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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이 불어서인가, 시詩가 읽고 싶었다. 소설을 읽다가 읽던 책을 내려놓고, 시를 읽고 있었다. 시 속에 숨겨진 마음들이 엿보여 내 마음을 정화시키며 시를 읽었다. 시를 읽다보니 내가 가지고 있던 시집 속의 시의 전문이나 일부분이 나와 있어서 시집 두 권을 펴놓고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책장을 넘겼다. 시는 그렇다. 한 페이지를 읽는 건 어쩌면 빠르지만, 다시 앞으로 오게 된다. 맨 첫 줄의 시에서 마지막 줄의 시 까지 읽고 나면 다시 맨 첫줄로 오게 되는 게 시詩 같다.
몇 줄 되지 않는 시를 읽고, 그림이 그려진 곳이면 가만히 들여다본다. 빈 여백 마저도 한 편의 시처럼 마음이 차오르는 경우가 있다. 아마 계절 탓인가, 시가 너무 좋았기 때문인가, 아니면 고은 시집을 엮은 김형수 작가의 덧붙인 글이 좋아서인가. 김형수 작가가 시를 읽고 시에 덧붙인 글을 읽고 있으면 고은 시인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고은 시인을 아주 잘 아는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한 시인에 대한 시를 추리고 시에 대한 짧은 생각을 쓰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김형수 작가의 고은 시인에 대한 애정이 보이는 문장들에서 나는 위로를 받았다.
더불어 시가 더 가슴에 와닿았다. 마음속 깊이 들어왔다. 짧은 시들이 그렇게 마음속으로 차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오늘도 누구의 이야기로 하루를 보냈다.
돌아오는 길 나무들이 나를 보고 있다. (『순간의 꽃』한 토막)
고은 시인의 시 한 토막에 김형수 작가가 덧붙인 글이다.
말도 많이 퍼내면 존재가 비워지는지 모른다. 실컷 떠들고 났을 때 찾아오는 공복감. 정신적 공허뿐 아니라 육체적 허기까지 곁들여진 허망의 느낌, 우리는 자주 그런 상태로 귀가한다. (65페이지)
말에 대해서 내가 최근에 느끼는 것들이다. 김형수 작가가 덧붙인 말에 나 또한 깊은 공감을 했다. 물론 고은 시인의 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만날때면 꼭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 수가 있다. 그럴때 실컷 이야기 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공허감에 몸부림을 친다. 내가 했던 말들을 잊기 위해 책에 파묻히기도 한다.
내가 이런 시를 만나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들도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걸 몰랐을 수도 있다. 나만 이런 감정을 갖는게 아니었구나. 다른 사람들도 이런 마음들을 품는구나. 하물며 시인도 이런 마음을 품는 다는게 조금은 위로이라면 위로랄까. 나만 그런게 아니었다는 걸로 위안을 받는 것이다.
오호라 그 나무가 아닐지라도 어느 날 밤의 연금술은 밤새워 끝내 흙 한 줌을 빚어내는 먼동 트는 빈손이었어.
시가 무어냐고 묻지 말아. 시인 노릇 56년이라지만 이 노릇으로 그 무슨 황홀한 대답이라는 것 아직 마련하지 못하고 말았어. (고은, '이것 앞의 감회' 중에서)
자신을 반도강산의 한낱 나무였을 뿐이라는 고은 시인의 말이 마음속 깊이 스며든다. 나도 그저 한 그루의 나무였으면, 아무 말 없이 가지를 키우고 잎을 피우는 나무였으면, 나뭇가지였으면 하는 마음.
그의 시를 읽고나니 내가 읽지 못한 그의 다른 시집이 그리워진다. 못내 읽고 싶은 마음이 든다. 서늘한 바람이 불때, 그 바람결을 느끼며 시를 읽어야 한다. 가을엔 시를 읽는 시간. 100편의 명구에서 감동을 느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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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공기를 마시며 구름을 쫓는 일이 새로운 일상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바삐 움직이고 있는 운무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보이고, 생명의 신비에 동참하게 하는 듯 경이로움의 나날이다. 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지나친 나무 아래 소담스럽게 핀 버섯에게서조차 친근함과 생명의 경이를 느끼곤 한다. 자연과 벗한다는 것, 그 말은 어쩌면 시인으로 가는 새벽열차에 오르는 일인지도 ...... 고은 시인의 《시의 황홀》을 만나면서 그런 느낌은 더해갔다. 자연에서 흘러나오는 영감의 세계를 그대로 담아내어 극한의 경지에 이르는 황홀경은 바람이 사람이 되고 구름이 벗이 되고 파도가 님이 되는 시詩 세계에 퐁당 빠지면서 시작된다.
