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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내가 태어날 즈음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가난하고 낙후한 나라였다. 전쟁이 끝나고 어지러운 정국속에 정치도 혼란스럽고 아마 그 무렵 우리나라는 외국기관의 원조를 받고 있었던 것 같다. 밀가루 음식들이 그 무렵 발달되었다고 한다.
그런 대한민국을 지금의 부강한 나로로 이끌 인물들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경제를 이끈 삼성의 이병철, 현대의 정주영 같은 사람들이다. 한 인물의 등장이 대한민국의 미래가 되고 국민들의 영웅이 되기도 한다. 이병철은 바로 그런 인물인 셈이다.
이병철은 1910년 경남 의령의 부농집안에서 태어났다. 먹을 것 걱정이 없었던 어린시절에는 제법 속도 썩이다가 친척형을 따라 서울로 오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던 것 같다. 아주 오래된 기억속 이병철의 모습은 과묵하고 말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시절 서울에서의 고독한 생활이 그를 말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후 와세다대학에 진학하지만 병으로 인해 중퇴를 한후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후 아버지에게 돈을 얻어 사업을 시작하게 되는데 첫 사업이 정미사업이었다. 내가 알기로 정주영 역시 정미소를 운영하지 않았던가. 과거 쌀은 그만큼 중요한 자원이었던 것 같다. 쌀가격에 대해 정보가 부족했던 이병철은 고전했지만 전략을 세워 잘 이끌었다고 한다. 정미소사업이 흑자로 전환하자 트럭을 사들여 운송사업을 하고 논을 사들여 자본을 불린다. 하지만 일본과 중국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자 부채상환을 독촉하는 일본정부때문에 정미소와 운송회사까지 넘겨주고 만다. 실패한 그가 선택한 것은 여행이었다. 우리나라 대도시를 넘어 중국의 베이징, 상하이등을 돌면서 사업의 가능성을 진단해본 시간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설립한 '삼성상회'! 대한민국 삼성이라는 이름의 시작이었다. '조선양조'를 인수해 엄청난 돈을 벌었지만 그는 후에 이 조선양조를 매각한다. 술로 돈을 버는 일을 경계해서였다고 한다. 말은 없는 사람이었지만 스케일이 남다르고 미래를 보는 안목이 탁월했던 이병철의 시간은 실패보다는 성공이라는 결과가 더 많았다. 그만큼 그의 선택이 맞았다는 것이다. 삼성상회에서 반도체에 이르는 그의 일대기는 꽃길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한국비료사건이나 군부의 압력같은 것으로 많은 고초도 겪었다고 한다. 하지만 미래를 보는 그의 안목이 지금의 삼성을 만들었고 세계의 기업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삼성이 없었다면, 이병철이 없었다면 우리의 지금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권력이 바뀔 때마다 대기업을 욱죄는 권력자들에 의해 수없이 매를 맞았지만 얼마전 이병철의 손자 이재용역시 무죄를 받으면서 몇 년간의 고초에 종지부를 찍었다. 제발 권력자들이여! 정신좀 차리자. 물건 제대로 만들어 국위선양하는 사람들을 돕지는 못할망정 핍박하는가. 하늘에 있는 이병철도 여전한 이 현실에 혀를 차고 있을 것이다. 그의 뚝심에, 그의 선택에 우리 민족은 감사한 마음을 보내야 한다. #일송북 #나는이병철이다 #박상하 #한국을빛낸위인 #삼성 #이병철 #전기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일송북] - 나는 이병철이다 특히 감명 깊었던 부분은 이병철이 강조한 '생각하는 힘'이에요. 그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를 유지하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했어요. 이 부분이 정말 인상 깊었고, 저도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했어요. 또한, 이병철의 '1등 정신'도 많은 생각을 하게 했어요. 그는 항상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이를 통해 삼성이라는 기업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켰어요. 