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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를 그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일까, 그림일까? 이 문제는 소설이 가지고 있는 내용과 형식의 측면과는 약간 다르다. 소설사에 드러나는 문체적 특성이 아니고 만화에서는 부실한 내용과 훌륭한 그림, 혹은 멋들어진 이야기에 날아다니는 펜터치, 이 정도의 의미이다. 이 둘이 조화를 이루는 것은 꽤나 어려운데 보통의 만화가들은 만화를 따라 그리다가 그 쪽 만화에 재능을 보여 도제 시스템에 들어가거나 혹은 만화 관련 대학에 들어간다.
그러나 실제로 만화를 그리다 보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가 만만치 않음을 느끼게 되고 어느 순간 그 만화가는 그림을 그리는 노동자로 전락하게 된다. 만화가 다양한 형식에 대한 실험이 적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만화가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에도 힘이 부치는데 어찌 새로운 형식미를 추구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좋은 만화가가 되는 것이나 명작 만화를 만들어내는 데는 일정한 단계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 단계는 먼저 자신만의 그림을 완성해야 하고 다양하고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 후에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하고 그 다음에야 그 이야기와 캐릭터에 맞는 만화적 형식미를 갖출 수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삼위일체로서 기능해야 걸작이 탄생하고 그 만화가는 만화로 밥벌이를 할 수 있다. 물론 이 단계가 도식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하더라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고 게다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는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소설과 만화의 차이는 이뿐만이 아니다. 소설은 이야기가 부실하거나 캐릭터가 분명하지 않으면 소설의 힘이 떨어지고 그 소설은 더 이상 소설이 아니게 된다. 그러나 만화는 이야기가 부실해도 그림으로 커버가 된다. 혹은 그림이 부실해도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그 만화는 생존할 수 있다. 오히려 이것이 만화가가 스스로 파멸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만화가 포르노화될 가능성이 높다. 점점 더 자극적인 그림체를 남발하게 되고 이제 만화가는 더 이상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다. 야한 그림은 일종의 마약과 같아서 만화가로부터 이야기의 능력을 제거해 버린다. 심지어 야한 그림이 아니고서는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릴 수도 없게 만든다. 후자의 경우에도 문제가 발생하는데 만화가든 소설가든 이야기를 만드는 일종의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단계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언정 결국에는 혼자서 창작작업을 마무리해야 한다.
특정 분야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과는 다르게 창작물은 한 사람의 책임으로 갈무리되야 한다. 부실한 그림으로 이야기를 읽을 거라면 그 누가 만화를 사서 볼 것인가? 세상에는 재미있는 이야기책도 많이 있다. 신춘문예로 데뷔할 것이 아니라면 결국 그림을 잘 그려야 한다.
‘울기엔 좀 애매한’은 후자에 속하는 만화다. 이 작가가 가지고 있는 장점은 이야기를 할 줄 안다. 또한 그 이야기를 끌어갈 수 있는 대사를 치는 방법도 고수급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훌륭한 소설가가 훌륭한 만화가가 될 수 없는 경우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만화와 소설의 대사 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작가는 꽤나 솔직해서 자신이 본 세상을 자신의 철학과 렌즈로 재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고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 능력은 꽤나 소중해서 괜히 어쭙잖은 철학으로 세상을 재단하기 시작하면 아무도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결국 그 작가는 고립된다. 최소한 이 작가는 그러한 고립으로 떨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작가는 크나큰 단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만화시장은 진심으로 문제가 크다. 어떤 의미냐 하면 만화가가 성장할 토양이 전혀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만화가든 소설가든 예술가는 한 방에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실력이 향상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대가가 된다. 굳이 ‘아웃라이어’의 일만 시간 법칙이 아니라도 어느 정도 연습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 그리고 결정적으로 ‘돈’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처럼 대본소 시장이 철저히 파괴되고 만화 주간지와 월간지가 극악의 판매부진 상태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웹툰과 단행본 밖에 없다. 사실 만화책 한 권을 혼자서 그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일반인들은 상상하기 힘들다. 캐릭터를 고안해내고 배경화면을 그리고 스크린톤을 사용하는 방법 등, 이 모든 것은 피나는 연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예전에 만화공장 도제 시스템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이런 것들을 연습한다. 이런 것들을 연습할 때 돈은 많이 벌지 못했어도 최소한 연습은 정말 많이 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요새 등장한 작가들은 이런 연습이 제대로 되어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 예전 작가들이나 일본 작가들에 비해서 화력(畵力)이 떨어진다. 최규석도 예외는 아니다. 펜선이 너무 투박하다. 각각의 그림에 따라 다른 펜을 선택하고 그 펜마다의 디테일이나 느낌을 완전히 알고 있다고 할 수 없다. 4컷 만화나 카툰이 아닌 극화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펜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것들은 독학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도제시스템이 사라진 상태에서는 정말 어찌해볼 수 없다. 게다가 이 펜선의 투박함을 가리기 위해서인지 수채화로 만들었는데 물론 일반학습만화에서 드러나는 채색의 단순함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너무 아마추어틱하다. 이 모든 것을 작가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슬램 덩크’의 타케히코 이노우에도 초기의 그림은 엉성하고 펜선은 날아다녔다. 그러나 어느 순간 점점 더 진화하더니 ‘베가본드’에서는 자신만의 그림을 완성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작가들은 이 펜선을 가다듬을 수 있는 시간과 돈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그림의 저급함을 비판하지 않을 수는 없다. 나는 이 작가가 장편연재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고 그걸 통해서 실력을 가다듬고 결국에는 대가가 되기를 희망한다.
