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준비 찬양을 하시겠습니다... 다같이 묵도를 드리심으로 주일 예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땡땡!!” 이렇게 시작되어 그저 사회자의 인도에 따라 일어서고 앉기를 반복하며 형식적인 신앙고백과 교독문, 설교에 맞먹는 길이의 중언부언 대표기도, 그저 악보를 보며 음률을 맞추기에 바쁜 성가대의 무의미한 찬양, 설교 원고를 읽느라 바빠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기 보다는 설교원고를 전하느라 바쁜 설교자의 설교에 익숙해진 회중으로 십여 년이 넘는 신앙생활을 해온 나는 얼마 전부터인가 예배에 싫증이 났다. 예배 후 익숙한 교회 친구들과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잡담을 나누는 것으로 성도의 교제를 끝내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사는 삶의 주된 관심사도 전도나 새 신자에 대한 관심 보다는 세상 사람들이 주로 하는 똑같은 고민 속에 살아가는 삶에 익숙해지면 이건 살아있는 예배 후의 모습도 아니라는 문제의식이 더 강하게 마음을 때렸다. 그런 나에게 새로운 목마름이 생겼다. 가수면 상태 내지는 기계적이고 습관적인 움직임뿐인 예배 상태에 들어갔다가 성가대의 폐회송이 울려 퍼질 즈음에서야 맑은 정신으로 돌아와 예배당을 나서는 회중으로서의 생활을 오래 해왔던 나에게 참된 예배에 대한 갈망이 생긴 것이다. 그건 바로 살아있는 예배다. 교회에서 제출하는 연초 기도제목 란의 일 순위에 ‘참된 예배자로 살게 하소서’라고 적은지 어언 1년이 되어가는 2004년이 저물어 가는 시점에서 만난 귀한 만남이 한 선교사님과 Tommy Tenny의「다윗의 장막」과의 만남이었다. 예배의 본질에 대해 구약과 신약의 말씀들에 근거하고 자신의 철저한 경험을 곁들여 전하였던 그 선교사님의 열정적인 강의는 충격 그 자체였는데, Tommy Tenny의 이 책은 다시 한 번 그 충격이 무디어지지 않도록 또 다른 충격을 가하는 것 같았다. 예배의 본질에 대해 무척 섬세하고도 적나라하게 적어나갔기 때문에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질 정도였다. 예전의 추억이 살아있는 장소를 방문할 때의 감동을 예로 들면서, 하나님이 추억하실 만한 예배의 본질도 장소가 아니라 “사건”이라는 의미로 풀어나가고 있다. 하나님이 그리워하시는 예배처는 솔로몬의 화려한 성전이나 궁정도 아니고 외형은 특별하지 않았지만 열정적이고 친밀하며 지속적인 예배와 만남이 있었던 “다윗의 장막”이다. 그곳에는 당신의 자녀들을 하나님과 분리시켰던 모세 때의 휘장도 없었고 오로지 예배자들만이 존재했다. 하나님을 향해 손을 들고 그분의 임재를 바라고 그분의 영광을 보는 것이 가능했던 다윗의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승선에 이르기도 전에 멈춰 서거나 잘못된 결승선을 향하여 달려가는 경주자처럼 일시적인 하나님의 임재에 그치는 것으로 너무도 쉽게 만족하고 그저 열매 없는 좋은 예배, 부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읽는데 만족하는 모습, 과거의 만남들만 추억하는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그려갈 때는 내 모습이 투영되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부흥을 주시는 분” 대신 “부흥”이나 “축복” 자체에만 집착했던 나의 모습, 아무 수고와 땀도 댓가도 없이 불완전하고 인간적인 방법들과 의식이라는 그릇에 하나님의 영광을 함부로 담으려했던 헛된 노력들과 구경하는 예배들 대신 나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의 희생과 회개의 예배 가운데 값을 지불하고 땀을 흘리는 것임을 다윗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 예배에 대한 갈망 보다는 나의 모습이 벌거벗겨지는 듯한 부끄러움, 인생의 분주함과 안일함을 핑계로 하나님의 노크 소리를 여러 번 무시하고 무디어진 내 모습을 깨닫는 지금이 바로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일지도 모른다는 초조함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바로 지금 내가 있는 이 곳에서(‘그 곳’이 아니라 ‘이 곳’이 되는 길이 적용점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에게 계시하시고 매일 지속적으로 나와 교제하며 살아있는 의미로 모든 상황에 새롭게 거주하기 원하신다는 것은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하나님에 대해서 기억에 남는 사건들을 돌아보았다. 나의 고난과 슬픔, 인내 뒤에서 결국에는 좋은 결과들을 준비하셨던 그 분, 하나님의 생각이 나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결국 알게 하셨던 그 분...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았으면서도 지금 이 순간, 안개 속에 있는 것 같은 답답함에 한숨짓는 나에게 다시 한 번 손을 내미시는 손길이라 여겨진다. 그분이 가까이 오시는 것을 느끼고 마음의 문을 열고, 성령님의 방문(visitation)을 그분의 거주(habitation)로 바꾸기까지, 아니 평생을 계속해서 은혜의 보좌를 세우는 것이 바로 내가 할 일이다. 오직 경배와 사랑으로 주님을 붙들고 구하고 찬양하는 일만이 내가 할 일이다. 히지만, 역시 내가 그런 삶을 살기고 결심하고 노력할수록 장애와 시험 또한 나를 공격하는 것을 느낀다. 