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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필요없습니다.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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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서점에 가서 쭈그리고 앉아 다 읽은 책입니다. 아주 짧은 시간에도 읽을 수 있을만한 책이지만 이 책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은 그리 짧지만은 않습니다. 책을 펼쳤을때 왼쪽에는 짤막한 문장들이, 오른쪽에는 흑백사진이 담겨 있습니다. 원래 흑백의 오래된 사진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적극 추천이고, 별 관심이 없는 분께도 추천입니다. 그 이유는 보시면 아시겠지만 우리
"말이 필요없습니다. 보세요!" 내용보기
친구들과 서점에 가서 쭈그리고 앉아 다 읽은 책입니다. 아주 짧은 시간에도 읽을 수 있을만한 책이지만 이 책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은 그리 짧지만은 않습니다. 책을 펼쳤을때 왼쪽에는 짤막한 문장들이, 오른쪽에는 흑백사진이 담겨 있습니다. 원래 흑백의 오래된 사진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적극 추천이고, 별 관심이 없는 분께도 추천입니다. 그 이유는 보시면 아시겠지만 우리 삶의 진국이 느껴지는 사진들이 실려있기 때문입니다. 가난과 고통에 찌들어있던 옛날 사진들.. 저는 그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서 직접 몸으로 느껴보지는 못했지만 그 사진들로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멀쩡한 부분보다 찢어지고 구멍난 부분이 더 많은 옷을 입고 짧디 짧은 휴식시간을 보내는 한 아저씨의 뒷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찢어진 옷 사이로 보이는 앙상한 뼈가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짓는 한번의 미소는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서로 진심으로 안아줄수 있고 사랑할수 있는 그 옛날이 지금보다 나은 것일까요?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대부분 가식적인 사랑만을 하고 있는 지금이 과연 옛날보다 나은것일까요? 이 책은 저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졌고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이 책에 실린 사진중에 제게 가장 인상깊던 사진이 있습니다. 어떤 상점 앞인것 같았습니다. 호기심 많은 두 아이의 눈에 보인 것은 서로 껴안고 있는 천사상이였습니다. 그 두아이가 그것을 보고 천사와 같이 서로 푹 껴안고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제 생각이지만 어느 천사의 품보다 서로의 품이 따뜻했을 것입니다. 짜장면을 정신없이 먹고 있는 아이, 그 모습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는 부모의 모습.. 힘들지만 웃고있는 할머니의 모습, 딸아이를 지켜주려는듯 품에 가득 안고 길거리에서 잠을 자는 부녀의 모습... 가슴이 아프면서도 그들의 웃음이 부러웠습니다. 저도 그들처럼 진실된 미소를 지을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제목처럼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사진과 글을 보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c*****7 2004.10.17. 신고 공감 1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훌륭한 사진과 이를 모독하는 엉성한 글이 한 상에 차려져 있다니..
"훌륭한 사진과 이를 모독하는 엉성한 글이 한 상에 차려져 있다니.." 내용보기
최민식 선생님의 사진을 워낙 좋아하고 훌륭하게 생각하기에 사진에 간단한 글을 함께 엮은 이 책을 읽었어. 하지만 '조은'이라는 시인이 썼다는 글은 사진에 대한 모독으로까지 생각되더라.   사진이나 이미지를 글로 표현하기는 어렵겠지, 아니 불가능하겠지. 게다가 최민식의 사진은 보여지는 느낌과 메시지가 워낙에 강렬하기 때문에 따로 글로 설명한다는 게 오히려 어색할 정
"훌륭한 사진과 이를 모독하는 엉성한 글이 한 상에 차려져 있다니.." 내용보기

최민식 선생님의 사진을 워낙 좋아하고 훌륭하게 생각하기에

사진에 간단한 글을 함께 엮은 이 책을 읽었어.

하지만 '조은'이라는 시인이 썼다는 글은 사진에 대한 모독으로까지 생각되더라.

 

사진이나 이미지를 글로 표현하기는 어렵겠지, 아니 불가능하겠지.

