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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갗을 스치는 바람이 훈훈하게 다가올 때면, 겨우내 잠들었던 대지에서는 온갖 물상들이 두꺼운 껍질을 깨고 새로운 싹을 틔우고 한해를 시작한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계절 봄은 강인한 생명력을 잉태하는 희망의 원천이다. 태어나 밟아야할 과정을 거치며 성장을 더하고 성숙의 길을 걷는 삶을 반추해보면 인생의 봄은 아무래도 10대 시절을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10대의 별칭은 혈기 왕성한 청춘시절인 셈이다. 성숙으로 나가는 사춘기 시절 역시 인생의 봄을 넌지시 알려준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에는 많은 정신적 방황이 있어 왔다.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여러 제약이 있어 발산하고 싶은 욕망을 안에 가두고 순응하며 살기에 급급했던 시절 희망과 생명력을 담고 있는 시기이다. 생명의 싹을 틔우기 위해 껍찔을 깨고 열매를 맺는 과정을 겪어야 하듯이, 미숙함이 많은 시기에는 성숙을 향한 고통을 감내하고 극복해 나가야만 한다. 봄바람은 주인공 섬마을 소년 훈필이 성숙한 삶을 위해 겪어나가는 희망과 좌절, 더남과 돌아옴을 다룬 이야기로 20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이어지는 열세 살 훈필이가 보고 느끼는 사랑과 그리움, 드넓은 세상을 향한 동경과 호기심, 반항심과 도전 정신이 사실적으로 잘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단순한 좌절과 방황 속에 조금씩 성숙해가는 훈필이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부조리한 현실에 맞서 자신이 꿈꾸는 이상을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 방황하며 어딘가로 떠나는 영혼의 고뇌를 담고 있다. 흙을 파고 땅을 일구던 농촌의 삶에 넌더리를 내고 도회를 동경하는 훈필의 모습에서 풀을 뜯고 있던 소를 몰고 오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면 언덱에서 풀을 뜯던 소를 몰고 오는 길에 실갗을 스미는 바람은 행복한 미소를 머금게 하지만은 않았다. 어쩌면 이곳을 떠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만들었지만 용기가 부족했던 나는 늘 그 자리를 지키며 고개를 주억거려야만 했다. 하지만 이 소설 속 훈필은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2박 3일 간의 가출을 감행하고 드넓은 세상에 맞서 살기란 녹록치 않음을 절감한다. 비록 제자리로 돌아와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지만 젊은 시절의 방황과 고뇌는 새로운 양분으로 자리해 더욱 성숙한 삶을 살게 하는 힘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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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봄바람 / 박상률 ![]() 봄바람은 박상률작가의 대표작이다. 이 책 봄바람은 박상률작가가 청소년소설을 쓰기 시작한 시발점이기도 하다. 청소년소설의 대가 박상률을 알기 위해선 꼭 읽어봐야 할 필독서라고 할 수 있다. 청소년소설을 접하고 얼마 있지 않아서 박상률작가를 알게 되었다. 청소년소설에 관심이 있다는 말을 들은 지인이 박상률작가의 책은 모두 읽어보라고 권했다. 그래서 그의 책을 읽게 되었고 이번이 두 번째 책이다.
