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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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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이따금, 위기를 모면하고 용케 책장과 서랍 속에 살아남은 낡은 책들을 펼쳐들 때가 있다. 낙서와 손때로 지저분해진 책을 한 장 한 장 들추고 있노라면, 어린 시절 기뻐하고 슬퍼하던 감정들이 가슴 깊은 곳에서 어수선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성장에 대한 동경과 두려움, 자부심과 열등감, 희망과 실의가 격렬하게 교차하던 그 나날들이."    (p.17)   책을 읽다 보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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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이따금, 위기를 모면하고 용케 책장과 서랍 속에 살아남은 낡은 책들을 펼쳐들 때가 있다. 낙서와 손때로 지저분해진 책을 한 장 한 장 들추고 있노라면, 어린 시절 기뻐하고 슬퍼하던 감정들이 가슴 깊은 곳에서 어수선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성장에 대한 동경과 두려움, 자부심과 열등감, 희망과 실의가 격렬하게 교차하던 그 나날들이."    (p.17)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글자가 갖는 의미를 무심히 지나쳐, 스쳐가는 영상과 이미지, 손끝에 전해져 오는 감촉과 아스라히 잊혀져가던 느낌들이 낱글자의 획 하나하나에서 되살아나는 경우가 있다. 가슴을 향해 짓쳐 오는 먹먹한 시간의 뒷편에는 언제나 배를 깔고 엎디어 책을 읽는 소년의 모습과 매섭게 몰아치던 겨울바람 소리와 탄광촌의 암울한 어둠이 마치 한 몸인 양 어우러지곤 한다. 그때의 느낌을 속속들이 표현할 자신은 내게 없다. 다만 가슴속으로부터 두서너 개의 문과 묵직한 덧문까지 밀어 제친 뜨거운 물이 눈가로 쭈뼛거리며 흘러넘칠 뿐이다. 

 

'서경식의 독서 편력과 영혼의 성장기'라는 부제가 달린 <소년의 눈물>을 읽는다는 건 어쩌면 내 어린 시절의 영상을 돌려 보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 독자라면 혹 서경식을 모르는 사람도 더러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 미술계에서는 익숙한 이름일 테지만 말이다. <나의 서양 미술 순례>로 유명해진 재일 조선인 2세 서경식을 나는 <경계에서 춤추다>라는 서간집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논리정연하고 반듯한 그의 생각이 퍽이나 맘에 들었었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봐야지' 생각했던 게 꽤나 오래 전의 일인데 나는 이제야 그의 작품 <소년의 눈물>을 읽었다.

 

'독서'를 이야기하는 책들은 대개 자신이 읽었던 작품에 초점을 두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소년의 눈물>은 다르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책들은 국내 독자들이 읽어보는 것부터가 어렵고 작가도 딱히 원하는 바는 아닌 듯했다. 그보다는 오히려 작가가 성장해가면서 만났던 책들에 대한 감정을 이해하는 게 적절한 듯 보인다.작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사춘기, 청년기에 읽었던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어떤 책을 읽었느냐가 아니라 왜 그런 종류의 책을 읽었고 당시의 상황은 어떠했는지,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등 책에 얽힌 자신의 삶을 폭넓게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서경식이 '살아온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나는 아직 사랑도 죽음도 이해하지 못하는 열 살짜리 꼬마였지만 이 한 편의 글을 애독했다. 그리고 글을 읽을 때마다 몸 한구석 어딘가가 스멀스멀 저려오는 듯한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 'Fate'란 '운명' 혹은 '숙명'을 뜻한다"라는, 글 말미에 달린 주석을 보고 나 역시 공책에 "Fate, Fate"라고 써두었다. 과연 나는 어떤 숙명을 짊어지고 있는 것일까? 어떤 운명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    (p.32)

 

작가는 <데라다 도라히코 작품집>을 읽던 이 무렵이 자신이 사춘기로 접어들던 입구가 아니었을까 회상하고 있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어른들의 눈을 피하여 고독하고 어둡고 조용한 곳으로만 찾아 헤매던 시절. 나의 어머니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광산 노동자들을 상대로 하숙을 쳤었다. 나는 하숙생들의 퀴퀴한 땀냄새가 밴 지저분한 방에서, 갑,을,병 하루 삼교대로 일하는 하숙생들의 부재의 시간에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그들이 사다 놓은 책을 가리지 않고 꺼내 읽었었다.

