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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글에서 간간한 맛이 난다. 비릿한 짠내가 난다. 외로움이 덕지덕지 묻었으니 쓸쓸한 글이다. 한창훈의 바다 이야기다. 그에게 바다는 그저 익숙한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가지는 바다에 대한 감정, 낭만이나 휴양의 의미에서 훨씬 물러나있다. 생활이고 생존이었던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바다, 그리고 바다를 통해 경험한 것들이 내면화 되어 언어로, 감성으로 발산되는 바다. 내가 보기엔 이 두 가지 모두 한창훈 작가의 곁에 있다.
시 같다. 그런데 한창훈은 거문도 사람들이 자신을 시인이라고 할 때 기분이 좋지 않다. 그는 소설가니까. 그러나 주민들은 그렇다치더라도(주민 중 한창훈 작가의 책을 읽은 분이 얼마나 될런지) 정작 읽고 있는 내가 그의 운율과 짧고 단호한 문장들에 이건, 시 잖아. 라고 자꾸 생각했다. 나의 이런 반응에 그는 거문도 주민들에게 설명했던 그 말을 내게도 할 것 같다. '바다생활하는 것은 같지만 이를테면 쌍끌이 어선과 해녀의 차이와 같은 것이다.'(254p)
그에게 바다는 어미다. 그는 곳곳에 바다를 어미로 표현한다. 어미의 뱃 속을 유영하듯 한창훈의 마음도, 낱말들도 바다 곁에 머물며 때론 잠수를 했다가 모래 사장에서 몸을 말리다가 배를 타고 엄마 뱃 속을 간지럽히다가.. 그러다보니 어느새 인도양을 건너기도 했고, 최근엔 태평양을 거쳐 북극해를 다녀오기도 했다. 엄마는 참 넓다. 그러면서 가차 없다. 요동치기도 하고 집어 삼키기도 하고 고래들의 쇼를 보여주며 달래기도 한다. 우주의 한점도 안되는 인간들의 행태가 별 볼일 없고 같잖은 것이 되는 순간을 만끽하고 싶다면 대양으로 가보라, 라고 말하는 것다. 나는 갈 자신이 없다. 굳이 가지 않아도 보잘 것 없는 인간이란 족속에 대해 이미 어느 정도 깨닫고 있으니 그걸로 대양에 가지 않아도 되는 핑계를 댈련다.
어쨌든 바다는 엄마가 자식의 모든 걸 품고 삭혀 주는 것처럼, 사람이 바다로 간다고 하면 적당히 용서가 된다. 바다가 다 삼켜준다. "그렇게들 와서 뭔가를 슬그머니 내려놓고 간다. 원망이나, 절망, 집착, 또는 지루함 같은 것들인데, 그런 것들은 살면서 또 쌓이기에 다시 오게 된다. 우리에게 던져진 숙명은 근심이니까. 버림받은 것들은 스며드는 게 바다이다. 수심 4천미터 이곳 아래에도 숱한 사연들이 떠다닐 것이다."(113p) 바다는 많은 걸 묵묵히 받아준다. 싫을만한데도 "그래 너희들의 감정들 언어들을 내가 다 받아주마!" 하고 늘 차렷 준비 자세인 것 같다. 고맙다. 무서운 존재면서도 고맙다. 그래서 어미인가. 얼마전 바다에 뿌려 준, 그 일이 떠오른다. 그래, 잘가. 어미 중의 어미 곁으로. 그러나 "이별만큼은 아무리 해도 훈련이 안됩디다."(122) 영원히 훈련해봤자 실전일 수밖에 없는 것이 이별, 그것도 죽음 앞에서의 이별인 것 같다. "물컹거리며 태 속의 아이처럼 뛰어놀 것만 같다. 손가락 빨며 구를 것 같다. 저곳으로 들어가면 탄생 이전의, 내 기억에서 사라져 있는 세상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못 참겠으면 죽으라는 말이냐. 이곳에서 멸종해버리라는 말이냐. 모든 시간이 사라진다. 지금도 태초의 대폭발중이다. 생성과 파멸은 같은 시간에 이뤄진다. 찰나의 어미와 찰나의 자식이 서로의 꼬리를 입에 물고 회전을 한다. 자식은 어미의 품속을 찾아들고 어미는 자식의 몸을 궤멸시킨다. 죽이기 위해서 탄생시키고 탄생시키기 위해서 죽이는 어미. 그 야멸참과 혹독함." (125p) 바다가 곧 운명으로 들린다. 운명, 죽을 운명. 그 야멸참과 혹독함. 그리고 자유. 비로소 삶에서의 해방.
내가 이 책을 시 같았다라고 말했지만 진지함만 있다거나 감성 덩어리의 글들만 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내가 한창훈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한데, 심각해보이는 감정의 순간에도 꼭 자잘한 유머를 넣어 둔다. 그래서 가라앉을만하면 얇은 유리가 깨져 파편이 흩어질만큼의 진동을 준다. 그게 웃음을 유발하는 그만의 재치이자 매력이다. 거기다 그의 비유와 직접적 표현들. 그의 문장들은 단호하다. 그래서 한 문장씩 마무리하되 다음 문장과의 연결이 잘 된다. 읽는 호흡이 끊기지 않는다. 그래서 한창훈의 글이 좋다. 멸치 대가리를 세며, 소주 한잔씩 입안에 털어넣고는 회상에 잠기는 그의 저음(왠지 저음일 것 같다.)이 나직이 울릴 것만 같다. 귀신 나오는 집에 사는 이야기로 책의 초반부를 가볍게 진입하게 해주더니 점점 어린 시절의 바다로 푹 빠져들게, 그리곤 현재의 한창훈 근황을 보여준 태평양 항해기까지로 묵직하게 마무리한다. 다소 삶의 허무가 묻어나서 염세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내겐 그렇지 않았지만. 사연이 있지만 그 사연들을 심연에 내려놓고 가끔씩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자주 들여다보는 게 두려워 술을 먹고 바다로 나가는게 아닌지. '애가 타고 애가 끓고 애를 써야'(120p) 할 때가 어디 한 두 번이던가. 누구에게나 심연에 가두고 싶은 사연들이 있지 않겠는가.
