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테 콜비츠, 그녀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이 책을 접했다. 그렇지만 백지에서의 시작은 언제나 나에게 묘한 흥분과 기대를 쥐어준다. 겉 표지의 감촉부터 예사롭지가 않았다. 손에 검은 가루가 진하게 묻어날 듯한 까칠함을 거칠게 그어진 선들이 마구 뿜어내고, 하늘을 향해 꽂은 팔은 급진적이고, 단호하고 준엄한 목소리를 낸다.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과는 사뭇 비슷하면서도 비장함이 책의 두께만큼이나 묵직하다. 이 책의 첫 느낌은 이랬다. 프롤레타리아 예술의 어머니, 미술사의 로자 룩셈부르크,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 깔려 신음하는 민중의 증언자, 죽음을 영접하는 여인 등 그녀를 수식하는 말들이 많이 있다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리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그저 평범한 딸, 아내, 어머니의 모습만 떠오른다. 책의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캐테 콜비츠에 대한 왜곡된 또는 편향된 시선에 대한 항변을 확실히 하는 것 같다. 더 나아가 마치 그것을 강요하는 듯한 테마별 묶음은 일기의 색깔마저 묻어 버렸다. 작위적이다. 일기라는 소재를 통하여 한 개인을 드러내려면 일기라는 형식에 충실해야 했다. 가공은 또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냄으로써 본래의 의도를 다시 빗겨나가게 만들고, 독자의 가치 판단과 의식의 흐름에 대한 걸림돌로 작용한다. 게다가 그녀의 작품에 대한 난해하고 추상이고 전문적인 해석이 초반을 ‘화려하게’ 장식을 해버리니, 한참을 읽다 보면 글이 그림을 덮어버리는 사태를 맞이한다. 내가 보는 눈은 다른데, 글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야만 하는 상황.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그림’일지도 모르나, 타인의 시선은 감상을 하는 나에겐 잡음이다. 넉넉히 볼 자유조차 없는 구성, 그림이 글의 장식이며 엑세서리로 전락해 버리는 이 책의 초반은 ‘아니다’ 싶었다. 아무 해석이 없는 작품들의 나열, 너무나 친절한 해석으로 짜증을 불러오는 부분, 그 뒤에 나오는 캐테 콜비츠의 일기. 이렇게 이 책의 마지막을 덮고 전체를 보니 편집이 의외로 재미가 있다. 작품, 전문적인 해석, 그리고 그녀의 삶을 엿보고 난 뒤에 다시 앞장의 작품들을 보게 만들고, 그렇게 함으로써 각 작품에서 새롭게 느껴지는 감성의 변화를 살피는 것이 바로 이 책의 묘미이고, 읽기 포인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것이 그녀의 혁명적인 이미지와는 다른 시선을 찾아내는 것은 이 책의 서문의 맥락과 상통하는 부분이다. 그녀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진솔한 개인의 역사가 녹아 있는 일기는 정말로 적절한 소재인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은 그것을 ‘너무나 친절하게 정리’를 해 놓지 않았던가. 일기에서 나타나는 주된 테마는 죽음과 번뇌이다. 1,2차 세계대전을 겪는 시점에서 어쩌면 죽음과 인간에 대한 고통은 가장 흔하면서 자연스러운 소재이며 삶 자체였을 것이다. 거의 매 페이지마다 많은 이들의 죽음을 기록하고 있으니, 일기 보다는 죽음의 기록에 가깝다. 특히 아들의 죽음은 평생을 따라다니는 그늘이었다. ‘죽은 아이의 곁을 지키는 어머니’, ‘죽은 아이를 끌어안고 있는 여자’라는 작품을 보면은 아이는 편안히 자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어머니가 오히려 시체의 얼굴을 하고 있다. 자식을 상실한 고통은 죽음보다 더 죽음에 가깝다. 게다가 그녀의 일기는 그녀 자신의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 죽음에 대한 집착, 민중의 아픔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은 언뜻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지만, 거친 죽음의 그림자는 치열한 삶을 오히려 부각시키는 가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죽음은 언제나 생의 빛줄기와 맞닿아 있지 않던가. 민중의 고통이 오히려 삶의 의지를 더욱 더 고양시키는 것처럼. 소멸과 탄생, 그림자와 빛, 추와 미, 그것의 경계에서 예술가는 그렇게 서로를 비추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캐테 콜비츠가 자화상이 많은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보기,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벗어나기, 그렇게 타인을 보듯 자신을 보듯 인간을 보기 때문에 그녀의 작품에는 판화 특유의 거칠고, 무거운 분위기 뿐만 아니라, 인류애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는 것 아닐까. 타인의 고통은 타인이 되어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마치 관 뚜껑을 닫듯이 덮은 이 책의 검은 겉 표지에는 아직도 그녀가 하늘을 향해 꼿꼿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No War.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부시는 지옥으로… |
|
“진보적 미술의 어머니, 캐테 콜비츠의 삶” 일기로 적어 나간 한 예술가의 초상 <캐테 콜비츠>
예술이란 무엇인가? 누구나 다 알고 있으면서도, 또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예술이라는 단어 속에 무언가 고상하고 아름다운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이라는 단어에서 그런 의미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어쩌면 오랜 기간 동안 그렇게 교육을 받아온 결과에 의한 것이기가 쉽다. 예술은 아름다움의 산물이라 할 수 있지만, ‘아름답다’는 것이 고정되어 있는 실체인가? 모든 예술은 그 나름의 표현 방식을 통해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아름답고, 또 무엇이 아름답지 않다고 할 수 있는가? 곰곰이 따져 보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름답다’는 개념은 오히려 개개인의 관념 속에서 존재하는 매우 추상적인 것일 뿐이다. 예술이라는 단어 역시 ‘아름다움’이라는 의미만큼이나 추상적 개념이다.