 

그때 내가 읽었던 책 중에는 박경리의 장편소설 <토지>가 있었다. 지면의 반을 나누어 세로쓰기 방식으로 인쇄된 <토지>의 깨알같은 글씨를 나는 정말 아껴가며 읽었었다. 하여 지금도 <토지>를 떠올리면 그 방에 떠돌던 하숙생들의 퀴퀴한 땀냄새가 먼저 맡어지곤 한다. 일부러 가둬둘 작정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도 한 번 밴 땀냄새는 그 방의 문지방조차 넘지 못했다. 그 방의 꽃무늬 벽지를 떠돌던 <토지>의 아름다운 문장들. "쓸쓸하고 안쓰럽고 엄숙한 잔해 위를 검시하듯 맴돌던 찬바람은 어느 사슬엔가 사람들 마음에 부딪혀와서 서러운 추억의 현을 건드려주기도 한다."

 

""눈 깜짝할 사이 저 답답하고 안타깝던 지난날에서 어느덧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나의 사춘기는 벌써 저 멀리 떠나간 것이다. 그러나『마의 산』을 정복하지 않는 한, 나는 언제까지고 사춘기 때의 번민을 떨쳐버릴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마의 산』은 사춘기 콤플렉스의 상징이요 끝까지 등정할 수 없었던, 영원한 미답의 봉우리와도 같은 존재이다."    (p.163) 


작가의 독서 체험은 다분히 그의 둘째형, 셋째형의 영향이 컸다. 서울대에 유학을 왔던 두 형들이 국보법 위반으로 감옥에 갇힌 몸이 되었을 때 "나에게 독서란 도락이 아닌 사명이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일이 있었다고 한다. 작가는 그 한마디 말에 자신의 독서를 깊이 되돌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작가는 또한 <프란츠 파농 저작집>읽었던 기억에서 '아프리카 대륙의 한 귀퉁이에서 울려퍼진 한 흑인 지성이 작가 자신을 크게 뒤흔들어놓았다'고 회고한다.

 

아직 계절은 가을의 언저리에도 이르지 못했는지 하루하루 무더운 날들만 이어지고 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데 우리를 둘러싼 주변의 여건들, 예컨대 수년째 지속되는 경기 불황이나 날로 그 수위를 더해가는 북한의 위협 등이 사람들 가슴을 싸늘하게 쓸어내릴 것만 같다. 젊은 청년들의 눈물과 한숨이 더욱 깊어질 것만 같은 이 계절에 나는 한가로이 <소년의 눈물>을 읽었다. 요즘 내가 하는 독서는 돌로 짓누른 듯 무겁기만 하다. 올해가 가고 새 봄이 오면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한 권의 책을 읽게 될런지...

  

이달의 사락 s*****l 2015.08.21. 신고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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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북로거] 독서-영혼을 살찌우는 양식
"[파워북로거] 독서-영혼을 살찌우는 양식" 내용보기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릴 적에 눈물이 많은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한테 야단을 맞을라치면 금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흐르기 일쑤이고, 책을 읽다가, 혹은 영화를 보다가 감동이 이는 장면에 이르면 마음이 절로 눈물이 흐르곤 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읽게 된 서경식교수님의 <소년의 눈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눈물’이라는 제목을 단 글들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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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릴 적에 눈물이 많은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한테 