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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임꺽정이 10권을 마지막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그러나 10권은 허무하다 못해 어이가 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경신년 섣달, 명종이 즉위한지 15년이 되던 해이다. 마침내 조정은 도적들을 소탕하기 위하여 황해도와 강원도에 순경사를 파견하기로 한다. 청석골에서 이 소식을 들은 꺽정일당은 자세한 내막을 알아보기 위해 한온이를 서울로 보낸다. 한온은 서울에서 가장 미더운 남소문 안 강만손의 집에 머물며 정황을 염탐하던 중, 좌포장 집에서 심부름하던 순이 할매의 손자 큰쇠를 통해 저간의 사정을 듣는다.
서림의 소식과 순경사의 동향을 파악한 한온은 청석골로 돌아와 꺽정에게 말하고 꺽정은 여러 두령들과 계책을 세운다.
청석골 두령들은 서림이 가족들을 잡아
볼모로 삼는 계책을 내었다는 소식에 우선 처자들을 대피시키기로 하고 그 수효를 세어보니 두령들의 처자와 한온, 이춘동의
가족, 의원 허생원까지 하니 셋 모자라는 삼십 명이요, 두목, 졸개들의 처자까지 합하니 칠십명이 넘었다. 자모산성으로 보낼지 해주
박연중에게 보낼지 갑론을박하다 해주와 양덕, 맹산, 성천으로
나누어 보내기로 한다.
해주에서 이춘동과 한온, 박연중이 순경사의 동향을 파악해보니 순경사가 재령에서 기생에게 빠져 병을 핑계대고 각지에 관자를 보냈다고 한다. 이춘동으로부터 이 소식을 들은 두령들은 이를 음모라 생각하고 두령들이 직접 처속들을 데리고 자모산성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그날 밤, 청석골을 죽어도 떠나기 싫다는 늙은 오가를
남겨두고 두령들과 시위 둘, 그리고 두목들과 짐을 질 졸개들이 군장비와 쓸만한 재물들을 모두 챙겨 청석골을
떠난다. 해주 박연중의 마을에서 하룻밤 자고 난 일행은 마을사람들의 불평에 바로 해주를 떠나기로 한다. 이봉학이 두령들과 두목, 졸개 열명을 거느리고 먼저 길을 떠나고, 꺽정은 이튿날 새벽부터 길을 재촉했으나 내행이 많은 까닭으로 밤이 삼경이 다 되어서야 자모산성 안으로 들어온다. 백손 어머니가 산후 탈로 움직이지 못하자, 애기 어머니와 애기, 백손이가 못오고, 의원 허생원과 심부름할 졸개내외, 이춘동이 가족 세 식구를 해주에 남게 하니 열명이 줄어 육십여명이 자모산성에서 구차하게나마 자리를 잡는다.
청석골에 남은 오가가 쓸쓸해하며 지낼
때, 졸개들이 도망치기 시작한다. 가까이 두고 부리는 졸개
흥록이 와서 오가에게 고하지만 오가는 내버려 두라고 한다.
이 지점에서 벽초는 미완이라 쓰고
임꺽정의 얘기를 마친다. 벽초는 당초 꺽정이 청석동에서 자모산성으로 옮기고 또 구월산성으로 옮기었다가
구월산성에서 망한 것이 사실이므로 화적 임꺽정을 청석편, 자모편, 구월편
세편으로 나누어 쓰고, 꺽정의 아들 백손이 유락(流落)된 것을 짤름하여 써서 붙이려 했다고 말했지만, 자모산성에 들어가는
것으로 끝낸 것이다.