어부를 꿈꾸는 남편에게 이 책을 건네기 위해 산 책이었다. 제목을 보더니 내 스타일이군, 하더니 한 시간을 쭈욱 읽는다. 저렇게 집중하는 모습 얼마만에 보는 거였더라? 책 읽는 속도가 느린 남편 왈. 이 책 정말 재밌다. 웃긴다 웃겨. 그러면서 후배의 귀신집 이야기와 멸치 대가리 이야기를 한다. 책 후반부 북극해 항해기는 무게감만큼 남편에겐 앞부분만 못했나보다. 뒤에는 재미없어. 하하하, 나는 뒷부분이 좋았는데... 사색의 힘이 느껴지는 부분이었으니까. 아무튼, 남편은 한창훈 책을 달라하더니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를 읽고 (이 책은 개정판을 내면서 제목을 바꿨다. 내 밥상위의 자산어보) 이젠 [꽃의 나라]가 대기 중이다.
이 책의 에필로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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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 쌤의 에세이가 나왔다.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의 두번째 이야기이다. 그 책이 이번에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라는 제목으로 바뀌어 개정판이 나왔고(사진 몇 장 교체되었다고 함), 이번에는 '술상'이다.
이미 카페 연재에서 다 읽은 글들이지만, 책으로 나오니 새롭다. 다시 읽어본다. 술상부터 먼저.
술상, 어른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이번엔 좀 야하다. 야하면서 쓸쓸하다. 소주, 바로 떠오른다. 글 속엔 추억도 있고, 넋두리도 있고, 야한 이야기도 있고, 잠언도 있다. 그야말로 술맛이 나는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술이 있어야 한다.
한창훈 쌤은 마치 개그맨처럼 우리를 웃기다가 철학자처럼 고독해진다. 시인처럼 말을 하는가 하면, 삼류(!) 에로 소설가 같은 이야기를 풀어낸다. 또 섬에 사는 어부 같은 모습인가 하면, 모델은 저리 가라 싶을 만큼의 멋진 모습도 서비스처럼(!) 보여준다. 볼 거리, 읽을 거리가 많은 책. 더구나 이번엔 그냥 먹거리 사진을 찍은 것이 아니라, 작가의 말에 쓴 것처럼, '바다와 나'에 관한 글들이 많아 사진 또한 예술이다. 사진은 예전에 전문 사진가였던 김무환 쌤이 찍었다. 그 또한 섬에 살고 바다와 생활하는 사람이라 한창훈 쌤과 척척, 잘 맞았는지 글과 잘 어울리는 사진을 잘도 찍었다. 읽는 맛과 보는 맛이 아주 제대로인 셈. 그럼 책 이야기 좀 해볼까?
첫장을 여니 작가의 말이 나온다. 웃음이 번지다가 마음이 아파온다. 그리고 이내 무거워진다. 그래, 그랬지. 연재를 시작하며부터 끝날 때까지 한번도 빼먹지 않고 연재 시간을 사수한 터라, 그 아픔을 안다. 바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바다에서 그 많은 아이들이……. 그 아이들의 한을 아무도 풀어주지 않고 아직도 저것들은(!) 저러고 있으니 어떻게 바다 이야기를, 즐겁게 할 수 있었겠는가. 술이 당긴다.
이제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를 시작합니다.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가 가족끼리 바다에서 놀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쓴 거라면 이번에는 '바다와 나'에 관한 것입니다. 다분히 개인적이고 술 관련 어른들 이야기라서(밥만 먹고 살 수는 없잖아요) 더 깊고, 멀리 쏘다닐 예정입니다. 어쩌면 이 책을 통해 '세상에 바다가 있는 이유'를 저도 모르게 말할지 모릅니다. 동승하시겠다면 기꺼이 환영합니다. 편하게 앉아주시고요. 술잔은 옆에 놓아두겠습니다. 일단 건배를 하죠. 풍랑에 시달리고 때론 외롭기도 하겠지만 안전하게 돌아오는 것은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럼 닻 뽑고 돛을 올리겠습니다. 자, 출항합니다. '올 라인 네코!'
이렇게 말해놓고 문학동네 카페에 원고를 연재하던 중인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가라앉았습니다. 이 아름다운 바다에 그렇게 아름다운 아이들을 수장시켜버린 사람들을 생각할 때마다 주먹에 힘이 들어가고 이가 갈렸습니다. 연재를 멈추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아이들을 집단으로 죽여버린 대한민국. 제가 이 나라 국민이라는 게, 그 무능하고 책임 없는 사람들의 안정된 생활과 품위 유지를 위해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있다는 게, 바다가 무참하게 훼손당해버렸다는 게, 용서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역할은 미워해야 할 것과 미워하지 않아야 할 것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목숨과 바다를 지켜낼 수 있으니까요.
바다는 인류가 태어나기 오래전부터 스스로 있어왔습니다. 장마와 폭우가 하늘의 실수가 아니듯 바다 또한 그렇습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깊고 푸르게 출렁거려야 할 곳입니다. 때문에 저는 뒤늦게라도 이 이야기를 마쳐야 했습니다.
304명의 이름, 그리고 바다에서 스러져간 이들 앞에 묵념하며
2014년 여름 거문도에서 한창훈
여는 글을 읽는다. 시작할 때 갖다둔 소주 한 잔 마신다. 한창훈 쌤은 시인도 철학자도 아니면서 이런 글로 독자인 나를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그러니 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거리가 필요하다. 바람과 햇살과 빗방울이 지나가는 공간을 꽃과 나 사이에 마련해두는 것. 그 대상을 통해 꽃을 바라보는 것. '넌지시'의 태도를 유지하는 게 통째로 풍경이 되는 것."