이처럼 목표를 세우고 이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는 저에게 큰 영감을 주었어요. #나는이병철이다 #박상하 #일송북 #컬처블룸 #컬처블룸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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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 삼성그룹이라는 거대한 숲을 만든 호암 이병철은 1910년 경남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의령에서, 부잣집이었으며, 기술과 자본이 없었던 대한민국에서, 26살 되던 해, 세 사람이 동업하여, 합동정미소를 만들었다. 대한민국의 수출 견인차였던 마산에 수백만 섬의 쌀이 모였으나,도정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눈여겨 보았으며,쌀을 도정하는 정미소가 돈이 된다는 것을 일찌기 알게 된다. 이병철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 돈이 흐른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합동 정미소, 조선 양조장을 잇달아 창업하였고, 설탕을 가공하는 제일제당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기술 하나 있으면, 돈을 벌수 있고, 큰 사업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세 개의 은행을 만들었으나, 국가에 헌납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탁월한 경제적 안목을 1987년 사망하기 전까지 50여개의 삼성 그룹 내 계열사를 만들어 나간다. 그 과정에서, 삼성 반도체는 무모한 사업이며, 미래를 일찌기 내다보았던 그의 무모함이 삼성을 세계의 기업으로 완성하였고,한국이 후진국에서,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데 큰 역할를 하였다. 이병철의 70 여 년의 인생은 속담'골이 깊으면 산도 높다"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성공도 많았지만, 사업 실패도 있었다. 중일전쟁으로 자신이 일구었던 사업을 통째로 날렸다. 그리고,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 당시,세계의 금융 은행을 가지고 있었지만, 통폐합되고 말았다. 제조업 기업 삼성이 금융 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지만, 대한민국 국내 상황은 그걸 허용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그는 미래를 내다본 대한민국 최고의 CEO였다. 막대한 자본이 있어야 하는 반도체 산업, 기술이 집약된 반도체 산업에 1983년에 뛰어들었고, 4년의 긴 시간 동안 일본과 기술 경쟁에서,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본과 한국의 반도체 기술 격차를 극복하기 힘든 상황에서, 1M 바이트의 반도체가 만들어지면서,일본과의 기술의 차이가 좁혔으며,서서히 일본을 앞지르기 시작한다. 그것은 대한민국과 삼성 그룹이 살 길은 최고의 기술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일찌기 느꼈기에 가능하였다. 그가 벌어온 돈으로 1987년 삼성종합기술원(三星綜合技術院) 을 설립하였고, 장남 이맹희, 차남 이창희가 아닌 3남이었던 이건희를 차기 후계자로 낙점하였던 건 그가 일구어 놓은 삼성이 무너지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 지분의 90퍼센트 이상을 이건희에게 줌으로서, 이건희 리더십에 힘을 실어주었다. 꾸준히 후계자 수업을 받았던 첫째 이맹희가 아닌, 3남이었던 이건희를 차기 삼성 그룹 CEO로 낙점하였던 건 ,그가 보여준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말은 어눌하지만, 철두철미하게 계획을 세우고, 이건희 특유의 신중함과 치열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삼성 그룹 반도체 산업은 개인 컴퓨터가 등장하고, 모바일 산업이 커지면서, 더 성장할 수 있었으며, 글로벌 기업으로 재도약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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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서평단 자격으로 일송북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똑똑한 도서소개] 일송북, 나는 이병철이다 ![]() 글 / 사진 : 서원준 (news@toktoknews.com) 2025년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2월도 보름을 넘어 하순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날은 춥지만 곧 봄이 도래할 것 같습나다. 