예전의 우리나라 만화는 정말 다양한 주제가 있었다. 퀴즈 아카데미에 출연한 서울대생이 요새 읽고 있던 책이 ‘블랙홀’이었던 시대가 있었다. 허영만의 ‘고독한 기타맨’이나 하승남의 ‘그릴 수 없는 영웅’, 조운학의 ‘링컨’ 같은 만화들은 다양한 주제와 스타일리쉬한 이야기 구성으로 명작이라 할 만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일본만화에서처럼 다양한 주제와 구성은 사라졌다.
이 작품 ‘울기엔 좀 애매한’도 새로운 주제, 혹은 전혀 다른 이야기와는 거리가 좀 있다. 항상 우리 주위에 널려있는 ‘삶의 찌질함’과 관련있다. 물론 시대상황이 젊은이들의 절망이 도처에 널려 있어 공감을 이끌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이야기의 다양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은 약점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좀 더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장편을 쓸 수 있다면, 그리고 그림체를 점점 더 개선할 수 있고 정성을 들인다면 좋은 작가로 거듭날 것이라고 믿는다. 만화공장 시대에 각 권마다 그리는 사람이 달라서 그림이 달라지는 시대도 아닌데 각 페이지마다 들인 정성에 따라 그림이 다른 것은 좀 문제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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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중학교 국어선생님께서 작년에 추천하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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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발견^^ 이 책의 소감입니다.
만화 장르를 좋아하지만, 좀 무거운 것들은 지양하는 편이라... 하지만 울기엔 좀 애매한은.. 루저 중 루저에 대한 이야기이고 우리 사회의 아픈 현실적 모순을 그대로 그짚어 내어 편하지만은 않지만.. 그렇다고 어둡고 무겁기만 하다고 말하긴 좀 애매한.. 작품입니다. ㅎㅎ
우리 주변의 수많은 대한민국의수험생들과 청소년들의 우울한 자학 개그, 블랙유머는 미술학원의 입시 풍경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작가가 미술학원에서 만화 강사로 일했을 때의 기억을 되살린 작품이라 그런지 어느분 표현처럼 디테일이 살아 있습니다. 캐릭터가 정확합니다. 그림이 사실 적입니다. 그리고 그래서인지 미술학원 쌤이 최규석작가님을 떠오르게 하네요.
외모와 너무나 어울리지 않은 이름을 가진..ㅎㅎ 원빈 재능이 있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운 원빈이가 더 가슴이 아플까요? 부잣집 딸이고 공부도 잘하지만 하고 싶어하는 만화에 소질이 없는 윤선이가 가슴이 더 아플까요?
그래도 이들을 꿈이 있었기에 행복했을 거 같습니다.
