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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따뜻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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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유년시절도 작가의 유년시절처럼 풍족이란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서 좋았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름다운 자연속에서 살았기 때문인 듯 하다. 게다가 연재처럼 그렇게 일에 시달리지도 않았다. 내가 막내였던 탓일 것이다. 우리 큰언니만 해도 아기인 동생들 돌보느라 학교를 9살에 들어갔고 바쁜 농번기 철에는 학교를 부지기수로 빠졌다고 하니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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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유년시절도 작가의 유년시절처럼 풍족이란 단어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서 좋았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름다운 자연속에서 살았기 때문인 듯 하다. 게다가 연재처럼 그렇게 일에 시달리지도 않았다. 내가 막내였던 탓일 것이다. 우리 큰언니만 해도 아기인 동생들 돌보느라 학교를 9살에 들어갔고 바쁜 농번기 철에는 학교를 부지기수로 빠졌다고 하니까.

가난했지만 즐겁게 놀았다. 게다가 다행히 작은 농토라도 있어 굶지는 않았다. 다들 나처럼 가난했던 우리 학교 아이들도 굶고 다니는 아이들은 없었다.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란 크레파스, 운동화, 새옷 만으로 구별될 뿐이었다. 이런 아이들은 반에 2~3명 정도였으니 시샘할 이유도 없었다. 우린 다같이 가난했고 다같이 먼지 풀풀 날리는 신작로에서 뛰어놀았다.

쉽게 읽히진 않는다. 도심 변두리 아이들이 얼마나 거친지 나처럼 싸움과 거리가 먼 사람은 살기 힘들었겠다 싶다. 외톨이가 될 수 밖에 없을 것 같았다. 연재나 오빠 연후는 강하다. 아니 강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으니까 강해졌다. 연재는 자신과 비슷한 외톨이들에게 강한 연민을 갖고 있다. 부모들은 살아남기 위해 기를 쓰고 일한다. 70년대에 살아남으려면 죽어라 일할 수 밖에 없었다. 일하느라 지친 부모는 아이에게 살갑게 대하질 못한다. 아이들을 위해 일하지만 너무 힘들어 그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것이다.

책에는 버려진 아이가 나온다. 쓰레기 장에서 감촉으로만 느낀 갓난 아기, 과수원 두엄더미에서 발견한 아이는 환상도 현실도 아닌 것처럼 보이나 연재에게는 실재다. 연재는 두렵다. 오빠가 다른 집에 입양이란 걸 갈까봐, 동생 연미의 불룩한 배가, 풍을 맞아 얼굴이 돌아간 아빠가 떠날 까봐 두렵다. 무엇보다 연재는 자신이 버려질까봐 두려워한다. 이건 아름다운게 아니다. 사전, 사인펜, 크레파스, 말못하는 아이가 준 썩어가기 시작하는 사과, 병직이 삼촌이 선물해 준 책가방이 있어도 아름답지가 않다.

분명 잘 쓴 책이다. 연재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고 느끼게 된다. 아이들에게 집은 따뜻해야 한다는 걸 말하고 있다. 그 집이 초가집이든 방 한칸의 좁은 곳이든 간에 집은 따뜻해야 한다. 물리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따뜻함은 참으로 집이란 것의 기본이다. 꺽다리 집엔 차가운 바람만 가득했다. 연재 마음도 그랬다. 숙이네로 들어간 연재네 가족에게 다행히 따스함이 비춘다. 청소년 책으로 나왔는데 요즘 아이들은 어떻게 읽을지 참 궁금하다.



n****5 2011.03.21. 신고 공감 1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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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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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황선미하면 먼저 떠오르는 책이 바로 [마당을 나온 암탉]이었다. 이 책은 한번 읽는것에서 벗어나 소유하고 싶은 책으로 읽을때마다 또 다른 감동을 안겨주곤 했었다. 그렇기에 신작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았을때 작가를 믿고 쉽게 선택할수 있었다. 사계절에서 출간된 청소년 소설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과 [열 여섯살 베이비시터]라는 책을 딸을 위해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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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황선미하면 먼저 떠오르는 책이 바로 [마당을 나온 암탉]이었다. 이 책은 한번 읽는것에서 벗어나 소유하고 싶은 책으로 읽을때마다 또 다른 감동을 안겨주곤 했었다. 그렇기에 신작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았을때 작가를 믿고 쉽게 선택할수 있었다. 사계절에서 출간된 청소년 소설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열 여섯살 베이비시터]라는 책을 딸을 위해 구입했다.

[열 여섯살 베이비시터]가 열 여섯살 나이에 컴퓨터를 사기위해 베이비시터라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청소년의 이야기라면,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은 열 한 살 소녀 연재가 닭장처럼 작은 판자집에서 온가족이 모여살며 어린시절의 유복했던 환경을 그리는 소녀가 현실에 적응하며 서장해가는 소설이다. 특히 이 책이 저자 황선미의 자전적인 소설이라는 점에서 더욱 친근하게 다가왔다. 닭장에서 알을 낳는 일을 하던 암탉 잎싹이 자유를 찾아 닭장을 탈출, 험난한 들판으로 갔을때 그리고 버려진 오리알을 품어 깨어나게 했을때 보여준 모성본능에 반해버렸다.