게다가 최민식의 사진은 보여지는 느낌과 메시지가 워낙에 강렬하기 때문에 따로 글로 설명한다는 게 오히려 어색할 정도니까. 이건 마그리트가 아니니까..

 

설명이 어렵다면 다른 방법을 써보던지 - '소피 칼'처럼 사진과 이야기가 서로를 보완해가는 식이던가.. 사진에 문자를 끼워 넣으려면 뭔가 보람은 있어야지.

 

이 책에 문자들은 문장이나 단어 선택의 미숙함은 그렇다 치더라도 사진을 오해하고, 왜곡하고, 의미를 제한 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거든.. 정말 암울한 수준이야.

 

이 책 머리말에 '최민식 선생은 누가 자기 사진을 쓰자고 하면 조건없이 선뜻 승락한다'는 얘기가 있던데, '조은'이란 사람이 바로 그렇게 했더군. 스스로에 면죄부를 준 거로군.

마음 넓은 사진 작가는 이 상황에도 글쓴이를 감싸고 축복하고 있더라..

 

늘어선 판자촌 사진을 보면서 그 패턴이 멋지다고 생각했는지 '본질에서 떨어져야만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니'라고 하지를 않나. 장애인 신문 배달부 사진을 보고 '육신의 한 부분을 미리 자연 속으로 돌려보낸 사람들의 삶도 도무지 가벼워 보이지가 않는다'고 하지를 않나.. 정말 보기에 민밍하고, 화가 나.

 

최민식 선생님이 말하지 않던가.. 사진의 생명력은 논리 이전에 감동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힘들고 소외된 사람들의 모습에 삶의 진정한 가치가 담겨 있다고..

 

글쓴이는 사진을 보고 뭘 느꼈을까. 아니 느낌이라도 있었을까. 명색이 시인이라면서 어떻게 이 사진들을 자신의 엉성한 글에 오브제 정도로 이용할 생각을 했을까.

 

부디. 사진 만을 보기를 바래.

글은 절대로 읽어서는 안돼. 나처럼 속만 상할꺼야.

 

반쪽(사진이 실린 페이지)만 추천

 

b******9 2009.05.06.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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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내용보기
나의 이십대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한 의무감 때문에 초조함과 조바심으로 똘똘 뭉쳐진 시기였다. 죽도록 치열하게 살았다. 지금도 그때의 버릇이 남아 있어서 하릴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을 하지 못한다. 책을 읽든 청소를 하든 뭔가를 해야 불안함이 사라지는 일종의 시간에 대한 강박증이 있는 것이다.  그 시절 문득문득 찾아오는 삶에 대한 회의감에 가벼운 우울증을 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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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십대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한 의무감 때문에 초조함과 조바심으로 똘똘 뭉쳐진 시기였다. 죽도록 치열하게 살았다. 지금도 그때의 버릇이 남아 있어서 하릴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을 하지 못한다. 책을 읽든 청소를 하든 뭔가를 해야 불안함이 사라지는 일종의 시간에 대한 강박증이 있는 것이다.  그 시절 문득문득 찾아오는 삶에 대한 회의감에 가벼운 우울증을 앓기도 했었고, 내 몸 어느 한 구석에서 갑자기 치기어린 마음이 올라와 허세를 부리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피식 웃음밖에 나오지 않지만.


그 무렵, 우연히 한 장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사진 속 주인공은 외팔과 외다리로 신문팔이하는 청년이었는데 그를 보는 순간 전율이 일었고, 오롯이 내 삶의 태도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부족한 신체로 삶을 힘차게 개척해 나가는 그의 모습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활기차보였고 건강해보였고 근사해보였다. 반면 더 많은 것을 갖고자, 더 좋은 자리에 가고자 발버둥치는 내 모습이 그렇게 안쓰럽고 딱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 후 월드비전을 통해 해외 아동들을 정기적으로 후원하기 시작했고 어느 덧 시간은 흘러 내가 그토록 바라던 안정적인 삼십대가 되었다.