순간순간 맞이하게 되는 인생의 문제들에 감사함으로 바르게 반응함으로 예배의 날개를 펴려는 나를 쳐서 바른 위치에서 이탈하게 하려는 대적의 시험을 최근에 많이 느꼈다. 나의 마음과 생각을 뒤흔들어, 하나님 보다는 사람을 바라보고 조급하며 두려워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 순간에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을 위한 중보자가 되기보다는 오직 나의 감정과 이익을 위하는 이기주의자가 되곤 한다. 영적 전쟁에서 무기력해지는 순간이다. 그렇지만, 그런 영적 전쟁에서 지는 경험 또한 사용하셔서 나를 패배자로 좌절하게 하기 보다는 절름발이 야곱처럼 하나님이 원하실 만큼 온유해진 절름발이로 바꿔 가심을 믿는다. 물동이를 버려두고 달려갔던 우물가의 여인처럼 나의 물동이를 버리고 그분과의 진실한 만남을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집을 세우고 싶다. 그럴 때 비로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 오직 나만을 원하는 사람이 없니?“라고 물으시는 하나님이 나를 찾으실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깨어졌지만 하나님을 위해 예비된 그런 사람 말이다. 참된 예배자 되기를 꿈꾸는 나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올 해가 가기 전에 이 책을 통해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초대하시는 그분께 감사드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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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그 어느 것보다도 우선하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 그 분이 기뻐하시는 예배에 대해 전혀 감도 못잡고 있다.
수 많은 예배가 드려지고 있고, 또 물결처럼 들어왔다가 그렇게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빼먹었으면 찝찝했을 어떤 의식을 잘 치루었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좋은 찬양, 좋은 분위기, 거기다가 좋은 설교가 있었다면 그저 만족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분명 그 예배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 그분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했다. 아니 우리는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 예배 담당자들과 시간에 잘 맞추어 짜여진 순서들은 있지만 꼭 있어야 할 것, 하나님의 임재는 경험하기 어려운 예배. 우리 시대의 예배는 성전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와 같은 모습이다.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저희로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는 이를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암 9:11-12).
다윗의 장막에서는 어떤 예배가 드려졌던 것일까?
그분 자신이 다윗의 장막을 다시 일으키고 싶어하실 만큼, 무엇이 하나님을 그토록 기쁘고 흥분되게 했던 것일까?
저자는 그 곳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간절히 사모하며 그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분 자신이 정말 행복하다고 느끼실 만큼 좋았던 추억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끊임없이 하나님의 마음을 좇았고 하나님을 갈망했던 사람 “다윗”. 저자는 참된 예배자, 다윗의 중심에 있었던 그 열정(熱情)과 갈망(渴望)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그저 좋은 예배, 좋은 찬양, 좋은 설교를 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하나님 그 분을 만나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좋은 찬양, 좋은 설교가 있으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하나님의 임재란 그저 구약의 성막시대나 성전시대에만 있는 것으로 알았다. 우리는 이 시대에도 동일한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는 예배가 필요하며 또 그것을 경험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무지했었다.
“나는 아무 것도 변화되지 않은 채 집에 오는 것에 지쳤다. 춤추며 뛰며 돌아오는 것보다 하나님을 대면하고 절룩거리며 돌아오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나의 인생이 변화될 수 있다면 말이다.”
나도 그렇다.
나는 예배에 대한 리차드 포스터의 정의를 좋아한다.
“예배한다는 것은 진실을 체험하며 생명에 접촉하는 것이다.”
나는 진실을 체험하고 싶다. 그 생명에 접촉하고 싶다.
하나님은 이 책을 통해 나곤의 타작 마당에서처럼 이 시대의 예배를 흔드시고 있다. 음악이 초점이 아니다. 사람이 초점이 아니다. 설교도 초점이 될 수 없다. 그분은 말씀하신다. “너희가 예배하러 온다면 내가 초점이 되어야 하며 나와의 만남이 초점이 되어야 한다.”