예술에 대한 찬사(讚辭)임이 분명한 이른바 ‘예술을 위한 예술’ 혹은 ‘순수 예술’이라는 개념도, 역시 예술은 격조(格調)가 있고 특별한 것이라는 인식을 바탕에 두고 있다. 예컨대 미술관에 전시된 화가의 그림은 예술 작품이라고 여기지만, 만화가가 그린 만화 작품은 예술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조각 공원에 놓여져 있는 조각품들을 예술 작품으로 생각하여 입장료를 내고서라도 관람하지만, 대형 건물 주변에 설치된 조형물들은 대체로 건축물의 일부처럼 그저 무심히 보아 넘기곤 한다. 이처럼 예술은 고급하다는 인식이 사람들 사이에 암암리에 갖춰져 있어, 대중적 소통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예술 방식에 대해서는 낮춰보는 경향이 적지 않다.
어떤 사물을 보면서 느끼는 ‘아름다움’이나 ‘추함’에 대한 감정은 단지 주관적인 판단의 문제이고, 그것은 각 개인이 지니고 있는 개인적인 기질이나 취향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같은 꽃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이는 장미를 아름답다고 느끼는 반면에, 다른 이는 제철마다 피어나는 들꽃에서 아름다움을 찾기도 한다. 우리가 주름과 검버섯으로 가득한 할머니의 얼굴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평생을 가족들과 함께 살아오신 그 분의 삶을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느끼는 아름다움이란, 미적 대상이 존재하는 상황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객관적으로는 전혀 미적으로 여겨지지 않는 풍경을 보면서, 누군가는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수 있다면, 마땅히 예술에 대한 사람들의 관념도 변해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예술에 대한 편견이 적지 않게 존재하고 있다. 현실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을 드러낸 예술 작품들에 대해서 그 역할과 영향력을 애써 무시하려 한다거나, 대중문화는 예술이 아니라는 편협한 시각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기도 하다. 지난 1991년 성악가인 모 교수가 대중 가수와 함께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로, 음악계 일부로부터 ‘순수 예술을 모독했다’는 비판을 당했던 일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도 하다. 당시 그가 대중 가수와 함께 불렀던 노래는 정지용의 시를 노래로 만든 ‘향수’였고, 지금 그 노래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애창곡이 되었다.
예술에 대한 지나친 인식이 빚어낸 에피소드라고 그저 보아 넘기기엔 너무도 씁쓸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쨌든 이제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예술 양식뿐만이 아니라, 대중화된 방식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예술의 존재도 인정해야 한다. 적어도 개별 작품들이 지니고 있는 예술적 가치를 평가하여 논하면 되지, 그것이 소통되는 방식을 따져 예술인가의 여부를 말하는 것은 자칫 예술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각각의 예술 작품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 사이에 소통되고, 어떤 가치를 안겨주는가 하는 문제인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예술이라는 단어만큼이나, 예술가들에 대한 인식도 어떤 선입견이 작용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흔히 예술가들은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며, 예술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기행(奇行)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떠올리는 예술가의 면모란 대개 보통 사람들처럼 틀에 박힌 삶이 아닌, 그들의 특이한 행위나 경력을 먼저 거론하곤 한다. 예컨대 자신의 귀를 자르고 그 모습을 화폭에 담아낸 화가 고흐(Vincent van Gogh:1853~1890)의 행적을 대하고서, 그러한 행위가 뛰어난 예술가로서의 삶을 더 극적으로 만드는 요인이라고 여기게 된다. 이처럼 예술가를 바라보는 시각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기준을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예술가들이 다 그처럼 특이한 삶의 이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수많은 예술가들 중에서 우리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준 일부의 예술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예술가의 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오히려 평범한 삶을 살면서 그들의 예술적 재능을 맘껏 펼친 예술가들이 더 많은 것은 아닐까? 독일 출신의 화가 캐테 콜비츠(Käthe Kollwitz:1867~1945)의 글을 읽으면서 제일 먼저 떠올랐던 생각이기도 하다. 그의 일기를 중심으로 엮어 낸 <캐테 콜비츠>를 통해, 나는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예술가를 만날 수 있었다. 