외팔과 외다리 신문팔이 청년의 사진은 어느 틈엔가 사라졌고, 여전히 해외 아동들을 후원하고 급식비를 내지 못하는 국내 아동들까지 돕고 있지만 그 때의 순수했던 내 마음 역시 사라져버렸다. 바쁘게 산다는 이유 하나로...

그러던 중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최민식 사진집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발견하게 된다. 외팔과 외다리 신문팔이 청년의 사진을... 알고 보니 그 사진은 사진작가 최민식의 1985년 작품이었다.


나는 사진작가 최민식의 사진들을 사랑한다. 그의 사진 속에서만큼은 부자보다 가난한 이들이 주인공이 되기 때문이다.  그가 찍은 사진들은 삶에 지쳐있는 내게, ‘아직 멀었다고. 너는 더 지쳐야 한다고. 네가 겪고 있는 일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역설의 충고다.


황해도 연안에서 태어난 작가 최민식은 일본을 거쳐 부산에 정착해 평생을 ‘인간’에 포커스를 맞춘 작품을 남겼다. ‘가난한 사람들을 앵글 속에 포착하는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극빈층을 놀랍도록 선명하게 표현해 독재정권으로부터 작품을 압수당하는 등의 탄압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작가설명에서)

작가 최민식의 작품 속 주인공이 되는 것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대신 그는 좀 더 가난하고 고된 삶을 사는 사람들을 작품의 중심에 두었다. 어쩌면 지금은 죽고 없을 혹은 중년이나 노인이 되었을 그의 사진 속 주인공들.. 사진에는 그들의 암울했던 어쩌면 찬란했을지 모르는 인생의 한 순간이 담겨져 있다. 마치 칼로 베어낸 듯이.


한때는 해맑은 아이였을 노인은 어떤 세상을 흘러온 것일까요? p.30

봇짐을 머리위에 지고 지팡이를 짚고 있는 노파의 사진. 1962년 作.


늘 앞만 보고 묵묵히 살아가건만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삶이 오해받기도 하지요. p.26

한눈에 봐도 부유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세련된 옷차림을 한 젊은 여인이 흙이 묻은 고무신을 신고 지게를 진 한 남자를 바라보고 있다. 1968년 作.

지금 봐도 세련된 옷차림인데 1968년에 이런 옷차림을 한 것을 보면 그녀는 상당한 부자였음에 틀림없다. 선글라스에 가려져 그녀의 눈빛은 알 수 없지만 뒤틀린 듯한 입술 모양을 보면 그 남자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이 여인과 같은 뒤틀린 미소를 지은 적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위험을 떠맡은 가난한 사람들 덕분에 우리들의 시야는 넓어졌고 길은 평탄해졌습니다. p.86

안전장치 하나 없이 무더운 더위에 속옷만 겨우 걸친 채 공사장에서 일하는 두 명의 인부.
1961년 作.


아파트를 짓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지만 그것을 차지하는 사람들은 지은 사람보다 부자인 사람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마음 한 구석이 쓰라리다.

누군가의 아버지일 그들의 고단함이 느껴져서... 부디 그들의 아이들은 넉넉하게 살게 되길.


태어날 때부터 배경이 어둠뿐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p.106

벽에 기대어 우는 까까머리의 남자아이. 1975년 作.


여섯 일곱 살로 보이는 이 아이는 지금쯤 40대가 되었겠지. 운이 없어 시대를 잘 못 타고난 것일까, 아니면 전생의 업보로 가난한 집 아이로 태어난 것일까.


언제나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합니다. 저 가족도 망망대해의 뗏목처럼 흔들리고 있군요. p.110

중절모를 쓰고 남루한 가방을 곁에 두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아버지와 찢어진 바지를 입고 전봇대에 의지하고 서 있는 꼬마 남자아이. 열 살 남짓한 아이에게서 볼 수 없는 시름에 잠긴 여자 아이. 1966년 作.


