사실이 행운처럼 느껴지고는 한다. 굳이 서양인 저자가 쓴 책을 심오하게 들여다 볼 필요까진 없었는지도 모른다. 경제 성장을 재빠르게 일궈야 한다는 강박은 모든 것의 깨부숨으로 이어졌다. 산마다 즐비했을 나무가 순식간에 베어졌다. 허허벌판은 깎이어 온갖 건물을 위한 바닥으로 돌변했으며, 깎이어 나간 나무는 목재가 되어 여기저기 쓰였다. 숲의 가치에 눈을 뜨기 위해서는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우리가 압축된 시간 안에서 겪은 바를 다른 나라 사람들도 비슷하게 경험했음을 책을 읽으며 배운다. 산업화가 마냥 좋은 건 줄 알았다. 인류의 문명이 진보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자랑스러운 나머지 그 이상을 바라보기 힘들었다. <세계숲>은 마치 뒤늦게 발견한 자연의 가치에 대한 찬미와도 같았다. 책 안에는 잃어버린 과거가 살아 숨쉬고 있었는데, 대부분이 저자의 경험에 기반한 바여서 더욱 와 닿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나의 자연에 럭힌 경험은 미천에 가까운 편이다. 고로 저자가 특정 종의 이름을 거론할 적마다 나는 대체 어찌 생긴 생명체인지를 홀로 상상하기 바빴다. 나의 그림 실력은 참으로 형편이 없어서 머릿속 세상은 백지로 남아 있을 때가 잦았다. 드물게나마 그림으로 채워진 페이지가 등장할 적이면 나도 모르게 반가움을 가득 담아 환호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의 생명체가 대부분이었다. 이리 적는다면 나의 무지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과도 같다. 겉모습이 흡사할지라도 이를 부르기 위해서는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을 들출 필요가 있었다. 적잖은 종들은 이미 오래 전 인류의 만행(?)과도 같은 행태로 인해 자취를 감추기도 했다. 생명이 다양해야 생태계는 건강할 수 있다. 촘촘히 얽힌 그물이 튼튼한 것처럼 서로 다른 것들이 얽히고 섥혔을 때 비로소 세상은 쉬이 무너지질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세상은 우려를 자아낼 정도로 단조롭다. 그나마 인간 세상에 비한다면 아직 숲은 풍성함을 유지 중인 거 같음에도 그러했다. 저자의 묘사 능력이 기대자 식물로부터 생동감이 느껴졌다. 사실 내 머릿속 식물의 모습은 한 자리에 고착(!)된 형태인 경우가 잦았다. 한 번 땅에 뿌리를 내리면 이들에겐 움직임이 허용되지 않는다. 땅과의 연결 부위로 인해 옅은 바람이 불 때면 하늘하늘 흔들리는 여유를 보이지만, 조금이라도 거센 공격이 몰아칠 적마다 식물은 꺾이거나 아예 끊어지고는 했다. 나는 이를 수동적이라고 해석했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존재. 내 안의 그릇된 식물 상을 비웃듯 저자는 식물이 지닌 활발함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들이 내뿜는 기운은 인간에게는 물론이요, 어쩌면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에게 유용한 약제로 활용되는 일이 많다. 몸에 좋고 나쁨을 분간하는 인간의 능력이 이를 가능케 했다고 이제껏 나는 보았으나, 태초에 이로운 물질을 식물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 건 가능했다. 숲의 풍성함은 식량을 갈구하는 모든 존재를 배불리 먹일 수 있는 가능성과도 같았다. 지금이야 먹을 게 넘쳐나다 못해 버리기 바쁘다지만, 과거 인류는 식물 채집에 의존해 생을 유지했다. 저자의 설명은 식물을 꿈을 꾸고 결혼을 하고 급기야 열정을 발휘해 세상을 수호하는 존재로 그리는 지점까지 나아갔다. 인간의 언어, 즉 인간의 사고 틀을 벗어날 때 비로소 저자의 설명은 이해 가능했다. 만일 식물의 언어가 있고 이를 우리가 배울 수 있다면, 그리고 이 책이 식물의 언어로 씌었다면...? 이미 충분히 경이롭지만 아마 형언이 어려울 정도의 놀라움과 마주하게 되지 싶다.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나무를 이해했다. 나무는 줄기가 비단결 같았다. 동물원 코끼리의 살갗처럼 회색이고 매끈했다. 만지면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줄기에서 신선한 내음이 풍겼다. 아이는 알았다. 줄기 냄새를 맡았다. 아무도 이러지 않았으리라 확신했다. 나무는 봄에 작고 노란 꽃을 피웠다. 혼자이나 꽃은 하나도 없었다. 꽃은 무리를 지었다. 아이는 이 꽃들을 결코 꺾지 않았다. 한 번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꽃은 나무의 일부였다. 어쨌거나 꺾을 블루벨 꽃은 얼마든지 있었고 그거면 충분했다. -p291
숲을 자신의 왕국이자 정원인양 거니는 아이의 마음이 한 때 나에게도 있었길 바란다. 잊고 지내온 혹은 잃어버린 세상을 되찾기 위한 첫걸음을 시작한 거 같은... 책을 읽는 동안 난 기분 좋은 착각에 빠져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