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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다섯개짜리 소설. 읽으면서 내가 죽고나도 이 소설은 계속 남아 있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교과서에 실리고 한국의 문단 중에 꼽히게 될 사람은 동시대에 봐도 그 특출함이 확연히 보이는구나, 싶기도 하고. 문장이 걸출하다고 말하긴 힘들다. 쉬이 읽히는 문장도 아니고 -읽다가 조금쯤은 지루함에 몸을 틀게 되고- 하지만 글이 너무도 진솔하다. 소설이라고 하기에 너무도 일상적이고, 꾸미지 않아서 이것이 소설인지, 현실인지 헷갈릴 정도다. 하지만 세세한 곳까지 놓치지 않고 하나하나 다 묘사하면서도 흐름을 놓치지 않는 구성력이 있는 작가다. 그의 문학적 배경에 “김유정의 반어, 채만식의 풍자, 이문구의 능청스런 입담이 함께 심어져 있”(김만수, 문학평론가)음을 한껏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혹자는 신인-신인도 아니지만- 작가에게 너무 과한 평이 아닌가 말하지만, 몇십년 후에는 그의 이름을 단 칭찬이 다른 후배작가들에게 이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니면 내가 리얼리즘 사조의 글만 보면 광분하는걸지도. 현실적인 글을 쓰는 작가는 많이 봤다. 하지만 어떤 글을 쓰느냐에 따라 왜곡되기 마련이다. 1984로 유명한 조지 오웰이 젊었을 때 쓴 '런던과 파리의 밑바닥생활'마저도 노숙자들을 자기의 사상에 따라 너무 미화했다는 비평을 받았다. (그의 소설에서 노숙자들은 자신들이 노숙자임에도 노숙자를 위한 지원을 비판한다. 노숙자에서 벗어나 직업을 가지게 하는 것이 노숙자 재활시설의 소임임을 알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계속 노숙자로 살아가는 아이러니를 안고 있는 것이다) 김종광의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없다. 아니, 주인공이 너무 많다. 모두가 같은 비중으로 묘사되며 어느 쪽에 치우치는 일없이 -그래서 때로는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는 비평을 받으며- 현실을 재구축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이 시대를 그는 글이란 수단으로 붙잡아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현실의 재현에만 그치지는 않는다. 이 책에 11개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그 중 '정육점'을 읽으면 다들 고개를 갸웃하게 될 것이다. 분명히 매춘을 하는 매음굴의 풍경인데 여자가 아니라 남자이다. 남자와 여자의 역할을 바꿔 넣음으로서 본의아니게 선정적이고 여성비하적이 되어버리고 마는 매춘이란 소재를 좀 더 현실적으로 끌어낸 것이다. 단순히 하룻밤을 지내는 것이 아닌, 인간으로 수치가 느껴질 정도의 쇼를 하고 팔려다니는 그네들 인생이 남자로 묘사됨으로서 오히려 제대로 보인다는 것은 또 무슨 아이러니일까. 앞으로 어떤 작품을 낼지, 어떤 길을 걸어가게 될지가 참으로 기대되는 작가이자 그만큼 작가의 활동을 보고 있기가 힘든 작가이기도 하다. (김동인이나 기타 소설가들이 어떻게 길을 걸어갔는지를 안다면 참 지켜보기 힘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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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막히는 일상의 아이러니 - 김종광, 『경찰서여 안녕』 김종광은 숨 막히는 도시 세계와, 해학적 인물들이 펼쳐내는 농촌 세계를 가로지르며 자신만의 독특한 소설 세계를 꾸려가고 있다. 등단작 「경찰서여, 안녕」이 전자의 경향을 아이러니의 기법으로 담아냈다면, 「전당포를 찾아서」나 「모내기 블루스」 등은 후자의 해학적 정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도시 생활을 경험한 인물들이 신산스런 삶의 아이러니를 다소 과장스러운 몸짓으로 드러낸다면, 작가의 고향(충남 보령) 사람들을 모델로 한 해학적 인물들은 그러한 삶의 아이러니를 넘어서는 웃음의 세계로 독자들을 이끈다.
