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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파문, 진정 아무 일도 없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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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역사에 등장하는 나라들은 놀라울 정도로 그 행보(?)가 비슷하다. 초창기 진취적인 기상으로 새 시대를 노래하다가 어느 정도 지배층의 세력이 공고화되면서 이러한 기운은 보수적으로 변질되기 시작한다. 외세의 거대한 침략이 왕조의 중반 무렵 등장하며, 이에 맞서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 민족의식에 대한 자각 등이 일어난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흐름은 보다 나은 사회를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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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역사에 등장하는 나라들은 놀라울 정도로 그 행보(?)가 비슷하다. 초창기 진취적인 기상으로 새 시대를 노래하다가 어느 정도 지배층의 세력이 공고화되면서 이러한 기운은 보수적으로 변질되기 시작한다. 외세의 거대한 침략이 왕조의 중반 무렵 등장하며, 이에 맞서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 민족의식에 대한 자각 등이 일어난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흐름은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해 나아가는 하나의 정해진 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의 왕조가 멸망하고 새로운 왕조가 이를 대체하는 과정이 진보일리만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은 자국의 역사를 해석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도 서구의 것이 보편적인 것으로 여겨지면서부터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서구의 틀에 끼워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써 왔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로부터 자본주의의 맹아를 발견해야만 했고, 서구의 시민 계급과 유사한 민중의 성장을 이야기해야만 했다. 하지만 미국 시민권자이지만 뿌리는 중국인인 저자, 레이 황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중국의 역사에서 그러한 요소들을 발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전통적인 것에 '부패'라는 요소가 융합, 전통도 진보도 아닌 묘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 그가 본 중국의 역사였다. 하지만 이러한 혼란은 결코 거대한 파도처럼 갑작스레 우리 곁으로 밀려오지 않았다. 그것은 너무도 일상적인 것이었고, 잔잔한 표면에 피어난, 결코 위협적이지 않은 흐름이었다. 저자가 주목한 1587년은 이런 그의 생각을 여실히 드러낸다 할 수 있다. 그 해에 일어난 특별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오조 소집을 둘러싼 작은 소동이 있긴 했으나, 이는 너무도 미약해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만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사건을 통해 무너져버린 왕권을 느꼈던 듯하다. 수천에 달하는 관리 모두가 거짓말처럼 속았다는 것, 그것은 그에게 아무 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무언가였다. 우리도 그렇지만 중국 역시 전통적으로 무관보다는 문관이 우대 받는 사회였고, 특히 명대에 이르러 이와 같은 현상은 심화되었다. 이는 그 당시로서는 당연시되던 왕 중심의 권력 질서에도 변동을 가져와 왕은 문관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하나의 허수아비로 전락하고 말았다. 왕이 될 자는 어린 시절부터 문관에 의해 교육받았으며, 자신을 교육한 문관과의 끈끈한(?) 관계는 이후 정치를 함에 있어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데 어려움으로 작용하였다. 왕에게 허락된 것은 복잡하기만 한 의례들뿐이었다. 초기에 비해서는 많은 부분 간소화, 형식화되었지만 여전히 복잡한 이들 의식은 어찌 보면 문관이 원하는, 친 문관적인 왕을 양성하는 하나의 기제였다. 진정한 의미의 학문 아닌 헛된,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하기 위한 문이 숭상되면서 무에 대한 천시는 점점 더 심각해졌다. 물론 조선에서 일어난 임진왜란 출병 감행이 명의 국력을 악화시켰던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지만, 무를 등한시한 명의 전통(?)은 왕조를 멸망으로 몰고 갔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책은 특정한 사건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인물을 통해 명나라의 역사를 살펴보고 있다.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할 수 있는 1587년, 그 무렵을 살다간 인물들에게선 물론 긍정적인 요소도 엿볼 수 있다. 뛰어난 판단력과 사람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데 탁월한 재주를 발휘했던 장거정은 어린 만력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으며, 둥글둥글한 결정으로 모든 세력을 끌어안으려 했던 신시행의 노력은 갈등의 첨예화를 막아주었다. 하지만 장거정의 날카로움은 주변에 수많은 적들을 양산하였고, 신시행의 우유부단함은 현실질서에 아무런 변화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청렴결백함을 뽐내던 해서의 융통성 부족이 명 사회가 필요로 하는 변화를 외면했다면, 뛰어난 무관이었던 척계광은 시대가 허락지 않았다. 변화를 필요로 하지만 그러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세력은 허락지 않는, 이는 명 사회가 안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모순이었다. 이러한 모순은 이탁오가 이러한 모순에 정면 충돌, 결국 자신을 산산조각 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머리로는 변화를 꿈꾸지만 당장 자신의 삶은 변화를 필요로 하는 현실로부터 좀처럼 떼어낼 수 없었기에 그의 고민은 결국 자기 파괴라는 선택을 낳았다. 만력제 역시 이러한 모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니, 무려 46년을 왕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그에게 이러한 모순은 골치 아픈 것일 수밖에 없었다. 초창기 관심을 가지고 행하던 각종 의례도, 정치도 훗날 모두 회피함으로써 그는 자유를 꿈꾸었다. 하지만 그는 왕이었고, 왕이라는 그의 위치는 회피 아닌 적극성을 요구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명은 운이 좋지 않았다. 그렇다. 이들 모두는 변화를 필요로 하는 시기에 변화를 주도해야만 되는 세력이었지만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다. 도덕, 중요하긴 하지만 다분히 추상적인 이 단어에 모든 것을 의지하기에 명 사회는 실로 너무 거대해져있었음을 그들은 직시해야만 했다. 1587년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잔잔함으로부터 모든 것을 읽어내는 저자의 태도에 감탄을 해본다. 서구가 이야기하는 발전이 우리에게도 있었음을 증명해보이려는 우리의 서글픈(?) 노력은 그에게 그리 필요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렇게 명이 멸망했고, 명 이전의 그리고 이후의 왕조들이 무너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사회가 지녔을 긍정성을 찾고파 하는 나의 마음은 여전하다. 이러한 나의 마음은, 역사는 과거 어느 한 순간에 머물러 있지만 어떠한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달라질 수 있기에 비롯되는 나의 작은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이달의 사락 q*****2 2005.10.07.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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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400년 쇠퇴는 조용히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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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력 15년, 그해는 주목할만한 사건은 없었지만, 명 왕조가 사실상 기울기 시작한 시점이었다는 것이다. 중국인이 저자가 보기에 이 1587년부터 시작한 명과 청 그리고 책이 쓰여진 1970년대까지 계속 중국이 무너져가고 있었다. 즉 400년간의 기울어짐이 이 시점에 시작된 것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의 느낌은 조선이란 나라가 결국 명이라는 나라와 거의 유사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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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력 15년, 그해는 주목할만한 사건은 없었지만, 명 왕조가 사실상 기울기 시작한 시점이었다는 것이다. 중국인이 저자가 보기에 이 1587년부터 시작한 명과 청 그리고 책이 쓰여진 1970년대까지 계속 중국이 무너져가고 있었다. 즉 400년간의 기울어짐이 이 시점에 시작된 것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의 느낌은 조선이란 나라가 결국 명이라는 나라와 거의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조선을 소위 신하의 나라, 사대부의 나라이고, 사실 왕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약하고, 신권이 강력한 나라인 것이다. 근대 이 토대가 명에서 출발한다는 생각이다. 명에서 관리가 되다는 것은 정기적인 과거 시험에서 합격한다는 이야기이고, 지배적인 유교의 이념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총명하고 좋은 교육을 받은 만력제가, 신하들의 후계자를 세움에 있어 대립하여 태업을 하여 명제국을 기울게 하는 것이, 결국 천자이지만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신권에 굴복하고 마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끼쳐, 광해군의 세자 책봉을 계속 거부하였다.)