환절기 건강관리 잘 하시고 2025년도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2025년은 다른 해에 비해서 전세계적으로 큰 사건이 연이어 터지며 벌써부터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낼 것 같은 예감입니다. 필자는 공부와 자격증, 독서, 필사를 주로 해서 올 한 해 활동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삼성그룹의 기초를 닦은 이병철 회장의 일대기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자기 자신을 성장시키고 혁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나라의 어수선함이 조금씩이기는 하지만 가라앉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럴 때일수록 조심해야 할 필요성이 분명 존재합니다. 매사 언행에 늘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저도 나라에 큰 사건이 터지면 유튜브 스트리밍을 시청하긴 하지만 댓글은 절대로 달지 않고 있으며 채팅을 한다고 하더라도 원론적인 이야기만 항상 합니다. 수동적인 이야기만 합니다. 그 대신에 독서를 하거나 필사, 자격증 학습 등을 통해서 이 상황을 모면하고 있으면서도 이병철 전 회장처럼 성공하기가 이렇게 힘든 것이라는 점을 지금 저는 깨닫고 있는 중입니다. ![]() 맨 땅에 헤딩하여 성공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힘듭니다. 더군다나 기업들은 성공하는 것보다 실패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잘 나가던 기업들은 IMF 외환 위기 이후 많은 기업들이 소멸, 해체, 매각되기까지 했습니다. 그 중 살아남은 몇몇 기업들은 정말 대단하다고 할 것입니다. 특히 정직한 기업인들은 사후에도 꾸준히 이름이 계속 오르내려야 합니다. 오늘 소개할 도서는 현재의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기여한 몇 안되는 기업 중 하나로 지금도 잘 나가는 기업의 기초를 세운 분에 대해서 다룬 책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 다룰 책은 "나는 이병철이다" 입니다. 이 책은 큰 자본과 기술 없이 ‘100년 경영’ 을 시작한 이병철의 남다른 점은 ‘생각하는 힘’ 이며, 생각하는 힘의 중심은 ‘1등 정신’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는 책입니다. 즉. 오늘의 삼성그룹이 반도체, 휴대전화 업종에서 강자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는 배경을 잘 설명해 놓은 도서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병철 회장은 대한민국 첨단산업의 기초를 확립하신 분으로 유명한데요. 성공사례를 통해서 대리만족을 얻고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책으로는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합니다. ![]() 마치면서 최근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는 걷어지고 있긴 합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자기 혁신을 해야 하는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나는 이병철이다" 를 다 읽고 나면 혁신이라는 뜻의 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비재 산업에서 첨단 산업으로 그 역량을 넓힌 이병철 회장의 일대기는 자기 계발과 자기 혁신이 무엇보다 요구되는 우리의 수많은 청춘들, 나이만 먹었지 아직도 발전이 정체되어 있는 수많은 분들에게 딱인 책입니다. 필자도 이 책을 읽고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보겠습니다. ![]() #협찬 #유료광고 #도서협찬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독서 #독서스타그램 #도서 #도서스타그램 #책추천 #도서서평 #일송북 #나는이병철이다 #박상하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컬처블룸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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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일등 삼성을 만든 이병철 리더십