삶이란 그다지 숭엄하지 않고 또 삶이란 그다지 비천하지 않다 하늘에는 거미줄이 자라고 때때로 별빛이 거기 걸리며 내려온다 아무리 큰 소리를 가진 사람도 별을 아무리 아무리 부를 수 없다 <을파소> 일부
《시의 황홀》은 기존의 고은 시와 달리 시인 김형수의 해설로 엮어 고은의 시 가운데 명구 100선을 엄선하여 실었다. 김형수의 시 해설로 고은 시의 함축적인 언어 속에 담겨 있는 시의 진수眞髓를 맛볼 수 있다. 오래 전부터 고은의 시를 사모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고은의 시의 정수를 뽑아놓은 시들을 읽으니 고은의 시세계가 더욱 뚜렷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고은의 시는 생명의 원점에서 출발한다. 만물의 무상함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밑그림으로 그린 후 삶이라는 본그림을 그리기 위해 채색되는 스케치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삶 한가운데를 뚫고 섬광과 같은 깨달음을 주고 있다. 이렇게 살아있는 자연과 함께 공생한다는 중용의 시각은 고은 시인이 가장 한국적이며 가장 동양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는 시인이라는 것을 방증함이다.
갓난아기로 돌아가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을 때가 왜 없으리 삶은 저 혼자서 늘 다음의 파도소리를 들어야 한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나 같은 것이 살아서 국밥을 사 먹는다
공동체가 파괴되고 억울한 사람들이 지천으로 널려서 울음 울때 그 어찌할 수 없는 아픔을 시인 브레히트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 했다. (엮은 이의 말)
이번 시집은 마치 하이쿠를 연상시키는 듯 여백의 미를 강조한다. 짧은 운율의 하이쿠가 지닌 장점 그대로 생의 응축과 자연의 아름다운 대비들을 통해 삶의 깊이를 깨닫게 하고 있다. 누군가 좋은 시는 화려한 수사가 필요없이 삶을 깊이 있게 느끼게 하는 시라고 한다. 고은의 시는 그런 면에서 좋은 시다. 이해하기 이전에 감동이 먼저 와 있다. 삶은 곧 아픔이자, 슬픔, 그리고 기쁨이다. 나의 경우에 좋은 시는 삶의 희로애락이 모두 녹아있는 시라 여겨진다. 희로애락 가운데 한가지라도 비어버리면 삶은 균형을 잃어버린다. 기쁜 날이 있으면 슬픈날도 있고 즐거운 날이 있으면 아픈 날도 있다. 이 반복되는 삶의 희로애락에서 섬광과 같은 진리의 찰나를 낚아올리는 것은 시인만이 할 수 있는 기술이다. 고은 시집이 황홀한 이유이다. 이제 곧 누구라도 시인이 되는 계절이 돌아온다. 고은의 시詩 열차에 올라 계절의 정수를 누릴 수 있다면 그건 아마도 삶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이리라.
불멸이란 얼마나 슬픈 것인가 이 세상은 부서지는 세상인 것을 <어느 기념비>일부 소쩍새가 온몸으로 우는 동안 별들도 온몸으로 빛나고 있다 이런 세상에 내가 버젓이 누워 잠을 청한다 <순간의 꽃> 한 토막 시인의 소쩍새가 온몸으로 울고 시인의 별들이 온몸으로 빛나는 저 위대한 찰나야말로 고은 식 주술의 순간일 것이다. 가을장마는 미친년 볼기짝이지 욕먹을 데도 없이 집중호우로 쏟아지기도 하고 뚝딱 시침 떼기도 하지 <하늘> 일부 1980년 이래 나는 절대로 구름하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운 사람 하나 없이 하루하루 견디는 일이 가장 괴로웠습니다 <구름에 대하여> 일부 고은에게 세상이란 문명보다 우선시하는 생명들의 정원 같은 것이라 해도 될 것이다 절간에 울려퍼지는 풍경소리, 집중호우로 쏟아지고 있는 가을장마, 옷소매 떨어진 것을 보면 살아왔구나! 살아왔구나! <여수 158>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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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실 바닥의 풍선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떼 같았다. 생일 파티를 한지 한달 여가 지났지만 여전히 생존한 풍선들이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공기의 대류현상 때문이겠지. 볼 때마다 풍선들의 위치는 조금씩 바뀌어 있었다. 걔중에는 여전히 몸 가득 수소를 품고 천장을 뚫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는 듯 천장 주위를 맴돌고 있기도 했다.