배경은 시골이다. 그것도 못살던 시절의 시골이다. 게다가 섬이다. 내가 책을 설렁설렁 읽었는지 배경이 섬이라는 건 뒷부분에 알았다. 보통의 청소년소설은 작가의 어릴적 시절을 쓴 것들이 많은데 이 책의 내용도 그런게 아닌가 싶다. 시대적으로 보면 거의 들어맞기 때문이다. 어느 동네에나 바보가 한 명 씩은 있나보다. 아니면 한 명의 바보가 온 동네를 돌아다니거나. 이 책 [봄바람]에도 바보가 한 명 나온다. 소설의 시작을 바보 얘기로 시작해서 끝맺음도 바보얘기다. 연관 관계는 잘 모르겠지만 바보 얘기로 시작해서 바보 얘기로 끝낸 데에는 무슨 이유가 있는 듯 싶다. 안타깝게도 배움이 적어서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소설속 화자인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다. 처음 화자의 학년을 보고는 '청소년 소설인데 6학년이 주인공이야?'라고 생각했지만 청소년소설의 독자가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고1까지라는 걸 알게 된 후로는 이해가 되었다. 요즘 아이들은 성장이 빨라서 이미 5학년이면 사춘기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5학년 부터 고1 까지가 청소년소설이 독자라는 결론이 나온다. 아주아주 특별한 내용이 있다기 보다는 그냥 6학년 짜리 남학생이 6학년이 되면서 부터 얘기가 시작되어 6학년이 끝날 때 소설이 끝났다. 그냥 평범한 사춘기의 얘기다. 가출을 한 사건을 뺀다면 정말 평범했다. 그나마 가출한 사건이 있어서 재미가 조금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당시 시대의 가출은 어떠했는지, 섬에서 살면 가출했을 때 어떤 상황이 되는지 정도의 지식도 얻었다.
박상률작가의 대표작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이 책에 대해 잘 나와있는 리뷰나 평론 같은걸 읽어봐야 이해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의 대표작도 읽었으니 좀더 편안하게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겠다. #nahaboo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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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배경은 섬이다. 절대적으로 고립된 곳이다. 외부와 소통을 단절됨으로서 어린이로 하여금 서울에 대한 환상을 갖게 하고 외부에서 가끔씩 들어오는 서울 사람이나 서울을 다녀온 섬 주민들은 서울에 대한 환상과 꿈이 자신들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훈필 역시 그런 아이 중 하나다. 첫사랑과 그리는 미래에 대한 환상과 서울에 대한 환상을 그리며 자신의 세계에 빠져사는 아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것일지라도 만들어진 거짓인 환상은 사람으로 하여금 무모한 일을 하게 하고 결국을 박살나는 법이다. 훈필은 중학생이 되기 위한 학비용으로 키우던 집안의 한 마리 있는 염소마저 죽자 자신이 가진 꿈이 흔들린다. 은주와의 거리가 멀어지고 은주와의 미래에 들어있던 그 ‘푸른 목장’마저 흔들리자 훈필은 자신이 가진 남은 꿈에 도전한다. 서울에 다녀온 이가 아니라 진짜 서울 아이가 오고 그 아이는 성격은 자신의 환상에 확신을 더 해준다. 결국 훈필은 자신이 생각하던 환상이자 이상향은 섬 밖의 세상 서울로 가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이 환상에 부합하지는 않는다. 이미 소설에서는 서울에 대한 환상이 박살 날 것임을 암시한다. 백두 부대를 다녀온 근처 형은 술 주정뱅이가 되고 서울아이도 그저 사업실패로 아버지는 자살한 상태로 내려온 것이다. 그저 훈필이 그것을 직시하지 않고 환상에 빠져든 것일 뿐이다. 세상으로 나간 훈필은 환상도 박살나고 진짜 ‘서울’을 보게 된다. 다시금 섬으로 돌아온 훈필이지만 ‘섬 마을 아이 훈필’은 없다. 