등장인물들이 살고 있는 장소의 차이는 곧바로 인물들의 삶에 대한 관점의 차이로 이어져, 결코 맞물릴 수 없는 두 개의 세계로 분화된다. 요컨대 김종광 소설에서 도시와 농촌은 한 인물의 내면에서 공존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농촌 출신의 인물들이 도시로 탈출하는 꿈을 끊임없이 꿀수록 농촌과 도시라는 공간은 전혀 반대되는 양상으로 그들에게 다가온다. 도시적 삶의 아이러니와 농촌 사람들의 해학성이 번갈아 드러나는 김종광 소설의 특징은 돌려 말하면, 작가 스스로 도시와 농촌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징표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김종광 소설의 이러한 특성은 등단작인 「경찰서여, 안녕」에서부터 이미 나타나고 있다. ‘경찰서’를 배경으로 “괴도 루팡”과 같은 도둑이 되고 싶어 하는 ‘열한 살’ 소년 ‘강수’의 경찰서 탈출기를 기록하고 있는 이 소설은, 해학성과 더불어 김종광 소설의 세계관적 바탕을 이루는 ‘자유를 향한 열망’을 아이러니의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경찰서는 강수에게 “감시, 억압, 압박”으로 특징화되는 세계이다. “감나무에 쇠줄로 묶인 검둥이의 신세”라는 강수의 말처럼, 경찰서로 대표되는 세계는 구조에 적응할 수 있는 존재들만 그 세계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인다. 그를 “착하고 튼튼한 어린이로 바꿔놓고야 말겠다는 유 형사의 각오”가 “엎드려뻗쳐 팔굽혀펴기 오십 개, 뒷짐 지고 쪼그려 뛰기 오십 개, 피티 체조 오십 개, 줄넘기 삼백 개……” 등의 육체적 형벌로 표현되는 세계가, 강수가 생각하고 경험하는 경찰서의 실제적 모습에 해당되는 셈이다. 그리하여 소년 강수는 항상 탈출을 꿈꾼다. 착하고 튼튼한 어린이는 그에게 구속을 상징하는 존재일 뿐이다. 경찰서는 그의 삶을 제도적으로 인정받는 상태로 만들어 놓겠지만, 그 결과로 그는 제도 속의 존재로 영원히 살아가야 한다. 제도 속의 안정과 제도 밖을 향한 끝없는 열정의 경계에서 강수는 열정(자유)의 길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강수의 탈주는 기본적으로 “내부에 팽창하는 거대한 힘”을 스스로 표출해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강수의 공부를 가르치는 명오(전경)의 말대로, “길이 보이지 않는 구조에서 탈피”하려는 욕망과 이어지는 바, 그러한 욕망은 「경찰서여, 안녕」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내면을 규정하는 핵심적인 욕망이기도 하다. 즉 경찰서의 숨 막힐 듯한 일상에 절망하는 명오나, 김치 때문에 ‘짐승’ 같은 기 싸움을 벌이는 성만(전경)과 천안댁(구내식당 주인)의 형상은 ‘경찰서’라는 구조에 얽매여 살아가는 상징적 주체들의 막막한 현재를 대변한다.
막막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들은 경찰서 외부의 세계를 동경하지만, 그것은 내면 속의 동경으로만 그칠 따름이다. 강수라는 인물의 긍정성은 이런 맥락에서 찾을 수 있는데, 명오가 보이지 않는 구조의 외부를 상상하기만 할 때, 강수는 그 외부로 과감하게 뛰쳐나간다. 상상만 하는 인물에게는 닫혀 있는 희망의 길은 실천하는 주체에게는 열려 있다. 비록 그 길이 ‘어둠’에 쌓여 있는 혼돈의 길이고, “아무것도 없을지” 모르는 고난의 길이 될지라도, 그 길은 “묶여 있는” 길이 아니라 “멍멍 짖으면서 들판을 날”뛸 수 있는 자유의 길이라는 점에서, 강수는 미련 없이 경찰서를 탈주하는 ‘무모한’ 행동을 실천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강수가 선택한 자유의 길이 과연 그에게 자유로운 삶을 주었을까? 작가는 강수의 입을 빌려 구조의 ‘틈’에 대해 성찰하기 시작한다. 틈은 탈주할 수 있는 길이면서 동시에 구조를 끊임없이 재구조화하는 이중적인 힘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틈은 항상 열려 있지만 또한 항상 닫혀 있다. 강수가 빠져나온 철조망의 틈 역시 그가 탈주하는 순간 재구조화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사이-공간’이라 할 수 있다. 강수와 같은 존재들은 한 사회의 구조가 개인들을 억압하는 순간부터 이미 존재해왔을 것이다. 사회구조의 역사가 그러한 존재들을 억압하는 제도의 역사와 다르지 않다면, “감시, 억압, 압박”이 사라진 세계를 향한 강수의 탈주는 시작부터 한계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다. “손에 땀이 나는 두뇌 싸움”으로 그는 어른들과의 싸움에서 “값진 승리”를 얻을 수도 있겠지만, 그 승리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서라도 그는 또 다른 “감시, 억압, 압박”의 구조로 들어가야만 한다. 탈주가 구속으로 이어지는 아이러니의 세계는 실상 이 사회를 살아가는 존재들이라면 감당해야 할 본질적인 문제라 할 것이다.