맏딸이라는 죄 아닌 죄로 지난주에 급작스레 출산한 여동생을 위해 일주일간 병원에서 산모도우미와 베이비시터를 하고온 나에게 이 책의 주인공인 조연재의 이야기가 남일처럼 여겨지지는 않았다. 특히 하나뿐인 내 딸이 나와 병원에서 새우잠을 잘때 서럽기까지 했다. 시골에 살지만 부유했던 연재네 집은 잘못된 빗보증으로 동네에서 쫓겨나다시피하며 경기도 평택의 작은 마을 객사리로 이사온다. 객사리로 이사는 왔지만 먼저 이사와 선점한 외숙모네 가족들이 그들을 객식구처럼 대하기는 것이나 살던 아이들이 그들을 대하는 모습이나 연재네 아이들이 겉도는 모습에서 그들의 불행이 느껴졌다.

여기서 말하는 [꺽다리 집]은 좁은 판자집을 말한다.  어려운 삶을 더욱 고되게 만드는 것이 있었으니 앙숙이었던 재숙과 한집에서 살며 사사건건 부딕히는 일이었다. 모든 일들이 열 한 살 소녀 연재가 겪어내기에는  힘든 일들 뿐이었다. 풍을 맞아 입이 돌아간 아버지를 위해 벼락맞은 대추나무를 구하러 다니는 연재, 온동네를 돌아다니다 집으로 돌아왔을때 오빠 연후의 비명에 가까운 울부짖음이 연재를 맞이했다. 연재네는 오빠 연후, 여동생 연경, 연미그리고 막내등 오남매와 부모님까지 일곱식구다. 

내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만드는 연재, 열 한 살 소녀 연재는 아직 어린 동생들을 챙기며 앙숙인 재숙과도 아웅다웅 다투며 맏언니로서의 역활을 해나간다. 앙숙이던 재숙이와 과수원에서의 일로 조금은 친해졌을때, 아버지가 풍을 맞아 입이 돌아갔을때 친구들과  벼락맞은 대추나무를 구하러 돌아다녀주기도 했다. 열두살 나이에 막내동생을 돌봐야만 했던 나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그리고 지금 그 어리던 동생이 아기를 낳아서 일주일간 병원에서 살며 산모와 아이를 돌보다 오늘에야 집에 돌아올수 있었다. 그것이 맏이 언니로서의 의무였나 보다. 이제는 연재네 가족들이 조금은 더 편안해졌으면 좋겠다.

"날더러 어쩌라고! 이렇게 사는 거 정말 싫어! 지긋지긋해! 어른이 뭐 이따위냐고. 외삼촌이고 뭐고, 최소한 우리한테 사과라도 해야 할 거 아냐!" (p. 171) 

s*******1 2011.01.2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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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함께 꿈꾸는 공간,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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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어린이표>,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이미 우리에게 친숙한 황선미 작가의 청소년을 위한 소설<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을 읽으며 떠오른 이야기속 풍경과 나의 어린시절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잘 살아 보자고 팔을 걷어 부치고 너도나도 새마을 운동에 동참하자던 경제계발에 열을 올리던 모습이 마치 그당시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듯 선명하게 떠오른다.    식구는 많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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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쁜 어린이표>,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이미 우리에게 친숙한 황선미 작가의 청소년을 위한 소설<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을 읽으며 떠오른 이야기속 풍경과 나의 어린시절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잘 살아 보자고 팔을 걷어 부치고 너도나도 새마을 운동에 동참하자던 경제계발에 열을 올리던 모습이 마치 그당시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듯 선명하게 떠오른다. 

 

식구는 많고 집안은 가난해 겨우 방 한칸 얻어 더부살이하던 친구가 자연스레 셍각난다. 그 친군 밀린 육성회비 때문에 선생님께 꾸중 들어도 늘 씩씩했고, 가난해서 엄마가 학교에 한번도 찾아오지 못해도 전교 일등을 도맡아하는 똑똑한 오빠를 둔걸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공부할 시간도 없었고 놀고 싶어도 집안일과 동생들 때문에 재미난 놀이도 포기할 줄 아는 착한 아이였는데 무엇 때문인지 지금은 기억조차 나질 않지만 말다툼 끝에 미안하단 말 한마디도, 잘가란 인사도 못하고 헤어지게 되었다.

 

작가의 유년시절이 그녀의 글의 자양분이 되었다며 쓴 자신의 어릴적 이야기가 담긴 자전적 이야기여서 일까, 글귀마다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든다. 소설은 열한살 소녀 연재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그리고 있다. 70년대 경기도 평택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시대의 아픔과 산업화로 인한 변화의 물결, 그와중에 집과 가족의 의미를 되묻고 있다.

  

외삼촌의 빚보증으로 인해 고향을 등지고 떠나올 수 밖에 없었던 연재네는 평택에서 단칸방 객사리를 살게 된다. 생선 행상을 나가는 엄마와 막일꾼으로 일자리를 찾아 전국을 떠도는 아버지, 잘생기고 공부 잘하는 오빠와 밑으로 여동생 셋이 있는 연재는 맏딸이기에 어린 나이에도 집안 살림을 맡아하며 젖먹이 막내를 돌봐야만 한다. 가족의 형편은 좀처럼 나아지안아 동갑내기 외사촌 재순이가 사는 외숙모네 다 쓰러져가는 초가의 방 한 칸을 겨우 얻어 이사하게 된다. 재순이의 텃새와 이웃 아이들이 따돌림으로 외톨이가 된 연재는 고향이 그립고 이런 상황을 만든 부모님이 그져 원망스럽기만하다.