가난한 시대에 태어나 가난한 부모를 만나고 가난하게 살다가 지금쯤 중년이 되었을 이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아이를 낳아 기르다보니 부의 세습화가 이루어지고 사회가 양극화 되는 것에 민감해지는 것 같다. 전문직종의 부유층집 아이들이 더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좋은 직업을 가진다는 신문 기사는 이제 식상할 정도로 보편화 되어버렸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으며 설사 개천에서 용이 나더라도 그 용에서는 냄새가 난다는 유머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세상에서 살다보니 내 자식만큼은 부유한 삶을 살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그런 이유로 ‘돈, 돈, 돈’을 외치던 내게 최민식의 작품들은 다시금 내 삶의 태도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예전에 갖았던 순수했던 동정심, 남을 돕고자 했던 마음, 이웃을 살펴보려는 따뜻한 시선이 내 몸속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에 실린 사진 속 배경은 지금과 다르지만 주인공들의 삶은 어쩌면 지금이 훨씬 더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는 부가 세습화 되듯 가난을 물려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 곁의 이웃들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줄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h******6 2011.06.2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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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 포토 에세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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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 포토 에세이 ]     굳이 구입하지 않아도,   서점에 들려서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어서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     멋지고, 감동적인 일상의 흑백 사진과 시의 공존.     사진작가 최민식   시인 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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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 포토 에세이 ]

 

 

굳이 구입하지 않아도,

 

서점에 들려서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어서

 

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

 

 

멋지고, 감동적인 일상의 흑백 사진과 시의 공존.

 

 

사진작가 최민식

 

시인 조은

t*****o 2008.11.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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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없으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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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사람'들을 찍어온 최민식의 사진집. 그 사진집에 조은이 글을 보태었다. 사실 조은의 글은 좀 식상한 면이 있어놔서 그다지 맘에 와닿지는 않지만, 사진만은 정말 괜찮다. 자신의 딸에게 '가난한 사람을 팔아 돈벌이한다'라는 비난까지 받았지만, 그는 카메라를 여전히 놓지 않고 있다. 혹자는 망원렌즈를 선호하는 그의 촬영방식에 비판을 가하기도 하지만, 그런 비판은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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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사람'들을 찍어온 최민식의 사진집. 그 사진집에 조은이 글을 보태었다.

사실 조은의 글은 좀 식상한 면이 있어놔서 그다지 맘에 와닿지는 않지만, 사진만은 정말 괜찮다.

자신의 딸에게 '가난한 사람을 팔아 돈벌이한다'라는 비난까지 받았지만, 그는 카메라를 여전히 놓지 않고 있다.

혹자는 망원렌즈를 선호하는 그의 촬영방식에 비판을 가하기도 하지만, 그런 비판은 사실 무의미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가 정말 훔쳐보기식으로 촬영을 하기 위해 망원을 택했다면,

사진이 돈되는 일이 아니던 시절에 굳이 저런 가난한 사람들의 사진을 찍을리가 없지 않은가.

오히려 망원이 아니었다면 저런 사진은 더 찍기가 힘들었으리라.

물론 'Shooting'으로서의 사진찍기에 내포된 이기심과 우월감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해서 몇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고 바로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고 도덕적인 출구가 열리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자만심이 생길지도 모른다. 나는 그래도 저들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사진을 찍었다고 하는 면죄부 같은...)

 

뭐, 이런저런 논란을 떠나서 좋은 사진들이 많이 들어있는 사진집이다.

개인적으로는 쇼윈도우에 진열된 천사상을 보면서 서로 꼭 안고 있는 누나, 동생의 뒷모습이 기억에 계속 남는다.

 

목숨을 내놓고 일하는 사람들은

노동의 신성함을 배우기에 앞서

목숨의 덧없음을 먼저 배우겠지요.

