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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아름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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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테 콜비츠의 평전을 읽고 나서 문득 작년 여름에 놀이터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이 났다. 작년 여름 8월 초인지 중순인지 잘 모르겠지만, 한창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의 놀이터에선, 딸내미와 그리고 평소 알고 지내던 젋은 할머니의 손녀가 흙장난을 하면서 놀고 있었다. 아이들이야 흙놀이뿐만 아니더라도 놀이터 이곳 저곳을 쑤시며 지들끼리 재미나게 놀거리가 많지만 나야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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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테 콜비츠의 평전을 읽고 나서 문득 작년 여름에 놀이터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이 났다. 작년 여름 8월 초인지 중순인지 잘 모르겠지만, 한창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의 놀이터에선딸내미와 그리고 평소 알고 지내던 젋은 할머니의 손녀가 흙장난을 하면서 놀고 있었다. 아이들이야 흙놀이뿐만 아니더라도 놀이터 이곳 저곳을 쑤시며 지들끼리 재미나게 놀거리가 많지만 나야 놀이터에서 할 것이라고는 책 읽는 것밖에 없어 놀이터에 갈 때면 책 한 권을 꼭 들고 나간다. 하지만 놀이터에서 읽을 요량으로 들고 나갔던 책은 들춰보지도 채,우리 딸내미의 놀이 상대였던 부끄럼쟁이 여자아이의 젋은 할머니가 풀어 놓은 한 보따리 수다를 들어야만 했었다. 같은 이웃에 사는 노인네의 근질근질거리는 입을 모른 척 할 수도 없고 에라, 모르겠다. 오늘 이 할머니에게 낚이는구나,하는 심정으로 듣고 있는데역시나 이 젋은 할머니 자기 아들 자랑에서부터 며느리 험담까지 이야기가 끝이 없다. , 낚인 몸 어떻게 할 수 없고 장단에 맞춰 맞장구나 쳐야지하며 꼼짝없이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데, 이 명랑 쾌활 할머니 뜬금없이 큰 아들이야기를 하는 것이다큰 아들이 군대 제대 이틀인가 삼일 앞두고 사망했다는 통보를 받고 뭔가 잘 못 온 것 아닌가 싶었다고 했다. 삼일 후에 제대인데 사망 통보가 왔으니,  할머니는 처음에는 군부대의 착오로 잘 못 온 것이라고 생각했었다고 했다.  믿기지도 않고 믿을 수도 없었다는 아들의 죽음 앞에서 할머니는 10년 넘게 술이 없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고, 그 아들 생각에 10년을 방황을 했었다고 했다. 세월이 약이라고 했던가. 아들 죽고 10년 넘으니 아들의 죽음을 어느 정도 받아 들일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저거(둘째 아들의 딸) 보는 재미에 살고 있다고 했다.  우연찮게 할머니의 과거사를  듣고 앉아 있으니 할머니에 대한 연민으로 뭐라고 맞장구 칠만한 단어가 떠 오르지 않았다.