 

새마을 운동이 무엇인지는 잘 몰라도 마을 길도 넓히고, 화투와 지게, 초가지붕 없애기 등 잘 살기위한 운동이라는 군수님의 말씀을 듣고 노래기가 줄줄 내려오고 비도 새는 집을 번듯한 집으로 바꿔 주겠다니 집주인보다 친척보다 더 좋은 사람임에 분명하다고 굳게 믿는다. 하지만 하굣길에 불타고 있는 자기네집 초가지붕을 보게된 연재는 번듯한 초가집과 바뀌기능 커녕 하루 아침에 비 오면 비를 피하고, 식구들의 물건을 들여놓고, 추운 밤에 다 같이 잠드는 집을 잃게 되었음을 알게된다.

친구들 집은 그대로인데 초가집인 연재네 집만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해버린 것이다.

 

목수인 외삼촌이 반나절 만에 엉성하게나마 처마를 잇대어 판잣집 하나를 뚝딱 만들어 연재네와 재순네 임시 살 곳을 만들지만 도랑 때문에 각목으로 받쳐놓아 키만 껑충하니 큰 게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꺽다리 집'은 위태롭기만 하다. 언제 쓰러질지 모르게 바람에 떠는 그 집은 연재네 가족과도 같다. 겨우 판자로 가린 공간은 불어오는 바람에 오히려 더 춥기만 하다. 그래서 가족들은 어두운 밤, 각자 잘 곳을 찾아 뿔뿔이 흝어져야만 했다. 낮에 흩어졌다가도 밤이면 한집에서 모여 자는 게 가족인데 연재네 식구에게는 그것마저도 허용되지 않았다.

조국 근대화의 원대한 꿈 앞에 덩그만히 남은 초라한 꺽다리 집과 추운 밤에 잠자리에서 쫓겨난 가족을 보며 연재는 조국 근대화를 이룩하려면 초가지붕을 개량해야 한다던 높은 분들이 말이 도대체 무엇인지 그들과 근대화에 분노한다.  

꺽다리 집은 늘 춥기만하다. 낮이고 밤이고 따뜻한 적이 없어서 도무지 집 같지 않다. 집요하게 스며드는 바람 때문에 온 가족이 웅크린 채 불안한 꿈을 꾸며 뒤척이는 집. 천막을 덧댄 몸뚱이를 떠받치기에는 가느다란 각목이 위태롭기만하다. 예전의 상냥하던 엄마의 모습도, 마을 잔칫날이면 맨 앞에서 꽹과리 치고, 노래 잘 부르던 아버지도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의 기억과 함께 멀어져 가고 연재네 가족의 뿌리마저 흔들어 놓는다.

 

따돌림과 멸시, 부당한 현실에 늘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기만하던 연재는 소풍날 그린 그림으로 받은 열두 가지색 사인펜으로 아이들에게 인형 그려주며 그들과 어울리게 된다. 처음으로 자신이 가질 수 없었던 것들을 손에 쥐게 된 기분을 느끼는 연재를 보며 가슴이 저릿해져 온다. 작은 것 하나에도 기뻐하던 예전의 모습이 그리워진다.

 

하지만 찬곳에서 주무시던 아버지의 입이 돌아가 발음도 어눌해지고 일조차 나갈수 없게 된다. 연재와 오빠는 아버지를 위해 벼락 맞은 대추나무 가지를 구하러 온 동네를 돌아다니고, 자신을 구박하고 앙숙이던 재순이를 비롯한 마을 아이들도 연재를 돕기위해 벼락 맞은 대추나무 가지를 구하러 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빠 친구의 도움으로 아버지는 치료를 받게 되고, 오빠를 양자 보내라고 했던 숙이네의 도움으로 임시로나마 연재네는 따뜻한 잠자리를 갖게된다.

 

고향을 떠나옴으로 집을 잃고 변해 버린 식구들의 모습과 부당한 현실은 비단 연재네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경제적인 이유로 하루아침에 집을 잃고, 가족이 해체되는 위기를 겪는 사람들이 단지 과거의 일일까. 오히려 요즘은 경제적인 문제보다 가족간의 대화의 부재가 더 심각한 가족의 와해 불러 일으킨다. 문제는 집이 아니란 생각이든다. 요즘은 가족수는 줄었어도 큰집에 사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각자의 방을 갖게 되었지만 방 한칸에 온가족이 한 이불을 덮고 자던 예전의 살가움은 덜하다. 먹고 쉬고 놀고 부데끼며 사랑하는 온 가족이 꿈꾸던 집, 사랑하는 가족들이 함께라야 비로소 집은 살아있는 공간이 된다. 집은 가족이 있어 모든 걸 다독여주고 보듬어주며 지친 심신이 쉴 공간이자 내일을 살아갈 힘이 되어준다. 개발과 산업화로 점점 횡폐해져가는 삶속에 이 책은 가족의 의미와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정을 되돌아 보게 만든다. 아름답고 커다란 집을 꿈꾸기보단 따뜻함과 위로가 있는집, 서로를 위하는 가족과 좋은 꿈을 꾸며 살면 집이야 넓지 않은들 어떠리...

k******2 2011.01.30. 신고 공감 1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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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름답고 쓸쓸한 기억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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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이 절대 명제였던 시절,  춥고 배고팠던 시절을 아는가. 공장굴뚝의 시커먼 연기가 앞으로 다가올 보랏빛 미래를 상징하고, 아무리 열악한 노동환경이라도 참고 견디어야만 생존할 수 있었던 시절, 전체의 그림판위에 개인이 말살되어버리고, 해서 나보다는 우리가 더 우선이던 시절, 희생은 당연하게 느껴야 하고 있는 것, 가진 것보단 없는 것이 더 친숙했던 그 시절 말이다. 어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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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이 절대 명제였던 시절,  춥고 배고팠던 시절을 아는가. 공장굴뚝의 시커먼 연기가 앞으로 다가올 보랏빛 미래를 상징하고, 아무리 열악한 노동환경이라도 참고 견디어야만 생존할 수 있었던 시절, 전체의 그림판위에 개인이 말살되어버리고, 해서 나보다는 우리가 더 우선이던 시절, 희생은 당연하게 느껴야 하고 있는 것, 가진 것보단 없는 것이 더 친숙했던 그 시절 말이다. 어쩌면 개발이라는 명제 아래 박탈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마음과 몸 속에 스며들어야 했던 그 암울한 시절, 이 소설은 그때의 그 이야기이다. 그것도 의무만 있고 권리따위는 있을리 없던 열한살 소녀의 이야기이다.