야단을 맞을라치면 금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흐르기 일쑤이고, 책을 읽다가, 혹은 영화를 보다가 감동이 이는 장면에 이르면 마음이 절로 눈물이 흐르곤 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읽게 된 서경식교수님의 <소년의 눈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눈물’이라는 제목을 단 글들에서는 어린 시절 저자가 눈물을 흘리게 되는 사연이 특별히 남다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조금은 실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 나오는 집에 오는 아저씨의 아들을 하지 않겠냐면서 놀리는 아저씨와 슬그머니 동조하시는 부모님 때문에 울상이 되곤 했다는 서교수님의 말씀대로 저 역시 다리 밑에서 주워왔는데, 그 다리에 다시 데려다 주어야 하겠다는 어르신들 말씀을 들으면 눈물바람을 하곤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에리히 케스트너의 <하늘을 나는 교실>의 서문에 나오는 “어째서 어른들은 자기가 어렸을 때의 일들을 그렇게도 새까맣게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아이들도 때로는 지극히 애처로운, 가엾고 불행한 존재라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으로 변해버리는 것일까요> (…) 아이들의 눈물은 결코 어른들의 눈물보다 가볍지 않으며, 오히려 그보다 무거울 수도 있다는 말은 새삼스럽지 않습니다.”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어른의 눈물을 아는 자가 아이의 눈물을 안다. 아이의 눈물을 이해하는 자가 어른의 눈물까지 이해하는 것이다.(85쪽)”라고 설명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사실 서교수님께서 인용하신 에리히 케스트너는 저 역시 처음 세상에 내보낸 책 <치매 바로 알면 잡는다>에서 케스트너의 시 “마지막 플랫폼”을 인용한 적이 있어 반가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사람의 생애란 길게 보여도 조금 전에 시작했는데 이미 종착역입니다.”라는 싯귀를 읽으면서 마음이 먹먹해졌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하지만 서경식교수님은 정말 대단한 소년이었구나 싶습니다. 저도 책읽기를 꽤나 좋아했던 축에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읽을거리만 있으면 사람들 눈에서 사라지곤 했고, 학기 초에 새로 교과서를 받기라고 하면 그날 모두 읽어치우고 말았던 기억도 있습니다. 선친께서 교편을 잡고 계실 때는 학교 도서실에서 책을 빌려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동화책이나 위인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초등학교시절의 서경식교수님의 독서편력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욱 대단한 것은 그 어린 시절에 읽었던 책에 대한 기억에서부터 책을 읽고 가졌던 생각을 어른이 되어 되살려 글로 옮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한편으로는 막연하게 생각해온 재일 동포들이 일본사회에서 받아온 편견이 얼마나 심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영어수업 시간에 “아이 아무 아 쟈빠니-즈”라고 따라 읽을 수 없었던 서교수님에게 조선인이 Korean이라는 단어를 가르쳐주지도 않으면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고 불쾌해하던 선생님을 보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세워나가셨다는 말씀이 감동적이었습니다.