"눈물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렇다면 우리의 별도 어딘가로 떨어지는 중이다. 우주는 위아래, 좌우가 없다는 명제는 이 경우 틀린 것이다. 우리의 별이 맨 처음 만들어진 곳에 신이 있고 거기가 위이다. 그리고 바닥이 어디인지는 아직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바다는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은 눈물은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과 같다."
"이 책은 바다에 대한 나의 대답이다. 더군다나 술은 바닷물과 더불어 가장 가깝게 지낸 액체이며 무언가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나는 오늘도 바닷가에서 술잔을 든다."
본문으로 들어간다. 이젠 아예 한 챕터 끝날 때마다 술을 마신다. (아, 안주는 마른 멸치라는 건 이쯤이면 다들 알 것이다)
아직도 회자되고 있는 그 옛날, 사라호 태풍으로 인해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 「죽음과 마주하여 소주 한 사발-팔경호 이야기」를 필두로 섬에 들어와 쓸쓸하고 외로웠던 날들의 기억 「집」, 북쪽으로 가기 전에 다녀왔던 서쪽으로의 항해 「이별은 훈련이 안 돼-서쪽 항해기」, 폭설 속 일본에서의 추억이 담긴 「폭설 속에서-참치 이야기」, 어린 시절의 에로틱했던 순간을 담은 「아름다웠던 순간들」 그리고 쥐치 목걸이와 손가락에 관한 짧은 소설 같은 이야기 「어떤 목걸이-쥐치」, 마지막으로 지난 해 떠났던 북극으로의 항해기를 담은 「북쪽 항해기」 읽는 글들마다, 웃음이 나거나 얼굴이 붉어져서 깔깔거리다가 고독해지고 외로워지는 것은 한순간. 독자의 마음을 들었다놨다, 하는 글.
연재 때의 기억으로 이 정도로만 소개하련다.(이제 다시 읽는 중이니까) 궁금한 것은 직접 읽어봐야 하는 일. 밑줄 그을 문장이 많으니까, 천천히 소개하는 걸로.
마지막에 한창훈 쌤은 이런 질문을 던지며 끝을 낸다.
배가 한 척 생긴다면 당신은 어떤 항해를 하겠는가.
이젠 당신들이 읽고 질문에 답을 할 때다. 소주 필참(뚜껑 처리는 철저히). 안주는 멸치면 충분하다. 여럿이 마시기보다는 혼자서 마셔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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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어보는 정약전 선생이 쓴 책으로 흑산도에서 귀양 생활 6년 동안에 조사 연구하여 만든 해조류에 대한 기록이다. 수산고문헌 중에서는 대표적으로 분류된다. 어류를 비롯하여 해조류, 패류, 게ㆍ새우류, 복족류 및 기타 수산동물들의 형태를 기록하는 동시에 각종 동식물의 성질까지 언급돼 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해조류에 대해서 잘 인지토록 하는 안내서와 같은 구실을 하고 있다. 바다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바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만드는 책으로 우리들에게 감사를 느끼게 만든다.
저자는 바다에 관한 기록을 하면서 정약전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의 언어를 자신이 전하는 이야기의 타이틀로 삼았다. 이 책은 바다의 생명체보다는 사람의 이야기가 많다. 바다를 보면서, 바다와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은 내용을 이루고 있다. 물론 이야기의 안주가 되는 것이 바다의 생명체다. 많은 이야기가 저자의 주관에 의해 각색되어 기지와 멋으로 가지고 전개되고 있다. 잘 읽힌다. 기록적인 성격을 지닌 글이지만 색다르게 읽힌다. 소설가의 의미 있는 구성이 그렇게 만드는 듯하다.
홍콩 항의 야경은 세계 속에서 가장 으뜸이라고 말한다. 그것을 표현하는 말이 “ 멋지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하다. 기가 막힌다. 죽인다.”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문장이 좀 거칠지만 그 느낌은 진솔하게 다가온다. 이 글의 저자는 소설가이면서도 뱃사람이다. 그러기에 조금은 언어에 바다의 기운이 담겨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의 삶은 배를 타고 세계를 주유하고, 그것을 이렇게 언어와 이미지로 담아내는 일이다. 정말 매력적인 생활을 하고 계신 분이다. 또 이야기 중 부분 부분에서 거문도를 배경으로 하여 성장과 삶 속에서 일어난 일들을 표현한다. 기억 속에 있는 내용을 끄집어내어 바닷물에 씻고 있는 것이다. 자유롭고, 의지적이고, 분방한 그의 삶의 모습이 더러는 행복해 보인다.
네 명의 동승자(시인 김해자, 이원규, 소설가 오수연. 나)와 모국어와 감자탕과 박상천의 노래 <무조건>을 싣고 있다. 배는 떠다니는 조국이다. 나는 세 작가에게 말했다. 우리는 사실 이 행해가 끝난 뒤 다시 한국에 살고 있었다. 조금 전, 우리는 술을 마시며 자루가 터져버릴 때까지 금화를 받아버린 거치처럼 이 여행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사무치고 있었다. 그러다 순서가 헷갈려버린 천사가 다시 나타난 것처럼, ‘한 번만 더’를 간절하게 원했던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순간 이동해서 이렇게 항해를 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라. 그의 삶의 방식이 잘 드러난다. 이 글이 써진 주 무대의 이야기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도 알아볼 수 있는 내용이다. 바다와 술과 사람이 어우러진 낭만이 가득한 세계가 그가 살고 소망하는 세계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그의 언어를 읽으면서 그들과 동행해 바다를 즐길 수 있다.
