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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킹 라이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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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가 상당히 좋지 않으나 나는 재미있게 보았다. 어느 대목에서 특히 개인적으로 끌렸는지는 이 리뷰 후반(아마도 스포일러를 담겠으나)에서 자세히 밝히겠다.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었다. 이 영화는 영국 저술가 마이클 파이의 원작이 있다. <북유럽 세계사>의 저자인 바로 그 사람이다. 전혀 장르가 다른 화제작을 이처럼 여럿 남기는 걸 보면 확실히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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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가 상당히 좋지 않으나 나는 재미있게 보았다. 어느 대목에서 특히 개인적으로 끌렸는지는 이 리뷰 후반(아마도 스포일러를 담겠으나)에서 자세히 밝히겠다.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읽었다.

이 영화는 영국 저술가 마이클 파이의 원작이 있다. <북유럽 세계사>의 저자인 바로 그 사람이다. 전혀 장르가 다른 화제작을 이처럼 여럿 남기는 걸 보면 확실히 재능이 탁월한 사람이다. 영화만 보고서는 저 저술가의 개성과 흔적을 느끼기가 어려울 텐데,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았으나(앞으로도 안 될 가능성 높음) 소설 원작을 읽어 보면 같은 사람의 솜씨임이 어느 정도는 느낌이 온다. 원작에서는 이상심리를 가진 범죄자의 비틀린 내면이 (광대한 스케일의 배경이라든가 2차 대전 당시의 사건을 동기로 끌어들이는 등의 장치 때문에) 상대적으로는 덜 강조되는 편이다. 영화는 바로 그 마이클 파이의 개성(이라 우리 독자들이 여길 만한 부분)을 상당 부분 제거했기에, 싸이코패스 스릴러 장르 쪽으로 컬러가 더 분명히 각인된다.

원작 소설도 그렇고 제작측에서도(또 이걸 두어 달에 한 번 정도 틀어주는 어느 케이블 채널의 홍보 문구에서도) '남들의 아이덴티티를 빼앗아 옮겨 다니는' 연쇄 살인마의 행각이라며 플롯의 포인트를 처음부터 내세운다. 수사 당국에서도 여러 미제 사건의 공통점을 통해 그 부분 분명히 인지하고 있으나 다만 누가 어떤 동기로 그러고 다니는 건지를 모를 뿐이다. 원작 소설에서는 없는 설정인데 이 사건들은 대부분 캐나다에서 벌어졌고, 이 때문에 멀리(?) 미국에서 FBI에서 민완 요원(아직 나이도 젊은데)이 파견되어 현지 수사 요원들을 돕는다. 내가 '멀리'라고 하는 건 물리적 거리보다 감정적인 쪽인데, 알고 보면 하는 일도 없는 두 남성 형사가 이 이방인을 극히 싫어하기 때문이다. 미국인이라서 싫은 건지, 여성이라는 이유가 더 크게 작용하는 건지는 판단이 어렵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민완 FBI 요원 역을 바로 졸리가 맡았다.

졸리가 등장하기 한참 전, 아마도 스릴러/미스테리 장르 인트로 역사상 손 꼽을 명장면으로 평가될 만한 출발이 관객의 눈을 사로잡을 것이다. 살생은커녕 일탈행위와는 담을 쌓고 살 것 같은 녀석이, 아무 이유도 없이, 게다가 자신을 도와 주기까지 한 또래 친구를, 질주하는 차 앞으로 밀어넣어 죽인 후, 그의 '아이덴티티'를 가로채기까지 한 것이다. 이걸 명장면으로 각별히 꼽고 싶은 건, 첫째 누구도 예상 못 한 살인 행위의 충격, 둘째 연출자의 세심한 배려로 표현된, 이후 전체 극 중에서의 다중 복선 기능 때문이다. 영화를 혹평하는 쪽에서도 이 서두가 기막히게 잘 뽑혔다는 데 대해서는 거의 반대 의견이 없는 줄 안다.