또한 한국에 유학하던 두 형님이 1971년 유학생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오랫동안 옥고를 치루었다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소개하고 있어 그 내막이 어땠는가보다는 시간이 많이 지났다고는 해도 당국에 대한 별다른 언급이 없어 놀랐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시를 읽고 암송하기 시작했다는 서교수님의 회고에 또 한번 놀라게 됩니다. 이시카와 다쿠보쿠가 시 ‘코코아 한 숟갈’에 표현한 “나는 알겠네, 테러리스트의 슬프고도 애처로운 그 마음을”에서 인용한 테러리스트가 안중근의사였다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도 놀라웠습니다. 20세기 초반에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동아시아 제국을 침략하면서 일본이 이들 국가에 저질렀던 비윤리적 만행에 대한 일본인들의 생각이 다양하다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최근에는 극우파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이를 우려하는 일본사람들의 양심 또한 목소리가 커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겪었던 혹은 생각했던 일들을 그저 추억에 묻어두고 살아가는 편인 듯합니다만, 서교수님은 “좋건 싫건 어린 시절 각인되어버린 그 무엇을 짊어진 채, 사람들은 수많은 괴로움과 얼마 되지 않는 잔다란 기쁨으로 수놓인, 인생이라는 긴긴 시간을 인내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 인생을 인내할 수 있게 하는 힘의 원천은 어린 시절 몸과 마음에 깊숙이 아로새겨진 그 무엇이다.(236쪽)”라고 하시면서 지난날의 향수만을 되살려기 위하여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에 스스로에게 각인된 무엇 때문에 여전히 변하지 않고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저도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의 세월을 제가 기억하는 시점부터 정리를 해보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습니다만, 아직도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나름대로 행적을 요약하게 정리해두고 있기는 합니다. 언젠가 글로 옮길 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기에 말입니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파워북로거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y*****2 2011.10.08. 신고 공감 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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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함께하는 성장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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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정말 괜찮은 책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대로 일본에 관한 책들이 나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면. 그리고 편집과 디자인도 볼 만하다. 한 인간이 성장하면서 책과 더불어 어떻게 발전하는지에 대한 통찰이 빼어난 문장으로 구현되어 있다. 예전에 감옥에서 고초를 겪은 서승씨의 수기를 읽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는데 역시 그 형의 그 동생이었다. 감성적인 수필을 좋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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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정말 괜찮은 책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대로 일본에 관한 책들이 나오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면. 그리고 편집과 디자인도 볼 만하다. 한 인간이 성장하면서 책과 더불어 어떻게 발전하는지에 대한 통찰이 빼어난 문장으로 구현되어 있다. 예전에 감옥에서 고초를 겪은 서승씨의 수기를 읽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는데 역시 그 형의 그 동생이었다. 감성적인 수필을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읽어볼 것을 권한다.   
j*******g 2007.11.0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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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목소리, 깊은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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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의 글은 가슴 깊은 곳을 울리게 한다. 그 울림은 현란한 문장력에 기댄 얄팍한 감탄이나 현실을 도외시한 싸구려 감상이 아니다. 또 마치 돌아온 탕아의 자기 고백이나 뒤늦은 깨달음처럼 독자에게 훈계하고 가르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자신의 몫을 묵묵히 살아온 자의 솔직한 고백이고 자기 성찰이다. 굳이 ‘험난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필요는 없으리라. 누군들 삶이 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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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의 글은 가슴 깊은 곳을 울리게 한다. 그 울림은 현란한 문장력에 기댄 얄팍한 감탄이나 현실을 도외시한 싸구려 감상이 아니다. 또 마치 돌아온 탕아의 자기 고백이나 뒤늦은 깨달음처럼 독자에게 훈계하고 가르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자신의 몫을 묵묵히 살아온 자의 솔직한 고백이고 자기 성찰이다. 굳이 ‘험난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필요는 없으리라. 