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에 실린 시인의 사진을 기억합니다. 작은 얼굴에 도수 높은 안경을 낀 시인의 모습은 영락없이 여린 감성을 지닌 문학도였습니다. 시집 제목은 튼튼한 역사 의식을 나타내는 것 같은데 사진은 한없이 여려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시집을 다 읽고 나니 그것은 어리석은 걱정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시인은 역사 의식과 감성을 놀랍도록 하나로 잘 녹여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니 말입니다. 그 뒤로도 시인은 역사 현실을 떠나지 않으면서 따스한 감성을 폭넓게 보여줬습니다. 이번 시집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은 역사 현실보다는 간격과 간격이 모여 숲을 이룬다는, 적절한 간격에 대한 감성입니다. 서시를 보면 ‘벌어질 대로 최대한 벌어진, / 한데 붙으면 도저히 안되는, / 기어이 떨어져 서 있어야 하는, / 나무와 나무 사이 / 그 간격과 간격이 모여 / 울울창창(鬱鬱蒼蒼) 숲을 모여 이룬다는 것을 /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 숲에 들어가보고서야 알았다’(「간격」)고 합니다. 나무와 나무가 어깨와 어깨를 대고 숲을 이룬 것이 아니라 적절한 간격을 두고 숲을 이룬다는 것을 숲에 들어가 깨달은 것입니다. 나무와 나무가 숲을 이룰 때 필요한 ‘간격’은 ‘거리’나 ‘사이’로 변주됩니다.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떨어져 앉아 우는 여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여치소리가 내 귀에 와닿기까지의 거리를 생각하는 것 / 그 사이에 꽉 찬 고요 속에다 실금을 그어놓고 / 끊어지지 않도록 붙잡고 있는 것’(「여치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됩니다. 그런가 하면 토란잎은 ‘빗소리만큼만 살고 / 빗소리만큼만 사랑하는’데, ‘사랑하기 때문에 끝내 / 차지할 수 없는 게 있다는 거’(「토란잎」)를 알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거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거리 두기에 의해 시인은 ‘모퉁이가 없다면 / 그리운 게 뭐가 있겠어 / 비행기 활주로, 고속도로, 그리고 모든 막대기들과 / 모퉁이 없는 남자들만 있다면 / 뭐가 그립기나 하겠어’(「모퉁이」)라고 직선의 한길보다는 곡선의 모퉁이에 눈을 두고, ‘옆모습이란 말, 얼마나 좋아’(「옆모습」)라며 정면보다는 옆모습에 마음을 둡니다. 이러한 간격은 ‘그늘의 육체’(「이끼」)를 살려내는 데 매우 효과가 있어 일상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잘 드러내지만 치열한 역사 의식에서는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퉁이 모퉁이가 없다면 그리운 게 뭐가 있겠어 비행기 활주로, 고속도로, 그리고 모든 막대기들과 모퉁이 없는 남자들만 있다면 뭐가 그립기나 하겠어 모퉁이가 없다면 계집애들의 고무줄 끊고 숨을 일도 없었겠지 빨간 사과처럼 팔딱이는 심장을 쓸어내릴 일도 없었을 테고 하굣길에 그 계집애네 집을 힐끔거리며 바라볼 일도 없었겠지 인생이 운동장처럼 막막했을 거야 모퉁이가 없다면 자전거 핸들을 어떻게 멋지게 꺾었겠어 너하고 어떻게 담벼락에서 키스할 수 있었겠어 예비군 훈련 가서 어떻게 맘대로 오줌을 내갈겼겠어 먼 훗날, 내가 너를 배반해볼 꿈을 꾸기나 했겠어 모퉁이가 없다면 말이야 골목이 아냐 그리움이 모퉁이를 만드는 거야 남자가 아냐 여자들이 모퉁이를 만드는 거야 토란잎 빗방울, / 토란잎의 귀고리 이것저것 자꾸 / 큰 것도 작은 것도 달아보지만 / 혼자 다 갖지는 않는 / 참으로 / 단순하게, / 단순하게도 사는 토란잎 빗소리만큼만 살고 / 빗소리만큼만 사랑하는 게다 사랑하기 때문에 끝내 / 차지할 수 없다는 게 있다는 거다 귀고리, / 없으면 그냥 산다는 / 토란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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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따뜻한 감성을 지닌 안도현 시인의 시집..전에 선물로 받은 것인데..읽으면서 따뜻한 감동을 얻었다. 어렵지 않은, 그리고 상투적이지 않은 시어로 잔잔하게 우리네 삶의 진실을 그리고 있는 이 시집은 내 마음에 잔잔한 감정의 파동을 일으켰다..