첫 이야기는 홍콩에서 암스테르담까지의 여정 속에 조각된 내용이다. 바다의 유목민이라는 개념으로 그들의 삶이 이루어지고 있고, 바다에서 바라보는 하늘이 별이, 인생이 표현되고 있다. 그들을 태운 배는 동지나해를 지나 인도양을 거처 홍해로, 지중해로 나아간다. 각 곳의 풍광이 술잔 속에 녹아 흐르고 있다. 다양한 경험이 지나는 길을 수놓고 씨줄과 날줄로 엮여지고 있다. 이야기가 지겹지 않다. 겪은 내용들이 특별하고 새로운 세계로 우리들을 인도해 주기 때문이다. 이들을 뒷받침하기 위해 많은 보조 자료들이 제공되고 있다. 자신의 작품에서 특별한 글귀를 가져오고, 타인이 쓴 글도 이용하고 있다. 사진이 곁들여 지는 것은 책의 소중한 구성이다. 바다가 이미지로 펼쳐지는 공간에 우리들은 침묵하며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야기 속에 참치에 대한 기록이 있다. 안주로 남다르게 생각하는 고기다. 어느 공간에서 주인과 인정을 나누는 가운데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안주, 그 속에서 해산물에 대한 저자의 가득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참치 맛, 그 선홍빛의 맛, 잘 갈아놓은 밭고랑처럼 기름기가 층을 지어 스며들어 있는 모습과 그것이 주는 질감, 씹히는 살의 탄력, 이를 거부하지 많지만 그렇다고 순종적이지도 않은, 적당히 저항하는 감촉, 그 둘이 서로를 편들며 뒤섞인다. 강렬하되 재촉하지 않고 부드럽되 연역하지 않다. 참치에 대한 저자의 소감 속에 절절한 마음까지 읽어볼 수 있으리라.
저자는 바다를 생각하면서 17살의 어린 시절을 기억한다. 그때 만났던, 다양한 일들이 이후 바다의 이미지로 그를 지배하는 모습을 보인다. 세월이 흘러 영화 <박하사탕>에서 “나 다시 돌아갈래” 외치는 장면이 나왔다. 뒤이어 그것을 패러디한 어떤 영화에서 “나 돌아버리겠네” 장면이 나왔을 때 나는 열일곱 살의 바닷가가 떠올랐다. 만역 내가 터무니없는 짓을 한다면 그때 좀 돌아버렸기 때문이고, 곧 죽는다면 그때 수명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아름다웠던 순간들에서 추억한다. 이 글귀는 저자가 17살의 그 바다가 얼마나 많은 영향력으로 그에게 다가와 있는가를 증명하는 것이다.
다음 이야기로는 인천에서 베링 해까지를 여행기로 실었다. 여행을 하는 과정 속에 쥐포에 얽힌 이야기, 고래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나간다. 그러면서 각 항구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가득하다. 날짜 변경선을 자나면서 하루를 이틀 사는 내용도 나온다. 선장이 눈리수거가 안 되었다면서 화를 내는 내용도 들어 있다. 광어 낚시터. 개썰매 대회의 종착지, 유빙에 괂한 이야기도 있다. 많은 다양한 이야기가 끝이 없이 나오고 있다.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감사하다.
글쓴이가 궁극적으로 바다를 바라보는 관점이 잘 기록된 부분이다. 사람의 알몸과 가장 가까운 게 바다다. 목욕탕을 제외하고는 바다만이 알몸을 용서한다. 그나마 목욕탕은 돈을 내야 한다. 수영해도 안 되고 잠수도 못하고 특히나 주변 풍경이 볼품없다. 바다에 대한 저자의 주관이 강하게 드러난 글이다. 바다와 알몸, 그 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자신이 겪은 이야기들이 본능과 미묘하게 결함하여 감성적으로 치환되어 나타난다. 상당히 적극적이고 원색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해녀의 이야기며, 바다에 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된 이야깃거리로 제공된다. 기억 속에서의 이야기들도 남자로서 여인의 은밀한 부분을 밀도 있게 드려다 보는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바다는 솔직해지도록 만드는 모양이다. 넓은 마음이 되게 만들고, 사소한 인륜이라든지 거추장스런 법 등이 제거되는 모양이다. 그렇기에 많은 이야기들이 감각적으로 소주와 함께 되 뇌여 지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주어진 많은 이미지에 감사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강한 느낌을 수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이미지, 대리만족 같은 것을 느끼면서 이미지들을 만났다. 그리고 유머와 위트가 있는 저자의 언어를 통해 즐거움이 가득한 시간을 만났다. 기록의 의미가 강하지만 기록으로 끝나지 않는 것은 저자의 지식과 화법 때문이리라. 바다에 대한 사랑과 바다의 생명체에 대한 소중한 기억이 곳곳을 넉넉하게 채우고 있다. 그 지식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바다에 깊이 빠져있는 자신을 만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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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술에 대한 갈증을 느껴본 것이 참 오랜만이다. 술에 약한 체질 때문에 술을 많이 마시지 못하고, 많이 먹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지만 이 책 속 몇 곳은 읽으면서 당장 술을 부어놓고 마시고 싶게 만들었다. 아마도 금요일 밤이나 토요일이었다면 소주를 꺼내어놓고 조금씩 홀짝이면서 읽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어느 순간 취해서 책을 내팽개치고 졸았겠지만. 제목대로 나에게 가장 강한 인상으로 남겨진 것은 술이다. 그리고 그가 배를 타고 돌아본 여행과 바다 이야기다.
