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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건 단지 아프간의 독립과 자유일 뿐이다.
"원하는 건 단지 아프간의 독립과 자유일 뿐이다." 내용보기
1.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가 뒷받침 되지 않을 경우 이 책에 몰입하기란 상당히 어렵다. 차라리 상당히 압축적이면서 전문적이고 약간 편향된 시각마저 엿보이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책 뒤편의 연대기를 미리 보거나 계속 참조하면서 본문을 읽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저자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객관적이고 거리를 유지하는 바람직한 기자와 기사쓰기에
"원하는 건 단지 아프간의 독립과 자유일 뿐이다." 내용보기
1.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가 뒷받침 되지 않을 경우 이 책에 몰입하기란 상당히 어렵다. 차라리 상당히 압축적이면서 전문적이고 약간 편향된 시각마저 엿보이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책 뒤편의 연대기를 미리 보거나 계속 참조하면서 본문을 읽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저자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객관적이고 거리를 유지하는 바람직한 기자와 기사쓰기에서 벗어난 글이다.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과 감정, 마수드라는 한 인간에 대한 넘쳐나는 애정을 결코 숨기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순차적 시간 진행에 따른 평전 형식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가 지그재그로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적당한 배경 지식이 없이는 책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2. 사실 자체은 하나일지 몰라도 역사란 바라보는 사람 수만큼 많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로 생소한 분야의 책을 읽을 때 의심과 조심스러움은 더 강화된다.(초등학교 시절 학급문고에 일률적으로 비치된 박정희 위인전을 보고 어린 소녀가 얼마나 감동을 받았을지 상상해 보라.) 취사 선택하는 기준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 강조하거나 축소 은폐하는 부분들에 대한 비판적 거리두기를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저자는 현재 아프가니스탄이 겪고 있는 비극의 씨앗을 소련이 뿌렸다는 판단 아래, 가장 큰 비난을 구소련에 ,그다음으로 각자의 이익에 기반한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의 공조체제가 강요한 내정간섭에 대해, 맹렬하게 비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탐욕과 무지로 무고한 국민들을 끝없는 내전으로 내몰았던 능력없는 아프간 지도자들을 질책하고 있다. 반면 <근본주의의 충돌="">에 따르면 소련이 아프간을 직접 점령하기 이전 이미 미구측의 반군 지원이 있었다는 사실, 그 목적은 아프가니스탄을 소련의 베트남으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브레진스키에 따르면 성공한 전략이었던 셈이다. 소련의 군사적 점령이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저자의 판단과 <근본주의 충돌="">의 관점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저자의 소련에 대한 비난은 분명하고 명확하다. 어떠한 여지도 없다. 반면 파쉬툰족 근본주의자인 헤크마티야르를 지원해준 미국에 대해서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안타까워하는 듯 보인다. 마치 미국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중간에 낀 파키스탄이 자국의 이해를 위해 미국을 속였다든가, 더 나아가 우리가 정확한 정보를 줬더라면 미국이 카불 탈환 당시 마수드를 밀었을거라는 기대감 같은 것들 말이다. 생각컨대 설령 미국이 파키스탄의 정보에 일차적으로 의존했다고 한들 그것만 믿고 잘못된 선택을 할만큼 어리숙한 나라가 결코 아니다. 미국이 아프간에서 무엇을 바라고 있었는지 기억한다면 (투르크메니스탄에서 파키스탄에 항구에 이르는 가스 공급관의 건설)결코 마수드는 선택될 수 없었다. 마수드가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는 한. 