기쁨보다는 슬픔을 먼저 알아야 했으며, 가진 것 얼마 없고, 그나마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것들을 소중히 간직해야 했다. 내편이어서 나를 알아주는 이 하나 없는 서러움을 아는가. 행복은 차라리 사치이어서, 어서 이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만이 전부인 절실함을 알 수 있겠는가. 도무지 실체를 알수 없는 괴물같은 것과 상대해야 하고, 그럼에도 그것을 이겨내야 한다는 여리고 순수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작가 황선미의 글은 지나치리만큼 때론 거칠고, 솔직하며 따라서 수식이 없다. 그 나이 또래의 감정을 세심하고도 따뜻하게 그려낸다. 하긴 그 나이에 무슨 수식이나 가식이 있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책을 읽어 나가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내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바로 끄집어 내는 흡인력이다. 어느새 세상에 눈을 떠 혼탁함을 당연시 하는, 그래서 조금은 후회스러운 내 인생에 이 책은 어느새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준다.

청소년 소설이라지만, 오히려 그런 청소년을 아들딸로 둔 부모가 읽으면 더 좋을 책이다. 아름다운 추억은 내 삶을 더욱더 풍요롭게 승화시켜준다. 지금이 어떤 상황이든 지난일을 들추어내며 한 모금 미소를 머금을 수 있다면 그래도 행복한 거다. 이 책의 저자도 아마도 그런 생각으로 이 슬픈 이야기를 만들며 행복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작가 황선미는 이 이야기를 써서 행복해야 마땅하다. 아름답지만 쓸쓸한 추억들, 살아가면서 느껴야 했던 소중한 것들을 이 책에서 확인해 볼 것이다.

YES마니아 : 골드 d******2 2011.04.08.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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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살기 어렵다고 말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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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도 더 된 오래된 책을 찾았다. 도서관 직원에게 부탁했다. 도서관 서고에서 찾아 주셨다. 아무나 출입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오래된 책을 보관하고 있는 곳인 것 같다. 오래되었다는 기준은 잘 모르겠다. 서고에 고이 잠들고 있는 책들 '서고 붙임 딱지'가 붙어 있다. 누가 봐도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명이 다하기 전에 읽고 싶었다. 폐기되는 절차를 밟기 전에.최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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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도 더 된 오래된 책을 찾았다. 도서관 직원에게 부탁했다. 도서관 서고에서 찾아 주셨다. 아무나 출입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오래된 책을 보관하고 있는 곳인 것 같다. 오래되었다는 기준은 잘 모르겠다. 서고에 고이 잠들고 있는 책들 '서고 붙임 딱지'가 붙어 있다. 누가 봐도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명이 다하기 전에 읽고 싶었다. 폐기되는 절차를 밟기 전에.

최근에 우연찮게 황선미 작가의 『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를 만났다. 그 이후에 황선미 작가의 책들을 찾아내 읽고 있다. 이번에 어렵게 만난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도 어른이 읽는 장편소설이다. 작가의 자서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참 어렵게 어린 시절을 보내신 것 같다. 

읽는 내내 나도 어릴 적 시절이 생각났다.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집에 살았었다. 연탄 한 장이 없어 차가운 겨울에 이불에 의지해서 지냈다. 찬 밥에 물을 말아 식사를 대신했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배불리 먹이지 못한 어머니는 일흔이 넘은 연세에도 그때 그 시절을 상기하며 안타까워하신다. 그때 잘 못 먹여서 삐쩍 말랐다고 미안해하신다. 사실 그때 그 시절에는 우리 집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 그렇게 살았다. 다만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던 우리 집은 더 가난했다. 
바람이 지나갈 정도로 엉성하게 지은 집을 꺽다리 집이라고 부른 것 같다. 초가집이 강제로 철거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판자때기로 지은 꺽다리 집에서 육 남매를 키워야 했던 부모의 심정은 어땠을까. 

춥고 배고팠던 시절을 다시 생각해 보는 소설이다. 애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추억이지만 소설을 읽으며 생생하게 장면 장면들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소설의 힘이다. 뜨거운 무언가가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온다. 메말랐던 감정이 촉촉해진다. 

요즘 살기 어렵다고 말하지만 그때 그 시절과 비교하면 참 부유하고 편안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소설이 말한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꺽다리 집보다 백배 천배 좋은 집이라고. 
이달의 사락 c*******9 2024.12.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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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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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 황선미 지음 사계절    돈을 벌어다 주던 아빠가 오랫동안 오지 않아 외숙모집으로 이사가게 된 연재네 가족. 그러나 연재는 자신을 이유없이 미워하는 재순이 때문에 항상 외톨이로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공부를 잘하는 우등생 오빠 연후가 웅변대회에서 군수상을 받는다. 연재는 모든 집 지붕을 철제지붕으로 고칠거라는 면장의 말을 듣고 기뻐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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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

황선미 지음

사계절

 

 돈을 벌어다 주던 아빠가 오랫동안 오지 않아 외숙모집으로 이사가게 된 연재네 가족.