누군들 삶이 비단길만이겠는가? 또 아무리 험난하고 신산(辛酸)한 삶을 살았고, 그런 생애의 대부분을 자신의 영달만이 아닌 타인을, 공동체를 위해 살았다고 한들 뒤늦게 그것을 훈장처럼 달고 으스댄다면 그 신산(辛酸)한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너그럽게 보아 그 나름대로의 역할을 인정하고 지나온 그의 삶의 가치를 인정하여 과거를 훈장처럼 달아준다고 한들 그 훈장이 빛이 나겠는가? 그것은 이미 빛바랜 쇠붙이일 뿐이리라. 책 읽기에 관한 책을 읽을 때면 저자가 읽은 책을 나도 읽었는지를 의식하게 된다. 그런데 책 앞부분을 읽으며 그렇게 하기를 간단히 포기해 버렸다. 일본 문학 작품은 물로 일본에 대해서도 무지하기 때문에 번역자가 달아놓은 주해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어떤 책을 읽었는지 그리고 그가 읽은 책을 나도 읽으려는 노력 대신 그가 책을 읽으며 걸었던 삶의 궤적을 더듬듯 그의 생을 바라보고 내 삶의 궤적도 더듬어 본다. <어머니는 자주 “우리 애들 중에서 경식이 너만 다리 밑에서 주어왔단다.”하며 농담을 하셨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나는 슬퍼지기도 했지만 거꾸로 “엄마 말이 참말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내가 꿈꿨던‘진짜 부모님’은 동화 속에 흔히 등장하는 돈많은 부자나 귀족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일본인이었다.> 재일 한국인의 비애를 함축하는 이 말은 많은 울림을 준다. 세상에서 한발 비껴나야 하는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에게 겨우 한발 차이인 세상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해서 영원히 주변인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또 나를 기준으로 책을 읽고 생각한다. 어쩌면 딸도 가끔 엄마가 친엄마가 아니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부자도 귀족도 아닌 좀 더 세련되고 젊은 엄마가 운동회나 학예회 때 학교를 찾아오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도둑 제 발 저리는’ 생각을 하며 속으로 웃었다. <70년대 말 당시 한국에서 영어의 몸으로 고생하고 있던 셋째형이 “나에게 독서란 도락이 아닌 사명이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 서재나 연구실에서 씌어진 말이 아니었다. 고문이 가해지고 , 때로는 ‘징벌’이라 부르던, 수개월간이나 계속된 독서 금지 처분을 당하던 상황에서 써 보낸 편지였다. 나는 곧 바로 형의 이 말을 나에 대한 가차 없는 비판으로 받아들였다. 항변의 여지가 없었다. 한 순간 한 순간 삶의 소중함을 인식하면서, 엄숙한 자세로 반드시 읽어야 할 책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독서. 자기연찬으로서의 독서. 인류사에 공헌할 수 있는 정신적 투쟁으로서의 독서. 그 같은 절실함이 내게는 결여되어 있었다. 꼭 읽어야 할 책을 읽지 않은 채, 귀중한 인생의 시간을 시시각각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전작 <나의 서양미술 순례>에서 그는 감옥에 형제들을 가둬둔 채 홀로 자유로운 것을 자책하며 서양의 미술관을 ‘순례’ 했었다. 이 대목에서 그는 자신의 독서 행위를 죄스러워 한다. 그렇다면 내게 책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자기 위안과 확인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것도 언제부턴가는 책을 읽는 것보다 읽지도 못할 책을 트렁크 가득 싣고 다니는 것만으로 대신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런이런 책을 읽는 것, 그리고 어떤 종류의 책을 내가 읽고 싶어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작가도 오자이 다사무의 독서 경험에서 그런 고백을 하고 있다. <가끔 나는 집과 반대인 그 다리를 향해 걸으며 흘러가는 강물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거나 고개를 들어 히에이잔을 쳐다보곤 했는데 , 그런 그 순간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나 자신에 대한 의식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강변으로 내려와 책을 펼쳐 보는 경우도 있었지만, 책보다도 그렇게 행동하는 나 자신에 대한 관심 때문에 심장이 뛰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그런 내 모습을 누군가 눈치채주지 않을까 바라기도 했다. > 작가는 시간이 흐르며 힘겹지만 자신을 객관화할 힘을 얻었지만 마흔이 넘어서도 나는 아직 그것을 뛰어 넘지 못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자문을 내가 수없이 반복하게 된 것은, 위태로울 정도로 예민해져 가는 소년기의 자의식과 불균형한 자기애의 양상을 이 작품이 그만큼 능숙하게 그려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객관적으로 생각하게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경험이 필요했다. 이 글을 접한 이후로 나는 오랫동안 다자이 오사무를 싫어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자기혐오와 같은 감정이었다.> 책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다 보면 아주 관념적으로만 세상을 이해할 때가 있다. 그리고 매 순간 그 관념이 내 머리 속을 지배하는 것이다. 연애를 할 때도 그랬고, 엄마가 되어서도 그랬다. 행복한 순간에도 마음의 실타래 헝클어진 시간에도 한쪽에선 슬그머니 책 속 한 구절이 생각나곤 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 역시 살아오면서 형제들 문제, 집안 문제로 울고 싶은 적이 몇 번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 “본디 한 뿌리에서 자라났건만 ……. ”하는 조식의 <칠보시>가 마음속에 떠오른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도 읽은 책의 구절을 떠올리는 자신이 늘 조금은 우스워지곤 한다.> 나는 낮지만 울림이 큰 작가의 음성을 듣는다. 그리고 내 안의 울림 적은 목소리도 듣는다
l******r 2005.05.1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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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한국인의 아픔을 느끼다.
"재일한국인의 아픔을 느끼다. " 내용보기
