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은 일단 읽기가 편했다. 저자가 역사서나 철학서를 인용하지만 전통적인 의미의 학문적인 책도, 학구적인 책도 아니라고 서문에서 밝혔듯이, 섬바디와 노바디 둘다로 살아온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기 때문인지 우리가 흔히 접하지만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적인 사례들을 인용해가며 글을 풀어감으로써 주제의 무거움에 비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신분이란 말 자체가 어찌보면 새로울 게 없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신분이 어떻게 우리의 일상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를 지배하고 있는지를 진지하고 심도깊게 지적하고 분석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러한 신분과 권력의 폭력을 폭로하여 거기에 신분주의라는 이름을 부여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성차별주의와 인종주의 등 모든 '주의'의 위에 신분주의가 자리잡고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개인적인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구조나 국가간에도 암묵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바로 신분이다. 9.11테러사건 역시 굴욕감이 그 원인임은 이미 밝혀진 일이다. 뿌리깊은 각종 차별 '주의'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뿌리가 뽑혀지듯이 신분주의 역시 그럴 것이라고 예견하는 저자의 주장을 누군들 지지하고 싶지 않겠는가. 비록 그 실현성을 누구도 점칠 수 없다 해도 말이다. 혹, 섬바디들은 모르겠다. 자신들의 지위가 위협받는 시대가 오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을 테니까. 하지만 그들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권력이 얼마나 덧없는지를. 화무십일홍이라고 하지 않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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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자와 아무것도 아닌 자. 우리가 너무 어렵게 혹은 너무 특별하게 생각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는 섬바디를 꿈꿀 수밖에 없다. 인간은 물리적 생존이 보장되면 조금 덜 구체적인 것의 생존에 관심을 기울인다고 한다 . 물질적 욕구가 채워지고 나면 사람 정체성을 잃어버린 노바디의 고통이 어떤 식으로든 사회문제로 떠오른 다는 것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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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프리스턴 대학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고,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쳐온 로버트 풀러가 지은 책이다. 그는 오버린 대학총장을 역임하며, 일련의 교육 개혁을 주도 했다. 그런 그가 어찌하여 이런 인문학적 책을 쓴 걸까 책 중간에 사연(?)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대학총장 당시 많은 이들이 그를 강연에 부르고 부탁을 하고, 약속을 잡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대학 총장자리에서 물러나 아무런 직책이 없게 되자 점차 자신의 존재가 잊힌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어느 누구에게도 아무존재가 아닌 ‘노바디’에 대해 이야기 하게 되었다. 그는 이 책에서 신분주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차별에 대한 단어의 정의는 많이 있다. 인종차별, 학력차별 등 사람과 사람을 다르게 대하는 것을 차별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차별들의 뒤에는 근본적으로 신분주의라는 것이 배경으로 되어 있다. 그럼 신분주의가 왜 문제 인가? “신분주의는 배우고자 하는 의지를 침식하고, 개인적인 관계를 왜곡하는가 하면, 경제적 생산성을 방해하고, 윤리적 증오감을 유발한다. 신분주의는 또한 가정에서 학교에서, 혹은 일터에서의 역기능과 때로는 폭력까지 초래하기도 한다.”라고 이 책에 설명하고 있다. “신분주의는 반드시 존엄성에 대해 공격의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다. 만약 사람들이 존엄성이라는 측면에서 근본적인 동등성을 갖는다면, 권력의 차이에 근거한 차별은 온당하지 않기 때문에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신분주의라는 개념은 존엄성을 통해 윤리와 정치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말하는 존엄성은 무엇일까? 사람이 가지고 있는 존엄성은 과연 무엇일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 그럼 인권이랑은 뭐가 다른가? 물론 인권이랑 존엄성은 다르다. 그렇지만 공통점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권은 권력에 의해서 차별 받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만 존엄성은 자신이 하기에 따라 높낮음이 생길 수 있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 즉 자신의 존엄성은 자신이 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닐까? 하지만, 현실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를 이용하여 다른 이들의 존엄성을 컨트롤 하려고 한다. 왜 그럴까? “ 대부분의 권력화 과정이 중립성을 상실한 채 치명적인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의 편향적이고, 한쪽으로 편중되기 때문에 그를 이용하여 차이가 생기는 게 아닐까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섬바디, 노바디 이다. 특별한 관심을 받는 섬바디, 사람들에게 잊히는 노바디이다. “유리의 육신이 음식을 통해 생명을 유지하듯,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가 남들에게 기여한 것을 인정받음으로써 그 생명을 유지한다. 물질적인 욕구가 채워지고 나면 사람들이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바로 –인정- 이다.” 섬바디와 노바디를 구별하는 것은 바로 ‘인정’의 여부이다. |
| 이 책은 색다르고 탁월한 관점을 제시한다. 신분주의(신분 ism)은 모든 주의(ism)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는 억압적인 부르조아 계급을 타파하려고 만들어 졌다. 노예해방운동이나 제 3세계운동은 그 나라의 억압적인 신분에 대한 대응, 혹은 외세와 결탁하여 자국민을 억누르는 사람들에 대한 억압에 대항하고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사람사이의 차별, 즉 대단한 사람(somebody)과 하찮은 사람(nobody) 사이의 차별이 없어진다면 모든 사회적 갈등이 없어질 것이란 것이다. 바로 이 해결책이 이 책의 단점이다. somebody 에 대한 가치부여, 동경, 그것을 향한 부러움을 해소하는 것으로 우리는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 책은 이 책이 제시한 탁월한 관점에도 불구하고 무책임한 낭만주의로 귀결되기에 대안이 될 수가 없다. 탁월한 독보적인 견해에 걸맞는 논리를 전개하지 못하고 미숙하게 낭만적인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