왜냐하면 그는 입안의 혀처럼 미국에게 봉사할 말랑말랑한 제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헤크마티야르야말로 미국이 지금까지 제 3세계에서 선택한 정치파트너의 조건과 완벽히 일치한다. 3. 아프간의 현대사를 보고 있자면 정말이지 남일 같지가 않다. 냉전에 따른 소련군의 점령, 반군에게 무기를 제공하며(심지어 육성하며) 바로 맞받아치는 미국의 개입, 아프간을 위한 도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외세의 도움을 거부할 수 없었던 상황, 근대화되지 못한 부족적 사회에서 증폭되는 파벌사이의 분파주의, 개인적 안위와 권력만이 유일한 목적이고 동기였던 소위 지도자라 불리는 인간 군상들, 그 안에서 죽어나는 건 그저 민중들 뿐이라는 사실. 20년 이상 지속된 전쟁에서 아프간을 한번도 떠나지 않고 그야말로 온 몸을 내던져 외세와 끝없이 싸웠고 또 승리했다는 점만으로도 마수드는 독보적인 존재이고 빛나는 별이 될 수 있다. 탁월한 군사전략가이고 자유와 독립을 누구보다도 열망한 영혼의 소유자였지만 결코 정치인이 될 수 없었던 것이 마수드의 비극이고 어찌 보면 아프간의 비극이라 할 수 있다. 그랬기에 군사적으로는 카불을 탈환했을 지언정 결코 정권을 장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너무도 순수한 이상주의자, 대의명분과 정직성, 서투른 정치가, 이것이 마수드에 대한 저자의 평가이다. 좀 더 빨리 국제사회에 데뷔했어야 했고 조금은 더 유연하고 영악한 정치적 감각이 있어야 했다고, 마침내는 영어를 배웠어야 했다는 절규에 이르면 저자의 안타까운 심정은 극에 달한다. 마수드는 9.11 테러가 있기 이틀 전 기자로 가장한 자살테러단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테러의 배후가 빈 라덴과 탈레반일 것이다는 가설이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 계획한 테러가 성공할 경우 급박한 정세속에서 미국이 대안세력으로 마수드를 선택할 수 있고 그럴 경우 자신들의 입지에 치명적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정치적 판단에 근거한다. 이와 관련 마수드가 빈 라덴과 탈레반의 테러에 대해 계속해서 경고를 했지만 미국이 완전히 무시했다는 저자의 주장과 다른 견해도 있다. 미국은 사전에 9.11 테러 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막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부시는 막지 않았다든 것이다. 국내의 정치적 경제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전쟁이 필요했고 그래서 테러는 일어나야 했던 것이다. 진위 여부를 떠나 이후 미국은 부시가 의도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4. 자유와 독립을 위한 길이 마수드의 일생이었지만 아프간과 같은 나라에서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일까? 각국의 이해관계와 국내 정치세력의 얽키고 설킨 복잡한 권력다툼은 결국 이승만과 같은 자들이 권력을 잡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탈레반 반군세력과 정부군 사이의 내전은 끝나지 않았다. 아프간은 20년이 넘도록 여전히 전쟁중이다.
YES마니아 : 로얄 n****o 2006.12.17. 신고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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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느낀 아프가니스탄의 영웅 '마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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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 느낀 '판시르의 영웅 마수드’   감사의 마음으로 드리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편지     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약 3년남짓 칸다하르 남부 사막지대에서 난민긴급구호활동을 했고, 카불북쪽의 사카르다라라는 마을에서 마을개발활동을 해왔습니다. 바미안의 바미안센타와 야카울랑, 와라스, 비수드, 펀잡등에서도 지원활동을 했습니다. 2002년 10월 처음 도착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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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 느낀 '판시르의 영웅 마수드’