내가 특히 지적하고 싶은 건, 1) 맷이 마틴에게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부턴 괜찮다구.'라며 진심 어린 격려를 해 주는데, 이 마틴이란 놈은 그 선의의 격려를 '연쇄 살인마로서 그 첫걸음을 떼는 프라이머'로 활용한다는 것이다('사람을 죽이는 것도 처음이 어려울 뿐 그 다음은....'). 영화를 계속 봐 나가면서야 이 말의 무서운 함의를 관객은 되새기게 된다. 2) 다음으로, 편의상 남의 신원을 가로채는 데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이 마틴이란 놈은 진심 그 가로챈 타인의 내면 안으로 철저히 파고들어간 후, 진짜 그 타인의 삶에 완전히 몰입하며, 당사자보다 더 치열히 그 삶과 일체가 된다는 사실이다. 죽은 맷은 (물론 죽기 전에) 렌트카 안에서 자신이 뮤지션으로 출세하겠다며 '자작곡'을 마틴에게 들려주는데, 마틴 이놈은 맷을 죽인 후 그의 그 짧은 '신곡'을 그새 고대로 복사하여 자신이 살인 현장을 떠나면서 흥얼흥얼 읊조리는 것이다. 이는 이미 '빙의' 수준에 가깝다. 이렇게 한 몇 년 '신인 뮤지션'으로 살았을 마틴은, 우리가 이후 보듯 마지막 단계에선 'OOO 겸 미술가'로 또 전혀 다른 타인의 거죽을 뒤집어쓴 채 본인보다 더 그럴싸한 연기를 하며 지내는 것이다.

인트로가 이렇게나 뛰어났건만 정작 이후 본 줄기에서부터 영화는 마치 다른 감독이 연출을 맡기라도 한 양 전혀 다른 호흡과 밋밋한 흐름을 보인다. 그저 흔한 수사 미드라도 보는 듯 박진감이 떨어지는데, 다만 우리가 잘 아는 얼굴들, 이썬(에단) 호크와 졸리, 빅 스타 두 사람의 모습과 개인기를 보는 재미에 충분히 기대며 관람을 이어갈 수 있다. 이썬 호크가 扮한 미술품 거래상 제임스 코스타는 처음에 목격자 겸 (촉 좋은 수사관들에 의해) 용의자로 호출되는데, 졸리가 扮한 스콧 요원(FBI)도 직접 그를 취조하지만 딱히 수상한 점을 캐치하지 못한다. 어딘가 허술해 보여 보호본능도 유발하는데다, 외모도 훤칠하고 감성도 풍부한 코스타에게 스콧 요원은 점점 (본인의 표현대로) '감정'이 생기게 된다.

(스포일러)
우선 용의자로 부각된 후 혐의점을 풀어주다가 다시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아 진범으로 최종 결착짓는 방식은 여태 우리가 많이 봐 왔다. 따라서 그 정도로는 기발한 반전이 될 수 없고, 오히려 진부하다며 욕이나 먹기 쉬운데 이 역시 연출자가 기량껏 하기 나름이다. 기술만 좋으면 여전히 감탄을 유발할 수 있고, 서투르게 하면 이 영화처럼 되는 것이다.

진범이 결코 혐의를 쓸 수 없는 결정적 장면(이라며 감독이 내세운)에서, 이 영화는 오히려 '왜 저 코스타란 놈이 범인, 즉 마틴일 수밖에 없는지 오히려 관객에게 확신을 준다. 어처구니없게도 말이다. 이게 감독이 서투른 점인데, 해당 시퀀스의 수수께끼는 오히려 코스타를 범인으로 놓고 보면 모든 의문이 다 풀리게끔 되어 있다. 아무도 안 속는 트릭을 꾸며 놓고 감독 혼자 신이 난 채 김빠진 마술을 보이는 것이다. 나도 여기까지는 감독을 옹호할 마음이 전혀 없다.

영화를 보면서 열받는 건, 두 형사 중 살아남은 녀석이 졸리의 싸대기를 치는 장면이다. 폭력보다 더 화나는 건, 캡틴한테 이놈이 '살인자와 응응이나 하는 여자 말을 믿다가 이렇게 된 것 아닙니까!'라며 지X을 떠는 대사이다. 남녀 차별 이런 건 둘째 문제고, 아니 졸리가 아니었으면 지네들 힘으로는 진상 규명 그 근처에도 못 갔을 거면서 정작 수고는 남이 다 해 놓고 나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식 아닌가. 더 놀라운 건, 이 무능한 경관의 말을 타국의 중앙 수사기관에서 정말 귀담아듣기라도 했는지, 졸리가 소속 부처로부터 파면까지 당한 후 캐나다 벽지로 이주한다는 점이다. 촌구석의 XX들이야 헛소리를 떠든다 쳐도, 어찌 그 높으신 분들까지 천만부당한 조치를 내릴 수 있단 건지 관객은 의분을 금할 수 없다. 무슨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차별 운운하는 건 짜증과 경멸감만 생길 뿐이지만, 이처럼 진정 유능한 여성이 부당한 대우를 겪으면 그건 남자 입장에서도 분연히 들고 일어날 수밖에 없다.('마, 그건 아니지!')