그래서 그리도 지독한 자학 개그 앞에서 사회의 부조리 앞에서도 희망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운도 실력이고 잘난 부모를 둔 것도 능력이고 멋진 외모를 가진 것도 재능인인건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걸~~^^ 행복은 돈이나 외모가 100% 차지 할 수 없다는 걸.. 그래도 우리에겐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란 사실에 오늘도 미소 짓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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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만화책 처음이다. 재밌고, 수채만화 그림도 예쁘다. 무엇보다 가난, 대입, 사회 부조리와 싸우는 십대들의 이야기가 유쾌하게 그려지고 있어 2번이나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주인공 원빈은 이름과 상이한 얼굴로 놀림을 받아도, 마음만은 따뜻한 고3 수험생이다. 혼자 김밥집을 운영하는 엄마에게 부담을 주기싫어 미술공부를 포기하지만, 결국 그의 재능을 살리기위해 만화학원을 등록한다. 어려운 환경가운데 공부를 하는 여러친구들 중 작년에 좋은 대학에 합격하였지만 등록금이 없어서 입학을 못하고 재수중인 은수선배를 만난다. 서로 누가 더 어렵게 생활했는지 따져묻는 순박한 표정과 대사 속에 그들의 평범하지만은 않은 가정사를 뒤로하고 공부만 할 수없는 이중, 삼중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청소년들을 생각하게된다. 학원비를 벌기위해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말과 행동이 다른 서점주인으로부터 월급을 뺏어오다시피한 원빈과 은수의 넋두리에 찌질하다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그렇다고 울기도 좀 그렇잖아?" "그게 말이지. 나도 그래서 한번 울어 볼라고 했는데, 이게 참 뭐랄까....울기에는 뭔가 애매하더라고...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고아가 된 것도 아니고...."
꿈이 있어도 꿈을 꿀 수 없는 청소년들. 당장 먹고사는 문제와 가족의 부양이 늘 발목을 잡는 청소년들은 이런 출발선이 다른 불공평한 상황에서도 쿨하게 '울기엔 좀 그렇다'고 생각한다. 수시입시를 준비하던 '없는 가정의 아이들'은 '좀 있는 집 아이'의 합격을 위해 강제적으로 희생되어야 하지만,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누구에게 소리쳐 화를 낼 수도 없다. 그저 그들만의 방식으로 견뎌내야 할 뿐이다. 만화가 좋아서 그림을 그리고 싶을 뿐인 아이들이지만, 기계처럼 공부하고 그림그리고 알바하고 그들의 시간을 충실히 견뎌낸 후 그들이 왜 대학에 가야하나 의문이 들었을때 그들의 선배이자 동일한 경험자인 선생 태섭은 이렇게 밖에 말해주지 못한다.
"대학에 가면 뭘하는지 몰랐지만, 대학에 안가면 어떻게 되는지도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어. 다들 겁만 줘...그래서 다음단계로 넘어가다보니 대학에 간거야. 지금은 학자금 대출의 채무만 남았다." "그래도 선생님은 대학 나왔으니까 강사라도 하면서 먹고 살잖아요." "그렇지 대한민국 입시제도는 교육정책이 아니라 고용정책이지..ㅎㅎ"
결국 원빈도 은수의 길을 걷게 된다. 그 고용정책의 혜택을 받을 수 없어 대학에 합격하고도 입학금을 마련하지 못해서 시종일관 밝게 미소짓던 원빈의 눈에 눈물이 가득한 마지막장면은 가슴 뭉클해지는 결말이다.
주제는 무겁지만 등장하는 아이들의 유쾌하고 긍정적인 대사들이 '김탁구'를 연상하게 한다. 이 세상이 결국에는 착한 사람들이 승리하는 세상이 된다고 이야기하면 울기엔 애매하다고 말하며 한편으로 돈도 재능임을 알고 있는 불공평한 출발선에 서 있는 청소년들에게 희망의 소리가 되긴 할까...
최규석 작가의 만화는 처음이지만, 작업과정을 소개한 작업노트가 있어서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의 다른 작품도 소장하고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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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에 만났을 때 빨간 운동화에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이었던 작가 최규석이 이 책에 대한 얘기를 했었다. 제목이 좀 애매하지 않냐면서.
그 제목 괜찮다고 말해 줬는데, 얼마 전에 책으로 나와서 우리 도서관에 신규도서로 마련했다.
초특급 루저 '원빈'이 등장하는 이 만화에는 작가의 캐릭터가 녹아 있는듯한 만화학원 강사 태섭과 이혼한 엄마와 살면서 만화가의 꿈을 꾸는 덜생기고 착하디 착한 원빈, 지지리 궁상 은수 등 가난하고 억울한 청춘들이 줄줄이 나온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천민자본주의 어쩌구저쩌구 떠드는 헌책방 주인이 이사비 아끼려고 원빈을 고용하여 실컷 부려먹은 다음 결국 그 돈까지 떼먹으려는 장면이다.