침대에서 일어나 슬리퍼에 맨발을 꿰었다. 휘청, 순간 현기증이 나서 침대를 짚었다.
사흘째 누워 있다가 일어난 날이었다.
한때는 병원을 제 집 드나들듯 할만큼 했던지라 웬만한 통증이나 병은 그러려니 하고 담대하게 지나갈 만큼이 되었지만 이번 독감은 무척 심했다.
진도 7, 8의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회칼로 살 한 점 한 점을 떠내듯 온 몸이 아팠다. 치과에서 느끼는 '우주적 외로움'이 사치로 느껴질만큼 사무치도록 외로웠다. 평생 느껴본 그 어떤 통증보다 심한 통증들이었다.
사흘 간 한 일이라곤 계속 잔 것 밖에 없다. 약 기운이 떨어지면 통증을 참을 수 없어 엉엉 울다가 약 기운이 몸에 돌면 죽음 같이 깊은 잠에 빠졌다.
그렇게 사흘 동안 침대 밖을 벗어나지 못하다가 겨우 일어난 것이다.
해마다 겨울이면 독감으로 죽었다는 사람들의 뉴스를 들으면서도, 그 뉴스를 들을 때마다 불안해했으면서도 그게 실제로 내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우리 파트는 완전 초토화되었다. 나를 비롯해서 몇 명의 사람들이 며칠 간 결근을 했고 심지어 입원한 동료들도 있었다. 죽음이 지나치게 가까이에 있었다.
휘청거리는 다리로 서랍장을 열고 빨아서 잘 보관했던 침구 세트를 꺼냈다. 단호하게 결별이라도 하려는 듯 힘이 들어가지도 않는 손으로 침구 세트를 갈았다.
사흘 동안 환자복처럼 입고 있던 잠옷도 벗었다. 원피스처럼 생긴 잠옷을 벗기 위해서는 만세를 하듯 손을 치들어야 하는데 그것조차 불가능할 만큼 기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그렇게 침구 세트를 갈고 옷도 갈아 입었다.
여전한 미열에 피부가 붉다. 며칠 동안 품어온 열은 아직도 몸을 떠나지 않는다.
보풀이 잔뜩 인 니트 원피스.
4년 정도 입어 낡디 낡은 옷이지만 입을 때마다 안정감이 느껴져서 해마다 겨울이면 집에서 가장 자주 입는 옷이다.
'휴' 비로소 크게 숨을 내쉰다.
상투적으로 하는 '죽다 살았다'는 말을 실감한다. 수사적으로가 아니라 실제로.
아픈 동안 문장 한 줄을 읽지 못했다. 기력이 완전히 쇠한 탓이었다. 책을 읽는데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근 닷새 만에 죽을 먹듯 조심해서 책을 든다. 고은 선생의 <시의 황홀>.
56년간 시인으로 살아온 고은의 여러 시집 중에서 100편의 시를 선별해서 엮었다.
그 중 이 시 앞에서 멈춘다. 마치 내 이야기 같다.
이 시에 엮은이 김형수는 다음과 같은 코멘트를 달았다.
누구에게든 이 시는 감동을 줄 수 있겠지만, 이 시를 읽었을 때의 내 경험은 고유한 것이다. 나만 할 수 있는.
어쩐지 이 시를 쓴 '그날 밤'의 고은이 나같다. 그렇게 시와 시인과 공명한다. 노트를 꺼내 흰 종이 위에 시를 베껴 본다.
옷 소매 떨어진 것을 보면 살아왔구나! 살아왔구나!
