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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첫 책을 제르미날2권으로 시작한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항상 '새해에 읽은 책의 기운이 1년을 좌우했다'는 미신 같은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사실, 1권의 칙칙함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12월 31일까지 이 책을 다 읽어야지 생각했는데, 어찌 어찌 하다 자정을 넘겨버렸다. (아~주 잘한 일 같다) 2권부터의 속도감은 상상초월이다. 군중들의 데모 장면이나 탄광내에서의 장면은 얼마나 촘촘히 잘 쓰여져 있는지, 내가 군중속에 있고, 내가 탄광속에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 와중의 이런 저런 사건들은 소름이 끼치기도 하였고, 너무나 예상 밖이라서 지루할 틈도 주지 않았다. 다 읽고 나니, 얼마나 마음이 뿌듯하던지. 나는 개인적으로 '민중','혁명' 뭐 이런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 단어들이 주는 무거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탓일 수도 있고, 또 그냥 적당히 먹고사는데에 만족하는 소시민으로 살다 죽기를 바라는 마음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당장 사회적 불합리함에 대해서 내가 피해자가 되는 입장이라면, 나야말로 뛰쳐나가 불지르고 난리치면서 물귀신처럼 '다같이 죽자'고 설칠 성향이 충분하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다. 세실이 죽으니 잘 죽었다 싶었고, 카트린이 죽으니 너무 박복한 인생에 안타까움이 더했다. 광부들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윤택하고 살고 있지만...또 이 시절의 불합리함과 어려움에 종종 무너지기도 한다. 책이 나온지 100년이 넘었지만, 그래서 많이 개선된 것도 있고 여전한 부분도 존재한다. 그래서 책을 읽고나니 쓸쓸하다. 마지막 페이지의 에티엔처럼 살아나니 새삼 좋았다,라고 표현이라도 했으면 좋겠으나...그렇지 않은 날도 많기에. 내가 호들갑을 좀 떠는 편이긴 하지만, 이런 책만 줄창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번 하였다. 문학동네의 세계문학은 조금 더 자주 읽어보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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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에밀졸라의 작품은 주인공들을 응원하게 된다. 근데 자꾸 삐뚤어진다. 그러지 말라고 하고 싶고, 건강하게 살았던 그 마음으로 살라고 응원하고 싶어진다. 에밀졸라가 이 작품을 쓰기 위해 광산 노동현장에 직접 나가있었다고도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자세하고 현실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을까 싶다. 노동운동을 하고 희생자가 생기지만 현실이 바뀌지 않는 것도 안타깝지만, 노동자들을 위해 싸우고자 했던 에티엔의 마음이 바뀌는 것을 보는 게 나는 더 안타까웠다. 그렇게 지배층이 되고 나면 결국 에티엔도 광산회사의 주주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지배욕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가 인상깊었다. 읽고 한참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 부분이 유독 생각나는 걸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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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다른 작품 돈 목로주점 인간짐승 나나 (..) # 읽고 나서. 빵을 달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까만 재를 뒤집어쓰고 땅속 깊은 곳에서 석탄을 캐는 사람들. 작은 빵 쪼가리 하나 싸와 옷 사이 어딘가에 끼워 넣고 이른 새벽부터 일하는 사람들. 그렇게 일해도 식구가 하나 늘어날 때마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 탄광촌을 배경으로 한 거대 자본주의와, 거기에 맞서려는 노동자 조합의 이야기, 배경인 탄광촌 만큼이나 앞이 깜깜한 이야기, 정말 고구마 백만 개는 먹은 느낌. 