책을 선택한 이유 한국은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지만, 세계적 경제 강국으로 성장한다. 난세의 시대에는 영웅이 나는 법이다. 위대한 기업가들이 나와 한국을 발전시켰다. 기라성 같은 재계의 풍운아들이 명멸했지만, 삼성은 한국 재계를 선도한 부동의 기업이다. 삼성을 세계 최고의 IT기업으로 만들어 낸 고 이병철 회장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나는 이병철이다"를 선택한다.
1장 내가 되다 이병철의 ‘재才의 세계’ 에서는 CEO는 황금이 되는 산업을 찾아내어 자기 기업의 조직과 문화에 효율적으로 접목해 낸다. 이병철은 CEO로서 목적이 누구보다 명확하고 매우 잘 아는 재의 수준을 일등정신으로 펼쳐보인다. 6.25 전쟁으로 가까스로 재기에 성공하자, 임직원들과 관계 당국의 부정적 의견에도, 우리 나라 최초의 현대식 대규모 생산시설 제일제당을 건설한다. 삼성은 근대적 생산자로서의 면모를 구축한 첫 걸음인 동시에, 무역업이라는 상업자본에서 산업자본으로 선구적으로 전환한다. 세계 최대 규모의 비료 공장, 한국비료 건설은 일등정신을 성취하기 위한 부단한 도전을 보여준다. 이병철은 어린 시절 학습 능력이 뒤떨어져 꾸중을 듣는다. 낯설기만 한 타향에서 어린시절을 늘 홀로 이병철은 늘 외톨이였다. 에너지는 바깥으로 향하기 보다는 내면의 세계로 이끌었다.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하지만, 유행성 독감에 걸려 학업을 중단하고 쓸쓸히 고국으로 돌아온다.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하고, 마산에서 정미사업에 뛰어들어, 협동정미소를 시작하지만 사업은 부진하다. 이병철이 실패를 거울삼아 경영을 일신하자 단숨에 흑자경영으로 돌아선다.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은행 대출이 중단되자, 정미소와 운송회사를 헐값에 팔아 부채를 청산한다. 막대한 성공과 허무한 좌절을 겪게 되면서 성격은 더 깊고 견고해진다. 이병철은 대륙 기차여행을 하면서 엄청난 거래 규모에 놀란다. 주식회사 삼성상회를 대구에 설립하고 무역업을 시작한다. 태평양전쟁으로 확전되자 군수용으로 총동원되면서, 심각한 식량난이 발생하자 일제의 패망을 확신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칩거에 들어간다.
2장 삼성이 되다 에서는 8·15해방이 되자 이병철은 사업장에 복귀한다. 대구 조선양조의 설비를 확충하고 영업을 재개하며, 삼성상회는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간다. 이병철은 서울에 사업무대를 옮겨 삼성물산공사를 시작한다. 재계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거대 무역회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황제경영의 막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한다. 6.25 전쟁의 혼란 속에 이병철은 속절없이 피난길에 오른다. 대구까지 내려간 이병철은 조선양조에서 비축된 출자금 3억원으로 삼성물산주식회사를 창립한다. 창립 한 해만에 3억원의 자본금이 20배로 성장한다. 이병철은 1950년 2월 경제계 인사들과 일본을 시찰한다. 패전으로 폐허가 된 일본에서, 담담하게 외길을 살아가는 일본인들의 투철한 장인정신에 놀란다. 6.25전쟁이 소강 상태에 접어들자, 이병철은 제조업에 투신하기로 결의를 다진다. 시기상조라며 모두가 반대하지만, 바위와 같은 결의로 제조업에 대한 열망을 거두지 않는다. 제일제당공업주식회사는 수입 의존도 100%였던 설탕을 3년만에 국내 생산으로 대체한다. 기간식품, 가공식품을 생산하는 식품 메이커로서의 발판을 구축하며, 재계의 정상에 우뚝 올라선다. 이승만 자유당 말기 시중 은행의 민영화에 재계 유력자들이 나섰으나, 이병철과 정재호에게 돌아간다. 5.16으로 이병철은 부정 축재자 1호로 지목되면서 금융삼성을 세우려는 공든 탑이 한순간 무너져 내린다. 이병철은 회장 비서실에 전자사업 부서를 신설하며, 기술 장벽에 도전하기로 결심을 굳힌다. 형편 없는 국내 전자산업 업체들이 삼성의 합작 투자에 반대하면서, 정부는 전량 수출한다는 족쇄를 채워 삼성전자를 허가한다. 이병철의 삼성가는 정치 권력이 일절 보이지 않는다. 이승만의 권유로 자유당 당적을 걸쳐놓았을 뿐이지만 이병철은 엄청난 곤욕을 치른다. 기업가는 정치와 직접 인연을 맺어서는 안 된다는 결심이 경영이념으로 자리 잡게 된다. 전두환의 신군부가 철권을 휘두르자 이병철 역시 은밀히 불려간다. 동양방송과 중앙일보 요구에, 동양방송 포기각서에 도장을 찍는다. 정치권력에 참여하지 않는 이상, 삼성은 기술만이 살길이다. 선진 기술을 도입해서 실력을 쌓고, 신기술 개발에 힘을 쏟는 것이 더욱 효율적인 해법이라고 확신한다. 이병철은 첨단기술을 눈여겨 본다. 삼성전자는 대량 생산 재고가 쌓여가면서, 경영난은 심각하다. 