<여수旅愁 158> 전문
인생 자체가 여행에 비유되곤 하지만, 타지에서의 삶은 여행자의 우수를 느끼게 한다. 더욱이 죽을 만큼 아플 때는.
고은 선생이 했다는 말도 같이 적어본다.
고은의 옛글을 뒤지다가, 옷이란 두고두고 꺼내 입어서 그것과 함께 해로해왔다는 인생감이 서려야 한다는 구절을 읽었다. 어느 날 옷소매가 닳아서 부우옇게 보일 때 눈물이 핑 돌더라는 표현도 잊히지 않는다. 이 시는 아마도 그날 밤에 쓰였을 것이다.
보풀이 잔뜩 인 옷을 입을 때마다, 두고두고 꺼내 입어 부우옇게 닳은 소매끝을 볼 때마다 이 시가 생각날 것 같다.
옷 소매 떨어진 것을 보면 살아왔구나! 살아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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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이 이상은 모두 사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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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벤 샨
마정리 아이들의 노는 소리/저게 요순절시절이구나/나는 안다/아이들의 노는 소리가/만세 소리보다 백 번이나 귀중한 것을/ <삼월> 일부 63쪽
'낚시' 공성훈
누구의 말이라도 말 속에는/일생의 파도 소리가 들어있다 <소등消燈 >일부 137쪽
'구억리 가게' 이미경
눈 내린다/마을에서 개가 되고 싶다/마을 보리밭에서 개가 되고 싶다/아냐/깊은 산중/아무것도 모르고/잠든 곰이 되고 싶다/ <눈 내리는 날 > 일부 140쪽
고은 시인의 시는 어렵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그러다 '순간의 꽃'을 읽으면서 새삼 시인들의 특권(?)이라 생각하는 그 시선이란 것이 부러웠고 존경스러 했던 기억이 난다.매우 짧은 한 줄로 담아 내는 그 강렬함을 어떻게 잊을수 있을까? 김형수 시인은 고은 시인의 수많은 강렬함들을 '황홀'이란 이름으로 엮어 내고 싶었나 보다.고전에서 좋은 문장들을 모아 엮어 놓은 책들이 있는 것처럼.물론 시들도 종종 하나의 주제로 엮어 낸 시집들이 있긴 하다.그렇지만 전체가 아닌 그야말로 절정의 순간만을 옮겨 놓는다는 것은 시전문을 읽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울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도 했다.엮은이의 느낌대로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시 전체의 부분이란 느낌 보다 이미 그 자체로 완성되어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그래서일까? '황홀'이란 낱말은 이미 존재하는 단어지만 시를 읽으면서 나만의 황홀로 만들어가는 느낌을 경험했다.시를 읽으며 자연스럽게 떠오른 그림들이 시를 더 황홀하게 읽을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시인이 느꼈을 황홀과 김형수시인이 느꼈을 황홀의 지점은 저마다 다르겠지만..중요한건 자신만의 느낌으로 '황홀'의 그 짜릿함을 경험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것은 아닐지..
온종일 장맛비 맞는 거미줄/너에게도 큰 시련이 있었구나 <순간의 꽃> 한 토막 /105
내려갈 때 보았네/올라갈 때 보지 못한/그 꽃 <순간의 꽃> 한 토막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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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가을편지>의 일부입니다.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면 한 번쯤 입에서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 이 아름다운 노랫말이 고은의 시입니다.
우리에게 고은 시인은 소개가 필요없는 시인입니다. 이 시집에도 그에 관한 소개를 딱 두 줄, 두 마디입니다. "시인 생활 56년, 시집 여럿." 참 멋드러진 소개입니다. 다른 무엇이 더 필요할까 싶습니다. 우리에게 고은은 노벨문학상 후보에 거론되며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되었지만, 그보다 먼저 우리는 그의 시를 노래했고 사랑했습니다.
<시의 황홀>은 고은 시인이 평생 써온 시 전편에서 100편의 시구를 고른 것입니다. 고인이 시인이 직접 쓴 시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짧은 글이지만 고은 시인의 시 세계를 이해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고은 시인을 향한 얄퍅한 사랑이 부끄러워집니다. 시집 한 권 제대로 읽은 적이 없으면서 노벨문학상 수상을 응원하고 염원한다 소란을 떨었으니 말입니다.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이 시를 읽었습니다. 내려야 할 곳에 내리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외로움이라는 감각을 잊고 살만큼 마음이 둔해져 있었는데 그게 건드려졌나 봅니다. 시가 읽고 싶은 날은 외로운 날입니다.