그들의 삶이 어찌나 우울한지 그 우울이 나에게까지 전염되었나 보다. 외지인인 에티엔은 술 마시고 윗사람을 때리고 직업을 잃는다. 떠돌다 들어온 탄광촌에서 어떻게 일자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웃댄다. 운 좋게 한자리 얻은 그는 열심히 일해 능력을 인정받으며 자리를 잡는다. 같이 하숙하던 전기공의 책을 뒤적이며 노동, 인권에 대한 사상들을 겉 핥기 식으로 공부하며 노동조합 설립을 추진하고 싶어 한다. 거대자본이 투입된 탄광촌에서 조금이나마 이윤을 남기기 위해 치사한 방법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을 갈취하려고 하자 작업반장 마외는 절망한다. 그 옆에서 에티엔은 파업을 종용하고 분노한 노동자들은 그를 따라 긴 파업에 돌입한다. 집에 있는 살림살이를 다 팔았음에도 빵 쪼가리 하나 남지 않은 마외네 가족들과 사람들은 협상을 요구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분노하고, 분노한 그들은 광란의 행진을 계속하며 배신자들을 찾으러 다닌다. 결국 그들은 실패하고, 사람들이 죽는다. 에티엔은 딱히 잃을 것 없는 혼자 몸이었지만 마외의 가족은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실패 후 갱이 다시 문을 열자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일을 하러 나간다. 떠나려고 했던 에티엔은 사랑 때문에 남기로 결심하지만, 그건 또 다른 절망을 불러오고 만다. 어설픈 지식과 공명심으로 손쉽게 우두머리가 되자 에티엔은 처음에 우쭐한다. 그가 주도한 파업이 결국 실패로 끝나고 외면받자 괴로워하지만, 결국 무지한 그들과 나는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가 그린 유토피아는 눈앞에 쉽게 잡힐 것 같았지만 그냥 꿈으로 끝나버렸다. 제르미날은, 파종의 달, 싹트는 달을 의미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 비극적인 사건 이후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간다. 에티엔은 마을을 떠나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이 모든 사건이 에티엔의 '성장'을 위한 수업일 뿐이었나 싶을 정도로, 딱히 변한 게 없어 보이고,, 그냥 코딱지만큼의 희망을 주고 끝맺어 버린다. 힘 있는 자들의 만행, 열악한 노동환경, 부익부 빈익빈.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어 그 코딱지만 한 희망은 어디로 가버렸나 싶다. 빵을 달라던 사람들의 외침이, 그 절망적인 상황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이 우울함도 참 오래갈 것 같다. *1권 밑줄 "고기 구경한 지가 언젠지 기억도 안 납니다." "빵이라도 매일 먹을 수 있으면 다행이지!" "맞습니다. 빵이라도 매일 먹을 수만 있다면 뭘 더 바라겠습니까!" 결코 달래지지 않는 허기를 드러내며, 세상 사람들 모두를 소화하고도 남을 것 같은 거대한 창자를 끊임없이 꿈틀대면서. 갱도는 인간 가축들로 채워지고 또 채워졌다. 그곳을 지배하는 어둠 속에서는 어떤 생명의 기운도 느낄 수 없었으며, 케이지는 여전히 탐욕스러운 침묵 속에서 허공을 뚫고 또다시 위로 솟구쳤다. "언제쯤 끼니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을까, 이 지랄맞은 팔자!" 라 마외드는 또 중얼거렸다. 이렇게 비참한 삶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고된 노동 끝에 파김치가 된 아직 어린 여자들이 저녁이면 또다시 끝없는 노동과 고통에 시달릴 생명을 만들 생각을 하다니, 이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그녀들이 항상 굶주림으로 고통받을 생명들로 자신을 채워간다면 이런 악순환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술, 여자, 그런 거 다 필요 없다고. 내 피를 끓어오르게 할 수 있는 건 딱 한가지뿐이야. 그건, 이 땅에서 부르주아들을 몽땅 쓸어버리는 거야.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다니요!" 청년이 말했다. "행복해지기 위해 선한 신과 신의 천국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여러분 스스로가 이 땅에서 행복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생각은 왜 못하는 거죠?" 두 사람은 빈곤한 삶의 부당함에도 불구하고 막상 행동해야 할 순간이 되자 앞날에 대한 두려움으로 움츠러들었다. 