그의 언어들은 하나하나 새로울 것이 없는 일상어들을 안도현 특유의 진솔함과 편안함으로 생생하게 뛰어오르는 살아있는 시들을 만들어 내는 것다.
안도현 시인의 감성과 시어들이 너무 좋다...
너에게 가려고 강은 물소리를 들려주었고 울음은 강을 만들었다
밤 10시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으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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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능한 사업가는 빚을 적절히 이용할 줄 안다. 그러나 적은 빚에도 전전긍긍하며, 빚보다 더 큰 채무의식에 시달리며 사는 ‘나’ 같이 소심한 인생도 있다. 그래서인지 안도현의 시들은 잘 쓰여 졌음에도 불구하고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다. 전작 「모닥불」,「외롭고 높고 쓸쓸한」에서 그랬듯 그는 시인 백석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안도현의 시집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를 읽으며 위에서 같은 생각을 떠 올렸다면, 시인에겐 모독이며, 명예훼손일까?
이번 시집에도 역시 <봄날은 간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특히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라는 몇 개 눈에 띄는 제목이 있다. 시집 『모닥불』에서 백석의 <모닥불> 을 『외롭고 높고 쓸쓸한』을 보며 <흰 바람벽이="" 있어="">의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를 떠올리지 않기는 어려운 것이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서 브레히트를 그냥 지나치기도 어렵다.
시인이 쓴 이런 글들에 대해 민감한 것은, 또 이런 말도 안 되는 결벽증을 갖는 것은 나 역시도 좋은 것을 보면 훔쳐서라도 내 것을 만들고 싶은 깊은 욕망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찌됐든 안도현은 얄미울 정도로 말을 잘 잡아내는 시인이다. 하지만 그의 시세계는 잘 가꾸어진 전원주택 같고 관광농원 같아 그 아름다움이 부럽지만 내가 내 어머니의 텃밭처럼 그립지는 않다.
풀숲에 호박이 눌러 앉아 살다간 자리같이/ 그 자리에 둥그렇게 모여든 물기같이/ 거기에다 제 얼굴을 가만히 대보는 낮달같이/
p 15 <적막> 전문
그러다가 나는 문득 아득해져서, 나 혼자밖에 아낄 줄 모르는 나도 /툇마루가 될 수 있나, /
생각했다.//
툇마루가 되어서 / 누구에게 밤하늘의 별이 몇 됫박이나 되는지 누워 헤아려 보게 하나, /
언제쯤 가지런히 썰어놓은 애호박이 오그라들며 말라가는 냄새를 받쳐들고 있게 하나, /자꾸 생각하게 되었다.
p 18, <툇마루가 되는="" 일="">의 일부
뜰 안에 석류꽃 마구 뚝뚝 떨어지는 날, 떨어진 꽃이 아까워 몇 개 주워 들었더니 꽃이 그냥 지는 줄 아나? 지는 꽃이 있어야 피는 꽃도 있는 게지 지는 꽃 때문에 석류알 굵어지는 거 모르나? 어머니, 어머니, 지는 꽃 어머니가 나 안쓰럽다는 듯 바라보시고, 그나저나 너는 돈 벌 생각은 않고 꽃 지는 거만 하루종일 바라보나? 어머니, 꽃 지는 날은 꽃 바라보는 게 돈 버는 거지요 석류알만한 불알 두 쪽 차고앉아 나, 건들거리고
p 44< 꽃 지는 날 > 전문
씨근덕씨근덕 그렇게도 몇 날을 울던/ 제 울음소리를 잘게 썰어 햇볕에다 마구 버무리던 /매미가 울음을 뚝 그쳤습니다./ 때맞춰 배롱나무는 달고 있던 귀고리를 모두 떼어냈습니다./
울음도 꽃도 처연한 무늬만 남았습니다 // 바람의 두께가 얇아졌습니다
p 101 <바람의 두께=""> 전문
그때 나는 그의 흰 와이셔츠 깃에 촘촘하게 일어나고 있는 보푸라기들을 보게 되었다./
보푸라기, / 실낱과 세상이 부딪치면서 일으켰을 감깐의 스파크의 흔적들,/ 그 남자 혼자 수없이 와이셔츠를 빨아 널고 말리고 다림질 했을 사막의 밤이 / 불현듯 내 입속으로 밀려와 모래처럼 버석거렸다.