지갑으로 도로 들어가려는 돈을 야무지게 뺏아 들고 튀는 장면이 가장 통쾌했다.
아, 지식인, 그 알량한 지식인의 이중성이여.
![]() ![]() ![]() ![]() ![]() ![]() ![]() ![]() ![]() ![]() ![]() 겉으로 소리내어 울기엔 좀 애매한,
우리 시대의 관찰자 최규석의 건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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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화를 보며 가슴 찡~~함을 느꼈다.
만화 작가 최규석이라는 사람에 대해 궁금증도 생겼고, 어떻게 이런 만화를 그릴 생각을 했나 물어 보고도 싶어졌다.
흔히 생각하는 만화의 범주를 크게 벗어난 만화라는 생각이다. 만화라고 하면 흔히 웃음을 주리라는 생각을 하는데,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울기엔 좀 애매하거나, 아니면 울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작가 스스로가 이책에 나오는 미술 선생님의 역할에 자신을 묻어나오게 한것 같다. 말하는 투나, 생김새가 책소개에 나오는 최규석의 모습 그대로인것 같다. (나만 그렇게 생각을 할지도...)
참으로 착찹하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을 향해 큰걸음을 내딛고 있다고 착각을 하고 있는 가운데, 아직도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름은 원빈이지만 얼굴은 배우 원빈과는 반대로 생긴 주인공 원빈의 인생.. 아직 고등학생이지만, 이혼한 엄마과 함께 사는 원빈은 미술학원에 다니고 싶어도 엄마에게 다니고 싶다는 말도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다. 형편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런 아들의 마음을 잘아는 엄마는 아들을 학원에 보내고, 남들보다 늦게 학원에 다니게 되지만 소질이 있는 원빈이는 대학에 척 붙고.. 등록을....결국은.....아마 못하게 된것 같다. 원빈의 아빠는 이혼후 아들이나 전처에 대해서는 완전히 손을 뗀 사람이었기에, 원빈의 형편에 대학 등록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여러 캐릭터들중, 서점 주인이 가장 인상적이다. 정말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을 듯한 말투며 행동이다.
세상이 더 좋아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구 하나 차별 받지 않고,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 배움의 길을 열고,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일할 기회를 줘야하지 않을까..
세상이 더 좋아져서, 더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품고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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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가득한 그림을 오랜 시간 바라보았다. 화려한 불빛 조명을 받고 있는 고층 아파트 건물과 어두운 음영으로 그려진 낮은 주택들의 모습에 청소년 아이가 꿈을 향해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홀로 감당하면서 걸어가지만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의 냉혹함을 이 작품으로 사실적으로 전달한 만화이다. 자신을 무한히 사랑하고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지만 현실적 상황은 점점 꿈과 멀어지게 만드는 세상의 문제들을 고발하는 작품이다. 부당함을 외치고 저항하지만 무력하게 좌절되는 꿈들에 고함치고 분노하지만 그들의 꿈은 공평하지도 않음을 뒤늦게서야 깨닫는다. 수시 접수를 만류하는 학원 선생님의 적의, 자신들의 재능이 자본의 힘에 이용되어 재력이 많은 부모를 둔 친구의 수시 입학 전형 포트폴리오로 제출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다. 수시에 합격한 아이도 분노하는 다른 친구들의 아우성에 속상해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부끄러움,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노력만으로 따라잡지 못한 자신의 무능력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상황이 전개된다. 