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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군사독재 시절에 일본으로 건너가 "세카이(世界)"에 'T.K.생'이라는 필명으로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연재했던 지명관 교수의 책이다. 부제에서 보듯이 '강점에서 공존까지' 한일 관계 50년사를 다루고 있다. 책은 여섯편의 논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기 다른 시기에 발표된, 각기 다른 주제와 소재를 다룬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어 다채로운 느낌을 준다. 특히 종교철학을 전공한 사람 답게 일본 기독교 지식인* 과 무교회주의자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 후지이 다케시(藤井武), 함석헌을 다루는 것이 눈에 띤다.
여섯편의 논문 중 ch.1「 한국 매스컴을 통해 본 한일 관계사 - 신문에 나타난 대일이미지를 중심으로」 과 ch.3 「 한일 관계 50년, 어떻게 볼 것인가 」는 한일관계사를 개괄하는 논문이다. 앞의 논문은 동아일보 사설과 기사를 중심으로 1945년~1990년대 중반 까지 한일관계에 있어 일어났던 사건과 그것을 중심으로 한 양국의 분위기를 살피고 있다. 100여쪽에 이르는 방대한 양인데, 정리가 좀 미흡한 느낌을 준다. 다만, 초중고 제도권 교육에서 '1910년~1945년'의 강점기 일본만을 집중적으로 배우는 한국인들에게 '강점에서 공존으로 이행하는 이행기'의 사건들을 개괄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이에 반해 뒤의 논문은 찬사를 보낼 수 밖에 없는 뛰어난 것이다. 양국의 '정치적 맥락'이라는 구조적 조건하에 제약될 수 밖에 없었던 한일관계가 '시민사회'라는 섹터에 의해 숨통이 틔이는 과정, 그리고 향후 한일관계의 전망으로서 '시민사회의 구상력(構想力) 확보와 연대'를 드는 과정은 정말 탁월한 분석이라 할 수 밖에 없다.
ch.2 「한일협정비판의 논리에 관한 실증적 연구」는 한일협정체결을 위한 협상과정중 양국에서 비등했던 비판논리들을 실증적으로 검토하는 논문이다. 저자는 양국의 비판논리들을 면밀히 검토한 뒤에, 수천배로 증가한 '양국간 교역량'과 한국경제의 발전'을 증거삼아 비판논리들이 기각된다고 선언하고 있다. 하지만 한일협정은 경제적 측면에서만 고찰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본의 전쟁책임(戰爭責任)과 전후책임(戰後責任)*의 불이행'이라는 정치적-사상적 성격에서 고찰해야만 마땅한 것이다. 이점에 있어 저자가 '교역량 증가, 경제발전' 과 같은 '경제적 지표'를 사용해 한일협정비판논리가 타당하지 않았다고 선언하는 것은 너무나 안일한 인식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수 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한일협정'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한일협정 당시의 한-미-일 3국 간에 오고 갔던 이야기들은 '국가기밀'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연구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2004년 8월에 미국국립문서기록보관청(U.S. National Archives & Records Administration)이 '비밀해제'를 근거로 공개한 미 국무부 작성의 '한일협정에 대한 미국의 입장과 관련한 비밀문건'*은 한일협정협상과정에서 미국의 역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지명관 교수는 한일협정과정에 미국이 '어떠한 구체적 역할을 한 적이 없다'는 문장을 인용하고 있는데, 이번에 공개된 문건은 미국이 '보상의 구체적인 형태와 형식, 액수'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쓰고 있으며, 일본기업들이 당시 집권당인 민주공화당에 6만 6천달러의 불법정치자금을 제공한 사실까지 담고 있다. 더군다나, 2005년 1월경에는 한국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한일협정관련 비밀문건도 공개될 예정이다. 공개되기 시작한 비밀문건들은 한일협정의 실체를 명확히 해줄 것이며, 새로운 연구를 요구할 것이다.
ch.4「 이광수와 일본 - 하나의 시론」은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라는 이름으로 창씨개명을 하고 친일행각을 벌였다고 하는 이광수에 대한 논문이다. 저자는 이광수는 인식론적 측면에서 '조선에서 본 일본(근대화 모범 답안지로써 따라야 할 일종의 규범이자 제국주의 국가로서 증오의 대상) · 일본에서 본 조선(미개함)'이라는 이항대립의 아포리아즘에 휩싸여 있었다고 진단한다. 근본적으로 합치될 수 없는 두 개의 인식속에 진동하는 것이 1945년 이전의 이광수였던 것이고, 어떻게 보면 근대 이후 대부분의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일본에 대한 인식일 것이다. 어쨌건 이광수는 이러한 인식론적 긴장을 견뎌내며 어떤 대안을 만들어 내기 보다는 보다 쉬운 길을 택했고, 그것이 친일이었던 것이다.*