폭포 소리 한 복판에서 폭포를 잊은 시인처럼, 나는 사람들이 밀려가고 밀려오는 틈바구니에서 세상을 잊었습니다. 세상의 소란이 제거되고 오롯이 나를 마주했을 때 당황했고, 어쩐지 측은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난데 없는 물음이 튀어나왔습니다. "너는 누구냐?"
비평가 김형수는 이 시를 이렇게 읽습니다. "말도 많이 퍼내면 존재가 비워지는지 모른다. 실컷 떠들고 났을 때 찾아오는 공복감. 정신적 공허뿐 아니라 육체적 허기까지 곁들여진 허망의 느낌. 우리는 자주 그런 상태로 귀가한다"(65). 이제는 귀가길이 아니라 출근길까지 나를 좇아오는 허망의 느낌. 아침마다 정신 없이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사람들의 물결을 보면 숨이 막혀옵니다. 저는 저들이 온 방향으로 가려 하고 저들은 내가 지나온 방향으로 가려 하고. 그때 찾아오는 현기증이 이 시에서 느껴졌습니다. 서커스단의 어린 코끼리는 말뚝에 매여놓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길들여지면 자기 힘으로 그 말뚝을 뽑아버릴 만큼 힘이 세져도 도망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내가 반복되는 공허로부터 힘써 도망가지 못하는 건, 힘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길들여졌기 때문이라는 자각, 나에게 용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더했습니다.
SNS에서 본 글입니다. 영화 <변호사>를 보았을 때도, 외할머니가 안타깝게 돌아가셨을 때도, 세월호 사건 때도 이 시를 떠올렸습니다. 누군가 세월호 사건 때 이 시를 SNS에 올리며 "고은의 시인데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답니다(107). 나는 이것이 고은의 시인줄도 몰랐는데, 이 시는 처음부터 제목이 없었다고 합니다. 공감이란 깊은 위로이기도 하다는 것을, 시인의 자기 혐오의 감정에서 위로를 받았을 때 알았습니다.
고은 시인의 시에는 인생감이 서려 있습니다. 김형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고은의 인식 속에서 도덕이나 지식보다 우선하는 것은 언제나 살아있음 그 자체이다. 그것은 번개처럼 번뜩이고 물결처럼 출렁이고 심연처럼 고요해지는 동사들로 이루어져있다. 그래서 삶에서 사소하고 의미 없는 순간은 없다"(83).
<시의 황홀>은 나에게 "다음의 파도 소리"와 같았습니다. 그의 시는 웅변하는 가르침이 아니라, 햇살처럼 마음에 스미고 파도처럼 강렬하게 밀려들고 외로운 바람처럼 온몸을 스쳤습니다.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사랑하며 살자 싶습니다. 100편의 시구말고 전편을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어릴 때는 절로 외워지는 시구도 있었고, 애써 외우고 싶은 시구도 있었고, 노트마다 옮겨 적었던 시들도 많았는데, 요즘은 검색만 하면 바로 시가 뜨니 세상이다 보니 오히려 마음에 담아둔 시가 적어졌습니다. 여기 옮겨 적은 시들은 절로 마음에 담긴 시입니다. 이제 진심으로 고은 시인을 응원할 때 조금은 덜 부끄럽고, 덜 미안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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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신간도서] 가을에는 시를 읽어야 할 것입니다! 시의 황홀 고은 시인과 유쾌한 만남
2014.11.04.