모두가 알고 자신도 아는 재능의 부족함과 재능이 뛰어난 가난한 아이를 보면서 좌절하고 고뇌하는 방황하는 모습도 보인다. 하지만 결국 자신들이 가고 싶은 대학교는 자본가의 자녀가 편법으로 제출한 포토폴리오와 학원 선생님의 공모에 의해 합격이 결과로 말해준다. 자본이 없는 가난의 무능력에 재능은 사회적 시스템에 비참하게 무너졌음을 고발한 작품이다. 말이 되지 않는 부당함에 대항하지만 결국은 학원비를 내주는 무능력한 아이들을 위해 도움을 주는 학원 선생님의 최책감이 고스란히 전해진 만화이다. 다른 재능있는 학생들을 수시 접수 못하게 막고 편법으로 자본가의 자녀를 입학시켜준 학원쌤은 차를 새로 출고한 장면이 등장한다. 양심도 사라졌고 죄책감은 더 멀리 사라진 한국 자본주의의 단상이 카툰 입시학원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잘 살다가 망한 거랑 원해 가난한 거랑 뭐가 더 불쌍해요? 우리 부모님은 이혼도 했는데요!! 51 카툰이 뭔지도 모르는 애한테 하루 만에 어떻게 그림을 뽑아요. 58 돈이란 거 많이 벌면 더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거 같지? 아냐... 벌면 더 벌기 위해 더 바빠져. 신분이 상승할수록 그 신분에 걸맞은 삶을 유지하기 위해 지출은 더 늘어나거든. 그게 자본주의야. 인간을 돈의 노예로 만드는 것...... 난 이 미친 자본주의가 싫다. 87 나처럼 똑똑한 사람도 대학에 가는 것 말고는 생각할 수가 없더라고. 다른 걸 볼 기회가 없었어. 대학에 가면 뭘 하는지도 몰랐지만 대학에 안 가면 어떻게 되는 건지 아무도 가르쳐 주질 않았어. 그냥 겁만 줘. 폭탄 돌리기도 아니고... 나에게는 학자금 대출 채무가 남았지. 129 한국 입시제도는 교육 정책이 아니라 고용정책이거든 130 다들 훌륭한 기계가 되었구나. 130 어린 학생을 아르바이트로 고용하고 멋진 척하지만 좋은 의도로 고용되지 못한 것을 알고 임금 미지급을 불안해하는 학생이 어떻게 임금을 받는지 전해진다. 이혼한 아버지가 자신과 똑같이 닮은 아들의 대학 등록금까지도 무책임하게 대응하는 모습도 놓치지 않으면서 친절도 서비스는 매우 만족으로 부탁한다는 말을 머뭇거림 없이 말하는 모습이 아이러니하다. 타인을 향한 무관심과 무책임, 자신을 향한 사랑만 존재하고 있는 한국 자본주의의 실상을 관찰하고 카툰으로 거침없이 드러낸 멋진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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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 책은 주변의 추천이 없었더라면 절대 제가 읽고 싶어할만한 취향의 책은 아니었어요. '울기엔 좀 애매한'이라는 제목처럼, 표지 디자인 속에 주인공인듯한 인물의 모습도 왠지 주인공이기엔 좀 애매한 느낌에 그다지 정감이 가지 않았었거든요. 그러던차에 이 책이 만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책에 대한 리뷰평과 평점들이 좋아서 쉽게 읽을만한 책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좀 쉽게 읽고 싶은 마음에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냥 표지 디자인의 수수함과 제목의 우울함에 청소년 성장 만화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물론, 성장 만화인건 맞지만, 제가 예상했던 상황과 전혀 달라서 처음에는 반신반의 하는 마음에 읽던 제가 점점 책속에 빠져들어가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만화를 읽어왔지만, 만화가의 삶을 다룬 만화책을 읽은적이 없었었고, 게다가 이 책은 만화가가 되고 싶은 청소년들이 주인공인지라 더 관심있게 읽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4편의 에피소드를 통해 짧지만 그 짧은 시간 속에 많은것을 전달하고 싶은 만화가의 마음을 읽을수 있었어요. 재능은 있지만, 결국 돈 앞에 무릎을 꿇을수 밖에 없었던 주인공을 보면서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흘리게 했습니다. 정말 마지막 한 컷은 마음을 먹먹하게 했답니다. 만화책 뒤에는 이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과정들에 대한 설명이 있어요. 솔직히 만화가 좀 평소에 제가 좋아하는 순정만화 스타일이 아닌지라 읽는동안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오히려 거친듯한 느낌이 리얼리티가 더 느껴져서 좋았던것 같습니다. 한번 읽고 이 책을 덮기엔 많이 아쉬워서 여러번 읽게 되고, 주변분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만화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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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세상 참 좋아졌다, 라고 한다. 