그러나 연재는 자신을 이유없이 미워하는 재순이 때문에 항상 외톨이로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공부를 잘하는 우등생 오빠 연후가 웅변대회에서 군수상을 받는다. 연재는 모든 집 지붕을 철제지붕으로 고칠거라는 면장의 말을 듣고 기뻐하지만 고치기 위해 초가집들을 모두 불태워버리자 연재는 소녀들이 원하는 것은 발전, 개발이 아닌 가족들이 함께 살 집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소풍날이 되어 재순이와 아이들, 그리고 반장이 오빠는 소풍을 가지만 연재는 맏언니라는 이유로 집에서 애들을 돌봐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그러다가 마법같이 막내 삼촌이 나타나고 연재는 소풍에 참가는 못하지만 삼촌이 준 돈으로 산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려 상을 사인펜을 받는다. 그 후로 연재는 사인펜으로 옷을 그려주면서 인형놀이를 만들어서 인기를 얻지만 재순이는 점점 외로워짐을 느낀다.

말싸움을 하다가 연재는 재순이가 자신의 스웨터 끈을 뺏어간 걸 느끼고 달려가지만, 무언가에 걸려 넘어져 정신을 잃고, 그 때 연재는 시체를 본다.

다시 깨어난 연재는 자신에게 죽지 말라고 소리친 사람이 바로 재순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재순이와 화해하게 된다.

이 책은 연재네 가족이 숙이네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마무리된다.

처음 읽을 때는 재미없고 지루해서 끊겼는데 , 다시 맘먹고 읽다보니 재미있어서 결국 끝까지 다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감정이입이 되고 소설 안에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다.

'마당을 나온 암탉'을 쓴 황선미 작가가 쓴 책이라 기대를 많이 했는데 청소년 소설이라기 보다는 동화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그리고 성장소설이라기 보다는 작가의 생각을 담은, 자전적인 소설인 듯하다.

2011.10.26. 이지우(중1)

 

i***2 2011.10.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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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지울 수 없는 기억,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
"유년의 지울 수 없는 기억,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 내용보기
소설 아닌 인생이 있을까.뒤돌아 보면 나의 인생도 그리고 다른 이의 인생도 모두가 소설속 한 부분처럼 여기지는 삶들이다. 이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는데 빚 때문에 고향을 떠나 평택의 작은 객사리라는 마을에 정착하여 외갓집 식구들과 함께 하며 받는 설음과 그 속에 섞이고 싶으면서도 섞이지 못하고 겉돌듯 하는 삶 속에서 그 힘든 시간을 이겨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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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아닌 인생이 있을까.뒤돌아 보면 나의 인생도 그리고 다른 이의 인생도 모두가 소설속 한 부분처럼 여기지는 삶들이다. 이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는데 빚 때문에 고향을 떠나 평택의 작은 객사리라는 마을에 정착하여 외갓집 식구들과 함께 하며 받는 설음과 그 속에 섞이고 싶으면서도 섞이지 못하고 겉돌듯 하는 삶 속에서 그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게 한것은 다름아닌 '가족' 이라는 울타리,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판자집인 꺽다리집이지만 그래도 가족이 함께 했으므로 그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본다.

작가의 다른 소설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고 너무 좋았다. 시골에서 자라서일까 공감대가 같고 비슷한 시기를 거쳤기에 그 부분 또한 내 이야기와 비슷한 것을 느끼면서 어쩌면 카타르시스를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뒤돌아보지 않고 이 책을 얼른 집어들게 되었다. 후회없이. 아픔도 가난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가족이 함께 함으로 하여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고향에서 부유하게 살았지만 빚으로 모든 것을 거덜내고 외삼촌집에서 함께 살게 되었지만 아버지는 한 달에 한번 집에 올까말까,왜 아버지는 이 상황을 함께 이겨내려하지 않고 집에도 오지 않은 것일까.고향을 떠난 후로 엄마는 억척이 되었다. 시장에서 행상을 하며 살림을 꾸려 나가는 엄마,그대신 집안 일은 맏딸인 내 몫이다. 열 한살인 내가 이 상황을 이겨내기는 버겁기도 하지만 위로 세살 많은 오빠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자신을 총명하다고 알아주는 삼촌이 있기에 그나마 삶의 희망이다.

그래도 가난은 벗어날 수 없는 힘겨운 터널,아무리 엄마가 시장에서 행상을 해도 아버지가 와서 함께 생활을 해 나가도 가난은 벗어날 수 없는 무거운 멍에처럼 가족을 둘러싸고 놓아주지 않는다. 자신의 집도 아니면서 이모할머니의 집을 자신의 집인양 기세등등하게 자신을 골려 먹는 재순이와 그외 친구들과 함께 하고 싶지만 늘 외톨이처럼 지내면서도 맏딸로서의 일은 늘 듬직하게 해내는 열 한살 소녀 연재의 삶은 가난해도 오빠를 남의 집에 주지 않아서 돈을 조금밖에 벌지 못해도 아버지가 함께 해서 행복하다. 그 힘든 시간에 아버지마져 없었다면 어떠했을까. 하지만 그런 아버지는 벌이도 시원찮은데 추운데서 자다가 입이 돌아가기까지 한다. 그런 가운데 '벼락맞은 대추나무' 효험이 있다하여 오빠와 연재는 벼락맞은 대추나무를 구하러 다니는데 자신을 미워하기만 한다고 생각한 재순이마져 구하러 다니고 있지 않은가.