이병철은 산업의 쌀 반도체에 대해 학자 및 기업가들로부터 조언을 구한다. 반도체는 장래가 유망하지만 공급과잉으로 생사를 걸어야 한다. 이병철은 세계 공통 규격 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첨단기술이 필요한 VLSI 개발 계획 수립을 엄명한다. 도쿄 오쿠라 호텔 에서 장고에 장고를 거듭하면서, 경쟁이 치열하고, 공급 과잉이 예상되지만 시장 규모가 큰 D램 산업 진출 결심한다. 이병철은 일본에 신년에 머물면서,경제 전문기자, 저명한 학자, 유명 기업가를 만나면서, 삼성 왕국에 도입할 새로운 시스템, 관리 기법, 비전 을 찾아내고, 확신이 설 때까지 거듭 확인한다. 삼성그룹 은 우리는 왜 반도체 사업을 해야 하는가 라는 선언문을 신문 지면에 발표한다. 극심한 기술 격차, 높은 위험성 등은 불가능에 가까운 맹목적 도전이며, 삼성왕국 전체가 뿌리채 흔들릴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의 살벌한 반도체전쟁이 가속되면서, 미국으로 건너간 우리 인재들을 찾아나선다. 국내파와 국외파가 경쟁하면서 256 D램 개발에 돌입한다. 국내파가 1M D램 개발에 먼저 성공하자, 누구도 시작하지 않던 4M D램 개발을 추진하고, 미국 현지법인이 뒤쳐지면 해체하겠다고 결정한다. 첨단기술의 장벽을 가까스로 넘어서면, 누적 적자라는 또 다른 장벽의 늪에 빠지지만, 이병철은 초지일관 흔들리지 않는다. 1M D램부터는 기술 격차가 줄어들고, 4M D램 생산은 선진국 기업보다 먼저 시작한다. 이병철은 반도체의 길을 열어 경제 영토를 넓혔지만, 삼성 제국을 위한 후계자를 찾지 않으면 안 된다. 3장 못다 이룬 것들 에서는 이병철을 경영의 귀재라 부른다. 96%의 경이적인 사업 성공을 남기고, 질적인 면에서도 단연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삼성 비서실은 세계 시장의 주요 정보를 수집하고, 각지의 지점을 통제하기 위한 헤드 쿼터 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깐깐한 완벽주의는 삼성만의 기업근육이다. 군사정권 출범으로 타의로 기업을 포기하는 희생양이 된다. 기업은 사람이다라는 원칙을 잊지 않고 꾸준히 실천에 옮긴다. 준비되지 않은 허상의 투망질이 헛된 것임을 깨닫게 되면서, 물러설 줄 아는 용기도 절감한다. 한국 비료 사건의 배경에는 정치인의 공작이 숨어 있으며, 신중함을 강조하고 기술을 중시하게 된다. 이병철은 일본으로 건너가 암 수술을 받기 위해 출국하기 전날 밤, 전 가족을 한자리에 모아 후계 구도에 대해 언급한다. 이병철이 3남 이건희를 후계자로 지목할 때가지만 해도 이건희는 미스터리 한 인물이다. 이건희는 미래에 대한 통찰력이 뛰어나고 스케일 이 크다. 왕국의 영속을 위해 3남 이건희에게 대부분을 넘겨주면서, 경영의 상속과 아울러 분가의 원칙을 철저히 지킨다. 이병철은 약골의 모습이지만 회갑에 이르러서도 몸에 이렇다 할 이상 증상이 없다. 이병철의 건강 비법은 몸에 무리가 가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도쿄 에서 받은 건강 진단에서 위 수술을 진단받는다. 깊은 고뇌 끝에 병마에 도전할 결단을 내린다. 암 수술을 받은 후 이듬해부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10여년 동안 삼성 왕국의 영토를 왕성하게 확장해 나간다. 폐에 이상 징후가 있음을 느끼고, 암 판정을 받는다. 건강이 계속 나빠지자 의식이 흐려져 가고, 뇌에까지 병변이 전이된다. 이병철의 죽음에 애도의 줄이 이어진다. 숙명의 라이벌 현대그룹 정주영도 이병철을 애도한다. "나는 이병철이다"는 중국 대륙을 여행 후 무역업에 투신하고 , 해방 후 삼성을 세워 재계의 기린아로 성장하며, 글로벌 기업의 기초를 다진 이병철의 일대기를 다룬다. 이병철은 황금이 되는 산업을 찾아내어, 자기 기업의 조직과 문화에 효율적으로 접목해 낸다. 이병철은 CEO로서 목적이 누구보다 명확하고 매우 잘 아는 재의 수준을 일등정신으로 펼쳐보인다. 우리 나라 최초의 현대식 대규모 생산시설 제일제당을 건설하면서, 삼성은 무역업이라는 상업자본에서 산업자본으로 선구적으로 전환한다. 어린 시절 낯설기만 한 타향에서 이병철은 늘 외톨이였다.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하지만, 학업을 중단하고 쓸쓸히 고국으로 돌아온다. 마산에서 동업으로 시작한 협동정미소 사업이 부진하자, 이병철이 경영을 일신하면서, 단숨에 흑자경영으로 돌아선다. 중일전쟁 발발로 부채를 청산하기 위해 정미소와 운송회사를 헐값에 청산한다. 이병철은 대륙 기차여행을 하면서 엄청난 거래 규모에 놀란다. 주식회사 삼성상회를 대구에 설립하고 무역업을 시작한다. 8·15해방이 되자 대구 조선양조의 설비를 확충하고 영업을 재개하며, 삼성상회는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간다. 이병철은 서울에 사업무대를 옮겨, 거대 무역회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삼성물산공사를 시작한다. 