하지만 삶은 팍팍해졌다고 한다. 물질적으로는 분명 풍요로워지고, 편해졌지만, 정신적으로는 견디기 힘든 시절이다. 고도로 발달된 자본주의 사회, 그곳에선 돈이 진리다.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리는 것도 돈이 있어야 가능한 세상이니까. 세상은 이렇게 변했는데,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고등학생들은 어떨까. 손에는 너도나도 핸드폰, MP3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는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 주변에선 너무나도 흔하다. 하지만, 그건 물질적인 것 뿐이지, 여전히 입시 경쟁에 시달리고, 주위의 친구는 어느새 라이벌이 되어 간다. 따지고 보면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 없어 보인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도 역시나 수능 준비에 눈코 뜰새 없이 바빴고, 점수에 맞춰 지원을 했다. 합격과 불합격 사이에서 친구 사이도 어색해져갔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가 고등학교 다닐때는 학원이나 과외등 사교육을 받는 아이는 거의 없었다. 그저 학교에서 보충수업, 야간자습을 했을뿐이다. 그러나 요즘은 엄마 뱃속에 있을때부터 경쟁이다. 바야흐로 무한 경쟁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울기엔 좀 애매한』은 입시를 위한 한 미술학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미대 지망생도 있겠지만, 여기에선 특히나 만화학과 지망생들의 이야기이다. 표지 맨 앞에서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는 녀석은 고교생으로 이름은 원빈. 원빈이란 영화배우와 이름은 똑같지만, 외모는 영 딴판이라 자기 소개를 할때면 늘 그 이야기부터 꺼낸다. 뒤로 보이는 사람 중 줄무늬 티셔츠는 재수생이고, 오렌지색 티셔츠는 학원 강사다. 서로 다른 위치의 세사람은 책 속에 나오는 세 그룹의 사람들을 의미할지도 모르겠다. 원빈을 비롯해 지금 고 3으로 입시 준비에 한창 바쁜 고교생 또래집단, 대학생과 재수생이란 커다란 차이를 가진 은수와 미진, 그리고 학원 강사 두 명은 무척이나 극과 극의 대비를 보여준다. 원빈이의 경우 잘 살다가 집안이 망한 경우로 지금은 어머니가 김밥집을 운영하며 원빈이의 학원비를 내고 있는 형편이고,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술집 알바를 하며 학원비를 충당해야 하는 여고생도 있다. 그에 비해 지현이는 형제 자매가 모두 명문대 출신에 아버지가 재력이 빵빵하다. 이렇다 보니 수시 원서를 쓸 때 다른 아이들은 모두 반대를 당하지만, 모르게 수시를 접수한 지현만 수시 합격이란 걸 하게 된다. 돈도 재능이라며 고개를 푹 숙이는 원빈과 아이들의 추궁에 눈물을 보이는 지현. 아이들은 사회에 나가기도 전부터 사회의 어두운 면을 접한다. 은수는 작년에 미진과 똑같은 대학에 붙었지만 결국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지금은 재수생이다. 미진을 좋아하지만, 자신의 처지때문에 섣불리 다가설 수도 없다. 또래 친구가 대학때문에 대학생과 재수생의 운명으로 갈리게 된다, 사실 이런 관계는 굉장히 미묘하다. 서로가 무척이나 어색해지기 때문이다. 나 역시 고 3때 재수를 하게 된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무척이나 난감해했던 기억이 난다. 은수의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학원비를 내기 위해 열심히 알바를 하지만,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그 돈은 고스란이 엄마가 빼간다. "그냥 형 보면, 나한테 꿈이 없다는 게 참 다행스럽달까……" (82p) 라고 하는 은수의 동생을 보면서 한숨이 팍 쉬어진다.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나라의 아이들은 꿈도 없는 세상에서, 아니 감히 꿈을 꿀 수도 없는 세상을 살아가게 된걸까. 이런 대조적인 구도는 어른인 학원 강사인 태섭과 종화도 마찬가지이다. 태섭은 아이들 편에 가깝다면 종화는 어른들 편에 가깝다. 아이들의 습작을 지현의 포트폴리오에 무단으로 사용하고, 지현의 합격을 위해 지현의 아버지에게 돈을 받고 신형차를 뽑는다. 태섭은 학원장과 조금 맞서 보지만, 핀잔만 듣고 결국 학원을 그만두게 된다. 세 그룹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지만,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저 이런 시스템에 순응해서 살 수 밖에 없다. 