한창훈이란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오래되었지만 실제 그의 책을 온전하게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단편은 읽은 기억이 있는데 장편은 없다. 장편 몇 권을 사놓았지만 어딘가에 처박혀 있다. 낯익은 이름 때문에 선택했지만 그냥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그의 글이 주는 재미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이전에 그의 글을 좋아하던 누군가의 평이 생각났는데 이제 왜 그랬는지 조금은 이해하겠다. 그리고 그의 다른 자산어보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시인이 보는 지구는 우리와 다르다. 시인은 지구를 허공에 떠 있는 푸른 물방울이라고 말한다. 놀라운 비유다. 이 비유는 자주 등장한다. 작가의 비유가 아니다. 바다 위를 향해하는 배 위에서 그는 푸른 물방울을 말하고, 한 잔 술을 마시면서도 말한다. 단순히 비유만으로 이 책이 나에게 다가온 것은 아니다. 술에 대한 갈증만도 아니다. 바로 작가의 삶과 경험이 격렬한 표현 없이 자연스레 드러나면서 조용히 가슴 한 곳에 내려앉는다. 그가 강렬하게 바라던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문장은 감정의 파도를 더 높이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심심하지만 이 담담한 글이 이어지면서 만들어내는 조그만 감정의 파도는 어느새 가슴 전체를 적시고 있다.
상선을 타고 홍콩에서 로테르담까지 간 항해기도 좋지만 고래를 보기 위해 탄 북해 향 조사선의 글은 더 좋다. 간결한 문장은 현실을 보여주고, 일상에 큰 변화는 없다. 하지만 이동하면서 만나게 되는 몇 가지 이야기는 이 여행의 소소한 이벤트가 된다. 담담하게 있었던 일만 적어나가는 작가의 글을 보면 너무 건조하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지만 나는 그 건조함과 간결함이 좋다. 그래서 작은 이벤트만 생겨도 반갑다. 흥겹다. 나도 한 번 이런 배를 타고 싶어진다. 물론 실제 이 배를 탄다면 글로 표현된 것 이상의 것을 견디면서 힘들게 보내야 할 것이다. 내리면 또 다른 감정이 생기겠지만.
그의 다양한 이력 중 배를 탄 것과 현재 거문도에 거주한다는 것이 눈길을 끈다. 이런 이력은 그의 삶을 심난하게 만들었지만 어느 순간 글의 좋은 자양분이 되었다. 작가가 된 현재는 더욱 그렇다. 이 책 곳곳에 조금씩 흘러나오는 그의 과거사는 비교적 평탄했던 나의 삶과 비교된다. 그렇다고 나 자신이 삶을 어렵게 만들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단지 조금 더 많은 여행을 하고 더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을 뿐이다. 수십 일을 배 위에서만 생활한다는 것은 또 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물론 그 배 위에서 일을 한다면 그의 말처럼 술로 힘겨움을 이겨내야 하는 힘든 현실이 먼저 다가올 것이다. 연약한 책상물림의 환상이란.
자산어보란 이름이 제목에 들어있지만 실제 자산어보의 내용은 거의 없다. 몇 개 나오지만 그 흔적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 어쩌면 술과 바다와 물고기들이 이 책에 자산어보란 이름을 붙이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흑산도 연해에 유배된 정약전이 바다를 보면서 좋은 어보를 쓴 것처럼 그도 어쩌면 그 기억에서 비롯한 작업을 했는지 모르겠다. 술 한 잔과 멸치 한 마리는 조용히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술을 마시게 싶게 만들고, 귀신과 집 이야기 등은 스산한 느낌을 주지만 이성의 강한 힘을 느끼게 한다. 이렇게 이 책은 감상과 이성을 조용히 흔들면서 나를 사로잡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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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우리는 잠시 다른 세계로 떠나본다. 직접 살아보지 못한 삶 속으로 들어가보기도 하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환상의 세계로 떠나보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바다’라는 ‘환상(?)의 세계’로,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한창훈이(여기서 작가 이름에 아무 호칭이나 존칭을 붙이지 않는 것은 그래야 이 책이 준 어떤 느낌을 더 살려주는 듯해서 쓰는 것이니 용서해주시길) 들려주는 바다이야기는 그야말로 현실의 미지이며 미지의 현실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누구는 바다 위에서 이런 삶을 살고 있으니 현실인데 나는 전혀 그 삶이 상상이 되지 않으니 미지이다. 이렇게 강렬하게 다가오는 현실이자 미지인 것, 바다. 바다의 매력이 철철 넘쳐나는 책이다. 나에게 바다란, 한여름 더위를 씻어내는 피서지이다. 물놀이와 생선회와 불꿏놀이 등이 떠오르는 그런 곳이다. 어쩌면 ‘바다’하면 떠오르는 이런 것들은 정말은 바다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내가 떠올리는 물놀이, 생선회, 불꽃놀이에는 바다가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창훈의 글에서는 다르다. 그의 글에서는 정말 진한 바다 내음이 난다. 거칠고 묵직하고 어딘가 절절하고 또 화끈한 바다 이야기가 있다. 이 책은 바다같은, 바다의 파도같은 글이다. 이 책 속 바다는 인생이라고 말해도 될까? 모든 것을 넉넉히 품어버리며 침묵하는 잔잔한 것이기도 했다가 석양에 물들어 붉은 기운을 머금어 설레는 것이 되기도 하고, 먼 바다에서는 360도 회전을 해봐도 끝없는 수평선만 늘어선 곳이기도 하다. 때로는 거친 파도가 집어삼킬 듯 배를 뒤흔들다가도 낚싯대를 드리우면 살아서 펄펄 날뛰는 물고기를 낚을 수 있고, 제대로 대면해보지 못한 미확인생물체와 어렴풋이 만나기도 하는 곳. 누군가에게는 삶의 밑바탕이고, 누군가에게는 존재의 터이며 누군가에게는 치유의 공간이자 우주의 신비와 마주하는 공간이다. 어쩌면 이런 것 전부가 우리 인생을 닮았다. 이 책은 이런 바다를 항해하는, 낡았지만 숙련된 배 한 척이 그려내는 뱃길을 닮았다. 물론 우리네 인생을 바다에 빗대는 표현들은 종종 들어왔지만 바다 위의 삶, 바다와 인간을 이렇게 밀도 있게 그려낸 글은 처음이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바다를 잘 알지 못하는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치 나 자신이 아주 오랫동안 바다 한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는 듯 생생한 느낌, 짜릿한 전율에 빠지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이 책 제일 앞에 실린 '팔경호 이야기'는 나를 울렸다. 