그리하여 다시금 대대로 내려오는 노동자의 체념 속으로 빠져들며 또다시 허리를 굽히고자 했다. "어쨌거나 여기 숨어 있는 건 잘하는 거다. 네 아버지가 네가 도둑질한다는 걸 알았다간 넌 뼈도 못 추릴 테니까." "마치 부르주아들은 우리한테서 아무것도 빼앗아가지 않는 것처럼 말하네요! 맨날 그런 말을 한 건 바로 당신이잖아요. 네가 메그라의 가게에서 이 빵을 가져온 건 사실이지만, 난 그 사람이 우리한테 빚진 빵을 받아온 것뿐이라고요." *2권 밑줄 지금까지 살면서 행복한 여자는 거의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그의 맹세를 별로 믿지는 않았지만 다정하게 구는 그를 보면서 마냥 기뻐했다. 부디 앞으로도 내내 이렇게만 지낼 수 있다면! 그는 자신의 파국이 확실시되자 몽수의 불한당들을 향한 증오심이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모두가 공범자들로서, 대를 이어 전해내려오는 만인의 죄를 속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들은 짐승처럼 거친 야만인들이었다. 하지만 배우지 못하고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야만인들이었다. 그가 말한 것들, 군인 같은 복종심과 위험의 한가운데서 발휘되는 동지애와 체념은 그들의 마음속 어딘가에 반항을 불러일으켰다. "우리에게 빵을 달라! 빵을 달라! 빵을 달라!" "맙소사, 저들이 내가 알던 사람이 맞는 건가! 저런 도적떼 같은 무리가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과연 분노와 굶주림, 그리고 두 달간 이어진 고통 속에 무리 지어 갱들을 휩쓸고 다니는 동안 몽수 광부들의 온순했던 얼굴은 야수처럼 사납게 변해 있었다. "빵을 달라! 빵을 달라! 빵을 달라!" "어리석은 인간들!" 엔보 씨는 거듭 중얼거렸다. "난 행복한 줄 아나보지?" "빵을 달라고! 사람이 빵만 먹고 살 수 있는 줄 아나보지, 어리석은 인간들 같으니라고!" "하지만 참 이상하네요. 저 사람들은 절대로 나쁜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그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한결같은 완벽한 어둠이 지배하는 끝없는 밤이었다. 아무리 안전한 곳에서 잠자고 배부릴 빵을 먹고 따뜻하게 지내도 그 고통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어둠이 그토록 무겁게 머릿속을 짓누른 적은 없었다. 어둠이 곧 짓눌린 채 고통받는 그의 생각 자체인 듯했다. 에티엔은 자신들의 불행이 저들에게는 행운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싸움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거대 자본의 무소불위의 힘 앞에 또다시 절망을 느꼈다. 저들은 약한 이들의 패배를 이용해, 지쳐 쓰러진 이들의 주검으로 자신들의 배를 불려나갔다. 학습을 통해 세련되고 야망을 키워온 그는 신분 상승을 이룬 노동자로서 그들과 거리감을 느꼈다. 이토록 처참한 삶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이 퀴퀴한 냄새 속에서 가축처럼 한데 뒤엉켜 잠을 자는 삶이라니! 그는 그들을 향한 절망적인 연민에 목이 메어왔다. 마지막 단말마의 광경을 지켜보면서 깊은 절망에 빠진 그는 그들에게 이제 그만 포기하라고 충고하기 위해 그럴듯한 말을 찾고 있었다. 평소에는 부자들에게 반기를 들고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것 같아도, 막상 자신에게 뜻하지 않은 재물이 생기면 그걸 가난한 이들과 나눌 수 있는 요기가 없다는 말이지....당신네들이 자기만의 재물을 소유하려 하거나, 부르주아를 향한 반감이 단지 그들 대신 부르주아가 되려는 욕심에서 비롯된 거라면, 당신들은 절대 행복해질 자격이 없는 거야. 죽일 용기가 없다면 자신이 죽는 길밖에는 없었다. 예전에도 그의 머릿속을 스쳐갔던 죽음에 대한 생각이 다시 떠오르면서 그에게 남은 취후의 희망처럼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혁명을 위해 용감하게 죽을 수 있다면 모든 걸 끝낼 수 있을 것이고,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간에 어떻게든 결말이 날 터였다. 그러면 그로서도 더 이상 힘들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 징글징글한 삶은 어째서 곧 끝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일까? 그녀는 이제 모든 게 지긋지긋했다. "뭐든지 잘 될 거라고, 조금만 애쓰면 다 잘 될 거라는 허황된 말로 우리에게 헛된 희망을 심어주는 약은 작자들이 더디든 있기 마련인 거야...