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을 저승에 내어 준 사람, “가장 소중했던 것들이 허무의 입에 삼켜지고 대리석처럼 단단한 이에 찢어 발겨지는 것을 바라보는 걸 방해받고 싶지 않아”, 사랑하는 이와 단 일초라도 멀어지는 그 어떤 행위도 원치 않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거대한 어둠과의 사투에서 마침내 생의 신비와 경이에 대한 겸허와 평온에 안착하고, 사월의 신선한 아침에 맞이하는 푸르름, 기적과 같은 우리네 삶의 아름다움을 들려줍니다.
모든 단어와 문장에 황금빛 영혼이 숨 쉬고 있어, 제 일천한 감상의 글이 고결한 아름다움을 훼손할까 저어됩니다. 한 문장씩 읽어 나갈 때마다 가슴에 묻어두고 싶다는 간절함이 절로 움틉니다. 꽃과 나무에 대한 앎이 부족한 저는 미모사가지와 협죽도, 미나리아재비, 스위트피, 어린 개머루 잎의 모양을 찾아봅니다. ‘크리스티앙 보뱅’에게 꽃과 나무 잎은 죽은 자들이 우리에게 이른 것의 의미로 다가옵니다. 사랑하는 이들의 현현인 것이죠.
집안 곳곳에는 꽃이 그를 에워싸고 있습니다. 어둠이 세상을 굴복시키는 밤이 내려도 협죽도는 자신의 초자연적 눈(雪)의 색을 잃지 않고 저항합니다. 그는 ‘코르네유’의 『쉬레나』를 읽으며 다시금 거대한 어둠과 전설적 전쟁을 벌이는 여인의 외침 - ‘항상 사랑하고, 항상 고통 받으며, 항상 죽어가기를’ - 에 깃든 영감으로부터 평온을 되찾습니다.
아마 에세이 「사자상 머리」에 등장하는, 어둠이라는 두려움을 감히 통과하는 이가 마침내 맞이하는 평화롭고 자신에 찬 아름다운 목소리가 그 실체일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 스틱스강을 건너야 하는 두려움도, 다리와 심장을 잃어도 계속해서 나아가 그 재난을 완성하는 용기를 저는 상상도 해내지 못합니다. 보뱅은 이전에도 경험해 본 전복이라 말합니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 대한 양식적 이해를 넘어서지 못하는 제 영혼의 한계가 왠지 부끄럽기만 합니다.
이러한 그는 일상적 풍경 속에서 삶의 경이, 기적을 마주할 줄 압니다. 에세이 「금빛 눈동자」에서는 하루에 겪은 두 번의 경이로움을 들려줍니다. 미나리아재비로 뒤덮인 풀밭에 머리를 파묻고 금빛과 에메랄드빛을 발하며 풀을 먹고 있던 말의 모습을 보곤 “참으로 행복했다”고 말합니다. 말의 모습을 한 현자인 것이지요. 그것은 하늘이 여전히 무너져 내리지 않았다는 증거로 삶의 환희, 무한한 안도감입니다. 또한 삶이 우리에게 화나지 않았다는 증거이니 기적을 본 것이죠.
두 번째 기적은 테이블에 놓인 스위트피 꽃다발의 모습입니다. 우아한 환영과 같은 꽃다발에서 사랑이 주는 고통의 가벼움을 느끼며, 눈 밑에 잠들어 있던 깨달음이 갑자기 그의 눈에 황금빛을 심는 것이지요. 그의 섬세한 초월적 감각의 신성에 그저 어떤 가슴 부푸는 아름다움만을 함께 호흡할 뿐입니다. 이들 글에는 ‘술라주’와 ‘조르주 드 라투르’, 두 명의 화가와 피아니스 ‘글렌 굴드’, 그리고 바이올린의 두 거장이 등장합니다.
몽펠리에 미술관, 아마 이 미술관 입구의 길은 짙은 정적이 내려 앉아 있어서 마치 저승길과 같은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그는 술라주 특유의 검은 빛 그림들을 마주하고 이렇게 표현합니다. “빛의 무도를 여는 참수처럼 날카로운 검은 빛이다.” 라고 말이죠. 죽음마저 멈추게 하는 강렬한 검은 빛, 이 역설적 느낌은 우리를 아득한 시원의 공간으로 데려다 줍니다. 그곳에는 사랑하는 이가 있겠지요.