1******n 2008.11.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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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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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사진을 찍어서 자신의 마음대로 보태고 빼고 수정할 수 있다. 실제로는 있지 않은 ‘가공의 아름다움, 즐거움’. 원래의 대상과의 괴리를 보고 있자면 나는 마음 한편이 씁쓸하다. 물론 누구나 자신만의 뷰파인더 - 시선을 가지고 있고, 그 시선은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자주 눈앞에 보이는 세상을 왜곡하고,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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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사진을 찍어서 자신의 마음대로 보태고 빼고 수정할 수 있다. 실제로는 있지 않은 ‘가공의 아름다움, 즐거움’. 원래의 대상과의 괴리를 보고 있자면 나는 마음 한편이 씁쓸하다. 물론 누구나 자신만의 뷰파인더 - 시선을 가지고 있고, 그 시선은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자주 눈앞에 보이는 세상을 왜곡하고,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눈앞에 보이는 세상은 아름답고 즐겁지만은 않다. 오히려 우리를 암울하게 만들고 두렵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것들을 모두 마음에 담고 살기에 우리의 삶은 너무 무겁고, 우리 존재는 한없이 연약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아름답고 즐거운 것들만 보면서 살기에도 우리의 삶은 너무 짧고 귀중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바로보기, ‘사랑’의 시작

 

 

최민식 씨의 뷰파인더로 바라보는 세상은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날것의 생이 거기 있기 때문에 그렇다. 모래 위에 쓰러진 아이를 나는 일으켜 줄 수 없고, 울고 있는 아이의 눈물을 닦아줄 수 없다. 한 발로 서 있는 사내의 잃어버린 다리 한쪽이 되어줄 수도 없다.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모두 행복해지고 싶다. 매순간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지만 살아있는 한 우리는 수많은 불행과 마주칠 수밖에 없다. 나의 불행이건, 너의 불행이건, 우리의 불행이건.

불행해지고 싶어서 불행한 사람은 없다. 누구에게나 불행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들이 불행을 마주치면 마음이 불편하고 두려운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의 ‘불행기피증’이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최민식 씨는 바로 그 ‘소외받은 사람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제는 외면하지 말자. 바라보자.

 

‘바라본다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바라봄’이 왜곡된 것이어는 안 된다. ‘바로봄’이어야 한다.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사랑 아니겠는가.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에서 ‘나’와 ‘너’의 벽이 생긴다.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에서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다. 바로보기, 그것은 ‘나’와 ‘너’의 벽을 허물고, ‘우리’로 나아가게 한다.

 

 

보기에 불편할 정도로 참혹한 모습, 시선을 피하고 싶어질 정도로 슬픈 눈동자.

그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거기에 내가 있었다.

 

 

우리는 굶주린 아이의 입에 물려진 말라비틀어진 젖이다. 늙은 여인의 머리 위에 올라앉은 한 마리의 새, 기도하는 저 사람의 모아진 두 손이다.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앉은 사내의 내밀어진 빈손이다. 사내가 앉은 콘크리트 바닥이다. 아이의 때 묻은 얼굴에 남은 눈물자국, 부르튼 입술이다. 아이가 밟고 있는 길이다. 늙은 여인의 몸에 새겨진 시간의 길, 주름살이다. 노인의 굳게 닫힌 입술 뒤에 감춰진 말이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생을 살아가는 당신과 나, ‘우리’는 서로를 바로봐 주어야 한다. 서로를 가만히 들여다 볼 때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 당신 안에 내가, 내 안에 당신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은 이미 우리 안에 있었다는 것을. 이 귀중한 깨달음으로 하여 우리는 어둠을 몰아낼 희망을 본다 . 몇 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생이여, 다시!

 

 

 

책 속 밑줄 긋기

 

나와 50년을 함께 해온 카메라는 항상 낮은 데를 향해서 치열하게 움직였습니다. 그 카메라 앞에는 소외된 이웃들이 서 있었지요. 사진은 인간의 삶을 밝히는 작업입니다.(...) 가난과 불평등 그리고 소외의 현장을 담은 내 사진은 ‘배부른 자의 장식적 소유물’이 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합니다. (...)감히 말하자면 나의 사진 작업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나는 이 세상 끝까지 가난하고 소외받은 이들과 함께 살다가 죽을 것입니다. - 저자(최민식)의 말 중에서 (p.8)

 