 

감사의 마음으로 드리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편지

 

 

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약 3년남짓 칸다하르 남부 사막지대에서 난민긴급구호활동을 했고, 카불북쪽의 사카르다라라는 마을에서 마을개발활동을 해왔습니다. 바미안의 바미안센타와 야카울랑, 와라스, 비수드, 펀잡등에서도 지원활동을 했습니다. 2002년 10월 처음 도착했을때는 카불은 마치 SF전쟁장면에서 폐허가 된 상황을 보는 듯한 착각을 했습니다. 바로 그와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서야 소련과의 무자헤딘과의 싸움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공격때문만이 아니라, 소련이 철수한 뒤에 많은 군벌과 정치세력의 내전으로 카불이 쑥대밭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가 처음 살았던 카테세이는 카불의 남쪽 알라우딘 궁전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그옆 동네는 하자라(몽고족 아프간)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는데, 미국과 파키스탄으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던 굴부딘 헤크마티아르이 카불을 공격하여 잔혹한 폐허의 도시로 만들었고, 이후 사이에프가 이끄는 당과 하자라가 이끄는 당의 치열한 교전 (주로 사이에프에 의해) 인근 지역에서 서로 비참한 상잔을 벌였던 지역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와 함께 일하는 하심의 말에 의하면 이때 파슈툰지역을 지나는 하자라들에게 나이가 몇살이냐고 물어본 뒤, 그 나이 숫자만큼 머리에 못을 박아 죽었다는 말이 있는 가하면, 이에 대한 복수로 하자라지역에 온 파슈툰사람의 유방을 도려내고, 죽이는 만행들을 해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하는 칸다하르는 아직도 우리 여자스텝이 얼굴을 내놓고 다닐수 없습니다. 반드시 부르카를 써야하니까요. 그리고 카불북쪽 탈리반과 마수드의 북부동맹의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샤말리 평야는 우리가 자주 다니는 곳입니다. 그 샤말리 평야를 들어서면 병풍처럼 둘러쌓인 힌두쿠시의 산맥들은 그야 말로 장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장관의 힌두쿠시 산맥을 아름다움으로 보는 나와 같은 이방인의 눈과, 이 광경이 결코 아름다움으로 기억될 겨를이 없었던 아프간사람들의 한맺힌 역사적 눈과의 차이는 먼것이겠지요.

 

아프가니스탄에는 한국인이 약 70명정도 있습니다. 그중 대사관직원 4명, 코이카직원 1명, 한국의 ODA지원자금을 아프간에 시설을 지어주기 위해 온 한국기업체 직원들 약 20명, 그리고 아프간에 가장 먼저 오랫동안 와있는 약 40여명의 NGO활동가들입니다. NGO는 대략 6개정도 있는데, 이중 JTS를 제외하곤 대부분 기독교를 근간으로 한 엔지오이며, 특이 이중에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선교를 위해 엔지오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들입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귀 출판사에서 발간한 책을 읽은 사람은 아마도 지금까지 제가 처음인 것같습니다. 앞으로 제가 돌려가며 읽도록 하려고 합니다만, 읽으면서 내내, 한국의 독자들이 멀리 떨어진 아프간, 그것도 9,11 공격으로 잠깐 관심을 가졌던 나라에 대한 책을 얼마나 현실감있게 이 책을 읽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인들에겐 아프간 근현대사 역사책이나 수많은 정파와 내전등이 그저 순니파, 시아파, 이스마엘리 이슬람이 어떻게 구분되는지 모르는, 저멀리 떨어진 나라의 평평한 하나의 기록이겠지만, 읽고 있는 나에겐 이 책의 글자 하나하나, 문장하나하나, 이름과 지명 하나하나가 입체적으로 살아 떠오르면서 머릿속에 그려지는 내용입니다. 이곳의 대부분 지명은 제가 지원활동을 했거나 방문해본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3년 가까운 활동을 해온 바로 나를 위한 책이더군요.

 

일본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많은 관심이 있는 나라입니다. 그것은 중앙아시아지역의 영향력을 높이려는 의도과 카스피해 연안의 석유과 가스이익의 배분과 관련되어 있기도 하기 때문에 아프간에 대한 문화적, 정치적인 많은 관심으로 현재, 무장해제와 사회복귀프로그램(DDR:Demiliterized, Disarmmament, Rsintergratrion)의 전액을 지원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 지역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없기 때문에 지원도 별로 하지 않고, 특히 지원하기로 한 ODA(공적개발원조)로 지극히 작습니다.