태풍 '사라'의 손아귀에서 살아남은 팔경호 선원 10명의 이야기, 태풍이 시작된 후 목숨을 걸고 고향섬으로 출항하는 부분부터 태풍이 지나가고 모두가 장례식을 치르는 5일 후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그들의 이야기는 나를 펑펑 울게 하고야 말았다. 성난 폭풍과 거대한 파도가 덮쳐오는 험난한 바다 이야기는 여느 드라마나 영화보다도 생생하게 다가왔다. 거친 바다를 배경으로 오히려 더 큰 능력을 발휘하는 시대의 영웅이 아니라 아무런 힘도 없는 나약한 섬사람들이 그저 ‘신념’ 하나를 걸고 파도 속으로 뛰어드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나는 바다를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창훈의 글을 읽고 앞으로 ‘바다’를 안다고 함부로 말하지 못하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나는 바다를 잘 모른다. 그러나 한창훈의 글에서는 바다가 느껴진다. 글을 모두 읽고 나니 사진 속 그의 얼굴은 바다를 닮았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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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은 육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들었다면,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는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바다 저 멀리 수평선에 떨어지는 낙조를 바라보며 무언가 깊은 상념에 빠져있는 저자의 모습이 인상적인 표지다. 누군가는 자연의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감탄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이 거대한 물방울 행성에 작은 존재로써 울적함을 달래기 위한 사색에 잠기기도 한다. 몇 일전 바라본 바다의 낙조는 명멸해가는 아름다움의 끝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안경을 쓴데다 물에서 헤엄치는데 서툰 내게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워터파크에서도 물에 깊이 빠져들면 정신이 없다. 바다에 대한 기억은 그저 이동수단이나 취미생활을 즐기기 위해 낚시를 잠시 즐긴 것밖에는 없다. 실제로 바닷사람들의 생활을 겪어보거나 이들이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가졌는지는 텔리비전을 통해서 볼 뿐이었다. 제목을 보아하니 바다와 술에 관련된 이야기라는 점을 짐작해볼 수 있는데 실제로 섬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부가 많은데 술을 많이 마신다고 한다. 고단한 삶을 술로 달래고 이겨내며 이들이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즐거움이 바로 술이라는 것이다. 밥상이 아닌 술상을 더 많이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친 그들이 생활이 다듬어지지 않은 말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실 그 표현들을 날 것으로 받아들이기엔 거북하기도 하다. 적나라한 성적인 은유들이 난무하고 그 표현들이 물 흐르듯 당연하게 흘러나오기 때문에 막을 도리가 없었다. 아마 난 바다만 계속 바라만보면서 생활해야 한다면 외롭고 쓸쓸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듯 싶다. 수평선보다 지평선이 더 안정적인 이유는 흔들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바다가 고독이라는 말과 동의어처럼 쓰이는 까닭은 밤낮의 변화 외에는 그저 말없이 똑같은 모습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리라. 지상에서 바라볼 때는 가슴이 확 뚫리는 기분이었는데 술을 잘 마시지 않은 나로써는 쉽게 공감하기는 어려운 내용이었다. 작가가 느끼고 만났던 모든 순간들은 우리를 대신해 그들과 같이 울어주고 외로움을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을까? 이 푸른 물방울 행성에서 우리는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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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전의 <자산어보>를 백과사전에서 검색하면 대체로 이런 설명이 나온다. "흑산도 근해의 수산동식물 155종에 대한 명칭·분포·형태·습성 및 이용 등에 관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바다에 대한 지식이나 관심 없이도 순조14년에 지어진 정약전의 <자산어보>는 당대는 물론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한다는 노래가사는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죄를 짓고 귀양살이 간 자가 넘치는 시간을 주체 못 하고 바다와 싸우며 만들어낸 빛나는 업적을 두고 경이와 감탄이 아니면 대체 무얼 더 해야 하겠는가. 나는 바다를 잘 모른다. 다만 변화무쌍하고 예측불가능하며 온갖 신비의 마법을 보여준다는 것만은 안다. 한창훈 작가에게 바다는 집 앞 마당 뛰어놀듯 익숙한 그런 곳인가 보다.
바다가 애정의 대상이어서가 아니라 익숙한 것이라는, 던져졌기에 고스란히 살아갈 뿐이라는 남자가 바다와 바닷물과 술잔에 대해 털어놓는다. 바다로부터 시작된 모든 이야기를. 벅차고 슬프고 기쁘고 아름답고 지루한 인간이 가질 법한 모든 감정을 들었다놨다 하는 요물같은 바다의 비밀을. 바다와 술잔의 교묘한 접목은 서정적 문체와 만나 더욱 빛을 발한다. 그리고 유혹한다. 배고파서 소주, 싸우고 소주, 화해해서 소주, 힘들어서 소주, 졸려서 소주, 다쳐서 소주, 외로워서 소주, 고기가 잘 잡혀서 또는 잘 안 잡혀서 소주, 항구로 돌아온 기념으로 소주. 도처에 소주가 있고 소주는 만병통치약이다.
수만가지 종의 신비를 품은 바다, 파도와 어둠과 바람이 합세하여 목숨을 빼앗는 불량배 바다, 따사한 햇살과 살랑이는 바람과 잔잔한 파도가 만들어내는 하늘 아래 둘도 없는 평화. 바다에서 만난 자들은 금세 친구가 되어 사람의 정을 나누고 고된 세상살이를 털어놓고 다시 인생이라는 긴 바다 위를 항해한다. 바다, 산, 강, 하늘은 하나이지만 보는 위치, 각도, 기분에 따라 모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다르지 않다면 수천 번 수백 번 배를 타고 그 망망대해로 나갈 리가 없다. 흥취와 술맛과 사람과 자연과 외로움과 괴로움과 생사를 건 위협. 적막과 위협 속에 따뜻한 엄마 품처럼 아무 대가없이 보호하는 변화무쌍하면서도 자상한 바다를 만나기 위해 바다로 뛰어나는 것말고 할 수 있는 일이 또 있을까.