최민식 선생의 사진은 인간의 불행이라는 악성 바이러스를 꿋꿋이 이겨내게 하는 항체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의 사진이 가진 힘이자 덕목 중의 하나이지요. 그가 치열하게 사유하며 선택한 세계는 많은 부분이 어둡고 암울합니다. 그러나 그 세계와 맞선 그의 시선은 더없이 따뜻합니다.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뛰어다니며 세상의 부조리와 맞서되, 그는 전투적인 사람이 아니라 온화한 사람입니다. 그는 인간의 불행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한 덩어리로 뭉뚱그려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삼아온 것이 아니라 그것의 세세한 결을 느끼며 오랜 세월 혼신의 힘으로 창작에 전념해온 사람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그의 작품세계에 빠져들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불행을 바라보던 기존의 시선이 수정되며 어떤 고통과도 당당히 맞설 수 있는 배짱이 생깁니다. - 저자(조은)의 말 중에서 (p.11)

 

버리는 순간 눈앞이 환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는지 우리를 둘러싼 어둠은 깊기만 합니다.

하지만 무엇을 더 버려야 이 어둠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요? (p.68)

 

누가 가르쳐서 알게 될까요? 타인과의 교감이 단비처럼 우리를 성장시킨다는 것을......(p.146)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됩니다. 모든 구속 너머에 진짜 삶이 있다는 것을.

가만히 있어서는 어떤 경계도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을. (p.158)

 

모두들 재빨리 걸어나가는 어두운 곳에 철근처럼 구부러져 있는 것이 다름 아닌 나와 같은 존재임을 알게 될 때면 마음을 채우고 있는 육중한 자물쇠가 느껴지곤 합니다. 어떤 자의 웃음은 어둠을 밝힐 열쇠처럼 빛납니다. 그 웃음소리를 듣고 있으면 어디선가 무엇인가가 활짝 열리는 기척이 느껴지지요. 

(p. 202 ~ 208)

 

 