 

 대조적인 대학자이자 실권자 두 사람이 비교된다. 만력제 초기 시절 권력을 잡아 황제의 스승이되고, 중국을 사실상 조정한 장거정과 장거정 사후 화합적인 행보를 보였지만 역시 존재감이 부족한 신수행을 들고 있다. 두분다 훌륭한 정치인이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천자의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한편 당시 관료들에게는 추앙과 모범을 보여주었지만, 정치적으로 둔감하고 소위 튀는 행동을 한 해서의 경우나, 이탁오의 경우를 책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아마 이 분들이 남긴 기록물이 그 시대를 읽는데 많은 도움을 준 것이 가장 클 것이다. 그리고 고독한 군인 척계광의 이야기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명나라가 중앙 집권적인 제도와 관료제가 잘 갖추어져 있는 사회였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농경사회였다. 이것이 조선과도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조선의 경우에도 양반이 출세하는 것은 좁은 과거를 통하는 것이었고, 명나라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또한 명나라의 농민들에 대한 중앙 정부의 세금은 많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관료가 녹봉만으로는 살기 어려운 구조였고, 또한 씨족을 대표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농민들을 착취하고 살아가야만 하는 구조였던 것 같다. 조선도 지방관으로 가면 챙겨줘야 할 것이 많은 것과 유사하다.

