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우리의 태도가 과학적일 때>에서 과학적 태도는 코페르니쿠스적인 깨달음과 맞닿아 있다는 내용이 인상 깊었다.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회전한다는 믿음에서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인식의 전환은 내가 속해있는 지구가 더 이상 특별하거나 선택받은 존재가 아니라는 자각이었다.
인간이, 지구가, 은하계가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는 코페르니쿠스의 원리는 민주주의와 평범성의 원리와도 연결된다. 나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좀 더 멀리에서 바라보고 오랜 시간을 관찰하면 모든 존재는 그저 여러 존재의 하나일 뿐이라는 깨달음으로 귀속된다. 나와 인간, 지구, 은하계, 우주도 그렇다.
본능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누구나 개체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추구하게 된다. 그게 확장되면 혈연과 지연으로 이어진다. 내 가족과 친구에게 내가 할 수 있는 한 조금 부당하거나 약간의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다른 사람보다 혜택을 베풀어주려는 마음을 갖게 된다.
과학적 태도는 본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 욕망을 갖는 것은 당연하지만, 나와 동일하게 다른 사람도 그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 아는 것이다. 사랑스러운 나의 딸이 소중한 만큼 한 번도 본 적 없는 tv 속 '동행'에 등장하는 초등학생 소녀의 불행이 당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거나 부자이거나 피부색이 다르고 성별이 달라도 그들은 모두 우연히 이 땅에 내던져진 one of them이다. 본능이 더 힘이 세던 시절에는 왕과 귀족이 모든 권한과 부를 독점했지만, 과학적 합리주의가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고 모두가 평등한 존재라는 인식이 점차 퍼지면서 민주주의가 싹트지 않았을까.
과학적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래서 민주주의를 가장 잘 실천할만한 사람이라고도 생각한다. 예외는 있겠지만, 방송이나 강연을 들어 알게 되는 과학자들 중에 민주주의 관점에서 진보적이지 않은 사람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과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조금 더 평등을 지향할 것 같고, 민주주의자일 것 같다.
정치도 과학적 태도와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라를 경영하고 법을 만드는 정치인의 과학적 태도가 결여될 때 학연 지연이 판치고 부패에 연루되는 일이 발생한다.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보기 때문이다. 멀리 볼 것도 없다.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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