 

아프간 어느 마을을 방문해도, 파슈툰왈리(손님에 대한 예절)의 극진한 모습을 보게됩니다. 우리나라의 개발당시 60년대와 비교해보자면 이들은 마을사람들이 술을 먹거나 도박으로 흥청되는 게으른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술과 도박은 일체금지되어 있는데다가 하루에 5번기도하기 위해 5시에 모두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편으로 대단히 규범적이고 누구든 기품이 있어 보입니다. 우리나라의 개발과정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군요.

 

이곳에 있는 한국인들에게 ‘마수드’는 그저 수많은 부패한 무자헤딘중에 조금 괜찮은 사람정도로 인식되어 있고, 실제 아프간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모국어로 된 책이 없는 마당에, 이책은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3년간 지내면서 아프간사람들에게 희망과 기쁨, 존경심을 갖기도 했지만, 한편 실망과 좌절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책은 23년간 전쟁밖에 해본 적이 없는 이들의 마음속에, 삶에 대한 치열한 생존의 본능을 아픈가슴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이들을 조금더 사랑하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물론 프랑스기자의 주관적인 입장임을 명백히 하면서 쓴 글이라, 객관적이지 않지만(실은 객관이라는 것이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평평하고 건조한 역사의 상황을, 입체적으로 생생하게 이해하는데 오히려 도움이 되었습니다.

 

카불의 도처에는 마수드의 대형사진이 곳곳에 붙어있습니다. 현재 정치적 정당성과 정통성은 마수드와 그 관련된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마수드정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지만 아무튼 카르자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에는 마수드진영이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없지 않습니다. 책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마수드 휘하의 사람들이 모두가 건강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대표적인 예로는 마수드가 암살당한뒤에 그의 심복이었던 ‘파힘’이 작년 대통령선거 전까지 카르자이산하의 국방장관으로 취임했지만, 그도 개인적으로 착복한 부정축재한 재산이 엄청나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파힘은 판즈세르(이곳에서는 ‘판쉐르’라고 발음함) 정국의 북부동맹의 주도권을 갖고자하여 공식적인 자리에서 현 대통령인 카르자이를 린치를 가하는 등, 무식하고 막무가내의 행동으로, 전쟁에는 영웅이었지만 지성과는 거리가 먼 그의 행동에 많은 사람들이 실망을 해왔고, 마수드의 찬란한 이름을 먹칠하면서, 과거의 명성을 기반으로 온갖 이익을 착복해왔습니다. 그래서 현 카르자이 정부가 들어서면서 충분히 부통령이나 기타 중요 요직을 점할 수 있는데도, 그의 현재 불법적인 재산착복을 인정해주는 대가로, 모든 권력에서 배제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풍경은. 카불에서 판즈세르 출신은 어느 누구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아프간에서는 특별한 권력이 처럼되어, 부정적인 행세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판즈세르 이외 출신들은 23년간 비타협적인 투쟁을 해온 그들에 대한 배려와 역사적 예의이기도 하지만, 한편, 그들 스스로 과도한 자부심으로 인한 배타성에 기인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 판즈세르 출신들에 대한 평판이 좋지 않은 것은 참으로 안타꺄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기도 어렵지만, 승리를 유지하면서 전쟁이후를 준비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것같습니다. 파괴는 오히려 건설에 비해 쉬울지도 모릅니다. 저항은 쉽지만 대안과 비전을 만들면서 사회를 통합하는 창조의 상상력과 에너지는 정말 전투이상의 능력과 관용을 갖아야 하는 가봅니다.