그러면 사람들은 흥분하면서, 지금 눈앞에 보이는 현실로 인해 고통받다 못해 이 세상에는 없는 것을 바라게 되지. 나 또한 어리석게도 허튼 꿈을 꿨던 거야. 온 세상 사람들과 서로 도와가며 잘살 수 있는 삶을 꿈꿨지. 그래! 잠시 구름 위를 둥둥 떠다녔던 거야. 그러다 된통 당하고는 다시 똥통 속으로 떨어진 거지...그러니까 그 말은 사실이 아니었어. 저 위에는 우리가 있을 거라고 믿었던 것들이 하나도 없었던 거야.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건 여전히 진저리 나는 곤궁한 삶이었어! 그래! 우린 주체하지 못할 넘치는 가난으로도 모자라 총알 세례까지 받은 거라고!" 반항적인 노동자와 회의적인 우두머리는 그들에게 내재해 있던 인간애에서 비롯된 극심한 마음의 동요 속에 서로를 얼싸안고 큰 소리로 흐느끼며 굵은 눈물 줄기를 쏟아냈다. 그들은 대대로 이어져내려오는 삶의 곤궁함과, 살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크나큰 고통 앞에서 한없는 슬픔을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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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는 뿌려려졌다. 이어 따뜻한 봄이 오고, 그러면 싹은 돋아 난다. 유전의 작용으로 한 가문의 파멸을 그리는 에밀 졸라는 제르미날에서는 희망을 보여 준다. 목로주점의 랑티에와 제르베즈의 아들인 에티엔은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유전의 누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술을 마시면 폭력과 살인에 이르게 될거라는 무서움을 느낀다. 그는 그 힘을 제어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에티엔은 불합리한 사회의 모습을 느끼고, 자각하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인지한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고자 공부한다. 에밀졸라는 유전에 힘겨운 한 개인의 노력을 보여준다. 에티엔은 그의 엄마, 제르베즈의 젊은 날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정의롭고 의욕 넘치는, 부지런하고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인 제르베즈는 성실히 일한다. 그녀의 한계는 거기까지이다. 하지만 에티엔은 생각하고 공부한다. 생각하고 준비하고 행동한다. 부족한 면이 있어서 행동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진 않을지라도, 에티엔은 과정에서 더욱 성장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부당함에 굴복했던 노동자들의 뇌를 깨운다. 뇌가 깨어난다는 것, 생각을 한다는 것은 고통이 수반된다. 그저 생각없이 흐르는대로 사는 삶이 더 편안할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한 발 나아가기가 힘겹다. 에티엔의 파업 선동에 동참한 많은 사람들이 현재보다 더한 고통을 받았고 무참히 죽어갔다. 그들은 에티엔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내면에 조금씩 자라나는 싹의 경이로움을 이제는 그들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싹은 자라난다. 제르미날, 씨 뿌리는 계절... 희망은 이어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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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졸라의 저서 중에서 꼭 읽어봐야 할 소설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단연코 제르미날이라고 답해줘서 바로 구매하였습니다. 에밀 졸라의 날카로운 문체와 글솜씨가 너무나 마음에 와 닿아 반드시 소장해야 할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구매하길 잘 했어요. |
| 광산회사를 둘러싼 주주들의 삶과 광산 노동자의 비참한 삶이 대비되면서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든 책이다. 책의 마지막 장까지 계속 다음은 무슨 내용일까... 라는 생각으로 계속 읽게 된 책. 하루에 한 권씩 읽게 된, 읽어본 에밀졸라 책 중 최고의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