ch.5 「함석헌의 조선사관에 대한 고찰 - 후지이 다케시의 리본사관과의 대비를 통해서 」는 이 책에서 가장 난해한 논문에 속한다. 독특했던 일본에서의 기독교 수용과정과, 일본 기독교도의 성격을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흥미로움이 난해함을 압도하기 때문에 독서가 어려운 논문은 아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후지이 다케시가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해석한 일본사이다. 당시 군국주의자들과 로직은 전혀 달랐어도 결과적으로는 파시즘에 합치하는 언어로 가득차 있다. 마치, 코쿠타이(國體)론을 기독교적으로 해석해 놓은 모양세이다. 이에 대해서는 “막말(幕末)의 일본 지식인들은 ‘권력 지향’이든 ‘도의 지향’이든 ‘외부 지향’적 의식을 공유하고 있었고, ‘권력 지향 의식’과 ‘도의 지향 의식’은 상승정향을 가지고 있었다.”라는 장인성 교수의 언급*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개항기 일본의 사상적 토포스(topos)가 기독교도 마저도 외부지향적, 팽창적인 내용으로 변화시켰던 것이다. 에비나 단조(海老名彈正) · 고자키 히로미치(小崎弘道)와 같은 막말의 다른 기독교도들 역시 후지이 다케시와 마찬가지의 역사인식을 보였다.*
ch.6 「일본 근대사에서의 기독교 지식인 - 그 한국관을 중심으로」은 일본의 진보적 사상을 담지했던 기독교 지식인들의 정향에 대한 논문이다. 특히 저자는 일본 진보적 기독교 지식인들이 청일전쟁, 러일전쟁, 한일합방에 대해 어떠한 반응을 보였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이를 중심으로, 일본에서의 '리버럴리즘'이 근본적으로 취약한 입지에 처해 있었음을 말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메이지, 다이쇼, 쇼와 시기의 진보적 리버럴리스트로써 기독교 지식인들이 처해 있었던 취약한 입지가 지금까지도 연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일본에서는 '내셔널리즘의 정서'가 고조될때 마다 리버럴리스트들의 입지가 취약해 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1990년대 중반 무라야마(村山)내각의 성립과 사회당의 붕괴, 그리고 계급투쟁노선을 수정한 공산당이 내셔널리즘에 수렴하고 있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전체적으로 살펴 봤을 때 이 책은 매우 뛰어난 수준의 책이다. 실타래 같이 얽혀있던 50년간의 한일관계사를 잘 정리하고, 향후 양국관계가 호혜적인 것이 되기 위한 전망과 전략을 한꺼번에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일 관계에 있어 양국이 처해있는 인식론적 아포리아즘과 리버럴리스트 지식인들이 처해있는 취약한 입지, 그리고 양국관계의 취약성에 눈을 감지 않고 정면으로 달려들어 대안을 제시하는 저자의 자세는 경이로울 정도다.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쓰던 시기에 저자가 견지했던 '지성인'으로써의 자세도 이러한 것이었을까? 여하여튼,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의 목록에서 상위권에 랭크될 수 있는 책임에 틀림없다.
*일본 기독교 지식인 : 도쿠가와(德川) 말기 부터 메이지(明治), 다이쇼(大正)까지 일본의 기독교 지식인은 진보적 지식인과 거의 겹쳐 있었다. 대표적 예로써 메이지 초기 맑스주의자 가타야마 센(片山潛)의 초기사상은 기독교 인도주의였다.
*전쟁책임과 전후책임 : 야마구치 야스시는 이 개념을 정교하게 논의하고 있다. 자세한 논의는 야마구치 야스시(山口定) 저, 「두 개의 현대사 : 역사의 새로운 전환점에 서서」, 타나카 히로시(田中宏) 외 저; 이규수 역, 『기억과 망각 : 독일과 일본, 그 두 개의 전후』(서울 : 삼인, 2000년.) pp.220-256. 을 참고하라.
*‘한일협정관련 미 국무부의 비밀문건’은 지난 2004년 8월에 발표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이 문건을 pdf파일 형식으로 제공하고 있다. URL : http://www.banmin.or.kr/userdata/vod/secret.PDF
*친일 : 다만, 나의 경우에 '친일파'라는 개념이 모호하다는 학계 일부의 논의에 동의하고 있음을 일러둔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 논의가 윤해동 교수의 '식민지의 회색지대' 개념일 것이다. 윤해동,『식민지의 회색지대 : 한국의 근대성과 식민주의 비판』(서울 : 역사비평사, 2003년) 을 참고하라.
*장인성 저, 『장소의 국제정치사상 : 동아시아 질서변동기의 오코이 쇼난과 김윤식』(서울 : 서울 대학교출판부, 2002년.)pp.168-174.
*우누마 히로코(鵜沼裕子) 저; 세키네 히데유키(關根英行) 역,「국민도덕론에 관한 논쟁」,이마이 쥰(今井 淳) · 오자와 도미오(小澤富夫) 공편,『논쟁으로 본 일본사상』(서울 : 성균관 대학교 출판부, 2001년) p. 455, pp.462-463.
[인상깊은구절] *나는 그 속에서 인간 정신의 진보의 발자취를 구하려는 것이지만 눈에 보이는 거의가 인간이 저지른 오류의 역사 뿐이다.(p.184) *1993년 김영삼 정권이 성립되면서 동북아시아의 한일 양국은 민주주의라는 가치와 정체를 공유하기에 이르렀다. 한편으로는 국민 국가의 쇠퇴를 말하게 되었고 국가권력은 종전과 같은 국민 결집력을 가지지 못하게 되어 가고 있다. 이제 양국 국민 아에는 어떠한 의회와 민주 시민적인 여론을 형성해서 아직도 국민국가 시대가 낳은 의식과 관행을 벗어나지 못한 채 제국주의적인 지배와 그것에 대한 저항이라는 도식의 후유증 속에 사로잡혀 있는 상황을 극복하며 낡은 정치세력을 견제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과제가 놓여있다. 이것은 정말로 한일 양국 시민, 특히 지식인들이 당면한 공동 과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pp.200-201) *일본 근대에서 리버럴리즘은 취약한 것이었다. 그것은 정치권력의 내셔널리즘에 의해서 위협을 받아왔을 뿐 아니라 진보적인 지식인들 사이에도 그 태도 자체가 대외적으로 자기 방어적인 내셔널리즘이나 또는 팽창적인 내셔널리즘을 앞에 놓고 언제나 크게 동요했던 것이다. 그것은 내셔널 크리스천 또는 크리스천 내셔널리스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또한 한국의 근대사도 마찬가지 양상을 띄고 있다는 말을 덧붙일 수 있다.(p.28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