판화로 유명한 화가 이철수의 ‘추천의 글’을 읽으며, 비로소 캐테 콜비츠란 인물이 미술사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도 새삼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콜비츠 없이 서양 미술사를 이야기 할 수는 없다’는 이철수의 찬사가 전적으로 타당하다고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콜비츠가 그린 ‘전쟁에 반대한다’는 제목의 포스터 그림의 표지부터가 아주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작품 속의 인물은 한 손을 치켜들고, 무언가 아주 단호한 구호를 외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외쳤던 말은 아마도 작품의 제목처럼 '전쟁에 반대한다!!'는 구호였을 것이다. 지금도 지구상 곳곳에서 크고 작은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그녀가 살았던 시대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발발했던 역사적 격변기였다. 더욱이 콜비츠는 1914년에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의 와중에서, 전쟁에 참전했던 아들 페터와 아들의 친구들을 차례로 잃게 된다.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전쟁 중에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던 그녀의 심정이 어떠했을 지는 충분히 상상이 되고도 남는다. 그녀의 작품에서 전쟁과 죽음, 그리고 궁핍한 현실을 살아야 했던 하층민들의 삶이 주로 다루어졌던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특이하게도 책의 앞부분에는 약 70여면에 걸쳐 그녀가 남긴 스케치와 조각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자화상을 비롯한 자신과 가족들은 물론 다양한 인물상이 대부분인, 그녀의 그림들은 다소 어두운 분위기를 던져주고 있었다. 미술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흑백으로 그려진 그녀의 그림들에 대해서 딱히 무어라 논할 수는 없으나, 무언가 매우 강렬한 인상을 느낀 것만큼은 사실이다. 특히 ‘죽은 아이의 곁을 지키는 어머니’ 등 여기에 수록된 적지 않은 수효의 작품이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한결같이 아이의 죽음에 대해서 비통해 하는 어머니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고 여겨졌다. 이는 아마도 아들 페터를 전쟁 속에서 읽은 이후, 오랫동안 그녀는 죽음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콜비츠는 ‘진보적 미술의 어머니’라고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그녀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사회주의 혁명이 거세게 진행되던 20세기 초반 격변의 시대를 온 몸으로 겪으며 살았다. 때로는 전쟁으로 인해 아들과 손자를 잃기도 했으며, 어려운 처지에 놓인 민중들의 삶을 마주하면서 자연히 역사와 현실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역사의 격변기를 살았던 그녀의 예술 활동은 늘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그녀의 일기에는 가난한 이들과 억압받는 민중들의 삶에 깊은 애정을 기울였고, 누구보다도 그네들의 말을 듣고자 노력했음이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현실의 모순을 작품 속에 그려내고자 노력했던 그녀는, 이철수가 논한 것처럼 ‘미술적 교태와 치장이 예술적 감동의 전부가 아님을 온 생애를 바쳐 통렬하게 확인시켜 왔’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콜비츠 미술의 긴 생명력은 세상과 인간에 대한 연민, 폭력과 착취에 맞선 저항 위에,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와 자기 성찰을 더한 데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그의 일기를 엮어 만든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너무나 인간적인 한 예술가의 삶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주지하듯이 일기는 진솔한 자기 고백의 기록이다. 그녀의 일기에는 그녀가 느꼈던 기쁨과 슬픔, 그리고 삶의 여정에서 느꼈던 갖가지 고뇌가 담겨져 있다. 아들 한스의 서문에 의하면 그녀는 41살부터 일기를 썼는데, ‘점점 기억력이 쇠퇴하는 걸 느끼기 때문’에 뒤늦게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녀의 일기를 읽어나가다 보면, 개인적인 삶의 기록은 물론이고 자신의 예술과 당시 사회 현실에 대한 생각들이 그대로 묻어난다. 콜비츠의 일기를 다양한 주제로 분류하여 수록하고 있는 이 책에서는 특히 아들 페터의 죽음과 자신의 작품 활동의 과정 속에서 느낀 다양한 감정들이 진솔하게 나타나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자신의 동생인 리제가 그린 그림을 칭찬하자, ‘몇 해 동안이나’ 동생에게 질투를 느꼈다는 ‘회고록’의 내용은 일기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진솔한 자기 고백이라고 하겠다. 또한 작품을 만들면서 뜻대로 되지 않자, 자신의 ‘능력이 떨어지는 게 느껴진다’고 자책하는 모습 역시 그녀의 인간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이 책은 그녀의 일기를 몇 개의 주제로 나누어, 주제별로 나누어 편집되었다. 제일 앞부분의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에는 그녀의 회고록만을 수록했을 뿐, 그 이후는 그녀의 일기를 중심으로 다른 사람들과 주고받은 편지와 회고록을 곁들여 배치하였다. 제일 뒷부분에는 손자인 유타 본케의 ‘나의 할머니, 캐테 콜비츠’라는 글로 마무리하고 있다.