70년대를 살아 온 사람들은 낯익은 새마을사업이며 초가집등 공감하는 부분이 많겠지만 지금시대의 아이들에겐 낯선 시대가 아닐까 한다. 나 또한 그시대를 거쳐왔고 그런 비슷한 삶도 살았기 때문에 내 유년시절이 많이 녹아 나 있는 듯하여 많은 부분을 공감하며 읽었는데 과연 지금 시대의 아이들은 그 시대를 알까? 아니 이해나 할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집이 없어 남의 집을 전전하며 함께 공동우물을 쓰고 연탄난로를 사용하고 맏이는 부모님이 일을 나가면 밑의 아이들을 부모 대신하여 거두느라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는 그런 일을 이해나 할까.집이 없어 남의 집 처마밑에 서로 색이 다른 판자를 이어 붙여 엉기설기 판자집을 지어 살지만 겨울에는 그마져도 바람 손님이 한자리를 차지하여 입이 돌아갈 정도의 추위와 싸워야 했다면.

비록 빚잔치로 모든 것을 빼앗기고 남의 집에서 단칸방에서 옹기종기 모여 살지만 집안의 대들보는 열 세살인 의젓한 오빠다. 학교에서도 군수님의 상을 탈 정도로 든든한 엄마의 기둥인 오빠,그런 오빠를 남의 집에 주어야 할 정도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결코 가족을 흩트러지지 않게 하는 엄마의 강단함이 맏이인 연재에게도 전해진 듯 하다. 고향에서는 순했던 그녀가 환경이 바뀌면서 앙칼진 재순이에게도 덤벼서 결코 지지 않는 싸움꾼이 되기도 하고 외톨이에서 점점 친구들과 어울릴 줄도 알면서도 아버지를 위해 혹은 엄마와 가족을 위해 한 몸을 바치듯 제대로 한 몫을 해내는 것을 보면서 그런 삶에서도 삐뚫어지지 않고 강단한 삶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유년의 기억들이 영양분이 되어 지금의 그녀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해주지 않았을까.

아픔이 아픔에서 끝나지 않고 다시 꺼내어 보면 가슴 시리면서도 연탄난로의 온기처럼 '따듯함' 이 살아 있는 것은 모두가 함께 이겨내고자 했던 의지가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내 어린시절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지난 기억과 추억속에 폭 안겨 볼 수 있었던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시절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시절 그 온정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지금의 가족과는 너무도 다른 가족의 풍경이기도 하다. 지금 가족이란 어쩌면 자신의 공간에서 자신의 영역을 차지하고 홀로 시간을 나누지 가족이 모두 함께 하며 따듯한 정을 나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 옛날에는 작은 방에서 한가족 모두다 모여 옹기종기 한이불 아래 살을 부비며 정을 나누고 그렇게 서로를 살뜰히 챙기기도 했다. 그런 시간이 때론 그립기도 하다. 넘쳐나고 배불렀다면 기억에 오래도록 남았을까? 부족하고 모자랐기에 서로를 챙길 수 있었고 나눌 수 있었으며 집의 소중함과 가족의 소중함을 깨우칠 수 있는 시간이 되었기에 가슴이 아리자만 아름다운 시간이 되지 않았나싶다.



y******2 2011.10.1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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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책의 신화를 이뤄낸 황선미 작가의 청소년소설이다.개혁의 70년대를 10대에 보낸 연재가 가난과 역경속에서도 꿈과 가족의 사랑으로 성장해가는 가슴 따뜻한 성장소설이다.책이름이 머리에 기억이 나질 않아 읽으면서 몇번이나 책표지를 다시 봐야만 했다.이건 무슨 뜻일까.. 꺽다리 집은 도대체 어떻게 생긴걸까...표지에 작게 오두막 비슷하게 그려진 집이 있다.땅에서도 조금 띄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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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책의 신화를 이뤄낸 황선미 작가의 청소년소설이다.
개혁의 70년대를 10대에 보낸 연재가 가난과 역경속에서도 꿈과 가족의 사랑으로 성장해가는 가슴 따뜻한 성장소설이다.
책이름이 머리에 기억이 나질 않아 읽으면서 몇번이나 책표지를 다시 봐야만 했다.
이건 무슨 뜻일까.. 꺽다리 집은 도대체 어떻게 생긴걸까...
표지에 작게 오두막 비슷하게 그려진 집이 있다.
땅에서도 조금 띄워져 있고 오두막도 아니고 언뜻보면 물위의 집같아 보이기도 하고 나무위에 지어진 것도 아닌 그러나 그런것들과 아주 비슷하게 생긴 집이다.
이것이 꺽다리 집이다.
시멘트나 흙으로 만들어져야 할 벽이 판자데기로 데어지니 바람이 숭숭 잘도 들어온다.
사람보다 먼저와서 기다리고 꾸역꾸역 이 집에 들어오려 한다.
그러니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일 수 밖에..