재능이 있어도 가난때문에 재능을 꽃 피우지 못하는 아이, 재능은 별로 없지만 돈이 많아 재능을 커버할 수 있는 아이. 우린 가난때문에 사회에서 배척당하는 이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너희가 어른이 되면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될거야, 라고? 지금은 힘들겠지만, 조금 지나면 다 괜찮아 질거야, 라고? 어른인 우리도 살기 힘든 세상이다. 지금 아이들과 똑같은 길을 걷지는 않았어도 비슷한 길을 걸으며 살았다. 결국 지금의 우리는 울기엔 좀 애매한 시기를 넘어 한 방울의 눈물조차도 사치인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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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만화 인생을 자랑하는 나에게 좋아하는 작가님 중에 박재동 화백님의 “목 긴 사나이”라는 작품집이 있다. 얼마 전에 검사 스폰서 문제로 그 분의 만화 내용이 다시 화제가 된 적이 있었을 만큼 박재동 화백님의 글과 그림은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최근에 최규석 작가의 “대한민국 원주민”을 보면서 그런 느낌을 오랜만에 다시 받아서 가슴 뭉클한 적이 있었다. 최규석 작가는 스토리 구성능력과 그림 실력이 둘 다 뛰어난 드문 작가이며 대부분 남성 작가들이 가지는 여성 캐릭터의 여성 비하적이거나 성상품화를 시키는 저급한 시선을 가지지 않는 드문 남성 작가이다. 이 점이 내가 그의 만화를 사서 보는 이유이다. 그의 최신작 "울기에 좀 애매한“은 작가가 작품 마지막의 작가노트에 말한 것처럼 주인공이 되기에 모자란 인물들을 직접 수작업인 수채화로 작업한 작품이다. 그래서 언뜻 보기에는 ”대한민국 원주민“ 보다 그림실력이 떨어져 보인다. 하지만 작품을 읽다보면 작가의 데생실력이 녹슬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어떤 분이 리뷰에 그림체가 못났다고 비판을 하면서 도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도제 시스템의 폐해가 스승을 따르는 비슷비슷한 그림을 대량 양산한다는 것이다.(예를 들자면 “이끼“로 유명한 윤태호 작가님의 초기 작품에는 허영만 작가의 그림체가 배어있다) 즉 개성이 없는 그림이 대량생산 된다는 것인데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채색도 이제는 간편한 컴퓨터로 한다.( 여기 강풀 작가가 스토리가 뛰어나지만 그림과 채색을 컴퓨터로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래서 나는 자신만의 경험을 자신만의 그림체를 가지고 열심히 그려내는 최규석 작가를 높이 산다. 슬램덩크를 10년 동안 작가가 연재하여 그린 것을 안다면 그 10년 동안 그림체가 뛰어나게 바뀌어야 되는 것은 당연지사, 최규석 작가는 아직 첫 걸음마를 떼고 이제 걷는 중이다. 그것도 험난한 전업 만화작가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걷는 중인 것이다. 그래서 계속 그의 작품을 볼 수 있기를 독자로서 응원하는 바이다.
가난한 부모가 있다면 당연히 그 밑의 가난한 아이들, 청소년이 있는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대중매체에서는 소비와 무절제의 아무런 고민이 없는 청소년을 보여줄 뿐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소년들이 그러하다고 믿어버린다. 그러나 대중매체나 현실에 모호하게 가려진 10대의 현실이 사실은 작가 자신이 그 자리에 있을 때보다 더 냉혹해져버렸다고 작품을 통해 이야기한다.(“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은 30대와 40대가 바로 밑의 20대와 10대를 세대 간 착취한다고 지적하는데 그 예가 헌책방 서점 주인의 사례가 아닐까 싶다) 솔직히 부자 부모를 둔 지현이만 대학을 가는 것이 드러날 뿐, 이혼한 엄마 밑에 만화가를 꿈꾸는 원빈이. 대학에 합격했으나 등록금이 없어 등록하지 못해 재수를 하는 은수, 그 외 미술학원에서 공부하는 윤선이, 지현이, 은지가 어떻게 되었는지 정확한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만큼 10대의 현실이 희망을 이야기하기가 어렵다고 해야 하나? 돈 많은 부모를 둔 것이 재능이라고 한국의 입시제도는 교육 정책이 아니라 고용정책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가난한 부모를 둔 10대의 현실이 어렵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새삼 느끼며 책을 덮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