g*******s 2008.01.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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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과거, 살아있는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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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시린 바람이 세상을 찾아왔다. 지레 겁을 먹고는 하루 종일 방안에서 전전긍긍해 본다. 지붕 있는 집에 거주하는 이라면 이 세상의 80%보다 부유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했던가? 나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진득한 그리움이 될 수도 있음을 요즘 들어 깨닫는다. 며칠 전 지하철 역에서 보았던, 양말도 신지 못한 체 움츠리고는 죄인 마냥 굽신거리는 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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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시린 바람이 세상을 찾아왔다. 지레 겁을 먹고는 하루 종일 방안에서 전전긍긍해 본다. 지붕 있는 집에 거주하는 이라면 이 세상의 80%보다 부유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했던가? 나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진득한 그리움이 될 수도 있음을 요즘 들어 깨닫는다. 며칠 전 지하철 역에서 보았던, 양말도 신지 못한 체 움츠리고는 죄인 마냥 굽신거리는 이의 손에는 천 원짜리 한 장이 들려 있었다. 그 지폐 한 장을 위해 얼마의 시간을 떨었을까? 하지만 이미 굳어버린 마음은 가는 길을 재촉했고, 이름 모를 그는 내 마음 속 어딘가 무의식의 영역으로 보내어 졌다. 인간 세상에 태어나 인간을 통해 세상을 배울 수 있는 것도 복이다. 어쭙잖은 사진들을 수도 없이 찍었지만 그 대부분은 풍경이었다. 가끔씩은 놓치고 싶잖은 장면들과 마주치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으레 뒷걸음을 쳤던 것은 왠지 모를 두려움 때문이었다. 같은 세상에 속해 있지만 결코 같을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는 우리. 그로부터 우리는 아름다움을 느끼고 추함을 느끼는 것이다. 순간을 눈에 담았지만 영원히 마음에는 담지 못했던… 그런 사진들과 이 책에서 만났다. 누가 가난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거추장스러운 수식어를 제 아무리 붙여댄들 더해가는 것은 어색함에 지나지 않는다. 외부인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결국 외부인의 것으로 남기 마련이기에 이는 제 아무리 값비싼 카메라 렌즈를 들이댄다 하여도 쉽사리 포착할 수 없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죽은 사진만을 끊임없이 양산해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하지만 최민식 님의 사진은 살아있었다. 그의 렌즈는 인간, 그것도 가난하고 소외 당하고 있는 이들만을 집중적으로 따라다녔다. 하나의 주제에 이토록 집착(?)할 수 있는 열의가 나에게도 허락된다면… 그렇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미치고 싶을 정도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카메라 하나만으로 살아가는 것만큼 힘든 것도 없으리라. 어찌 보면 무모한 듯 싶기도 한… 하지만 그 무모함은 사람들의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기에 쉽사리 포기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은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순간에 갇혀 있다. 삶에 지친 듯 구부정한 어깨하며, 좌절한 듯 주저앉은 폼하며, 그들은 말 그대로 ‘가난’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너무도 다채로워 웃는 듯 하면서 우는 듯 했고, 행복한 듯 하면서 화난 듯 했다. 힘겹지만 결코 물들지는 않은 모습, 그것은 어쩌면 지난 날 우리가 잃어버린 무엇이다. 아니, 우리 스스로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지독함일지도 모른다. 찢어진 옷, 온통 주름진 얼굴, 너무 이른 나이에 어른이 되어야만 했던 아이들의 모습. 그것은 살아있는 과거였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곳엔가 존재하는 모습이라는 점에서) 살아있는 현재이기도 했다.
이달의 사락 q*****2 2005.02.0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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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보호라는 푯말아래 주저않아 남루한 차림으로 아이를 안고 있는 60년대의  어머니를 본다. 가슴이 뭉클하다.순간 나의 아들과 그 아이과 교차된다. 사진과 시인의 글이 만나 감동을 더욱 진하게 한다. 계단에 무릎끓고 앉아 구걸을 하는 남자의 사진 옆에 적혀 있는 글귀에 내 가슴이 뜨끔하다.   "모두들 재빨리 걸어나가는 어두운 곳에 철근처럼 구부러져 있는 것이 다름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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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보호라는 푯말아래 주저않아 남루한 차림으로 아이를 안고 있는 60년대의  어머니를 본다. 가슴이 뭉클하다.
순간 나의 아들과 그 아이과 교차된다.
사진과 시인의 글이 만나 감동을 더욱 진하게 한다.
계단에 무릎끓고 앉아 구걸을 하는 남자의 사진 옆에 적혀 있는 글귀에 내 가슴이 뜨끔하다.

 

"모두들 재빨리 걸어나가는 어두운 곳에 철근처럼 구부러져 있는 것이 다름 아닌 나와 같은 존재임을 알게 될 때..."

a******7 2009.05.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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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시리게 만드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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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식 작가의 이름은 이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이분 사진들은 본적이 있다. 책표지부터 마지막 장까지...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   가슴이 너무 시리고 아프다.. 잔잔한 웃음이 나오는 사진도 있지만, 가난한 삶을 노래한 책이다.이제 아침저녁으로 몸이 으슬 으슬해지게 쌀쌀한 날씨다~ 조금 더 있음 찬바람이 쌩쌩 불어닥칠것인데, 아직까지 우리 주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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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식 작가의 이름은 이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이분 사진들은 본적이 있다. 책표지부터 마지막 장까지...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

 