케테 콜비츠는 큰 아들 페테와 손자 페테를 전쟁으로 잃고 나서, 작품의 무게 중심이 더욱더 사회비판적(그리고 러시아 혁명에 절대적인 지지)으로 나아간 것을 보면, 삼순이 말대로 심장이 딱딱해질 수 없어, 아들과 손자를 잃은 상실감을 매 순간마다 작품으로 토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네이버 화면에 뜬 오늘의 책을 무심코 보다가 케테 콜비츠의 자화상을 본 순간 날카로운  전율이 온 몸을 관통했다. 지금까지 보아온 자화상과는 다른, 단조로운 흑백톤의 그림 속에는  거칠면서도 슬픔이 가득 밴 얼굴이 클로즈업 되어 있었다.  케테 콜비츠, 콜비츠, 콜비츠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뭐 하는 여자지, 요즘 뜨는 화간가,하는 물음 꼬리표를 매단 채, 순간적으로 오늘의 책케테 콜비츠에 클릭하였다. 화면에는 콜비츠의 생애와 업적 그리고  그녀의 작품인 판화와 조각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아들을 잃은 개인사와 그녀의 작품이 상당히 인상적인지라 오호라, 올해의 첫발견인걸,이라고 생각하며 그 자리에서 당장 주문 넣고 콜비츠에 대한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콜비츠는 19세기후반에서 20세기까지 활동한 유명한 소위 말하는 민중판화가라고 풀이할 수 있었다. 으흠, .....  당시 20세기 초반에 펼쳐진 다다이즘이나 표현주의라는  서양미술사조의 커다란 카테고리에 묶여 콜비츠가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벌였던 시대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시기였다는 사실을 까막게 잊고 있었다. 이념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녀는 브루조아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헐벗고 굶주리는 민중을 표현하기 위해 회화보다는 판화라는 매체를 통해 그 시대의 이념 투쟁에 참가하였다. 사실 투쟁이라고 하기에는 뭐하기는 한데, 동시대의 사회주의 혁명가 룩셈부르크가 전면적으로 활동한 것에 비하면 케테 콜비츠는 판화나 플래카드를 제작했지 거리로 나선 인물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콜비츠는 20세기 초 이념의 시대를 산 증인이었고 그녀의 작품들은 그 시대를 살았던 프롤레타리아(민중)의 자화상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케테 콜비츠 인생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그녀의 작품 속에 형상화한 대상은 인간이다인간, 인간이 작품의 중심이다. 인간이 작품을 철저하게 지배한다. 풍경화나 정물화 따위는 콜비츠의 작품 목록에 들어 있지 않다. (9)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통받는 인간의 모습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그녀의  평전 속에 있는 그림들이나 여타 사이트에서 들여다 봐도 그림 속의 인간은, 짐짓 외면하고 싶은 타인의 고통 바로 그 모습이었다.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아라 ....  애시당초 그녀의 그림속에 씨알도 먹히도 않는 언어 도단의 말이다. 그녀의 작품 속에 묘사된 고통받고 있는 인간의 모습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그 고통이 그들의 영혼을 잠식할 것처럼 보인다. 사람이 사는 것이 이렇게 고통의 연속일까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민중의 불안과 고통이 그림 속에서 격렬하고 강력하게 무언의 호소를 하고 있다. 심지어 그녀는 램브란트처럼 많은 자화상을 남겼는데 그 자신의 자화상조차 고통과 근심에 찬 모습들뿐이었다. 한번도 활짝 웃고 있는 케테 콜비츠의 모습은 단 한 점도 없다. 평온한 브루조아 가정에서 태어나 그 생활의 안위를 영위하지 않은 채, 민중의 고통을 끌어안고 분노로 표현했던 콜비츠. 콜비츠의 시대의 그녀가 그려낸 자화상은 우리 한국의 80년대민주화를 보는 것 같았다.

 

그녀의 작품들이 미적인 측면보다는 정치적인 측면이 부각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평전을 쓴 크리머는  세련이나 감상이 배제된 묵직함(24)과 함께 그녀의 판화는 상당히 회화적이며 빛에 의해 섬세하게 명암을 잡아내 감각적이라고,  앞의 서문에서 그녀의 작품을 평하고 있다아무리 그녀의 판화가 사회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녀의 예술가적 기질은 속일 수 없는 법이니깐.

 

그녀는 예술가로서가 아니고 대중선동적인 판화가로서 그녀의 작품을 폄하아였던 것을, 독일 통합 이후 그녀가 새롭게 재조명 된 것이 아닐까싶다. 90년대 초반 한때 어쭙자니 서양미술사에 대해 공부했던 나도 그녀의 이름은 미술사 어느 곳에도 발견할 수 없었고 2000년에 들어와서야 그녀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으니 말이다.(그녀를 알게 해준 태극취호님께 감사) 이념이 퇴색된 2000년에 들어와서야 몇 군데에서 그녀의 작품들이 전시가 된 것을 보면 역사와 작품은 세월이 가도 살아 움직이는가 보다.

 