화자(주인공 연재)는 어린 소녀이다. 열한두살 쯤 된 어린 소녀.
외삼촌의 보증을 잘못 서주는 바람에 커다란 고향집을 잃게 되고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에 살게 된다.
하지만 그마저도 새마을 운동이니 초가지붕없애기운동이니 마을 길 넓히기 운동이 뭐니 하는 것들에 의하여 그나마 따뜻하고 아늑했던 집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만다.
(낡은 것을 버리고 새것만 좋아하고 자꾸만 새롭게 정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때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도시 미관을 좋게 하기 위해서라면 낡고 오래된 것들은 빨리 사라져야지..라는 생각을 해본적도 있다.
아주 철없던 시절 이야기다. 낡은 것을 없애려고 할 때 그 속에 그공간에 사람이 있다는 건 자꾸만 잊어버리는 것 같다.
지금도 철거니 뭐니 하면서 다툼이 일어나는걸 볼때면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다. 도대체 어디로 가란 말인지...)
이런 이유로 연재네는 판자로 대충 만든 꺽다리 집에서 살게 된다.
열심히 살아도 어렵고 힘든상황은 점점 더 안좋아진다.
하지만 시련은 사람을 키우게 마련이다. 고향의 좋은 집에서 등따시고 배부르게만 살았다면 우리는 지금의 황선미작가로 만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성공한 사람의 뒤에는 늘 시련이 따르고 그 시련이 사람을 악에 받치고 열심을 다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그런 힘든 상황에 처해있지 않았던들 연재의 엄마가 그렇게 독해질수도 없을것이고 연재의 마음이 그렇게 많은 걸 포용할만큼 커지지도 않았을거다. 
힘든 환경속에서 독하고 차갑게만 구는 엄마에게 원망도 하지만 연재는 똑똑한 아이여서 맏딸의 역할은 톡톡히 해나가며 가족을 크게 포용하고 사랑한다. 어린아이 답지 않은 연재의 모습에 안쓰럽기도 하고 안아주고 싶을만큼 큰 연민도 느껴진다.
다행인것은 온 가족이 더 잘살기 위해서 애쓰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여지고 좌절하거나 슬픔에만 빠져서 세월을 낭비하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고정월급조차 받지 못하는 아버지지만 그렇다고 좌절하여 술로만 세월을 보내는 것도 아니며 아버지 몫까지 하느라 더 독해진 엄마도 아이들에게 차가운 듯 대하지만 속깊은 정을 곳곳에서 드러내주고 이 가정을 흔들리지 않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큰오빠 연후가 있어 모두들 자기 자리에서 맡은 일에 더 최선을 다하는 것 같다.
힘든 환경탓에 너무 일찍 철이 든 연후와 연재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도 들지만 그런 시절을 보냈기에 멋진 성인으로 성장했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 마음한켠이 따뜻해진다.
황선미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요즘들어 작가는 어떤 유년시절을 보냈을까, 작가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학창시절을 보냈고 어떤 것을 좋아하던 아이였을까가 궁금했었다. 
내가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우연찮게도 그런 때에 이 책을 만났다.
황선미 작가의 유년시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가슴이 뭉클하고 감격스럽다.
멋지게 자라준 꺽다리 집의 연재에게 고마움마저 느낀다.

y*****6 2011.06.2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서글픈 상황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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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미 작가님의 책을 읽고 후회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초등학생들과 늘 함께하는 나의 직업상 아동문학을 많이 접하고 있지만 그 중 최고를 뽑으라면 늘 베스트 3안에 드는 마당을 나온 암탉의 작가. 그 분이 청소년 소설을 썼다는 이야기를 듣자 마자 바로 구매하게 되었다.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 제목부터 신선하다. 늦은 저녁 읽기 시작해 딱 스무장만 읽고 자려고 했는데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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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미 작가님의 책을 읽고 후회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초등학생들과 늘 함께하는 나의 직업상 아동문학을 많이 접하고 있지만 그 중 최고를 뽑으라면 늘 베스트 3안에 드는 마당을 나온 암탉의 작가. 그 분이 청소년 소설을 썼다는 이야기를 듣자 마자 바로 구매하게 되었다. '바람이 사는 꺽다리 집' 제목부터 신선하다. 늦은 저녁 읽기 시작해 딱 스무장만 읽고 자려고 했는데 어느덧 더 이상의 글이 쓰여져 있지 않음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책장을 덮게 한 그런 마력의 소설이었다. 역시 그녀였고 역시 그녀의 작품이었다. 20대 후반인 나 또한 여기에 나온 시대상은 읽어 알고, 들어 알고 있는 정도이다. 그럼에도 공감할 수 있고 느낄 수 있었던 건 군더더기 없이도 묘사할 건 다 해내는 작가의 마술이랄밖에.

 

소설을 읽으며 밑줄을 잘 긋지 않으려는 나이건만

너무도 참을 수 없음에 옮겨 적고 되뇌이는 아름다운 표현들...

허술한 집을 보며 아이들의 시선으로 '꺽다리 집'으로 표현해낸다.

서글프고 시리도록 아픈 환경이지만 아이들의 이 표현 하나로 서글픔은 유년의 아름다운 추억, 동화 속 나라처럼 느껴진다.

흔들리는 자신의 집을 보며 '집에도 뿌리가 있나 보다'라고 하는 연재.

매섭게 집 안으로 파고드는 바람에 가난한 가족이 웅크린 채 붙어 잠을 청하는데도 계속해서 불어닥치는 바람을 느끼며

'바람에게도 집이 필요한 가 보다'라고 생각하는 연재.

아~ 아이들은 흉내낼 수 없는 시인이 아니던가.

어느순간, 이 글이 작가가 아닌 어린 소녀 연재가 써 내려가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드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리라.

아이의 눈으로, 아이의 입을 통해 작가는 순수하리 만치 아름답게

어렵고 힘들고 서글픈 상황을 빛나게 그려나간다.