강수가 처한 아이러니는 당연하게도 작가 김종광의 문학적 딜레마로 나타난다. 농촌 지역 등장인물들의 고달픈 삶을 해학적인 시선으로 그려내는 소설들에서도 작가의 이러한 딜레마는 어김없이 표출된다. 미래가 없는 농촌 지역에서의 삶은 그대로 그 지역 출신 인물들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단서가 된다. 나아갈 곳이 없는 상황, 그렇다고 자신이 태어난 농촌에서 꿋꿋하게 살아갈 수도 없는 인물들의 전망 없는 상황이 작가로 하여금 비극적인 세계관에 젖어들게끔 한다. 김종광 소설에 등장하는 농촌 청년들은 헤어날 수 없는 절망에 빠져 있다. 강수에게는 철조망의 틈이라도 있었지만, 농촌 청년들에게는 그 틈마저도 그나마 보이지 않는다.
김종광은 이러한 청년들의 절망 너머에 아버지(어머니) 세대의 해학을 배치한다. 구조화된 세계를 탈주하는 소설적 힘으로, 아버지 세대의 해학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 세대에서나 이루어질 법한 해학으로 풀어헤쳐진 웃음의 장(場)이 과연 절망에 빠진 농촌 청년들의 탈주를 도와주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 세대를 넘나드는 가족 간의 정이나, 세대를 넘나드는 농촌 사람들의 해학성에 내포된 현실적 맥락은 그러므로 이러한 아버지 세대의 해학에 드리워진 현실성을 파악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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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미있는 책을 읽었다. 김종광이라는 작가는 하나의 단편만을 읽어봤을 뿐인데 그 기억이 꽤나 좋았던 모양이다. 오래전 부터 눈여겨 봤던 이 책을 이제야 읽게 된 이유는 아끼고 아꼈다는 표현이 적합할 것 같다. 지극히 개인 적인 취향은 단편집을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심하다. 하지만, 이 책은 무려 11편의 단편이 실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꽤 우수한 단편집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장 큰 이유는 일단 재미있다는 점이다. 모든 작품에 있어 재미가 있다는 것은 가장 큰 장점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특히 단편은 한 번에 독자의 시선을 확 잡아끄는 무엇인가에 있어야 하는데, 이 책에는 그야말로 그 무엇인가가 존재한다.
표제작 '경찰서여 안녕'을 비롯한 11편의 단편을 읽어보면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점이 있다. 바로 작가의 출신성분이다. 작품 전반에 걸쳐 나오는 충청도 사투리는 작가의 고향을 알게 되고, 전투경찰에 관한 이야기 (경찰서여 안녕, 검문, 전설,기우)는 그의 병과를 짐작하게 한다. 또한 농촌을 배경으로 나온 작품들을 봐서 충청도 하고도 꽤나 외진 곳 출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수하면서도 해학적인 충청도 사투리 덕인지 그 의 작품을 읽으면서 이문구를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평론가의 말대로 김유정의 반어, 채만식의 풍자, 이문구의 능청스런 입담이 함께 심어져 있다는 말이 틀리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작품을 읽다 보면 가장 좋은 것은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다는 것이다. 시대적 배경 뿐만 아니라 사소한 소품 하나까지도 내가 자라온 것들과 유사하기 때문에 좀더 많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나의 어린시절 뿐만 아니라, 대학,군대의 모습까지도 꽤나 유사한 부분을 많이 찾아 볼 수 있었다. 이 작품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이다.