(스포일러 2)
그러나 이처럼 터지는 분통은 결말에서 정당히 해소된다. 나는 이 점은 대다수의 평가와 달리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데, 다만 여기서도 감독이 좀 바보 아닌가 싶게, 마틴의 대사에서 미리 셀프 스포일링을 범하고 만다. '당신 같은 유능한 요원이 파면되었다니 처음에는 bogus 아닌가 생각했지 뭐야.' 이 말을 듣는 순간, 보는 관객들은 누구나 '아 그렇구나! 우리의 졸리가 그렇게 당하고 가만 있을 리 없지. FBI하고 짠 후 지금 쇼를 하는 거구나.'라며 다 눈치 채고 만다. 아마 감독은 반대로, 그 영리한 마틴이 허무하게 졸리에게 속으면 설득력이 없을 것이라 여겨 이런 양념을 쳤을 건데, 의도는 나쁘지 않았으나 방법이 역효과를 낸 것이다. 차라리 말을 안 했으면 충격은 고스란히 보존되었지 않았겠나 말이다.

일각에서 비판하는 것과 달리, 졸리가 일종의 고육지계를 써서 장기전을 펼친 건 그 캐릭터의 일관성 면에서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쌍둥이로 태어난 살인마가 자기 자식(들)인 쌍둥이를 죽이려 든다는 것도 (가위로 산모의 배를 찌르는) 혐오스러운 장면이 있을망정(또 약간 진부하긴 해도) 플롯의 형식적 완성도에 기여하는 면이 있다.

내가 전에 다른 리뷰에서도 말했지만, <본 콜렉터>나 <솔트>에서처럼 졸리는 절제되고 차분한 캐릭터가 잘 어울리지, 무슨 상처 입은 황녀나 귀족 부인의 위엄 어린 분노, 여전사의 방방뜸 같은 건 오히려 억지스러운 편이다(아무리 그녀가 툼레이더로 떴다 해도 말이다). 여기서도 비록 당해 연도에 래즈베리 어워드 여우주연상 후보로 올랐다고는 하나 내가 보기엔 절제된 속에 엄청난 에너지를 감추는 듯 보이는 그 모습이 좋았다. 연쇄살인마를 추적하는 설정은 <본 콜렉터>에 이어 두번째인데, 단 거기서는 포텐은 충만할망정 어딘가 설익은 신참 형사 역이었고, 여기서는 주위를 리드하는 포지션이란 점에서 차이가 크다.

보면서 딱한 건 마틴 캐릭터다. 저 정도 유리한 여건에서 시작해서 왜 저따위로 꼭 살아야 하나? 싶을 건데, 일단은 저런 걸 키운 그 부모가 문제 많은 사람이다. 그 에미에 그 자식이라고, 영화를 보다 보면 저 여자도 진짜 이상한 인간이다 느낌이 올 것이다. 이 미친 X이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엉뚱한 데서 입은 상처를 이상한 방식으로 풀 게 아니라, 문제의 악순환을 어느 단계에서 끊고 정상으로 복귀를 해야 하는데, 범죄자가 흔히 그렇듯 문제를 정공법으로 풀 생각을 않고 계속 도피만 하려 드는 것이다. 지깐에는 영리하게 남을 속인다고 착각하지만, 결국 일을 거듭하고 종래의 악습에서 못 벗어날수록 지 상처만 깊어질 뿐이다. 이 정신병자의 행동 기제를 보면, 꼭 지한테 잘해주는 사람한테 접근한 후, 뜬금없이(겪어 보면 알지만 진심 뜬금 없다. 일본놈의 진주만 폭격보다 더) 시비를 걸면서 지 내면에 입은 상처를 전혀 엉뚱한 사람한테 시비를 걸며 해소하려 든다. 은혜를 원수로 갚는 데서 쾌감을 느끼는 건데, 정상적으로 살아도 얼마든지 맛볼 수 있는 희열을 구태여 그런 데서 찾는 것만 봐도, 범죄자나 일탈 분자란 과연 구제불능의 병X이구나 하는 점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극중의 마틴처럼, 타인과 고립되어 사는 졸부의 가문에서 종종 이런 등X이 출현하는 게 또 특이하다.

s****o 2023.02.2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