이병철은 6.25 전쟁의 혼란 속에 속절없이 대구까지 피난길에 오른다. 조선양조에서 비축된 출자금 3억원으로 창립한 삼성물산주식회사는 창립 한 해만에 3억원의 자본금이 20배로 성장한다. 이병철은 6.25전쟁이 소강 상태에 접어들자, 이병철은 제조업에 투신하기로 결의를 다진다. 모두가 반대하지만, 제조업에 대한 열망을 거두지 않고 설립한, 제일제당공업주식회사는 수입 의존도 100%였던 설탕을 3년만에 국내 생산으로 대체하면서 재계의 정상에 우뚝 올라선다. 자유당 말기 시중 은행의 민영화에 성공하지만, 5.16으로 금융삼성을 세우려는 노력이 무너져 내리자, 이병철은 전자사업 부서를 신설하며, 기술 장벽에 도전한다. 수준 미달의 국내 전자산업 업체들의 삼성 합작 투자에 반대하면서, 전량 수출이라는 조건으로 삼성전자가 시작된다. 전두환의 신군부가 철권을 휘두르자 이병철은 동양방송을 포기한다. 이병철의 삼성가는 기업가는 정치와 직접 인연을 맺어서는 안 된다는 경영이념이 자리 잡는다. 삼성은 선진 기술을 도입해서 실력을 쌓고, 신기술 개발에 힘을 쏟는 것만이 살길이라 확신한다. 이병철은 첨단기술을 눈여겨 본다. 반도체는 장래가 유망하지만 공급과잉으로 생사를 걸어야 한다. 도쿄 오쿠라 호텔 에서 장고에 장고를 거듭하면서, 이병철은 첨단기술이 필요한 VLSI D램 산업 진출 결심한다. 반도체 산업 진출로 삼성왕국 전체가 뿌리채 흔들릴 수 있다. 미국으로 건너간 우리 인재들을 찾아나서며, 국내파와 국외파가 경쟁하면서 256 D램 개발에 돌입한다. 첨단기술의 장벽을 가까스로 넘어서면, 누적 적자라는 또 다른 장벽의 늪에 빠지지만, 이병철은 초지일관 흔들리지 않는다. 1M D램부터는 기술 격차가 줄어들고, 선진국 기업보다 먼저 4M D램 생산을 시작한다. 이병철은 경영의 귀재다. 삼성 비서실은 세계 정보를 수집하고, 지점을 통제하는 헤드 쿼터 며, 한 치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 깐깐한 완벽주의는 삼성만의 기업근육이다. 군사정권 출범으로 타의로 기업을 포기하는 희생양이 되고, 한국 비료 사건과 정치인의 공작이 개입되면서, 삼성은 신중함을 강조하고 기술을 중시하게 되고, 준비되지 않은 허상의 투망질이 헛된 것임을 깨닫게 되면서, 물러설 줄 아는 용기도 절감한다. 이병철은 미래에 대한 통찰력이 뛰어나고 스케일 이 큰 3남 이건희를 후계자로 지목한다. 이병철의 건강 비법은 몸에 무리가 가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도쿄 에서 받은 건강 진단에서 위 수술을 진단받고, 깊은 고뇌 끝에 암 수술을 받은 후, 10여년 동안 삼성 왕국의 영토를 왕성하게 확장해 나간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는 말이 있지만, 아무것도 없는 맨 땅에서 일어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병철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한국을 세계적인 경제 강국으로 부상시키는 기적을 만드는 데 앞장선다. 별다른 기술이나 남다른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인맥이나 학맥조차 뛰어나지 않았다.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선진국의 제당 공업을 도입하면서, 한국에 근대적인 제조업의 길을 열었다. 이병철은 현재 한국의 위상을 만들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 그룹의 사활을 걸고 첨단 반도체 산업에 도전하면서, 삼성전자를 세계적인 IT 기업으로 성장시키고, 한국을 경제 강국의 반열에 올려 놓는다. 관리의 삼성이라는 말이 있다. 효율적 업무 프로세스 와 엄정한 인사 고과 시스템을 갖춘다는 의미겠지만 성공 가능성이 높고 안전한 일만 추구한다는 선입견을 갖게 한다. 이병철은 한국 일등 기업에 안주하지 않는다. 삼성 의 명운을 걸고 제당 산업에 뛰어들고, 반도체 산업에 도전한다. 새로운 시스템, 관리 기법, 비전 을 찾아내기 위해, 수많은 전문가를 만나면서 자문을 받고, 확신이 설 때까지 거듭 확인하는 치밀함을 가졌지만, 불가능에 가까운 어렵고 힘든 도전이라도, 과감하게 추진하는 승부사의 모습을 보이면서, 삼성을 세계적 기업의 반열로 올린다. 삼성이 반도체 산업에 투자할 때, 대부분의 한국인은 노망이 난 이병철이 삼성을 말아먹으려 한다고 손가락질 하지만, 오늘의 한국은 이병철의 도전이 가져온 결실을 누리고 있다. 리더는 미래를 위한 고독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면서 오늘을 살아가야 하며, 모두가 반대해도 미래를 향해 과감히 나아가야 한다. 기술과 자원이 일천한 상태에서, 세계적 경제 강국으로 한국을 발전시킨 데, 이병철의 결단과 도전이 큰 영향을 미친다. "나는 이병철이다"에서 이병철의 도전의 삶을 살펴보면서, 리더가 갖추어야 할 자질과, 리더십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일송북 과 컬처블룸 서평단에서 "나는 이병철이다"를 증정해주셨다. 