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하이대 왕샤오밍 교수는 루쉰의 일생을 '횡참적 자세'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횡참적 자세'란 비스듬히 서서 보는 태도로 사회가 급변할때 어느 쪽에도 섣불리 찬동하지 않고 경계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려는 입장이라고 설명한다. 루쉰은 개혁가이며 혁명가였지만 이데올로기적으로 좌, 우 어느쪽에도 그리 심하게 편향되지 않은 그래서 외로운 투쟁가였던 듯 싶다. 루쉰이 얼마나 지독하게 싸움을 했는지 그가 세상에 해댄 욕을 보고 실소를 금하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그를 지칭하는 수식어 앞에는 항상 大 가 붙는데 욕을 하는데 있어서도 그 대를 결코 뺄 수 없다고 할만했다. 위대한 문학인, 위대한 사상가 , 혁명가이며 지독한 욕쟁이 루쉰의 최대 약점은 바로 오늘 내가 마지막 장을 덮은 책장속에 들어있는 작은 고슴도치, 꼬맹이, 작은 연꽃으로 불리워졌던 그녀 쉬광핑이다. 로버트 드니로와 알 파치노가 나온 '히트'라는 영화를 본적있다. 영화속에서 장난아닌 도둑으로 나오는 로버트 드니로가 항상 하던 이야기가 있다. 우리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은 삼분이상 고민할 만한 사람을 소유하면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가 사랑을 느끼고 같이 떠나고 싶던 그 여자도 결국 삼분이상 고민을 하지 않고 버렸다. 루쉰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사랑없이 잘 살 수 있을줄 알았다. 구태에 대한 반항아로 악명 높던 그도 어쩔 수 없이 부모의 강요로 주안 부인과 결혼을 했지만 그렇게 한 결혼은 그저 형식적인 결혼이었을뿐이다. 도둑이나 혁명가인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것을 얻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희생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과연 얼마나 '사랑할 수 없는 비애감' , '사랑없는 비극'을 극복하고 살 수 있을까? < 연애 기간은 물론이고 결혼 생활의 영위에 있어 정서적 갈등이 생기게 되면 사람은 심리적인 균형 감각을 잃게 된다. 자연적으로 발생하게 마련인 성적 욕구를 사회적 인습으로 인해 오랜 기간 억눌러왔다거나 혹은 이성으로 제어하다 보면 본능적인 욕구는 무의식으로 숨어들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소멸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더욱 강렬한 반동 작용을 일으켜 세차게 솟구치기 마련이다. > 이 책 '루쉰의 편지'를 엮은 리우푸친이 편지끝에 붙이는 장황한 해설은 정말 중국사람 본연의 모습답게 허풍스럽고 요란했는데 이런 구절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루쉰, 결혼은 했지만 어머니를 모시듯 주안 부인도 자기품에 들어온 사람을 거둔다는것 이상의 의미를 두지 못하고 살았던바 자기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던 갈증에 목이 말라 있었다. 이런 그의 앞에 스물여덟살의 재능있고 당돌한 처녀 쉬광핑이 뛰어들었으니 이건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사회 문화 개혁을 위해 세상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던 루쉰에게 제자인 쉬광핑과의 염문은 자칫 그 동안 진행해 왔던 투쟁사업을 좌초시킬 수 있는아킬레스 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 후반기에 찾아온 개인적인 행복을 놓치기 싫었던 루쉰은 차근차근 새로운 가정을 꾸미기 위해 주변 상황을 합리적으로 정리한다. 그 과정에 루쉰이 겪었던 심리적 갈등과 쉬광핑에 대한 은근한 애정 그리고 같이 공유할 수 있었던 사회투쟁, 개혁의 갈망과 그 구상에 대한 내용이 담겨져 있는것이 이 책 '루쉰의 편지'이다. 지극히 사적인 편지의 내용이 책으로 나올때는 나름 사적인 내용을 넘어서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 편지글들이 비록 연인간에 씌여진 것이라고는 하지만 1920년대 최악의 혼란속에 있던 중국의 한 지성과 재능있고 당찬 맹렬여성 간에 오간 편지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이 한몸 희생하는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여성이 그 강렬한 열정을 스승에게 쏟아내고 스승은 연륜으로 다독이고 있다. 네 몸을 아껴 더욱 의미있는곳에 쓰기 바란다는 스승의 말은 제자에게 한마디 한마디 가슴에 새겨진다. 루쉰이 가지는 무게감이 워낙크기 때문에 그에 관해서는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것들이 있다. 그런데 이런 책을 읽어 놓으면 좀 사적인 관음증을 충족 시켜주는바 바위같은 사람이 단번에 친근하게 느껴져 다가가기 쉬워진다. 그러니 한번쯤 읽어두면 꽤 쓸만한 책이다. 짙은 눈썹의 강철같이 굳은 표정으로 만인의 비난과 공격을 받던 루쉰이 어린 연인에게 부리는 어리광은 좀 귀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