p 103 < 물기 없는 입 > 일부
양옆을 눈가리개로 가린 채 달려가는 경주마처럼 일상을 들여다 볼 여유가 없는 현대인에게 안도현의 시는 ‘여유’를 보여준다. 급할 것 없다고, 모처럼 휴가를 얻어 시골에 내려왔다면 마음의 짐은 좀 내려 놓고 사목사목 들판도 걸으며 여러 풍경들과 만나보라고 속삭인다. 그리고 사물들을 들여다 보라고, 응시하고 관조해 보라고
그는 자연 풍경이든 내면의 풍경이든 탁월하게 잡아내는 재주를 지닌 듯하다.
앞에서 고백했듯 채무의식 강한 고집스런 독자의 선입견이 작용하지 않는다면 그의 시는 아스라한 그리움을 불러오고 일상에 대한 돌이킴을 하게 한다.
그럴수록 더 안도현의 시에서 만나는 백석이 아니라, 백석을 통해 만나는 안도현이 아니라 그냥 안도현의 결 고운 시를 만나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씨근덕씨근덕 그렇게도 몇 날을 울던/ 제 울음소리를 잘게 썰어 햇볕에다 마구 버무리던 /매미가 울음을 뚝 그쳤습니다./ 때맞춰 배롱나무는 달고 있던 귀고리를 모두 떼어냈습니다./ 울음도 꽃도 처연한 무늬만 남았습니다 // 바람의 두께가 얇아졌습니다 p 101 <바람의 두께=""> 전문바람의>바람의>툇마루가>적막>살아남은>흰>모닥불>그>살아남은>봄날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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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29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안도현 창비 2004.9.15. 교과서에서 다룰 수 있는 문학은 몇 가지 안 됩니다. 학교도서관이나 공공도서관에서는 모든 책을 건사하지 않습니다. 저는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며 교과서로 문학을 배울 적에 처음에는 ‘교과서에 실리지 않은 문학’이 있는 줄 몰랐고, 나중에는 교과서에 안 실리거나 못 실린 문학이 엄청나게 많은 줄 느꼈으며, 이윽고 교과서에 어느 문학을 누가 넣느냐 하는 대목에서 퍽 얄궂구나 싶었어요. 교사가 안 가르치면 학생은 모르고, 사서가 안 갖추면 사람들은 책을 못 빌립니다. 교과서 엮는 이가 이녁 알음알이에 그치면 아이들은 문학을 보는 눈을 못 넓힙니다.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를 읽으며 한국 문학이 이렇게 따분하던가 하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시인이란 이름을 쓰는 사내는 왜 툭하면 ‘처녀’ 타령을 할까요? 한국에서 시를 쓰는 분은 왜 말장난을 즐길까요? 학교에서 이렇게 가르치고, 교과서에 이런 시를 담으며, 도서관도 이런 얼거리 문학만 갖추기 때문일까요? 창작에다가 비평이 모두 사내들 각시놀음과 말놀음에 매이는 탓일까요? 사회에 길들 적에는 글에서 힘이 사라집니다. 사회를 길들일 적에는 글에서 사랑이 스러집니다. ㅅㄴㄹ 처녀들이 사과를 받아서 두 손으로 닦은 뒤에 / 차곡차곡 궤짝에 담는다 사과가 / 코를 막고 한알씩 눈을 감았기 때문에 (덜컹거리는 사과나무/26쪽) 바다의 입이 강이라는 거 모르나 / 강의 똥구멍이 바다 쪽으로 나 있다는 거 모르나 / 입에서 똥구멍까지 / 왜 막느냐고 왜가리가 운다 / 꼬들꼬들 말라가며 꼬막이 운다 (왜가리와 꼬막이 운다/106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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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가 없는 것들에게 소리를 만들어 주고 생명이 있으되 귀함 받지 못한 것들에게 귀함을 만들어주는 회생적이되 정적인 시들이였다.. 안도현님의 시집은 처음이였다.. 그러나 낯설지가 않은... 어딘가에 늘 존재해 왔었던 느낌이 드는 시집이였다.. 