이 책의 특징중에 하나는 등장인물이 꽤 많다는 점이다. 특별히 중요하지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이름과 나이를 길게 나열하고 있다. 영화로 따지면 한 장면 나오고 그만일 엑스트라에 가까운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친절하게 이름과 나이를 언급해 주고 있다. 어떤 작품에서는 이름의 나열들로 인해 정작 중요한 인물을 놓치게 되는 복잡한 경우를 만나기도 한다. 작품속의 화자들은 결코 비범한 인물들이 아니다. 그저 우리의 주변에서 흔히 만날수 있는 인물들이다. 나 혹은 가까운 친구,가족과 같은 아주 평범한 인물들을 등장시키다. 하지만,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주고 받는 아주 평범한 이야기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공공연한 비밀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들은 그 들은 아주 비밀스럽게 혹은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우리에게 들려준다.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있지만, 사회적으로는 금기시 되어 왔던 이야기들을 작가는 평범한 인물들의 입을 통해 아주 능청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모습에서 나는 통쾌함과 허탈함 그리고, 씁쓸한 웃음을 느낄수 있었다.책장을 덮는 순간 작가의 작품들을 꽤나 자주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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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통 일반적인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주인공을 둘러싼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작가가 이야기 하는 것을 파악한다. 주인공에 자신을 동일화 시키기도 하고, 객관적 대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독자가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주인공을 만드는 것이 인기많은 책의 비결이라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 책은 달랐다. 경찰서여, 안녕, 분필 교향곡, 많이많이 축하드려유 등. 앞에 등장한 많은 작품들은 짧은 단편에 6-8명 그 이상으로, 등장인물이 전에 읽은 다른 소설보다 많았다. 캐릭터들보다 등장인물이 많이 등장한 주변 이야기를 볼 수 있었다. 어느 한명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았기에, 모두에게 다 의미를 주었다고 할까.. 등장 인물들간의 이야기와 부딪치는 사건들이, 어색하지 않게 촘촘하게 구성되어 시장에서 이야기 잘 하는 재담꾼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읽다 보면 어느새 책의 내용이 끝나 있다. 많이많이 축하드려유와 같은 농촌에서의 오토바이 면허시험장의 모습, 중소기업 상품회의 어르신을 노리는 물건파는 행사의 모습속에서, 어느 한쪽에 무게를 주는 것이 아닌,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책이 더 많은 경험을 간접체험하게 해 준다는 걸 잘 느낄 수 있는 책이였다. ''전설, 기우'', ''검문''등 군대생활의 모습,''정육점에서''의 남성접대부의 모습. ''모종하는 사람들''. ''편안한 밤이 오기 전에''. ''짚가리 비릊다'' 의 농촌의 모습 등, 다양한 곳에 시선을 두면서도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빠져 들게 하는, 작가의 넓은 시선과 빼어난 글 솜씨와 함께 거칠고 투박해 보이지만, 그 안에 등장인물들에 대한 따스한 애정이 녹아있는, 따뜻한 시선도 느낄 수 있었다. 읽은 후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한 번 더 읽을때마다 여러가지 곰곰히 생각할 이야기거리를 제시해 주어서 재밌었다. 이제 작가의 다른 소설과 데이트를 떠나 보아야 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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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조차 특이한 김종광의 소설집 ‘경찰서여, 안녕’의 그야말로 첫 장을 넘기면 그의 사진을 마나게 된다. 내가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사진을 이렇게도 찍는 사람이 있구나’ 였다. 두손을 귀에 붙이고 순수하게 웃는 모습이 작가의 지적 수준을 의심케 만든다. 첫 모습에서 그렇게 순수하게 웃어주엇던 김종광은 그 다음장 그리고 또 그 다음장에서도 그 웃음을 간직하게 해준다. 하나같이 사투리를 걸죽하게 해대며 위트를 가진 인물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때론 너무 많이. 첫 이야기인 경찰서여, 안녕에서는 둥글 둥글 사투리를 써대지만 도벽증을 가진 무시무시한 소년을 등장시키는가 하면 많이 많이 축하드려유에서는 오토바이 시험에 응시한 60명이 넘는 사람을 하나하나 소개시켜주며 각양 각색의 사투리와 함께 단편소설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등장해도 괜찮은가 라는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이 소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몇가지 등장인물이 지나치게 많다. (산만하긴 하지만 재미있다.)사투리가 많이 등장한다.(할머니부터 어린 아이까지 몽땅 다 사투리에 능란하다.)