가슴이 너무 시리고 아프다.. 잔잔한 웃음이 나오는 사진도 있지만, 가난한 삶을 노래한 책이다.이제 아침저녁으로 몸이 으슬 으슬해지게 쌀쌀한 날씨다~ 조금 더 있음 찬바람이 쌩쌩 불어닥칠것인데, 아직까지 우리 주위엔 어려운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책을 보면서 우리의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생각하게 된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최민식 작가님과 더불어 사진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낸 조은 시인님에 대해 알아봐야겠다.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g********3 2007.10.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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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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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부대끼는 노동 앞에서 무수한 관념은 낡은 종이처럼 바스러진다. 미래에 대한 소박한 희망보다 현실의 절망을 먼저 체득한 자에게는 그 흔한 종교적 언어도 쉽게 풀이되지 않는 자음과 모음의 단순조합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부모와 우리 부모의 부모가 헤쳐나온 저 이십세기의 역사가 좁고 긴 생의 협곡을 지나며 굽이굽이마다 새겨놓은 한숨과 회한의 생채기를 바라보고 있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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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부대끼는 노동 앞에서 무수한 관념은 낡은 종이처럼 바스러진다. 미래에 대한 소박한 희망보다 현실의 절망을 먼저 체득한 자에게는 그 흔한 종교적 언어도 쉽게 풀이되지 않는 자음과 모음의 단순조합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부모와 우리 부모의 부모가 헤쳐나온 저 이십세기의 역사가 좁고 긴 생의 협곡을 지나며 굽이굽이마다 새겨놓은 한숨과 회한의 생채기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풍요로 점철되는 이십일세기의 이십대 청년인 내 마음은 송곳에 찔린 듯 아려온다.


저 도저한 가난이 그들에게 가르쳐준 것은 삶의 거룩함도, 종교적 신성으로 가득한 충일한 삶도 아닐터이다. 허나 그러하다해서 그들이 절망과 고뇌 속에서 텅 빈 여백의 삶을 이어온 것만도 아니다. 갈라진 손을 보듬으며 그들은 길을 만들었고 그렇게 무수히 갈라진 길 위로 우리는 두 발을 성큼성큼 떼며 걸어온 것이다. 고통이 단순히 고통으로 끝나지 않음은 생의 협곡을 거쳐온 저들의 굵은 주름살의 고요함이 일러주는 데, 깊게 패인 주름살은 그들만의 삶의 소중한 기록일테고 또한 그들이 걸어온 세상의 무수한 굴곡진 길일터이다. 그 길을 바라보며 나는 내가 걸어온 길과 지금 서 있는 이 땅과,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떠올려보는데, 마땅히 그 길을 수식해주는 풍경은 떠오르지가 않는다.


고매한 철학도 숭고한 이상도 신성한 종교도 찌그러진 양푼 냄비 속의 불어터진 국수를 쭈그리고 앉아 먹는 헝클어진 머리칼의 아이의 현실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다. 가난과 소외가 마치 자연스러운 인과관계처럼 한 개 의미망 속에서 이해되더라도 가난하다고 소외받아야 할 이유도, 그 어떤 필연성도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가난하기에 조금 외로운 시절이 있는 것이고 그 외로움 속에서 홀로 헤쳐가야 할 날들이 조금 더 길 뿐, 우리가 걸어온, 그리고 걸어가야 할 길은 실상 그렇게 외롭고 소외받은 자들의 삶과 그리 다를 까닭이 없다.


세상을 그리는 저 무수한 풍경들도 현미경의 눈으로 보면 모두 다 각양각색일텐데, 다만 한데 모여 각자가 그곳에 자리잡고 있음으로 한 시대의 풍경이 되고 한 세월의 여러 겹 주름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세월이 그려놓은 거친 살결 위 몇 겹 주름은 굴곡진 산의 능선을 빌려온 것인지 깊게 패인 주름도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면 산능선의 완만한 곡선처럼 부드러움으로 고요하게 출렁인다.


어둔밤 깊은 산 오솔길의 어두컴컴함이 그늘진 일상의 골목처럼 대책없이 두려울지라도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교교한 달빛의 부드러운 손길이 끝내 길 위에서 머뭇거리는 우리를 이끌어줌을 잊어서는 안되리라. 그때 우리는 이 땅위를 스쳐간 무수한 삶의 흔적들과 지금도 돋을새김되고 있는 일상의 작은 풍경들 속에서 비로소 삶을 수식하는 거창한 수식어들을 떨쳐버리고 허허로운 벌판에 홀로 우뚝 선 마른 나뭇가지 앞에서도 당당히 미소지을 수 있을테다.

s*****0 2007.01.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