시간에 휩쓸려 사라지듯 ‘섬 마을 아이 훈필’은 과거로 밀려나고 그저 사춘기를 넘어 어른으로 나아가는 ‘청소년’이 된 것이다. 그렇게 아이의 자신은 마감되었음은 본문에서도 나타난다. 파란 잉크로 쓰여진, 나에 대한 담임 선생님의 의견을 끝으로 나는 6학년을 마감했다. 6학년을 마감함으로서 시리고 아렸던 내 열세 살의 지난 일년은 과거의 일로 밀려갔다. -본문 중- 한때의 짝사랑이 행동에도 더 이상 심장은 두근거리지 않고 아이들이 노는 와중에도 자신은 뒷산으로 간다. 모든 것이 지루해지고 같은 아이의 마음이 아닌 이미 커진 어른의 마음으로 보기 때문인 것이다. 그 순간 그전 까지 마을 밖에서 돌아다니던 노래만 부르던 떠돌이 꽃치가 와서 ‘말’을 한다. 꽃치는 직후 사라진다. 왜 그럴까? 먼저 꽃치가 가지는 상징을 다시금 봐야한다. 꽃치는 바람과 함께오며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그 노래는 늘 훈필의 심정을 대변한다. 글을 볼 줄 아는 이는 여기서 안다. 꽃치는 봄바람이다. 봄바람의 의인화인 것이다. 봄바람이 글의 제목이자 새로이 불어닥치는 것임을 본 다면 답은 하나다 사춘기는 봄바람이고 봄바람은 꽃치다. 훈필의 사춘기인 것이다. 아이들은 꽃치를 무서워하고 피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사춘기가 오지 않고 환상에 빠진 아이들이 사춘기인 꽃치를 피하기에 소설이 끝나는 순간 까지 어른이 되지 않는다. 어른이 되는 것은 세상에 나가 세상을 보고 어른이 된 훈필하나다. 그렇기에 훈필이 꽃치의 말을 듣고 순간 그가 풍기는 냄새가 역한 냄새가 아닌 꽃향기로 느끼는 것이다. 그는 사춘기를 무서워하지 않고 그저 받아들였기에 그 꽃치를 노래만 부르는 외부인이 아닌 사람대 사람으로서 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춘기는 어른이 되면서 사라진다. 꽃치는 훈필의 사춘기다 때문에 꽃치는 금방 사라진다. 그러나 훈필은 아직도 꽃치를 그리워한다. 어른들은 꽃치를 그저 아무 감정없이 대하는 것과 달리 그는 어른이 됨에도 꽃치를 그리워한다. 그것은 당연하다. 꽃치는 분리된 자아이기 때문이다. 꽃치는 훈필의 심정을 대변하는 노래를 부르고 거지와 같은 떠돌이 삶을 살며 사랑하는 이도 있다. 사춘기를 겪으며 거칠 문제와 시련이 분리되어 하나의 객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때문에 훈필이 사춘기를 비교적 더 쉬이 버티게 해준다. 그러나 훈필이 사춘기를 거친 순간 그는 존재할 수 없다. 사춘기를 겪었기에 훈필이 거친 과거로서 존재하야만 하는 것이다. 때문에 사라지는 것 즉, 그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훈필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은연 중으로 자신의 사춘기이자 그것을 잘 버티게 한 존재이기에 그리워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소설은 누구나 겪는 험한 내용을, 어두워 질 수 있는 내용을 주인공의 사춘기를 분리해 꽃치라는 인물로 만들고 주인공에게는 고립된 섬 마을 아이가 갖는 순수함을 지니게 함으로서 밝은 내용의 서정적 느낌 까지 받는 소설로 바꾸고 (실제로 이후 훈필이 어른이 된 이후는 스스로 생각하거나 고뇌하고, 아이들과 거리를 두는 등 약간 무거워지느 느낌이 있다.) 그 두 자아가 하나로 합쳐져서 훈필이라는 아이가 결과적으로 성장하게 하는 내용을 잘 담아내고 있으며 소설의 첫문장과 마지막 문장을 같게 해 소설이 끝나지 않는 여운을 느끼게 하고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사춘기를 어떠하였는가에 대한 회고적 감상을 하게하는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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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섬에 사는 초등학생이다. 초등학교 6학년. 한없이 예민해지는 사춘기가 시작되는 나이... 박상률..아마도 작가의 어린 시절을 그려낸 듯한 이야기이다. 잔잔하고, 애틋하고, 귀엽고 순수하다. 1960년대나 1970년대의 풍경과 함께 초등학교 6학년 아이의 마음이 잘 나타나있다.