 

 명나라가 군사적으로도 아주 취약한 것을 알 수 있다. 왜구 몇십명이 조직을 이루어 다니면 큰 규모로서로 진압하지 못한 것이 책에서 드러난다. 명나라가 문관 중심의 사회이고, 무관은 상대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구조, 병역의 의무는 있지만 은을 내어서 병역을 대신할 수 있는 제도 등으로 군사력이 떨어진다. 만력제 시절에 무기체제도 당시의 최신 무기인 대포등을 이용하기 보다는 농민군을 활용할 수 있는 재래식 무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편제되었다는 것도 흥미롭다.또한 남군과 북군 사이의 갈등 부분도 당연한 일일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보기에는 쓸데없는 노력인 만리장성의 보수 활동을 진행하였다.

 

 이 책은 본문도 재미있지만, 부록을 보면 저자의 생각이 잘 드러난다. 중국이 지는 것이 안타깝고, 중국이 자본주의화와 산업화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드러난다. 그리고 일본군과 전쟁을 한 중일전쟁시의 초급 지휘관이었던 저자의 경험이 근대가 아니라, 전근대적인 군대를 지휘한 느낌이 든다. 

z******g 2010.12.1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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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들춰보다
"숨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들춰보다" 내용보기
작년에 읽다가 포기한 레이 황 교수의 <1587 만력 15년 아무일도 없었던 해>에 재도전했다. 절판된 책을 중고로라도 구하려고 그렇게 애를 썼지만 구할 수가 없어서 안타까워하던 차에 작년에 재출간된다는 소식에 바로 샀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어렵고 구하고 나서도 한동안 읽지 않고 있다가, 며칠 전에 무슨 마음에서인지 읽고 있던 책도 내팽개쳐 버리고 바로 집어 들었다.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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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읽다가 포기한 레이 황 교수의 <1587 만력 15년 아무일도 없었던 해>에 재도전했다. 절판된 책을 중고로라도 구하려고 그렇게 애를 썼지만 구할 수가 없어서 안타까워하던 차에 작년에 재출간된다는 소식에 바로 샀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어렵고 구하고 나서도 한동안 읽지 않고 있다가, 며칠 전에 무슨 마음에서인지 읽고 있던 책도 내팽개쳐 버리고 바로 집어 들었다. 도서관에서 빌려다가 한 100쪽 정도 읽었는데, 다시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다.

 

중국계 미국인 역사학자인 레이 황 교수는 이 책에서 16세기 명나라 시대를 독자에게 소개한다. 우리나라와도 정말 인연이 깊은 명나라 14번째 황제인 신종 만력제 15년(1587년)에 벌어진 오조 사건에 저자는 주목한다. 큰 반란이나 재해 혹은 외적의 침입이 없었던 1587년을 기점으로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이었던 명나라의 국운이 쇠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명나라를 건국한 홍무제 주원장은 제국을 통치하기 위해 강력한 중앙집권주의 정책을 채택하면서 문관 출신의 관료를 등용한다. 사법에 근거한 법치가 아닌 윤리와 도덕을 제국의 통치이념으로 삼은 관료들이야말로 명조의 실질적인 지배자였다고 레이 황 교수는 역설한다. 최고 통치자인 만력제는 이런 현실에 좌절하고, 경연과 조례를 회피하는 교묘한 태업으로 문인 관료들을 골탕먹인다. 경연을 통한 상하 소통의 기회가 무산되면서, 제국의 위기가 시작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독창적인 주장이다. 그리고 왕조국가의 절대권자 황제조차도 신하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저자의 예리한 시선은 놓치지 않는다.

 

어린 나이에 선대 융경제의 뒤를 이어 즉위한 만력제는 내각대학사이자 관료조직의 수장인 장거정의 보필을 받아 제국을 통치한다. 황제로서 행해야 하는 수많은 의례는 젊은 군주를 옥죄어 온다. 관료들은 사적 공간에서 음(陰)을 행하기도 하지만, 공인으로서 천자에겐 그런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스승 장거정은 어린 황제가 관심을 보인 서도도 금하고, 공맹의 사상에 사서삼경(四書三經)에 따른 유가적 질서만이 제일이라는 전통적 가르침을 전수한다.