그래서였을까요? 그는 “음악 안에 있다는 건, 사랑 안에 있는 것과 같다”고, 연약한 오솔길에 들어선 고독한 인간을 떠올리게 합니다. 아마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명성을 지닌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에게 어떤 동질감을 지니는 까닭인 것 같습니다. 보뱅은 바흐의 음악을 “두 팔을 펼친 엄마 품속에 안착하리라는 것을 굳게 믿는 아이가 그 미숙한 다리로 한순간 돌진하는 것처럼 신에게 달려든다.”고 말하고 있듯이 사랑하는 이의 신성한 품속에 안긴 평온함인 듯합니다. 이 에세이를 읽으며 저도 글렌 굴드가 연주한 1955년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피아노 선율을 듣고 있습니다. 혹여 제게도 찾아 올 그 안온한 세계를 상상하며 말이죠.
보뱅의 글에는 사랑과 경이, 평온과 해탈의 관조가 있습니다. 그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에서 삶과 죽음의 동시성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곧 생을 경유하는 이의 기쁨이지요. 분홍빛 돌기 시작한 어린 개머루 잎을 손에 쥔 아기는 그 장밋빛 살결을 찢습니다. 기적을 죽음으로 이끄는 이 천진함과 단순함을 바라보는 우리들은 마음에 즐거움을 담아냅니다. “신의 통통한 손가락 사이에서 세상의 탄생과 그 끝을 바라보는” 경이로움, 이것이 생이라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리고 그 문을 여는 것’이 보뱅의 글쓰기입니다. 이 그려진 문은 사실 없는 문이지요. 우리의 향기, 우리의 색과 웃음은 벽안에 있을 뿐이랍니다. 이 삭막하고 살벌한 세상의 벽 넘어 다른 세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웃음에서 시작되는 것이라 가르쳐줍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에게 힐난합니다. “다른 세상이 바로 이 웃음인데, 왜 다른 곳에서 다른 것을 찾고 있어?”라고 말이죠.
어렴풋이 그의 말에 공감의 머리를 끄덕입니다. 동네를 에워 싼 산책로를 걷고, 책을 펼치고, 꽃이 피는 것을 바라보는 것, 이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삶의 의미냐고 묻는 그의 웅변에 그저 입을 닫습니다. 아마 그처럼 이 책을 읽고 나면 하늘의 푸르름을 올려다보고 꽃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사랑하는 이들과 그 웃음소리를 나누고 싶어질 것 같습니다. 죽음의 절망, 그 황폐함 속에서 고결하고 우아한 삶의 언어를 길어 올리는, 영원한 삶의 언어들을 마주하는 좀처럼 깨닫기 힘든 소중한 푸르름의 경험이라 하고 싶습니다.
