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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길만한 의도, 스스로 목을 조르는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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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련의 논문집으로 그 기획의도는 표제에 명확히 드러나 있다. 말 그대로 “수량경제사”를 통해 “조선후기”를 다시 조망하겠다는 것이다.     의도 자체는 반길만한 것이다. 한국의 역사학계는 해방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일제가 재단한 식민사학의 굴레를 벗어내기 위해 분주하였다. 이른바, ‘자본주의 맹아론’, ‘내재적 발전론’ 등은 조선 후기로부터 주체적, 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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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련의 논문집으로 그 기획의도는 표제에 명확히 드러나 있다. 말 그대로 “수량경제사”를 통해 “조선후기”를 다시 조망하겠다는 것이다.

 

 

의도 자체는 반길만한 것이다. 한국의 역사학계는 해방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일제가 재단한 식민사학의 굴레를 벗어내기 위해 분주하였다. 이른바, ‘자본주의 맹아론’, ‘내재적 발전론’ 등은 조선 후기로부터 주체적, 자주적 근대를 모색하기 위한 연구들이었다. 그러나 이들 연구에 학문외적인 사회적 염원이 작용하여 왔으며, 연구자가 규범적, 당위적 층위에서 접근한 면모가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적지 않은 역사연구자들이 17, 18세기 조선 사회를 상품화폐경제로 인식할 수 있는지 기존의 통설에 의문을 품고 있는 오늘날이다.

 

 

그렇다면 수량경제사는 무엇인가? 수량경제사는 동일한 기술사료를 두고도 다양하게 갈리는 해석이 갈리는 문헌사학을 비판하며 물가, 임금, 이자율, 생산성 등과 같이 계량화할 수 있는 경제지표들로부터 객관적으로 경제변동을 읽어낼 수 있다는 방법론이다. 숫자로 표시된 단면이나 시계열로부터 소모적인 논쟁을 예방하고, 시대별 기본흐름에 대한 일정한 공동의 이해를 기초 조건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엄밀하고 치열한 실증을 통해 역사상을 구현한다는 수량경제사의 방법론은 조선 후기에 대한 지난 민족적 접근에 비해 진일보한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이 책의 본문을 목도하고 있노라면 실망스러움을 금할 수 없다.

 

 

예컨대, 이 책의 1장은 조선 후기와 일제 강점기의 인구변동에 관한 연구이다. “인구”라는 중요한 계량지표를 추출해내는 과정으로 이 연구는 “족보”에 의지하여 전개되고 있다. 그런데 족보는 결혼하고 나서 죽은 남자들의 출생, 결혼, 사망에 대한 기록으로서 여성 및 미혼남성에 관한 정보가 담겨 있지 않으며 상민과 노비 등과 같은 하위계층은 살펴볼 수 없다는 한계를 갖는다. 또한 모삽과 모록의 가능성이 있어 연구자는 이를 고려하여 제거하여야 한다. 이러한 가공과정은 주관적인 판단을 전제로 하는 것으로 수량경제사와 문헌사학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과연 이로부터 추출된 인구지표는 객관적인 것인가? 이를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는가?

 

 

이를 역으로 고찰해보면, “수량화할 수 있는 기초자료”를 바탕으로 각 시대의 기본적 흐름을 구성하는 수량경제사는 “수량화할 수 없는 역사사실”은 상대적으로 객관적이지 못한 것으로 위치시키거나 논의의 중심으로부터 배제시킬 수 있다는 염려를 낳는다. 이 책은 이에 대한 철학적 고민은 행하지 않고 있음에 안타까움이 있다.

 

 

이 책의 잠정적인 결론들 가운데 하나는 그 논쟁 여부를 떠나 스스로 목을 조르고 있기에 당혹스럽다. 그것은 조선 후기에 자급경제, 재분배경제 등 여러 형태의 비시장경제가 상당한 비중으로 존속하였다는 것이다. 이 주장의 내용에 동의할지라도, 이러한 비시장경제를 시장경제의 지표인 “임금”, “이자율”, “생산성” 등으로 분석하는 것이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가?

 

 

이는 마치 콤파스를 들고 ‘모나리자’ 앞에 서 있는 것과 같지 않은가?

 

 

b******r 2008.01.30. 신고 공감 8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