그래서 무척 피곤한 밤에 읽었는데도 머릿속으로가 아닌 가슴으로 읽혀졌다.. 시집을 다 읽고 잠이 들 무렵에는 깊은 밤이였고 나는 그날밤 안도현님의 시들에 관한 꿈을 꾸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때 전혀 피곤함이 느껴지지 않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안도현님의 시집을 집어 들어 다시 읽는 일이였을 정도로 시를 통해 몸이 가뿐해진 느낌이였다.. 시가 이런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걸 처음 체험하였다.. 그러나 그런 느낌들 뒤에 약간의 허전함.. 공허.. 틈... 이와 같은 느낌들이 밀려오고는 했다.. 시를 끝까지 읽으면 읽을수록 마지막에는 무언가가 빠진듯한 어리둥절함을 지울수가 없었다.. 왜 그럴까.. 왜 그럴까... 생각을 해보다 시집을 다 읽고난 후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다시 제자리로 돌려 놓는것...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것.. 그래서 완벽을 추구하려는 시가 아닌.. 있는 그대로를 옮겨 놓으려는 시가 아닌... 무언가를 통하여서 변화될 가능성을 알고 있지만 그 끝은 형태가 아닌 무형이라는.... 그래서 자유자재로울 수 있는 시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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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격>외 62편의 시가 담겨있는 안도현( 1961년생.경북 예천 출생)시집이다. 그의 시 세계는 삶과 사랑을 실체와 형식으로 보고 그것을 삶을 지탱 해 주는 주체라고 말 한다. 특히 성근것, 비어 있는것, 그늘을 드리운것. 구멍을 찾는것. 나란히 선것들을 주제로 택한다. 염소의 저녁(14p) 할머니가 말뚝에 매어놓은 염소를 모시러 간다. 햇빛이 염소 꼬랑지에 매달려 짧아지는 저녁 제 뿔로 하루종일 들이 받아서 화늘이 붉게 멍든 거라고 염소는 앞다리에 한번 더 힘을 준다. 그러자 등 굽은 할머니 아랫배 쪽에 어둠의 주름이 깊어진다 할머니가 잡고 있는 따뜻한 줄이 식기전에 뿔 없는 할머니를 모시고 어서 집으로 가야겠다고 염소는 생각한다. 제뿔로 하루종일 들이 받아서 하늘이 붉게 물든것이라고 생각하는 허세. 그래서 앞다리에 한번 더 힘을 주는 객기. 할머니는 뿔이 없어서 자기가 모시고 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착각. 그런것들은 어쩌면 다수 가부장적인 남자들의 속성이 아닐까? 사실은 천방지축이라 말뚝에 매어놓을 수 밖에 없는 염소 그런 염소지만 햇빛이 꼬랑지에 매달려 짧아지는 저녁이면 모시러 가는 할머니. 염소가 앞다리에 한 번 더 힘을 주며 객기를 부릴때마다 등굽은 할머니의 주름은 더 깊어 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줄을 건네는 할머니 그는 그런 남자의 아내일것이다. 그러나 다행한것은 그 객기쟁이 남자들도 알고 있다. 할머니의 따뜻한 줄이 식기 전에 그를 따라 집으로 가야 된다는것을... 겨울 아침 (84p) 눈 위에 콕콕 찍어놓은 새 발자국 비틀거리지 않고 걸어간 새 발자국 한 글자도 자기 이름을 남겨두지 않은 새 발자국 없어졌다, 한순간에 새는 간명하게 자신을 정리했다. 내가 질질 끌고 온 긴 발자국을 보았다 엉킨, 검은 호스 같았다. 날아오르지 못하고, 나는 두리번거렸다. 비틀거리지 않고 눈 위에 콕콕 찍고 걸어간 새 발자국. 한 글자도 자기 이름을 남겨두지 않고 한 순간에 사라진 새. 새는 간명하게 자신을 정리한다. 그 새를 보며 시인은 말한다. 자기의 질질 끌고온 긴 발자국이 엉킨 검은 호스와 같다고.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하잘것 없는 이름과 재산을 남기려고 두리번 거리는 모습. 