 

알수는 없지만 혼란한 상황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어느 하나 모자라지 않게, 유치하지 않게, 촘촘히 연결지어 가며

화해와 용서, 사랑으로 승화시켜 나가는 그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연재가 결코 애처롭지 않은 건,

훗날 연재가 성장한 후, 이 시절을 얼마나 소중히 추억할 지

알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동정이 가지고, 아타깝지도 않았다.

이러한 유년기를 보내는 연재가

얼마나 큰 거름을 흡수하고 있는지 나는 알 것 같기 때문이다.

 

황선미 작가...

다시 한 번 그녀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YES마니아 : 로얄 k*****7 2011.02.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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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사는 꺽다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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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사는 꺽다리집           중학교 3학년. 청소년기를 겪고 있는 딸아이가 있다.  책 읽기를 즐기는 편이지만, 유독 성장소설이나 청소년소설에 관심이 많은 것은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예전의 내가  살았던  청소년기와 너무도 다른 청소년기를 겪고 있는  지금 아이들의 속 내가 궁금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출간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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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사는 꺽다리집

 


 

 

    중학교 3학년. 청소년기를 겪고 있는 딸아이가 있다.  책 읽기를 즐기는 편이지만, 유독 성장소설이나 청소년소설에 관심이 많은 것은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예전의 내가  살았던  청소년기와 너무도 다른 청소년기를 겪고 있는  지금 아이들의 속 내가 궁금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출간된 청소년소설이나,  나름  여러 곳에서 필독서로 지정된  청소년소설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공감이 가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우선 국내 작가의 작품보다 대부분  번역작품이  많아  지금  우리나라 청소년기 아이들의 현실과 괴리감이 느껴지는 경우다.  아마 또래의 아이를 키우고 있지 않다면 쉽게 발견하지 힘든  부분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학교 교육의 시스템이 아이들  하루 하루의 일상에,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내용이  많아 이질감이 느껴졌다. 

 

    지금 아이들은 대학생이 되어  사춘기를 겪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참  자아를 고민할 청소년기에는 학교와 가정에서  입시로 짜여진  매일을 반복하면서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전혀 그 쪽으로 고민 할  시간을 갖지 못하다가 정작  대학생이 되어서야 힘든 사춘기를 겪는 다는 것이다.  많은 부분 걱정이 되면서 또한 공감할 수 밖에 없다.  지금 아이들에 비하면  오히려  이 책의 저자인 '황성미'님이나,  지금 중년에 접어든  내가  사춘기를 겪었던  그때가 자기 내면을 돌아보고,  고민과 방황의 시간을 통해  나를  발견하기에는 더  좋은 시절이었던 것 같다. 

 

    70년대말 80년대 초는 나에게도 사춘기를 겪는 시기였다.  <바람이 사는 꺽다리집>은  마흔 중반의 내게 그래서 너무도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글이었고,  과거로의 따뜻한 여행이었다.   작가가 쓴 첫 번째 청소년 소설이자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소설이라지만,  아마  그  또래에 청소년기를 겪은 대부분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작가의 말처럼 어쩌면 지금 아이들에게 너무  공감이 가지 않는, 어렵고  힘든 시절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성장했고,  지금 그렇게 성장해온 우리의 손에  청소년기의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들을 키우고 있는  부모세대의  삶을 아이들이 들여다보며 공감하기에 더 없이 좋은 글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의 부모는 정말 힘들게 우리를 길러냈고, 우리는 다시  그 나이의 부모가 되어 우리 아이들을 기르고 있다.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집,  판자를 여기저기 대충 붙여 만든 그런 집,  그래도  그 집에  가족이 모두 한 방에서 옹기종기 모여  서로를 걱정하고 안쓰러워하며  희망의 싹을 품어온  내 소중한 집이었던 것이다. 

 

'나는 남의 기와집 처마에 애걸하듯 매달인 판잣집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색이 다른 판자를 이리저리 이어 붙인 누더기 같은 집이 불쌍하고 그 속에서 밥 먹고 자는 식구들이 불쌍하고 판자집  밑에서 먼지바람을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있는 살림살이들이 불쌍하고 점점  더 처량해지는 나 자신이 불쌍했다. '( p. 100 )

 

' 세상에 하나뿐인 우리들의 집. 한낮에도 서리가 녹지 않고 어두워지면 식구들보다 바람이 먼저 스며들어와 웅크리는  집. 그래도 가끔 햇살에 반짝이는 서리가 눈부시게 예쁠 때 있고, 식구들이 모여서 밥도 먹고 어쩌다 웃기도 하는 집. ' ( p.177 )

 

    참 많이  풍요로운 세상이 되었다.  정말 살기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고, 마음껏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었고 가족 중에  몇 명은 다른 가족을 위해 희생해야 했던 그 시절.  바로 2~30년 전의 우리의 모습이다.  다시 그 시절이 그립고  아련하게 추억으로  떠오르는 것은  그래도 그 때는 지금보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따뜻한 가족들의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요즘 가정의 모습은 서로 각자의  다른 섬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가끔은 나 또한 공감하는 모습이다.  우리가  물질적으로 점점 풍요로워지는 사이에 우리에게 그 풍요로움 만큼 무엇인가 쑥 빠져나간 것 같은 기분은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지금 청소년기의 아이들의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공감하느냐의 문제보다,  우리  부모님이 이렇게 성장해왔음을  한 번  살짝이나마 들여다 보기에 더 할수 없이 좋은 책이다.  아이들 눈에 너무도 비참했을 것 같은 그때도 희망이 있었고, 웃음이 있었고, 따뜻한 배려와 사랑이 있었음을.

 

YES마니아 : 골드 n***r 2011.02.0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