여러분 고은 시인님을 아시나요?? 우리나라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시인이랍니다 시대를 아우르는 섬세한 표현법과 소녀같은 감성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울리는 그런 시인이십니다
저번 달에 노벨문학상 시상을 앞두시고 계셨고 아쉽게도 상은 수상하시진 못했지만 고은 시인님께선 다양한 국내외 상들을 휩쓸고 계시답니다
고은 시인님께서는 팔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열정을 가지신 그리고 따뜻한 감성을 지니신 팔팔한 청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새롭게 고은 시인님의 시를 모아놓은 시의 황홀이 출간되었답니다 시의 황홀에서는 고은 시인님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답니다 심플하고 간결해서 놀랫어요 그래도 이런 소개가 임팩트있고 기억에 잘 남더라고요
시의 황홀 저자 고은 시인님 시인 생활 56년 시집 여럿.... 뭔가 당연하면서도 자부심 있으시면서도 모든 것을 함축하는 고은 시인님의 소개인 것 같아요
고은 시인님의 <소등> 일부입니다 정말 섬세한 표현법으로 저를 놀래키더라고요 시 한편 읽고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보고 심도있고.. 이래서 사람들이 시를 읽나봐요
이 시의황홀에 담겨있는 많은 시들이 고은 시인님의 시 중에 그저 일부라니 참 전율이 일더라고요
남자라고는 느껴지지않는 소녀감성을 지니신 귀여우신 고은 시인님의 색채가 그대로 시의황홀에 드러나 있더라고요ㅎㅎ
11월 4일 드디어 고은시인과의 만남의 자리에 다녀왔답니다 이번 저자강연회도 신촌 현대유플렉스 제이드홀에서 열렸어요 두근두근~
정말 수줍게 고은 시인님께서 등장하셔서 가을에는 시를 읽어야 할 것입니다! 라고 운을 떼시면서 강연회를 시작하셨답니다
정말 저자강연회중에서 가장 재밌고 유쾌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딱딱하고 지루하기보단 시간이 금세 가더라고요 고은 시인님께서 섬세하고 재밌는 표현법으로 강연장을 재밌게 만들어주셨답니당
강연회 도중 인상깊어서 한 번 찍어보았어요 여러분들도 이 강연장의 열기를 한 번 느껴보시고 고은 시인님의 시의 황홀 한 번 읽어보셔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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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황홀]-시인 생활 56년 고은은 국민시인이라고 말한다고 한다. 이를 국민시인이라고 칭한것은 영국의 BBC 등 외신 이며,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한국문학의 거장이다. 한국어로 쓰인 작품의 특성상 국제적 출판시장에 바로 소개될 수 없고 번역도 쉽지 않지만, 이를 뛰어넘어 세계적인 거장의 발열에 오르게 된 시인을 그래서 흔히 "우주의 사투리로 노래하는 시인'이라고 한다고 한다. 우주의 사투리로 노래하는 시인이라는 말이 왜이렇게 재미 있으면서도 특별하게 들리는지,,
[시의 황홀]은 크케 5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제1장 - 그리운 그대에게라는 사랑에 관련한 시, 제2장 - 생의 적막과 소란속에서는 삶과 관련한 시, 제3장 - 귀뚜라미야, 너도 싸우고 있구나에는 상처에 관한 시, 제4장- 봄이 오면 새싹들이 들판을 호령한다는 치유에 관한 이야기, 제5장- 나는 출항한다. 뱃머리에 서있으리라'에는 희망과 관련한 시가 담겨져있다. 이렇듯 각장별로 위로 받고 마음을 느끼고 싶은 부분별로 읽어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외 문학평론가 김형수씨의 시에 해설을 덧붙이기 했는데, 이는 창작자의 진의를 바탕으로 시를 제대로 이해하게 해주고 시의 메시지를 더욱 강력하고 섬세하게 전달하고 있다. 이렇듯 시를 읽고 자신의 지금 감정과 그 시구를 비교해서 써놓고 자신의 마음을 써놓는 것도 참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살아가며 시한편 외우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있을지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다. 내 마음을 내 사연을 희노애락을 짦은 글 귀에 담고 누군가에게 전달하고 표현하는게 얼마나 멋지고 의미 있는 일인지 [시의 황홀]을 통해 새삼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짧은 글이라고 해서 마음이 전해지지 않는 것이 아님을, 얼마든지 내마음을 그리고 누군가의 마음을 전하고 전해 받을 수 있음을 느낄수 있었던것 같다. 이 [시의 황홀]이라는 책을 만나고 처음으로 나에게 의미있는 그리고 나를 표현하는 듯한 시를 외우고 싶어졌다는 생각을 했으니, 참 따뜻하고 고마운 책이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시의 100편을 담아놓은 것이 아닌 문학평론가이자 [시의 황홀]의 엮은이인 김형수가 고은의 시를 읽고 보고 느끼면서 100편의 시구를 모아 놓은 책이다. 시의 시구를 모아 그 글귀가 어려 사람에게 힐링메시지로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펴냈다고 하니, 글 귀를 읽다보면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다. 책을 읽다보면, 이 시의 전문이 궁금해지기도 하고, 그 속엔 어떤 마음이 들어있을까 문득문득 궁금해지기도 한다.