일기를 이처럼 몇 개의 주제로 나누어 편집한 것은 아마도 장․단점이 다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시대순이 아닌, 주제별로 재배열하고 있는 이 책의 체제가 적지 않게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나처럼 캐테 콜비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던 독자들에게, 그녀 자신의 솔직한 기록을 통하여 뛰어난 예술가의 인간적인 면모를 접할 수 있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일기 곳곳에는 작품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의도대로 되지 않아 고뇌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그 부분에서 마치 그녀의 안타까움이 곁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책의 본문 앞부분에 ‘여덟 개의 소묘’란 제목으로 콜비츠의 스케치에 대한 긘터 팀의 해설이 제시되어 있는데, 그 글을 통해서 그녀의 예술적 특징을 보다 상세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도 지적해 두고 싶다.(차니)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
책 ‘캐테 콜비츠’의 표지그림은 한 청년이 검지와 중지를 곧게 세운 오른손을 높이 일직선으로 세우고 왼손은 가슴에 올리고 있다. 그리고 강렬한 눈빛으로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는 검은색의 그림인데 책 제목도 없고 그림에 대한 설명도 없다. 그래서 그 그림만 본다면 뭔가를 선동하는 것 같아서 과거 사회주의국가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포스터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 그림은 케테 콜비츠가 1924년 제작한 독일 청소년의 날 포스터 ‘전쟁에 반대한다!’는 반전포스터이다.
맨 처음 ‘케테 콜비츠’ 그녀를 만나는 것은 바로 그 표지그림을 통해서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녀와 전쟁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1867년 7월 8일 동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크 진보적인 분위기의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세계1차대전에서는 작은 아들을 그리고 세계2차대전에서는 작은 아들의 이름을 붙여준 손자 패터를 잃기 때문이다. 도서 ‘케테 콜비츠’는 캐테 콜비츠가 41세인 1908년부터 죽기전인 1943년까지 쓴 10권의 일기장을 그녀의 큰아들 한스 콜비츠가 일정한 주제에 관련된 글들을 발췌해서 엮은 것이다. ‘어린 시절과 사춘기’, ‘사랑과 결혼’,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라는 주제로 구분해서 일기를 구분해 놓고 있다. 그래서 소제목을 보고 첫 장에 있는 글을 보면 어떤 내용의 글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어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약간의 아쉬움도 있었는데
첫째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저자가 쓴 글들을 임의로 제목을 정하고 거기에 맞게 발췌하다보니 일관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에 대한 글들만 모아 놓아서 그에 대한 그녀의 생각들을 여기저기를 뒤적이지 않고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글을 읽다 보면 어떤 사건이 있었기에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이다음엔 어떻게 되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게 된다. 둘째는 첫 부분에 실려 있는 그녀의 작품에 대한 것이다. 그녀의 자화상과 판화,조각작품의 사진이 실려 있는데 대부분 연도와 작품의 제목정도만 설명이 되어 있다(조각,석판화,석고상, 부조는 표시가 되어있으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작품의 배열 역시 연도순으로, 작품의 크기와 소재 정도를 함께 실었더라면 그녀의 작품세계가 어떤 형태로 변화했는지를 이해하는데 좀 더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 같았다. 세 번째는, 좀 더 욕심을 부린 것인데, 일기 중간 중간에 그 당시 제작한 그녀의 작품사진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었다.
이런 일련의 지극히 개인적인 욕심은 있었지만 ‘캐테 콜비츠’라는 한 예술가를 이해하는데에는 상당히 도움이 되는 책이었다. 경험에 의하면 예술작품만을 감상할 때 보다는 그 작품을 제작할 당시의 정치, 사회, 경제등 전반적인 분위기를 알고난 이후 보다 잘 이해하게 되는 작가의 정신과 내면세계를 먼저 이해하고 보게 되면 그 느낌이 많이 다른데, 눈이 아닌 마음으로 느끼게 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녀를 소개하는 글에는 거의 ‘프롤레타리아’, ‘민중’, ‘고통’처럼 일반적으로 ‘아름답다’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수식어가 포함되어 있다. 그녀 자신도 그런 사실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으나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았다. 이는 ‘그 때부터 나를 따라다니던 ’사회주의 예술가‘라는 딱지에 대해 이 대목에서 몇 가지 밝히고 싶다. 내 작품이 이미 그 당시에 아버지와 오빠의 영향을 받아, 그리고 당시에 모든 문학의 영향을 통해서 사회주의 쪽으로 기울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그 때부터 거의 노동자의 생활만을 소재로 선택한 원래 이유는 단순히 내가 선택한 소재들이 아름답다고 느낄 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중략), 민중들의 움직임에서 나타나는 관용이 아름다웠다. 반면에 시민생활에서 흔히 보이는 사람들은 아무런 매력이 없었다...(중략), 프롤레타리아들은 큰 매력이 있었다.(1941년).’는 그녀의 일기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녀 자신이 의도적으로 원했던 바는 아니었지만 그녀가 가진 성향이 그런 수식어를 가져다주었던 것이다.