섬을 벗어나 서울로 가기위해 애도 써보고, 같은 학교의 은주를 좋아하다가 새로 전학온 서울 아이에게 마음을 뺏기기도 하고. 그렇게 나는 나대로 방황을 한다. 뭐, 다큰 지금이야 별일 아니겠지만 그 때는 그것이 세상 모든 일이니까.
이 글이 마음에 든다. 평범한 아이의 마음을 파스텔로 그려낸 것 같다. 포근하고, 잔잔하고 따뜻하다. '소나기'를 읽는 것 같기도 하고, '요람기'를 읽는 것 같기도 하다.
1318씨리즈 중에서 가장 소년의 마음을 잔잔히 잘 묘사했다. 마음이 따뜻해지며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좋다. 마냥 좋다.
아쉬운 것은 내가 10대 였을때 이런 책이 없었다는 것이 마냥 아쉽다.
꼭 한번 즈음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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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이 불면 동네처녀,총각들의 몸이 꿈틀거린다.꽃샘추위가 지나고 담장 너머로 앵두꽃이 피어나고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만개하면 젊은 처녀,총각의 마음도 싱숭생숭해지는 것이 몸의 섭리가 아닐까 한다.특히 봄이 올 무렵에는 꽃샘추위와 함께 살짝 찾아 왔다 금방 사그라드는 것이 짧은 여운을 남기는 봄이다.
이 글은 작가의 고향이고 어린 시절 삶의 터전이었던 1960년대 진도 섬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주인공은 훈필이고 농사를 짓는 농부의 아들로 열세살 소년이다.훈필이는 공부보다는 짝사랑하는 연주에게 다가가려 무진장 애를 쓰고,애지중지 키우는 염소와 자연을 벗삼아 성장해 가는 순수한 소년이다.나중에 커서 푸른 목장을 운영하면서 연주와 함께 살아가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그런데 서울에서 전학을 온 서울소녀로 인해 연주에게서 찾아 볼 수 없는 야릇한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서리를 맞고 자라는 들국화를 꺾어 서울소녀에게 꽃다발을 바치면서,훈필이가 서울소녀를 좋아하게 된다는 발없는 소문이 동네에 쫙 퍼지게 되고,연주도 약간 토라지게 된다.
훈필이의 고향에는 정신은 멀쩡한데 동냥으로 생활을 해 가는 꽃치와 정신병이 있는 연주 고모를 바라보면서 둘이 어떻게 엮어지기를 바란다.꽃치는 1년을 가도 말이 없는 사람이지만 남의 말을 듣고 이해하는데 누군가 그에게 일거리를 부탁하면 육중한 몸으로 일을 처리해 주고 허기진 배를 채워 나가고 잠은 연주네 담배 건조장에서 해결하고,연주 고모는 미친 병이 발광하면 옷을 홀라당 벗고 동네방네를 길길이 뛰고 날며 고래고래 춤을 추기도 하는데,문제는 자신이 누운 똥을 온몸에 칠을 하며 볼썽사납게 행동한다.연주 고모를 달래고 위로하는 것은 연주의 몫이기에 훈필이는 연주의 착하고 여린 마음씨가 가상하고 좋았던거 같다.