: 저녁 하늘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적혀있다 / 네 이야기와 내 이야기가 있다 / <저녁 하늘>일부 p. 23
: 새벽에 쫓아나가 빈거리 다 찾아도 / 그리운 것은 문이 되어 닫혀있어라 / <여수-3> 전문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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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시점이 되면 국내 취재진은 어느 대문앞으로 모여든다. 그곳에서 국민 시인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는 고은 시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리라. 하지만 매해 기대와는 달리 고은 시인의 수상 소식이 들려오질 않아서 안타깝기 그지 없는데, 그건 아마도 고은 시인의 시에 담긴 그 정서와 감정을 외국인들이 제대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서가 아닐까?
어느 정도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 국민성과도 연관해서 접근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으니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고은 시인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그 어느 노벨 문학 수상작에 뒤지지 않는 문학적 감동을 선사해준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이 책은 고은 시인의 시인 생활 56년의 발자취가 담겨져 있는 책인 동시에 우리들에게 감동을 선사한 명구 100선이 수록되어 있는 책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고은 시인을 국민시인이라 영국의 BBC라고 한다. 그렇게 해외에서도 인정을 받는 고은 시인이다.
시의 전문을 실은 것이 아니라 100편의 시의 한 구절을 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몇 문장에서도 삶의 철학이 느껴지는 것은 고은 시인이 시에 담고자 했던 그 감정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는 물론 대중가요인 <세노야>의 가사도 고은 시인의 작품이라고 하니 짧은 글에서도 충분히 그것을 접하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총 다섯 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는 구성인데 차례대로 사랑, 삶, 상처, 치유, 희망과 관련한 시를 담았다고 한다. 여기에 김형수 문학평론가가 해설을 덧붙이고 있는 경우도 있어 고은 시인의 시를 직접적으로 읽는 것과 함께 그것에 대한 의미까지도 자세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매력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시의 전문을 읽고 싶다는 아쉬운 마음은 분명 있기에 개인적으로 고은 시인의 시집을 소장하고 있는 경우라면 그 마음이 덜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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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의 시 전편에서 고르고 고른 100편의 시구를 만날 수 있는 <시의 황홀> 이 책을 엮은 김형수는 고은의 50주년 기념 작품집을 엮으면서 “50년 동안의 사춘기”라는 표현을 사용했었다고 하는데, 책을 덮고 나니 그 말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참 어느새 꽤 많은 것들에 덤덤해지고 있는 나를 돌아보며 책 표지를 만지작거리다
보니 원을 이루는 수많은 사각형 중에 일부가 조명에 비쳐 반짝였다. 어쩌면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시를 써온 고은의 작품에서 그가 골라낸 이 시들도 그런 반짝임을 주지 않았을까 한다. 그리고 짙은 감수성이 베어있는 아름다운 글속에서 내 마음을 파고들은 시가 있었다. 그 시구들은 점점 무뎌지고 있는 내 정신을 반짝이게 해주고 예민했던 사춘기의 감성을 잠시나마 깨워주기도 했다.
물결이 다하는 곳까지가 바다이다.