솔직히 그녀의 작품을 처음으로 보았을 때 ‘아름답다’라는 감상은 없었다. 오히려 그녀의 작품이 풍기는 다소 어둡고 암울한 느낌에 답답함을 느낄 정도였다. 그렇지만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 다시 그녀의 작품을 접했을 때는 ‘이런 아름다움도 있구나’라는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 그녀 작품의 매력은 단순해 보이지만 작품의 대상이 지닌 내적인 고통을 잘 표출시킨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생전에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사후에도 지속되는 ‘케테 콜비츠’와 작품에 대한 애정은 그녀 혼자만의 노력은 아니다. 일기에서도 그녀가 밝혔듯이 자신의 재능을 알아보고 지원해 준 아버지, 그리고 그 재능을 키워준 선생님들과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남편과 좋은 친구들에 대한 감사를 전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 자신의 예술에 대한 야심과 끊임없는 노력이 가장 큰 밑거름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녀의 예술에 대한 갈망을 단적으로 나타난 구절이 있는데 1922년 11월의 일기에 ‘내가 자주 느끼는 감정을 그는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면서 독일의 작가 파울 폰 하이제 시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떨린다.
이 밤에 떠나야만 하다니
이 작품을 끝마치기 전에 떠나야 하다니.‘
이 책은 ‘캐테 콜비츠’의 애호가가 아니라면 독자에 따라서는 결코 재미있는 책은 아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선 지루할 정도의 평범한 이야기가 500페이지가 넘도록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신만의 세계를 이룬 예술가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한 개인이 이루는 업적이란 것이 개인 혼자서 이룩한 작업의 결과가 아니라 그가 살았던 시대의 여러 가지 상황과 그가 그 속에서 생각하고 느꼈던 것들의 산물이란 생각이 들게 된다. 그래서 아무리 절망적인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캐테 콜비츠’와 같은 예술가들이 위대한 것이란 것에 도달하게 된다. 그래서 ‘캐테 콜비츠’란 사람을 만나기위한 안내자와 같은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상깊은구절] 美(미)는 醜(추)한 것이다. |
| 캐테 콜비츠.. 처음듣는 이름이였다. 생각해보면 세상사는 모든 사람들을 알필요는 없다. 또 그럴수도 없고 말이다. 게다가 그녀는 나와 동시대를 사는 사람도 아니고, 같은 나라 사람도 아니니 더욱더 그럴 수밖에... 그러니 모를 수 밖에.. 하지만 그녀는 꽤나 유명한 판화가였단다.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였단다. 탄생 140년이되었음에도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에 존재하는 사람이라니 생각이 바뀌었다. 흔히들 고전은 한번쯤 꼭 읽어봐야한다고들 한다. 난 솔직히 고전에 별 흥미가 없다. 책을 좋아한다 노래를 부르지만 고전은 읽기전부터 책의 두께만큼이나 마음에 부담감이 실어져 정작 책의 내용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까놓고말해 어렵기도하고말이다.) 그런데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어디선가 고전의 필요성에 대한 글을 보고나서부터였다. "오랜세월이 지났음에도 사람들에게 잊혀지지않고, 읽혀진다면 그 속에 정말 많은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맞다. 잊혀지지않는다는 것. 그것만큼 대단한건 없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시대를 초월하고, 인종을 초월한다는건 말처럼 쉬운일이 아니기에.. 게다가 고전을 읽어가면서 거부감은 점차 줄어가고있는 중이니깐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나와 너무너무 동떨어진 그림이라는 분야다. 미술관한번 가본적이 없고, 그림이라곤 학교때 미술책에서 본게 전부인 내게 과연 캐테 콜비츠란 사람을 어떻게 만나야할것이며 그녀의 그림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것이란 말인가? 게다가 판화가.. 판화의 종류조차 가물거리는 이 기억력으로 과연.. 하지만 이것또한 나의 괜한 걱정이였다. 한 사람을 가장 빨리 이해하기위해선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것도 좋지만 그것보다 그 사람의 글을 읽어보는게 좋다고한다. 그런데 그 글이 일기라면 금상첨화아니겠는가? ^^ 처음 아무 생각없이 그저 너무 강열하게만 느껴지던 작품들이 일기를 읽어가면서 들쳐보고, 일기를 다 읽고 다시 천천히 보니 많은 것들이 달라보였다. 그저 어린아이 낙서처럼 혹은 무섭다싶게 섬뜩하던 그림들이 작가의 의도가 어떻고, 작가의 심경이 어떠했는지는 대충이나마 알고 보니 180。