요즘 즐겨보고 있는 ‘동경만경’이라는 일본 드라마가 있다. 한류 열풍 때문인지 원작과는 달리 재일한국인을 여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자전거 탄 풍경’이 주제곡을 불러 한국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다. 트렌디 드라마가 다루는 내용이 다 뻔한 것이지만 ‘동경만경’에 눈길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은 아무래도 ‘재일한국인’이라는 설정이다. 핏줄을 중시하는 가정에서 태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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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즐겨보고 있는 ‘동경만경’이라는 일본 드라마가 있다. 한류 열풍 때문인지 원작과는 달리 재일한국인을 여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자전거 탄 풍경’이 주제곡을 불러 한국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다. 트렌디 드라마가 다루는 내용이 다 뻔한 것이지만 ‘동경만경’에 눈길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은 아무래도 ‘재일한국인’이라는 설정이다. 핏줄을 중시하는 가정에서 태어난 재일한국인인 여주인공이 일본인 남자주인공과 어려움을 뚫고 ‘국경을 넘은’ 사랑을 하게 된다는 줄거리인데, 그 과정 사이에 재일한국인들이 일본 사회에서 겪어 왔던 차별과 그로 인해서 자기방어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역사가 어렴풋이 드러난다. 개인적으로는 일본에 어렸을 적에 건너가 사시다가 해방이 되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할아버지가 떠올라 관심이 안 갈 수가 없었다. 증조부께서 해방 이후에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그냥 머무르셨다면,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재일한국인으로 태어나 이곳이 아닌, 일본 땅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동경만경’이 한류의 바람을 타고 늦게나마 재일한국인들에게 초점을 맞춘 드라마라면, 텍스트 부분에서는 훨씬 전에 재일한국인들이 겪어 왔던 정체성 문제와 아픔을 뛰어난 감수성으로 보여주었던 작가가 있었다. 장기수 서승, 서준식 형제의 동생으로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떠안았던 ‘재일한국인’ 서경식이다. 그는 ‘나의 서양미술 순례’라는 전작을 통해서 미술작품을 소개하는 동시에 엄혹했던 시대에 자신과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복합적인 아픔을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소년의 눈물’은 그런 저자가 ‘독서’라는 또다른 프리즘을 통해서 반도 안에 사는 한국인들이 간과해왔던 또다른 ‘우리’의 아픔을 오롯이 보여주는 책이다. ‘소년의 눈물’에서 서경식은 자신이 유년기와 청년기를 거치면서 읽었던 책들 중, 여전히 자신의 기억 속에 뚜렷하게 남아있는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실 그 책들 중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삼국지’도 있지만, 일본 서적과 서양 사람들의 책이 다수를 차지한다. 어렸을 때 운동과는 거리가 먼 책벌레였음이 틀림없는 저자가 자신에게 영향을 미쳤던 책과 그에 얽힌 일화들을 소개하는 내용의 책은 분명 그동안에도 많이 있어왔지만, 그 일화들이 담고 있는 저자 주변 60-70년대 재일한국인의 삶은 독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직면할 수 밖에 없었던 ‘恨’의 감정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만든다. 이건 또다른 이야기이지만, 소년에게 주어진 환경이 그를 조숙하게 만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서경식이 자신의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읽었다고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책들은, 60-70년대 일본이라는 상황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평균적인 아이들이 읽었을 책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아니, 정직하게 말하자면, 부끄러움이다. 나에게도 이런 책을 쓸 기회가 왔다고 가정할 때 어렸을 적에 읽었던 책들 중에서 과연 어떤 책을 골라 써야 할까라는, 이 책을 읽다 보면 누구나 한번쯤 자신에게 던질 법한 그런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변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년의 눈물’은 ‘빼어난 일본어 표현’으로 1995년 ‘일본 에세이스트 클럽상’을 수상할 만큼 유려한 문체로 씌어진 책이다. 그러나 저자는 일본어로 이 책을 쓴 것에 대하여 조국의 언어를 잃어버린 채 ‘언어의 감옥’에 갇힌 수인이라는 자조 섞인 표현으로 글머리에 그의 심정을 이야기했다. 꼭 ‘조국의 독자들’이 이 책을 읽어주었으면 하고 바랬던 저자의 기대보다 훨씬 많은 호응을 ‘소년의 눈물’이 얻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b*****l 2005.02.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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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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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10대 소년시절의 책읽기를 따라 재일조선인인 자신의 삶을 잔잔히 써내려갔다. 첫 장을 넘기며 나의 10대때를 생각해보았다.그 시절 함께했다고 말할 수 있는 책들이 있었던가? 평범한 가정에서 깊이있게 들여다 볼 심각한 가정사나 개인사가 없었기에,삶과 연결할 만한 책읽기는 더더욱 생각나지 않는다. 깊이있게 자신의 삶을 성찰해나가고 있는 작가가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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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10대 소년시절의 책읽기를 따라 재일조선인인 자신의 삶을 잔잔히 써내려갔다. 첫 장을 넘기며 나의 10대때를 생각해보았다.그 시절 함께했다고 말할 수 있는 책들이 있었던가? 평범한 가정에서 깊이있게 들여다 볼 심각한 가정사나 개인사가 없었기에,삶과 연결할 만한 책읽기는 더더욱 생각나지 않는다.