감사드린다. #박상하 #일송북 #서평 #전기 #컬처블룸 #컬처블룸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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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되었습니다] 일송북의 나는 누구다 시리즈의 이번 주인공은 이병철이다. 삼성그룹의 초대 회장으로 많이 알려져있어서 아마 현대 위인들을 다루는 시리즈가 있다면 꼭 들어가야 될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자서전을 읽어보진 않아서 직접적으로 비교할 순 없지만 인간 이병철에 대해 살짝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이 시리즈 특성 상 페이지수가 많지 않고 책 자체도 가벼운 편이라 들고 다니면서 쉽게 읽기 좋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딱 맞는 책이다. 이병철 초대 회장의 명언들은 정말 유명해서 경영인들이라면 한두개 이상은 외우고 다닐 것이다. 나 같은 경우 이 책에서 등장하는 수 많은 명언들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경영의 정신에 대한 정의였다. 호랑이 한 마리가 이끄는 100마리의 양떼가 양 한마리가 이끄는 100마리의 호랑이떼보다 더 강한 조직이라는 걸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인정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역사에는 아주 비슷한 실예가 있다. 바로 13척의 배로 일본 수군의 133척을 무찌른 이순신 장군이 그 주인공이다. 조직에 몸을 담으면 리더가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이병철 초대 회장은 본인의 자리 즉 리더의 역할이 조직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재벌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나조차도 괜히 꼬아서 생각했던 부분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인간 이병철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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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송북 출판사에서는 2024년부터 고대/중세/근세/근대/현대/단체, 분야별로 한국 인물 500인 선정위원회가 선정한 인물들을 소개하 '나는~이다'시리즈를 출판하고 있다. 책이 문고판처럼 작고 두껍지 않지만 내용이 알차서 부담을 느끼지 않고 재미있게 읽어 오고 있는데, 이번 책은 박상하 작가님이 쓴 '나는 이병철이다'이다. 초등학생 시절,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책을 처음 읽고 자수성가한 사업가의 생애에 대해서 큰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정주영 회장도 소학교 졸업 학력을 극복하고 현대그룹의 창업주로서 김대중 대통령 시절 소떼를 몰고 북한에 간 일이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거나,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등 그의 도전정신에 대해서 큰 감동을 받은 바 있다. 그런데, 삼성 이병철 회장은 삼성 1세대 창업주라를 것 외에는 별로 아는 바가 없었다. '호암'이 그의 호라는 정도? 그러다가 이건희 회장이 돌아가신 후로 이건희 회장의 생애에 대해 알게 되면서 그의 선친은 어떤 분이셨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있던 차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병철 회장은 일단 '부잣집 도련님'이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 한 것도 아니었지만 일본 와세대 정치경제학과에 입학해서 일본을 접할 기회도 있었고 지금 돈으로 환산한다면 약 10억원 쯤의 되는 600석지기의 토지를 아버지께 물려받아 이 것으로 초기 사업을 시작하였으니 역시 있는 집 자식이라 시작이 남달랐구나 라는 생각에 왠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졌다. 초반부터... 어릴 적부터 사업을 하면서 인생의 널뛰기 장면을 보여주는 지인들의 고충을 간접적으로 목격한 기억이 있기에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안정된 생활이 최고구나라는 생각에 사업에 대해서는 다른 세계의 일이라고 생각을 해 왔다. 