경찰에서 군 생활을 보내는 남자가 심심찮게 등장한다.(작가는 반드시 군생활을 경찰에서 했을 거다. 이렇게 추측않고는 못 배긴다. ) 이 시대상을 잘도 나타낸다.(할아버지들의 아엠뿌 타령에 공공 근로자가 주인공인 소설도 있다. ) 결론을 내리자면 정말 무지무지하게 재미있다. [인상깊은구절] “디스 한 갑요.” 불알 영글라면 몇 년은 더 떡국 먹어야 할 것 같은, 텔레비전에 나와서 오도방정 떨어대는 것들하고 생긴 골상이며 차림새가 판박이인, 노란색으로 물들인 머리통 하나가 불쑥 드러와서는 카운터에 천원짜리 한 장을 탁! 소리나게 펴 놓았다. 하지만 속단은 금물이다. 요새 어린 것들은 외양만 보고 나이 짐작하기가 힘들다. 사나흘 전에도 체면을 팍팍 구겼다. 100퍼센트 미성년자라고 확신한 게 실수였다. 괜스레 안 해도 될 훈계까지 늘어놓았다가 녀석이 내만 주민등록증을 보고 얼마나 멋쩍었는지 모른다. 열여덟 이쪽저쪽으로 보았는데 스물둘이었다. 녀석이 남기고 간 말이 두고 두고 씹을 만했다. "할아버지, 법규 수호 냉장고 이후로 담배가게 주인들이 꼭 주민등록증 확인하잖아요? 저희도 마찬가지라고요. 법규 수호 냉장고 이후로 주민등록증 꼭 갖고 다녀요.“ “할아버지, 담배 안 줘요?” “누가 안 준댜. 거시기를 보여줘야 줄 것 아닌감.” “거시가가 뭐여요?” “어떤 녀석은 알아서 다 갖고 댕긴다고 그러더만. 주민등록증 말여.” “아, 그거요. 해튼 법규 수호 냉장고 땜이 담배 사기 좆나게 힘들어졌다니까.” 어랍쇼. 좆나게? “깜빡했는데, 나, 바뻐요 |
| 사실 경찰서여, 안녕이나 분필 교항곡, 많이 많이 축하드려요등유니크한 단편들에 비해 정육점에서는 얼핏 평범하다. 하지만 혹시 이갈리아의 딸들을 읽어보셨는가? 소위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갈리아의 딸들이라는 재미있는 소설을 읽어보았을 것이다. 가상의 모권주의 사회 속에서 사회적 약자인 남성으로서의 지위를 깨닫고 남성 해방 운동에 앞장서게 되는 페트로니우스의 이야기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박장대소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혹시 과거에 존재했을 지도 모르는 모권주의 사회에 대한 은밀한 향수에 젖기도 했지만... (하긴 모계사회는 있어도 모권사회는 없었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라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다지 유명하지는 않지만 꽤 주목을 받고 있는 김종광이라는 젊은 작가의 소설집, '경찰서여, 안녕'에는 '정육점에서' 라는 유쾌한 단편이 등장한다. 배경은 이갈리아의 딸들처럼 성역할이 전이된 가상의 공간. 하지만 내용을 읽어보면 성역할만 교묘히 바꾸었을 뿐, 90년대 한국의 다른 차원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박노해라는 남성 시인을 서민해라는 여성 시인으로 바꾸어 놓은 것만 보아도... 정육점은 작품에서 미아리 텍사스같은 사창굴을 의미한다. 사실 텔레비젼이나 잡지에서 본 사창가의 모습은 정말 정육점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은가? 붉은 빛 아래 전시된 사람들... 그렇지만 정육점이라고 딱 못박아서 비유해버리니까, 왠지 슬픈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작품 속의 정육점에서는 여성우월주의 사회 답게 여성이 아닌 남성의 성을 판다. 그것도 아주 싸구려로. 작품의 내용 자체는 흔하디 흔한 남성작가들의 창녀 이야기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우여곡절 끝에 사창가에 들어온 막바지 인생인 창녀와, 80년대 순결했던 운동의 이미지가 90년대에 상품처럼 팔리고 있는 것에 환멸을 느끼고 술에 취해 사창가를 찾은 젊고 무력한 룸펜. 창녀는 그날이 자신의 생일이라는 것에 대해 얘기하고, 룸펜은 박노해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창녀에게 생일 선물로 포도 한 상자를 안겨주고 떠난다는 진부한 내용. 그런데, 진부하기 짝이 없는 창녀와 룸펜의 이야기가 성을 바꾸어 버리자 이상하게 생기있어 지는 것은 무엇때문인지? 이 소설은 재미있다. 군데 군데 터져나오는 비유나 표현등이 깔깔거리면서 웃게 한다. 하지만 막상 내용을 분석해보면 이렇다 할 만한 점이 하나도 없는데도, 단지 남과 여의 성역할을바꿔서 위트를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감상을 쓸 정도로 관심이 간다는 것은...어쩌면 우리 세상의 여성의 지위가 어떤 것인지를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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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여 안녕이라는 책을 읽고나서 내가 느낀 것은 우선 농촌의 모습이 참 잘 묘사돼 있다는 점, 그리고 구수한 입담으로 웃음을 저절로 유발시킨다는 점, 마지막으로여러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통해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해 줬다는 것이다.