 

전쟁과 전투의 시기에는 적(敵)과 아(我)만을 구분하여 일방적인 공격과 파괴를 통한 승리만이 있습니다.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치열하지만, 사고는 명쾌합니다. 명쾌할수록 전투가 잘되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평화와 건설, 사회를 통합하고 미래를 만들어나가야 할 시기에는 적과 아로 명확하게 가르기가 쉽지 않을뿐아니라, 오히려 어느정도 방해가 되기도 하지요.

 

마수드가 살아있다면 그가 갖는 높은 지도력을 갖고 있어서 아프가니스탄을 조종하기 어렵기 때문에 혹자는 그의 암살을 한 대상을 탈레반이 아닌 미국이나 소련, 파키스탄이나 사우디등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무튼 난세에 영웅이 난다면, 아프가니스탄이 격은 난세에 나타난 영웅은 바로 마수드였음은 의심의 의지가 없다고 보입니다. 그리고 체 게바라나 모택동에 비견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그의 심복이나 동지, 친구를 보면 그를 알수 있다는 말을 믿는다면, 마수드의 지도력은 일단 그 정도가 아니었나 생각되기도 합니다. 아니면 더 큰 지도력을 발휘할 시간이 없었고 점검할 겨를이 없었다고 생각할수도 있지요. 그러나 소련이 탈레반이 혹은 도스탐이나 말레크가 호시탐탐 괴멸시키려는 위기의 상황속에 주변사람을 충분히 좋은 사람으로 훈련교육하며 만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며, 23년간의 전쟁에서 아프간사람들의 공통적인 것은 ‘누구도 믿을 수 없다. 오로지 나와 개인의 생존만이 가장 중요하다’는 철칙만을 깨달은 것같습니다. 그것을 누가 탓할 수 있게습니까...

 

그러나 한편 탈레반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봅니다. 처음 탈레반이 등장했을때는 많은 사람들의 큰 지지가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탈레반이 등장한 원인은 바로 이전투구와 사리사욕으로 자기권력유지에 휩싸인 타락한 무자헤딘으로 인해 민중의 큰 도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긋지긋한 군벌(한때 무자헤딘들)들의 만행을 일거에 평정한 것이 바로 탈레반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혁명가들입니다. 이것은 아마 독일의 유겐트나, 홍위병과 같은 열혈 혁명학생들이었던 것같습니다. 대부분의 혁명이 사회주의라는 이념을 기반으로 하는 경우가 많지만, 아프간은 이미 사회주의경험을, 그것도 소련의 지배를 10년간이나 받아왔기 때문에 사회주의는 더 이상 매력이 될 수 없었고, 결국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이슬람의 근본에 의거한 혁명이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이슬람은 정통이슬람이기 보다는 아마도 칸다하르 남부 시골의 전통과 결합된 것이었다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탈레반의 혹독한 학정도 실제 혁명진행과정으로 보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볼세비키나 모택동의 혁명도 혁명이후에는 과거의 정치와 사회문화와의 단절을 꽤하면서 순수한 혁명적 사회를 만들기 위해, 그리고 과거 해외와 결탁된 수구세력들의 복권과 반격으로부터 혁명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프로레타리아 독재’라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혁명의 3대요소 (국내 혁명세력, 해외의 혁명세력, 국제사회의 기조)를 잘 고려하지 못한 것같고, 나아가 전투는 할 수 있었지만, 행정과 외교를 통해 전투 이후를 준비하기에는 잘갖추어진 세력이 되지 못한 것같더군요. 전투는 잘했지만, 한 국가의 수권능력을 갖출정도의 전략과 인재가 적었습니다.