이회장은 다른 자극을 받은 것 같다. 일본 유학 시절 도쿄로 오가는 오사카의 철로 연변에 즐비하게 늘어서 거대한 공업단지를 목력하면서 일본의 저력을 절감했지만 여기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사업가가 되어 부강한 조국을 만들겠다는 꿈을 품었다는 점에서 그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처음 마산에서 제일 큰 규모의 정미소를 하면서 동업을 택하였는데, 그는 당시 '조선인은 단결심이 없다. 공동사업 같은 것은 바랄 수도 없다'는 일본인들의 고정관념을 깨고 조선 사람과도 동업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싶었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삼성 90년의 첫 시작점을 연 것이다. 이병철 회장은 신중한 성격과 함께 유달리 스케일이 컸다고 한다. 곧이어 쌀의 도정에서 시작하여 쌀을 실어 나르는 운송회사, 또 토지사업에도 손을 뻗는다. 그러나 늘 의욕처럼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않는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듭되는 실패 속에서 경영의 어려움을 깨닫게 되고 그 같은 깨달음 속에서 자기만의 철학, 신념이 자리 잡게 되었다니.. 그에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맞는 것 같다 마산에서 한순간의 막대한 성공도 맛보고 허무한 좌절도 겪은 그는 새로운 사업을 탐색하기 위해 대륙으로 기차 여행을 다녀와서 그의 나이 28세 때 '주식회사 삼성상회'라는 커다란 간판을 내결고 대구 일대에서 생산되는 청과물을 만주와 중국으로 수출하는 무역업을 시작하게 하고 나중에는 포항 등지에서 나는 건어물도 수출하게 된다. 창업을 하고 학습을 하고 단련시켜 토대를 닦고, 그러한 경험 위에서 조금씩 외연을 넓혀나가 몸집을 착실히 불려간 그는 자신만의 새로운 경영력으로 회사를 키워갔다. 물론 그 과정에서 6.25 전쟁이 발발하고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을 내버린 채 피난길에도 오르기도 하고 1973년 조선업에 진출하려 했으나 제1차 오일쇼크로 조선사업을 접었으며 '한국비료'사건으로 인해 국가에 헌납하기도 하는 일들을 겪는다. 현대사에서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정권의 표적이 되어 억울한 일도 많이 당했지만 기업가는 정치와 직접 인연을 맺어서는 안 된다는 결심이 삼성의 기업 경영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 점이 다른 기업들과는 남다를 행보라고 생각한다. (물론 논란도 보인다;) 나는 평소에 사업하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이 많았다. 그런데 이병철 회장의 생애를 보면서 사업하는 사람들보다 권력을 등에 업고 사업가들에게 접근하여 압력을 행사하는 정치꾼들에 대해서도 보게 되었다.
누구보다 일찍 기술의 가치에 눈을 뜨고, 첨단 기술만이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깨닫고 '삼성전자'를 탄생시킨 이병철 회장의 반도체 사업은 그의 말처럼 마지막 사업이자 삼성의 대들보가 될 사업이었다. 이 책에서 가장 압권이었던 부분은 역시 반도체 이야기이다. 우리 나라 반도체 생산과 관련된 난관과 탁월한 선택, 실행 문제,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4M D램을 개발하여 노동 집햑적, 자본 집약적이었던 우리나라의 수출 상업 구조를 '기술 집약적'산업으로 변모시키고 세계 메모리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하게 된 자랑스러운 삼성의 반도체 생산 이야기는 굴하지 않는 1등 정신으로 반도체신화를 이뤄낸 그만의 숨은 힘을 느끼게 해 주었다. 재벌 대기업 중심의 경제 성장은 우리 나라 경제가 가진 큰 문제점과 한계로 지적이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삼성과 이병철 회장에 대한 자료도 찾아보았는데 그의 행적에 대한 논란이나 비판의 글들도 보인다. 친일행적논란, 정경유착, 무노조 등... 예전에는 관심이 없던 내용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관심이 대상이 된 것 만으로도 기업과 기업인을 바라보는 시야가 다소 확장된 것 같다. 이래서 책읽기는 계속되어야 하는가보다. #나는이병철이다 #일송북 #박상하 #삼성이병철회장 #자기계발 #리더십 #일송북시리즈 #컬처블룸 #컬처블룸서평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