오늘도 계속해서 나를 즐겁게 해 줄만 한 뭔가를 요구하는 그런 예배는 이제 그만 두자.
우리는 더 깨어질 필요가 있다. 더 회개할 필요가 있다. 보혈로 얼룩진 휘장을 지나 그 뒤에 계신 분을 만나도록 하자. 손쉬운 방법은 집어치우고 땀으로 범벅된 더 험난한 길을 사모하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게 되기를 희망한다. 우리가 속한 각 공동체에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며 그 임재를 갈망할 자들이 하나 둘 늘어갈 때 예배는 바뀔 것이다. 그 곳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집, 다윗의 장막이 될 것이다. 나는 토미 목사의 말을 믿고 싶다. 아니 이 마지막 시대에 그를 통해 애타게 말씀하셨던 하나님을...
“네가 세우면, 내가 오겠다”(If you build, I will come)
아멘! 주여, 우리의 예배 가운데 임하시옵소서! [인상깊은구절] “나는 아무 것도 변화되지 않은 채 집에 오는 것에 지쳤다. 춤추며 뛰며 돌아오는 것보다 하나님을 대면하고 절룩거리며 돌아오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나의 인생이 변화될 수 있다면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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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장막은 하나님이 다윗의 찬양을 기뻐하는 자유로운 예배의 모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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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해에 읽었던 책들은 대강 20권 정도 되지만 그 중에서 제일 인상깊고 좋았던 책을 꼽으라면 아마도 이 책이 아닌가 싶다. 기독교 관련 서적인 다윗의장막은 주변 지인을 통해 강제구입(?)했다 싶을 정도로 읽고 나누기 위해서 구입하라는 권유로 구입하게 되었다. 결국 그 나눔은 1장을 채 끝내기도 전에 무산되었지만 구매후 어찌됬든 값어치를 하겠다 싶어서 책을 잡게 되었다.
근데 처음에는 그냥 과거에 있었던 짧은 에피소드를 지루하게 말하기에 책장이 잘 넘어가질 않았다. 그러나 이 에피소드 후에 그 안에 참된 깨달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어가기 시작했고 모세의 장막과 솔로몬의 장막 그리고 다윗의 장막에 대한 작가로서의 설명과 하나님께서 이 세 장막 중에서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다윗의 장막을 다시 세우시고 싶다고 말씀하신 명확한 이유와 그 근거를 들기 시작했다.
다윗왕때에 제사장 및 유대인들은 언약궤를 지고서 몇날몇일을 쉬지않고 이동해서 힘들게 옮겼는데 옮기자마자 다윗은 이를 짊어지고 간 사람들에게 바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자하며 24시간365일을 교대하며 쉬지 않고 예배를 드렸다. 이러한 열정을 우리는 회복해야 하며 현대의 웅장한 기계음과 화려한 조명 및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다가 아님을 말하고 있다.
작가의 삶에서 느낀 주님의 음성과 깨달음, 철저히 성경에 나와있는 말씀들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써내려간 이 서적을 통해서 많은 전율과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음성들을 듣게 되어 너무너무 은혜롭고 감사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서적을 추천하고 싶고 설령 하나님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도 이 책을 읽게 된다면 하나님께 열정을 가지고 예배드리는 그리스도인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마음이 무뎌져 갈 때마다 각성제처럼 또는 산소공급기처럼 영혼이 호흡하고 숨쉴 필요가 있을 때 잡았으면 좋을 것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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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토미테니는 사도행전 15장을 16절을 읽으면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행 15: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하나님께서 다시금 새우기 원하시는 집을 모세의 장막이라고 하시지 않고, 다윗의 장막이라고 하셨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모세의 장막은 천상의 처소 중 이 땅에 만들어진 최초의 모델이다. 또한 솔로몬의 성전은 웅장하게 만들어진 화려하고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성전이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다시 짓기 원하신 성전은 다윗의 장막이라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불릴 정도로 끊임없이 하나님의 마음을 쫓는 사람이었다.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는 다윗의 결심은 그가 하나님의 임재를 향한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음을 보여준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머무르는 성전에서의 하루를 세상의 천일보다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시 84:10)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물론 시편 84편은 고라자손이 지은 시편이지만, 시편 84:10의 고백은 다윗이 드렸던 삶의 고백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구절이라고 생각된다.