대기 속에서
그 사람의 숨결이 닿는 데까지가
그 사람이다
<그리움> 일부
나는 늘 바다를 보면 하늘과 맞닿아 있는 수평선에 시선을 뺏기곤 한다. 그래서
바다가 마치 나 여기 바로 니 곁에 있다고 말하고 싶은 듯 내 발등을 간질이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던 거 같다. 그래서
이 시를 읽는 순간 난 참 먼 곳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사람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참 어리석은 것이 늘 나중에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
새벽에 쫓아나가 빈 거리 다 찾아도
그리운 것은 문이 되어 닫혀있어라
<여수3> 전문
모든 시에 다 그러하지는 않지만, 이 책을 엮은 시인 김형수의 해설이
함께하는 시들이 있다. 그 중에 “떠다니는 자의 우수가 담겨
있는 '여수'”라는 해설을 보며 문득 나는 ‘떠다니는 자’인가? 라는
자문을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 시를 읽으면서 내 마음을 들킨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리움>이라는
시를 읽고 내가 느꼈던 감정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꾸만 저 먼 곳만을 바라보는 것이 어쩌면 ‘떠다니는 자’의
정체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누구의 이야기로 하루를 보냈다
돌아오는 길
나무들이 나를 보고 있다
<순간의 꽃>한
토막
딱 읽는 순간 바로 내 일기장에 적어놨던 시이다. 만약 가능하다면
모든 페이지에 인쇄를 해두고 싶은 심정이다. 정말이지 나는 안 그럴 줄 알았는데, 살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떠밀려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래서 이 시를 읽으면서 하루를 돌아보고 싶어진다. 오늘은 나는
내 이야기로 하루를 보냈나? 아니면 누군가의 이야기로 하루를 보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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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이 발표될 때가 되면 대한민국이 들썩이는 이유는 단 하나. '시인 고 은이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문학상을 받을까' 하는 것이다. 오십여 년이란 시간을 시에 올인한 삶이 어디 흔할까? 하면 할수록 익숙해지는 것이 있는 반면 알면 알수록 더욱 어려운 것 또한 있다. 창작이란 후자에 속한 것. 많은 것을 말하지 않고 은유와 함축을 갖고 언어유희를 즐기는 시는 더욱 그러하지 않을까. <시의 황홀>을 엮은 김 형수는 말한다. "고은의 시 속에는 가끔 위대한 승려가 앉아있다. 그가 무심을 얻었을 때만 만질 수 있는, 송하지 않았을 때만 간직할 수 있는 어떤 세계를 보는 이."[본문51쪽] 시에서 황홀감을 느꼈을 작가는 그가 감동한 문구들을 하나의 책으로 엮고는 자신의 감상을 함께 실었다. 그것이 때로는 새로운 창작이 되기도 하고 시인을 향한 찬미가가 되기도 한다. 고 은의 시를 제대로 느끼기에는 아쉽지만 고 은의 시를 읽고 누군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더없이 좋은 책이다. 시를 읽을 때면 언제나 나는 필기도구를 챙긴다. 시란 처음 읽었을 때 느낌과 시간이 지나 또 다시 만났을 때의 느낌이 다르고 감동을 느끼는 순간 또한 매번 다르다. 그래서 오랜만에 펼쳐본 시집은 언제나 새롭다. 분명 내 글씨가 맞지만 생각이 다르고 관점이 다른 생소한 문구를 만나기도 하고, 이것이 정말 내가 쓴 글인가 싶을 정도의 감탄스런 문장이 보이기도 한다. 시의 황홀은 그런 의미에서 작가 김 형수가 오랜 만에 들춰본 고은 시집이다. 시인 고 은의 작품 활동 기간이 오십 년을 넘었고 그가 세상에 내놓은 시집 또한 여러 권. 그의 시집을 한두 권 펼쳐보지 않은 지식인이 몇이나 있을까. 김 형수는 그런 지식인이자 시인 고 은의 팬이다. 요즘 한 케이블 방송에서 모창을 모티브로 한 프로그램이 한참 인기를 끌고 있다. 모창하면 좀 가볍게 느껴졌었는데 지금은 그 방송으로 인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가수들이라면 나가보고 싶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시즌 3 프롤로그에서 프로그램 진행자가 자신의 프로를 두고 '새로운 형태의 세련된 팬미팅'이라고 표현함에 고개를 끄덕였었다. 좋아하는 가수를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그의 노래를 모창하게 되었다는 팬들. <시의 황홀>도 그렇다. <시의 황홀>은 고은의 시를 향한 모창이며,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과의 팬미팅이다. 그렇기에 그가 꺼내놓은 이야기는 사랑이다. 그리고 아직 고 은의 시 세계를 접해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마치 여행지에서 만난 관광 가이드북과 같다. 나는 오늘 서재를 바라본다. 그리곤 오래 전에 읽었던 시집들을 하나둘 꺼내본다. 여백이 있는 시도 있고 하얀 여백에 샤프심이 흔들린 춤을 추는 것도 있다. 나만의 시의 황홀이 여기저기 펼쳐져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