s********8 2007.02.15.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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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세계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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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이 읽고 싶었다..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지만.. 우리와는 분명 다른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안에서 나의 존재감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예술가라는 데에 끌렸고.... 여성이라는 데에 끌렸다... 그러나 다 읽고 보니 나의 존재감과 자신감을 찾기 보단... 한번 더 나를 내려다 보게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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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이 읽고 싶었다..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지만.. 우리와는 분명 다른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안에서 나의 존재감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예술가라는 데에 끌렸고.... 여성이라는 데에 끌렸다... 그러나 다 읽고 보니 나의 존재감과 자신감을 찾기 보단... 한번 더 나를 내려다 보게 되었다.. 그들이 내게 이렇게 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렇게 살아 왔다''를 말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나온 나의 살아 온 날들을 돌아보게 된 것이다... 나의 현재는 불투명하다.. 미래도 불투명하고.. 과거에도 불투명했지만.. 투명을 꿈꾼적이 있었다.. 그 투명이란... 겉치레의 성공이 아닌.. 내면으로 뿌듯한 투명을 일궈내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껏 그렇게 외치고는 있었찌만.. 나는 겉치레를 위해 바둥거렸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내면의 뿌듯함을 간절히 원하게 되었다.. 지금도... 바로 이 순간에도 말이다... 케테 콜비치의 삶과 내면을 들여다 보니... 예술가로서의 케테 콜비츠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케테 콜비츠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 내면의 표출이 예술이였다고 생각한다.. 그는 곧은 사람이였다고 생각한다... 자신과 끈임없이 대화를 하면서 곧은 마음대로 행동했고 표출했다... 그녀의 곧음이 그렇게 만든건지.. 세상이 곧음을 그렇게 만든것인지는 몰라도.. 그녀는 유명해지면서부터 조심스러워 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쪽에 비중을 두기 보다는.. 마음의 소리와 예술적 자질을 요구하고 추구했다.. 그래서 그 많은 작품과 계속적인 발전을 이끌어 나갈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마음... 자신이 판단하고.. 실행하고 노력하는 마음.. 그 마음이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울림에 기준을 둔 것이지만... 소외된 사람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그리고 감싸줌이 필요한 사람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그려내므로써 많은 대중들에게 다가가고.. 자기 자신을 내보이고.. 자기의 뜻을 말렸다.. 그녀의 그 마음이 고결하다.. 예술적 자질과.. 그 자질을 바탕으로 한 그녀의 마음 가짐이 나는 부럽다... 그래서 새로운 자신감과 존재감이 아닌.. 그녀를 닮아가고 싶은 것이다.. 그런 뿌듯함.. 고결함.. 곧은 의지... 정직한 마음... 느끼고 싶고.... 닮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나의 소망은 단지 내가 방랑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에게 마주 걸어오는 것을 실제로 한 번 보는 것이다'' -괴테의 편지 中 ''이전에는 손에 잡힐 듯 느껴졌던 감정들이 뒤편의 두꺼운, 들여다 볼 수 없는 창유리에 가려져버리고 말아서, 피곤한 정신은 왜 그것 때문에 긴장하는지를 느껴보려고 할 수조차 없게 된다. -일기, 1921년 4월 ''세잔은 화가로서만 소개된다. 그는 철두철미한 화가다. 한편, 반 고흐라는 위대하고 독보적인 인간도 재능을 지닌 인물로 소개된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결정적인 것은 재능의 피안에 있는 그 강렬한 개성이다. -카를 셰플러
s****m 2006.06.2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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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과 형식이 일치했던 작가, 케테 콜비츠
"내용과 형식이 일치했던 작가, 케테 콜비츠" 내용보기
내용이 형식을 압도할때, 예술은 지루해진다. 형식이 내용을 압도할때, 예술은 공허하다. 케테 콜비츠.. 자유 교구 운동의 선구자인 외조부와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자로 안정된 공직생활을 그만두고 장인으로 살았던 아버지의 영향력 아래서 케테 콜비츠는 사회주의자로써 갖춰야할 자양분을 어릴적부터 섭취했다. 그리고, 결혼후 가난한 노동자들의 거주지에서 개업의로
"내용과 형식이 일치했던 작가, 케테 콜비츠" 내용보기
내용이 형식을 압도할때, 예술은 지루해진다. 형식이 내용을 압도할때, 예술은 공허하다. 케테 콜비츠.. 자유 교구 운동의 선구자인 외조부와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자로 안정된 공직생활을 그만두고 장인으로 살았던 아버지의 영향력 아래서 케테 콜비츠는 사회주의자로써 갖춰야할 자양분을 어릴적부터 섭취했다. 그리고, 결혼후 가난한 노동자들의 거주지에서 개업의로 일했던 남편을 도우면서 그녀는 자신의 예술의 주제를 노동자 계급에 두기 시작했다. 하우프트만의 연극 직조공의 봉기를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케테는 곧 작업 착수해서 그녀를 세상에 알린 직조공의 봉기를 완수한다. 그리고, 1900년대 농민전쟁 연작을 거치면서 자신의 작품 세계를 공고히한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예술가로 알려진 그녀의 작품은 강렬하다. 동시에 집중적이고 단순하다. 해를 거듭할수록 그녀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깊이는 간결함과 비례해진다는걸 그녀의 작품들 시간순서대로 보면 알수 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작품은 농민전쟁의 연작중 한편이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녀는 그 작품에서 투쟁을 향하는 농민들의 모습을 하나의 주체로 그려냈다. 단결된 농민의 힘이 바로 내 앞에서 펼쳐지는듯한 강한 인상을 남긴다. 1차 세계 대전직후 그녀는 사랑하는 아들 페터를 잃었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깊은 절망속에서 그녀는 얼마나 외로웠을것이다. 슬픔을 안고, 반전 작품을 작업했던 그녀.. 2차 세계대전 같은 이름의 손자 페터를 잃은 그녀는 어떤 심정이 었을까? 인간과 변혁, 투쟁을 주제로 내용과 형식이 일치했던 작가 케테 콜비츠의 세계와 작품은 지금현재에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아마도 그건 그녀가 살았던 당대의 사회의 모순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시대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상깊은구절]
또한 예술이 더이상 통일된 신앙에 의해 인도받지 못하기 때문에 각각의 예술작품들은 인간 개개인이 지닌 특질을 표현해줄 뿐이다. 케테 콜비츠의 예술에서 느껴지는 위대함은 그녀의 인간됨에서 비롯된 것이다.
i*****7 2004.12.11.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