여런 단편 소설들 중 내가 감명깊게 읽었던 작품은 표제작인 경찰서여 안녕 이었다. 작가의 경험이 녹아있는 이 작품 마지막부분에서 경찰서를 탈출하던 강수와 더 넓은 세상으로 갈수 있도록 잘가라고 배웅해 주던 명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 밖에도 작가의 전경 생활이 잘 스며있는 [검문], [전설,기우] 이라든지 농촌 사람들의 좌충우돌 오토바이 면허증 따기, [많이많이 축하드려유],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짚가리, 비릊다]라는 소설도 매우 재미있었다. 짚가리, 비릊다에서 기계치인 작가의 모습이 나오는데 나하고 너무 똑같아서 속으로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또 외람된 이야기지만 비릊다라는 말이 임산부가 진통을 하면서 아이를 나으려는 기미라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어쨌든 김종광이라는 작가의 작품을 통해서 위 제목처럼 한바탕 웃을 수 있었고 농촌의 모습과 더불어 사람이 부대끼며 느끼는 정(情)의 의미도 어느정도 알게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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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대부분의 독자들이 생면부지의 신인 작가를 만나게 되는 경로는 서점의 신간 코너에서 그네들의 첫 작품집을 목격하게 되면서 일 것이다. 문학 잡지나 신춘 문예에 유독 관심이 있지 않고서는, 딴은 신인 작가가 신문에 광고를 터뜨릴 수 있는 힘(?)이 없고서는 대개 한 신인과 다수 독자는 서점에서 만나기 마련이다. 상품으로서의 책이 오로지 판매를 전제로 서점에 유통되어 독자를 대면하기까지의 과정이 삭막하지 아니한가 비판하려고 주제에 서두부터 폼을 잡는 게 아니다. 혹 그런 과정 속에서도 책과 작가와의 인연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서두가 전문가 행색을 갖춘 연유이다. 그리고 내게 그런 동기를 제공해 준 것은 김종광이라는 작가와 그의 첫 작품집 <경찰서여 안녕="">이란 책이다.
솔직히 충동 구매라 말해야 할 터였다. 사연인즉슨 얼마 전 피치 못할 개인적인 사정으로 경찰서에 들렀던 나는 그 꺼림칙한 경험을 채 잊기도 전에 오랜만에 간 서점 신간 코너에서 이 책을 발견(!)한 것이다. 경찰서여 안녕? 그래 오냐, 잘 만났다 하며 덥석 사버렸다. 그리고 집에 와서 찬찬히 책을 읽고 나니 이게 묘한 인연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물론 그 이유란 김종광이란 신인이 제대로 된 걸출한 재능의 작가임을 확인하였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거기엔 또한 재능만을 칭찬하기 전에, 최근 소설 문단이 신인 여성 작가들의 약진으로 인해 작품 경향도 일편화되어 문단전체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았나 하는 우려가 드는 상황이고 보니 남성적인 호방함, 속도감 있는 이야기 등을 특징으로 하는 소설들의 출현을 목타 했는데 김종광은 가히 그 기다리던 작가였던 것이다. 개인적으론 성성제, 김영하, 정영문 이후 믿을 만한 신인이 아닌가 평가하고 싶고, 덧붙여 문학사적으론 자기만의 독보적이면서도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경지에 이르러 작품 세계를 계승하기 힘든 박상륭, 이인성, 이문구 계열의 작가들 중 바로 이문구의 뒤를 이을만한 재목이 아닌가 하는 믿음도 가져본다.
