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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단 둘의 세계일주 여행을 꿈꾸었던 부부 모리스와 메말린이 고래의 공격으로 배가 침몰하게 된 후 구조되기까지 고무보트 하나와 구명보트 하나에 의지한 채로 버틴 117일간의 표류기이다. 내용은 두사람이 표류 기간 내내 쓴 일기를 정리한 형식의 표류기에 구조 후 도움을 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 편지, 117일간 생활(?)했던 구명보트와 고무보트에 대한 평가, 한 의사의 두 사람의 건강 상태에 대한 소견, 그들을 구조한 306 월미호 선장의 인터뷰 내용이 후첨되어 있는 형식이다. 망망대해에서 일엽편주에 불과한 작은 보트 2척에 의지해 빗물과 거북, 생선등의 음식에 의지해 가며 117일간이나 생조한 끝에 결국 구조되었다는 사실도 놀라운 것이었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은 두 부부가 이러한 암울하고 극박한 상황에서도 각기 일기를 썼으며 지극히 영국인다운 기질을 발휘하여 자신들이 관찰할 수 있었던 생물(거의 모두 그들의 음식이었지만)들에 대해서도 꼼꼼히 기록해 놓았다는 사실이다. 책을 읽기전 책 표지의 소제목 중의 ''즐거운''이란 단어가 무척 의아했는데 책을 읽다보니 왜 즐거운 표류기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책을 읽다보면 두 부부가 표류기간 중 종이를 찢어 카드를 만들어 카드놀이를 하고 낱말놀이를 하는등 ''즐겁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들의 이러한 기질이 그러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끝까지 생존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지극히 경험하기 힘든 상황을 지극히 군더더기 없이(시도 때도 없이 책의 내용과 상관없이 자신이나 자식 자랑, 낯 간지러운 개인 감정등을 끄적여 대는 자질 없고 무책임한 작가들이 본받아야 할 점) 지극히 영국인들답게 쓴 글이어서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그들이 구조되는 시점에서 이미 예상했지만) 자신들을 구조해 준 월미호의 선원들에 대한 그들의 배은망덕함이다. 책에만 드러나지 않을 뿐 그들이 그 선원들에게 어떠한 감사의 표시를 했는지 모르겠으나 후첨되어 있는 감사의 글에서 많은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을 구해준 배의 선장과 선원들에 대한 감사의 글은 일언반구 없다. 자신들은 김치만 먹으면서 모든 음식들을 대접하고 귀국시 가족들에게 선물하려 산 물건들까지 아낌없이 내어주며 정성으로 보살펴준 선원들에게 말이다. 어쩌면 그들을 발견했으면서도 그냥 지나쳐 갔을지도 모를 7척의 배들이 현명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잔인한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이러면 안되는데...). 결국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해준 책이지만 인간의 교만함 또한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인상깊은구절] 우리는 매일같이 선실에서 쉬면서 지나가는 선원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많은 선원들이 우리의 탁자 위에 선물을 두고 가기 위해 발걸음을 멈췄다. 나의 아내를 위해 치약, 옷, 비누, 칫솔, 초콜릿, 비스킷 그리고 화장품 등을 선물했다. 어떤 선물들은 고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주기 위해 마련해 둔 것들이었다. 갑판장 김민찬 씨는 자기의 허리띠를 나에게 주고 자기는 넥타이로 허리를 매고 다녔다..... 우리에게는 모든 사람들이 친절하고 정중하게 보였다. 선원들은 더할 수 없이 우리를 위해 봉사했다..... "이런 사람들에게 감사의 글 한 줄 남기지 않다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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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17일동안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표류하다가 한국어선에 의해 구조된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 부부의 117일 동안의 표류 일지가 이것입니다. 1973년의 이야기를 42년이 지나서 지금 읽고 있자니, 딱히 감동적이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파이 이야기"의 표류기가 좀 더 드라마틱하고 재미있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냥, 물고기 잡고, 거북이 잡고, 새 잡고, 구명보트가 찢어지거나 부서지면 보수하고, 비가오면 식수를 구하고, 가끔씩 멀리서 지나가는 다른 배에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이야기가 일기 형식으로 적혀있습니다. 다만, 부부가 같이 표류했다는 점이 이 표류기의 특이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들 부부는 세상을 배로 여행하고 싶다는 마음에, 집도 팔고, 배에서 살면서 여행을 다니는 삶을 살고 있다가, 배가 고래에 부딪혀 부서지면서 표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어차피 바다에서의 삶은 이들이 살던 삶의 모습이 아니었던가요? 다만, 배의 방향과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동력이 없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둘이 바다에서 사는 모습에 차이는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간절하게 구조를 바라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언제라도 그만 둘 수 있을 자유"가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삶이 어떤 모습을 띄고 있던 간에, 그 안에서 행복할 수 있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은 "언제라도 다른 삶의 모습으로 바꿀 수 있다" 라는 자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취직을 못해서, 한달 100만원짜리 아르바이트를 하는 삶, 그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굶어죽을 수 밖에 없는 삶과 통장에 10억이 있지만,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노는 것도 싫어서 100만원짜리 아르바이트를 하는 삶, 똑같은 100만원의 아르바이트 삶이라고 해도, 두 개가 같을 수 없는 까닭은, 그 삶의 모습을 언제라도 바꿀 수 있는 능력의 유무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언제까지라도 같이 해줄 유일무이한 동료가 옆에 있어준다면야, 부러울 것이 없는 삶의 모습일테지요. 이 책이 비록 117일간의 표류 기간을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것 없이 평범하게 읽히는 것은 부부가 같이 표류하고 있고, 이 표류의 삶이 이들이 전에 살던 삶의 모습과는 별다른 차이가 없이 단지 "변화에 대한 자유"만이 박탈된 상황이기 때문일 것 같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