훈필이가 내내 좋아하던 대상이 연주에서 서울 소녀로 바뀌면서 내면의 비밀이 탄로가 나면서 훈필이는 섬마을 촌놈에서 벗어나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섬마을 탈출을 결행하는데 엄마가 생활비(500원)을 훔쳐 읍내로 나가고 읍내에서 할머니를 만나 목포로 몸을 옮기지만 '어서 오세요'라고 반기는 사람은 없다.훈필이는 건달에게 돈을 빼앗기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는데,연주와 서울 소녀와의 사랑과 추억,그리고 일장춘몽으로 끝난 희망과 성공은 훈필이에게는 커다란 삶의 교훈이 되었을 것이다.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은 내가 자라나던 곳과는 다르지만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풍경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도장포장이 안되었던 시절에는 꽃샘바람이 한바탕 지나가면 뿌연 먼지가 소용돌이를 이루고,마당에 널어 놓은 빨래들은 켜켜이 먼지가 쌓인다.봄부터 겨울까지의 훈필이의 봄바람과 같은 이야기는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따뜻하고 훈훈하기만 하다.산비탈에 염소 목장을 만들어 연주와 함께 살아 보고 싶은 훈필이의 가슴에는 어느덧 사랑의 씨앗이 뿌려진거 같이 늘 쿵쿵거리고 말과 행동이 조심스럽기만 하다. 내게도 그러한 시절이 있었는지를 되돌아 보면서,누구나 한 번쯤 다가오는 이성에의 야릇한 감정을 열세살 훈필이를 통해 다시 느껴보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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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치는 힘이 장사라고 한다. 그래서 어른들은 꽃치가 자기 집 일을 해 주길 바란다. 그러면서 꽃치에게 남의 집 일만 해도 거뜬히 먹고살 수 있을 텐데 무엇 때문에 떠돌이 생활을 하느냐며 마을에 눌러앉을 것을 넌지시 권해 본다. 그러나 꽃치는 무슨 말을 들어도 도대체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다. 꽃치가 남의 말을 듣기는 분명히 듣는 눈치인데도 말이다. 꽃치는 그런 말을 들으면 반드시 그 뒷날 아침 일찌감치 마을을 떠나 버린다. 그래서 어른들 사이에는 꽃치한테 마을에 눌러살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게 거의 불문율처럼 굳어졌다. 그처럼 남의 집 일만 해도 먹고살 만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꽃치는 왜 떠돌이 동냥치 생활을 할까? 말도 하지 않고, 집도 없이, 이름도 감춘 채 그는 왜 그렇게 살고 있을까? (96 - 97쪽 발췌)
꽃치. 그는 늘 꽃이 꽂힌 망태기와 함께 여름 겨울 가릴 것 없이 거무죽죽한 솜옷만을 입고 나타난다. 꽃치가 지고 다니는 망태기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망태기 위에는 언제나 그 계절에 피는 꽃이 꽂혀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꽃동냥치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꽃동냥치를 줄여 부르기 시작해서 지금은 꽃치라고 부른다. 알 수 없는 일은, 꽃치가 노래는 잘하면서도 말은 전혀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디서 배웠는지 판소리 가락이 자연스러운 창에서부터 흘러간 유행가까지 쉼 없이 불러 대는데 말은 전혀 않는다. 힘은 장사이지만 마을에 눌러앉아 일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말을 하지 않는 꽃치에게 굳이 말을 걸려고 애를 쓰며, 집 없이 떠도는 꽃치에게 한 곳에 머물러 살기를 권하며, 이름을 감춘 그에게 꽃치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식으로 살고 있는 사람을 보면 자신과 같아지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경계에 선 훈필에게 꽃치는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꽃치는 말을 하지 않아도 전혀 불편하지 않고, 집이 없어도 살 수 있고, 이름이 없어도 자기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꽃치에게서 불편보다는 자유의 바람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가 살고 있는 섬이 오죽 갑갑하랴. 게다가 염소를 키워 중학교를 가고 농업 고등학교를 나오려는 꿈도, 은주와 푸른 목장을 운영하려는 꿈도 다 무너져 내린다. 애지중지 키우던 염소가 죽고, 마음을 두었던 은주와도 가까워지지 못하는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좁은 시골 구석에서 더 이상 썩지 말고 큰물로 나가서 놀자는 간절함은 책상 위에 ‘사랑, 추억, 희망, 성공’을 새기고는 뭍을 향해 떠난다. 어쩌면 그 가출은, 모든 소년의 가출이 그렇듯이, 실패로 예정되어 있다. 모든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듯이 말이다. 그러나 또 모든 소년들은, 실제든 상상이든, 첫사랑과 같이, 가출과 함께 자라는 것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