비교적 손쉽게 바닷가에서 친한 사람들과 조개구이를 먹을 수 있는 도시에서 자랐지만 대도시의 불빛 찬란한 바다는 너무 크고 시끄럽고 조악해서 제대로 마주하지 않은 순간이 많았다. 휴가철이면 지긋지긋하게 몰려드는 사람, 쓰레기, 사건사고, 뜨겁게 내리쬐는 볕까지. 돌이켜보면 행운인 것들을 다시 보게 하는 것도 잠시, 바다라는 세계가 주는 달콤한 항해에서 벗어나면 자연의 어마어마한 파괴력과 운항의 비예측성까지 무덤덤하게 감당해야 하는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삶이 축복인지 비극인지 생각해본다. 부산만 해도, 해운대, 송정, 송도, 자갈치, 광안리 모두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내음을 풍긴다. 풍광도, 느낌도 많이 다르다. 부산항에 직면한 우리 집에서 보이는 저 먼 바다도 사실 내것이라 여기기 어려울 만큼 멀게 자랐다. 작고 좁은 바다로 가고 싶다.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바다와 사람 사이, 하늘과 땅 사이, 섬과 섬 사이에 나만의 바다를 찾아 내가 앉을 술상을 차리고 싶다. 거기 이렇게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게 바로 삶의 모든 비밀과 자연의 생명력을 품은 바다의 운명이자, 바다에서 먹고 자는 사람들의 숙명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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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라는 책을 침을 흘리면서 읽었다. 나는 전편 리뷰에 아래와 같이 썼다.
그렇기에 이 책을 들고 읽기 시작하는 그 순간 이미 침을 삼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회에 소주라도 한잔 놓고 읽어야 하는 것인가도 생각했었다. 그런데, 즐거운 시간은 딱 팔경호 이야기까지였다. 식재료와 그에 얽힌 군침 도는 이야기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혼자 사는 인생, 귀신 나오는 집에서 사는 이야기, 섬에서 파는 술상이 아니라 그 술을 파는 사람들의 이야기, 읽다보니 자신 인생의 하소연 같기도 하고 어떻게 읽으면 아저씨들이 스스로를 분위기 있고 멋진 사람으로 포장하며 술자리에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는 느낌도 든다. 책 읽기를 중간에 멈추고 싶었으나, 언제까지 이럴테냐 싶어서 끝까지 다 읽었다. 전편에 나왔던 그 식재료들은 술상에 올라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원치도 않는데, 이 책을 손에 들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아저씨의 불끈거리는 순간을 여러 차례나 공유했다. 그리고 느닷없이 원양어선을 타고 앞뒤 없이 이야기를 던지는 탓에 지루하게 읽어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멋부린 이미지 사진은 왜 들어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이 책은 바다에서 느끼한 술안주로 텁텁하게 술 마시는 기분이었다. 혹시나 내가 이 문맥 사이의 멋을 모르나 싶어 한번 더 훑어보았으나 결론이 달라지진 않았다.
책 상태는, 예쁘게 편집된 책이다. 그러나 '지금 바다로 달려가 소주 마시며 울고 싶은 당신'이 아니고 '바다에서 맛있는 안주로 소주 마시고 싶은 사람'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책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나는 다 읽고나서도 이 책에 왜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라는 제목이 붙었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이 책을 선물받아 다행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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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표지를 보자마자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는 노을이 지는 바다 선상 위에 있는 작가의 모습이 그랬고, 둘째로는 술을 좋아라 하는 대한민국의 한 명으로서 책 제목이 그랬다.
전작으로 [내 밥상위의 자산어보]는 읽어 보질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은 이 순간 아마도 그 책도 이 책 만큼이나 깊은 감흥과 뭔가 괜찮은 여운이 남을 것 같다.
나에게도 거문도 사는 친구가 있었다. 고등학교를 입학 했을 때, 지역 고등학교에 다닌 나는 계속해서 같은 지역 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딱 한 명이 거문도에서 우리 관내로 입학했었다. 섬에서 하고 많은 학교 중에 우리 학교를 와서 많이 신기했는데, 저자가 거문도 출신이라고 하니, 불현듯 그 친구가 떠 오르기도 했다.
내가 사는 지역에도 어촌에 사는 친구들이 좀 있다. 그 친구들한테에서는 특유의 바다 냄새가 난다. 이 책에서도 거문도 출신이라는 작가의 글에서 바다 사랑의 냄새가 흠뻑 풍겨 왔다. 그리고 섬사람의 진실되고 꾸밈없는 글의 매력이 느껴졌다. 섬 사람들의 투박스런 일상의 대화와 그 속에서 어울리는 술 한잔의 그 맛이 전해지는 느낌도 들고, 작가가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바쁜 나의 가슴을 후비는 감정의 글들에 동감도 많이 했고, 이거 요즈음 내가 자꾸 드는 외로움의 하나야라는 감탄이 나오는 글들도 참 많았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인생에 참 맛이 느껴지는 술 한잔 같은 글을 읽은 느낌이다.
나도 취했을 때 멋지게 취하는 사람을 최고로 친다. 밑빠진 독에 술 붓는 사람이나 모두 술에 취해서 흥에 돋았는데 그 흥에 어울리지 않게 멀쩡한 사람은 별로다... 또한 그 반대로 일찍 취해 버리거나..ㅋㅋㅋㅋㅋㅋ 그런 지인이 많은지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생각해 보는 시간 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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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바다를 접해 본 것이 학창시절 방학을 맞이하여 보길도를 향한 길에서였다.