깊이있게 자신의 삶을 성찰해나가고 있는 작가가 행복해보이지 않는다. 일본에서 소수의 재일조선인으로서 느끼는 소외감이 글들 속에 강하게 묻어나와 평범한 책읽기에 관한 책으로 치부할 수가 없고,그의 글들이 나에겐 잔잔한 슬픔으로 다가온다.

'절대로 울지말자!'는 하늘을 나는 교실의 주인공 마르틴 타라의 말을 새기며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애초부터 언어를 폐멸당한 채 세상에 내던져진"이라고 쓴 말속에서 가슴 한켠이 쏴하다.

디아스포라기행에서 모어와 모국어에 대해서 담담히 써내려가고 있었지만,그의 마음 속에는 이 문장이 끊임없이 오르내리고있지 않았을까?

일본어를 쓰고 자란 탓에 일본 작가들과 글들이 많이 등장해서 조금은 이질감을느꼈지만 그의 감성과 생활들은 문장 문장에 오롯이 묻어나고 있다. 이시카와 이츠코(시인)가 쓴 해설의 담백함, 저자후기에서 드러나는 그의 가정사까지 하나도 버릴게 없다. 

j*****3 2007.09.2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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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독서와 융화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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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히지만,진실된 마음이 전해오는 책이 있다. 그러한 면에서 한마디로 단정지은다면 이 책은 괜찮은 책이다. 저자는 스스로 디아스포라라고 명칭하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살아온 환경사이에서 방황하면서도 책을 통해서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말하고있다. 한번쯤은 들어본 기억이 나는 작품들이면서도 낯설은 감은 읽으면서도 느끼는 저자가 느끼는 방황과도 연결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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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히지만,진실된 마음이 전해오는 책이 있다. 그러한 면에서 한마디로 단정지은다면 이 책은 괜찮은 책이다. 저자는 스스로 디아스포라라고 명칭하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살아온 환경사이에서 방황하면서도 책을 통해서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말하고있다. 한번쯤은 들어본 기억이 나는 작품들이면서도 낯설은 감은 읽으면서도 느끼는 저자가 느끼는 방황과도 연결이 된다고 본다. 계속 나오는 형제들의 이야기에서 그에 영향을 받은 저자는 평화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희망을 찾고자하는 이상주의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았고 소년의 눈물이라는 것은 그에 따른 성장통이 아닌가 생각한다. 형제들은 정치범이어서 느끼는 조국에 대한 생각은 어떠했을까? 어린아이의 눈물로 통해서 보는 독서편력으로 인해서 어떠한 영혼으로 형성되었는지는 대상에 대한 증오나 포기가 아닌 따뜻한 시선을 보면 알 수 있지않을까? 독서를 건성으로 읽는 나에게 독서라는 것은 세상을 녹여서 소화하는 것을 보여준 명작으로 기억하려고 리뷰를 쓰고 마친다.
YES마니아 : 로얄 a********r 2006.10.1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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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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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유년기의 독서노트를 본다는 건 그 사람의 살아온 인생을 살포시 엿보는 것 같아 흥미롭다. 서경식의 유년기의 독서편력은 가히 독서광이라 해도 좋을 만큼 폭넓게 자리하고 있다. 책읽기가 좋아 간혹 꾀병으로 학교까지 빠지면서 책을 읽을 정도였다니 짐작이 간다. 하지만 저자의 책을 읽기 전에 저자의 집안 내력을 알아두는 것도 그의 작품을 읽는데는 도움이 된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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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유년기의 독서노트를 본다는 건 그 사람의 살아온 인생을 살포시 엿보는 것 같아 흥미롭다. 서경식의 유년기의 독서편력은 가히 독서광이라 해도 좋을 만큼 폭넓게 자리하고 있다. 책읽기가 좋아 간혹 꾀병으로 학교까지 빠지면서 책을 읽을 정도였다니 짐작이 간다. 하지만 저자의 책을 읽기 전에 저자의 집안 내력을 알아두는 것도 그의 작품을 읽는데는 도움이 된다. 저자의 두 형이 한국으로 유학을 와서 유학생 간첩단사건에 연류되면서 20년에 가까운 세월을 보내게 된다. 자연히 저자의 책들에서는 곳곳에 이런 형들의 안타까움과 조국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재일조선인으로서 느꼈을 그 미묘한 차별을 인식하기에는 열살의 나이가 어렸을 지는 모르지만 차별을 ''차이''로 느낄정도의 나이는 되었을 저자. 저자의 이 ''차이''는 형들과 2층에서 생활하면서 서서히 차별로 와닿았고 형들의 책을 슬쩍 읽으면서 그의 본격적인 독서가 시작된다. 조국으로 돌아가리라는 막연한 꿈을 꾸며 저자의 독서는 계속된다.
w********k 2006.08.3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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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진실성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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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역할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진실로써 쓰고 그 진실로 마음을 움직이는 것 만한 일은 없을 것 같다. 이 책의 경우 사전 지식(?)의 유무에 따라 이해의 깊이가 달라질 것 같지만, 이런 면에서 어쨌든 좋은 책이다. 아주 아주 훌륭하다고 하기엔 조금 부족하지만, 사전 지식 없어도 책 읽는 게 취미인 사람들은 뭔가 동질감을 느낄 수 있을 듯... 단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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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역할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진실로써 쓰고 그 진실로 마음을 움직이는 것 만한 일은 없을 것 같다. 이 책의 경우 사전 지식(?)의 유무에 따라 이해의 깊이가 달라질 것 같지만, 이런 면에서 어쨌든 좋은 책이다. 아주 아주 훌륭하다고 하기엔 조금 부족하지만, 사전 지식 없어도 책 읽는 게 취미인 사람들은 뭔가 동질감을 느낄 수 있을 듯... 단지, 저자가 읽은 책을 모르는 게 많아서 안타까웠을 뿐. (일본 책이 너무 많다. -_-;;) 책 상태 별점은 책 배달 왔을 때 상태가 좋지 않아(yes24의 탓!) 낮게 준다. ㅎㅎ 하지만, 책의 상태(?)는 아주(!) 훌륭하다.