다르게 보였다. 그냥 아무생각없이 봐서 좋은게 있고, 그 그림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알고봐서 좋은게 있을텐데.. 그녀의 작품들은 후자쪽인 것 같다. 물론 난 너무나 좋은 세상에 태어나 그저 나 자신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한 어찌보면 배부른 투정속에 살다보니 냉전시대가 어떠했고, 전쟁이 어떤 고통을 안겨주었으며, 가난과 고통이 어떤것인지를 자신의 온 힘을 다해 투쟁한다는게 얼마나 힘든것인지 알지 못한다. 억울하게 자식을 잃고, 많은 사람들의 아픔을 자신의 수많은 작품들로 주장했던 그녀의 용기가 얼마나 대단한지도 솔직히 모르겠다. 그저 한발짝 물러선 자리에서 소리없는 박수를 보내는정도랄까.. 하지만 안타까운건 그녀가 겪었던 그 아픔들이, 그녀가 반대했던 그 모든일들이 지금도 이 지구상 어디에선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찌보면 그 모든아픔들이 그녀의 작품을 만들었고, 아직까지 그녀의 작품이 잊혀지지 않는 이유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이 바뀌었지만 변하지 않는 그 아픔들.. 만약 그런 아픔들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선 어떤 의미로 그녀의 작품들이 이해될까 궁금해졌다. 혹 너무나 평온한 세상이 되어 전쟁이란 단어조차 사라지는 그런 세상이 와 어둠고, 암울함이 담겨진 그녀의 작품들이 더 이상 화자되지 않는다면.. 그녀는 행복해할까? 아님 서운해할까? 솔직히 단락으로 나누어진 일기를 읽으면서 이런 내용까지 꼭 필요할까란 생각도 들었고, 시간의 흐름이 아닌 주제별로 나누어진게 잘한일인가도 싶었다. 미술사에 관심이 있고, 그녀에게 관심이 많다면 반가운 일이겠지만 나같은 사람들이 읽기엔 조금 부담스러운 양이였으니깐. 하지만 그냥 지나칠 수 있었을 한 사람을 알 수 있었던 반가운 계기였다. 주름투성이 자화상속 그녀의 모습이 아름답다. 아마도 한동안 그 모습이 내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을까싶다. |
| 미국의 침략으로 시작된 이라크 전쟁은 부시의 종전선언 이후에 더욱 가열되고 있는 분위기다. 전쟁이 어떤 이유로 시작되었고, 이 전쟁의 정당성이 있든 없든 간에 이라크 저항단체들의 테러와 잔인한 보복행위들을 보여주는 뉴스에 우리의 관심이 높아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의 아들들이 총알과 포탄이 난무하는 그곳 전쟁터에 파병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전쟁이란것에 반대해야 할 이유는 의외로 단순 명쾌하다. 전쟁이 바로 미래를 책임질 젊은 병사들을 죽음으로 내몰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수한 민간인, 특히 어린아이들의 생명조차도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기에 전쟁은 지구상에서 가장 저주받을 죄악이다. 자이툰 부대에 관한 소식을 접할때 항상 가슴을 조려야만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케테 콜비츠의 삶과 그녀의 작품들이 과거에만 묻혀있지 않고 현재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은 바로 우리가 전쟁의 위협속에서 자유롭지 않고, 지금도 전쟁에 참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캐테콜비츠의 일기를 중심으로 엮어져 있다. 물론 그녀의 작품에 대한 해설도 첨가되어 있지만 주된 내용은 인간 캐테를 중심으로 가족과 그녀의 작업, 그리고 그녀의 다양한 삶의 궤적을 분류하여 구성한 그녀의 일기이다.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진보적인 외가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 캐테는 오빠 콘라드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성장기를 보낸다.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 대부분 지식인들이 그러했듯이 콘라드 또한 사회주의에 많은 관심과 지지를 보냈다. 이러한 오빠의 영향은 바리케이트 뒤에서 총알을 장전하여 투쟁하는 오빠를 돕는 자신을 상상하며 즐거워하는 캐테를 만들게 된다. 게다가 노동자집단거주지에서 의사활동을 하던 남편 칼과의 결혼에서 캐테의 예술 지표는 노동자 계급으로 대변되는 프롤레타리아들과 뗄 수 없이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다. 빈곤과 궁핍속에서 기본적인 인권마저 무시당하며 자본의 억압을 겨우 견디면서 살아가는 하층민들의 삶 속에서 캐테는 자신이 추구할 예술활동의 커다란 줄기를 잡아가게 된다. 캐테가 선택한 예술적 장르는 판화였다. 판화는 여타 다른 회화장르보다 간결하고 단순하며 명료한 것이 특징이다. 판화는 현란한 색감과 풍부한 선 그리고 다양한 해석을 동반하는 구도와 거리가 멀다. 명쾌한 선을 중심으로 흑백으로 양분되는 단순성은 보는 이에게 강력한 메세지를 남긴다. 이러한 판화의 특징들로 인해 판화는 혁명에 있어서 대표적인 예술 장르로 자리매김한다. 