바로 다윗 안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과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마음이 이 책에 담겨 있는 핵심이다. 책 장을 넘길 때마 토미테니의 탁월한 영적 통찰력과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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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품이 먼저 나오는 아침은 늘 바쁘다. 지하철역까지 가는 오르막길은 바쁜 나의 걸음을 힘들게 한다. 약간 땀이 나고, 깊은 숨이 나오면 직장에 도착한 것이다. 업무를 시작하기 위해 쉬지 않고 바로 옷을 갈아입는다. 챙겨먹지 못한 아침은 우유에 타먹는 생식이 대신하고 바쁜 일상이 본격적으로 다가 온다. 하루에 몇 십 명을 대해야 하는 나의 업무는 짜증과 피곤이 계속된다. 억지로 퇴근 시간을 맞춰서 저녁에 있는 약속을 지키고 모임에 나간다. 밤이 돼서야 도착한 아침의 그 집은 썰렁하다. 얼른 씻고 이불을 덮으면 갑자기 생각난다. " 아!! 하나님 , 아!! 기도 , 아!! 말씀 "
하나님을 믿고 따르고 닮기 원하는 나는 일상이 주는 피곤과 바쁜 계획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너무도 쉽게 잊는다. 물론 간혹 가다 한번씩 느껴지는 하나님의 임재하심, 이제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노라는 저번과 똑같은 다짐이 있다. 흥분과 간절함, 결단으로 이런 글을 쓴 적도 있다.
“ 겉으로 보여 지는 것들, 밖으로 나타나는 것들, 외적으로 행하여지는 것들로써 하나님을 예배하지 말자. 나의 마음속에 깊은 동기로써 하나님을 예배하자. 中心으로 찬양하고 , 진정으로 예배하고 , 신령으로 경배하고, 십자가 바라볼 때 한 없이 감사함으로 무릎 꿇자. 감성적인 찬양에만 감동받아 눈물 흘리는 감정적인 섬김 말고 나의 현실이 주는 모든 무기력과 험한 고비 가운데서도, 원수의 목전에서도, 생명의 위협가운데서도 주를 섬기자. 그저 “주여” 라는 말만 되풀이 하지 말고 나의 결단으로 , 나의 행함으로 전적인 순종으로 십자가 앞에 나아가자 “
하지만 영광의 시간은 다음날 아침의 분주함에 끝나버리기 일쑤다. 솔직한 나의 영성이 나의 이성에게 듣기 싫은 말을 한다. " 야 ! 네 마음에 하나님이 정말로 계시니 ? "
다윗이 만약 위와 같은 질문을 받았다면 그는 문을 박차고 뛰어나가서 언약궤가 놓여있는 장막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자신 있게 말 할 것이다. " 자 봐라 저기 계신다 ! 하나님의 파란 불꽃이 꺼지지 않고 있다 ! 휘장이 없는 장막 안에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을 향한 나의 갈망 속에 분명히 계신다 ! " 하나님의 영광 외엔 아무것도 만족이 될 수 없는 거룩한 마음들,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작은 일에도 기쁨을 느끼며 찬송을 부르는 아름다운 일상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다는 고백의 외침들, 쓸데없는 것들을 과감히 버린 한 인생의 비어있는 마음. 이런 것들 가운데 하나님이 계신다고 믿는다.
다윗은 하나님의 영광 안에서 사는 삶이 너무도 귀하고, 값지고, 기쁘고, 좋고, 감격하여서 순간이라는 시간조차 그것을 놓치기 싫어했다. 나는 어떨까? 무릎을 꿇지만 마음은 못 꿇는 것은 아닐까 ? 손은 모으지만 마음은 흩어 지는 것은 아닐까 ? 헌신은 하지만 헌심은 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 나의 목소리는 드리지만 나의 미래는 꽉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눈물은 흘리지만 땀 흘리는 것은 피하고 있지 않을까 ? 솔직히 내가 지금 의문문으로 표현한 것은 긍정의 문장으로 바꾸어야 한다. 매일 매일 하나님의 임재를 위해 내가 버려야 하는 것들에 대한 욕심이 아직도 있다. 내가 노력해야 하는 부분들을 알지만 모른 척 하고 싶다. 나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자리를 만들기엔 내가 너무나 많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보고, 이런 나의 마음을 보고 하나님은 슬퍼하실 것이 틀림없다. 나의 마음속에 있는 나의 장막은, 나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는 그분이 슬퍼하실 정도로 누추하고 그분이 민망이 여기실 정도로 작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지금, 이 도전적인 책을 읽은 지금, 나는 과감히 부흥의 망치를 들고 이전의 장막을 부순다. 아무것도 없는 그 자리에 믿음으로 반석을 세우고 하나님을 갈망하는 거룩한 마음으로 장막을 만들고 나의 헌신과 헌심으로 울려지는 찬송을 장막안의 배경음악으로 틀어 놓는다. 은혜의 보좌를 준비하고 어느새 들어온 의심의 먼지들과 죄의 악취들을 장막 밖으로 몰아낸다.
이젠 준비가 된 것 같아서 전화를 건다.
" 하나님 !! 준비 됐는데요 ! 진현이의 장막으로 오셔서 기뻐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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