기차로 5.~6시간 정도를 갔다고 기억되는데, 내려보니 또 배를 타고 가야 비로소 내가 원한 장소인 보길도로 가는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날씨가 갑작스레 좋지않아 보길도에서 미처 가지 못하고 중도라는 곳에 내려 바로 민박을 하면서 다음 날 보길도를 향한 기억이 난다.
당시의 배는 많은 바캉스족들 때문에 그야말로 시루떡이란 표현이 제대로 어울리다 싶었을 정도의 많은 인원들이 타고 있었고 배 밑 선실에 앉았던 우리 동행들은 바로 창가에 코를 박고 넘실대는 바닷물의 정체를 그야말로 입을 딱 벌리면서 다물줄 모르고 보던 생각이 난다.
맑은 물도 아닌 그저 출렁거리는 바닷물의 율동은 바로 내 앞에서 수도물을 크게 틀어놓은 것 처럼 내게 다가와서 쏟아부을 것처럼 엄청난 압력을 자랑했고 이러다 혹 사고라도 나면 그야말로 물귀신이 되겠구나 하는 , 당시의 두려움이 생각난다.
바다에서 태어나고 지금도 그 곳 고향에서 자신의 글과 삶을 살아가는 작가 한창훈 님의 이 책은 그런 오랜 기억속에 묻혀있었던 나의 작은 추억거리를 끄집어 내게 한 책이다.
어디가 시작점이고 어디가 끝인곳인지를 모를 한 없는 모습을 자랑하는 바다-
그 바다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생한 모습 속에 지구라는 행성은 그저 우주 속에 한 푸른 물방울이요, 우리는 타 동물과는 다른 인간이라고 자각하며 살아간다지만 결국엔 미세한 존재들임을 깨닫게 해 주는 책이다.
바다에서의 생활하는 사람들은 자연에 대한 겸손과 그들을 이겨낼 생각을 하지않는다. 오로지 그저 수긍하며 받아들일 뿐, 기껏해야 태풍이 몰아치면 기도 하면서 이번엔 제발 큰 피해 없이 지나가길, 우리 아버지 배 무사하고 집들도 무사하고, 모든것들이 그저 그 자리에 조용히 있길 바랄 뿐 , 더 이상의 큰 야망도 없으며 바다를 무시하지도 않는다.
방랑자처럼 여러 배를 타고 북극해까지 섭렵한 작가의 멈출 수없는 '바람끼'는 그래서 어쩌면 육지에서 생활하면서 생활하는 사람들보다 더 진솔하고 솔직하며, 그 생활 안에서 녹아나오는 체험적인 삶에 대한 방식이 새롭게 다가오는 지도 모르겠다.
술과 멸치 몇 마리가 주어지고 바다와 나와의 일체동심적인 생활의 모습과 그 안에서 묻어나오는 어린 시절의 추억거리인 해녀와 작부집 여인네들의 생활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아련한 추억의 한 장소로 우리를 데려다 앉혀 놓는다.
바다의 고래를 보러 위험을 무릅쓰고 북극해까지 시도하는 모험 속엔 우리가 알지 못했던 다양한 뱃 사람들의 정이 가득한 가족애, 항상 이별은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 다시 뱃길에 올라야하는 그네들만의 정서가 가슴 가까이 메아리져 울려퍼진다.
인간의 능력이 아무리 크다하나 자연 앞에선 무용지물임을... 매 순간마다 바다의 흐름과 유빙, 쇄빙선의 감각적인 느낌을 체험해 보고 싶게 만드는 유혹적인 글들, 여전히 바다를 벗 삼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섬 사람들의 생활은 삶과 죽음을 사이에 둔 처절한 생존임을 깨닫게 해 준다.
***** 살과 죽음이 한순간이다. 재해는, 인간이 난 무엇인가, 를 물어볼 틈도 없이 찾아온다. 그게 오면 우리가 만들고 이루어냈다고 뻐기는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살아남은 자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이웃의 참사를 대할 때의 태도에 대해 생각하는 정도이다. 무기력하다. 자연 앞에서의 겸손, 이라는 흔해빠진 말이 새삼 무겁고 아프다. - p157
그렇다면 왜 바다를 버리지 못하고 계속 머물까?
아마도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바다는 사람을 속이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푸른 물방울 속에 70%를 차지하는 바다의 존재는 때론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기도 하지만 때론 엄청난 자신의 힘을 과시하며 인간들에게 경고를 하기에 바다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함부로 내던져버릴 수없으며, 또한 그것을 배신하며 살아갈 용기조차 없는 것은 아닐런지....
생생한 화보의 바다 현장과 함께 작가의 여유자적한 인생관찰기, 정약전이 귀양가 있던 흑산도 연해의 수족(水族)을 취급한 어보가 '자산어보' 임에 빗대어 자신만의 철학이 깃든 한창훈표 자산어보는 읽는 내내 나도 모르게 바다를 동경해 버리게 만들었다.
무차별 공격이었던 쓰나미에 대한 공격, 세월호 참사에 얽힌 바다에 대한 미움과 함께 생생한 바다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책은 기회만 된다면 나도 한 번 북극해나 남극해를 가 보고 싶단 생각이 들게 한다.
글 말미에 작가는 묻는다.
배가 한 척 생긴다면 당신은 어떤 항해를 하겠는가.
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우선은 용기를 내어야할 것이 첫 번째 관건이요, 두 번째는 작가처럼 배를 내가 소장하고 있다면 난 어떤 식의 항해를 ? 그러고 보니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우선은 따뜻한 기온이 항상 넘치는 파푸아뉴기니를 가보고 싶긴 하다.
그 곳 사람들의 원시적인 물고기잡이를 방송에서 본 적이 있는 터라 순진하고 욕심없는 사람들 무리에 끼여 나의 묵은 욕심과 때 묻은 생각을 모두 날려 버리고 싶단 생각이 이 질문을 받으면서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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