|
|
진짜 이상하게 1984books의 책들은 나에게 잘 안읽힘.. 문체들이 몽롱해서 그런가. 이것도 진짜 겨우겨우 눈에 발라서 내용이 잘 기억이 안나네요.. 그래도 군데군데 아름다운 문장들은 많이 있었어요. 그러나 나에겐 이렇게 자꾸 딴 생각이 들게 만드는 작품들이 참 어렵다. 그치만 나한테 말을 거는 것 같은 문장들은 참 좋았는데 머릿속에서 다 빠져나가서 아쉬움 |
|
|
|
크리스티앙 보뱅의 책을 읽고 있으면 괜히 기분이 상승되는 걸 느낍니다. 아름다운 문장에 벅차 오르는 감정을 다스리며 읽다보면 삶의 작은 순간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주변에 선물하고 또 구입합니다. 1984BOOKS의 커버도 한몫 하구요 그리고 번역들이 맘에 들어요. 개인적으로 이창실님이 번역한 게 좋긴하지만 이주현님 번역도 맘에 들어요 |
|
우리에겐 정교하고 아름다운 철학적 이론들이 쓰여진 책들이 영혼의 길잡이가 되어주기도 하지만 진정한 철학은 우리의 삶 속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보뱅은 교리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과 삶을 통해 직관적으로 신의 존재를 느끼며 살아간 인물이었던 듯 하다. |
| 글쓰기에 대한 여러 책들을 찾아보는 걸 좋아하는데 이 책도 그렇게 추천받아 읽어보게 됐다. 첫 장부터 유려한 문장으로 흥미를 돋구었는데 한번에 후루룩 읽기 보다는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을 문장들도 많았다. 내 마음에 깨끗한 정수를 흘러들게 하고 싶을 때 그럴 때 종종 펼쳐 읽어보기 좋을 것 같다. 전자책이라 그점이 참 편리하긴 하다. |
|
책이 굉장히 가볍고 감각적인 디자인의 표지로 구성되어있어서 눈길이 갔던 것도 있어요 아직 다 읽지 않았지만 목차랑 앞부분만 봤는데도 기대가 됩니다 두껍지 않아서 들고다니면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
| 크리스티앙 보뱅의 *환희의 인간*(*L'Homme-Joie*, 2012)은 일상의 순간들과 영성, 사랑을 섬세하고 시적인 문체로 그려낸 에세이로, 읽는 내내 마음에 잔잔한 기쁨을 불어넣는다. 보뱅은 소박한 풍경, 사람, 책, 자연 속에서 발견한 환희의 순간들을 단편적으로 풀어내며, 삶의 가장 단순한 것들이 얼마나 깊은 의미를 품는지 보여준다. 그의 글은 맑고 투명해 마치 햇살 아래 흐르는 강물처럼 독자의 마음을 적시지만, 느슨한 구조와 추상적인 성찰은 때로 집중력을 요구한다. 프란체스코나 디킨슨 같은 특정 인물이 아닌, 보뱅 자신의 내면과 일상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져 더 내밀하고 개인적인 느낌을 준다. 이 책은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삶의 작은 아름다움에 눈뜨고 싶은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다만, 보뱅 특유의 몽환적인 문체가 낯설다면 처음엔 적응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영성과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보뱅의 환희 어린 시선에 푹 빠져들 것이다. |
|
많은 이들이 이 책을 극찬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효율성과 환금성이 기준이 된 사회. 죽음은 누구에게나 온다. |
|
'당신의 주머니에서 떨어진 금화와 같은 이 하늘의 푸르름을 나는 글을 쓰며 당신에게 돌려드리고 있답니다. 이 장엄한 푸름이 절망의 끝을 알려주며 당신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 아니요, 모르겠어요. 위 세 문장은 이 책의 서문 마지막 세 문장이다. 알겠냐고? 아니, 모르겠다. 책을 펼칠 땐 아침이었는데,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땐 밖이 깜깜했다. 그 사이 나는 푸르름을 보았는지, 놓쳤는지 정말 모르겠다. 그래서 다음 날 다시 읽었다. 마음으로 걸어들어온 문장과 단락과 페이지가 있는가 하면, 몇 번을 다시 읽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문장과, 그 문장이 건네준 감정도 있었다. 분명한 건 서사로 읽는 책이 아니라, 미문의 미로 속에 갇혀 몇 번이고 앞 페이지로 돌아가 다시 읽게 되는 책이었다는 것. 문장 끝 온점에 가만히 시선을 주면, 내 몸으로 녹아드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것. 이름 모를 누군가가 -아마도 고마운 사람이겠지- 삶의 비밀 한 조각을 떼어낸다. 가만한 손글씨로 긴 편지를 써서 아무도 몰래 내 방 창가에 두고 간다. 나는 편지를 읽으며 하얗게 밤을 새운다. 다음 날, 필사 노트를 열어 편지를 옮겨 적는다.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친절한 답장. 한 권의 책이라는 건, 이렇듯 작가와 독자가 주고받은 편지로 완성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1984BOOKS에서 내놓은 크리스티앙 보뱅 시리즈의 통일감 있는 표지와 감각적인 색도 인상 깊지만, 내지 편집이 정말 아름답다. 이건 이북으로는 느낄 수 없는 아름다움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