아직도 궁금한 것이 많은데 말이다. 자모산성 안에서 꺽정 일당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어떻게 해서 구월산성으로
옮기는지, 해주에 남은 식구들은 어떻게 되는지, 청석골을
지키는 늙은 오가의 말로는 어떤지.. 그럼에도 벽초는 더 이상 말이 없다. 다만 임형택 교수가 해제에서 추정적인 견해를 덧붙이고 있을 뿐이다. ‘실록에 보면 꺽정이 자모산성으로
들어간 다음해 황해도 순경사 이사증이 임꺽정을 체포했다고 보고했지만 청석골에 남았던 오가일 가능성이 높고, 그
다음해 임금이 황해도에서 공을 세운 자들을 불러 도적을 잡은 전말을 아뢰라 했지만 내용은 사관들이 기록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소설 속에 봉산군수로 등장하는 박응천과
숙질간인 박동량의 [가재잡기]에 임꺽정의 최후 이야기가 들어있는데
‘구월산에서
두령들이 서림의 유인에 말려들어 모두 죽고, 꺽정이 혼자서 도주하다 무수한 화살을 맞아 상처를 입고
잡혔다’고 한다.
임꺽정은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에 홍길동, 장길산과 더불어 조선의 3대 도둑으로 언급되어 있다고 한다. 그가 의적이었는지 아니면 혁명을 꿈꾸었던 영웅이었는지는 모르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신분제에 저항하는 민초였다는 것이다. 벽초의 대하소설 [임꺽정]은 말 그대로 꺽정과 두령들의 이야기이다. 소설 속에는 조선시대 수많은 사대부들이 등장하고 또 많은 여인들도 나오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꺽정이를 포함한 7두령의 의리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들은 각기 선량하고 좋은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서로에겐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것은 아마 서로에게 감추고 숨기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기에 우리는 임꺽정을 읽으면서 사대부들 보다는 그들이 한심하다고 여기는 천민과 같은 백성들에게서 더 큰 감동을 받는다. 부귀영화의 무상함과 권세의 비루함, 그리고 그들의 초라한 죽음을 보면서 우리는 삶에 대해, 우정에 대해, 사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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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뻘쭘하다. 100년 전 작품에서 새로운 지평을 봤다는 이야기를 하다니... 수십년동안 벽초 홍명희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TV 드라마도 보지 않았고... 아주 어릴적 라디오 드라마 같은 걸로 들었던 기억에 대한 기억만 있는 정도. 그래도, 뭐 시간이 있을 때 한번 보자고 ebook을 잡았고, 쉬엄쉬엄 읽어갔다. 정말 '캬~'하는 부분들이 많았다. 그리고, 맨 마지막 부분을 봤을 때... '아, 이래서 미완인 거네... 너무 아쉽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정도까지 미완인 줄은 몰랐다. 몇가지 인상... 신분차별의 시대에 대한 민중의 억눌림을 표출했다고는 하지만, 남녀차별, 폭력에 대한 관대함/무심함에 대해서는 역시 시대적인 한계가 아닌가 싶다. 다음으로, 작가가 100년 전에 이렇게 많은 사료/사례/에피소드들을 기획하고 글을 썼다는게 놀라울 정도로 장면들이 세세하고, 다양하다. 너무 모던하다. 그리고, 이 모던함은 문체에서 드러난다. 30년도 전에 이광수나 최남선, 하물며 심훈을 접했을 때 느껴지던 촌스러움이 전혀 없다. 루쉰의 책에서 느꼈던 20세기 초 중국 문학이 가지는 모더니즘적 세련됨이 홍명희에게서 구현이 되어 있다는 것을 이제서야 할게 되었다. 황석영의 '장길산'이나 이병주의 '바람과 구름과 비', 박경리의 '토지' 보다도 훨씬 수준이 높은 것 같다는 느낌이다. 장길산과 토지는 끝까지 보진 못했지만서두.... 정말 많은 표현들, 단어들이 백과사전처럼 소개가 되어 있어서, 사료로써도 엄청난 작품이 아닌가 싶다. 그냥 짱이었다. 다만, 시대적인 한계... 조선시대를 그려서인지, 아니면 식민지 한국사회가 이 정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소 야만적인 폭력성에 대한 무던함이 걸리긴 한다. 어쩌면 그러한 날 것의 냄새가 더 모던함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