이렇게 말하면 김종광의 소설의 형상이 조금 드러났을 것 같다. 이문구의 오른편에 설만 하니 당연히 충청도 사투리의 입담하난 제대로 구사하지 않겠는가. 맞다. "편안한 밤이 오기 전에"라는 단편의 능청맞은 입담은 가히 이문구에 맞먹는 수준이다.
"뭐유? 시방 그럼 보고 있으면서도 안 오는규? 마누라 걱정은 눈곱만큼도 안되쥬? 마누라야 뒈지건 말건 상관없다 이거쥬? 알었슈. 혼자 잘 먹고 잘 살어유. 당신 믿고 살아온 내 인생 오늘루 종 쳤슈. 좋은 귀경 많이 허슈. 나는 발발 떨다가 심장 떨어질 테니께. 혼자 극락왕생하란 말유."
하지만 김종광의 소설은 단순히 이문구식 소설이 아니다. 그의 단편들엔 어떤 작가도 갖지 못한 특징이 있다. 그 하나는 인물이다. 그의 단편 하나엔 왠만한 장편 소설 한 편에 나오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수십 명이 얼마 되지 않는 분량 속에서 쏟아져 나온다. 작가는 이 인물들을 요령있게 통제하는 데 그 방식이 참신하다. 연극 대본의 인물 소개처럼 인물들은 이름 옆에 나이를 달고 나온다. 별게 아닌 것 같지만 그 많은 인물들을 기억하는 데 제법 도움을 준다.
다른 하나는 그의 소설들이 또한 그 인물들을 묘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은 것이다. 쉽게 말해 주인공이 없을뿐더러 인물들의 얘기가 주제와 직접 연결되지 않은 것이다. 그가 살피는 것은 인물이 아니라 인물들이 노는 판이다. 속물적인 인물들이 싸우며 부딪히고 욕하는 그 판을 소설의 수면 위로 부각시키는 것에 작가의 목적이 있다. 다시 말해 김종광은 장편이 아닌 단편이라는 형식을 통해 비논리적인 판의 순리, 세상의 질서를 간명하게 일침을 가하듯 드러내고자 하는 소설을 쓴다. 그러면서도 수없이 등장하는 인물군상들과 의뭉스런 충청도 진국 사투리는 리얼리즘적 풍성함을 소설에 입혀 주는 것이다. 단편을 형식 기법의 실험장, 장편을 본격 리얼리즘 소설의 무대로 이해하고 있는 양분된 시각을 타파한 시도는 신인으로서의 김종광의 자격이자 권리이고 성취한 바라고 여겨진다.
또 한가지 이 신인을 신뢰할 만한 것은 첫 소설집다운 성격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요즘 신인들의 첫 창작집에는 자기 반영적 소재나 이야기를 적은 소설이 드물다. 이것은 소설가로서 또는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자의식이 부족한 데서 연유되는 것이다. 작가 의식의 치열함이 분명 예전만 못한 것이 사실이다. 허나 김종광은 후기에서 "나는 문인이 아니고 작가다. 예술하지 않고 노동한다"라는 말을 적었는데, 선배 작가 구효서처럼 전업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의미심장한 다짐인 듯 하다. 이러한 점은 구호만이 아니라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즉 아직 젊은 이 작가의 소설 세계는 자기 경험적 세계에 한한다. 자신의 의경 복무 시절과 시골에서 농사 짓는 아버지, 그리고 소설 쓰기에 대한 자의식이 그대로, 농촌 사회에 대한 비판적 점검("모종하는 사람들"), 의경 복무 경험을 소재로 한 속악한 현실에서의 비인간적인 체험("검문"), 그 속에서의 작가 되기의 과정 내지는 소설 형식의 탐구("전설, 기우", "짚가리, 비릊다")를 주제로 한 소설로 만들어진 것이다.(물론 그렇지 않은 소설도 많다. 대표적으로 "정육점에서"란 어린 남자 아이들의 매춘를 다룬 소설은 일반 사창가에 떠도는 그런저런 희한한 얘기들을 반대로 응용한 것 같다.)