그 어쩔 수 없는 우리 인간들의 모습이 부끄러워진다. 옆모습 (88p) 나무는 나무하고 서로 마주보지 않으며 등 돌리고 밤새 우는 법도 없다. 나무는 사랑하면 그냥, 옆모습만 보여준다. 옆모습이란 말, 얼마나 좋아 옆모습, 옆모습, 자꾸 말하다보면 옆구리가 시큰거리잖아 앞모습과 뒷모습이 그렇게 반반씩 들어 앉아 있는 거 당신하고 나하고는 옆모습을 단 하루라도 오랫동안 바라보자 사나흘이라도 바라보자 적당한 간격을 두고 , 그렇게 앞모습과 뒷모습의 반반씩의 옆모습만 보는 나무의 사랑을 시인은 노래한다. 우리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상처들을 주고 받는지. 너무 마주보아 집착이 되고, 등돌려서 배신이 되고 그러나 진정한 사랑이란 나란히 걷되 때로는 알고도 속아주고 모르고도 속아주며 놓아줄때는 놓아줄 수도 있는. 그런 것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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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물
봄비 한두 차례 마당 두드리고 가면 두런두런 풀이 돋는데 가만 놔두면 겁도 없이 자랄 것들 빗소리 마르기 전에 서둘러 뽑아내기로 마음먹고
호미를 들었다
냉이 뽑아내고 나면 씀바귀 돋고 씀바귀 뽑아내고 나면 질경이 돋는 마당 한쪽에 쪼그려 앉아 풀을 뽑다가 보면 저만큼 저 앞에서 또 개망초 돋고
내가 잠깐 돌아앉은 사이에도
또 토끼풀 돋는다
햐,
여기저기 이놈들은 대체 무슨 일로 이렇게 바쁘게 머리를 내미는 것일까
생각하면서
호미 끝으로 자꾸 땅을 콕콕 쪼아대는데,
풀들도 서운한 게 있었나?
뽑힌 풀들이 나자빠져 시든 뒤에도 내 손톱 끝에 든 풀물이 빠지지 않는 것이다
옆으로 눕기 전에 어떻게든 내 손을 어떻게든 잡고 매달려보려 했나?
햐, 문장을 춤추게 하는 이 능력이란 정말 훔쳐오고 싶을만큼 탐이난다. 내게 시는 너무 어렵지만 끊을 수 없는 이유가 단연 위에 올린 것과 같은 문장 때문이다.
봄비 한두 차례 마당 두드리고 가면 두런두런 풀이 돋는데
비가 내리는, 풀이 여기저기 고개를 내미는 문장을 저렇게 맛깔나게 적어낼 수 있는 것은
뽑힌 풀들이 나자빠져 시든 뒤에도 내 손톱 끝에 든 풀물이 빠지지 않는 것이다
옆으로 눕기 전에 어떻게든 내 손을 어떻게든 잡고 매달려보려 했나?
손 끝에 든 풀물들 하나로 풀들이 잡고 매달려보려고 했다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세번 읽고 다섯번 읽고 보다 못해 소리내어 읽었다. 닮고싶어서, 그의 문체를.
나중에 다시 태어나면
나 자전거가 되리 (……)
가위가 광목천을 가르듯이 바람을 가르겠지만
바람을 찢어발기진 않으리
나 어느날은 구름이 머문 곳의 주소를 물으러 가고
또 어느날은 잃어버린 달의 반지를 찾으러 가기도 하리(……)
바퀴살로 햇살이나 하릴없이 돌리는 날이 많을수록 좋으리
그러다가 천천히 언덕 위 옛 애인의 집도 찾아가리
언덕이 가팔라 삼십년이 더 걸렸다고 농을 쳐도 그녀는 웃으리
돌아가는 내리막길에서는 뒷짐 지고 휘파람을 휘휘 불리
죽어도 사랑했었다는 말은 하지 않으리
나중에 다시 태어나면
돌아가는 내리막길에서는 뒷짐 지고 휘파람을 휘휘 불리
죽어도 사랑했었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는 능청스러운 그의 글들이 미소짓게 했다.
어렵지 않고 재밌다 그리고 그의 글들은 리듬을 갖고 있다. 단연, 시다.
짧지만 그 안에 든 문장들은 깊다. 내 상황에 따라 그 문장도 의미도 다르게 와닿는게 시 인것 같다.
시와 친해지고 싶다면 먼저 안도현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부터 드는게 어떨까.
분명 가볍고 깊게 다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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