귀족적이라 볼 수 있는 회화들과는 달리 판화는 캐테가 매력을 느끼는 프롤레타리아들의 삶을 가장 적절히 표현 할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 초기 그녀의 작품들인 『직조공 봉기』,『농민전쟁』등에서 볼 수 있는 강한 선들과 암울한 흑백의 조화에서 판화를 통한 참여예술의 진수를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예술적 표현이 배제된 캐테의 작품은 어둡고, 칙칙하며, 뭔가에 억눌린 모습들의 인간상이 보여진다. 이는 비참한 프롤레타리아의 삶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으며 "미는 추한 것이다"라는 졸라의 말처럼 캐테는 추함에서 당시 사회와 그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본질을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1914년에 시작된 1차대전은 케테의 예술과 그녕의 삶에 거대한 변화를 강요한다. 끔찍히도 사랑했던 둘째아들 페터의 전사는 그녀에게 극도의 상실감을 가져다 주었다. 캐테는 아들의 죽음을 통해 자신이 어떠한 방향으로 작품을 만들어가야 할지 새로운 지표를 설정하게 된다. 후세에 강력한 반전 메세지를 전하고 있는 『경고비』,『부모』등의 조각작품이 이 시기에 계획된다. 전쟁중에 많은 어머니들과 부인들 그리고 전쟁터에서 소중한 가족을 잃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위안을 여타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쟁에 대한 강력한 경고를 나타내는 많은 작품들이 이 시기에 만들어지게 된다. 이 때부터 캐테는 한 전사자의 어머니가 아닌 전쟁에 참가한 모든 젊은이들의 어머니가 되어 가고 있었으며 그녀가 세상을 떠날때까지 이러한 경향의 작품은 계속 발표된다. 캐테 콜비츠는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는 인정스러운 인간이었다. 작품에 임할때는 자기자신을 닥달하고 끊임없이 고뇌하며 괴로워 하면서도 자신을 필요하면 언제든 기꺼기 자신의 재능을 펼쳐보였다. 작품에 대한 엄격함과 예술에대한 내면적인 갈등은 그녀가 남긴 많은 수의 자화상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자신에 대한 끝없는 성찰의 결과 그녀는 상당히 많은 자화상을 남겼다. 특히 1937년에 남긴 말년의 자화상에서는 선이 사라지고 명암만이 존재하는 듯한 캐테의 얼굴에서 달관자적이며 말년에 이르러 결국 그녀가 추구하는 예술의 참뜻을 깨달은 것 같은 인식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개발과 발전이라는 물질 문명사회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야기한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 완전히 굴복하였으며 신자유주의라는 외투를 입은 현대 자본주의는 빈부격차를 증대하고, 환경오염을 가속화 하며, 다양한 인종, 민족, 종교간의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국지적인 전쟁과 끊임없는 테러에 전세계가 몸살을 안고 있다. 몇년전 한 혁명가의 이야기가 유행한적이 있다. 혁명이 필요한 시기라서 그런 책들이 베스트 셀러가 된다고 하는데 현재와 같이 전쟁과 갈등이 계속되는 현실에서 필요한 코드는 혁명가가 아닌 캐테콜비츠와 같이 어두운 곳을 보듬을 수 있고 인간애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보낸 선한 사마리아의 여인과 같은 코드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
캐테 콜비츠라...솔직히 첨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
|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대학교 일학년 일학기 문학개론 시간에 애송시 낭독과 소개코너가 있었다. 친구가 이 시를 칠판에 적고 낭독하며 자기가 왜 이시를 좋아하는지 이야기 하고 내려오려고 할때 저 끝자리에 앉아있던 남학생이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그 시가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음풍농월인지 알기나 아냐고 , 나그네가 쓰여지던 시절 한가하게 술이나 익혀 먹으며 놀아도 되는 사람이 몇명이나 될것 같으냐며 호되게 야단을 쳤다.
아직도 고등학교때부터 쓰던 '목마와 숙녀'가 쓰여진 코팅 책받침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는 그런 질책을 할만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 아무리 그가 옳은 말을 해도 이건 반칙이었다. 국문과 4학년이나 된 사람이 어찌된 사연인 줄은 몰라도 타과 학생들 그것도 이제 막 학교에 들어온 신입생들이 주조를 이루던 개론에 들어와 큰소리 치는 꼴이라니 그의 질타 따위는 아무에게도 들어 먹힐 수 없었다. 그는 그런 말을 함부로 할 자격 미달이었다.
그가 조금은 더 배운 사람 입장에서 어린 후배들에게 과연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는 예술의 가치가 얼마만큼 인가에 관해서 좀더 설득력있게 이야기 했더라다면 우리는 충분히 귀기울였을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도 우리만큼이나 서툰 사람이었다.