 

아무튼, 아프간을 보면 우리 과거의 미군정상황, 그리고 한국전쟁과 이후 이승만정권의 상황과 많은 유사점이 있습니다. 현재 미국이 지원하고 있는 카르자이 정부는 아무튼 파슈툰과 타직, 하자라나 우즈벡등을 어렵게 통합해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유엔을 표방하여 카불인근의 안보를 담당한 ISAF 군과 카불이외지역을 담당한 미국을 위시한 동맹군이 지키면서 카르자이 정부의 물리력을 맡아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프간의 많은 사람들은 미국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재 미국이 지원하는 현정부에 대해 비교적 인정하는 편입니다. 일단 전쟁은 끝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귀 출판사에서 정성들여 만들어준 책, 바로 나만을 위해 만든 것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정독을 했고, 잘읽었습니다. 베스트셀러는 아니자만 오랫동안 팔릴 소중한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화약고라고 말해지는 중동, 그것도 전쟁이 막끝난 국가에 대해 우리는 너무도 무지합니다. 그러나 이제 GPD가 전세계 13위라고 평가되면서 전지구적인 문제에 더 이상 마이너일수 없는 한국, 이제 세계문제에 책임져야하는 나라 한국에 이제는 이 정도의 책은 마땅히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아무튼 출판을 결정하신 책임자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저도 한때 번역을 해본적이 있는데 그 이후 번역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습니다. 잘해봤자 본전이고, 오역이나 어색한 번역을 하면 비난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동은 전혀 번역투의 문장을 느낄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번역자가 얼마나 혹독하고 꼼꼼하게 교정교열을 봤는지 느낌이 왔습니다. 문장이 ‘잘흐르’고 있고, 비교적 단문으로 잘라서 번역을 해주셔서 유럽사람 특유의 꼬인 글이 전혀 없더군요.

 

그런데 대부분 인명에 대한 번역은 정확합니다만, 지명에 있어서 간혹 이곳에서 불리는 것과는 다르게 번역된 것이 있습니다. 아마도 불어를 번역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판지셰르(이곳에서는 그냥 판쉐르, 그러나 큰 문제는 없음), 그리고 정당의 이름도 ‘자미아트 에 이슬라미’라고 쓰셨는데, 보통 -e-는 그냥 ‘이’라고 발음합니다. ‘자미아트 이 이슬라미’라고 하구요. 그리고 ‘자발 우스 사라지’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만 이곳에서는 그냥 ‘자불사라지’라고 합니다. 카불 북쪽의 도시이자 판쉐르 밑의 큰 도시 이름을 ‘사리카르’라고 쓰셨는데, 영어명칭은 Chaharikar이고, 이곳에서는 ‘챠하리카르’라고 부릅니다. 바다르샨도 이곳에서는 바닥샨(Badakhshan)으로 부릅니다. 그리고 파키스탄 페샤와르 북쪽 지명을 시트랄이 아니라 보통 ‘체트랄’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책은 참 잘만드셨습니다. 하드커버 장정에 금박의 표지에 띠지, 그리고 책의 사이즈도 이쁘고, 속지 디자인과 식자도 아주 좋습니다. 손이 많이 갔다는 표시가 남니다. 돈은 많이 드셨겠지만 재미는 보셨는지 모르겠어요. 꿈엔들 출판사는 제가 아프간에 온뒤에 설립된 출판사더군요. 이 책을 만든 공덕(功德)으로 이후 다른 책은 잘될 것입니다. 인샬라....왜냐하면 알라가 여러분의 노고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저는 불교단체인 정토회의 법사로 있습니다만, 이곳사람들은 제가 이슬람교인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워낙 이슬람식 기도를 잘하니까...)

 

이책을 읽는 기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큰 도움이 되었고, 아프간을 사랑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귀 출판사에 장도를 기원하며, 특히 번역자이신 우종길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해주십시오.

 

이글은 2004년인가에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쓴 글입니다.

당시에 감동을 갖고 출판사에 써서 메일로 보냈는데 특별한 반응이 없었습니다만, 저에게는 소중한 책이었습니다.

 

2002년 10월-2005년 8월까지

한국JTS 아프가니스탄 책임자 유정길

(현재 평화재단 기획실장)

두손모아 꾸벅

e******1 2009.08.24. 신고 공감 5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