 

황제의 스승이자 최측근으로 황제의 대리인으로 10년간 제국을 실질적으로 통치해온 장거정은 입신양명과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는 문인 관료들로부터 끊임없는 질시를 받아 수시로 탄핵을 받는다. 하지만, 환관의 우두머리인 사례태감 풍보의 전폭적인 지원과 만력제의 절대적인 신임으로 장거정은 재정안정을 위한 전국적인 토지 측량과 근무평정법 같은 개혁 정책을 추진했다. 그 와중에 전국의 지식인과의 마찰은 불가피했고, 비대해진 관료 조직은 하루가 다르게 복잡해지는 사회의 여러 현상을 대처할 수가 없었다. 장거정 사후, 언행이 불일치했던 수보의 과거 행적이 정적의 끊임없는 상주에 의해 드러나게 되면서 만력제는 과거의 스승에 대한 신임을 거두기에 이른다.

 

장거정의 뒤를 이어 수보의 자리에 오른 신시행은 전임자의 좋지 않았던 말로를 잘 알고 유화적인 정책을 채택한다. 한편, 친정을 시작한 만력제는 황위 계승에서 장자가 아닌 총애하는 정귀비가 낳은 세 번째 아들을 태자로 정하려고 하다가, 종법제도를 앞세운 ‘폐장입유(廢長入幼)’는 절대 불가하다는 백관의 제지를 받고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황제의 전례에 벗어난 어떠한 행동도 기존 질서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거부한 관료 집단과의 힘겨루기에서 황제는 완패했다. 무사안일의 게으른 군주였다는 세간의 평가에, 저자는 관리들의 저항으로 무엇하나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없었던 비운의 황제 만력제를 ‘자금성의 죄수’라고 표현한다.

 

황제를 꼭두각시로 만들고, 기득권을 지키는 현상유지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관료 집단의 이중성을 레이 황 교수는 날카롭게 꼬집는다. 사실 검소와 질박함을 추구하는 명나라 시대 관리들의 비현실적으로 적은 봉급은 필연적으로 부정부패를 잉태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이었다. 인재 선발이라는 취지에서 시행된 과거제 역시 관료 집단의 조직화의 수단으로 악용되면서 낡은 체제를 지탱하는 방법으로 전락해갔다. 물론, 봉건적 질서로 유지되던 명조 시대에 인권이나 행정의 효율, 군대양성 같은 근대적 사고는 처음부터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그런 면에서 만력제 시대에 등장한 다음의 세 명의 걸출한 인물을 통해 당시 명나라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파헤친다.

 

그 첫 번째 주자로 등장하는 해서(海瑞)는 역사상 가장 청렴한 관리의 전범 같은 존재였다. 고지식한 관료 해서는 윤리와 도덕의 철저한 신봉자로, 국가와 인민에 대한 숭고한 책임감에 법의 해석과 철저한 집행을 주장했다. 사대부들은 자신의 주장이 비록 채택되지 않고, 황제에게 극형을 받게 되더라도 역사서에 기록될 수 있다는 자부심에 권력자에 대한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래서 해서는 가정제에게 준엄한 비판을 할 수가 있었던 건 아닐까?

 

신랄한 비판을 담은 상주문을 가정제에게 올리면서 해서는 충직한 신하라는 전국적 명성을 얻게 된다. 가정제 사후, 해서는 지방관으로 복직하지만 가는 부임지마다 향신, 신사와 충돌하면서 결국 강제 퇴직당한다. 혈혈단신으로 문인 조직의 이중성에 몸으로 저항한 해서의 이미지는 당랑거철(螳螂拒轍)의 고사를 떠올리게 한다. 나중에 등장할 장군 척계광, 사상가 이탁오 역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사회 질서를 흔들 수 있는 인사라는 것이 당대 문인들의 공통된 평가였다.