당시 학교 곧곧에 걸렸있던 선동적인 걸개그림에 대해 예술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본적없다. 예나 지금이나 예술은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아름다움의 기준이 명확하진 않지만 말이다. ) 개인적인 관점에서 분위기 고양을 위해 제작되어진 갖가지 음악, 미술, 시에서 도저히 감동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렇지만 한가지 분명한것은 주변의 아픔을 무시하고, 시대적 상황을 배제한채 제작되어 지는 작품또한 공감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는것이다.
케테 콜비츠는 그런 면에서 예술가적인 성취를 이루기 탁월한 조건을 가졌다.
세계 일차대전과 이차대전의 주범이 되어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던 독일에서 1867년 에 태어나 1945년 까지 살았다. 일,이차 세계대전을 다 겪었으며 그 속에서 페터라는 똑같은 이름의 아들과 손자를 잃었다.
개인적인 아픔을 시대적 아픔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케테 콜비츠는 자식잃은 어머니의 진한 눈물방울을 모아 반전 메시지를 담은 경고비(기념비에서 전쟁에 대한 경고의 의미를 가진 경고비로 이름을 바꾸었다. ) 를 제작한다.
본디 부르조아 가정에서 태어나 부족한것 없는 생활을 하며 건축가였던 아버지의 강력한 후원으로 화가이자 조각가가 된 그녀는 의사 칼 콜비츠와 결혼해서도 계속 남편의 외조로 아이를 둘 씩 낳아 가면서도 작업에 전념할 수 있던 유복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빠의 영향으로 공산주의에 발은 디딘 그녀 눈에 가장 아름답게 보인것은 플롤레타리아 노동자들의 거친 모습이었다. 물론 그녀는 하층민들의 생활이 실제 어떠한지 따위는 알지도 못했으며 그저 매혹적인 소재로 노동자들의 삶을 그렸다.
그 시절 그녀가 아니더라도 자식하나쯤 잃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일차대전 이후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에 허덕이며 굶주리는 사람들이 지천인 시절에도 그녀의 가족은 그런 고통에 별로 노출되지 않았다. 예술가로서 히틀러의 탄압을 받긴 했지만 그것도 이젠 늙어서 더 이상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지경에 이르렀을때 이야기다. 히틀러가 탄압하지 않았어도 그녀는 더 이상 활동을 할 기력이 없었을것이다.
케테 콜비츠는 본디 죽음에 대한 집착과 우울이 정도 이상이었고 바로 그 점이 작품활동을 할 수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때문에 반전에 대한 메세지를 전하는 그래픽 작품이나 판화 이외에도 소묘나 조각 작품들이 대체로 음울한 편다.
본인도 평하기를 실제적으로 예술적 재능은 동생 리제가 더 뛰어났으나 리제에게는 성취에 대한 욕구가 부족했다고 한다. 아마도 리제에게는 예술가적인 광기가 부족했던것으로 보인다. 재능도 중요하지만 예술가에게 있어 이 광기란 대단히 중요한 요소라고 보여진다.
후세 사람들이 그녀를 어떤식의 이미지로 차용해서 쓰건 그녀는 강력하게 자신의 작품을 정치적인 의미로 이용하는것에 거부감을 표시한다.
다른 사람들이 정물이나 풍경에서 아름다움을 느낄때 자신은 노동자들의 봉기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봤을 뿐이라고 말이다. 그녀의 이 말은 대단히 인상적인 말이었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강나루 건너서 보이는 밀밭길에 가슴이 설레이지만 어떤 사람은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모습과 , 죽은이들의 모습속에서 아름다움을 찾는다. 그것은 개인적인 차이이고 또 평가또한 개인적인 문제일뿐이다.
지나치게 높게 책정된 가격과, 일기의 특성상 간략한 이야기들의 중복은 이 책이 매니아 소장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애초부터 대중을 상대로 만들어진 책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중에 속한 나는 마치 친구가 데리고 나온 사람이 유명 연애인이라 내가 당황하고 함부로 말 붙일 엄두를 내지 못하는 꼴로 엉거주춤 책옆에서 맴돌았다.
그렇지만 책읽기란 묘해서 그토록 멀게만 느껴지던 그녀의 어두운 소묘들도 , 또 슬픔에 쌓인 자화상도 페이지수가 넘어갈 수록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의 소묘를 해설하는 권터 팀이 그렇게 오바하며 위대하다는 수식어를 남발 하지만 않았더라면 아마도 훨씬 빠르게 아들잃은 그녀의 슬픔을 위로할 수 있을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나를 이제 그만 조용히 내버려두었으면 좋겠다. 예술가가, 그것도 여자라면 지금의 이 엄청난 복잡한 세상에서 제 정신을 차릴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예술가로서 나는 이 모든 것에서 감정에 와닿는 걸 뽑아내 그 느낌을 다시 밖으로 표출할 권리가 있다. 그래서 나한테는 노동자들이 리브네히트와 작별하는 모습을 그릴 권리가 있다. 노동자에게 그 그림을 헌정할 권리도 있다. 내가 정치적으로는 립크네히트의 노선을 따르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