[인상깊은구절]
그렇다. 루쉰이 "희망이란 본래 존재한다고도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 없다"고 할 때 그는 희망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거의 없다''라고……. 인간은 희망이 있기 때문에 걸어가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걸어가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희망''이다.
h***m 2006.07.2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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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이라는 이름의 잔인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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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의 이름은 한국 사람의 그것이었다. 하지만 책 표지에는 분명 옮긴이의 이름도 함께 적혀 있었다. 우리말을 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사람에 대해서 생각할 때면 으레 나는 교포를 떠올리게 된다. 나에게는 낯선 이국 땅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들이 부러움의 대상마냥 느껴질 때가 많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아득바득거리는 사람들로 우글거리는 이 땅을 벗어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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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의 이름은 한국 사람의 그것이었다. 하지만 책 표지에는 분명 옮긴이의 이름도 함께 적혀 있었다. 우리말을 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사람에 대해서 생각할 때면 으레 나는 교포를 떠올리게 된다. 나에게는 낯선 이국 땅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들이 부러움의 대상마냥 느껴질 때가 많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아득바득거리는 사람들로 우글거리는 이 땅을 벗어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복 받은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나의 시각이 형성되는 것에는 오늘날의 사회 분위기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사상최고를 돌파했다는 조기유학의 열풍, 영어만 잘 하면 만사가 해결된다는 식의, 영어를 향한 과도한 애정, 그 모든 것들과 나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기에… 하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읽을 땐 다소 애매한 감정을 필요로 한다. 조국의 가난을 피해 하와이 어딘가에 있다는 사탕수수 농장을 찾아 떠났던 이들을 떠올릴 때면 드는 애처로움과는 또 다른 느낌 앞에서 나는 무기력함을 느낀다. 단순히 보자면 그는 그저 책을 좋아하는 소년일 수 있었다. 남자라고 한들 모두가 운동을 좋아하고 또 잘 해야 된다는 법은 없을 테니, 그가 운동에 소질이 없다는 사실은 그리 유별난 사안이 아니었다. 하지만 일본어를 통해 사고하는 이 한국인의 글에 포함된 책의 대다수는 일본 것이었고,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전혀 알지 못하는 곳에 빠진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우리나라의 지난 어두운 역사와 연결되어 있다. 제 2차 세계대전의 종결 후 한국으로 되돌아간 다른 형제들의 불안한 삶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의 할아버지는 일본에 남았다고 했다. 갖은 핍박을 받았을 그의 가족들에게 한국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머지 않은 훗날 가능할 것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하지만 6.25의 참담함과 함께 그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한국으로 건너갔던 형제들의 소식은 끊겼고, 연일 뉴스를 장식했을 가난으로 얼룩진 조국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이 그들의 몫이었다. 한국 사람이지만 일본에 살기 때문에 문맹이 되어버린 그의 어머니. 그녀를 바라보는 서경식의 마음 속에는 소년의 것이라 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들이 싹트고 있었다. ‘I am Japanese’라 말해야 했던 영어 수업시간, 일본 사람이 아니라는 그 말을 하지 못해 벙어리가 되어야 했던 그에게 ‘서’라는 그의 이름 앞 성은 일본어에는 존재치 않는, 그래서 발음하기 여간 까다로운 한 글자에 불과했다. 굴욕적인 일본과의 관계재개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던 독재정권.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 대한민국에서 펼쳐지는 모든 행위는 일본에 살지만 한국 사람이었던 그에게 영향을 주었다. 조작된 간첩단 사건으로 그의 두 형은 기나긴 세월 동안 한국 땅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내 몸 하나 들어서기도 벅찬 좁디 좁은 감옥에 갇힌 그들이 말해주는 것은 대한민국의 현실이었다. 한국 사람이라 믿었기에 ‘서’라는 본래의 성을 되살렸지만, 결코 한국 사람일 수 없었던… 많은 책들을 읽으면서 그는 울분을 삼켰다. 일본의 지난 제국주의 역사를 정당화하는, 한 국가의 언어와 문화를 부정하는 듯한 글을 읽으며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했을 것이다. 대개 사춘기의 고민은 뜨겁기 마련이다. 해결되지 않을 법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마다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그것이야말로 그 나이에 알맞은 것이라며 괜히 우쭐거리게도 되는… 하지만 이 책의 한 소년이 경험한 사춘기는 서글펐다. 그는 ‘평범한 일본인이 자신의 부모였다면…’을 바라면서도 한 편으로는 일본인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한국인으로 남아야 한다는 복잡한 감정에 시달렸다. 현실을 망각하는 하나의 기제로서, 눈물을 잠시나마 회피할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로서 그가 택한 것은 독서였다. 하지만 독서로 쌓아 올린 마음의 양식이 아무리 거창하다 할지라도, 그가 경험한 성장이 그 나이 또래의 소년이 견디어 내기에는 실로 잔인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와 같은 잔인함과 함께 한 소년은 어른이 되고야 말았다. 눈물을 알지 못하는, 하지만 단 한 순간도 눈물 없인 살지 못하는 한 명의 어른 말이다.
이달의 사락 q*****2 2006.05.12.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