 

북로남왜(北虜南倭)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북쪽의 몽골족과 남쪽의 왜구에 의한 침입으로 만신창이가 된 명조에 장군 척계광(戚繼光)은 구세주 같은 존재였다. 척계광이 개발한 뛰어난 전술, 엄정한 규율과 훈련을 통해 양성된 척가군은 기존의 정부군의 실력을 능가했다. 물론, 중앙정치인 장거정의 전폭적인 후원이 없었다면 척계광의 성공 또한 없었을 거라는 것이 레이 황 교수의 분석이다.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던 척계광은 무관으로 한계를 인식하고, 사회 전반의 유기적인 개혁이 아니라 제한된 군사 개혁을 시도했다. 외적의 침입에 대비한 상비군 조직과 상비군을 유지하기 위한 보급은 전적으로 문인 관료의 몫이었고, 무관에게 창의적인 전술 개발 같은 따위는 아예 기대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2만 명에 달하는 관료들에겐 개혁의 의지는 물론 능력도 없었다. 결국, 장거정이라는 거물의 보호막이 사라지자, 척계광은 숙청되고 쓸쓸하게 말년을 맞이했다. 그리고 30년 뒤, 만주에 일어난 누르하치와 그의 아들들이 이끄는 팔기군과 농민반란군과의 대결에서 명나라 군대는 제대로 힘을 써 보지도 못하고 대륙을 내주게 된다.

 

해서와 척계광이 각각 지방행정과 군문을 대표하는 인사였다면, 사상계에서는 이탁오가 있었다. 이탁오는 일찍이 사회적 모순에 대해 관심을 둔 지식인이었다. 저자는 중국에서 일가가 성공을 이루기 위한 방정식을 제시한다. 몇 대에 걸쳐 지주로 재산을 축적한 다음, 독서인이 관료로 등용되기 위해서는 집안의 전폭적인 지원과 희생이 따라야 하는 지적에, 얼마 전에 읽은 현대 중국작가 왕하이링의 <신 결혼시대>에 나오는 주인공의 갈등이 전광석화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아, 그래서 서로 다른 두 집안의 갈등이 그 소설에서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구나 하는 깨달음을 레이 황 교수의 전문서적을 통해 알게 됐다.

 

미래의 관료 지망생인 독서인이 수년간의 노력을 통해 관리가 되고자 하는 이유는 명예와 이익 때문이었고, 사적 이익과 공적 의리가 충돌은 불가피했다. 이런 사회적 모순과 독서인, 관료가 보여주는 언행의 불일치는 보편적 사회 현상이었다고 저자는 담담하게 저술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직관과 격물에 따른 주관적 견해로 경전해석을 시도한 이탁오는 문인집단으로부터 사문난적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지행합일을 주장하는 왕양명의 태주학파 중에서도 극좌파로 분류된 이탁오는 유가에 입각한 전통적 사고를 하면서도, 말년에는 삭발을 시도한 기인이었다. 유가사상에 원류를 두고 있으면서도, 전통적 가치를 부정한 이 사상적 이단아는 자신이 쓴 저서의 운명을 예측이라도 하듯, <분서(焚書)>라는 이름을 붙였다. 명나라의 실질적인 주인이었던 문관 관료와 이탁오는 불화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명대 조운(漕運) 연구 이래, 20년간의 집중적인 자료 조사와 꾸준한 연구를 바탕으로 레이 황 교수는 <1587 만력 15년 아무일도 없었던 해>에서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이던 해에 진행된 역사적 사건의 유기적 연관성을 파헤친다. 사적 유물론에서 주장하는 중국 봉건시대의 자본주의 맹아론을 부정하면서, 궁극적으로 왜 명나라 멸망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조명한다. 광활한 제국을 통치하기 위해 정교하고 통일된 사법 시스템이 아닌 윤리와 도덕에 기초한 통치가 모든 문제의 근원이었다고 저자는 선언한다. 문관 관료의 주된 관심은 농업국가인 명나라의 현상유지였고, 이자성이 주도한 인민의 무장투쟁과 청나라의 침략 같은 내우외환이 닥치자 제국은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1587년에 등장했던 만력제, 장거정, 신시행, 해서, 척계광 그리고 이탁오 같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전기 양식의 서술은 전문서적의 대중화와 이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저자의 독창적 견해의 피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훌륭하게 잡아냈다. 최근에 읽은 최고의 역사 저술이라고 한다면 과언일까. 이 책을 읽은 다음에 바로 올해 출간된 조너선 스펜스의 <룽산으로의 귀환>을 읽고 있는데, 어쩌면 이렇게 시대상이 딱 들어맞는지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다. 언제나 그렇듯, 이런 예상하지 못한 연관서적과의 만남은 고된 독서의 여정에서 숨은 즐거움이다.



h******1 2010.11.0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