그가 그리는 인물들은 대부분 현실의 높은 벽을 느끼며 속악하고 비루하지만 그들이 노는 판의 세상의 질서를 작가는 날카롭게 응시하고 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김종광은 리얼리스트가 된다. 그에게 농사짓는 아버지와 자신은 하등 다를 게 없는 노동자다. 나는 이 젊은 노동자가 보다 많은 밭을 일구어 그 생산품이 많은 사람과 만나기를 바란다. 나와 같은 엉뚱한 인연은 되도록 피하는 게 좋겠지만. [인상깊은구절] "근디, 영감은 농사두 안 지면서 농사꾼들 편역을 든대유?" "으이구 무식헌 거. 저것이 농사꾼만 잡자는 짓거리여? 국민들 다 잡자는 거여, 다." "음마, 또 무식이라구 혔슈? 내가 무식이 찾지 말라구 혔쥬? 영감은 뭐 배운 거 있슈? 초등학교 울타리 한평생 고쳤다구 그걸 배었다고 유세 떠는 규? 그런 규?" 아내, 열 받았다. 이럴 땐 별안간 벙어리로 돌부처 되는 게 최상수다. 그렇지 않아도 너무 많이 배운 자식놈들한테 말발 딸려, 학력 무(無) 인생을, 툭하면 한하는 사람을 건드렸으니. 아내는 산 보고도 시옷을 못 쓰는 사람이다. 앉혀놓고 가갸거겨 가르쳐준다고 폼 잡았다가, "갈쳐줄라면 젊은 때 갈쳐줘야지, 사잣밥 먹을 날 내일 모레 글피루 받아놓고 뭔 지랄이래유" 황천길 재촉하는 소리 듣고 나서는, 그래, 네 똥 굵다! 관 뚜껑 닫힐 때까지 일자 무식을 살아라, 놔두고 살아왔다.경찰서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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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는 괴도 루팡 못지 않은, 무엇이든 훔쳐내는 재주를 가진 소년입니다. 부모를 잃고 나이 차가 많이 지는 형이 돌봐주지만 강수의 도벽을 다스리지 못해 결국 파출소에 맡기게 됩니다. 그다지 다정하고 착한 형도 아닌데가다 강수가 아무리 도둑질을 많이 해도 소년원에 들어갈 나이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동네 파출소에서, 그 중에서도 강수에서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겉으로는 매질로써 애정을 표현하지만) 유 형사가 소년을 돌봐줍니다. 하지만 강수는 매번 되잡혀 오면서도 탈출을 꿈꾸지요. 바로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르는, 자기를 기다려주는 것이라고는 없을 것이 분명한 들판을 향해 달려가기 위해서...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꿈과 이상은 바로 저 너머로 보이는 들판에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안감힘으로 그 들판에 가 닿았을 때 과연 그곳에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꿈과 모험과 환상의 세계가 유원지처럼 펼쳐져 있을런지.
그러나 어쨌든 우리는 도착하면 황량한 빈 들일지도 모르는 그곳을 향해 지금도 달려가고 있는 중입니다. "나를 기다리는 것이 그 무엇이라도 좋"다고 생각하며 소중한 꿈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지요. 때로는"꿈만 먹고 살면 어때?"하며 과장되고 씁쓸한 웃음도 지으면서 말이죠.(*) [인상깊은구절] 식당에서 자투리를 슬쩍해서 모은 돈(천안댁은 김치에만 신경썼지 내가 잔돈푼을 빼 돌리는 것은 까마득히 몰랐다), 전경내무반을 뒤져 모은 돈(그들은 내가 단순히 장난감이 되어주려고 찾아가는 줄 알았다), 본관 각 부서에서 훔친 돈(그들은 단순히 심부름을 시켰지만, 그것은 나에게 기회를 준 것이기도 했다), 경찰서를 방문한 민간일을 상대로 소매치기한 돈(서울에서 가장 손쉽게 적응할 수 있는 기술이 소매치기 기술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밤늦게까지 홀로 연습을 했고, 민간인을 상대로 경험을 쌓았다)을 다 합치니 이십만 사천사백사십원이었다. 수많은 얼굴이 보였다. 형, 형수, 3학년 때 담임선생, 파출소 경찰들, 백 형사, 이씨 할머니, 천안댁, 정수, 성만, 명오, 수경... 그리고 유 형사의 얼굴이 오래도록 보였다. 삔 발목에 깁스를 하고 병실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는, 나, 이강수만을 생각하고 있다는 유 형사가. 그리고, 그리고 또 무엇인가가, 이제까지 떠오른 얼굴들과는 다른, 전혀 다른 무엇인가가 보였다. 감나무였다. 그리고 또 보였다. 감나무에 쇠줄로 묶인 채, 문밖 불빛 가득 피어 있는 들판을 향해 고통스럽게, 있는 힘을 다해, 한없이 짖고 있는 검 |